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방송인협회

이장춘 2014. 4. 27. 21:33

  

양미란! 위 사진에는 "1969년 경기도 신산리 25사단 위문공연차 방문해 인기를

한몸에 안았던 시절. 필자(양방수)는 비룡부대 사진담당" 이라는 설명이 쓰여있다.  

 

 

1968년 대전 통신학교 전신 타자반 164기

기장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01보충대에서

25단으로 배치된 65명 가운데 진주사대를 나온 1명만 사단

참모장 당번으로 발령 받고, 필자는 25사단 사단 사령부 윤 봉준

소장님께서 지휘하시던 비룡부대사진 후생사업(厚生事業) 담당자로

拔擢(발탁)되어 18개월 동안 열심히 근무하다가 백마 29진으로 

월남전선에 투입되어 월남에서도 많은 기록 사진을 남겼

다. 그 중에 25사단에 위문공연 가수들의

사진을 몇장 정리해 보았다

  

 

미주방송인협회 총무국장으로 재직중인

양방수님으로 부터 몇장의 사진과 함께 위 사연과

"運命은 말하는 대로 결정된다." 라는 신송(申松)

 삶의 이야기를 인용한  메일을 받았다.  

 

 살아있는 방송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면

사진이나 영상 등 사실을 실증할 수 있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는 좋은 기록사진이고

양방수님에게는 깊은 추억이 담긴사진이다.  그 메일 제목은

"그랬구나! 꿈많던 그때 그 시절 양미란" 이라고 되어있다. 보내온

사진속에는 양미란을 비롯해서 권혜경, 김세레나, 김하정, 조미미 

1960년대 이들의 전성기에 보아왔던 얼굴들이라  쉽게

알 수 있는 연예인들이다. 양방수님이 보내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린다.

 

 

 

 

"위 사진에는 좌로 부터 양 미란, 권 혜경,

김 세레나, 다음. 김하정양이 1969년 25사단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차 찾아왔었다."  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1960년대에는

유난히도 방송국에서 군부대 위문이 많았던시절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강해야 후방에서 편히 일할수 있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라 방송국에서

군부대 위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사진도 종종 촬영하지만 보존된 사진은

많지않다. 그렇기에 좋은사진을 받은 필자가 양방수님에게 물었다. 어찌

이리 좋은 사진을 보존 할 수 있으셨는지를......다음의

 답이 왔다, 전문을 옮긴다.

 

저는 군 입대전에 영화사에서

스틸과 촬영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충무로

 바닥에서 근무를 한 경험으로 사진 현상과 촬영에서는 

남달리 뛰어난 기술을 습득한 관계로 대전 통신학교에서 9주

동안 전신타자반을 졸업했지만 당시 사단장 윤 봉준 소장님의 직속

사진 후생병으로 발탁이 되어 18개월 동안 근무를 하다가 백마 29진으로

월남을 지원 하였읍니다.    그때 12.500명 사병중 이 사진을 촬영할 사병은

유일하게 사진 후생담당인저만이 카메라를 들고 다닌 병사가 없었고, 카메라는 

사병들이 보안상 군부대에서 금지되었고, 만약 촬영을 하게 되면 보안 부대에서

가지고 가서 일일이 검사를 맡은 다음 사진을 유출해야 돼는 엄격한 분위기

였읍니다. 이 사진들은 양 미란이를 통해서 전부 모두에게 보내어 드렸던

사진입니다.    지금은 이 사진들도 정리를 해야 되기때문에 버린

 사진중에 일부 남은 사진 몇장만 있어 브로그에 남겼읍니다.

 

 

 

 

1969년 생전에 경기도 양주군 신산리 25사단 연병장에서 열창하는 가수 양 미란 양  

 

 

20대초반 대학을 다니고 군대생활을

하던시절이다. 꿈많던 그때 그설이다. 양방수님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런 꿈은 있었고 추억은 있었다.

그때 그 추억 꿈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남기느냐는 사람에

따라각기 다르다. 양방수님이 보내온 메일에는 양미란의 편지가 있고

그가 부른노래 "흑점"을 비롯해서 여러곡의 노래가 연결되어 있으며

 김세레나, 권혜경의 노래도 연결되어 있다. 아래 몇곡을 동영상

으로 그대로 옮기고 김세레나, 권혜경에 관해서는

필자가 써 올린 글이 있어서 연결했다.

