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3. 8. 7. 13:02

 

 

 

   

 

 

일제 강점기 민족의 울분과

설움을 달래며 동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었던 그 노래!   이 땅에서

 태어난 남과 북을 초월한 백의민족, 세계각지

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이 노래를

모르시는 분을 별로 없으리라.

.

 

 

설사 노래 전체를 모른다 해도

몇 소절은 머리에 떠오르고 어린 시절

정겨웠던 친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또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만나 그 노래 함께 노래 부르며

 눈물을 닦아내야 할 만큼 감동적인 그 노래! 고향의 봄,

봉선화, 그 노래에 곡을 붙인 홍난파! 그는 현대음악의

선구자요, 이 땅에 방송이 태어나던 때부터 방송을

통해서 현대음악을 알려온 민족 음악가였다.

 

 

홍난파(洪蘭坡) 현대음악의 선구자 불후의 명곡 고향의 봄 봉선화 봉숭아

 

 

홍난파! (홍영후) 탄생 70주년을

 맞아 남산의 명소 KBS 방송국 뜰에는

 위대한 한 음악가의 흉상이 섰다. 방송과

홍난파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에

가장 인연이 깊은 방송국 뜰에

흉상이 세워진 것이다.

 

이 땅에서 시험방송이 시작

부터 방송에 출연해서 그의 음악을 알려

왔고 방송실시를 앞두고 구성한 경성중앙악우회

(樂友會)는   경성방송국이 문을 열때 축하공연을

가졌다. 홍난파는 작곡가이고 최초의 바이올린리스트

이며 교향악단 지휘자였다. 방송국에 자리를 마련하고

 방송국 직원들과 함께하며 방송과 음악을 접목시켜

현대음악을 빠른 속도로 전파하는데 기여했다.

 

가곡과 동요, 대중가요의 벽이 없던

시절 그는 가곡을 만들었고 동요를 만들었으며

 창가라고 불리던 대중음악도 만들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함께 부르는 가정가요를 만들었다. 1936년

처음으로 KBS관현악단을 만들어 악단장과 지휘를 맡으며

키워나갔다. 교향악단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라  

악단을 정식 교향악단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이 관현악단을 가르쳐 교향악단이라고 하는 분도

있다.   비록 규모는 지금에 비교할

아니었지만 그때로서는 대단한

 악단이었다.

 

경성방송국이 처음으로 방송합창단을

 만든 것은 1939년의 일이다. 난파의 제안으로

 구성된 이 방송합창단은 같은 중앙보육학교에서

 교수활동을 하던   후배 작곡가 김성태를 함창단의

 단장으로 추천해서 건전한 가정음악 보급에 힘을

기울이도록 했고 스스로도 가정음악을 만들어

 전파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김성태는 홍난파, 안기영,

현제명, 이흥렬 등의 1세대 현대

 음악가에 이은 2세대 음악가로 불리며

 201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이 나라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그때의 가정음악을

책으로 발간되어 후세에까지

전해온다.

 

이원수선생이 어린 시절 쓴

고향의 봄도 홍난파가 곡을 붙이고

방송 전파에 실어 보내면서 순식간에 전파된

 이래 오늘날   민족의 노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서울  

종로구 홍파동 난파가 살던 집과 함께 있는 월암공원에는

 홍난파가 살던 집이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고 그 집 앞에는

KBS남산방송국에 있던  흉상과 고향의 봄 악보, 가사가

있는 표시형상이 있다. 오늘 노래는 2013년 독일 근로자

파견 50주년과 한독수교 13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

 우리 가수들과 참여       동포들이 함께 부른

고향의 봄과 천재성악가 김천애가 부른

봉선화를 함께 올렸습니다.

  

 

 

원래 KBS 남산방송국 뜰에 세워진

홍난파 흉상의 후면에 윤석중 선생님이

  쓴 글을 김충현선생님의 서체로 다듬어 새긴

 다음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봉선화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100곡을 남기신 난파 홍영후

(1898년 4월 10일-1941년 8월 30일)

선생은 우리나라 맨처음 바이얼 니스트로

1936년에는 경성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지휘하신

방송음악의 선구자이시다. 난파를 기리는 이들의

정성을 모아 그 모습을 새겨 여기 세우니

과연 인생은 짧아도 조국과

예술과 우정은 길구나.“

  

원래의 흉상 후면에 있던 글이 앞으로

왔고 글자를 다시 새긴듯하다. 글의 위치가

앞뒤로 바뀌고 글자 한 두자 달라진것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그러나 노래 이름이 바뀐것은 중요한

 일이다. 김형준이 쓰고 홍난파가 곡을 부친 노래는 봉선화

이지 봉숭아가 아니다. 수십년동안 봉선화로 노래를 부르면서

가슴속에 새겨왔다. 봉숭아 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봉선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봉숭아가 

표준말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노래 속에

 살아있는 정신까지 바꾸어서는 안된다.

