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이장춘 2012. 4. 3. 10:21

 

 

사적 제 193호 구리 동구릉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로 부터

 조선조 말 섭정을 한 신정왕후 조대비에 이르기

까지 7분의 왕(추존왕 문조 포함)과 왕비 등

 17분을 모신 9개의 능이 있는 곳이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입니다.

 

 

 

 

59만여 평의 부지에 태조대왕의 건원릉,

제5대 문종과 그 비 현덕왕후(顯德王后)의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비 의인왕후(懿仁王后),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목릉(穆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 숭릉(崇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 휘릉(徽陵), 제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그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그 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의 경릉(景陵), 제23대 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그 비 신정익왕후(神貞翼王后)의 수릉 등 9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나다순으로 능과 그 능의 비각 안에 있는 비, 비 역문을

함께 올려 능에관한 얘기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구릉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 왕릉 사적 제 193호

 

 

 

건   원 

 

 

 

 

조선을 세운 태조대왕을 모신 능은

 억새풀(쇠뜨기)로 덥혀있습니다. 태조는 승하하기 전

왕 이전의 한 사람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땅의 흙과 풀 아래

 잠들고 싶은 마음을 유언으로 남겨 함흥의 억새풀을 옮겨 심어 600년을

이어왔습니다.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벌초를 함으로 새로운 풀이 날 때 까지는

억새풀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능의 오른쪽에 세워진 비각 안에는 다른 비각과는

 달리 태조의 업적을 알리는 비와 신도비, 두 개의 큰 비가 있고 그 비 뒷면의

비문에 관한 역문이 있습니다. 1408년 태종 8년에 이곳에 건원릉이

자리하면서 동구릉의 터전이 잡혔습니다.

 

 

 

 

 

 

경    

 

 

 

 

제24대 헌종과 그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를 모신 능입니다.

3기의 봉분이 함께 한 능으로 조선왕릉

유일의 3연릉 이기도 합니다.

 

 

 

 

 

 

목      릉

 

 

 

 

제14대 선조와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릉,

건원릉에서 오른쪽 길 따라 올라 가노라면 앞이 탁 터진

시야에 좌 우로 3기의 능이 보입니다. 맨 왼쪽에 선조의 능이 있고

그 옆에 의인왕후, 오른쪽 편에 인목왕후 능이 있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맞은 왕이고 명종이 후사가 없어 제 11대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 셋째 아들로

왕이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에는 왕에 오르지 않은 왕의 아버지로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두 분의 대원군이 있습니다.

 

 

 

 

 

 

 

수    릉

 

 

 

 

제23대 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그 비

신정익왕후의 릉으로 유일하게 합장된 능이었습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지만 22세로 일찍이 세상을 떠 익종으로 추대되었다가 고종때 문조로

추존되었습니다. 세명세자의 비 신정익왕후(神貞翼王后)는 세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면서 대왕대비가 되었고 고종을 철종의 후계를

잇게 하면서 섭정을 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분입니다.

83세에 이르기까지 장수를 하셨습니다.

 

 

 

 

 

숭     릉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를 모신 능입니다.

정자각이 조선 왕릉의 정자각 중에서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현종은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에 가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나 조선왕 중에서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기도 합니다.

 

 

 

 

 

 

원     릉

 

 

 

 

제21대 영조와 그 계비 정순왕후의

능입니다, 탕평책과 조선왕조 최장수왕이고

 사도세자 얘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비각은

다른 비각과는 달리 3개의 문이 있고 그 안에는

 세 개의 비와 역문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현    릉

 

 

 

 

제5대 문종과 그 비 현덕왕후의 능입니다.

문종은 8세 때 세자가 되어 무려 29년이나 세자 자리에

 있었지만 왕위를 물려받은 후 일찍이 세상을 떠 어린 단종이

들어서자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문종의 예기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혜      릉

 

 

 

제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능입니다.

단의왕후는 경종이 세자 시절에 세상을 떴습니다.

 

 

 

 

 

 

휘    릉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입니다.

 

 

 

 

 

저는 세계문화유산의 현장을 들릴

때 마다 현장탐방을 해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 종묘, 강화 고인돌, 영월 장릉 (단종릉),

 경기도 서오릉, 광주 민주화 운동을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선정릉(선릉) 조선왕조 성종, 중종대왕릉 사적 199호 세계문화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439

 

서오릉,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 198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060

 

조선조 제 6대 임금 단종릉, 영월 장릉

 http://blog.daum.net/jc21th/17781002

 

세계문화 유산 종묘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717

 

강화 역사 박물관과 고인돌 공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874

 

 아리랑 세계문화유산, 민족의 노래 세계 인류의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1551

 

광주 민주화 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136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40기

 

 

▲동구릉(사적 193호) : 경기 구리시 인창동 62.

