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4. 4. 22. 17:56

 

 

 

일제강점기 1919년 나라를 찾겠다고

온 겨레가 일어선 그때 여학생으로, 가정주부로

 만세 대열에 앞장서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 나와서도 늘 꼬리표가 붙어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 차라리 멀리 떠나버리자고

 사진을 보고 신랑감을 찾아 미국땅으로 떠나 결혼해서 살았는가 하면,

또 남편이 미국에 있어서 미국에 가야 하겠다고 떠나 일생을 보낸 여성이

있었고 피끓는 미국 망명객 독립운동가의 딸로 테어나 조선의 피를

이어받은 미국인으로 일생을 두나라를 위해 살다 가신분들

 지금도 살고 계시는 분이 있다.

 

 

3.1 여성 독립 운동가 미국편, 이화목, 차경신, 백인명, 수산 안 카디

 

 

일제강점기 국내, 외에서 독립운동에 참여

했던 여성들이 많지만 그들의 공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삼일여성동지회와 함께 숨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얘기를

쓰고 있다. 오늘은 김영우 아나운서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이화목, 

차경신, 백인명, 수산 안 카디 얘기를 쓴다. 50년간  미국에서 방송하면서

 모은 사료! 스스로 사진을 모으고 이곳저곳 찾아 인터뷰를 했으며 영상을

 촬영하고 또 부족한 자료는 직접 그림으로 그려 화면을 올리면서 심혈을

기울여 미국땅에서 방송된 그 다큐멘터리, 국내에는 없는 사료이기에

영상 한토막, 사진한장, 나레이션(해설) 한토막이라도 춘하추동

방송에서는 소중한 사료다. 몇번이고 듣고 사진을

 발췌하고 그 음성을 함께 엮어 올린다.

 

 

 

 

 

동영상 보기

 

 

동영상을 보실때는 음향을 끄셔요.

 

 

 

 

 

 

 

 

 

독립운동가 이화목

 

그는 3.1운동당시 21세의 가정주부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숭실여학교에서 만세대열에

앞장섰다. 그는 왜경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만세를 주도했기에 그의 입을 통해서 관련자들을 색출하려는

왜경의 끈질긴 심문과 고문이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살이는 3개월 여만에 풀려났어도 감시는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유학간 남편에게 가야 되겠다고 미국으로 왔다.

남편은 평양숭실대학을 나온 이선두로 영락교회를

세우고 기른 한경직 목사와 동창이고

친구라고 했다.

 

 

 

 

이화목이 LA에 처음 왔을때는

유학생 등 1,000명정도가 살았다. 고 했다.

미국땅에서 조국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독립에

 힘썼다.  LA지역 대한부인단을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했다.    1965년 한인

3,000명 정도가 살던 LA에서 한인들을 모아 한인회를

 결성하는데 앞장섰고 한인회의 초대 이사를 지냈다.

위 사진은 LA지역 대한부인단 회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1919년 21살의 이화목 여사(위)와 이선두옹( 이화목여사 남편)이 함께 한 사진(아래)

 

 

 

젊은시절의 이화옥여사 남편 이선두

 

 

 

 

 

 

 

차경신. 대한민국 건국훈장 수훈 독립운동가  

 

 

1892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차경신은

보성여학교와 정신여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의식을 키웠고

 1918년 일본 요코하마 여자신학교 유학중 김마리아를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2·8독립선언서를 국내로 반입했고 1919년 만주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상해에서 국내 여성항일단체와 연계, 군자금 모집과 연락망을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24년 미국에 와 제1대 애국부인회 

회장을 지내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국어학교 운영, 국민회,  흥사단 애국부인회,

 대한여자애국단, 재미 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약했다. 1978년 9월 28일 세상을 

뜬후 그의 독립운동이 인정되어 1993년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  2013년 5월,

 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로 차경신을 선정하고  5월 한 달간

그의 공훈을 기리는 특별기획전시회를 열었다.

 

 

 

 

 

 

 

독립운동가 백인명여사

 

 

진명여중 만세에 앞장섰다가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어도 늘 감시가 따르던 때 사진결혼을 통해서

이역만리 이국땅 미국에 와 독립운동에 힘썼다. 그는 3.1운동때의

 일을 회고한다.  생사를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벌리던 그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가 일경에 의해서 오른손이 찍혀 왼손으로 잡고 낭독하다가

왼손마져 찍혀 쓰러진 그 장면을 보았던 그때 그 모습,

그 심정을 회고한 내용을 듣는다.

 

 

 

 

 

 

 

 

 

애국자 피를 이어받은 수산 안 카디

 

 

피끓는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딸로

1915년 1월 16일 미국로스안젤리스에서 태어난

Susan Ahn Cuddy 그녀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 해군 기관총 사격수로 근무한국여성

해군장교였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담당관을

 지냈고 미국에서 삼일여성동지회 결성에 앞장서 최초의 회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애국자의 피를 이어받은 독립운동가임과 동시에 미국을 위해

일한 미국시민이다. 1915년생이니 우리나이로 보면 올해 꼭 100살이

 되었다. 그는 3.1운동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미주방송인협회의 도움으로 미국 LA의 3.1운동

 95주년 기념식 모습을 보았다. 국내에서와는 달리 미주 한인회와

 삼일여성동지회가 주축이 되어 삼일절 기념행사를 하고 있었다. LA의

삼일여성동지회 대표는 이사장 김정빈여사로 그는 1975년부터 1981년
까지 사단법인 삼일여성동지회장을 지낸 황신덕의 딸이다. 오늘 
김영우

 다큐멘터리도 LA삼일여성동지회 지원으로 제작되었다고 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삼일(3.1)여성동지회 창립 47주년기념 2014년 4월 22일

http://blog.daum.net/jc21th/17782130

 

전창신, 김영순 독립운동가, 3.1(삼일)여성동지회 발표 : 이화옥, 이정은

http://blog.daum.net/jc21th/17781687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연미당, 삼일여성동지회 발표 윤선자, 이명화

http://blog.daum.net/jc21th/17782090

 

제 7회 항일 여성동지 선열 추모식, 삼일(3.1) 여성동지회 창립 46주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926

 

전창신, 일제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 이화옥 삼일여성동지회장 발표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128

 

LA 2014년 3.1절(삼일절) 95주년 기념 행사,  LA삼일여성동지회

http://blog.daum.net/jc21th/1778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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