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이장춘 2013. 8. 10. 11:48

 

 

 

돈의문(敦義門) 서전문(西箭門)

그리고 다시 돈의문으로 그 이름과 장소가

바뀌면서 예전의 돈의문이나 서전문이 어느 곳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지만 마지막 돈의문이 있었던

곳은 정동길이 끝나는 정동사거리 삼성병원 옆이고 

그 자리에는 돈의문의 큰 표시가 있다. 표시

라기보다는 큰 조형물이다.

 

 

한양도성 역사탐방 (3) 돈의문 서대문 독립문

 

 

 

 

 

 

돈의문은 1915년까지 이곳에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먼저 건설된 서대문 동대문 전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세종 12년에 그 위에 있던 문을 이곳에 옮기면서 그 안쪽을 새로 새운

문의 안쪽이라고 해서 새문안이라고 부른 것이 오늘까지도 새문안, 신문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새문안을 쓴 대표적인 교회가 1887년에 원더우드 박사가 세운

새문안교회다. 얼마 안 되는 곳에 경희궁이 있고 서울 역사박물관이 있다. 

삼성병원 안에는 경교장이 있으며 돈의문 터 주변에는 문화일보나

경향신문, 농협박물관 등도 있다. 문화일보 앞에는 그 유명했던

동양극장 터 표지석도 있다. 다음 사진은 서울시가

앞으로 복원 할 돈의문(서대문) 투시도다.

 

 

 

 

 

마지막 돈의문 터는 지금의 서대문이지만

오늘은 독립문에서부터 발길을 옮겼다.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와 눈에 뜨이는 역사물이 많다, 이곳이 바로

독립공원이고 독립관 (모화관)과 독립문, 영은문 주초,

 서재필박사 동상, 서대문형무소 그리고 산위로

 바라보이는 인왕산의 한양도성 등이다.

 

 

 

 

 

 

영은문은 모화관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고 중국사신을 마지하기 위해 마련했다. 왕이나

 왕세자가 모화관까지 와서 중국사신을 마지 했다. 그래서

경복궁과 바로 통하는 곳에 처음의 돈의문이 있었음직하고 그렇

다면 지금의 사직터널 위로 통하는 문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 할만하다.

 어찌 되었던 이 돈의문은 축조 된지 20년쯤 지나 태종 13년에 폐쇄되고 그

남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세웠다가 세종 4년에 1422년에 지금의 돈의문

 (서대문)을 세운 것이다.   왕이나 세자가 중국사신을  맞으려면

 새로 난 돈의문을 통해서 이곳에 와야 했다.

 

 

 

 

 

 

옛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고 세운 독립문이고

아래는 원래의 영은문이다. 영은문은 모화관의 출입문

역할을 했다. 모화관은 왕이 중국사신을 맞는 곳이니 중요하게

가꾸어졌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청일 전쟁에서 패한 중국사신을

 더 이상 영접할 필요는 없어졌고 갑으경장 등으로 개화사상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 마져 잘 안되던 때라 뜻있는 인사들이 자주기치를 높이들고 1897년 사대사상의

 상진이던 모화관은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뀌어 자주 독립운동을 위한 회관으로 활용했고

 영은문을 헐어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 일에 앞장 선 이가 서재필박사로 이곳

독립공원에는 서재필박사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사적 32호 독립문과

 사적 33호 영은문 주초가  앞,뒤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독립공원에 있는 서재필 박사 동상이다.

 

 

 

모화관은 옛자리에서 약 350m,

독립문은 70m가 옮겨진 자리에 있다.

영은문 주초도 여러차례에 걸쳐 그 자리가

 바뀌었다. 독립분이 세워지던 때로부터

 오늘의 위치에 자리하기까지의

사진을 함께 올린다.

 

 

 

 

 

 

 

 

여기서 발길을 옮겨 사직터널을

지나지 사직터널 위로 오르는 작은 계단이

있다. 그 계단따라 올라갔더니 사직터널을 건너는

숲으로 둘러싸인 오솔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이런 길은

 처음 본다. 여기를 지나도 작은 골목길은 이어지고 성터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성곽이 이곳을 지났다고 하지만

 지금은 땅속으로 또는 집 안으로 모두 숨겨져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다소 큰길이 나오기에 인왕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직공원으로 통하는 길에서부터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시작되었다.

 오른쪽으로는 사직공원다라 오르는 성벽이고 왼쪽은

민간인 주택 따라 종종 성이 보였다. 마을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길이 있고 그 막바지에 사직공원으로

 통하는 아벽이 있다. 그 암벽다라 사직공원을 들렸더니

그곳에 전망대가 있다. 남산이며 경복궁이며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산이 이토록 가깝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먼지나 대기의 어염이 없던 옛날에는

남산에서 이곳까지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남산에서 촬영한 옛날의 사진도 이해가 빨라졌다. 사직

공원의 성 안쪽을 따라 내려오다가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다

보니 동내가 홍파동으로 월암공원이 있고 홍난파의 집이 있다. 

