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6. 5. 28. 02:30

 








황우겸! 1951년 6.25 전쟁 중의 아나운서!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던 방송국 KBS의 아나운서가

 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임택근, 강찬선 등이 동기 아나운서다.

(존칭은 생략한다. 글 쓸때 늘 존칭은 생락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 면이 있다.)   그 황우겸 아나운서가 올해로 88세가 되었다.

 1963년 최초의  TV아나운서실장을   마지막으로 방송 현업에서 떠난 지

 반세기가 더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아나운서라고 불리며 그것을 자랑

으로 삼는다.  그는 오늘도 한국아나운서클럽 고문이고 원로방송인

들의 모임 방우회 원로 회원이시다. 방송의 원로 중의 원로인

샘이다. 그 황우겸 아나운서가 올해로 88세 미수가

되어 서울 JC (청년회의소) 특우회 우정의

 날에 기념 축하연을 가졌다.



황우겸 아나운서 인생 88 미수 JC64년 특우 우정의 날 2016년 5월 25일



1929년 11월 16일 태어나 23살이

 되어 아나운서가 된 것이다. 그의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일중에 혁혁히 빛나는 일 꼭 세 가지

 일만을 꼽으라면 첫째가 당연히 아나운서이고 둘째와

셋째는 순서 없이   야구인생과  JC 청년회의소 활동

이다.        그의 아나운서 인생과 야구인생은 미리

 써 올렸기에 그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가름한다.





2016년 5월 25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리베라 호텔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88세가 된 황우겸 아나운서 미수연을 겸한 ‘서울 JC

특우의 날’ 행사가 그것이다. 황우겸 아나운서의 JC운동은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1년부터 결성준비를 하던

한국의     JC준비 팀이  황우겸 아나운서를 만난 것은 

 1952년이다.     그때 JC운동에 관한 설명을 들은

황우겸 아나운서는    그로부터 JC운동에

 합류했다. 창립회원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64년이 흐른 오늘 황우겸은

한국청년회의소의 뿌리요 산 역사며 기둥으로

 JC를 떠받치고 있다. 황우겸이 36세가 되었을 때는

JC 한국청년회의소 13대 중앙회장에 취임해서 폭넓은

활동을 벌렸고 한국청년회의소 노래를 작사 제정했다.

1980년 JC 회관건립추진위원장이 되어 지금의 회관을

건립했던 일 역시 길이 남는 업적이다.   1억 원 밖에

없던 건립자금으로 10억 원에 상당한 건물을 지어

 오늘의 청년회의소 뿌리를 심었다.


서울에서 열린 JCI 국제청년회의소

「아태대회」를 주관했고 1967년 서울 컨퍼런스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80년 한국JC특우회 제2대

중앙회장을 역임했고   한국JC특우회 장학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JC란 말 그대로 청년들의 활동

 모임이어서 일정한 연령이 되었을 때 계속

해서 활동을 이어가는 모임 체 라고

 보면 어떨까. 한다.


  황우겸은 1980년 제5대 특우회

회장을 맡았고 오늘날까지도 청년회의소에

 정열을 쏟고 있다.   황우겸의 인생과 사회관 삶의

철학이 이 청년회의소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친구라고 하는

 많은     재산을 청년회의소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청년회의소 주관으로 미수연을 연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

아나운서클럽 부회장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진 의원과

  김규홍 부회장, 그리고 박민정 사무총장, 황인우 클럽

회보 편집장과 함께 참여해서 이 뜻 깊은

자리를 축하 해 드렸다. 





또 이 자리에는 일생을 같이 해 오신

 부인 권경애 여사도 함께 하셨다.   황우겸

아나운서와 동 연배인 권경애 여사의 미수연도

겸한 샘이다. 견경애 야사는 는 서울대학교를

 나와    동시통역을 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보유한 교육자이시기도 하다.




박서림 선생님 (58년 장마루촌의 이발사) 글



이장춘 선생 황우겹 아나운서

米壽를 축하합니다. 야구  좋아했던

나로서는 여러 설명 듣지 않더라도 잘알고

 있죠 그런데 己巳生이네요.     호적으로는

30년 生이지만  나도   己巳生이랍니다.

동갑이네요.    다시한번 축하하며

더욱 강녕하시기를 빕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강하세요.


 

 박서림   



이장춘의 답   글



박선생님! 참 그러시네요.
우제탁 형님과 한해 차이 1월생으로

  기억합니다. 음력으로는 기사생이시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박 선생님! 금년 11월이 미수

이신가. 봅니다.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

면서 지표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행복 하심을 기원합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와우!참으로 활기찬 미수이십

니다.일생을 함께 건강히 두분께서 다

 보람있는 삶을 일관 해 오시고 미수를

맞으심을 축하드립니다.



