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방송

이장춘 2013. 6. 22. 11:16

 

 

 

1950년 6월 25일 오전 7시 북한의

 남침을 최초로 알렸던 위진록 아나운서로부터

 미국에서 온 이메일 한편을 받았다. 위진록 아나운서는

 올해 85세로 미국 LA부근에 살고 계시면서 국내에도 자주

들리신다. 6.25 첫 뉴스를 전한 위진록 선생님은 9.28 서울 탈환

소식을 최초로 알린 아나운서이기도 하다. 6.25로 탄생한 VUNC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에서 6.25의 해 11월부터 VUNC가 그

임무를 마치고 막을 내린 1972년까지 방송을

해 오셨다. 이메일 원문이다.

 

 

이장춘 회장님, 오래간만

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춘하추동방송'의 6.25 특집기사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회장님의 수고에

 아낌없는 박수 보냅니다.

 

6.25를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6.25를 북침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반

이상이라는 박대통령의 걱정스러운 성명을

읽는 마음 착잡합니다.   앞으로 이 터무니

없는 인식이 사라질 날이 올까요? 그동안

 멀리서 그래도 언론에 종사했다고 하는

스스로의 책임을 느낍니다.

 

이회장님!

계속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 서 주십시오. 10월에

 한번 귀국할 것 같습니다. 설렁탕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건강하십시오.

 

 

6/20/13

 

 

위진록

 

 

윤길구, 한기선, 조남사님이 1956년 6개월간의

 미국 유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VUNC에 들려

위진록 아나운서, 김복자님과 함께 한 사진.

   

 

6.25 첫 방송 위진록 아나운서의 편지와 참 교육을 위한 제언

 

 

오늘은 위 이메일 글가운데

 "6.25를 북침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반 이상이라는 박대통령의 걱정스러운

 성명을 읽는 마음 착잡합니다." 라는  

글 내용에 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일제히

 3.8선을 넘어 침공했다는 첫 방송을 한

위진록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6월 17일(2013년) 박근혜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회의에 들고 온 한 언론사에서 실시안 여론조사 관련

문건을 보고 걱정스러운 모습을 지었다. 는 기사를

 보고 거기에 대한 심정을 토로한 내용이다.

 

 

 

 

 

고등학교 학생 “응답자의 69%(349명)가

 6·25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답했다.” 는

내용으로부터 비롯된다. 필자가 살던 젊은 시절은 6.25가

남침이라는 것과 그 말 뜻이 곧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는 뜻으로

 받아 드리는데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 청소년들은 “남침”, “북침”

용어부터 혼란이 온다. 북침을 북한의 남한침략, 남침을 남한의 북한

침략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선 "남침"

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한다.

 

 

다음은 사물을 받아드리는 생각의 문제다.

 

 

사물을 현재 있는 상태로 받아드린다는 얘기다.

본인이 어렸을 때나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나라가 현재와 같은

상태였을 것이라고 머리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한. 두 가지 예를 든다.

19일 필자에게 어린 학생으로부터 1980년 방송통폐합 기사를 블로그에

올려달라는 핸드폰 메세이지가 왔다. 이틀이 지나 그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기사를 블로그에 올려 달라는 데 왜

올려주지 않느냐? 는 항의조의 말투다.

 

그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한참이 걸렸다.

그때의 기사 등을 일일이 블로그에 다 올리기도

 어려우려니와 그 때 방송한 녹화물이나 녹음물이 대부분

없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 학생은 그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다.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녹화 테이프가 귀할 때라 그 테이프를 지워서 다음 프로그램의

녹화를 해야 된다."고 하면 “아씨” 동영상도 올려 놓고 다른 얘기들도

올려 노았지 않느냐? 는 등 얘기가 길어진다. 그 시대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지금처럼 저장할 디스켓도, 하드 디스크도  없었고.....

등등 한참을 설명한 후에야. 아! 시대상이 그랬었군요. 

30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얘기를

하고서야 얘기가 끝났다.

 

또 하나의 얘를 든다.

40대가 된 필자의 아이들이 앉은

자리에서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물건중에 너희들이

태어 날 무렵에 있었던 물건이 어느 것이 있겠느냐? 고

물었다. 놀랍게도 집에 있는 물건들이 그들이 태어나던 때도

대부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그들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필자가 TV를 처음 산 때가

1973년이다. 컴퓨터, 전화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등 전자제품 모두가

아이들이 테어날 때는 없었던 물건들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필자가 읽던

몇권 있는 정도인데 아이들은 그리 느끼지 않는다. “밥 없으면 고기

먹지, 라면먹지” 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듯하고 북한도 우리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다.

 

 

본론의 얘기를 쓴다.