 

 

 

 

 양미란! 그 시절 독특한 음성과 풍부한

 성량으로 많은 곡을 남겼다. 흔히들 김상희 노래로만

알고있는 "목석같은 사나이" "대머리 총각" 그때의 히트곡들이

양미란의 노래로도 불렸다. 양미란이 일찌기 세상을 떴기에 김상희의

노래로만 아는 분들이 많은것이다. 1961년 KBS전속가수 김상희는 학사가수

로 오랜동안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사회도 보았으며, 살자기 옵서예 등

오패라도 해서 인기를 모았다. 언젠가 가요무대에 나와 김하정과 함께

"살짜기 옵서예"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양방수님의 사진속에

김하정도 있다. 아래는 양방수님의 사진과 60대가 

김하정의 모습을 함께 올린다.

 

 

 

 

 

 

권혜경! 1956년 KBS전속가수로 출발했다.

"산장의 여인", "물새우는 언덕"등 양방수님이 인용한 

신송(申松) 삶의 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 가수다. 그토록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던 권혜경이 어쩌면 그런 우수에 찬

노래를 골라 불렀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이가 많을때까지 혼자살던

그에게 천만 듯밖의 불행이 왔다.  누구도 그런 상황이라면 마음의 병을

앓지 않을 수 없다. 그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듯 해서 궂이 쓰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너무 불행한 삶을 이어가다가 세상을 떴다. 양미란,! 양미란의

남편 정민섭, 권혜경 그시절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심송의 삶의 얘기를 인용한 마음에 공감한다.  

 

 

 

 

 

 김 세레나! 1964년 고등학생이던 그가

동아방송 첫 가요백일장에서 장원하면서 가수가

 되어 민요조의 노래를 많이 불러 민요 가수왕이라 일컬었다.

양방수님 꿈많던시절! 한시대를 풍미하던 연예인들과 교류하며

꿈을 키워왔던 양방수님이 70이 넘어 그날의 추억을 더듬어 사진을

보내주신 마음을 읽어 이 글을 올린다. 아래사진은 그 시대 최고의 

가수 반열에 있던 가수들이다. 뭇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사랑을 받았던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저세 상으로 가셨거나

60대, 70대가 되어 모두 추억의 뒤안길에 살지만 그때

 그 모습은 사진을 통해 여기서 볼 수 있다.    

 

 

 

좌로 부터 조미미, 권 혜경, 김 하정, 양 미란

 

 

 

양방수님 비룡부대 재직하던 시절

 

 

양미란

 

 

 

 

위는 양미란이 양방수님에게 보낸편지이고 

아래는 양미란이 인기절정이던 1968년 2월 18일

통일무대 공개방송 담당 엄복영 프로듀서 노트에서 복사한

출연자와 노래곡목이다.  엄복영프로듀서는 프로그램 제작 할때마다

이런 노트기록을 남겼다. 양미란과 권혜경이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1967년 2월 18일의 무대로 사회는 모두가 다 잘 아는 이광재 아나운였다.

이 프로그램의 휘나래를 장식한 양미란은 "사랑할땐 몰라요" "나를

잊지 마세요"  불렀고 권혜경은 "산장의 여인" 과 "동심초"를

불렀다. 그 시절 사람들은 그 노래를 애창했다.

 

 

 

 

그 시절 권혜경이 군부대 공개방송을

마치고 부대 지휘관과 방송인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 한장을 더 올렸다.

 

 

 

 

 

 

가수 진화와 함께

 

 

 진화

 

  

 조미미

 

 

2015년 1월 21일 새벽!

춘하추동방송 글따라 들어온 네티즌

길따라 가 보았더니

 

"만인이 사랑하는창곡

조미미의 사랑 이별 그리고 그리움의

노래", "뛰어난 감수성과 가창력의 주인공 조미미" 

라는 두편의 이 있었다. 조미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감명깊에 읽고 그 글을 다시 춘하추동방송에

 오신분들이 보실  있도록 링크했다.

 

http://blog.naver.com/esjpark/110190621317

 

http://blog.naver.com/esjpark/110190268879

 

 

 

 

 

 

김세레나와 사회 곽규석

 

 

 

 

 

 

 

양미란 노래 동영상 보기

 

 

 

동영상을 보시기전에 음악을 먼저 끄셔요.

