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14. 4. 8. 19:32

 

  

 

최만린崔滿麟! 60여년 조형미술과

함께 해 오면서 대한민국 국전심사위원, 초대작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한국조형미술의

 선구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을 총 정리하기 위해 해방이후

 한국미술을 이끌어온 일곱분의 초대전을 갖는 특별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1년에 1회, 한분씩을 초대해서 3개월 정도의 기간으로 여는 이 특별초대전의

 1차 전시회로 2014년 4월 8일부터 7월 6일까지 3개월간에 걸쳐 

최만린의 작품 조각, 드로잉 등 439점이 과천 제1

전시실과 중앙 홀에 전시되었다.

 

 

최만린崔滿麟, 한국 조형미술의 선구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전시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국립 현대미술관을 찾은 필자는 깜짝 놀랐다.

이토록 대규모의 전시회를 본 것은 일생 처음이고

필자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제1전시관이라고 해서

전시관 한칸인 줄 알았던 필자가 전시장을 돌다보니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고 각 방마다 인간, 뿌리, 생명, 비움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바닥에는 조형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벽에는 전시물

사진과 설명문이 붙어있다. 한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너무 방대한

규모여서 전시장 안내원에게 몇 분의 작품인가.

 물었더니 최만린 교수 한분 작품이라고 했다.

 

 

 

 

60년간의 작품이라 많을 수도 있다지만

필자의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되었다. 필자가 전시장을 

돌면서 사진 촬영을 끝내고 중앙 홀에 나왔을 때 4시가 되어 식이

거행되었다. 전시회는 8일 부터지만 이에 앞선 현대미술관 측에서 관심 있는

분들에게 미리 설명을 갖는 자리였다. 몇 분만 올 줄 알았던 개막전 설명회에

 중앙 홀을 가득 매웠다. 최만린 교수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은 모르고 

준비가 안되어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로 말머리를 꺼냈다. 방송 후배인 

필자가 종종 만나는 분이지만 이 전시장에 가기 전 까지는  “대한민국

조형미술의 선구자”로 미술계에서 이토록 큰 비중

있는 분인 줄은 몰랐다.

 

 

 

 

 

 

 

 

 

늘 함께 하시는 방송인들도 이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현장에서 들은 정형민 현대미술관장의 얘기와 이사빈

 학예사의 애기를 녹음으로 담아 올리고 현대미술관 홈에서

이번 최만린 초대전에 관한 글을 옮겼다. 아울러 안내장도 스캔

해서 함께 올리면서 최만린 교수 약력과 전시장의 대강을 사진

으로 담아 올렸다. 4월말이 되면 전시회 도록이 출간될 이라고

함으로 그때 더 보완하기로 하고 위의 문헌에 없는 방송인

아나운서로서의 최만린에 대해서 쓴다.

 

 

작품은 아래 전시실 돌아보기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1958년 말의 아나운서들! 아나운서 온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노란색 0 안이 최만린이고 앞줄 오른쪽부터 최세훈, 박종세,

임택근, 장기범, 강익수, 송영필, 이규영, 강영숙, 전영우, 황우겸, 유석춘,

강찬선, 김동만, 최계환, 유창경, 장금자, 문목순, 최두헌, 이본, 조영중,

윤영중, 이현숙, 최만린, 김준철, 한경희 이광재 아나운서입니다.

 

 

 방송인 아나운서 최만린

 

 

 

최만린 아나운서 방송시절  

 

 

최만린이 어렵던 젊은시절 1957년부터

KBS아나운서 생활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그로

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방송계에서는 최만린

 아나운서로 통한다. 방송국에 재직하며 1954년 1기 성우공채로

들어온 김소원과 가정을 이루고 아들 딸 낳아 기르며 오늘에 이른다.  