서금랑 아나운서 글




존경하는 황우겸 큰 선배님! 얼마전

김규홍 선배님에게 저희집으로 전화하게 하시어

잠깐 들은 선배님 음성은 황우겸 아나운서의 한창 때

음성 그대로셨습니다. 힘차고 사랑이 넘치시고...야구장에서

시구하실 때 사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최고로 성공하신

 아나운서, 아름다운 삶을 사신 아나운서의 모습이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인생을 잘 못 살아 후회막급인 저희들도

남은 생은 선배님처럼 아름다워지도록 힘쓰겠

니다. 120세까지 저희들과 함게 하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비단물결 서금랑 드림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 



어렵게 이룬 아나운서의 꿈, 야구를

잘 아는 첫 야구 아나운서, 옥외 스포츠 중계

 첫 아나운서, KBS TV 첫 아나운서실장, 최고 인기

프로그램 스타탄생의 MC였던 황우겸 대 선배님...방송생활

 10년만에 이룬 전성기에, 모든 1위 자리와 숱하게 남은 꿈들을

 접고, 제도로 인해 방송이 선진화되지 못하는 時代狀況, 열악한

 생활여건으로 절망하는 동료들의 아픔을보다 못해 스스로 천직을

 버렸던 선배님의 헌신이 JC와 함께하신 생애와 함께 새삼

존경스럽게 떠오릅니다, 선배님의 88세는 米壽가

 아니라 美壽입니다. 이정부 드림



김규홍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님



🎥🎤춘하추동의 화보와 글들은

언제나 정말 훌륭하고 멋집니다. ✔더구나

후반에 6개 분 야로 분류시켜, 정리한 자료는✔

황우겸회장님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아나운서와 ●방송인들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귀하고 소중한 내용들입니다. 다시한번

👍이장춘선배님과 춘하추동 방송에 큰

박수와 경하의 마음을보냅니다



이성화 아나운서님 (59년 mbc부산)


주인공 되시는 황우겸 아나운서

대 선배님의 감동적인 인생사 잘 소개받았

습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국장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장면과 해설은 항상 마음에 와닿아요. 오늘

보여주신 미수의 건강하심을 두분께서   오래오래

누리시기를 진정으로 기원드립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황우겸, KBS TV 첫 아나운서 실장 (야구중계방송, 스타탄생)

http://blog.daum.net/jc21th/17780986


황우겸 야구 70년 청룡기 첫 선수 1946년, 70회 대회 개막전 시구2015년 고척 야구돔구장

  http://blog.daum.net/jc21th/17782665

 

스타탄생 1950년대 인기 공개방송 그때 그 출연자 그 목소리, 황우겸, 복혜숙, 구민, 이향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157 

 

최초의 방송중립화 선언 (1960년)과 황우겸 원로아나운서의 비원

 http://blog.daum.net/jc21th/17782556


1951년 동기 아나운서 황우겸, 강찬선 임택근,

http://blog.daum.net/jc21th/17780813


임택근 황우겸 임국희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512

  

 


화      보























와우!
참으로 활기찬 미수이십니다.
일생을 함께 건강히 두분께서 다 보람있는 삶을 일관 해 오시고
미수를 맞으심을 축하드립니다.
존경하는 황우겸 큰 선배님! 얼마전 김규홍 선배님에게 저희집으로 전화하게 하시어 잠깐 들은 선배님 음성은 황우겸 아나운서의 한창 때
음성 그대로셨습니다. 힘차고 사랑이 넘치시고...야구장에서 시구하실 때 사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최고로 성공하신 아나운서, 아름
다운 삶을 사신 아나운서의 모습이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인생을 잘 못 살아 후회막급인 저희들도 남은 생은 선배님처럼 아름다워지도록
힘쓰겠습니다. 120세까지 저희들과 함게 하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비단물결 서금랑 드림
어렵게 이룬 아나운서의 꿈, 야구를 잘 아는 첫 야구 아나운서, 옥외 스포츠 중계 첫 아나운서, KBS TV 첫 아나운서실장, 최고 인기 프로그램 스타탄생의 MC였던 황우겸 대 선배님...방송생활 10년만에 이룬 전성기에, 모든 1위 자리와 숱하게 남은 꿈들을 접고, 제도로 인해 방송이 선진화되지 못하는 時代狀況, 열악한 생활여건으로 절망하는 동료들의 아픔을 보다 못해 스스로 천직을 버렸던 선배님의 헌신이 JC와 함께하신 생애와 함께 새삼 존경스럽게 떠오릅니다, 선배님의 88세는 米壽가 아니라 美壽입니다. 이정부 드림
주인공 되시는 황우겸 아나운서 대 선배님의 감동적인 인생사 잘 소개받았습니다.
춘하추동 이장춘국장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장면과 해설은 항상 마음에 와닿아요.
오늘 보여주신 미수의 건강하심을 두분께서 오래오래 누리시기를 진정으로 기원드립니다.
잘보앗음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하세요
문득 기억에 떠오른 권경애 여사님! 그렇게 작고하신 줄 몰랐습니다.
약 60년 전 여사님의 영어 유치원반 학동이었던 - 당시 class에서는 'David' 이라 불렸던 사람입니다. 1959년 당시 저의 부모님이 일러주신 - 너의 영어반 선생님은 '황우겸' 아나운서의 부인이시다 - 라는 기억이 하도 어릴 때의 기억이라 긴가민가 하였는데, 우연히 황우겸 선생님에 대한 블로그에서 부인이신 권 여사님의 사진과 생전의 모습을 보고 저의 기억에 대한 확신과 반가움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당시 권 선생님 반에는 charls, john, george, david(본인), gordon 등 남자아이들과 helen, kate, sally 등 여자아이들이 동문수학했으며, 권 선생님은 담임으로, 때때로 원어민 강사로 Mr. Deming(젊고, 키가 큰), Mrs. Merreal(할머니) 선생님들이 저희들을 가르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위의 영어 spelling은 정확하지 안을 수도 있습니다만, 잠시나마 60년 전으로 돌아가 아련한 추억에 젖어봤습니다. 뒤늦게 권 선생님을 떠올려 황우겸 님께 누가 되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소천하신 권경애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