 

 

 

 

 

흑   점

 

 

 

띠 가시네

 

 

 

당신의 뜻이라면

 

 

 

김하정 금산 아가씨

 

 

 

 

 

노래 가사

 

 

흑   점

 

아름다운 그 입술이 눈물에 젖어

흐느끼며 흐느끼며 사랑한다 말해주오

눈물이 넘쳐서 눈물을 마시며,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가슴 말해주오

우리들의 잊지 못할 사랑을 말해주오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을

 

눈물이 넘쳐서 눈물을 마시며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가슴 말해주오

우리들의 잊지 못할 사랑을 말해주오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을

 

 

 

범띠  가시네

 

 

가시내야 가시내야 범띠 가시내야

사내 마음 울려놓고 싶은 범띠 가시내

울고 가는 사내들도 한심하다만

돌아서면 그리워라 범띠 가시내

가시내야 가시내야 범띠 가시내야

멋쟁이로 살고 싶은 범띠 가시내

가시내야 가시내야 범띠 가시내야

사내 마음 울려놓고 싶은 범띠 가시내

변해 가는 세상이라 그건 알지만

속고 나면 외로워라

가시내야 가시내야 범띠 가시내야

사내마음 알고싶은 범띠 가시내

 

 

 

 

"運命은 말하는 대로 결정된다."라는 신송(申松) 삶의 이야기

 

▣ 運命은 말하는 대로 결정된다.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대부분 일찍 타계

했다는 논문이 있다. 가수의 수명, 부, 즐거움과 노래

가사와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신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장수하고 고통, 이별, 죽음, 슬픔, 한탄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 ●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60년대 말,<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가사 내용처럼 자궁과 위장에 암에 걸렸고

 요양을 하며 재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녀는

산장에 집을 짓고 수도승처럼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한다.

 

●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로

일하고 있다. ●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49세에 숨졌다. ● 가수

 양미란은 <흑점>이란 노래를 남기고 골수 암으로 숨졌다.

● 가수 박경얘씨는 향년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부른 노래 <곡예사의 첫사랑>의가사에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를

 부른 국제 가요제 전문 가수 박경희도 그 노래

가사의 내용처럼 향년 53세에 패혈증과 신장질환으로

별세했다. ● 장덕은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부르고

사망했다. ● 남인수는 <눈감아 드리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41세의 한창의 나이에 '눈감

드리오니'의 노랫말처럼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

 

●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그는 젊은 날에 영영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났다.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처럼

떨어져 저 세상에 가버렸다. ● 「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이름 모를 소녀>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요절, 노래 가사처럼 진짜로 가 버렸다.

 

● <이별의 종착역><떠나가 버렸네>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렸던 가수 김현식도

역시 우리 주위를 영영 떠나가 버렸다. ● <우울한 편지>를

 부른 가수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떠났다. ●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불렀던 대형 가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 ● 고려대 법대 출신의 가수 김상희는

 <멀리 있어도>를 부르면서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몇 년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

 

● 가수 조미미는 35세까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바다가 육지라면>이

 히트되면서 재일 교포가 바다를 건너와 결혼이 성사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 오랫동안

노처녀로 지내다가 <만남>을 부른 노사연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세상은 요지경>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신 신애는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노랫말

그대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였던 것이다.

 

●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을

불렸던 가수 송대관은 한동안 주춤했다가

 어느 날 다시 가수로 복귀하여 인기를 점점 얻

더니, 지금은 노랫말대로 진짜 쨍하고 해뜨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가수생활 1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가 지금은 쨍하고 빛을 보게 되었다.

 

지난 시절에 불렸던 노래 가운데 <

팔도강산>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노래 가사에

 "잘살고 못사는것 마음먹기에 달렸더라"는 소절이 있어서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 대로

 우리 국민은 마음먹고 노력한 결과 오늘의 경제부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말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를 했다. 가수 100명을

 대상으로 히트곡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91명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운명을 만들었고 요절한 가수들은 너나없이 죽음과

연관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노래는 말에다 곡조를 실은

 것이어서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밝고 힘찬 노래만 불러라. 그 것이 성공행진곡이다.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 나가는 노래다. 밝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라. 노래대로 운명이 만들어진다. "한국노랫말

연구회에서는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일찍 죽거나 슬픈 운명의

길을 걷는다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마음에 밝은 곡조의 노래를 볼러라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파장이' 이 파장에 맞는 일을 끌어들인다.

 

우리들의 마음의 파장이 '기쁜 곡조'를 연주

한다면 '기쁜 일'이 모여올 것이고, 우리들 마음의

 파장이 '공포의 곡조'를 연주한다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주에는 여러 가지 종류 일의 이미지가 있어서

 '마음파장' 이 표류하고 있다가, 자기 마음의 파장에 따라 우주에

표류하고 있는 갖가지 일의 이미지 중에서 자기에게 파장이

맞는 이미지가 '방송 전파' 에 실려 끌려오는 식으로 그

 모습을 자기의 신변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원망할 일은 없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의 '마음의 파장'이

 어떤 곡조를 연주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것이 어두운 곡조라면 밝은 곡조의 '마음의 파장' 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마음에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마음에

'기쁨의 노래'를 불러라." 말은 그대로 된다.

