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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 2014. 6. 20. 15:43

 

 

 

최창봉! 대한민국 최초의 PD,

방송계의 살아있는 전설, TV방송의 개척자,

우리나라 방송 설계사, 방송국 개국전문가, 대한민국

방송의 산 증인, 최초의 TV드라마 연출 프로그램 제작자,

진정한 방송 너널리스트, "한국 텔레비젼의 아버지", 그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최창봉선생님이 (이하 존칭생략)  올 6월 12일로

  9순을  맞이했다.  사단법인 한국방송인회(이사장 최창봉, 회장 장한성)가

창립 8주년을 맞아 최창봉의  지난 방송 생애를 되돌아 보는 기념

 Conference를 열어 최창봉과 함께 했고 그를 잘 아는 방송

학자,   방송인들이 2014년 6월 19일 한양대학교

동문회관에서 함께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방송과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창립 8주년 기념 Conference

 

 

 

 

 

 

이날 Conference에는 최창봉선생님

참여한 가운데 한국방송인회 부회장이기도 한

김성호 교수의 사회로 저명한 방송학자 강현두 교수의

"최창봉의 꿈과 전설",  김우룡교수의 "한국 텔레비젼의 아버지

최창봉" 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가 있었고 최창봉이 경영책임자로

봉직했던 순서에 따라 동아방송 김학천, KBS 이인원,  MBC 최학묵이

 최창봉과의 인연, 가까이서 본 최창봉에 관한  애기를 들려주셨다. 강현두

교수는 최창봉 얘기를 책 한권에 써도 모자라는데  짧은시간에  발표해야

하는 관계로 쓴 글을 몇차례 줄이고 줄여 또 말로하면 시간이 걸릴 듯해서

 읽는다고 했다. 강현두교수와 김우룡교수의 발표 육성의 일부를  올리고

아래 강현두교수 요약된 발표 전문을 올렸다. 김우룡교수의 발표문도

 기회되는 대로 추후에 올릴 예정이다. 최창봉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음향과 아래 동영상 그리고 "춘하추동방송" 에

이미 써올린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동영상 보기

 

 

동영상 보시기 전에 음향을 끄셔요.

 

 

 

 

 

  

 

공사찹립의 주역 최창봉님과 윤주영장관의 공사창립 그때 그 얘기 동영상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님과 방송의 역사 (1)

http://blog.daum.net/jc21th/17780350

 

방송의 역사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님! (2)

http://blog.daum.net/jc21th/17780351

 

방송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 KBS저널

http://blog.daum.net/jc21th/17781166

 

동영상, 방송역사 살아있는전설 최창봉 회장님 출판기념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49

 

연속극 여로, 그시절의 KBS 중앙방송국장 최창봉선생님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791

 

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1)

http://blog.daum.net/jc21th/17780118

 

김옥길과 김동길 문경새재 별장과 휴양림 괴산 조령

http://blog.daum.net/jc21th/17781986

 

김봉구 HLKZ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 최초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2165

 

 

 

강현두 교수 발표 전문

 

 

 

 

 

 

 

최창봉선생님 9순 축하 글을 보내오신 분

 

 

최홍준 선생님 천주교 평신도회장,

박서림 선생님 (방송극 작가)

이경희 선생님(수필가, 재치문답 박사)

김유미 선생님 (재미작가)

강현두 교수님

김헌수 선생님

김  학  선생님

윤군성 선생님

김영우 선생님 (Richard Khim)

김무생 선생님

 

이경희(재치문답 박사) 선생님 글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최창봉선생님의

 9순기념잔치에 참석은 못했지만 이장춘선생님덕에 

잔치 모습을 잘 볼 수 있어서반갑고 감사드립니다. 더욱이

최창봉선생님이 한국최초의 TV방송 HLKZ 개국 프로그램인

'나는 누구일까요?'의 제가 박사(패널)로 출연하였기

때문에 그 때 생각이 나서 감개무량합니다.

 

그 후에도 문화에 관계된 일을 할 때

최창봉선생님을 모시고 한 일이 있을 뿐 아니라,

MBC사장님으로 계실 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백남준

퍼포먼스를 제가 주동이 되어 개최할 때(1992년) MBC

방송국이 스폰서가 되어주셨습니다. 백남준이 타계 후,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일명 백기사)의 창립회원이

 되어주셔서 백기사 사업에 많은 힘이 되어주셨습

니다.  최창봉선생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경희 드림

 

 

 

김유미 여사님 (방송작가 고 김영수선생님 둘째 딸) 글

 

 

선생님, 이런 귀한 재료를 저한테까지

 보내주심을 너무,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창봉 선생님은, 아버님이 "신입사원 미스터" 드라마를 연출해

달라고, 그 당시 방송 드라마 연출을 해보지 않은 젊은이에게 우격다짐으로

 강요하셨던 분이지요. 이 말은 최창봉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전화도 없던 시절, 아버님은 최창봉 선생님이 사시는 댁 근처에 사람을 보내, 만나자고

 하셨다고 하는군요. "못합니다. 저는 대학 연극 연출은 해보았지만 방송 드라마 연출은

자신 없습니다," 라고 말씀 하시는 최창봉 선생님께  아버님은 내가 매일같이 방송국에

나가서 도을 수 있으면 도우겠다 하시면서, 처음부터 대가가 어디 있는가, 노력하면

된다고, 내가 자네 대학 연극 연출 하는것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는군요. 그만큼 아버님은 최창봉 선생님의 툭줄한

 실력을 높이 평가하셨던 거지요.이건 다 제가  최창봉

선생님한테 들은 말입니다.  

