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5. 11. 10. 20:15

 

 

 

황우겸 아나운서 야구인생 70년!

그 70년 인생역정에 최초라는 여러개의

형용사가 붙는다.  해방된 조국에서 1946년

 조선일보사가 최초로 창설한 청룡기 야구대회!

대회에 최초로  출전한 야구선수다. 6년제 인천 동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1950년 졸업 할 때까지 4번에

 걸쳐 대회에 출전했고, 1947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한 황금사자기에도 출전했다.

 

 

 

 

 

황우겸 야구 70년 청룡기 첫 선수 1946년, 70회 대회 개막전 시구 2015년 고척 야구돔구장

 

 

6.25로 선수생활을 더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1951년 부산피난지에서 임택근등과

 함께 아나운서가 되었. 야구선수 출신으로는 최초의

아나운서였다. 그는 야구중계방송에 기울였다. 야구선수가

 최초의 중계방송을 한샘이다.  청룡기 첫대회 출전선수 황우겸은 그로

부터 70년이 지나 87세가 된 2015년 11월 9일 대한민국 최초로 마련되어

 10월부터 문을 연 18,000석의 고척동 서울 돔 야구장에서 열린

70회 청룡기 개막전에서 투수로 나서 시구를 날렸다.

 

 

 

 

 

1946년 청룡기 첫 대회 24개팀

 528명이 승부를 겨뤘던 그 대회의 생존하신 분은

 세분밖에 없으시다. 고 했다. 황우겸, 황기대, 이용일

 그때의 그 선수들이 나와 그때의 투수와 타자, 포수로

청룡기 70주 개막전의 시구를 날리고 받았다.

 

 

 

 

위 사진 가운데 분이 경기도 대표선수

인천 동산고등학교 황우겸 아나운서이고 왼쪽은 

경상남도 대표 경남고등학교 황기대선수,   오른쪽은 

서울대표 경동고등학교 이용일 선수다. 이날 황우겸선수는

 공을 턴지는 투수였고 아래사진 타석에 선 타자 분이

 황기대, 포수 분 이용일 선수다. 

 

 

 

 

대한민국 땅에 이토록 감동적인

장면이 또 어디에 얼마나 있겠는가? 70년의

 시차!    10대의 중학생 시절로부터 90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어 모든 것이 미흠하고 열악하기만 했던 성동

운동장(동대문 운동장) 그 시절을 회상하며 오늘날의 가장

현대적인 시설,   돔 구장에서 공을 날리고 받는  그 감동!  

그 감동을 함께하며 그 장면을 담기위해 한국아나운서클럽과

 춘하추동방송은 현장을 찾았다. 아래 사진에 함께 하신분은

 황우겸 아나운서와 부인 권경애 여사,  한국아나운서

클럽 국희 회장, 김규홍부회장, 이헤옥, 황량,

황인우 회보 편집진이 함께했다.

 

 

 

 

들리는 음향은 현장에서 딴 것이다.

현장음이 울려 듣기가 불편하고 또 황우겸

아나운서의 감기 걸린 목소리리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장면을 담고 그 역사적인 소리를 올린것디.

세한 얘기는 이미 올린 글을 연결하고 또 11월 7일

조선일보에 황우겸 아나운서의 보도된 용이 있어서

 이 글을 인용함과 동시에 사진을 보면서

얘기를 던 진행한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황우겸, KBS TV 첫 아나운서 실장 (야구중계방송, 스타탄생)

http://blog.daum.net/jc21th/17780986

 

임택근 황우겸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512

 

스타탄생 1950년대 인기 공개방송 그때 그 출연자 그 목소리, 황우겸, 복혜숙, 구민, 이향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157

 

최초의 방송중립화 선언 (1960년)과 황우겸 원로아나운서의 비원

 http://blog.daum.net/jc21th/17782556

1951년 동기 아나운서 황우겸, 강찬선 임택근,

http://blog.daum.net/jc21th/17780813

 

 

 화     보

 

 

 

 

 

"제 1회 황금사지기천선수 황우겸

아나운서가,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다." 는 장내

 아나운서 맨트가 흘러나오자 관중석은 환호했고

 황우겸선수는 모자를  흔들며 답례했다.

