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3. 7. 14. 01:48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에서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한 다이빙선수가 있었다. 모두가 안 된다던

 황색인종 동양인,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은 미국인 새미 리가 그 주인공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미국인들은 그를 올림픽 영웅으로

대접하며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물론 아시아인

들의 자존심이고 자랑이다.

 

 

1948년 52년 올림픽 영웅 새미 리(한국계 미국인)와 이가인 보나 이혜자

 

 

 

 

올 5월 14일(2013년) LA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는 웨스트모어 랜드에 개교 예정인 초등학교

이름을 '새미 리 박사 의학 및 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로 명명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것을 계기로 올해 93살의 세미 리 박사가

 6월  LA를 방문해서 신연성 총영사와 새미 리 박사 이름을 딴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인 민병수 변호사,   미주 동요 사랑회 회장 이혜자님을 비롯해서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본 동영상은 이혜자님께서 그때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고 들려오는 음성은 미국에서 최초로 우리말 방송을

실시한 김영우 아나운서의 목소리다. 

 

 

 

 

이 동영상은 긴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의 말을 기초로 얘기를 정리해 본다. 새미 리는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는 것이 흥미가

 없어 개으름을 피웠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3학년 때 훌륭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새미 리에게 아침마다 학교에서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을 치는 임무를 부여하고 매일 종을 가져오도록

했다. 학교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기 위해 일찍 도착했고, 오후에는

 그에게 많은 숙제를 주어 그것을 학교에서 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는 과정에 학교에서

 긴 시간을 지내게 되면서 공부에 흥미가 붙어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학은 미국에서도 어렵다던 

의과대학을 가게 되었다. 인턴 과정에서 다이빙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해군이 되려던 새미 리는 키가 적어 육군 의무

장교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그동안 올림픽이 열리지 않아 

기회가주어지지 않다가 12년 만에 열린 1948년 런던 올림픽 다이빙

 종목에 출전해서 플랫폼에서 금메달,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때는 아무도 동양인이 수영선수가 된다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올림픽 출전은

 상상도 못할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해서

백인들은 흑인뿐만 아니라 황색인종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새미 리는 말한다. "내가 연습을 하는동안 백인은 곁에

오지 않았고 내가 수영을 마치면 황색인이 더럽혀 놓은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없다면서 물을 새로 바꾸어 수영을 하곤 했다. 그것도 나에게는 1주일에

 하루밖에는 연습기회를 주지 않았다. 다른 시간에는 나 스스로 만든 간이 다이빙장

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고 말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미 리가 세계 올림픽을

제패한 것은 기적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만 28세였다. 우리 나이로는

30이 넘어 까지 왕성한 수영 활동을 해서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에서도 다시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따 올림픽 다이빙 사상

 최초의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때

 새미 리, 우리 나이로 33살이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의학 박사로 의사지만 미국의

 수영선수를 양성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그가 길러낸

유명한 선수가운데 198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부문에서 2회

연속 2관왕에 오른 그레그 루가니스가 있다. 평창의 2010년과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한 새미 리 박사는 대한민국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랑스런 황색인종으로 존경받고 있다. 간단한

동영상 한편을 더 연결했다.

 

 

 

 

 

 

 

동영상과 내용을 “춘하추동방송”에

보내주신 이가인 보나 이혜자님께 고마운 말씀

올리며 이혜자님과 관련한 사진과 동영상 몇편을

 올려 드리고 아을러 지금까지 써 올린

 글 몇편을 연결한다.

 

 

 

 

 

아래는 올 2월 아들따라 미국으로 이민,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새미 리에 관한 소식이나 미국에서 있은 중요한

일들을 전해 주시는 등 늘  춘하추동방송과 함께하시는 미주 동요사랑회

회장 이혜자님이 미국 LA에 있는 코행가 초등학교 제1회 음악회 지도와

연주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입니다. 특히 동요회가 끝나고

학부형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고향의 봄 합창을 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어서 함께 올렸습니다.

 

 

 

 

동요 음악회를 마치고 코행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함께 한 이혜자님입니다.

 

 

 

동영상 보기

 

 

 

 

 

 

 

미국에 계시는 이혜자님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이 글을 보셨나 봅니다. 여기는

밤중이지만 미국은 오후시간이 되겠군요. 어찌도 그리

시간을 맞추어 춘하추동방송을 들리셨는지요.