 

아버지, 김영수는 목발을 짚은 채,

그래도 그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매일 연습하는

 장소에 나타나셔서 뒷자리에서 브라보를 연방 외치셨다고..

 그 때, "아......... 대한민국에 이처럼 순수한 문인도 있구나."  감격

하셨다고,.  "작가 김영수" 소설을 쓸 때, 최창봉 선생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한 대한민국 작가 중에 한 분이었다고".........

최창봉 문화방송 사장님은 저의 "억새바람" 책을 MBC  특집 드라마화 해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제가 연락처를 몰라 따로 연락 드릴 수는 없지만, "선생님,

요즈음 100세 시대입니다. 100세 까지 건강하세요. 제가 꼭, 꼭 찾아가

뵙고 싶습니다. " 이 말을 이선생님께서 꼭, 꼭  전해주시기

간곡히 원합니다. 감사합니다.이 귀한 소식, 저한테

까지 보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김유미 드림

 

 

 

김영우 선생님 (미국)

 

우리나라 PD 의 거장

최창봉 선생의 90세 생신을

축하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기 기원합니다.

 

LA 에서 김영우 드림

 

 

김무생선생님 글

 

 

* 56년 우리 나라의 최초의 TV  KORCAD 개국, 

  61년 MBC 개국준비와 KBS-TV 개국, 63년 DBS 개국, 

73년 KBS 공사화 주역 등 방송의 설계사이시면서 한국 TV-PD

 1호로서 " PD 시스템"을 확립하신 분이 최창봉   대선배님이십니다.

저는 이 분의 방송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 중- 방송일을 하실 때 가장

 멋지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제작 취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세세한 내용에 간섭하시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방송은 예술입니다.

 감히 저는 모름지기 방송은 PD, 아나운서 (방송 진행자),기자, 엔지니어,

카메라멘, 구성 작가 등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구성원들은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 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물론 방송국에 입사한 사람들이 다

 예술적 감각을 가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방송 제작에 투입됐을 때는 예술적 감각을 훈련하는데

눈을 떠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위에

적은 최창봉 선배님의 <제작 취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세세한

내용에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창봉

선배님은 일단 함께 일 하면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일임하셨다고 합니다.이 분은 TV는

제작자들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자율성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그러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점이 최창봉 대선배님의 방송을

 바라보시는 최고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79년 9월 3일 "금관 문화 훈장"을 받기도 하신 최창봉

 대선배님은 71년 8월 1일 별정직 1급인 KBS (국영방송시절)

중앙방송국장으로 부임하셨습니다. 당시 남산 KBS 청사에서 국회

 문공위에 대한 KBS의 업무 보고가 있었는데 보고받기 위해 KBS에

모인 국회의원들과 주무장관 앞에서KBS의 체제개혁의 불가피성을

 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소신을 얘기한 것이 모태가

 돼서 KBS가 공사로 탈바꿈하는데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 유명한 64년 DBS의 "앵무새"

(당시 "앵무새" 프로그램은 저녁 9시 55분부터

 10시까지 5분간 방송되던 라디오 칼럼으로 군사 정권에

 짓눌린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았던

프로그램)사건의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당시 방송 부장이셨던

최창봉님과 뉴스실장, 편성과장 등이 수사 당국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그래서 남산 기슭 치안국에서 며칠동안 심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 기록하고 싶은 것 하나는

72년 9월 제 1회 KBS배 쟁탈 전국 장사 씨름

대회를 창설하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훗날 83년 4월에 민속 씨름이

창설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지요. 이분에

대해 쓸 얘기는 이것 말고도 퍽 많이 있습니다만 다 기록

할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이 분의 "방송관이랄까 방송은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거 한가지를 덧붙이면서 얘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나는 일이 맡겨질 때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방송이라는 것은 출발은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할지라도 결국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집단적인

 창조활동이다."9순을 맞이하신 방송의   전설 최창봉 대선배님

늘 건강하게 지내시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방송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화    보

 

 

 

 

 

동아방송국에서 출발한 성우 박정자님

 

 

 

장한성 한국방송인회 회장

 

 

 

오랜세월 최창봉선생님과 함께 하신 분들

왼쪽부터 김영효, 한분건너 이윤하, 최덕수 (HLKZ PD)

최창봉, 강현두, 김우룡, 최계환, 장한성, 이인원님

 

 

 

KBS 제 1기 성우들 김소원, 최창봉, 고은정, 오승룡 (1954년 선발)

 

 

 

 최창봉 선생님과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부회장

 

 

 