김소원은 이 나라 최초의 멜로드라마 청실홍실 등 인기프로그램에서 주연을

맡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1960년대 KBS TV출연하면서 인기 탤런트로도

활약했다.    아래 사진은 1957년 KBS가 정동에서 남산으로 옮겼을때 

기념리셉션장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노란색 0 안이 김소원이다.

  

 

 

 

김소원의 동생 김민자는 KBS TV초기부터

오랜 기간 인기를 모아왔고 김민자의 남편 최불암

역시 오늘날까지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행사장에서

 그 모습들이 보이기에 참석한 원로 아나운서들과 함께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왼쪽부터 황인우, 박민정,

이혜옥, 문복순, 박종세, 김민자, 최불암, 황우겸,

 윤영중, 박찬숙, 김규홍 아나운서다.

 

 

 

 

아래사진은 1967년 생방송시절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직골 구서방”에서 김민자다.

 

 

 

 

 

첫방송터 유허비, 항일단파방송 기념 물망비와 최만린

 

 

 

 

조형미술가 최만린은 방송역사의 중심을

이루는 상징적인 조형물 두 점을 설계해서 세우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봉사했다.  이 땅의 첫 전파를

발사한 옛 터에 세워진 “첫 방송 터 유허비” 와 KBS 서현관 2층에

 세워진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물망비”가 그것이다.  

위는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 기념일에 나와 물망비 앞에서 말 하는 최만린

아나운서의 모습이고 아래는  첫 방송터 기념행사에 참여했을 때의

모습이다. 2007년 그때는 문제안, 유병은 등 일제강점기

부터 재직했던 원로방송인들이 함께 했다.

 

 

 

 

 

 

한국아나운서클럽 고문 최만린

 

 

최만린은 한국아나운서클럽 여섯번째 회장을 지닜다.

역대회장은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전영우, 박종세, 최만린

 아나운서 순서로 이오왔고 현 회장은 김동건 아나운서다.

 

 

 

최만린 아나운서는 2005년부터

6년간에 걸쳐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을

역임했다. 전임회장에 대해서는 고문으로 대우한다.

한국아나운서클럽에서는 이번 행사에 믾은 관심을 가져

 1950년대 최만린아나운서가 재직 하던시절 함께 근무한 황우겸,

윤영중, 박종세, 문복순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많은 아나운서들이

 참석했다.  위는 앞줄 왼쪽부터 문복순, 박종세, 황우겸, 최만린,

박찬숙, 뒷줄 왼쪽부터  윤영중, 황인용, 이혜옥, 박민정,

황인우, 김규홍  원로 아나운서의 모습이고 아래는

 김규홍 아나운서클럽 부회장이 회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의 일부다.

 

 

 

 

 

 

최만린 약력

 

 

최만린 (崔滿麟), CHOI MAN LIN

1935년 10월 3일 서울출생

 

 

학     력

 

~ 1953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58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 1963 서울대 대학원 조소학 석사

 

 

경      력

 

1949 ~ 1960 대한민국미술전람회

1965 ~ 1967 Paris Biennale

~ 1961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 국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 현대미술 초대작가

~ 서울대부설 조형연구소 소장

1966 ~ 세계문화자유회의전 초대전

1967 ~ 2001 서울대 미술대 조소과 교수

1968 ~ 1969 현대작가초대전

1969 ~ Sao Paulo Biennale

1971 ~ 인도 Triennale

1973 ~ 개인전

1974 ~ 현대조각대전

1976 ~ 현대미술제

1977 ~ 서울70전

1981 ~ 독일미술전

1983 ~ 환경조각전

1985 ~ 1990 서울미술대전

1986~ Asia 미술제

1988 ~ 세계현대미술제

1989 ~ 시각전

1991 ~ 환원과 확산의 시기전

1992 ~ 1995 서울대 미술대학 학장

1994.3 ~ 1997.3 한국아나운서동우회 부회장

1994.5 ~ 서울국제현대미술제 운영위원

1995 ~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한가람미술관)

1995.5~마니프 서울 국제아트페어(한가람미술관)