써 놓은 댓글을 옮겼습니다.

 

 

이장춘선생님!! 언제 이렇게 홀륭한 작품을 만드셨습니까?
새미리 박사님 곁에 제가 있기에는 많이도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
이번 새미 리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개교한 일은 한인사회의 크나 큰 자랑

거리입니다. 이장춘선생님의 아름다운 손길로 만들어 주신 이 자료가 오래도록

보존 될수 있기를 바라면서 위 사진에 민병수변호사님은 한인사회에 헌신하시며

한인들을 위해 큰 일을 많이 해 오셨고 아버님께서 초대 대한민국 미 대사?

<영사?>를 지내신 분이십니다. 제가 그 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이장춘선생님 애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유카리나님이 두편의 댓글을 써

 주셨군요. 제가 쓴 본문보다 더 소중한 글이라고

생각되어 본문에 옮겼습니다.

 

 

댓글 1

 

새미 리 박사님이 건재하실 때,

그분의 생에 두번째 영광스런 날을 맞이하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런 사실은 춘하추동같은

이런 공간이 있고, 또한 그것을 알려야한다는 뜻을

함께하는 국장님과 자료를 보내오신 이혜자님, 그리고
그곳의 민병수 변호사님, 이러한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신 분이 의학박사

이시라는 사실도 참 드물거라는 생각을하며

 부라보 외칩니다.

 

 

댓글 2

 

이국 만리에서 '고향의 봄'이

 울려퍼지는 동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게

 되는군요. 공부하는 남편 따라 카나다에 가서

살던 1970년대, 고달프고 힘든 이국생활에도 년말

같은 한인들 모임에선 애국가와 함께 언제나 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조국을 그리던 

 때가 더오릅니다.

 

 

 

다음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사항을 보실 있습니다.

 

 

 

이혜자(보나)님! 어린이와 함께, 동요와 함께 60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365

 

미국 LA에 한국인 이름 딴 새미 리 초등학교 탄생 (93세 올림픽영웅, 박사), 이혜자  

http://blog.daum.net/jc21th/17781750

 

작곡가 이수인님, KBS어린이와 함께, 음악과 함께 내 맘의 강물

http://blog.daum.net/jc21th/17781498

 

 

 

 

 

 

김영우 아나운서.mp3

- 첨부파일

김영우 아나운서.mp3  
   
이장춘선생님 !! 언제 이렇게 홀륭한 작품을 만드셨습니까?
새미리 박사님곁에 제가 있기에는 많이도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번 새미 리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개교한 일은 한인사회의 크나 큰 자랑거리입니다
이장춘선생님의 아름다운 손길로 만들어 주신 이 자료가 오래도록 보존 될수 있기를 바라면서
위 사진에 민병수변호사님은 한인사회에 헌신하시며 한인들을 위해 큰 일을 많이 해 오셨고
아버님께서 초대 대한민국 미 대사?<영사?>를 지내신 분이십니다
제가 그 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이장춘선생님 애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필요한 사항 있으시면 연락하셔요.
그리고 오늘 행사에 잘 다녀 오시고요.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이국 만리에서 '고향의 봄'이 울려퍼지는 동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게 되는군요.
공부하는 남편 따라 카나다에 가서 살던 1970년대, 고달프고 힘든 이국생활에도
년말같은 한인들 모임에선 애국가와 함께 언제나 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조국을 그리던
때가 떠오릅니다.
학부모님과 어린 학생들이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눈물을 훔쳤답니다.
그랬을겁니다. 조국은 어머니 나라, 母國이니까요.
이럴 때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기마련이지요.
새미 리 박사님이 건재하실 때, 그분의 생에 두번째 영광스런 날을 맞이하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런 사실은 춘하추동같은 이런 공간이 있고, 또한 그것을 알려야한다는 뜻을 함께하는 국장님과 자료를 보내오신 이혜자님, 그리고
그곳의 민병수 변호사님, 이러한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신 분이 의학박사이시라는 사실도 참 드물거라는 생각을하며 부라보(!) (만세)(!) 외칩니다.
제가 쓴 본문보다 더 소중한 글 유여사님의 댓글을 본문에 옯깁니다.
과찬이시지만, 고맙습니다. (^0^)
좋은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