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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 2012. 8. 2. 16:29

 

 

 

올해 83세가 되신 벽산 우제탁님이

일생을 되돌아 보면서 솔직한 심졍을 쓴

입니다. 보내주신 원문 전문을

 수정없이 올렸습니다.

 

 

寓居此地可安身 爲愛淸閑遠世塵

山採水漁多所樂 舌耕筆織不須貧

門前雪白曾如昨 庭上花紅又見春

佳節良朋兼得酒 風光無限惱詩人

 

 

이곳에 사노라니 몸이 편안해

마음 맑고 한가로워 세상일 멀어젓네

나물 캐고 고기 잡아 즐거움 많고

글 읽고 짓는 일로 궁색함을 모르겟네

문 앞에 희던 눈이 엊그제 같은데

뜰 위에 꽃 붉으니 봄 또한 오는고나

좋은 계절 좋은 친구 술까지 겸했는데

풍광은 끝없이 시인을 원망 하네

 

 

80인생 인생에 얽힌 내 삶의 애환 / 벽산 우제탁님

 

 

 일제식민지당시 출생,,,,

헐벗고 굶주림, 그리고 민족적 대 비극,,,

6,25를 20대초에,,,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격동의 시대,,,온갖 어려움을 체험했기에 나의 사회생활,,,

kbs에서의 직장생활도 잘 참고 견디어 천수라고까지

 하는 정년까지 살아 왔는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 해 본다,

 

 

1.출생

 

험준한 산간오지 지리산 줄기,,,

높은 산 아래 첫 동네,,,제때에 비가 안 오면,

농사도 될 수없는 산중 마을,,,이도 농사 수확을

해 놓으면 공출이란 이름으로 일제의 수탈,,,,그래서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빈농의 아들,,,그리고

 산 넘고 물 건너 4K 이상 되는 원거리의 초등학교를 운동화

 한번 신어 보지 못하고 맨발로 학교를,,,자동차, 전기 불,,,,

신기 한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10 여 키로 이상을

걸어가서 처음 구경했던 사람,,,,

 

 

2. 유학

 

초등학교는 졸업 했지만

 그대로 이 산중에서 주저앉을 수 없다고

 12여키로나 되는 소위 읍내? 란 곳을 찾은 것,,,,

중학교 당 지역에 없으니 길이 없고 고등과 2년제가 있어,

이도 힘들게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숙식 할 곳이 없어 이곳 저 곳

걸식,,,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식생활? 꿈만 같은,,,,정말 무던히도 끈기,,,

인내,,,그러던 차 일본의 패전,,,8,15 해방,,,,중학교의 문이 열려 12키로 이상 되는

 길을 걸어가서 기차를 타면 5-6시간의 도시? 라는 곳, 나의 유학시절의 이야기,,,

지금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당시는 운동화가 없었고 겨우 고무신,,,선생도 책도

없는 학교,,,겨우 일본책을 번역해서 칠판에 쓰면 이를 노-트에 쓰는 일,,,

그러니 진도가 나아갈 수 있나? 그레도 시간은 흘어 흘러 6학년 이던 때,

바로 6,25 동란이,,,,이렇게 되었으니 무슨 공부를,,,,

 

 

다. 학도병

 

1952년 6,25 사변으로 학도병 입데 수속을

 2일 앞두고 당 지기차역을 un 군이 지형판단 잘못으로 오폭,,

그로 인하여 당 지역 학도병 입대수속이 전면 좌절,,,사실 학도병

입대수속이 끝나면 경남 진주에서 m1 소총 훈련만 받고, 전원 당시

낙동강 전투에 투입하려던 계획이 좌절,,,사실 그 외 지역은

 현역입대,,,대부분이,,,,? 그런데 이렇게 되어

군 입대를 못하고 피난의 길로,,,

 

 

4. 인민의용군

 

1950년 8월 인민군은 내가 피신중인 지역까지

 점령해와 그들의 지휘를 피 할 수 없게 되었고, 당시는

호기심으로 점령해온 인민군 지휘부를 방문 했던 일,,,중좌? 라 던

그는 우리를 매우 친절히 대 해주며, 마르크스 엥겔스 이론도 이야기

해 주던 것, 그 며칠 후 군 입대 연령인 나는 인민군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증발에 안 당할 수 없게 된 것,,,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에 갈림길 인고? 소집

면접장에 가서 우연히 옛날 친구를 만나서 잡담하고 있다가 면접 장소에

늦게 갔던바 면접이 끝나고 물러간 뒤였으니,,,,결국 소집면접에서 누락,,,

본 의용군을 안가도 되게 되었는데, 결국 그 당시 면접에 응했던 

모-든 사람은 전원 어데서 죽었는지 조차 모르고 말았으니

이것이 내가 살아남은 운명적 갈림길 이였던 가 ?

