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2. 12. 23. 00:32

 

 

 

 

1960년대 전후, 라디오께임, 재치문답을

 즐겨 들으시던 분들은 최세훈 아나운서를 기억하십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1954년 아나운서 공개 채용 때 들어와 방송을

 했습니다. 어느 일자리보다도 아나운서의 인기가 높던 시절이라 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타고난 재능과 목소리 덕분에 경쟁의 문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감사원장을 지내신 법조계의 원로 한승헌님은 지금도 그때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했다가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고배를 마셔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합니다. 필기시험에서는 앞섰으나 목소리가

 허스키여서 맑은 목소리를 지닌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고배를

마셨다는 얘기입니다. 이토록 최세훈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재능은 타고났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

 

 

 

 

이리방송국에서 잠시 아나운서 생활을 했던

최세훈 아나운서는 중앙방송국으로 진출하면서 뉴스나

 공개방송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공개방송, 재치문답과

 라디오 께임은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습

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육성은 1962년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던 재치문답을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의 목소리입니다. 오랜 기간

방송을 하셨던 노정팔 선생님은 자서전 한국방송과 50년 자서전에서 쓰기를

 “라디오 께임” 하면 최세훈씨를 연상하게 된다.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는 서로

밀착하여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여야 그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라디오 께임은 최세훈과 동반자 관계에 있었다. 라고 썼습니다.

주변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재치와 유머 등으로 거침

없이 잘 진행 해 나갔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현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데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침착하고 중후한 인품에 남다른 문장력을

지녀 아나운서실에서 글을 써야 할 때는 스스로 맡아서 쓰기도

하고 본인이 진행하는 공개방송 원고를 비롯해서 희망의 속삭임

등의 방송 원고를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종합적인 방송사가

 처음 나온 것은 1977년 방송 50주년을 맞이해서 이지만 그보다

훨씬 전 1967년에 "앵무새의 증언"이라는 자서전 초판이

 나왔을 때, 그때까지 수집한 얘기를 그 책에 수록해서

 후세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앵무새의 증언

 증보판은 1982년에 발행되었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가 KBS에서 재능을 한참

 발휘하면서 인기를 모아가던 1964년, KBS아나운서

실장이던 임택근 아나운서가 MBC방송부장으로 옮길 무렵

최세훈 아나운서도 MBC로 옮겨 최계환 아나운서에 이어 두 번째의

아나운서실장이 되었습니다. KBS에서 아나운서실장과 선임

아나운서로 한 사무실서 일하다가 두 분 동시에

 MBC의 방송얼굴이 되었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상무, 전무로

 MBC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동안 아나운서

실장을 하던 최세훈 아나운서는 1977년 전주 MBC상무,

 1981년 대전 MBC상무, 1983년 마산 MBC이사를 지네다가

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두 분은

KBS와 MBC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사는 최세훈 아나운서 딸 최철미님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던 때 먼 길까지 오셔서 조문해 주신 일에 대해서 잊지

않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김정수( Robert Kim) 미주방송인협회 회장님 글

 

 

김정수 회장님이 MBC재직시절

최세훈 아나운서 실장님과 관련된 옛

추억담을 보내오셨군요.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추억을 올리고 또 기회되면 별도로

글 한편을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하세요?   미주 방송인협회장

 김 정수입니다.   인터넷 때문에 이렇게 연락이

 가능 하군요. 참으로 좋은 세상이구나 싶습니다.  오래전

 최 세훈실장님과   MBC에서 함께 일 했을 때 추억어린 추억

담입니다.  아버님 최실장님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우리 mbc

방송사에는 대머리 직원들이 비교적 많아 모두들 대 머리에 대한 콤프

렉스 가 있었지요? 나역시 실장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최실장님의

부인과 집에서 이런 저런, 남성들의 고민꺼리인 대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답

니다. 당시 최 실장님의 사모님(부인)께서 해외여행을 다녀 오시는 기회가 있어서, 

미국을 다녀오신 후 미국의 현실을 눈여겨 보시고 오신 소감을 말씀 하시는 가운데

 미국 사람들의 머리 상태를 잘 살펴 보시고, 오신 소감을 최 실장님께서 저의 사무실에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머님께서 미국 사람들은 대머리가 많았지만,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머리가 빠진 대머리가 된 사람들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미국등 문화가 잘 발달한 국가를 살펴보면, 대머리들이

 많터라고 하시면서~ 남편인 최 실장님에게 선진국 국민들의

대 다수가 대머리이니, 기 죽지 말고 긍지지를 가지

라며, 농담하시던 말씀이 생각 납니다.  

