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2. 3. 5. 21:54

 

(1) 주태익 (朱泰益) (2) 노정팔(盧正八) (4) 유호(兪湖) (5) 최요안(崔要安)

 (6) 홍석진(洪石眞 (8) 이기명 (李基明) (12) 김원태(金元泰) (16) 신윤생(申允生)

 (17)추식(秋湜) (18) 정진건(鄭鎭建) (19) 김석야(金石野) (20) 박조열 (22) 최풍(崔豊)

 (23) 이인석(李仁石)  (24) 김중희(金重熙)  (26) 백승찬 (27) 이희복 (28) 민병훈 

(32) 김교식(金敎植) 1970년대 활동하던 방송작가님들입니다.

 

 

 

 

일제 강점기로 시험방송시절부터 시작된 

라디오 방송 드라마는 1960년대까지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 시절 드라마 작가는 당연히 라디오 드라마

작가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1950년대까지 방송국은 KBS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드라마 얘기는 일제강점기 드라마

편에서 썼으므로 그 이후의 얘기를 쓰겠습니다.

 

 

 

성우에 관한 얘기는 따로 있습니다.

 

1960년대 70년대 민영방송 시절의 성우는

카테고리 ◀민영방송▶ 편에 있고 KBS성우는

아래 영문자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1192

 

 

 

 

 

방송작가, 해방공간으로부터 70년 변천사

 

 

1948년 학생신분으로 KBS전속작가가 된 한운사님이

그때 방송작가가 되었을때의 얘기를 1956년 11월 방송지에 가고

했습니다. (전속작가 시험이 있은 후) 「이튿날부터인가 나는 출근했다.

소위 전속작가들 김영수, 김희창, 이익, 유호, 이분들이 죽 앉아있는 맨 끝에

나는 태블을 하나 얻었다. 짧은 이 글속에 그때 KBS 전속작가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해방된 나라에서 방송국에서는 글 쓸 작가가 있어야

했고 작가는 KBS밖에 없을때라 KBS를 찾았습니다.

 

이분들이 드라마, 노래 가사를 바롯해서 방송에 나갈

글들을 썼습니다. 김희창, 이서구, 김영수, 이익 님은 일제강점기

부터 드라마를 비롯해서 방송원고를 써 오셨고 해방되어 새로 글을 쓰기 

시작한 분들이 유호, 조남사, 한운사, 최요안 님등이었습니다. 이분들을 일컬어

 대한민국 1세대 작가라고 했고 50년대 60년대 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방송드라마는

 이분들이 주도했습니다. 조남사, 한운사님은 뒷날 2사로 불려지면서 방송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익님에 대해서는 생소한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가수 신 카나리아의 남편

이기도 한, 님은 글도 쓰고 KPK악단에서 활동했으며 새별 악극단을 조직해서 전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기간중 김희창, 김영수님은 VUNC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에서 글을 썼고 유호, 이익님은 군에서 글을 썼기에

방송국에서는 조남사, 최요안님이 주로 글을 썼고 이서구님도

 좋은 작품을 내 주셔서 전쟁중에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방송국이 서울로 오면서  최요안, 조남사,

유호, 한운사, 장수철, 박화목, 박흥민. 이석정

(월남작가)님이 활동했고 때마침 CBS 기독교방송이

문을 열면서  주태익, 이경재님이 글을 쌌습니다. 이서구님은

 대구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글을 썼고 1961년

장희빈 히트작을 내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김희창

김영수님도 1950년대 중후반에 VUNC에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멜로드라마가 방송되고

 일일연속극이 방송되면서 방송작가는 늘었습니다.