 

우리나라가 6.25가 나던 때도

지금과 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있을 수 있다. 그때 상황부터 설명 해 주어야

한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이 엄청나게 강한 나라였고

우리는 그런 나라들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약한 나라였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남한과 북한에

 와 있던 미국과 소련은 남과 북의  양쪽 정부가 

들어선 후 각자 자기나라로 갔다.

 

북한은 소련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고

 자유중국은 새로 일어난 모택동의 공산주의 세력에 밀려

 대만으로 쫓겨났기에 북한은 그 우방 소런이나 중국과 강 하나사이로

국경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급한 상황에 소련과 중공은 어느 때던지

 강하나 건너면 북한에 올 수 있었지만 미국은 태평양건너 멀리 멀리 있었다.

북한은 비밀리에 소련제 탱크를 비롯해서 무기를 들여왔고 전쟁의

뒷 밧침을 해 주겠다는 비밀 약속을 해 놓고 있었다.

 

남한은 미국이 '애치슨 라인'이라는 것을 그어 놓고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음을 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전쟁준비를 해 왔고 6월 25일 모두가 마음 놓고 쉬고 있는

일요일 새벽 남침을 한 것이다. 거칠 것 없이 들어와 이틀 만에 서울에

도달하고 27일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에 서울을 점령 해 버린 것이다.

UN이 북한을 침략국으로 지목하고 군대를 보냈지만 그러기까지는 시일이

걸려서 북한군은 한달 안에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 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발한 6.25는 3년간에 걸쳐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400만의 사상자 실종자를 냈으며 1,000만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등 민족의 최대 비극을 자아냈다.

 

필자가 어릴 때 고등고시라는 것이 있었다.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는 사법과와 고급 행정관료가

되는 행정과가 있었는데 양과 공히 7과목 중에서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들어있었다. 교과목에도 국사는 중시되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국사가 교과서에서도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고 어찌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겠는가? 이

나라의 뿌리부터 흔들려 있으니 그런 교육을 받은 후세들에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방송, 신문, 학교선생님을 탓하는

분들도 있는 줄 한다. 그러나 오늘날그 일을 담당

하는 분들은 어떤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는가?

모든게 뿌리부터 흔들려 있다.

 

역사 바로 새우기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국가적 과제로 삼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

5,000년의 역사를 갖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특히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어찌 살아왔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영어, 수학만을 만능으로 아는 생각부터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썩어있는 뿌리위의 죽은 나무에 나무 접을 부쳐서 살릴 수 있겠는가.

이나라 교육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 드리고 싶다.

 

 

위진록 아나운서 글 보기

 

 

위진록, 6.25 첫 방송뉴스 아나운서 (미국거주)를 서울에서 만나

http://blog.daum.net/jc21th/17781301

 

위진록 (6.25 첫방송) 아나운서, KBS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62

 

위진록 아나운서가 말하는 6.25 발발 첫 방송뉴스

http://blog.daum.net/jc21th/17780760

 

6.25첫 방송 아나운서 위진록 / 전 방우회장 문시형님 유고

http://blog.daum.net/jc21th/17780758

 

 6.25 한국전쟁 이장춘의 글모음 편지

http://blog.daum.net/jc21th/17781787

 

 

 

김무생선생님

 

 

교육자이자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무생선생님이 글을 

보내 주셨기에 함께 올렸습니다

 

 

윗글에서와 같이 이사님께서 염려하시고

답답해하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동감입니다. "역사 바로 알기"

   "올바른 민족의식 고취하기" 등에서 출발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까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수정 보완돼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듯 싶습니다. 저도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기회가 날 때마다

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꼭 교육현장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기회가

날 때마다 더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기성인

모두는 이점에 관심을 가져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청년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역사 바로

알고 바로세우기" 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꼭 “한국사”를 강의하는

교사나 강사 또는 교수가 아니더라도,

 우리 기성인들이 어린이와 청소년 또 젊은이들과

“우리 역사 바로 알리기”를 위한 대화하기, 또는 교육의

 한 가지 접근 방법으로<체험 실화 학습>을 제안한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면 자기 부모 또는 친척이나 선배들의

 체험 실화를 인용하면 되는 것이다. 즉 예를 들면 6· 25가

 뭔지 잘 모르는 어린이와 청소년또는 젊은이들에게 

 <“6· 25”의 체험 실화>를 들려주는 것이다.

  

●나는 6· 25 전쟁터에 직접 참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친의 “6· 25 체험 실화”를

들려주며6· 25를 알려 준 적이 있다. 자 그러면

 이 체험 실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일부분을

단히 적어보겠다. (여기서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내 부친을 뜻함.)

 

☛[[  6· 25 전쟁이 불붙고 있었을 때인

겨울 엄동설한  전쟁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쟁 중

모든 병력들이 사망하거나 파괴되고 흩어진 상황에서 나는

 전우들를 총탄에 잃고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폭포수같은 눈물로

 온 몸이 번벅이 된 채 한 산골마을의 고개를 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배를 움켜쥐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몸은

 부상당해 가누기 힘들었고,거기다 추위까지

엄습해와 너무 힘든 순간이었다.