~ 중진작가초대전, 원로8인전

1996.1 ~ 작품(Work 0.91-16-0)이 그리스 올림피아 조각공원에 영구전시

1996.6 ~ 오늘의 한국조각전(모란갤러리)

1997.3 ~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

1997.4.26 ~ 1997.5.6 제3회 마니프(Manif)전(예술의전당 미술관)

1997.7 ~ 1999.7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1998.3.17 ~ 1998.3.27 98움직이는 미술관 순회전시회

1999.4 ~ 현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회 박물관분과 위원

2001.5.18 ~ 2001.6.17 회고전(호암갤러리)

~ 현 서울대 명예교수

2005.4 ~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2006.3 ~ 2010.3 헤이리 예술마을 이사장

2007.11.8 ~ 2007.11.30 개인전(선화랑)

 

 

가       족

 

배우자 김소원(金素媛) 1935.6.28 탤런트 겸 성우

장남 최아사(崔雅史) 1961.7.13 건축연구소

장자부 박희교(朴希敎) 1964.6.28

장녀 최아란(崔雅蘭) 1964.6.28 연극인

손녀 최사라(崔史羅) 1990.9.12

 

 

상     훈

 

국전특선/1957

국전특선/1958

김세중 조각상/1991

대한민국 환경문화상/1994.12.16

제8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1997.12.1

감사패(국회 의회지도자 전신동상건립위 집행위원으로서 동상건립에 힘쓴 공로)/2000.5

제57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2012.7/대한민국예술원

 

 

저      서

 

최만린 조각 작품집/1997

 

 

기   록   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1949-1960

Paris Biennale/1965,1967

세계문화 자유회의전 초대/1996

현대작가초대전

상파울루 Biennale

인도 Triennale/1971

개인전/1973

현대조각대전현대미술제서울70전독일 미술전환경 조각전서울 미술대전현대미술 40년전

Asi 미술제88세계현대 미술제중진작가 초대전시각전원로 8인전환원과 확산의

시기전 품(0.91-16-0)이 그리스 올림피아 조각공원에 영구전시

 

 

  

 

위 사진은 현대미술관 입구에 커다랗게 새워진 포스터임

 

 

전시장 돌아보기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정부 아나운서님이 최만린 선생님 초대전을

 보고 글과 함께 최만린 선생님 작품 두점과 최기원 선생님

작품 한점, 박석원 선생님 작품 한점을 보내 오셨기에 이정부

 아나운서님 1967년 국전작품 두점(입선작)과 함께 올립니다.

그때 최만린 선생님은 국전 심사위원으로 계셨을 것이라는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  이토록 귀한 사진과 글을 보내

주신 이정부 아나운서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최만린 아(雅) 철조 - 1975년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서양화를 공부하다 뒤늦게 조각에 매료되어

 궤도수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느날, 昨醉未醒인 채

 조각과로 전과를 감행했던 때가 바로 1960년대 후반이군요...

당시의 한국 미술계는 50년대 후반부터 몰아닥친 이른바 '뜨거운 추상'

혹은 '추상 표현 주의의' 라고 불리는 물결이 성숙기를 지나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추상은 침잠기를 거치면서 좀더 정제된 얼굴로 새로운 조형언어를 모색하기

 시작 한것입니다. 그러나 60년대 초반, 회화, 조각을  중심으로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러한 기류가 젊은 작가들의 심장과 뇌리에서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50년대 후반 부터 60년대에 걸친 선배들의 작업과

발언이 워낙 뜨거웠고 영향이 컸던 때문이라고 기억됩니다.

 

분명 그런 거센 물결의 진원지였으며 중심에

서 있었으면서도 관념적인 주장보다 묵묵히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다져가고 있는 선배들이 몇분 계셨는데 그 가운데

 최만린 최기원 교수님 박종배 박석원 선배님 등예술혼이 담긴 작품으로

 말해주시던 몇분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학교가 달라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탓에 ...당시 최만린 교수께서 KBS 아나운서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죠.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출품하는 패기와 역량 넘치는

 추상미슬의 전위 작가라는  부러운 사실 말고는...