 

 

 

 

 

제1회 청룡기 출전 선수를 중심으로

청룡기 시행 주최측 조선일보사 홍준호 대표와

관련단체 대표 임원들이 함께 한 모습이다.

 

 

 

 

 

 

 

 

 

 

 

 

홍준호 조선일보사 대표

개회사(위)선수선서(아래)

 

 

 

 

 

 

경기 개막식 전 귀빈실에 들린 홍준호 조선일보 대표와

 

 

   

 

 

 

 

황우겸 아나운서와 부인 권경애 여사

 홍준호 조선일보 대표,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회장(위)

홍준호 대표와 김규홍 아나운서 클럽 부회장 (아래)

 

 

 

 

왕년에 이름있던 선수들의 모습이다.

 

 

 

 

시구행사

 

 

 

 

 

 

어찌! 잘 된거야? 다리가 잘 안 올라가는데..............! 

 

 

 

 

훌륭하셨습니다. 90을 바라보시는데

다리까지 위로 솟으시면 후배들이  질투 할

수도 있습니다.....그래,  잘 된거군... 아쉽기는해도...

앞으로 47년은 더 사실 수 있겠습니다. 그때 제가 장례

워원장 하겠습니다. 그래! 김규홍부회장이 47년을 더

 산다고?  잘 못하면 내가 김부회장 장례위원장

 하게 생겼네!....하하!ㅎㅎㅎㅎㅎ...

 

 

 

 

 

 

동산고등학교 후배들이 70년 선배를 찾아

꽃다발과 기념 야구공을 전해 드렸다.

 

 

 

 

 

운동장에서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아나운서 클럽 회원들과 동산고등학교후배가 함께

 

 

 

  

청룡기 70년, 내 야구 人生도 70년

조선일보 2015년 11월 7일

 

청룡기 첫 대회 출전한 황우겸씨

개성에서 예선, 동대문서 본선… 글러브 뚫려

눈 맞고 기절한 적도첫 선수 출신 아나운서로도 유명

 

"고교 야구가 프로 발전 원동력"

 

 

"미군이 버린 배트랑 글러브로 연습하고,

옥양목(치마·저고리에 주로 쓰던 무명천)으로

 유니폼을 만들어서 뛰었지. 슬라이딩을 세게 하면 유니폼이

찢어져서 혼났지만, 그래도 야구에 대한 정열이 뜨거웠어."

 

 

강산이 일곱 번 변하는 70년.

 올해로 70회를 맞는 청룡기 전국고교

야구선수권대회의 70년 전 모습은 어땠을까.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열린 1회 대회 때 인천 동산중학교

(현 동산고) 야구부 멤버로 참가한 황우겸(86)씨는 "장비도

경기장도 형편없었지만 야구에 청춘을 불태우는 모습은 지금과

 다를 것 없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 예선을 개성에 있는 송도고등학교와

 치렀다. 그 당시 개성은 경기도였다. 고등학교 없이 중학교가 6년제

였던 시절, 3학년(현재 중3)이던 그는 1회부터 4회(1949년)

대회까지 동산중 3루수로 출전했다.

 

 

  70년 전 청룡기 첫 대회에 동산중 야구부로 출전해 4년 연속 뛰었던 황우겸씨.

 

 70년 전 청룡기 첫 대회에 동산중 야구부로

 출전해 4년 연속 뛰었던 황우겸씨. /남강호 기자

 

 

 

황씨는 "야구가 정말 재밌었다.

 그게 전부다"라고 했다. 원래 유도부였던 그는

야구부 창설 때 '어깨가 튼튼해 보인다'는 감독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고교에서 야구하는 팀이 드물어 연습경기는

주로 미군과 했다. 미군은 경기가 끝나면 쌓아두었던 낡은 배트와 글러브,

공을 주기도 했다. 그는 "가끔 우리가 시합에서 이기면 장비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일부러 지기도 했다"면서 "낡은 글러브가 끊어져 날아오는 공에 눈을

맞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야구부는 등·하교 때도 유니폼을 입었다.

어깨에 짊어진 배트에 책가방을 걸고 다니면 사람들이

 "야구부다, 야구부"라고 속삭였다.

