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1. 12. 13. 23:54

 

 

 

 농촌인구 70%,  1인당 국민소득 1,100달러가 되던 때

우리도 잘 살아보자며 국민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을 처음 벌리던 때로부터 40년이 되었습니다. 1972년

 1월 17일 내무부가 처음으로 새마을 운동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발표는 내무부에서 했지만 청와대에서 총괄하던 일이었습니다.

 KBS는 그로부터 새마을 방송본부라는 임시기구를 두고

본격적인  새마을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KBS 새마을 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때

 

 

남산에 있던 중앙방송국 1층에 마련된

 새마을 방송본부 사무실에는 벽에 상황판이 빽빽이

들어차고 20명 정도의 각 부서에서 파견된 새마을 방송

전담요원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그 건물의 2층에 있었고 저도 그 새마을 방송본부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5천년을 이어오던 가난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이룩하자는 데서 시작된 것이었

습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각 방송사들도 시일이 지나며

동참하고 모든 매체가 하나 되어 이 운동을 펼쳐 나가자 곧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새마을 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던 국민들도 너 나 할것 없이 이 운동에 참여

 했습니다.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졌습니다.

 

 

 

 

1973년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처음에는 작사 작곡자

성명미상이었음)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고 오막살이

 초가지붕이 슬레이트집이나 기외 집으로 바뀌어 산뜻한 페인트로

입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던 마을길이

경운기나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혀지고 포장되었습니다.

꾸불꾸불 하던 논두렁은 네모 반듯하게 변해갔고 그 사이로 포장된

 넓은 길이 생기고 그 길 위를 다닐 수 있는 경운기나

자동차가가 보급 되었습니다.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모습이 변해버린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중마을 비거리 모습입니다.

 

손으로만 하던 농사일은 기계가 보급되어

대신 할 수 있어서 늘 일손이 모자 어렵기만 하던 때 

거기다가 그 무렵 여기 저기 새로운 산업시설이 생기면서

 농어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도 기계화 덕분에 농촌 일손은

 그런대로 이어갔습니다. 비좁고 불편하기만 하던 부엌이 넓혀져 입식

싱크대가 마련되고 부엌에서 물을 버려도 되는 하수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오던 재래식 변소는 새로움 모습으로 바뀌고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으며 우물물을 먹고 살던 마을에 수돗물이 들어

습니다. 황폐화 되었던 산은 푸르러 졌고 나날이 달라져가는 농어촌의

모습들이 수시로 방송전파를 탔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날이 갈수록

 한층 가속화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은 달라져  갔습니다.

마을에 마을회관이 새로 마련되고 스피커를 통해서

공지사항을 알렸으며 노래나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라디오도 없던 농어촌에 텔레비전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벌리기 시작한지 10년이 안되어 우리 농촌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또 한편으로는

곳곳에 공장지대가 늘어나면서 농어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공장지대로

옮겨사는 경우가 늘어났고 처음에는 농어촌만을 대상으로 한 운동인줄

알았던 새마을 운동이 도시로도 번졌습니다. 단순한 외향적인

 변화가 아니라 5천년 이어온 생각이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는 새마음 운동으로 번졌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100달러 시대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이 시작 된지 40년이 지난 오늘 20,000불

시대가 되었고 아세아의 변방 가난하기만 하던 대한민국이

그 중심권에 들어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새마을방송 초기 그때 그 얘기

 

당시의 최창봉 KBS 중앙방송

국장님이 KBS사우회가 엮은 그때 그 시절

KBS 이야기에 쓴 초창기 새마을 방송에

관한 글 한 토막을 옮깁니다.

 

  

최창봉 KBS 중앙방송국장

 

 

....전략

필자는 간부회의에서 모처럼 정부가 제창한

 농촌개혁을 위한 새마을 운동의 확산을 위해 KBS가

 총력을 기울여 앞장서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농어촌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화롱을 실감나게 소개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어촌 현장일꾼들이 이 개혁

운동에 흥겹게 자진해서 참여 하도록 격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라디오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매체라는

것을 강조했다. KBS는 이 운동이 곧 범 국민운동으로 퍼져 나가도록

 뒷받침하기 위해서 뉴스 시간마다 새마을 운동 코너를

설치하고 관련소식을 중점적으로 전해 나갔다.

 

청와대 담당관과 이 운동에 참여했던

해설과 좌담회도 계속 방송 해 나갔다. 네덜란드와

 덴마크, 이스라엘 농촌 현장을 취재한 프로그램이 특히 많은

관심을 모았다. 잠잠하던 다른 언론들도 차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마을 운동은 점차 전 국민의 관심사로 자리 잡아 나갔다. 군사 독재정권이란

 호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었지만 정부가 하는 일에는 냉랭하던 지식인들이 새

마을 운동에 대해서는 점차 동참하는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 한두 했다.

1972년 4월 들어서면서 새마을 운동을 좀 더 집중적. 항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담기구를 설이하기로 하고

 1일에 새마을 방송본부를 발족했다.

 

본부장은 텔레비전 편성과장이던

 손영호 편성과장이 담당케 하고 라디오, 텔레비전의

우수한 스태프 20여명을 전담 배치해 새마을 운동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의 제작을 전담하게 했다. 4월 11일 정부는 1972년도

 새마을 사업 계획안을 채택하고 전국 1만 6,602개 마을(리, 동)에

107억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후약.....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새마을 사업 시작 김승한-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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