 

68년 KBS 아나운서로 들어와보니 아나운서실 족보에

낯 익은 이름이 있어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가 했는데 동명동인

이었습니다.그후 조각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우리 아나운서 선배님이라고

 자랑하고, 아나운서들과 얘기할 땐 조각계의 선배님이라고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교수와 작가를 병행하기도 쉽지 않다는데, 교수,학장, 아나운서, 작가, 미술행정가 등

1인 4역에,  방송사에 남을 모뉴멘트를 제작해주시고 아나운서 클럽까지 맡아 주셨으니

후배들에겐 그 이상의 가르침이 없을 듯 합니다. 특별 전시회 축하드리며, 남산에서

함께 일했던 김소원 여사님과( 드라마 멘트 많이 넣었습니다) 양최, 양김 네분이

 이루신 예술 가족모두의 건강과 끝없는 발전을 기원합니다. 

 

 

 

최만린 「이브 Eve」120 cm 40cm 브론즈(Bronze) 1964년 4회 파리 비엔날레

 

 

 

최기원 브론즈(Bronze)-1975년

 

 

 

박석원 초토 (焦土) 철조 66년 국전

 

 

 

이정부아나운서 조각,  1967년 국전작품 124, 126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최만린 작가, 교수, 아나운서에 대해서

 처음 알았고, 그분이 바로 김소원 탈렌트의 남편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렌트 최불암님의 부인이신 김민자님의

언니되시는 줄은 알았었고, 그 남편되시는 분이 대학 교수라고만 막연히

 들은적이 있지요. 그분의 답사 말씀에서 "살기 위해 묵묵히,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을 따라 보이지 않는 길을 마음의 행로를 따라 여기까지 오셨다는

 솔직하고 겸손하신 말씀에서 그분의 작품 속에 깃들어 영원히

 숨쉬고 있을 타고난 예술성과 진실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무생(아나운서, 교육자) 선생님 글

 

 

*아나운서 대선배님의 한 분으로서

예술가의 한 분으로서 저는 이 분의 <"초대전의

 답사">에서  "순수 예술가의 예술의 혼"을 배웠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빛이 있어서 그걸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길 없는 길을  허전하게 혼자서 헤치고 지금까지 아무 여유가 없었습니다.>

라는 말씀에서--->예술가로서의 순수한 방향 설정의 자연스러움과 그 길을 혼자서

헤치고 오늘까지 오셨다는 이른바 "예술가로서의 장인 정신"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고차적인 이념과 다듬어진 관념 속에 자기 나름대로 개념을 설정하지 못하고 일 했으나

 믿고 걸어 온 제 마음에 의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에서는--->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의지하면서 예술을 하셨다는 말씀이니 이건 바로 예술의 상업성내지 흥미성에 접근을

차단하는 순수예술을 하시기위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믿고 훈련하시며

 그 길 따라 살아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부들이 먹고 살기 위해 땅을 갈아서

씨앗 묻고 거둬 들여 먹고 살듯 저는 살면서 생명의

울림 같은 것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유치하고 초라하고 가난할지

 몰라도 제 마음 속 한 구석의 작은 울림 같은 것을 두 손으로 흙을 빚어

 형상화시켜서 바로 여러분과 나누고자 했습니다.>라는 말씀에서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글이나 오색찬란한 황금빛을 지향하는 그런

예술이 아닌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삶의 숨소리를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과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듣고

들려주기 위해서 예술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랑할 게 하나 없습니다.저의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에 불과합니다.>에서는--->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 마디로 총정리하신다 할 수가 있습니다.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이 바로 최만린 선생님의 예술세계의

지향점이자이 분의 작품이 갖는 예술성이자 눈부신 가치를

발현하는 티 없이 순수한 진주 중의 진주가 아닐까요?