1960년대 민영방송의 출현으로 방송사의 경쟁력의 승부를 

드라마에서 결정지으려던 각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드라마 방송을

 늘려 나갔고 이에 수반한 드라마 작가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작가는

 대폭 늘어났습니다. 남자분들이 주도하던 작가는 여자 작가분들의 진출이

 차츰 눈에 띠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보잘것 없던 원고료도  크게 상향 지급

 되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TV방송이 본격화 되면서 각 방송사들은

하루에만 해도 여러편의 드라마를 편성하게 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해 갔습니다. 오늘날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여성작가 박정란,

김수현님 등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내역은 아래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송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확대 되었지만 방송국 프로듀서 등 직원들은

 늘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의 단축 등으로 직원들이

 직접 수행하던 업무의 상당부문이 작가들의 몫으로 되었습니다. 드라마나

각종 프로그램에 방송될 원고를 쓰는 외에  구성작가, 코메디 작가 등으로 불리는

분야의 작가들이 있어서 이분들은 옛날 프로듀서가 하던 업무역역까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프로그램의 기획에도 참여하고 글도 쓰고 연사도  섭외하며

 편집,  진행,  현장촬영 등에도 참여합니다. 또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작가 분들의 

대부분은 여자 분입니다.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여러분야의

작가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수가 엄청 늘었습니다. 제가 방송제작에

참여했던 1960넌대 70년대 까지만 해도 방송작가라면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였지만 요즈음은 작가들 스스로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를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고 하는 일도 늘어

니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합니다. 

 

 

역대 방송작가 협회 이사장

 

 

1957년 방송작가들의 친목단체로 출발한 한국

방송작가협회는 55년을 이어오면서 27대 이사장까지

이어왔습니다. 준비못한 사진은 준비디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초대 10대 이서구, 2대 김희창, 3, 8, 11, 15대 한운사, 4, 5대 조남사

6, 7대 이용찬, 6대 권항대행 김교식, 12대 주태익, 13대 이인석

14대 김광섭, 16, 17대 유호 18대 심영식, 18대 권한대행 오재호

18대 권한대행 이철향, 19, 20, 21, 22대 김수현,

23대 신사일, 24대 이희우, 27대 김옥영

 

 

 

 

이서구, 김희창 선생님은 일제강점기부터 방송 드라마를 써 오신 분으로

1대, 2대 이사장을 지내셨고 조남사 한운사님은 KBS 간부를 지낸 드라마 작가로

1950년대 부터 드라마를 쓰셨습니다. 조남사님의 우리나라 최초 멜로드라마 청실홍실,

한운사님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은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용찬

이사장님은 1950년대 한중록등으로 널리 알려진신 분이고 김교식 이사장님은

TBC의 광복 20년으로 청취자와 친숙한 분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방송인물사나 기본 태마 여러곳에 얘기가 있으므로 생략합니다.

 

 

 

 

 

 

1972년 방송작가 인명록

 

이 사 장 한운사

부이사잗 이호원

상임이사 김영곤

 

이사

 

박서림, 정진건 (홍보위원회)

양근승, 윤혁민 (연구위원회)

이관석, 최 풍(권익 옹호위원회)

 

감사 박이엽, 이기명

 

 

회원

 

강위수, 곽일로, 곽현, 구석봉, 김경옥, 김관봉,

김광섭, 김교식, 김기팔, 김동현, 김석야. 김수현, 김순복,

김영곤, 김영수, 김원태, 김이연, 김창린, 김자림, 김중희. 김지수,

김진욱, 김포천, 김항명, 남지연, 노능걸, 민병훈, 박도원, 박서림, 박수복,

박신민, 박신호, 박우보, 박이엽, 박정란, 박조일, 박승찬, 백전교, 사유선,

서원성, 신명순, 신봉승, 심영식, 양근승, 연용모, 오재호, 오학영, 원랑운,

유보상, 유호, 윤청광, 윤혁민, 이관석, 이걸재, 이기명, 이남섭, 이문군,

이보라, 이서구, 이석정, 이성, 이성재, 이수화, 이영신, 이영준, 이용찬,

이욱열, 이원복, 이은성, 이이녕, 이인석, 이재우, 이진섭, 이철주,

이한인, 이호원, 이희복, 전창식, 전홍, 정진건, 조남사, 주옥연,

주태익, 차범석, 최요안, 최재복, 최풍, 최헌, 최호영,

최홍목, 추식, 하유상, 한운사, 현재훈, 홍윤기,

 

 

1960년대에 이전부터 활동하던 작가분들입니다.