 

그래서 우리 대머리 MBC 동료들은 그후

최실장님을 비롯하여 차 인태씨, 저 김정수,등 우리는

 문화인이다.하고, 긍지를 가지자며 많이 웃던 추억이 생각 납니다.

그 당시 보도국 김 종세 기자도 대머리였는데, 중국에 취재를 갔다가 대머리

 약으로 인끼가 많았던 101대머리 치료제를 사 가지고 와서 쓰고 있다고 자랑하여,

우리 모두는 부러워했던 일화를 공개 합니다.   우리들은 그때부터 우리는 문화인이다라며,

돼지도 않은 생각으로 살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때 최 실장님께서 이제부터는 우리 들은

 문화방송백팔번뇌 조직을 만들자고 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최실장님 자녀님께서도, 미주방송인협회 싸이트를 찾아주시니,

 반가워서, 아버님 소식 전 합니다


 

 

 

전주방송국 초창기 귀중한

역사사료다. 1954년 8월 15일 송영호

선생님이 이리방송국장 시절 이리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이리방송국은 전주방송국의 전신으로

1958년 전주에 사옥을 짛고 1959년 4월부터 전주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주방송총국에서 2010년 방송역사 동영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있는 모든 사진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진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뒷면에 송영호선생님 친필 성함이 쓰여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영중,

홍성완, 김남북, 이을우, 김중식, 김광선, 최세환,

강재룡, 박한묵, 조지식, 이종만, 송영호, 전주오, 김윤석,

정윤량 순이다. 한쪽 눈을 가린 최세환이라고 쓰인 분은 최세훈

아나운서인데 그때 최세환 이라고 불렀는지 오자인지 확인이 안된다.

이때의 이리방송국 아나운서로 재직했던 이용훈. 이순길 두분은 이 사진

촬영에서 빠졌다. 아나운서 윤영중, 최세훈은 송영호 선생님이 다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으로 돌아온후 서울로 옮겼다. 윤영중은 1962년까지 아나운서로 재직했고

퇴직후에도 프리랜서연속낭독 등에 참여했다. 최세훈은 1964년 MBC아나운서

실장을 거쳐 대전, 전주, 마산등지에서 상무로 재직하던 중 1984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다. 이순길 아나운서는 서울로 왔다가

생활고를 기관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종만은 목포방송국장 등을 지내다가 또 박한묵은 전주방송국

 서무과장으로 재직하다가 공사발족후 1974년 정년퇴임했고

 전주오는 남원기술과장 재직중 정년퇴임했다.

 

 

 

MBC아나운서실 축구팀 

 

 

최세훈 아나운서 딸 최철미님이 쓴 "아버지와 딸" 재미 한국일보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최세훈 아나운서 재직 중의 사진   

 

 

KBS 중앙방송국 시절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1.송영필, 2.강익수, 3.장기범, 4.임택근, 5.박종세, 6.최세훈, 7.이규영,

8.강영숙, 9.전영우, 10.황우겸, 11.유석춘, 12.강찬선, 13.김동만, 14.최계환, 15.최두헌,

16.문복순, 17.장금자, 18.유창경, 19.이광재, 20.한경희 21.김준철, 22.최만린,

23.이현숙, 24.윤영중, 25.조영준, 26.이본 아나운서입니다.

 

 

 

 1958년 봄 남산 중앙방송국 스카이라운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민병연 아나운서와 장기범 아나운서실장을 비롯한

아나운서들, 그리고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이 함께 한 사진이다.

