기본

이장춘 2011. 11. 25. 09:58

 

 

2011년 12월 31일이면 KBS가 TV방송을

내 보낸지 50주년 반세기가 되는 날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60불 시대 1956년 이 땅에 TV방송국이 생겼지만

TV방송을 보기에는 아직 일렀던지 TV방송을 실시했어도 수상기는

 3,000대에서 좀처럼 늘어나지 않다가 결국 화재를 만나는 등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아야만 했던 시기에 5.16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오재경 장관이 두 번째

공보부장관 자리에 돌아오면서 그의 가장 큰 꿈 TV방송의 실현을 위해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연주소를 짓고 기계를 들여오고 송신소를 지어 방송을 내보낸 것이

1961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반세기가 흘러 KBS는 세계적인 방송국으로

 받돋움했고 그때 TV방송을 세운 주역 오재경선생님은 올해 92세가 되었어도 건강한

모습으로 KBS모습을 지켜보신다고 하십니다. 옛날에 사시던 혜화동집 거기서

사시면서 방우회와는 연락을 하십니다. 실무책임을 맡았던 87세의

 최청봉선생님도 건강한 모습이십니다.

 

 

KBS TV방송 50년을 맞으며 / 방송개시 1961년 12월 31일

 

 

 

 

 

예산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 지을 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기재가

 확보된 것도 아닌 무에서 5개월 만에 역사적이 TV방송을

내보낸 것은 방송사상 그 유례가 없었지만 대한민국 방송인들은

 그일을 해냈습니다. (그 과정은 본 블로그 카테고리 남산시절 방송에

 자세히 기록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당시 개국 식 실황 사회를

 보았던 임택근 아나운서는 지붕위로 별빛을 보며 개국 식을 했다고

 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TV방송 건물 안에서 행사를

진행했음을 말해주는 일화입니다.

 

그때 국민소득 100달라, 보급된 TV수상기라야

 10,000(萬)대도 안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첫 TV방송국

 HLKZ가 방송을 시작한지 5년이 더 지났지만 수상기는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있던 수상기도 정상루트를 통해서 들어온 것은

극히 적었고 미군 PX를 통해서 흘러 들어온 수상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방송을 실시하면서 특단의 조치로 2차에 걸쳐 긴급히 들여온 수상기가

20,000대였고 그 TV수상기를 서로 살려는 성화 속에 미리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아 공급했습니다.

 

 

 

 

HKZ에서 방송을 하던 분들이 방송준비를 했지만

 그 요원만으로는 어려워서 새로 피디나 엔지니어 등 새로운

 방송인을 선발한 것은 11월 중순이었고 이들이 단기간의 훈련을 받아

HLKZ에서 온 분들과 힘을 합해서 방송에 임했습니다. 12월 31일밤 2시간의

 특집방송을 내 보내고 다음날 1962년 1월 14일까지는 별도 프로그램 편성 없이

 외화나 몇 개의 개국 프로그램을 방송하다가 4시간의 정규방송 프로그램에 따라

방송 한 것은 1962년 1울 15일이고 TV방송의 직제가 새로 마련 된 것은

2월 2일이어서 그로부터 새로운 진용이 갖추어지고 방송을

 했지만 우여곡절은 많았습니다.

 

 

수상기 구입접수 창구

 

 

제대로 갖추어지지도 않은 스튜디오에서도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때 수많은 화제 거리를 남기면서

방송을 했습니다. 생방송에서 녹화방송으로의 전환은 방송시작

5년이 지나면서 부터였습니다. 국영방송이었지만 어려웠던 나라에서

 정부 예산으로만 방송국을 운영할 수 만은 없어서 100원의 시청료를 받았고

 그러고도 어려워 광고방송을 했지만 TV수상기는 30,000대에서

 좀처럼 늘어나지 않아서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형편도 어려울 때였지만 영상출력 2Kw,

음성출력 1Kw로 방송된 초기 TV방송은 서울과 경기도

일부밖에는 들리지 않아서 TV수상기 보급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전국방송을 위한 각 지역의 중계소가 설치되고 서울의 출력이

10Kw로 늘었다가 다시 50Kw로 늘어날 무렵 1970년대 들어서면서 드라마가

돌풍을 일으켜 TV방송에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앞서 1960년대 후반부터 국산

 TV 생산과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수상기는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이대부터 오랜 기간 생활 속의 친구였던 라디오가 뒤로 물러서고

TV방송이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대였습니다. TV 3국

시대라고 불리는 극심한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역작용이

 우려되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칼라방송시대를 맞던 때 언론 통폐합이라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방송암흑기를 거쳐 1990년대 방송민주화와

 함께 위성, CATV, 인터넷방송 등 다 미디어, 다채널시대를 맞았습니다.

21세기 국경 없는 방송시대, 정보화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서 맞는

 KBS TV방송 50년 반세기를 돌아보면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이 수백 년간에 걸쳐

 진전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화 사회가 불과 50년간에 걸쳐 진전되면서

 방송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엄청나게 변해 버렸고 세상도 그만큼 달라졌으며

사람들의 의식도 달라졌습니다. 아울러 시대적 소명을 띤 방송은 엄청난 큰

과제를 안고 앞을 해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변화무쌍한 시대에, 새로운 시대에 국민의 사랑받는 방송이

 되었으면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KBS가 국민의 사랑 받는 가운데

 

무궁한 발전있기를 빕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아리랑 김연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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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김연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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