1, 박영만,  6. 이진섭, 7. 장수철, 8. 이서구, 11. 한석윤,

 12. 임희재, 15. 이호원, 16. 주태익,  17. 정순일, 18. 이경재, 

 20. 최요안님 확인되는대로 보완하겠습니다,

 

 

위 사진은 1970년대 초에 촬영한 사진으로

(1) 이관석, (3) 백승찬 (4) 최홍준 (5) 박이엽, (6) 노능걸

(7) 곽현, (9) 이재우, (11) 김교식, (12) 박신호, (13) 이용찬, (14) 전창식,

(16) 홍윤기, (17) 최풍, (18) 이진섭, (20) 최요안, (21) 최헌, (22) 양근승,

(24) 이기명. (25) 전홍. (26) 윤혁민. (27) 김항명, (29) 최호영, (31) 정진건,

(33) 백전교, (35) 이욱열, (37) 이영준, 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은 2000년 5월 10일 양평에서 열린

원로중진작가 간담회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과는 30년의 사긴차가 있어서 40대, 50대의 작가분들이

70대 80대가 되어 모두 원로가 되셨습니다. (1) 이영준, (2) 최헌,

(3) 한운사, (4) 김항명, (6) 박서림 (7) 김종달, (8) 이은교, (10) 곽현,

(11) 불명 (12) 김진욱, (13) 이기명, (14) 김석야 (16) 유호,(17)

이희우(이사장), (18) (김광섭 (19) 윤청광 (20) 장석향

(21)김행호 (22) 이관석. (23) 박석준님

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한국방송작가 협회는 1965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열린 백제에술제에 참여

했습니다.아래사진은 그때 퐐영한 사진으로 작가 박서림, 이희복, 이영신, 황일청,

백전교, 김포천님과 성우 김석옥, 박민아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박서림님은 1958년

장마루촌 이발사로 데뷔해서 매일 나가는 홈드라마의 단골작가가 되어 즐거운 우리집

3,000 여회와 아차부인 재치부인 4,0000 여회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남겨 청취자와

친숙한 분이고 이영신님은 최초의 정치드라마 동양방송의 광복 20년으로 명성

드높던 분입니다, 여기 나오신 김포천님, 황일청님, 백전교님 그 시절 도시,

농촌 남녀노소 모두가 친숙한 분들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주태익,  한분건너 김희창, 이호원님입니다.

 

 

 

1996년 6월 고양군 장흥에서 있었던 원로 간담회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1)이상화, (2)유호, (3)장석향, (4)신상일(이사장),

 (5)한운사, (6)김광섭, (7) 임동호(사무국장) (8) 불명, (9) 이강덕(상임이사),

(10)유수호, (11)김진욱, (12)최헌, (13) 이영준,(14) 이경재.

(15) 괵 현(16) 박서림, (17)오진근.

 

 

이 글을 쓰는데는 원로작가 박서림님 등

여러 작가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진제공

설명은 박서림님의 힘이 컸습니다. 박서림님은 개인 홈을  

운영하시면서 많은 글을 써서 올리고 계십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방송작갸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방송극 (드라마) / 제 2 방송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88

 

박서림님 홈 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parkseolim.pe.kr

 

최홍준(최홍목)님의 생생한 체험기록 방송작가 반세기 50년(1)

http://blog.daum.net/jc21th/17781386

 

최홍준(최홍목)님의 생생한 체험기록 방송작가 반세기 50년 (2)

http://blog.daum.net/jc21th/17781433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청실 홍실 송민도 안다성.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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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가요, 제 블로그도 구경오시와요~~~ㅎㅎ.
좋은정보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