"자장면"이 표준말이라고 해서 그렇게 써야

 한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짜장면에 더 정감이 갔다.

그래서 짜장면도 같이 쓰기로 했다.  봉선화가 한자란다.

 우리 말속에 한자로부터 나온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이것만 한자여서안된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형준이 쓰고 홍난파가 곡을 붙혀 부른 노래는 

"봉선화"이지 봉숭아가 아님을 확실히

해 둔다. 여기에 대해서는 써서

올린 다른글이 있다.

  

다른 얘기는  지난날 필자가

 여러편의 글을 썼으므로 그 글과

약력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홍난파가 살던 집, 기념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홍난파선생님이 1935년부터

 세상을 뜨실 때가지 말년을 보낸 곳으로

그때의 양옥 건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10채가

안 되는 희귀한 건물이기도 해서 문화재청이  지정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90호로  등재되어 있는 건물이고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지정한 평생학습  협력기관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홍난파의 집 근대문화 유산 사무국장 

김유순은 홍난파 손자 며느리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 했을 때는 김유순님의 남편 홍익표

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서대문역이나 독립문역에서

 도보로 약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서울 종로구 홍파동 2변지 16, 월암공원과

 함께 있고 그 가까운 곳으로 한양도성이 통하고

있어 한양도성 길 관광과 연계한 코스로 찾는 이들이

 많다.    지하 1층, 지상 1층 붉은 벽돌 건물로 독일인

선교사가 지어 독일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지하 1층이라고 하지만 밑에서 보면 지상과 같은

층이다. 이미 민간인 소유로 되어버린 이 집을

종로구에서 2004년 사들여 홍난파 기념관

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방문자는

 밸을 누르라는안내문이 쓰여 있어 밸을

눌렀더니 홍익표님이 바로    나와 주셨다.

거실과 안방이 있던 자리는 홍난파님 사진과

연보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이고 지하는 홍난파의 삶과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과 영상자료들을 갖춘 시청각실

 단장되어 있었다.

 

 

밑에서 본 홍난파의 집

 

  약력(1898년 ~ 1941년)

 

 

1898년 - 경기도 화성 남양 (남양홍씨) 태생.

1912년 - YMCA 졸업

1915년 -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양악부(洋樂部) 마치고 동 전습소 교사

1916년 - 최초의 곡으로 추정되는 야구 응원가 창가(唱歌 - 행진곡풍) 야구전 작곡

1918년 - 일본 도쿄 음악학교 2년간 수학 후 귀국

1920년 - "봉선화"의 원곡인 "애수" 작곡

1924년 - 12월 조선일보 시험방송 연주

1925년 - 제1회 바이올린 독주회, (최초의 바이얼린 독주회)

1925년 - 잡지 "음악계" 발간, 소설 "처녀혼" "향일초(向日草)" "폭풍우 지난 뒤" 발표

1926년 - 경성방송국 개국을 앞두고 중앙 악우회를 창설 (박경호, 붓스부인)

             홍영후(난파), 김영환, 김형준 등 15명으로 구성1926년 -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 편입

1927년 - 2월  중앙악우회 경성방송국개국 기념 연주(박경호) 

1927년 - 도쿄 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연주자

1928년 - 홍난파, 박경호 등 18명의 최초의 오케스트라 구성 방송출연 (단원 최초 보수지급)

1929년 - 귀국, 중앙보육학교 교수

            조선동요 100곡집 상권 발간  

1929년 - 1929년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연악회 부활

             째즈 밴드(Korean Jazz Band) 구성 방송활동1931년 -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

1931년 - 도미 셔우드음악학교 연구

1933년 - 귀국, 이화여전 강사, 경성보육(京城保育)학교 교수 전임

1933년 - 난파트라오 구성 (바이얼린)