 

그때 저만치서 7~8세로 보이는

꼬마 녀석이 큰 고구마를 하나를 먹고

 다른 손에 더 큰 것을 들고 있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저 큰 고구마를 빨리 빼앗아 먹어야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꼬마 녀석 옆으로 재빨리(마치 적진의

 적군에게 접근하듯) 다가가,

 

<나>: “야 이놈아!  그 고구마 이리 줘!”

 (이렇게 위협을 하고 그 고구마를 빨리 달라고 했다!)  

 

  <꼬마>:아냐!!  내거야!!

 

<나>:(겁주는 말투로) 이리 주란 말이야 이놈아!!

 

 <꼬마>:아냐,  내거야!!  

 

  <나>:(계속 주지 않기에 강제로 낚아채 버렸다)

 

<꼬마>:앙! 앙! 앙!----, (계속 울기 시작했다)

 내 고구마! 내 고구마! --앙! 앙! 앙!----

 

<꼬마 엄마>: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야! 

 고구마를 빼앗은 놈이!!   

 

 <나>:(빼앗은 고구마를 꼭 쥐고

 ‘다리야 나 살려라!’ 하며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그 꼬마 녀석은 계속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지만 내가

 죽어라 도망치는 바람에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난,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정신없이 달려 그 고구마를 정신

없이 먹고 정신을 차려 군화 끈을 다시 묶었다!)

 

<나>:(그 고구마를 정신없이 먹고 나니

 좀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난 그 꼬마 녀석이 있는

 쪽을 향해) 야!  이 꼬마야 미안하다!  미안해!! (이렇게

사과를 하고 우리 아군 진지를 찾기 위해 무릎이 넘게

 눈이 쌓인  산악지대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여기서 이하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이 북한이 남침한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피와 땀과 목숨을 바쳐 싸운

 전쟁이 바로 6· 25 전쟁이며,  선조들의 피와 땀과 목숨으로 지킨

그 땅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직접 일깨워

주는 식의 "체험 실화 (학습)교육"을 하는 것이다.-->(실제의 확실한 그 사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단순히 6· 25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된 전쟁으로

 몇월 며칠 무슨 고지를 탈환했고 몇명이 죽었다는 식의 단편적이고

암기식 중심의 6 25 역사 공부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물론 6· 25 참상으로 몇명의 국군 용사와

UN군이 전사했고 무슨 고지를 탈환했다는 것들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알아야 할 사항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단순히 교과서식의  나열로 6· 25를 알려주기

(교육)보다는 위에 적고 있는대로 "참전실화"를 바탕으로 6· 25를

알려준다면 더 인상깊게 기억될 뿐더러 더 의미 있는 학습

으로 머리와 가슴 속에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기억해야 할 사실들에 대해서 우선 "

참전 실화"나 실제 얘기를 통해 이른바 "배경지식"을

 바탕에 깔고 공부한다면 훨씬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꼭 학습이라는 입장보다도 우리 청소년들과  이런 식의 체험실화를

 바탕으로  대화를 한다는 큰 의미를 찾음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난 역사를 바로 알게하는--다시말해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갖게하도록 해야할 것 같다. 단 여기서 체험실화를 전달하는

사람의 자세도 중요할 것이다.

 

적극적이면서도 진지한 자세를 통한

 그 실행이 중요하다. 한 예로 나 같은 경우는

목소리 연기(성우 역할)와  동작연기(탈랜트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에강의나 연설 방송 등의 모든 말하기는

 필요시 연기(演技 : performance)와 같이한다.

 

따라서 나는 이런 체험실화를 소개할 땐

이야기 장면마다 필요하다면 실제처럼 연기를 하며

전해 줬다. 물론 (실제 장면처럼 느껴져)보다 재미있어 했고

 진지했으며 흥미롭게 들어 줘 교육적 효과가 훨씬 좋았었다.

그렇다고 꼭 연기력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고 내가 여기서 

연기력을 언급하는 이유는 (연기력이 있으면 좋지마는 연기력이

 없더라도)  이처럼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진지하게

 소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강단에서 학생을 지도하든 가정에서 아들 딸

손자에게 들려 주든  대중을 대상으로 하든지 어떤 대상이든

 진지하게 전하면 진지하게 듣게 돼 있다. 위에서 말한대로 지금

청소년과 마주하고 있는 기성인이 6· 25의 직접 참전 체험이 없다면

자기 부모 또는 주변 어른들의 참전 체험들 대신해서 전해주면 되는

것이다. 실제 내가 교육현장에서 청소년들에게 "6·25가 언제

일어 났느냐?,  왜 6·25가 일어 났느냐?" 고 질문하면

정확히 모르는사람들이 답답할 정도로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었다.