 

 

본선 대회가 열렸던 동대문야구장

관중석은 좌석도 없는 황무지 언덕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관중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천, 심지어는 부산에서 종일 기차 타고 온 가족과 친구,

동문들이 응원했다. 그는 "3루 수비를 볼 때면 관중 속에서 물병과

모래주머니가 날아왔다"며 "삼진 하나, 도루 하나에도 온 국민이

울고 웃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이 미흡했던

그 시절에 고교 야구에 관심과 사랑이 쏟아진 건

황무지에서 꽃이 핀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고도 했다.

 

   

  좌석도 없이 간이 울타리 하나 치고

언덕에 앉아서 보았던 그 무렵의 관중석

좌석도 없이 간이 울타리 하나 치고 언덕에 앉아서

 보았던 그 무렵의 관중석. /조선일보 DB

 

 

그는 1951년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해 국내 최초의 '선수 출신 야구 아나운서'로

 각광받았다. 그가 야구를 중계하던 시절, 동산고 후배들은

1955~1957년 청룡기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그러자 "동산중 출신이

편파 중계를 해서 동산고가 계속 우승한다"는 항의가 방송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유일한 야구 전문 아나운서였던 그의 목소리에 국민은 귀를 기울였다.

그는 "화장실에 갈 수가 없어 중 계석에서 소변을 봤다"며 "하루는 '출산 중인

 아내의 생명이 위험하니 태아와 산모 중에 선택하라'는 쪽지가 중계석으로

 왔지만, 차마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첫 아이를 그렇게

떠나보냈다고 한다.    "고교 야구가 발전해야 프로야구도 

발전합니다." 황우겸씨는 "어린 선수들이 꿈을 키우며

 뛰는 고교선수권대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왕년의 스타 백인천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고교야구 에서 청룡기 대회와 황금사자기 대회는

너무나 유명했죠. 70년 전 첮 대회출전자 황우겸 선수가

야구중게 아나운서 1번 타자가 되였군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시절 고교 야구의 애환이 너무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70회를 맞는 노인 나이 대회에 한국아나운서클럽과 춘하추동방송이 함께

자리를 하셨다니, 더욱 의미가 깊고 고무적이라 생각이 듭니다. 70년 전 앳띤

학생은 지금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장을 하고 있구만요. 한국아나운서클럽

임국희 회장님!도 나이먹은 감이 잡히네요. 저의 모교(광주상고)도 광주일고와

 같이 호남의 야구 명문으로 자리잡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품은 관계로 ,

학창 시절과 직장 생활 할 때, 고교 야구 경기장을 쉼없이 응원하려 다녔죠.
후배들 중에  지금도 이종범, 이순철 선수가  모교 야구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언뜻 유카리나(유경환)여사님!의 모습이 보인 것

같은데 같이 동행 하셨나 봅니다.소식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하는 춘하추동방송 불로그!와 이장춘 사장님!께

오늘도 힘차게 화이팅! 으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0^ㅜ^0^ㅜ ^0^

 

 

유경환 (유카리나)

 

 

어느 영화 제목같긴한데
'노병은 살아있다.'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황우겸 아나운서님과

여기 사진으로 뵙는 건안하신

여러 아나운서님들

  입니다.

 

 

박서림(원로방송작가) 선생님

 

 

이장춘 선생  반가운 기록이군요.

 황우겸 ANN의 야구중계 숫하게 들었죠.   

내가  경동 나왔거든요 지금도 야구라면

미칩니다.   백인천도 나왔네요  모처럼

추억을 더듬게 되는군요.  고마워요.

 우리 <게시판> 올렸습니다 

  건강하세요.

 

 박서림     

 

 

이정부(강아지 아범)아나운서님

 

 

70년전 한국 스포츠(특히 야구)의 주역

세분이 아직도 힘이 넘치시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로운 돔구장에서   역사적 시구를 하고 받는  장면은

눈물 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저도 사정으로 뒤늦게 접했습니다만,

현장에 이 노병들의 등장 없이...또, 역사적 재조명 없이 지나갔더라면

한국 체육사와 방송사, 야구경기 주관하시는 분들에게 큰 과오의 행사가

 될 수도 있었던 황우겸 대 선배님의 시구...야구선수 출신 첫 야구아나운서!