1.최두헌,  2.유창경, 3.최세훈, 4.한경희,  5.민병연, 6.문복순, 7.황우겸,

 8.장기범, 9..이강석, 10.강익수, 이강석은 틈이나면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들렸다. 이강석과 남산의 방송인들과 촬영한 사진이 많다.

 

 

1962년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입니다.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이 발족하기 전이었습니다.

1 배덕환, 2 박종세, 3 이광재, 4 장기범, 5 강찬선, 6 임택근, 7 최세훈, 8 한경희, 9 최두헌 10 홍종선

11 김주환 12 이규영, 13 길종휘, 14 유영옥, 15 이정희 16 최승일 17 김인권, 18 박노설 19 최정현

20 인주희, 21 이규항; 22 송영규;, 23 이병열. 24 송한규 아나운서입니다.

 

 

 

국제방송국이 남산으로 옮기던 때 남산 국제방송국 현관에서

 방송국 간부와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송한규, 11.김주환,

12.이병열, 14.장기범, 15.김영호, 16.노정팔, 18.강찬선, 19.유병은,

 20.전영우, 22.김인권, 25.최세훈 아나운서입니다.

 

 

야외 공개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와

박종민 담당프로듀서의 모습입니다. 1945년 이래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하셨던 노정팔님은 자서전 한국방송과 50년에서 쓰기를 “라디오 께임” 하면

 최세훈씨를 연상하게 된다.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는 서로 밀착하여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여야 그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라디오 께임"

 최세훈과 동반자 관계에 있었다. 라고 썼습니다.

 

 

 남산으로 옮긴 첫해 1957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보면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1960년 KBS가 안익태선생님 초청연주회를 갖고 특집방송을 하는 장면입니다.

 

1954년, KBS아나운실에 들어와 오랜세월 최세훈 아나운서와 함께 근무했던

전영우 아나운서는 최세훈 아나운서가 방송도 잘 하고 성격도 원만 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소질이 있어서 시와 수필에 능하고 자유문학의 시인으로 등단되었다고

했습니다. 위 사진은 최세훈아나운서와 함께한 전영우 아나운서입니다.

 

1961년 1월 16일자 TV방송을 처음 시작 하던 때 동아일보에 난 기사 한편을 참고가 되실까 해서 옮겼습니다.

 

실내 체육관이 없던시절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주요경기를

 했습니다. 그 시대의 최고의 인기절정이던 임택근, 이광재, 강찬선,

최세훈 아나운서가모두 참여한 중계방송이었습니다

 

 

MBC 문화방송시절

 

 

 

최세훈 아나운서가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실장으로 부임하던 시절 1964년의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백혜정, 장인숙,김상옥, 안영희, 임국희, 뒷줄

 왼쪽부터 조규원, 최승일, 송영규, 오남열, 최세훈, 김순환, 이철원, 유창경, 최정연입니다.

 

MBC방송부장 임택근, 아나운서실장 최세훈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MBC 재직중이던 1968년 그시대에

방송인으로는 최고 영예의 상방송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가 1962년에 쓴 책 눈으로 보는 퀴즈 프로그램에 관한

1962년 1월 23애ㅣ일자 동아일보 글 한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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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바치는 기도 / 최철미님 시 (최세훈 아나운서 딸)

샌프란시스코에서 2012년 12월 24일

http://blog.daum.net/jc21th/17781562

 


사진은 1971년 MBC모닝쇼를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

입니다. 1960년대 말 임택근 아나운서의 인기를 프로그램에

반영하면서 진행자의 성함과 함께 하는 모닝쇼 프로그램이 탄생

해서 임택근, 정순일, 최세훈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첨부파일

최세훈 편집.mp3  
   




저를 베드로가 고생고생 시켜서 자살시킨다고 성경책에 써놨습니다.

여호화하는 훌륭한 사람인데 고생고생시켜서 소고기랑 떡올리고 병사한태 빌게 해서 자살시킨다라고 성경책에 써놨습니다.

저는 우연히 복많게 태어나서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저는 어제 석이엄마라는 20녀전에 엄궁동에 이웃에서 살던 여자와 같은 사탄악마들한태 속아서

석이네 살던집 가면 집이 비어있고 돈이 있으니 돈가지고가서 컴퓨터 사라고 하면서

저한태 본인들이 언니라고 하면서 잘한다고 속였습니다.

