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역사 90년

이장춘 2017. 2. 16. 06:57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6ATE5db5Rr8



오늘은 방송역사 90년이

되는 2017년 2월 16일입니다.

제3의 파도라고 일컬어 진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이제 4차원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듯이 세상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은 그날의 바탕위에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은 '역사의 거울'이기에

방송을 제대로 아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 이나라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이승만, 김구가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그때의 방송을 간략히 되 돌아

보고 더 자세한 글은 그동안 써

올린 글을 연결합니다.





한국방송 역사 (11) 이승만, 김구 환국 그때의 방송



이승만 박사 귀국 첫 방송

1945년 10월 17일



「내가 소문 없이 이렇게

온 것은 비밀관계가 있거나 무슨

정당관계 연락으로 온 것은 도무지

아닙니다. 모든 정당이나 당파가 협동해

한마음 한 뜻으로 우리 조선의 완전무결한

독립을 차지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입

니다. 지금 우리의 기회는 전무한

기회요 또 후무 할 것입니다.」








김구선생님 귀국 첫 방송

1945년 11월 23일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22일까지 머무르다가

오늘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

되었 습니다.  나와 나의 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독립완성을 위하여 진력

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국가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

되었다는소식을 전합니다.」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이

군정청의 호위를 받으며 군정청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돌아왔다. 일제마수가

노골화 되던 2005년에 떠난 조선 땅을 40년 만에

밟은 것이다. 얼마나 그리웠던 조국인가?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돌아올 때는  맥아더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을 거쳐 왔고 그곳에서 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를 맥아더로부터 소개받았다.





나름대로 뜻이 있어그런 절차를

밟은 것이다.   국제적인 큰인물이요,  

 조선 독립의 영웅이 된  이승만이 돌아오자

 하지는 경건하게 모셨다. 그때의 유일한 방송기자

문제안은   이승만이 기자들 앞에 처음 나타나던 날

‘하지는 개 걸음을 하며 이승만을 마지하는 모습을 보고

그때 조선 땅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하지인데 그 하지가

깎듯이 모시는 이승만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았다.  그 분과 악수를 하고 얘기를

나누던 그 순간은 영원이 잊을 수 없다.’ 고

 기회 있을때 마다 들려주셨다.


필자는 그때 그 문제안기자의

 말을 녹음해서   본 춘하추동방송에

 올려놓고  자주 듣는다. 우익은 물론 좌익

까지도 떠 받들고 있었던  이승만이 조선 땅에

 돌아온 그 다음날 10월 17일 오전 그 소식을 KBS를

통해서 알렸다. 머리동영상에 그때의 이승만육성 일부를

올렸고 그 기사도 옮겼다. 10월 17일 KBS 첫 방송을 통해

 방송된 말은 그 유명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말로 요악 되는 그때 그 방송내용은 이승만

박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곧이어 10월 20일 중앙청광장에서

 열린 연합군 환영대회에서 첫 대중 연설을

통해 스스로의 입장과 나름대로 국민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 했다.  말로만 들어오던 이승만 박사를

국민들이 처음 대하던 날이었고 이승만 박사의 환국

으로 해방 되던 날부터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익세력이 판을 치던 정국은 이때부터

좌, 우 균형을 찾아갔다. 


 하나의 대한민국 건설을 염원

했지만 동서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의

비호를 받은 좌익세력과는 대화가 어려웠다. 

 신탁통치, 정판사 화폐 위조사건 등등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3.8선은 날이

갈수록 더 굳어져 결국 1948년 8월 15일 결국

 남한만의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어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가

그칠 줄 모르는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밀리고 밀려 중경까지 갔다가 해방을 맞이

해서 상해를 거쳐 11월 23일 조국땅에 돌아왔다.

임시정부는 그 정통성을 인정받으면서 국민들의

환영 속에 환국하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군정

은 누구에게도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박사가 그랬듯이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환국도 모두 개인자격으로

 이루워 졌다.    더군다나 조선 왕족은 입국까지

 금지되었다.    이승만 박사의 입국이 비밀리에

이루어졌지만   임시정부의 귀국은 공개리에

국민의 환영을 받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공항을 통해서 들어온

김구 선생님 일행은 공항에서

곧바로 방송국으로 향해서 방송을

통해 제 1성을 전했다. 이때 방송국이

 국내외 기자들의 김구선생님 환국 취재

현장이 되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날

귀국방송에서        소개멘트를 넣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떨렸다.


‘김구선생님의 말씀이 있겠

습니다.’ 소개만 하도록 되어있는

    아나운서 멘트를   ‘우리들의 지도자 김구

선생의 애국동포에게 고하는  귀국 제 1 성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넣어

방송했다.고 해서  아나운서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임정요인들의

입국환영식은 1945년 12월 19일 중앙청

광장에서 이승만을 비롯한     독립 인사 등

많은 인사들과   군정청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있었고 그 다음날인 20일에는  이승만

박사와  김구선생님, 하지 사령관이 중앙

에서 만제반 상황과 대응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승만 박사 귀국 때의 방송국 표정

문제안 기자의 말





1945년 10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중앙 방송국 제3스튜디오, 3평도 못되는

작은방송실에서   윤용노 아나운서가 “본 방송국

문제안 기자가 지금 방송실에 뛰어들어 와 중대 기사를

쓰고 있으니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하면서 신나는 행진곡

틀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 나는 전날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환국한 후   당시의 주한

유엔군 사령관 하지 중장의    안내로 다음날인 10월

17일 토요일 중앙청 회의실에서 국내기자단과

첫 회견을 한 이승만 박사 환국 기자

회견 기사를 쓰고 있었다.