 

△건원릉 : 제1대 태조.

△현릉 : 제 5 대 문종 및 현덕왕후 권씨.

△목릉 : 제14대 선조 및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휘릉 : 제16대 인조계비 장열왕후 조씨.

△숭릉 : 제18대 현종 및 명성왕후 김씨.

△혜릉 : 제20대 경종비 단의왕후 심씨.

△원릉 : 제21대 영조 및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수릉 : 추존 문조 및 왕후 신정왕후 조씨.

△경릉 : 제24대 헌종 및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

 

 

▲서오릉(사적198호) :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경릉 : 제9대 성종사친 덕종 및 소혜왕후 한씨.

△창릉 : 제8대 예종 및 계비 안순왕후 한씨.

△명릉 : 제19대 숙종 및 계비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익릉 : 제19대 숙종비 인경왕후 김씨.

△홍릉 : 제21대 영조비 정성왕후 서씨.

 

 

▲서삼릉(사적 200호) :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효릉 : 제12대 인종 및 비 인성왕후 박씨.

△예릉 : 제25대 철종 및 비 철인왕후 김씨.

△희릉 : 제11대 중종계비 장경왕후 윤씨.

 

 

▲장릉(사적 196호) : 제6대 단종.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정릉(사적 208호) : 제1대 태조계비 신덕왕후 강씨 : 서울 성북구 정릉동.

 

▲온릉(사적 210호) : 제11대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

 

▲광릉(사적 197호) : 제7대 세조 및 정희왕후 윤씨.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태릉(사적 201호) : 제11대 중종계비 문정왕후 윤씨. 서울 노원구 공릉동 산223-19.

△강릉 : 제13대 명종 및 인순왕후 심씨.

 

▲홍릉(사적 207호) : 제26대 고종 및 명성황후 민씨.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유릉 : 제27대 순종및 순명황후 민씨, 순정황후 윤씨.

 

▲사릉(사적 209호) : 제6대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헌릉(사적 194호) : 제3대 태종 및 원경왕후 민씨.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인릉 : 제23대 순조 및 순원왕후 김씨.

 

▲선릉(사적 199호) : 제9대 성종 및 계비 정현왕후 윤씨.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정릉 : 제11대 중종.

 

▲융릉(사적 206호) : 추존 장조(사도세자) 및 헌경왕후 홍씨.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건릉 : 제22대 정조 및 효의왕후 김씨.

 

 

파주 삼릉  (사적205호) :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공릉 : 제8대 예종비 장순왕후 한씨.

순릉 : 제9대 성종비 공혜왕후 한씨.

영릉 : 추존진종 및 효순왕후 조씨.

 

▲장릉(사적 203호) : 제16대 인조 및 인열왕후 한씨. 경기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장릉(사적 202호) : 추존 제16대 인조부 원종 및 인헌왕후 구씨. 경기 김포시 풍무동.

 

▲의릉(사적 204호) : 제20대 경종 및 계비 선의왕후 어씨. 서울 성북구 석관동.

 

▲영릉(사적 195호) : 제4대 세종 및 소헌왕후 심씨.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녕릉 : 제17대 효종 및 인선왕후 장씨.

 

 

 

동구릉 분포도

 

 

     

 

  혜릉을 돌아 숙릉을 오르다보면 철새도래지 습지가

있습니다. 이 길은 철새보호를 위해 통제되어 있지만

관리사무소의 승인을 얻어 출입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10가지 비밀

 

 

★朝鮮王陵의 10가지 秘密(비밀)★



조선왕릉은 중국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과 구조를 띠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조선왕릉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10가지를 들여다본다.



1. 조선왕릉은 왜 서울 경기에 몰려 있을까?


강원 영월로 유배돼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장릉(영월군)을 제외한 조선왕릉 39 기는 서울 경기 일대에 모여 있다.

왕릉을 한양의 궁궐에서 10리(4km)∼100리(40km) 떨어진 곳에 조성했기 때문이다.

왕이 왕릉에서 제례를 올리기 위한 행차를 하루 만 에 다녀올 수 있도록 거리를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2.어느쪽 봉분이 왕이고 어느쪽이 왕비일까?

태종과 비 원경왕후가 나란히 묻힌 헌릉(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태종 능 위치는 봉분 뒤에서 봤을 때 오른쪽이다.

조선왕릉은 우상좌하(右上左下) 원칙으로 왕이 오른쪽에 묻혔다.

덕종의 경릉(경기 고양시)만은 덕종이 왼쪽에, 비인 소혜왕후가 오른쪽에 묻 혔다.

