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이장춘 2013. 7. 25. 06:36

 

 

 

 1910년 일본이 발행한 장서에 올라있는

사진으로「이왕전하의 돈덕전(惇德殿)」이라고 쓰여있

었다.  이왕전하란 조선왕조의 마지막황제 순종을 말한다. 이

사진은 이 글 맨 아래있는 "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과함께 올라 있었다. 이태왕전하란 고종을 말한다. 오래 전에 올린 사진이지만

 늘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진이다. 이와 똑 같은 사진이 고종의 아관파천 때의 로시아 공사관

이라고.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 24일 아이디 역사학자의 댓글로 이 사진을 다시

확인해 보니 구 시아 공사관이  아니라 덕수궁에 있었던 돈덕전으로 밝혀졌다.

그러고 보니 그 장서에 올라있던 두장의 사진은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환구단과 순종황제갸 즉위한 돈덕전을 담아 같이 올린 사진이라고

 생각되어 글 한편을 쓰면서 아울러 아이디 역사

학자님에서 고마움을 전한다. 

 

 

돈덕전 1910년 일본 장서에 소개된 사진과 덕수궁 돈덕전이 헐린 역사의 진실

 

 

돈덕전은 고종황제가 덕수궁안에 현대식 건물로

 세우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중요한 용도로 쓰였고

1907년 8월 27일 순종황제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엄격히 말하면 돈덕전 밖 돈덕전 입구다. 순종황제의 격을 낮추기

위해서 일본이 개입해서 돈덕전 밖에서 행한 것이다. 네덜란드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밀사로 파견했던 해아밀사사건을 트집잡아 고종을 퇴위

 시키려고 꾸민 7월 20알 중화전 앞에서 거행한 가짜 즉위식이 있은지

40일 가까운 시일이 지나서다. 어찌되었던 돈덕전은 순종황제가

 즉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돈덕전이  

언제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라졌다. 

 

구단과 덕수궁 주변에 있던

조선황실의 역사적인 유물들이 도로를 낸다는 

이유로, 또는 현대적인 훌륭한 건물을 짛는다는 이유 등으로

 사라졌다. 경복궁 앞에 있던 흥례문 등을 헐고 총독부를 그 자리에

 지었으며 광화문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졌다. 경성부청을 황궁이었던 덕수궁의

 턱 앞에 지었다. 일제 강점기때 그리 된 것이다. 그 기획자가 일본이고 실행자가 

일본이었다. 대한민국을 식민지화 해가던 일본이 무슨 이유를 내세워서든지 한국의

 자주 독립의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발자취라면 모두 없애려는 마음을 밑 뿌리에 

담고 행해진 것이다. 그것을 다른 명분으로 적당히 포장한 것이다. 돈덕전도 그런

일환으로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환구단, 순종황제가

즉위한 돈덕전 왜? 없애야 했는가? 철도호텔을 지으려고, 도로를 내려고,

다 꾸며낸 이유다. 그 자리 아니면 철도호텔 못짛고 그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도로 못냈단 말인가? 우리는

그런 상황을 확실히 알아야한다. 

 

 

 

로시아 공사관에서 고종과 신하들이 이층에서 밖을 보고잇는 장면이라고 잘못 소개된 사진

실은 이 건물이 덕수궁 안에 있는 서양식 건물 돈덕전이다, 

 

 

저 아관파천에 관한 사진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 건물은 러시아 공사관이 아닌 덕수궁 돈덕전입니다.

러시아 공사관은 저런형태의 2층이 없죠. 아래 글에 7월 24일

(2013년) 역사학자라는 아이디로 댓글이 쓰였다.  

 

고종의 아관파천과 덕수궁, 대한제국과 원구단 (환구단) 황궁우

http://blog.daum.net/jc21th/17781701

 

 

惇德殿

 

오래전에 친지로부터 받은 메일에

귀중한 사진 한장이 소개되어 있었다. 위에 올린

사진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황제와 신하들이 밖내다

보고 있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믿을만한 분으로부터 받은 사진이라

아관파천과 관련된 글에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오랜세월이 흘러 "역사학자" 라는 

  아이디로 이 사진 설명이 잘 못되었다는 댓글이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보니 바로 그 글에

같이 올라있는 같은 건물 사진이 있었다.  필자가 1910년 발행된 일본의 장서에서 복사해

올린 사진에  「이왕전하의 돈덕전(惇德殿)」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러시아 공사관 

건물에 왜? 그런 제목이 붙어 있을까. 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로시아 공사관 건물

이라고 알았던 그 건물이 돈덕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의문이 쉽게 풀렸다. 그 건물이

 돈덕전이기 때문에 돈덕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고 따라서 로시아 공사관 이라고 한

 설명이 못되었음을 알게 된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이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시아 공사관으로 잘 못 알고 있다는것이다. 그토록 중요한

 사진설명이 어떤 사유로 그토록 잘 못 되어 전달되고 있을까.