석이엄랑 같은 사탄악마는 본인이 칠배로 베풀고 살았다고 속였습니다.

석이네 집에 가보니 집은 다른사람한태 20년전에 팔아서 목사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석이엄마는 시댁에 자식없는 큰어머니 집에서 야아며느리로 살다가 집팔아서 가져가고 할머니 쫏아내서

할머니 혼자 길에 앉자있는걸 통장님이 동사무소에 말을해서 방한칸 얻어서 살게 해드렸답니다.

악마들한태단돈 만3청원정도 가지고 길거리에서 갈곳이 없어서 해메고 다니다.

무거운 가방을 3개를 들고 다니다가 무거워서 울다가 쓰러질려고 하면서 아들이 돈보내주게 해서 여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베드로나 사탄악마들은 제가 복이 많아넘처도 탈이라고 하면서 저를 속여서 괴롭힙니다.

저희집 산에는 게르마늄돌이 많습니다. 저랑 예수님이랑 하늘에 아버지랑 물을정화시켜서

삼다수 물값과 똑같이 판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가난한 사람들한태 공짜로 나누어 준다고 했는데



저한태 사탄악마들을 몸속에 너으면서 저를 괴롭혀서 제가 베드로 유니콘들 죽였습니다.

이세상에 는 악마짓 못된짓을 넘치게 하면 탈이되지 복이 많으면 많은사람들과 나누어 살수있어서 좋지

무슨탈이 되겠습니까? 복이 없어야 부족한복이 탈이 되는것이지 게르마늄돌로 정화시킨물은 2리터 1병에 10만원한답니다.

제친정집에 있는 돌에 양을 전세계 사람들께 개개인 나누어 줄수있는 양은 안됨니다

물을 정화시켜서 싸게 팔수는 있는 양이며 게름늄돌은 새끼를 자꾸 만들기 때문에

전세계 각나라에 돌을 퍼트리기 위해서 나누어 드리면 산에나 강물속에 너어두면 돌이 자꾸 크면서

많아지면서 새끼가 자꾸 나오기때문에 많이 퍼트릴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유니콘들과달나라 신이라는 사탄악마들과 별나라 신이라는 원효대사와 같은 사탄악마들과

자신들이 저한태 빼앗아서 다 가지가서 고 나누어주지 안고 자신들만 먹고 살겠다고



저를 괴롭힘니다. 물을 싼값에 팔겠다하면 못팔게 하고 돌씨를 전세계나누어 주겠다해도 못하게 합니다.

앞으로 온난화가 심해져서 물을 게르마늄돌로 정화해서 먹어야 된답니다.

전세계 게르마늄 돌중에 제복이라고 주신 돌이 최고로 좋답니다.

TV방송에서 보았습니다. 게르마늄돌을 양푼에 담고 쉰두부를 2시간 담구어 두었더니 정상두부로 돌아왔습니다.

중국에서는 두부를 쉬게해서 발효한것이라고 하면서 유산균이라고 하면서 장이 튼튼해진다면서 먹는걸TV에서 보았습니다.

저희친정집 게르마늄돌은 유산균은 살리고 악성세균은 죽이면서 면역력을 좋게하면서 약물이랍니다.

제가 물을 정화시키는 공장을 지을수는 없습니다. 지금현제 물장사를 하고 계시는 미원주식회사나 의뢰해서 기존에 물에다가 정화를 시켜서

정화를 시켜서 싼값에 6병에 삼천원에 팔생각입니다.이런이야기들을 방송하십시요.여호화는 실제 인물이라고 하십시요.

제 친정고향은 전남 완도군 소안면 부상리 입니다. 제 부친 존함은 이자 종자 연자를 쓰십니다.

제부모님과 동생들은 게르마늄 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살고 계십니다.

저혼자서만 알고 있습니다. 저희친정산에 있습니다.

지금저는 부산 괴법동 이마트옆 세느모텔 702호에서 덧글을 넣고 있습니다.

