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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 2013. 10. 20. 19:00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방송을 통해서 최초로 알린 위진록 아나운서!

그는 생존하는 방송인 가운데 '입사년도가 가장 빠른 최고참

 방송인가운데 한분'이다. 1947년 이전부터 방송을 하신 분은 호기수,

홍양보님이 미국에 살고 계신다는 얘기가 있고 박경환님이 1947년에 들어

오셨다.   위진록님은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평양사범을 다니고 1947년

 KBS 성우로 활약하시더니 그 해에 아나운서 공채가 있어서 19살의 나이로 아나운서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채 아나운서로는 최연소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뜻밖에

 6.25가 일어나 남침을 알리는 최초의 아나운서라는 기록을 가진 위 아나운서는

그해 11월 VUNC. 유엔군 총사령부방송으로 뽑혀가 동경 (도쿄)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미군이 주둔하던 일본에서 6.25의 급밖한 상황으로

NHK채널을 활용, 방송을 했기에 아나운서 앞에는

NHK 마이크가 놓여있다.

 

 

 

 

그로부터 63년간 해외에서 살아온

위진록 아나운서지만 늘 우리 곁에서 살아온

것 같은 친근감을 갖는다. 위진록 아나운서에게는 1947년

 KBS 중앙방송국에 들어오면서 두 번의 학력 허위기재가 마음의

부담의 되었고 또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며 많은 일들을 했기에 고향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발간한 책이 자서전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책명은 ◆위진록의 고백적 기록, 고향이

어디십니까? 라고 붙였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한 얘기의 일부를 육성으로 듣고있다.

 

 

위진록, 6.25 첫 방송, 고향이 어디십니까? 출판기념회

 

 

가난한 지방 관리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위진록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기에 개성, 평안북도 선천 등을 전전하면서 초등

학교를 졸업, 1940년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고 1942년에 3년을

중퇴했다. 남 신의주의 역부, 서울(경성)의 한인회사 일본 광고

대행회사의 사환을 거쳐 경성역 역부로 일하는 동안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역부를 하면서 누님의 술집영업을

돕고 독학으로 한글을 습득, 1946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으나 낙방했다.

 

 

 

 

성우라는 말이 아직 없던 시절

1947년 KBS 제1회 “방송국 연구생” 모집에 .합격,

장민호, 민구, 조남사 등과 성우과 되었다. 1954년에 선발한

성우를 제1기라고 하면서 이때의 성우는 특 1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 무렵에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똘똘이 모험」의 아저씨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해 9월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 만 19세로 아나운서가 되었다.

아래는 위진록 아나운서가 들어오던 때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방송과 안에

 보도와  아나운서실이 있을때  방송과 직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19번이 위진록 아나운서다.     (1947년 11월) 1.문제안, 2.이계원,

 3.윤길구, 4.민재호, 5.전인국, 6.최용희, 9.김인현, 10.이덕근, 

12.강문수, 13.윤용노, 14.편용호, 15.강준원, 16.이진섭,

 17.홍준, 18.이성수가 함께 한 사진이다,

(7.  8. 11번은 미확인)

 

 

 

 

이때 두 번에 걸친 학력 허위기재로

응모자격을 얻은것이 일생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1948년 KBS 방송국 대본 공모에 입선했고,

1949년 김구성생님 장례식에서 민재호, 홍양보

아나운서와 함께 3원 중계방송을 한 것이

 방송기록에 남는다.

 

 

 

 

도쿄에서 방송하던 유엔군 총사령부방송이

오키나와로 옮기면서  생활 근거지가  그곳으로

바뀌었고 1972년 유엔군 총사령부방송이 막을 내리면서

사는 곳과 직업이 바뀌이었는가. 하면 이때 미국 이민을 해서

국적이 바뀌었다. 남가주 바닷가에서 10년에 걸친 햄버거 장사를

했는가 하면 서점을 경영하기도 하면서 동네신문을 발행 하기도

했다. 제미방송인 협회고문, 가주 예술인 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의 저서를 냈다. 이런 애기들을 자세히

 엮은 책이 480페이지에 달하는「고백적 기록, 

고향이 어디십니까?」다. 