이나라의 많은 체육인, 언론인, 특히 저같이 스포츠 캐스터로 살아온 사람에겐

외람되게도 시청하지 못하고 지나갔더라면 한이되었을 장면들입니다. 청사없는

방송 춘하추동의 연봉없는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은 또한번 이 험한 세상에

귀한 소식을 널리 전하고, 후세에까지 전하시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방송 후배로서 황우겸, 이장춘 두선배님의 늠름하신 활동을

 보며 외경의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아울러 귀한

말씀 남기신 팔방미남, 유카리나 두 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015  겨울의 문턱에서    

               아나운서  이정부 드림

 

 

박민정 (클럽 사무총장) 아나운서님

 

 

참 부지런하세요~어제일을 벌써

 이렇게 따끈따끈하게 올리셨네요~감사한

 마음 야구장만큼 ~ㅎㅎ~고맙습니다 ~

감기 조심하세요~^^

 

 

이혜옥 아나운서님

 

 

이이사님! 정 말 수고 많으셨어요

 이 이사님은  아나운서클럽의 홍보 그자체

입니다. 아나운서들의 존재를 더빛나게 해주시는 

 이이사님!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저희

랑 늘같이하세요 감사합니다

 

 

 

 

운동장에 가기전 아나운서클럽회원들과 춘하추동방송이 함께 만났다.

여기 모인 버중 채영신 아나운서는 사정이 있어 운동장에는 참석못했다.

 

 

 

 

 

 

황우겸 아나운서 야구.wma

 

- 첨부파일

??? ???? ??.wma  
   
비밀댓글입니다
고교야구 에서 청룡기 대회와 황금사자기 대회는 너무나 유명했죠.
70년 전 첮 대회출전자 황우겸 선수가 또
야구중게 아나운서 1번 타자가 되였군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시절
고교 야구의 애환이 너무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70회를 맞는 노인 나이 대회에 한국아나운서클럽과
춘하추동방송이 함께 자리를 하셨다니,
더욱 의미가 깊고 고무적이라 생각이 듭니다.
70년 전 앳띤 학생은 지금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장을 하고 있구만요.
아나운서클럽 임국희 회장님!도 나이먹은 감이 잡히네요.
저의 모교(광주상고)도 광주일고와 같이
호남의 야구 명문으로 자리잡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품은 관계로 , 학창 시절과 직장 생활 할 때,
고교 야구 경기장을 쉼없이 응원하려 다녔죠.
후배들 중에 지금도 이종범, 이순철 선수가
모교 야구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언뜻 유카리나(유경환)여사님!의 모습이 보인 것 같은데
같이 동행 하셨나 봅니다.소식 감사합니다.
저와 늘 함께 하는 춘하추동방송 불로그!와
이장춘 사장님!께오늘도 힘차게 화이팅! 으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0^ㅜ^0^ㅜ ^0^
팔방미남님. 저 아닐거여요. ^ ^
어느 영화 제목같긴한데
'노병은 살아있다'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황우겸 아나운서님과 여기 사진으로 뵙는 건안하신 여러 아나운서님들
(파이팅) (!) (!) (!) 입니다.
유여사님은 보시는 시야가 달르셔요.
70년전 한국 스포츠(특히 야구)의 주역 세분이 아직도 힘이 넘치시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로운 돔구장에서 역사적 시구를 하고 받는 장면은 눈물 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저도 사정으로 뒤늦게 접했습니다만, 현장에 이 노병들의 등장 없이...또, 역사적 재조명 없이 지나갔더라면 한국 체육사와 방송사, 야구경기 주관하시는 분들에게 큰 과오의 행사가 될 수도 있었던 황우겸 대 선배님의 시구...야구선수 출신 첫 야구아나운서! 이나라의 많은 체육인, 언론인, 특히 저같이 스포츠 캐스터로 살아온 사람에겐 외람되게도 시청하지 못하고 지나갔더라면 한이되었을 장면들입니다.청사없는 방송 춘하추동의 연봉없는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은 또한번 이 험한 세상에 귀한 소식을 널리 전하고, 후세에까지 전하시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방송 후배로서 황우겸, 이장춘 두선배님의 늠름하신 활동을 보며 외경의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아울러 귀한 말씀 남기신 팔방미남, 유카리나 두 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015 겨울의 문턱에서 아나운서 이정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