돼지고기와 포도씨유를 전국민들과 전세계인들이 못먹게 방송을 자주 매일 하셔야 됨니다.

전세계인들을 게르마늄물을 마시게 한다고 전세계인들 심장을 찌어죽인다고 유니콘들과 달나라신들과 원효대사

와 같은 사탄악마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온난화로인해 저수지 고인물이 썩는다고 3녀넌부터 미국에 저수지에 고인물이 썩었다고 뉴스에 보도되었으며

우리나라도 한강물이 썩었다고 뉴스에 해마다 여름이면 나옵니다.

앞으로 게르마늄돌로 정화하지 안는물은 먹을수가 없게 됨니다.

게르마늄돌로 정화한 물을 마시고 살려면 돼지고기와 포도씨유를 전세게인들이 안드셔야 됨니다.

유니콘과 달나라신 원효대사와 같은 사탄악마들은 돼지고기랑 포도씨유만 먹습니다.

제 명령에 따라야 나라가 살면서 인류가 살아남니다, 명령을 못하게 사탄악마들이 훼방을 놈니다.

방송국에서 돼지고기와 포도씨유를 전세계인들이 못먹게 하시면 서 제가 명령할수있게 상황을 만드셔야 됨니다.

명령을 하는 사람이 된다해서 제가 정부에서 지어준 집에서 살거나 정부에서 주는 월급받아 먹고 살지 안습니다.

저는 여전히 농사꾼딸로 농사짓고 살것입니다.제가 명령을 안하고 제 가정만 단속하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상황들을 지켜보니 안하면은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하면 귀중한 목숨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기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가고 있습니다.



급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뉴스방송에 보도하셔야 됨니다.

온난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하늘에 이산화탄소가 덮여있다가 빗물에 싯겨서 내려오면 땅에서 없어지지 안고

열을 발생해서 궤역 세균과 각종 악성 세균등이 만들어 진답니다.

구제역병은 외국에서 오는것이 아님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온난화이산화 탄소에 오염이 덜되었을때는

각지역에서 세균이 조금씩 만들어 졌으나 지금은 오염이 전국으로 퍼져서 많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중국에를 제가 15년전에 가보았더니 겨울에 오후4시가 되면 석탄연기로 하늘을 덮어서 하늘이 온통 까만 연기로

가득덮여있었으며 공중에나 길거리에서나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온난화이산화탄소를 해결하는 방법이 자루에 이산화 탄소를 담아서 저장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중국에 하늘에 이산화 탄소를 자루에 어떻게 담아서 저장할수 있을까요.

자루에 담는 다는 생각은 바보 생각입니다.도저히 할수없는 일입니다.


저에 이야기를 속보로 보도 하십시요, 특보로 보도 하십시요 그러셔야 사탄악마들이 이이들을 가렵게해서 죽이지 안습니다.

돼지고기랑 포도씨유 못먹게 속보로 특보로 전국민들과 전세계인들이 알게 계속 쉬지말고 매일 여러 방송에서 말 하십시요.

민국이 동생을 가렵게 해서 잡아먹을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탄악마들이 내한두사람이 돼지고기 포도씨유 안먹는다고

안오지 안습니다, 제가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사탄악마들이 현관문밖으로 나가면서 저한태 욕을 하면서 품앗이 꿈꾸어 주었으니

간다라고 말하고 갔습니다. 사탄악마들은 남에집에 다니면서 집지어진 꿈 산 들 길꿈 바다꾸등을 온갖 여러가지 하늘나라 꿈까지 꾸어줌니다.

제꿈에 계단에 구름조각이 있었습니다. 사탄악마들이 구름으로도 변합니다. 제가 잠을 잘려고 옆으로 누워있는데 옹달샘이 저한태 기어 왔습니다.

사탄악마들은 옹달샘으로도 변합니다. 사탄악마들은 대변을 소변을 약이라고 속이고 주면서 먹입니다.





올리브잎100g에 3리터생수를 붓고 글여서 미세먼지를 걸러서 전국에 길에 소독차로 뿌리듯이 부리고 다니셔야 됨니다.

이말을 방송하십시요 그래야 사탄악마들이 남에집에 안다님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