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7. 9. 19. 04:28

 

 

 



                   

대한민국 방송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불리는 아씨! 대한민국

본격적인 TV 드라마史를 열며 라디오

전성시대, 영화전성시대의 마감을 예고한

그 드라마를 만들어낸 고성원! 머리동영상은

아씨 마지막     253회편  주제곡  이미자의

목소리로 듣고 있다. 그때 방송되었던

실제 주제곡은 「춘하추동방송」

에서만 시청할 수 있다.



방송인 고성원



대한민국 TV방송 출연 연기자들의

총 집합체 「한국 실연자(實演者)협회」에서

발간한 「 한국 TV 드라마 50년사」 첫 페이지는

고성원의 작품으로 장식되어있다. 1962년 드라마

방송을 시작한 KBS가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금요극장(금요무대)」 주간 단막극을 편성하고

그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고성원의 연출로

방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프로그램 목록을

뒷면에 붙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00년 인기리에 방송된 「송화」에서

드라마 연출의 마지막 지휘봉을 놓을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한국 드라마를 이끈

주인공이 되었다.    고성원이 힘을

기울였던 주요 작품을 올렸다.

.



초기작품 현대 인형극 무대 앞에 앉은 고성원



고성원 작품목록



1962년 KBS 금요극장 1962년년 2월 2일부터 연중 22편 나옥주

1962년 현대인형극

1962년 TV무대 연출 1962년 7월 17일, 11월 13일 나옥주

1965년 사극 숙부인전 연출 KBS TV 강미애, 윤인자 

1967년 사극 칠부칠녀 연출 KBS TV

1967년 사극 연화궁 연출 KBS TV  하명중 김희자

1968년 사극 꽃버선 연출 KBS TV 고은아

1969년 주간 연속극 마지막 낙엽 TBC TV

1970년 일일연속극 아씨 연출 TBC TV

1971년 일일연속극 마부 연출 TBC TV

1971년 일일연속극 동기 연출 TBC TV

1971년 고전해학극 일일연속 시추에이션 여보 정선달 연출 TBC TV

1972년 주간 연속극 외아들 연출 TBC TV

1975년 일일연속극 아빠 연출 TBC TV

1977년 주말연속극 청실홍실 연출 TBC TV

1981년 대하사극 대명 연출 KBS TV

1983년 대하사극 여명 연출 KBS TV

1984년 주말 연속극 봉선화 연출 KBS TV

1984년 지역 드라마 영산강 연출 KBS TV

1985년 사극 젊은 그들 연출 KBS TV

1985년 사극 태평무 연출 KBS TV

1987년 일일 연속극 3월 연출 KBS TV

1990년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연출 KBS TV

1994년 아침 드라마 창밖에 부는 바람 연출 KBS TV

1997년 신년특집 급 옹고집전 연출 KBS TV

1997년 8월 아침 드라마 신부의 방 연출 KBS TV

2000년 아침 드라마 송화연출 KBS TV



KBS TV방송 첫해 금요극장 고성원 작품목록

1962년 5월 말까지 금요극장 주간단막극



이용찬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2일 불빛이 섬멸하는 설경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16일 기로

김 걸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23일 상처가 가시기까지

주택익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9일 결단

최인봉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16일 노래하는 사절단

이소운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23일 비화

김기팔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4월 6일부터 1962년 4월 20일까지 3부작 원시인과 소녀상

하유상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5월 4일 슬픔을 넘어서

하유상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5월 31일 인간 검사



1962년 고성원 연출 TV무대 2편



TV무대 이세희 작 고성원 연출 결혼전 1962년 7월 17일 주간단막극

총각인 큰형에게 강제로 배우자를 떠맡기는 이야기

 

TV무대 정소영 극본 고성원 연출 밤의서정 1962년 11월 13일 주간단막극

최정훈 김 애리사 출연

패인이 된 한 한 남자의 심리 상태를 통해 생활 재건을 다룬 드라마




고성원 연출 카메라 앞에서 열연하는 나옥주



고성원의 드라마는 학창시절부터

이상형 배우로 생각 해오던 ‘나옥주’ 주연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성원의 초기 KBS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그 수많은 탤런트, 연국배우,

영화배우 중에서 어느 프로그램에 어느 배우가 출연

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배우이름은 최초의

프로그램 금요무대에 출연 해 주었던    「나옥주」,

「숙부인 전」에 출연했던   「강미애」, 「윤인자」,

「꽃버선」에 출연했던 「고은아」,「 연화궁」의

「하명중」, 「김희자」등 몇 배우에 불과하다.