 

우리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되고, 긍정적인 말이 나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요즘에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국제적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

 우리 나라가 못 산 가장 큰 이유는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부정적인

말이 많았는가? 좌로 부터 양 미란, 권 혜경, 김 세레나,

 

자녀에게 실망했다고 자녀에게 "빌어먹을 놈"

이라고 하면 자녀는 절대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

 "빌어먹을 놈"만 될겄이다. 그리고 흔히 내뱉는 "죽겠다!"는 말도

 문제다. "배고파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만 생겨나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만 하다!"라고 해야 한다. 수필가 이어령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 살게 된 이유가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코를 흘리니까 어른들이 말하기를 "얘야! 흥<興>해라!" 그 말을 많이 해서 우리 나라가

 흥하게 되었다는 겄이다. 유머 속에 메시지가 있는 글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흥하라!"고 하면 흥하게 되고, "망할 놈!" 하면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가수 박재란 여사의 말에 의하면

 "가수는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수가 한 곡을 히트곡으로 만들려면

 그 곡을 대개 오천 번은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부르다 보면

 자기 암시에 빠져 그 인생도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신송(申松: 삶의 이야기)

 

 

 

 관련글 보기

 

 

 

꿈 많던 그때 그 시절 그사람들 복혜숙 오현주 여운계

http://blog.daum.net/jc21th/17782119

 

파푸아 뉴기니, 1984년 양방수님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생생한 체험 기행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045

 

양방수님의 글, 재미 한국인의 삶과 정보화 사회 컴퓨니케이션

http://blog.daum.net/jc21th/17781988

 

산장의 여인과 반야월 이재호 권혜경

http://blog.daum.net/jc21th/17781187

 

KBS 전속가수 권혜경 노래 물새 우는 해변

http://blog.daum.net/jc21th/17781029

 

권혜경 노래 "산장의 여인" 사연을 담아

http://blog.daum.net/jc21th/17781372

 

DBS, 동아방송 가요 백일장과 김세레나

http://blog.daum.net/jc21th/17780380

 

 

 

 

군부대 위문공연이 많았던 그때 그 시절 KBS 위문공연단 사진

 

 

 

방송출연이 많았던 가수


권혜경, 양미란, 김세레나, 조미미, 김하정, 최희준,

남일해, 송춘희. 이금희, 은방울 자매, 토끼소녀, 이씨스터즈.

김씨스터즈, 최양숙, 혜은이, 하춘화, 정훈희, 문주란. 오기택, 봉봉

4중창단. 박가연, 김상국, 진송남, 곽순옥, 남인수, 이난영, 장세정, 심연옥,

박경연, 이미자. 위키리, 김계자, 현미, 한명숙, 비둘기 자매, 백야성, 최숙자, 패티킴,

안다성, 성재희, 정미조, 김부자, 조애희, 아리랑 씨스터즈, 배호, 남진, 김세레나, 나훈아,

최선미, 원방현, 김용만, 유주용, 이금희, 박재란, 윤일로, 남상규, 자니부러더스, 위키리,

불루밸스, 정원, 차중락, 최백호. 펄 시스터즈, 화니 시스터즈,  송민도님등이다 

아래 사진은 비행기로 대구 5공군단과 백령도로 향하는 노래자랑팀과

스무고개 팀입니다. 이 두 프로그램이 인기 절정이었을 때였다. 

 

 

 

 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일선 위문공개 방송때의

사진입니다, 시민위안 공개방송 또는 각종 행사에 축하공연 등

많기도 많던 공개방송에 비행기로, 열차로 버스로 또는 군추럭을 타고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던 연예인들이 바쁘기만 했습니다.   위 1956년 대구

5공군단에 타고갔던 비행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무고개 팀과 노래자랑 팀

 그리고 군 장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때의 노래자랑에서 타이피스트 김정애양이

 KBS전속가수로 발탁되어 훌륭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사진 : 3.김인숙, 4.이경희, 5.송민도,

8.김석야,12.김창구, 13.유해룡, 14.노명석, 17.손석우, 20.김성열, 21.송민영, 22.5공군단장,

23.임택근, 24.송영수, 26.문시형, 27.명국환, 28.장기범, 30.이상만님입니다.

 

 

 

 

1961년 4월 14일  재치문답 공개방송을 위해

백령도로 떠나는 배행기 안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프로듀서 문시형, 송영수, 재치문답 박사 이경희, 윤길숙,

성우 구민, 가수민도 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령도 공개방송을 마치고 군(軍), 막사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  2. 최계환, 3.박종민,  4.   5. 김성열,

6.송영수, 7. 조갑준(조백봉)9.  9.이기우. 12.손석우, 13.김영호. 