*저는 이 분의 "작품들"과 "초대전의 답사"를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순수 예술을 표현하시기 위한

몸부림과,시골 산등성이의 아주 청명한 산들바람과   명경지수

(明鏡止水)같은 예술가로서의 품격을 배웠습니다. 대선배님이시며

예술가로 우리 나이로 올해 80세이신 최만린 선생님!   "초대전 답사"에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우리의 예술 세계를 빛내 주시를 바랍니다. 건강하게

 지내시고 선생님의 숨소리 하나하나, 발걸음, 바라 보시는 눈동자,

생각하시는 바로 그것들이 바로 작품으로 승화돼서 축복이

충만한 삶이 되시길 소망하며 기원합니다. 

 

 

 주

 

김무생 선생님은 초등학교 5학년때

이광재 아나운서 중계방송을 듣다가 감동받아

일생동안 아나운서로 살아 오시면서 또 한편으로는교육

계에서 폭 넓은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이광재 아나운서와의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춘하추동방송" 본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검색창에서 "이광재 아나운서를

검색하시면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방수 미주방송인협회 총무국장 님 글

 

절박했던 우리시대의 삶이 소리없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가운데 이 장춘 선배님의

 열정으로 흘러간 추억을 더듬고 되새기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주시는 그 열정에 찬사를 올림니다. 억조창생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밝혀줄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거룩하고

아름답게 남아 천년 세월이 흘러 가더래도 모진 풍상이 휘몰아

치더라도 춘하추동 이 장춘 선배님의 방송이 메아리치며 우리들의

역사를 증언하며 변함없이 지키며 소리없이 말하여라 !

해와 달과 목숨을 같이하며 변함없이 역사를

전하면서 역사를 지키어라 !

 

미주 방송인협회 총무국장

양 방수(Paul Bang Soo Yang)근찬

 

아직 관람객이 오지 않는 이른

시간에 1950년대 윤영중, 문복순

 여성아나운서가 전시장을 돌아보고 

계시기에 한컷 촬영했어요. 

 

 

 

 

전시회 안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안내된 글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조각부문

 첫 전시로 열리는 <최만린>전은 국내추상조각의

 전개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최만린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망

하는 회고전이다. 1935년생인 최만린은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체험한 마지막 세대의 작가이다.

 

 그는 해방 이후 국내미술대학 출신

 1세대 작가로서 단절된 전통의 계승과 현대성의

 조화라는 이중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한국적 조각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자기 성찰을 통해

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해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이브’,

‘태’, ‘O’ 등의 시리즈를 총 망라하며, 작가가 일관되게 다루어온 ‘생명’과

 ‘근원’ 등의 주제가 어떤 방식으로 조형화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어 나아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

 

 

안내 팜플릿에서

 

 

 

 

 

 

 

화    보

 

 

  

 최만린 교수 인사말

 

정형민 국립 현재미술관장 초대인사

 

이사빈 학예사 초대전 설명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축사

 

 

위는 최만린 : 김소원 내외분이 함게 계시기에 촬영했고

 아래는 딸 최아란씨와 곽영자여사가 함께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최아란씨는 올해 51살의 연극 배우이고,   70세의 곽영자

여사는 1960년대, 70년 KBS 대공방송 프로듀서로 재직했다.  

  

 

 

 

 

 

 

 

 

 

 

최만린예술 동영상으로 보기

 

 

동영상을 보시기전에 음향을 끄셔요.

 

 

 

  

 

 

 

 

 

국립 현대미술관의 봄

 

최만린 초대 2014년 4월 7일 개막전이

 열리던 날 그리도 아름다운 서울대공원의 벚꽃을

보았다. 사진 3장을 올리고 아울러 그날의 서울 대공원

 벚꽃 글을 안편 올렸다. 영문자를 클릭 하면 볼 수있다.