 홍난파의 집에  대해서는 따로 쓴 글이 있어서 뒷면에

그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공원에서 내려와 길에서 본 홍난파의

집이다. 월암공원에 홍난파 집이 있고 홍난파집과

연결된 도로를 따라 잠시 위로 올라가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인다. 이고이 바로 권율장군의 생가터인데 막다른 길로 그 위로

통하는 길은 없다. 그 은행마무는 개인 집 박에 있고 권율장군 집 안내표지와

보호수 안내표지가 있다. 1976년 기준으로 420년이 된 은행나무라로 쓰여있다.

여기서 길 하나 사이에 달쿠샤가 있고 벽에 안내표판이 붙어있다. 달쿠샤,

고풍스러운 집이지만 관리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1923년에 건축한

건물로 독특한 면이 있다.  테일러 기자가 살던 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가면 테일러 묘가 있다.

 

 

  

 

 

 

달쿠샤와 권율장군 생가터의 흔행나무가 나란이 있어서 함께 촬영했다.

 

 

 

 

홍난파의 집, 월암공원은 홍파동이고

권율장군 생가 터, 달쿠샤는 행촌동에 있어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 길을 되돌아와  다시 홍난파의

 집을 지나 월암공원 성벽따라 내려오면서

만난 곳이 서울시 교육청이고 경교장 안내표지가

 삼성병원 안으로 되어 있어서 삼성병원 안으로 들어갔더니

삼성병원의 큰 빌딩 사이에 자그마한 건물  경교장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님이 중경에서

 돌아와 머무르면서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되었고 해방공간에서

중요한 정치적 위상을 지녔던 곳이며 여기서 김구선생님이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한 역사적인 장소지만

오랜세월 잊혀져 병원건물등으로 사용되었다.

 

 

 

 

경교장은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으로

문화재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된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2001년 4월 6일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면서 

복원이 추진되어 2013년 3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이 집은 원래

일제강점기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崔昌學)이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으며,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선생님의 거처로 제공되었을때는

 죽첨장이라고 했지만 일본식이름이라는 지적에 따라 근처에 있는 경교

 (京橋;경구교(京口橋)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인근의 거리를 경교장 길이라고 부른다.

복원된것 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어찌었든 지금도

 삼성병원의 부속건물처럼 보이는

 모습에 아쉬움이 있다. 

 

 

 

 

 

 

 

어둠이 깔리는데 서대문 터로 돌아왔다.

서대문터를 알리는 조형물을 찾기위해 힘을 기울였집만

 필자가 이 조형물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큰 길 전면에

글자가 쓰여 있지만 커다란 관광버스가 그 글자를 가로막고 있어서다.

그곳이 그 관광차의 주차장인지 불법주차인지는 알 수 없고 운전기사도 없다.

 한참 해매다 보니 관광차 뒤로 주황색의 큰 조형물이 있고 이것이 바로 돈의문

표시 조형물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사람들이 다니는 계단이 있다. 그날은

사진을 촬영 할 수 없었고 드음날 다시 그곳을 들려 조형물을 촬영해서 올렸다.

아래 사진은 그 계단의 조형물과 벽에 붙어있는 스텐 안내판에서

촬영한 것이다. 도시 겔러리 프로잭트 2007 안규철 “보이지

않는 문”이라고 쓰여 있고 현판사진도 있다.

 

 

 

 

 

서대문 터에서 광화문역까지

오면서 경희궁, 서울 역사박물관, 새문안

교회, 훈련도감 터, 공연장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먼저 세워졌다는 원각사 터 등을 지났다.

배경음악은 유카리나님의 황성옛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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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독립운동 단파방송 청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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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 박물관

 

 

 

 

 

아래는 2019년 6월 4일에 본 새문안 교회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유카리나님 황성옛터 아리랑(2).wma

 


옛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걸으시는 국장님의 자취따라 오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서 그 때가 지나고나면, 그 건물이나 지명등의 명칭이 기억속에 별로 박히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때, 쇠해가는 시간들을 아쉬워하게 되기도하지만, 인정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려고 노력하지요.
빈약한 저의 음악을 배경으로 사용해 주시니 큰 기쁨입니다. (^0^)
연세드신분은 옛 추억을 되살리며
오늘의 모습을 보며 젊은이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옛날와 오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서 가급적이면
자세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이고
유여사님의 아름다운 오카리나 연주는
사람들이 함께 들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