최창봉선생님과 함께 한 여성 성우분들

왼쪽부터 박정자, 최창봉선생님 둘째따님, 김수희,

김소원 (최창봉선생님 뒷분) 김세원, 김정미

 

 

 

 KBS 재직 하겼던 분들 왼쪽부터

 이병대, 김수웅, 심갑섭, 한중광, 장한성,

최창봉, 남승자, 김성배, 정창기, (정창기님 뒤

이흥주, 얼굴이 안보여 미안합니다), 이규항,

김승한, 이현화, 이세진, 이계진

 

 

 

꽃다발을 증정하고  왼쪽부터 성우 박웅, 김수희, 장미자, 박정자, 김정미  

 

 

 

최창봉선생님과 이규항 아나운서가

 잔을 같이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방송인회 안평선,

김성호 두 부회장께서 지켜보고 있는 장면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부회장, 동아방송시절의

성우들 왼쪽부터 안평선, 김정미, 김수희, 장미자, 박정자,

 안평선님은오랜세월 드라마, 다큐멘터리 그로그램을 제작하며

 성우분들과 늘 가까운 거리에서 활동했다.  

 

 

 

주제말표 왼쪽 강현두, 김성호(사회). 김우룡

 

 

 

강현두 교수

 

 

 

김우룡 교수

 

 

 

김성호 교수

 

 

 

KBS에 재직했던 분들이 앉은 테이블

 

 

 

성우 김소원 (왼쪽)과 김세원 성함을 혼동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KBS 1기 성우 (1954년) 김소원님은 1958년부터 1960년까지 KBS 아나운서를

 지냈고 우리나라 조형미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최만린 선생님과 부부연을 맺어

 삶을 이어 오셨고, 김세원님은 동아방송 1기 성우로, 1961년 KBS TV 최초의

 PD출신 강현두교수님과 부부연을 맺었다. 강현두 교수는 이날

 "최창봉의 꿈과 전설" 주제발표를 했다.

  

 

 

 

 김학천

 

 

 

이인원

 

 

 

최항묵

 

 

 

 

 

 

 

MBC 임원을 지낸 민용기님.

필자와는 꼭 반세기만의 만남이다. 1964년

6월 한달간에 걸쳐 30 여명이 한 방에서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 그때 함께 한이래 해어져 소식은

종종 들었어도 만남은 처음이다. 반세기만의

 만남, 긴 세월이 흘렀다.

 

 

  

최창봉과 방송.wma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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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년 우리 나라의 최초의 TV KORCAD 개국, 61년 MBC 개국준비와 KBS-TV 개국,
63년 DBS 개국, 73년 KBS 공사화 주역 등
방송의 설계사이시면서 한국 TV-PD 1호로서 " PD 시스템"을 확립하신 분이 최창봉 대선배님이십니다.

저는 이 분의 방송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 중-- 방송 일을 하실 때 가장 멋지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제작 취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세세한 내용에 간섭하시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방송은 분명 예술입니다.
감히 저는 모름지기 방송은 PD, 아나운서(방송 진행자),기자, 엔지니어, 카메라멘, 구성 작가 등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구성원들은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 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물론 방송국에 입사한 사람들이 다 예술적 감각을 가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방송 제작에 투입됐을 때는 예술적 감각을 훈련하는데 눈을 떠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위에 적은 최창봉 선배님의 말씀인
<제작 취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세세한 내용에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창봉 선배님은 일단 함께 일 하면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일임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은 TV는 제작자들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자율성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그러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점이 최창봉 대선배님의 방송을 바라보시는 최고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79년 9월 3일 "금관 문화 훈장"을 받기도 하신 최창봉 대선배님은
71년 8월 1일 별정직 1급인 KBS (국영방송시절)중앙방송국장으로 부임하셨습니다.
당시 남산 KBS 청사에서 국회 문공위에 대한 KBS의 업무 보고가 있었는데
보고받기 위해 KBS에 모인 국회의원들과 주무장관 앞에서
KBS의 체제개혁의 불가피성을 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소신을 얘기한 것이
모태가 돼서 KBS가 공사로 탈바꿈하는데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 유명한 64년 DBS의 "앵무새"(당시 "앵무새" 프로그램은 저녁 9시 55분부터 10시까지 5분간 방송되던 라디오 칼럼으로
군사 정권에 짓눌린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았던 프로그램)사건의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방송 부장이셨던 최창봉님과 뉴스실장님, 편성과장님 등이 수사 당국에 연행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남산 기슭 치안국에서 며칠 동안 심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 기록하고 싶은 것 하나는 72년 9월 제 1회 KBS배 쟁탈 전국 장사 씨름 대회를 창설하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훗날 83년 4월에 민속 씨름이 창설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지요.

이분에 대해 쓸 얘기는 이것 말고도 퍽 많이 있습니다만 다 기록할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이 분의 "방송관이랄까 방송은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거 한가지를 덧붙이면서 얘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 "나는 일이 맡겨질 때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방송이라는 것은 출발은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할지라도
결국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집단적인 창조활동이다.">
9순을 맞이하신 방송의 전설 최창봉 대선배님 늘 건강하게 지내시고
행복하시기를 방송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