 

 

5. 국민 병 입대 학교를 다니던 학생,,,

 

피신생활을 하고 있던

중 산간오지마을 인 탓으로 밤이면

거의 어김없이 산중에 은거한 공산 빨치산? 들이

마을로 식량을 약탈하러 찾아오면 뒷문으로 도망,,,그 후

유엔군의 입성으로 공산군 퇴각 후, 전 청장년은 무조건 국민방위군을

가야 되었는데 일체의 준비 없는,,,,즉 완전도보,,,수백리길,,,수일간 걸어야

 했으며, 그 추운 겨울 난방은 고사하고 유엔군 폭격에 반파 되어 유리창도 없는

 학교교실에서 그해 겨울,,,신발 한번 벗어 보지 못하고 웅크리고 자야 되고, 식사는

완전 부식도 없는 주먹밥을 힘들게 얻어먹고 군사훈련을 했던 일,,,, 이야기는 지금

 믿어지지 않는 시대적인 참상,,,비극?,,,,그 후 겨울이 지난 이른 봄 화물선 lst 화물선으로

 제주육군 제1훈련소에 이송,,,,육군 현역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하는데 무조건 45K

이상은 합격,,,군 현역입대를 하면, 먼저 밥을 배불리 준다고 하니 우선 배가 고파

죽게 생겼으니 합격을 하려고 별 재주를 부려 보았으나, 장기간 너무 못 먹어

체중미달,,, 방법이 없었고, 결국 혹독한 군 사역병 생활,,,너무나

 힘든 일,,, 견디지 못해 자해행위를 기도?,,,,그런데

이것같이 어려운 것이 없디고 본다,

 

 

 6, 전선이 없는 전쟁 여순 반란군의 은거지

 

지리산,,,그리고 UN군 참전으로

낙동강전투에 패한 인민군의 은거지,,,,본 전투가

매우 치열했던 시대,,,이의 소탕을 위해서 경비사령부 그리고

5사단, 경찰국규모의 경찰부대 등,,,그리고 그 외 특수부대등 많은

병력이 주둔 하고 있었다, 현지 사정이 이렇게 되니 1952년 KBS 방송국

설치령에 따라 방송국이,,,월급도 없는 임시 직원이란 이름으로 근무 하기시작,,,

사실 시골이 고향인 집은 국군 11사단이 전 마을을 소각,,,의지 할 곳이 없어 월급도 없는

근무를 하다가 또 군 입대,,,,,그레서 논산훈련소, 서울이태원 암호부대 수도육군병원,

광주상무대, 대전육군병원 등지를 전전 하다 의병제대,,,재차 KBS 방송국 근무,,,,,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 할 수 없는?,,,자유당정권이라던 당시,,,,국가 사회적으로

 모순투성이의 공직사회 였었으니,,,,당시 우리들 말단 공무원은 월급가지고

 살아 갈수 없는 처지였다, 하숙비 700원이던 떄 월급이라고 250원,,,,

그레서 군 사령관이 방송국을 다녀가면서 건빵 한 상자,,,,

이를 가지고 주린 배를 달래며 살아야 했고,,,,그리고

우리는 24시간 비번 당번이 없는 현업,,,

 

그 후 5,16 군사혁명으로 하숙이라도

할 수 있는 일금 3,000원의 월급,,,,5,16 군사혁명은

분명 우리의 구세주 였다, 그리고 어이없는 방송시설,,,,녹음기도 없는

 방송장비,,,,사실 자기 녹음기는 처음 미국공보관에서 임대,,,사실 신기하기만

했던 녹음기,,,회고해 보니 온갖 옛 생각 잊을 수가 없다, 녹음즉시 자기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놀라워했던 일,,,,신기한 방송장비를 구경해온 사람들,,,일일히

설명해주기에 바빴으니,,,, 사, 한양? 서울의 동경 서울사람에 대한 동경,,,

서울에 산다고 하는 사람은 무조건 특수계층 상류사회의 인물? 이라고

 생각했던 시골,,,산중사람의 심정,,, 우연히 서울 출장의 기회가 되어

기차를 타고 서울근교 인접하면 공연히 가슴 설레고 긴장감,,,

 

서울역 개찰구를 나오면 마중 나온 사람이

 길게 줄를 서 있었지만 시골 촌놈은,,,,,? 1964년이든가?

기적적으로 서울중앙방송국 남산으로 전임발령이 났는데, 화물로

서울역에 도착한 시골사람의 살림사리를 손수례,,? 니야까로 충무로

개천가 판자 집,,,무허가 가건물 전셋집으로 이사했던 이야기는 지금사람의

 생각으로는 고대사회?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정말 1960년대 우리의 생활상?,,,,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모습 이였다고 생각해 본다, 아, 7푼의 이치,,,,? 우리사회는

“70%가 위법,,,부당하게 집행 된다” 는 말이,,,, 사실 그 당시? 는 법 규정이 통용이

 안 되는 사회 였다고 해도,,, 공직사회 역시 마찬가지,,,,정말 우리생활? 혁명적인

 변화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들 방송국은 부수입이 있다는 행정,,,세무공무원도

아니기에 실 생활비에 크게 못 미치는 월급?,,,,먹고 살길이 없었다, 그레서

방송국은 돈 많은 부자나 다니는 곳,,,돈 없는 사람 노래,,,풍각쟁이? 를

하는 직장은 곤란하다는 말을 들은 바도 있었으니? 그런데 산꼴 마을

가난한 농민의 아들,,,더욱이 6,25 사변으로 사는

 집도 소각 당한 사람 이였으니,,,,

 