 

 

 

 

 지난날 1979년에 발행된 「하이 미스터 위」

와  1993년 「잃어버린 노래」출판기념회는 방우회

(한국방송인 동우회)가 열었다. 위 사진은 그때 촬영한 사진

으로 위진록님과 문시형 방우회 회장님을 비롯해서  배준호, 김창구,

방흥안, 정항구, 이상만님 등  원로방송인들이 함께 했다. 2011년에

발간된「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출판 기념회는  한국 아나운서

클럽이 열었다. 이번 「고백적 기록, 고향이 어디십니까?」

기념회는 평양사범 총 동창회와 한국 아나운서 클럽이

주최가 되어 열었다. 다른 얘기들은 이미 써

올린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긱

 

 

위진록 아나운서 최창숙의 사랑과 삶, 가족사 실명 실화로 엮은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2383

 

위진록 아나운서가 말하는 6.25 발발 첫 방송뉴스

http://blog.daum.net/jc21th/17780760

 

위진록 (6.25 첫방송) 아나운서, KBS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62

 

위진록, 6.25 첫 방송뉴스 아나운서 (미국거주)를 서울에서 만나

http://blog.daum.net/jc21th/17781301

 

6.25첫 방송 아나운서 위진록 / 전 방우회장 문시형님 유고

http://blog.daum.net/jc21th/17780758

 

「날이 밝으면」, 위진록작 KBS 최초 방송극본 공모 입선작품 1947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607

 

6.25 첫 방송 위진록 아나운서의 편지와 참 교육을 위한 제언

http://blog.daum.net/jc21th/17781789

 

홍난파작곡 민족의 노래, 봉선화인가 봉숭아인가?

http://blog.daum.net/jc21th/17780939

 

해방후 최초의 인기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

http://blog.daum.net/jc21th/17780797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장수시대가 되어서, 90을 바라보시는

연세에 책을 쓰실 수 있으시다니 놀랍습니다.

후배 방송인들에게 좋은 본이 되시는군요. 제가

겨우 두 살 때 이미 방송을 하신 어른이시군요.

 

더 이상 묻어둘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일제하의 힘든 세월을 거쳐, 열심히 선구자적인 삶을

사시고 먼 이국에가서 사시지만그리운 분들을 만나기 위해,

꼭 하고 싶었던 고백을 하기위해고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출판기념회를 가지신위진록 선생님의 남은 인생길이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국장님 덕분에 사진을 통해서

알아진 분들이 계시니 반갑고요. 최은희님이 휠체어에

앉아 계시니, 참으로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여전히 멋있으시네요.

 

 

 

박서림 선생님 글

 

 

 많은  원로선생님들의 모습을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VUNC와는 나도 인연이

 있지요.  군에 있을 때 원고도 보내고 전단을 만들어 

보내면 인쇄헤서 보내 주었으니까요.  특히  김영수, 김희창,

위진록 선생이 집필하신 드라마는 강동적이었지요. 후에 이경재

선생이 합류했었습니다.  모두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위선생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출판기념회를 여셨다니 축복을 드립니다. 

 좋은 그림과 기사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박서림

 

 

 

 

생존하는 제일 오래된 방송인의 출판기념회라

많은 원로방송인들이 나와 주셨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전영우, 최창봉, 박경환 최게환님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강영숙, 김동건, 박종세, 황우겸, 한영섭님

 

 

 

앞줄 왼쪽부터 천선녀, 고은정, 최은희님

 

 

 

1950년대 여성 아나운서 민병연, 윤영중, 문복순님과 계원준님

 

 

 

이혜옥, 황인우, 채영신,  박연경님

 

 

 

평양사범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한 평양사범 동창회원님들

 

 

 

평양사범 총동창회를 대표해서 신인섭 교수님 초청 인사말

 

 

 

김동건 한국 아나운서 클럽 회장  초청 인사말

 

 

 

윤기환님 축사

 

 

 

한영섭 방우회 회장님 축사

 

 

 

 한영섭(방우회회장, 종군기자회 회장님)과

 저자 위진록님 두분은 1928년생 갑장이시고

1940년대부터 방송생활을 하신들이다.