14.임택근,  16. 문제안, 19. 문시형, 20. 이경희, 21.송민도, 22.장민호,

 25.박한준 (차츰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포항 해군

부대에서 공개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립니다. 

 

 

 

이복예(케이양 춘하추동방송 동우회 카페 운영자)선생님 글

 

 

 

양방수 선생님 군시절 모습 넘 멋지십니다 ^^
외국영화배우 같아요 ㅎㅎ *^^*가수 양미란씨의 노래 ..

예전에 학창시절에 ~많이 불렀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
멀리 해외에서 춘하추동방송을 위해서 많은사랑을 쏟고계신 ~!!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의 박수을 보내드립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ㅡ^;;아름다운

 작품을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국 대표님께 진심으로 ~
감사드립니다 (=^.^=) ♡♡♡
사랑1~우산~꽃~트리~축하축하~ 

 

 

월남파병시절에 양방수 선생님 모습 정말 짱입니다 ㅎㅎ ^^
제가 초등시절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풍금연주에 ~맞추어서 월남

파병용사들의 노래들을 불렀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ㅎㅎ ^ㅡ^;;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킵시다 ㅋㅋ ~!!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곳 월남땅 ㅎㅎ 역시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군복을 입고 총을메고 ...완전무장하고 ..사나이 답게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
숭고한 거룩한 정신 ..너무나 씩씩하고 늠름한 자랑스러운 모습이십니다 *^^*아름다운

 작품 올려주신 춘하추동방송국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 ♡♡♡
사랑1~우산~꽃~트리~축하

  

 

 

 

 

 

 

 

양미란 흑점.mp3

- 첨부파일

양미란 흑점.mp3  
   
가수 김하정 님도 사생활적으로 고생을많이하셨던것으로압니다 양미란님은 따님도 유명하지요 정여진 양 무수한만화주제가와 동요를많이불렀지요

귀한사진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좀더 자세히 써 주시면 본문에 옮기겠습니다.
유익한정보감사합니다.x
좋은 블로그 잘보고갑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시고 행복하세요.
사진 몇장으로 이 장춘 선배님께서 엮어가시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잊어버린 추억이 되 살아 나는것 같은 착각에
빠질때마다 무수한 연예인들의 사진을 버린것을 후회 합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추억어린 스틸사진들 모두 버리고
보니 후회스럽 습니다. 선배님 언제나 승승 장구 하시길 기원합니다. 미주방송인협회/여의도클럽 USA/ 양 방수 총무국장 배상
고맙습니다.
오늘 보내주신 사진
랄프님과 박상원, 김정수회장님과
함께 한 그 사진을
안창호선생님 가족 글에 올렸습니다.

이 글들 찾는 분들이 많은걸 보니
버리셨다는 사진에 세삼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혜련 여사와 안창호선생님 가족 필선 Philson, 수라 Soorha 랄프 Ralph 필영
http://blog.daum.net/jc21th/17782200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
절박했던 우리시대의 삶이 소리없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가운데 이 장춘 선배님의
열정으로 흘러간 추억을 더듬고 되새기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주시는 그 열정에 찬사를 올립니다.
아무나 할수없는 큰꿈을 남기시는 그 열정에 기도 합니다.
하느님 ! 건강 지켜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길 기도 합니다.

억조창생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밝혀줄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거룩하고
아름답게 남아 천년 세월이 흘러 가더래도 모진 풍상이 휘몰아
치더라도 춘하추동방송 이 장춘 선배님의 방송이 메아리치며
우리들의 역사를 증언하며 변함없이 지키며 소리없이
말하여라 ! 해와 달과 목숨을 같이하며 변함없이
역사를 전하면서 역사를 지키어라 !
미주 방송인협회 총무국장
양 방수(Paul Bang Soo Yang)근찬
69년 퀴논 맹호부대 변방 쏭카우 꾸멍고개에 근무하며 14개월 17일간 작전 임무만 치루다 생환한 사람입니다.
글 중 특히 반가운 건 해병 장교출신 박경원 씨와 화백이기도 한 이길남씨의 이름입니다.
故 박재홍 씨 딸 박신자 씨는 종로 피맛골에서 박달재란 가라오케를 경영하며 그곳엔 반야월 씨의 딸 박희라 씨가 박신자 씨와 친구고 또 부츤끼리 막역지기라 두 여성이 상주합니다.
가요계의 산 역사라해도 무방할 자료들입니다.
잠시 옛날생각에 잠기어봅니다.
감사 합니다.
귀한정보 감사히 모셔갑니다
귀한 사진 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