필자도 그 사연을 잘 모르지만 어찌 되었던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잘 못전해진 경우가 있고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글을 쓸때 사진을 중시하다보니

많은 사진을 사용한다. 방송에 관한 글에서 사용된

사진은 대부분 받은 사진이지만 그 사진 소장자도 그 사진에

 관한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알아보는 과정에서 잘 못된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그런 경우가 생긴다.  출판을 권하시는

 분이 많아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 이유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써야 하지만

 어떤 사유로던지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전해지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던 이 글을 보신분은 이 사진 한장이라도 그 내용을 바로 잡아

 주셨으면 하고 아이디 "역사학자" 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환구단을 「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라고 한 사진

 

 

 머리 사진과 같은 책에서 복사해서

 같은 글 "고종의 아관파천과 덕수궁, 대한제국과

원구단 (환구단) 황궁우" 에 올렸던  아래 사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다.  사진 제목이「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라고

되어있고 다른 설명은 없다. 그 책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홍보용으로

 제작된 서적이라고 생각된다.   「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라는 것이 무엇

인가? 우리 입장에서 보면 고종이 환구단을 쌓고 대한제국이 만천하에 독립국임을

선언하며 황제에 즉위한 것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고종황제가 살아있고 그 아들

 순종으로부터 강제로 도장을 찍게해서 나라를 빼앗았는지 왕의 존재까지 무시

할 수는 없었겠지만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일 등 환구단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 줄수는 없었을 것이다.  큰 의미없이 무슨 내용인지도 잘 알 수

없는 즉위식장 정도로 축소 해서 붙인 이름이 「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다.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의

영문자를 클릭하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 환구단 / 원구단 사적 제 157호 황궁우와 환구단의 정문, 석고  

http://blog.daum.net/jc21th/17781818

 

고종의 아관파천과 덕수궁, 대한제국과 원구단 (환구단) 황궁우

http://blog.daum.net/jc21th/17781701

 

 

건청궁 명성황(왕)후의 최후 이토 히로부미 을미사변 을사조약 한일합방

http://blog.daum.net/jc21th/17781829

 

 

덕수궁 역사 비운의 경운궁 / KBS 이산가족 찾기 영상 1983년 / 유네스코 세계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713

 

 

 

1910년 책자에 「이태왕전하 구(舊)즉위식장」이라고 쓰여있는 사진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시는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께서 올린

댓글을 옮겼습니다.

 

 

'돈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렇게 바르게 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 주시고, 또 거기에서 혹 잘 못 되고 틀리게

다루어 진 것을 바르게 잡아주시는 전문가를 포함한

 관심어린 조언들이 있어서, 함께하는 보람과

기쁨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거운 하루 되시어요.

 

 

 

 

고맙습니다.

돈덕전에 관해서 아시는 분이

많치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역사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돈덕전을

복원한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원래 돈덕전은

 석조전 부근에 있어서 지금은 한쪽이 덕수궁 관리사무소로

그리고 한쪽은 덕수궁 담과 길로 되어 있는것 같은 생각이

니다. 그곳  관리사무소가 있는 강당에서 연말이면 문공회

 송년회를 여는 곳이라 종종 들립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명성황우 조수미 나 가거든-1.wma

 

 

 

'돈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렇게 바르게 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 주시고, 또 거기에서
혹 잘 못 되고 틀리게 다루어 진 것을 바르게 잡아주시는 전문가를 포함한
관심어린 조언들이 있어서, 함께하는 보람과 기쁨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국장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어요. (^0^)
고맙습니다.
본문에 옮겁니다
국장님 제가 블로그 여기저기 다니다가 공부한 것 중에서 아이디 '역사학자'를 쓰시는 분은 실제 역사학자로 존함이 조준희라는 분이시군요.
블로그 검색창에 검색이 되는군요.
이 글 맨 위에 빨간글씨의 글에 나오기도 하는군요.
조준희 선생이시라고요.
조준희 선생님은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입니다.
좋은것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관련정보를 찾던중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정보 너무, 너무 많이 올리셔서,,,

정말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갑니다.

좋은 정보 공유해주셔서 감사하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께요.

그럼 행복하세요.
좋은정보네요^^c
돈덕전이 석조전 왼쪽 뒤편 지금은 화장실과 후문쪽에 위치했었나보군요 이런 실제 있었던 귀중한 건물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게 안타깝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