 

활짝 핀 절정의 서울 대공원 벚꽃 2014년 4월 7일

http://blog.daum.net/jc21th/17782113

 

 

 

 

 

 

방우회 이사 춘하추동방송

 

 

   최만린 회고전 편집.wma

 

- 첨부파일

최만린 회고전 편집.wma  
   
최만린 작가, 교수, 아나운서에 대해서 처음 알았고,
그분이 바로 김소운 탈렌트의 남편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렌트 최불암님의 부인이신 김민자님의 언니되시는 줄은 알았었고, 그 남편되시는 분이 대학 교수라고만 막연히 들은적이 있지요.

그분의 답사말씀에서 "살기 위해 묵묵히,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을 따라 보이지 않는 길을 마음의 행로를 따라 여기까지 오셨다는 솔직하고 겸손하신
말씀에서 그분의 작품 속에 깃들어 영원히 숨쉬고있을 타고난 예술성과 진실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밤중에 오셨네요.
고맙습니다.
와 정말 블로깅 잘하시네요^^
*아나운서 대선배님의 한 분으로서 또 예술가의 한 분으로서 저는 이 분의 <"초대전의 답사">에서 소위 "순수 예술가의 예술의 혼"을 배웠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빛이 있어서 그걸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길 없는 길을 허전하게 혼자서 헤치고 지금까지 아무 여유가 없었습니다.>라는 말씀에서
--->예술가로서의 순수한 방향 설정의 자연스러움과 그 길을 혼자서 헤치고 오늘까지 오셨다는 이른바 "예술가로서의 장인 정신"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고차적인 이념과 다듬어진 관념 속에 자기 나름대로 개념을 설정하지 못하고 일 했으나 믿고 걸어 온 제 마음에 의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의지하면서 예술을 하셨다는 말씀이니 이건 바로 예술의 상업성내지 흥미성에 접근을 차단하는 순수예술을 하시기
위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믿고 훈련하시며 그 길 따라 살아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부들이 먹고 살기 위해 땅을 갈아서 씨앗 묻고 거둬 들여 먹고 살듯 저는 살면서 생명의 울림 같은 것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유치하고 초라하고
가난할지 몰라도 제 마음 속 한 구석의 작은 울림 같은 것을 두 손으로 흙을 빚어 형상화시켜서 바로 여러분과 나누고자 했습니다.>라는 말씀에서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글이나 오색찬란한 황금빛을 지향하는 그런 예술이 아닌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삶의 숨소리를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과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듣고 들려주기 위해서 예술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자랑할 게 하나 없습니다.저의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에 불과합니다.>에서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 마디로 총정리하신다 할 수가 있습니다.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이 바로 최만린 선생님의 예술세계의 지향점이자
이 분의 작품이 갖는 예술성이자 눈부신 가치를 발현하는 티 없이 순수한 진주 중의 진주가 아닐까요?

*저는 이 분의 "작품들"과 "초대전의 답사"를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순수 예술을 표현하시기 위한 몸부림과,
시골 산등성이의 아주 청명한 산들바람과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은 예술가로서의 품격을 배웠습니다.
대선배님이시며 예술가로 우리 나이로 올해 80세이신 최만린 선생님! "초대전 답사"에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우리의 예술 세계를
빛내 주시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고 선생님의 숨소리 하나하나, 발걸음, 바라 보시는 눈동자, 생각하시는 바로 그것들이 바로
작품으로 승화돼서 축복이 충만한 삶이 되시길 소망하며 기원합니다. 이 예술세계를 이렇게 볼 수 있게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이장춘 이사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최 선배님의 말씀이 어려워
이해치 못한 점이 있었는데
김선생님의 해설로 많이 배웠습니다.
이 밤중에 오셔러 훌륭한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문에 옮겼습니다.
잘보앗읍니다. 건강하세요
즐거운날 되셔요
포스팅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