덕종은 왕세자로 죽었고 소혜왕후는 아들 성종이 즉위해 왕대비로 세상을 떠났 기 때문이다.


3. 조선왕릉 은 왜 거의 도굴이 안됐을까?

임진왜란 때 훼손된 성종의 선릉, 중종의 정릉(서울 강남구 삼성동)을 빼고 도굴된 적 이 없다.

세종의 영릉(경기 여주군) 석실 부재들의 이음매는 대형 철제 고리로 고정했 고 입구에 '이중 돌 빗장'을 채웠다.

석실 사방은 석회 모래 자갈 반죽을 두껍게 채웠 다. 부장품을 의궤에 상세히 남겼는데 부장품으로 모조품을 넣은 것도 도굴을 막은 한 요인이다.


4.왕과왕비가 항상 함께 묻히지못한 까닭은?

왕릉은 당대 정치권력의 향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조성됐다.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로 명종을 수렴청정한 '여걸' 문정왕후는 중종 옆에 묻히고 싶어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의 희릉(고양시) 옆에 있던 중종의 정릉을 삼성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문정왕 후 사후 정릉에 물이 찬다는 이유로 결국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외로이 묻혔다. 태릉 이다.


5. 봉분 앞 혼유석의 정체는?

봉분 앞 돌상인 혼유석(魂遊石)은 영혼이 노니는 돌이라는 뜻.

북을 닮은 고석(鼓石) 4개가 혼유석을 받치고 있다.

이 큰 돌은 제사 지내는 상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혼유석 밑에 석실로 연결되는 통로가 ! 숨어 있다 혼유석은 '지하의 밀실'을 봉인한 문 인 셈. 실제로 고석에 새겨진 귀면(鬼面)은 문고리를 물었다.


6. 최장신 문·무석인은 어디에 있을까?

문석인(문관)과 무석인(무관)은 대체로 사람 키를 훌쩍 넘어 권위를 뽐낸다.

가장 큰 문·무석인은 철종의 예릉(고양시), 장경왕후의 희릉에 있다. 3m 이상이다.

중종 시대 (16세기)는 석물의 장엄미가 최고조였던 때다. 철종은 19세기의 왕이 아닌가.

전문가 들은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꿈꾸며 예릉을 위엄 있게 꾸몄다고 말한다.


7. 정자각의 계단은 왜 측면에 있을까?

참배자가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오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해 가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서쪽(끝과 죽음)으로 지는 자연 섭리를 인공 건축물에 활용 한 것. 동쪽 계단은 2개, 서쪽 계단은 1개다.

올라갈 때는 참배자가 왕의 영혼과 함께 하지만 내려올 때는 참배자만 내려온다는 것.

왕의 영혼은 정자각 뒤 문을 통해 봉분 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8. 봉분 뒤에는 왜 소나무가 많을까?

왕릉에 우거진 숲을 계획적으로 조성했다.

봉분 뒤 소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로 으뜸 을 뜻했다. 봉분 주변에 심은 떡갈나무는 산불을 막는 역할을 했다.

낮은 홍살문(왕릉 입구) 주변에는 습지에 강한 오리나무를 심었다.

태조의 건원릉(경기 구리시) 봉분에 는 억새풀을 심었는데 고향인 함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에서 가져왔 다고 한다.


9.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은 황제릉?

고종은 1897년 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나라(대한제국)라고 선포했다.

경기 남양주시 홍 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조성됐다.

홍·유릉은 정자각(평면이 '丁'자 모양) 대신 중국 의 황제릉처럼 '一'자 모양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능의 석물도 코끼리, 낙타 같은 낯 선 동물을 배치했다.

왕릉의 석물이 왕을 호위하는 상징인 반면 홍·유릉의 석물은 황 제의 위용을 드러낸다.


10. 서삼릉에는 왕족의 공동묘지가 있다?

세 왕릉이 있는 서삼릉(고양시)에는 왕자, 공주, 후궁의 작은 묘 46기가 모여 있어 공 동묘지를 연상시킨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뒤 도시화 과정에서 자리를 잃은 묘와 원(왕 세자와 왕세자비의 무덤)들이 서삼릉으로 쫓겨 왔다.

'공동묘지' 옆에는 왕족의 탯줄 을 보관하는 태실 54기도 있다.

원래 태실은 전국의 명소에 묻었는데 일제가 서삼릉으 로 몰아넣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가야금 산조.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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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방학3동(?) 700년 묵은 은행나무 옆에 아주 초라한 연산군 묘가 있는데(정의공주묘 부근에), 안방극장의 연산군의 악명에 비례하듯 얼마나 초라한지.............
좋은정보네요^^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