첫 장을 다 쓰자 윤용노 아나운서는

더 참을 수 없어 첫 장을 낚아채다시피 해서

방송을 하고는 다음을 기다릴 수 없어서“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한번 되풀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둘째 장을 쓰고 그러면

윤용노 아나운서는 다시 첫 장과 둘째 장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 하고 나는 계속해서 셋째 장을 쓰는

그야말로 숨 가쁜 순간의 연속 이었다. 

 

바로 내 옆에서 기사를 하나 하나

세심하게 검열하던 미군대위 검열관도

너무 흥분한 탓인지 검열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내 옆에 묵묵히 선채 기사 쓰는 내 바쁜

손끝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렇게 쓰여진 나의

 기사는 써지는 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방방

곡곡에 퍼져나갔다.    이시간이야말로 내

 일생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김구선생님 귀국 때의 방송국 표정

노정팔 선생님이 남긴 글 


 



1945년 11월 23일 중국 중경에

머무르고 있던 김구주석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귀국했다. 김구선생은 비행장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중앙방송국으로 직행, 고국

동포들에게 귀국 제 1 성을 발표했다.


소개하는 아나운서마저 약간

흥분한 어조로“우리들의 지도자 김구

선생의 애국동포에게 고하는귀국 제 1 성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라고할 정도로 감격 속에

싸여 있었다. 이때 방송국은 그야말로 뉴스의

진원지가 되어카메라의 집중세례를 받았고 내외신

기자의 취재 경쟁으로 남대문시장을 방불케했다.

스튜디오 주변을 비롯해서 복도,현관까지

  사람들로 꽉 차서방송을 제대로 진행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방송국에 처음 들어가

나흘 만에 일어난 큰일이라 어안이

벙벙해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방송국이란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 기관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승만, 김구 환국방송

중앙 방송국장 이혜구 


 



방송인으로 가장 유쾌한 것의

하나는 해외 요인의 귀국 제1성 방송

이었다. 각신문사의 기자와 사진반원은 요인

귀국 예정일에 앞서 여의도 비행장에 파견되어

해외요인이 고국 땅에 제 1 보를 내디디는 것을

대기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어떤 신문은 김구씨

귀국 때에 예정일시에 도착 못한 것을 예정

일시에 도착한 것 처럼기사를 꾸며내서

보도한 경우도 있었다.

.


설레는 아나운서들은

신문보다 더 신속한 보도를

해야 할 방송국이 요인 환국방송에

대하여 여태까지 지시를 하지 않으니

무었을 하고 있느냐. 고 화급히 재촉하였다.

나는 해외 요인이  도착하는 즉시    마이크를

통하여그 정견을 말하고 인사말을 단 몇 마디라도

들려주도록 해야겠다고「 캪튼 퍼시블」과 상의

하였던것이고 방송에 대하여 이해성이 있는

「캘른」은 염려말고 자기에게 맡기라고

 승낙 하였던 것이다. 

 

과연 이승만 박사는 귀국 다음날

김구씨는 11월 23일 환국 당일 바쁘신

몸으로 방송국에 오셔서 고국동포들에게

마이크를 통하여 첫 인사를 하셨다. 방송이

끝난 후 이렇게 신속하게 그 음성을 직접 방송

하기에 성공한 것은 당신의 공덕이라고 치하하는

「 캪튼 퍼시블」은        ‘아유 해피 나오’ 즉 ‘이젠

좋으냐?’라 하고 생긋웃었다.     그 당시의 

방송 뉴스가 신속하고 정확한 것은 정평

이었고그런 호평을 받은 것은

우연지사가 아니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각 시대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누가누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애국자였는지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정치인들과 애국자는 완전 별개인
 같아요. 이혜구 박사님을 뵈니, 100수를 
하시며 세상을 뜨실 때까지 우리의 고유
음악 연구에 서신 애국자라는
생각입니다. 

각 시대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누가누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애국자였는지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정치인들과
 애국자는 완전 별개인 것 같아요. 이혜구
박사님을 뵈니, 100수를 하시며 세상을
 뜨실 때까지 우리의 고유 음악 연구에
 앞장스신 애국자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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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각 시대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누가누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애국자였는지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정치인들과 애국자는 완전 별개인 것 같아요.
이혜구 박사님을 뵈니, 100수를 하시며 세상을 뜨실 때까지 우리의 고유 음악 연구에 앞장스신 애국자라는 생각입니다.
이혜구 선생님은 살아생전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몇분 만되는 분증의 한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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