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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 2013. 3. 1. 10:18

 

 

 

 

1957년에 제작된 3.1절 독립운동에 관한

 

동영상 한편을 연걸했습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 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 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 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 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

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 (천)의 明命(명명)

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

(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

(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

(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 (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 지 今(금)에 十年 (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 전)의 障碍

(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

(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 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

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 을 遺失

(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끝 부분에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이 있습니다.


 

 

 

 

 

 

탑골공원 사적 제 354호

 

 

탑골공원은 불타버린 터전위에

 다시 복원하는 국보 1호 숭례문에 이어 국보 2호

 대원각사 탑이 있는 곳이고 그 대원각사 탑의 기록이 있는

보물 3호 대 원각사비가 있는 곳이다. 역사적인 3.1 독립만세를

 제일먼저부른 곳이어서  3.1 운동 기념탑, 3.1 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는데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공원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한때 파고다공원

이라고도 불렸던 곳, 자주 들리며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우선 지난날 올린 3편의 글을 먼저 보시지요. 영문자 클릭

 

 

 탑골공원, 국보 2호 원각사 10층석탑, 보물 3호 대 원각사비 (거북비?)의 수난사 

http://blog.daum.net/jc21th/17780976

 

서울 종로에서 만난 삼일운동 유적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978

 

해방후 첫 3.1절 기념행사가 있던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922

 

 

 

 

고 정규봉 형이 불려준 일본 장서에서

발견한 "거북비"가 이곳의 대원각사 비임을 발견하고

 감격어린 마음으로 그 비를 중심으로 탑골공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엠파스 불로그에 올린 2007년의 탑골공원

 탐방 이래 탑골공원에 들릴 때면 감회가 새롭다. 

 

올해 80이 된 엄복영선배가 서울 도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교동국민학교를 나왔고

마라톤의 왕 손기정 선수의 모교 양정고등학교 후배로 어린시절부터

오랜세월 서울에서 살아오셨기에  옛 서울의 지리와 역사를 생생히 알고

 있어서, 80대가 되신 또 한 선배 벽산 우제탁님과 함께 서울의 역사를 탐방할

생각으로 서울역사와 지리적인 중심 탑골공원에서 2012년 12월 5일 만났다.

그날따라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며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런대로

새로운 정취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촬영도중 잠시 부주의로

 카메라를 땅에 떨어뜨려 서울 역사탐방은 커녕

탑골공원의 역사 탐방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촬영은

중지되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친 아쉬움으로 탑골공원을

 돌아서서 AS를 맡겼지만 2주일 후에 돌아온 얘기는 그

카메라가 단종 된지 오래되어 부속품이 없는지라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5년 반이라는 세월 속에 가는 곳마다

동영상이며 스틸사진을 촬영 해오던 그 카메라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토록 허전한 마음을

 금 할 수가 없었다. 계획했떤 서울 역사탐방은 다음으로 미루워지고

그날 촬영한 사진을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2월 입춘 날 그날과 같이 많은

 눈이 오기에 그 사진이 생각 나 꺼내어 나름대로 다듬어 올리기로 했다. 오늘의

사진은 사라져 버린 카메라 속에서 마지막 건져낸 영상이다. 앞에 연결된

 글에 대체적인 설명이 있기에 눈 오는 날의 탑골공원의 모습에

연결된 글에 없는 우물과 해시계 받침대에 

관한 설명을 곁들여 올렸다.

 

 

  

 

 오랜세월 버려지다 시피했던 문화재 보물 3호 대 원각사 비가

원각사 10층석탑과 더둘어 새로운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원각사

위의 3층이 올려져 원래의 모습을 찾았고 유리박스에 잘 모셔져 있는가

 하면 원각사비의 비각이 세우지고 주변이 잘 가꾸어져 있다

 

 

 

 

 

 

 탑골공원 삼일문에는 광복직후 서예가 김충현선생님이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탑공공원을 복원하면서 1967년 박정희대통령이

삼일문 이라고 쓴 현판을 달았지만  2001년 11월 한국민족정기소생회 회원들의

새로운 현판을 걸자는 제안에 따라 2003년 2월 가로 1.2m, 세로 0.9m로 옛것과 같은

 크기로  현판을 새로 제작해서 달았다. 현판의 글씨체는 '삼'자와 '일'자의 경우

독립 선언서의 글자를 그대로 이용했고 선언서에 없는 '문'자는

 다른 글자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만들었다.

 

 

 조선시대 서울 중심부 종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해시계

 앙구일구(앙부일구)를 만들어 비치했고 이 돌계단은 앙구일부의 받침돌이다.

 

 

 탑골공원은 원래 원각사 터이고 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살았다.

어느때 쓰던 우물인지는 잘 모르지만 2001년 탑골공원 성역화을 위해

조사를 하다가 발굴된 우물로 상부를 복원한 것이다.

 

  

  

    

 

 

 역사탐방에 나셨던 우제탁(좌), 엄복영(우) 두 선배님과

필자(중)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엄복영선배는 필자가 방송국에

입사 했을때 프로듀서로 저를 반갑게 마지해주신 선배이시고  서예의

대가이기도 한 벽산 우제탁님은 1952년부터 KBS에서 일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우제탁님은 방우회 감사를 지내셨고 엄복영님은

 현 방우회 이사로 재직중입니다.

 

 

己未 獨立 宣言書(기미독립선언서)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 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 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 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 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 (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 (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 지 今(금)에 十年 (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 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 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 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 소잔)을 興奮伸張(흥분 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 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 (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 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 급무)가 民族的(민족 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 하고, 人類通性(인류 통성)과 時代良心(시대 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 (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 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 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 (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 서,我(아) 世宗世業(세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 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 (탁락) 한 民族心理(민족 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 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 무) 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 (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 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 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 (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 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 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상태)를 改善匡正(개선 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 한 正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 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 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 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 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 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 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 (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 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 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여금 正當 (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여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 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 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 를 삼는 世界平和(세계 평화), 人類幸福(인류 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 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 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 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 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 (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 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玆(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 (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군象 (만휘 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 백세) 祖靈(조령)이 吾等 (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着手(착수)가 곳 成功(성 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公約三章(공약 삼 장)

    ㅡ.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 (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ㅡ.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 히 發表(발표)하라.

    ㅡ.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 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朝鮮建國 4252년 3월 1일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아리랑 김연아.mp3

 

 

- 첨부파일

아리랑 김연아.mp3  
   
이장춘 감사님께

탑골공원의 영상을 실감나게 되새겼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거기 10층 석탑은 효령대군께서 직접 감독 제작하신 국보2호입니다.

올해 삼일절은 TV 중계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만세 삼창을 따라했습니다.

이후재
효령대군의 얼이 새겨진 국보 2호군요.
새로운것 알았습니다.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