 

(그 비율은 여기에 적기가 싫다.)

위에  이장춘 이사님께서 쓰신 글 중--

한 조사에서<고등학교 학생 응답자의 69%가 

 6·25 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답했다~~~,>에서도

보여 주듯이6· 25가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많은 청소년

들에게 일선 교육자들은 물론이겠지마는 우리 기성인들이

공동의 교육자라는 생각에서 우리 나라의 역사적 사실의

그 기본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평소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할 것같다.

  

 ●6· 25 뿐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우리의 지나온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바로 세워주기

 위해서 지금 계속 언급하고 있는 체험 실화나 이에 관계되는

일화들을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틈나는대로 들려 줘야

 될 것 같다. 하나의 참전실화를 선택해서 그걸 바탕으로 6· 25에

관한 여러 얘기와 사실을 종합적으로 들려 주고, 또 다른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일화를 통해서

 그렇게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역사의

자연스런 인식과 더불어서 <기성인들>과-

<어린이와  청소년과  젊은이들>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는 것도 퍽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교육 현장은 물론이고 각 가정에서도 밥상머리 교육을 하듯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역사 바로 알기"에

  다 함께 동참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무생님 지난 날 쓴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이광재 아나운서와 김무생님의 방송추억, 아나운서 생활

http://blog.daum.net/jc21th/17781589

 

이광재 아나운서, 김무생 아나운서의 생생한 체험기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605

 

 

 

  유카리나님의 오카리나 연주

 

 

 

유카리나님의 댓글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교육 과정에 역사과목이

 빠졌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부끄럽습니다.

북침과 남침의 용어에서 오는 혼란이 가장 큰 원인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한문과 뗄래야 땔 수 없다는 생각이고,

얼마전에 뉴스에서 지방의 어느 대학에서 지원자 수가 현저히 즐어서

국문과를 없앤다는 학교측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고 개탄 한적이 있는데,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 관계자들 부터가 현실에 쫒겨 그런 발상을 한다는게

참 한심한 현실입니다. 국제화 시대, 지구촌 시대지만,영문과도, 중문과도

선택의 문제이지만, 국문과는 필수적으로 존재해야하는 학과라는 생각

입니다. 역사 과목도 빠지고,우리말의 탄탄한 뿌리가 흔들리면,

역사교육은 어떻게되는 것인지 걱정됩니다.

 

 

두번째 댓글

 

 

저도 어렸던 탓에 희미하게 기억되지만,

 6.25후의 전 국민의 궁핍하고 어렵던 기억만

 남았지만, 언제부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그런 어이

없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새싹들의

교육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손녀들에게 저도 한번 물어보아야 갰군요.

 

 

세번째 댓글

 

 

오늘 만나서 손녀들에게

 6.25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다행히

 바로 알고 있긴 해도 그들에겐 눈으로 보지

못한,   전쟁이라는 상상의 한 사건인 듯한 느낌이

순간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는

 대댭을 하는데, 학교에서도 이 용어에 대해

교육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유카리나님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유카리나(모송-慕松)와 오카리나 춘하추동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1697

 

유카리나님의 오카리나 연주곡 모음

 http://blog.daum.net/annesong

 

 

 

위진록 선생님과 필자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방우회 이사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6.25 서울함락 6.25노래.wma

- 첨부파일

6.25 서울함락 6.25노래.wma  
   
윗글에서와 같이 이사님께서 염려하시고 답답해하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동감입니다.
"역사 바로 알기" "올바를 민족의식 고취하기" 등에서 출발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까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수정 보완돼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듯 싶습니다.저도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기회가 날 때마다 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꼭 교육현장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기회가 날 때마다 더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기성인 모두는 이점에 관심을 가져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청년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역사 바로 알고 바로세우기" 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을 본문에 옮기겠습니다.
현장에서의 체험을 기초로
지난날 이광재 아나운서 글처럼
생생한 체험기록을 쓰신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편히 주무십시요.
어느 시점부터 교육 과정에 역사과목이 빠졌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부끄럽습니다.
북침과 남침의 용어에서 오는 혼란이 가장 큰 원인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한문과 뗄래야 땔 수 없다는 생각이고, 얼마전에 뉴스에서 지방의 어느 대학에서 지원자 수가 현저히 즐어서 국문과를 없앤다는 학교측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고 개탄 한적이 있는데,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 관계자들 부터가 현실에 쫒겨 그런 발상을 한다는게 참 한심한 현실입니다. 국제화 시대, 지구촌 시대지만,영문과도, 중문과도 선택의 문제이지만, 국문과는 필수적으로 존재해야하는 학과라는 생각입니다.
역사 과목도 빠지고,우리말의 탄탄한 뿌리가 흔들리면, 역사교육은 어떻게되는 것인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