 

 

 

성우 고은정의 독후감 발표

 

  

 

원로방송인들과 함께 한 기념촬영

앞줄 왼쪽부터 강영숙, 최계환, 최창봉, 전영우,

최은희, 위진록, 황우겸, 한영섭, 박종세, 김동건, 두번째

 왼쪽부터  민병연, 문복순, 윤영중, 채영신, 박민정, 정항구,

이혜옥, 황인우, 김규홍, 맨 뒷줄 이계진, 한분건너 계원준,

강정도, 박경환, 이상만, 정도영님

 

 

 

원로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기념촬영

앞줄 왼쪽부터 이계진, 최계환, 강영숙, 전영우,

저자 위진록, 황우겸, 박종세, 김동건, 김규홍, 뒷줄

 왼쪽부터 정도영, 이혜옥, 민병연, 문복순,

윤영중, 채영신, 박민정, 황인우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등 평양사범 총 동창회 회원님들,

이치순님은 원로방송인임과 동시에 평양사범 동창회 회원임

 

 

 

앞줄 왼쪽부터 이상만, 유병희, 최은희님

뒷줄 왼쪽부터 유병희님의 딸, 윤영중, 고은정 천선녀님

 

 

 

앞중 왼쪽부터 위진록, 최은희, 김규홍님.

뒷줄 왼쪽부터 이혜옥, 황인우, 채영신, 박민정님

 

 

 

 

위 아래 사진은 가족, 친지분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MBC박연경 아나운서 책중의 아내의 얼굴 낭송

 

 

 

사회 박민정 한국 아나운서 클럽 사무총장

 

 

 

위진록 아나운서와 5번 최창숙 아나운서는

부부입니다. 1.황우겸, 2.김경자, 3.박인자, 4.서명석,

5.최창숙, 6.김순철, 7.정순형, 8.임택근, 9.한희동, 10.이수열,

11.송영호, 12.윤길구, 13.양재현, 14.장기범아나운서.

 

 

 1979년에 발행된 「하이 미스터 위」출판기념회에서

왼쪽부터 박종세, 강찬선, 위진록, 장기범, 임택근, 황우겸, 이수열

 

 

2015년 6월 한국방문

 

 

설렁탕이나 콩나물국밥등

서민적인 한국음식을 즐겨 드시는

위진록 선생님이 6월 24일 식사를 마치고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위진록 고백적 기록.wma

 

- 첨부파일

위진록 고백적 기록.wma  
   
장수시대가 되어서, 90을 바라보시는 연세에 책을 쓰실 수 있으시다니 놀랍습니다.
후배 방송인들에게 좋은 본이 되시는군요.
제가 겨우 두살 때 이미 방송을 하신 어른이시군요.
국장님 덕분에 사진을 통해서 알아진 분들이 계시니 반갑구요.
최은희님이 휠체어에 앉아 계시니, 참으로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
여전히 멋있으시네요.
최은희님께 실제 연세가 어찌 되셨는지 물었어요.
87세래요.
비록 힐체어는 타셨어도 고운 모습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더 이상 묻어둘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일제하의 힘든 세월을 거쳐, 열심히 선구자적인 삶을 사시고 먼 이국에가서 사시지만
그리운 분들을 만나기 위해, 꼭 하고싶었던 고백을 하기위해
고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출판기념회를 가지신
위진록 선생님의 남은 인생길이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같이 가셨으면 좋았을걸 그랬습니다.
본문에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