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5. 3. 3. 16:37

 

 

 

위진록, 최창봉선생님! 방송계에서는

물론 이나라 국민이면 잘 아는 원로중의 원로 방송인

이다. 이 분들의 주고 받은 편지는 비록 사신이라 할지라도  

방송역사의 일부분이다. 오늘의 편지는 2014년 1월 5일 최창봉선생님이

신년새해 인사를 겸해서 미국에 사시는 위진록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다. HLKZ

 비화가 있고  솔직한 심정을 술회한 내용이어서 필자는 관심을 가지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9P에 달하는 친필 편지로 정성들여 쓴 편지인데 최창봉선생님은

끝에 치료할 수 없는 신병으로 글이 억망이 되었다면서 양해를 바란다.고  했다.

내용은 방송사적으로도 의미를 담고 있고, 시대가 낳은 보기드문 방송인의

친필 편지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마음으로 편지의 주요부문 4P를 모두

스켄처리를 해서 올렸다. 한자로 되어 있어서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해서 한글로도 올렸다.

 

최창봉선생님의 방송생활은 1954년

군방송실 초기 방송실장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때의 내용은 조금 생소한 부분도 있어서 1954년의

 KBS 성우 1기 윤미림선생님이 KBS성우가 되기전 군방송실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기셨기에 이 글도

 함께 올렸다.  私信을 허락없이 춘하추동방송에

 올린것을 양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스켄한 편지 내용의 뒷부분은 밑에 올렸습니다.

 

 

HLKZ 최초 TV방송국 그때 그 얘기

위진록 선생님께 보낸 최창봉선생님 편지 

 

 

위 선생님께! 내가 종로 HLKZ

텔레비전에 근무한때가 1956년 3월부터

1959년 2월까지 3년이었습니다. Program director로

일반 Program 편성제작은 내 책임이었고 보도와 ANN실은

서명석 형이 맡아하고 있었지요. 최창숙, 진영희 씨 등 미녀 아나

네 명은 서형이 스카우트해 HLKZ TV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자 ANN들로 들 열심히 일을 했었지요. 미모에 능력을 갖춘 모두

 우수한 모두 우수한 여 ANN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최창숙

ANN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어요.

 (위 선생 부인이라서가 아니라).

 

 

최창숙 아나운서

 

 

어느 날 낮, 방 방송준비 때문에

스튜디오 프루어에서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는데 최창숙 ANN가 그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 불쑥 무슨 봉투 같은 것을 나에게 쥐어 주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 이게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그냥 웃으며 내 앞을 떠났었어요.

봉투 안에는 「구두표」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구두 뒤축이 떨어진

것을 그대로 신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다 못해 「구두표」선물을 내게

 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얼마나 놀라고 (미녀 ANN이기 때문에 평소 대화도

안 하던 때라)쑥스럽던지 내가 아마도 넉넉지 못했던 터이고 아침에 출근하면

스텝 들 데리고 시간에 쫓겨 쉴세없이 프루어를 뛰어 다니느라고 새 구두를

나가 살 시간이 없던 탓이었을 텐데 어쨌든 단편소설 소재가 될 만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마웠던 최창숙 ANN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평생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무리 Staff간에도 남녀가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지 못했던 때라 솔직히 나는

가슴이 뛰기도 하고 새 구두를 사고 난후 한동안 일 능률이

올랐던 기억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LA에

갔을 때 위 선생 댁에서 부인의 정성어린 저녁대접 받았던 일 그 후

얼마 안 있다가 부인이 발병된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던 일. 지난번

「고향이 어디십니까?」는 받아 온 날부터 2-3일에 걸쳐 다 읽었는데

 부인 관계없는 얘기 읽을 때도 눈물이 많이 나더니 부인 얘기가

나올 때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와 눈물 닦느라고

바빴습니다.이번 책은 그동안 쓰신

책들의 종합 편

 

 

(여기서 편지의 4-8P까지는 생략하고 9P로 이어집니다.)

 

 

나는 평안도 태생이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는 모태신앙 이지만 위 선생은 어렸을 때 앓는

위 선생을 어머님이 신부에게 데리고 갔다는 얘기, 지난번

위 선생이 나가사키 순교자들 답사하고 오던 일, 생각하니

 위 선생은 천주님 영세 받으신 대 베드로에 틀림없습

니다. 위 선생님 주님의 축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4년)1월 5일 서울에서 최창봉 배

 

*. 치료불가 신병 때문에 새해 인사도

늘 없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편지도 글이

억망이 되었습니다. 양해 해 주십시오.

 

 

 

 

KBS 성우 1기 윤미림 선생님 글

 

 

윤마람선생님은 1954년 8월 문관신분으로

군방송실에 근무하면서 방송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최창봉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군방송시절의

에피소드 등 님이 쓰아픔의 시간을 통해서 발표한 글이

 있습니다.   다음은 그 글의 일부를 올렸습니다.

윤미림선생님 글은 아래 연결합니다.