 

7, 서울하늘 본사만 쳐다보고,,,

 

“ 과장님 공직사회는 학벌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도 서울 본부와 인맥? 이 있어야 되겠데요,,,”

 “ 과장님 저 사표내야 되겠어요 kbs가 이렇게 생소한 원거리로

 인사이동 발령을 자주하면, 저는 가족하고 살아 갈수 없어요“ 공개

입사시험에 합격 대망을 가지고 kbs에 입사 되였지만, 시골 송 중계소에

배치되고 보니 “내가 산중 절 중 인가?,,,,” 하고 사표를 내고 돌아간 사람도

 있었으니,,,,그리고 방송사고,,,허술한 방송장비 예비기도 없는 방송기기

 24 시간 가동해야 하는데 불의의 고장,,,,피 할 수 없는 것, 그런데

예비기 없는 방송기 고장이 나서 정규방송이 중단 끊어지면,,,

 “ 너 모가지가 몇 개야,,,” 이는 소위 kbs 본사 간부들의

호통으로 정신을 잃고 기절,,,,까지 한사람이

 있었다면 이제 이를 믿어 줄까 ?

 

그런데 “ kbs 같이 좋은 직장,,,,?” 하는 말을

최근 들어보니? 6,25 사변 중,,,일선 전투소대근무자가

 죽어가면서 “빽,,,” 하며 죽어 간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사회,,,,

그간 얼마나 많니 인맥에 따라 부침이 있었던가? 그레서 민주주의,,,

공정 평등사회를 웨치게 되었을 것,,,,방송사고로 인해서 겁에 질려서

정신을 잃고,,,,까무라 치고,,,이토록 시집살이? 가 강 했는데 그토록 좋은

직장 운운?,,,,같은 kbs 라고 하지만 지방과 본사와의 차이,,,,또는 근무부서에

따라 대단한? 차이가,,,,직위 여하를 막론하고 본사에서의 출장 나온 사람,,,하

느님 예우 ?,,,,,직속 상위? 급이라던, 방송국장과 불편? 한 관계라고 원 거리로

 전출 발령,,, 불편한 사유가 무엇? 인가를 먼저 타진도 하는 법이 없으니 무조건

 아부 순종해야한다니?,,,,그렇다면 직장의 상위직급은 불법 횡포를 해도 된다는

 이야기 인가? 사실 그간 본사 인사담당자의 부당한 횡포도 자성해야,,,,

그런데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독선?,,,그리고 돈,,,,물욕에만

치중 했던 사람들 부자도 못되고 말년의 모습이 처량,,,,

보기 딱한 모습을 본다 ,

 

8, 가정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유감이 없었다고 해도 그보다 먼저 절대적인

우선순위는 가정,,,,가족,,,,그런데 여기에 유감이 있으면

그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는 물질에 비례 할 수도 있겠지만,

물질이전에 인간적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우리 인간사회는 얼마나 많는

 불화가,,,? 안니 우리들 인간생활에 근본적 귀일점은 가정,,,가족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철저하게 잘못 되였으니 만사가 허사,,,, 그런데 시작 그 자체가

너무나도 유감? 이였으니 무어라 할 말도 없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이라드니 나의 인생은 결혼?,,,여기에 대실패,,,,내 인생,,,아니 우리 가문이

 망가지고 말았다, 카, 퇴직자 모임 우리도 역시 타 기관 부처와 마찬가지로

 퇴직자 모임이 있다, 당초 본 퇴직자들 모임을 가지게 된 동기,,,?

물론 여기에는 옛 친구 동료들과의 유대 친목도 있겠지만,

 문제는 퇴직 후에는 모두가 야당? 이 된다는 것,,,

 

사실 공직자는 퇴직 후에도 기밀보지의

의무가 있는 것, 그런데 사실 이를 하나하나

제재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위해서 전 직장,,,기관에서의

비공식적으로 약간의 지원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원칙? 일수 없다는 사실,,,,이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그런데 문제는

kbs라는 곳은 직종이 다양하다, 근무내용이 다르기에 그 성품도 마찬가지,,,

 우리회원 모두가 유감없는 화합,,,유대가 쉽지 않다고 보는 것,,,,, 그러나

 모-든 것 잊고 어울려 보아야,,,친구가 없으니 길이 없는 것

 

 

衆(중)鳥(조)同(동)枝(지)宿(숙)

天(천)明(명)各(각)自(자)飛(비)

人生(인생)亦(역)如(여)此(차)

何必(하필)淚(누)沾(첨)衣(의)

 

나르는 새도 같은 나뭇가지에 잠을 자다가

날이 새면 제 갈길을 가는데?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을

내가 왜? 옷에 눈물을 흘리랴?

 

 

 

 

황성옛터 색스폰.mp3

 

 

 2012, 8, 1, 벽산 우제탁

 

- 첨부파일

???? ???.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