            조선동요 100곡집 하권발간

1935년 - "백마강의 추억" 등 14곡의 대중가요를 예명 나소운(羅素雲)으로 발표

1936년 - 경성중앙방송국 방송관현악단 조직 방송활동

1940년 - 모찌르트의 주피터 교향곡 연주 ( 최초의 교향악 연주) 1941년 - 8월 늑막염 타계

  

 

 

홍난파의 집 전시실에서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Y 2015.07.27 01:17

 

국장님, 홍난파 선생님 기념관에

가는 날 이른 새벽입니다. 그 유명한

고향의 봄은 저 위 동영상에 있으니 저는 오늘

홍난파 선생님 곡 '낮에나온 반달과 '사공의 노래'를

 불것이고 , 김정숙님은 역시 선생님의 곡 '장안사를

불것입니다. 기대로 가득합니다. ^ ^저위에 이원수

선생님도 보이고 김천애 선생님도 보이고,

제 동영상에 반주 해 주신 그랜파

 민선생님도 보이시니

 

참 으로 반갑습니다. ^ 0^

 

 

┗이장춘 

 Y 2015.07.27 03:28 

 

가시면 월암공원이 잇어요.

거기에 악보도 있고요. 그 월암공원

 의자에 앉아 고향의 봄 한곡 연주하시면

정감있고 오래 오래 기려질

것입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경성방송국과 현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255

 

경성방송국 양악을 이끌었던 사람들/ 홍난파, 박경호, 김생려

http://blog.daum.net/jc21th/17780883

 

민족의 성악가 김천애 봉선화, 그리운 강남, 애국가, 민동옥, 봉숭아꽃

http://blog.daum.net/jc21th/17782506

 

김천애 2, 조민구 (LAKPO창설지휘) 선생님이 말하는 민족의 성악가, 제작 이혜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549

 

홍난파작곡 민족의 노래, 봉선화인가 봉숭아인가?

http://blog.daum.net/jc21th/17780939

 

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 봄 작곡 홍난파  

 http://blog.daum.net/jc21th/17781663

 

작곡가 김성태님과 방송, 최초의 방송 합창단 지휘자, 이별의 노래/김명희

http://blog.daum.net/jc21th/17781801

 

한양도성 역사탐방 (5) 인왕산 길 두 번째

http://blog.daum.net/jc21th/17781848

 

 

 

화      보

 

 

 

 

 

 

 

 

 

 

서울 특별시에서 세운 안내판

 

 

 

 

홍난파의 집과 함께 한 월암공원과 한양도성

 

 

한양도성 연계코스로 이곳을 찾는이가 많다고 했고

앞으로 덕수궁에서 이곳까지 역사의 거리 관광의 거리,

걷기좋은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음

 

 

 

 

 

 

종전에 홍난파님 글에 올렸던 사진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고향의 봄 봉선하 독일.wma

 

 

 

잘 읽고 갑니다. 홍난파 가옥은 저도 들러본 적이 있습니다.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김창욱 올림.
고맙습니다.
잘 듣겠습니다 첨부파일 고맙습니다.~
자주 오셔요.
햇살 가득한 겨울날입니다.
곧 봄기운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그리고 뜻 있는 자료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 내용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국장님,
홍난파 선생님 기념관에 가는 날 이른 새벽입니다.
그 유명한 고향의 봄은 저 위 동영상에 있으니
저는 오늘 홍난파 선생님 곡 '낮에나온 반달과 '사공의 노래'를 불것이고 ,
김정숙님은 역시 선생님의 곡 '장안사를 불것입니다.
기대로 가득합니다. ^ ^
거기 가시면 월암공원이 잇어요.
거기에 악보도 있고요.
그 월암공원 의자에 앉아 고향의 봄 연주하시면
정감있고 오래 오래 기려질 것입니다.
곡은 한국이나 두곡으로 제한 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늘 연주 하시던 곡
주변환경줗으면 공원에서도, 실내에서도
자유롭게 부담없이 연주하시면
좋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아, 그런가요?
고향의 봄이야 눈을 감고도 연주가 되는데
봉선화는 오카리나로 불기에 좀 까다로와서요...................
난파 선생님은 물론이고
저위에 이원수 선생님도 보이고
김천애 선생님도 보이고,
제 동영상에 반주 해 주신 그랜파 민선생님도 보이시니
참 으로 반갑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