 

 

아픔의 시간들 - (6)

 

전란으로 서울이 잿더미로 변해

있던 1950년대 초반, 태평로에 인접한, 지금의

코리아나호텔이 조선일보였고.거기서 멀지 않은 정동

2번지의 KBS 건물은 벽돌 3층, 그 옆에 딸린 별관은 2층

 목조 건물별관 아래층 37평을 국방부 정훈부 군방송실이 빌려

쓰고, 하루에 45분을 KBS 전파를 빌려군장병 상대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사무실은 둘로 나뉘어져, 한 평도 안 되는

 스튜디오가 있는 안 쪽 사무실은 방송책임자들인 장교

들과 고참 문관들이 사용, 나는 그 사무실

입구 옆에 자리가 주어졌다.

 

건물 출입구 쪽 사무실에는

남녀 아나운서들이 상시 녹음에 대기,

남자 문관들은 담배를 입에 물고 방송원고

 집필에 몰두,사무실은 온통 담배연기로 자욱하고...

글 쓰려면 담배는 필수구나..., 펜을 놀리고 있는 문관들이

 멋있어 보였다. 남자문관들은 월급은 없지만. 원고 쓰면 원고료는

 나왔다. 나는 나이는 어려도, 군방송실에 정식 문관시험에 합격

하여 들어갔건만, 사무능력 없다고,   발령도 안 나오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속에 자존심 하나는

살아서 자신의 신분만은 잊지 않았다,

  

나, 국방부 문관이다~~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 문관 하는 일이라곤 매일

점심에 가락국수 식권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외부

연기자들에게 도장 받고 방송출연료 내주는 게 맡은 일의

전부 용돈 한 푼 없고, 월급은 언제 나오려는지... 1955년 1월

하순에는 음력설이 들어 있었다. 홍은원(洪恩遠 : 후에 여류 영화

감독) 아나운서도 월급 없는 무료봉사. 홍 아나운서는 30대 초반

아름다운 여성. 구정을 이틀 앞둔 주말인 토요일 밤, 토요일

밤에도 직원들은 퇴근 안하고 일하고 있었다.

 

군방송실 실무책임자 최창봉(崔彰鳳)

중위님이 홍은원 아나운서에게는 2천환을,

나에게는 돈은 안 주고,봉투 대신 다른 선물을 많이

주었다. "미스 윤! 이거 갖다가 다른 사람들 주라우!" 필터

 없는 군인용 막권련이었다. 본청에서 나온 담배가 남은 모양

이었다. 이 담배를 다른 사람들한테 주라는 말에 남자

직원들은 재미있다고 웃으며 내 표정을 살폈다.

 

..................중략...............

 

최창봉(崔彰鳳)님은 평안북도

의주가 고향, 고대영문과 출신, 남북분단

으로 이산가족 되고, 6.25 때 치열한 가평 전투에서

살아남은 장교학도병, 제대 후, 방송계 투신, 한국방송 PD

 제1호, 문화방송, KBS-TV, 동아방송의 기틀을 놓은 방송계 거목.

친구를 유난히 좋아하며 정직과 청렴 결백이 강점인 분.본업은 연극연출.

1964년 동아방송 총책임자였을때 한일수교 반대하는 학생데모 보도했다는

 죄로 5.16 정부가  성실한 방송사 간부들에게 내란선동죄를 뒤집어씌워

법정에 세우고 그랬어요. 앵무새사건이라고 하지요. 현재 월간

<춤>에 <나와 한국방송>을 연재 중이십니다. (계속)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위진록 아나운서 최창숙의 사랑과 삶, 가족사 실명 실화로 엮은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2383 

 

한국방송과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창립 8주년 기념 Conference

http://blog.daum.net/jc21th/17782184

 

성우 윤미림

http://blog.daum.net/jc21th/17782329

   

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1)
http://blog.daum.net/jc21th/17780118

 

최초의 TV방송국 HLKZ 개국 그때 그 얘기 (2)

 

사진으로 본 최초의 TV방송국 HLKZ 그때 그빙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421

 

동영상, 최초의 TV방송 HLKZ 1956년그때 그 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121

 

 

 

최창봉선생님 편지내용 원문

 

 

 

 

 

 

중간 4P부터 8P까지는 생략하고 마지막 9P를 올렸습니다.

 

 

 

  

 

위는 1993년 4월 28일서울 신문회관에서

"잃어버긴 노래" 출판기념회로  왼쪽 두번째부터

 고은정, 이은주(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최창봉, 이혜경, 김소원,

 박용기, 이경재님이 함께 한 사진이다. 아래는 1969년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고 박정희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는  최창봉 동아방송국장.

뒷줄에 홍경모 문화공보부차관, 유광열선생이  보인다. 홍경모차관과는 1973년

한국방송공사 창립 초대사장과 부사장으로만났다. 또 최창봉 선생은  

1987년 KBS동우회, 1989년 KBS사우회 창설 회장으로 

재직중 MBC사장을 역임하셨다.

 

 

 

 

 

 원로방송인들과 함께 한 기념촬영

앞줄 왼쪽부터 강영숙, 최계환, 최창봉, 전영우,

최은희, 위진록, 황우겸, 한영섭, 박종세, 김동건, 두번째

 왼쪽부터  민병연, 문복순, 윤영중, 채영신, 박민정, 정항구,

이혜옥, 황인우, 김규홍, 맨 뒷줄 이계진,  한분건너

계원준, 강정도, 박경환, 이상만, 정도영님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샌디에고 새소리 금잔디.wma

 

- 첨부파일

샌디에고 새소리 금잔디.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