고은아




윤인자



이 여섯 사람은 프로그램

제작방송과 인생 삶에 깊은 인연이

있어서다. 연극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나옥주는

학창시절부터 머리에 그려오던 이상형의 배우로

방송국에 들어와 알게 되면서 부터 고성원의 첫

금요극장 프로그램 주연을 맡아 출연한 이래

고성원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가 되었다.




강미애



톱클래스 영화배우 강미애는

인기프로그램   「숙부인전」에서

고성원의 드라마 40년   인생역정에 가장

큰 방송사고을 안겨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시절 또 한사람의 톱클래스 윤인자 역시「숙부인전」

과의 인연이다. 그 내용은 전에 쓴 임학송의 글에

자세히 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사랑받은「고은아」, 「꽃버선」에서의

인연으로 역시 임학송의 글에 있다.





연화궁 촬영장면 (위) 여주인공

조희자 (조영일), 남주인공 하명중

아래는   연화궁에 출연하던때의

김희자(왼쪽) 김민자(가운데)




「연화궁」의 「하명중」

기성 연출가와 함께 유명 탤런트

들이 모두 TBC로 옮겼갔을때 신인이었던

하명중을 과감하게 주연으로 등장시켜 성공을

 거두고 대 스타로 발돋움, TV탤런트 해외 연기 수출배우

 1호가 되었다. 역시 연화궁의 「김희자」, 고성원의 인생

반려자가 되었다. 고등학생 어린 시절 1966년 KBS 탤런트

 6기로 방송에 입문해서 연기 생활을 하던 중 1967년 방송된

고성원 연출「연화궁」에       출연해서 인기를 모았다.

탤런트 1기 출신으로 연화궁의 주연을 밑았

 조희자(조영일)와 이름이 같아서

 화제가 되었다.  


 

고성원과 김희자



늘 바쁜 생활 속에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본 고성원의 눈에 이상형

배우로 생각 해왔던 나옥주와 같은 이메이지로

비쳐졌고 결국 그 어린 탤런트 김희자와의 사랑이

깊어져 1968년 경희대힉교 2학년 재학 중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행복할 줄만 알았던 고성원과

김희자는 젊어서 과수가 된 어머니로 부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김희자는 말한다.



‘결혼하고 졸업도 시켜 주시겠다구

하더니   혹독한 시집살이만 하였지요.

외아들만 보고 살아오던 어머니와 집안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고성원씨가 연출한 「외아들」

프로그램이 방송 될 때는 고성원씨가 며느리

편만 들어 방송 한다구, 시어머니께서

많이 노여워 하셨지요.



김희자 탤런트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



1972년 TBC에서 방송된

남지연 작 고성원 연출 「외아들」은

작가와 연출가 사이에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작가 남지연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고성원 집안 얘기와 똑같은 극본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연출자가 방송 나갈 때 시청

해야 하는 것은 필수지만 프로그램을

눈뜨고는 더 이상 볼수가 없었다.



아주 흥미 있는 얘기여서 고성원의 말을 인용했다.



「남지현 씨하고 나하고 콤비가

되어 「 외아들」을 방송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강부자 하는 거 보고,

'야! 네가 다 얘기했으니까 저렇게 하지.' 하고

말씀 하시지만 남지은 씨한테 내가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외아들 연출

안 하려고 했어요. 내 얘기니까,


그런데 방송국에서 안 된다

이거 해야 된다고 그래서 억지로 밀려서

했는데     나는 집에서 텔레비전 못 봤어요.

아니 우리 어머니하고 똑같아요. 머리를 벽에다

때리면 아이고 아이고 하는데 또 강부자

그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 해요.


시집 간 여성이 시어머니와 갈등

듣는 얘긴데 의도는 안 했지만 「외아들」

자체가 '나' 이고  우리 집사람이 어려서 21살에

나한테 시집 와서 그렇게 시집살이를 했다니까요

할머니뻘 되는 시어머니한테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들한테 참 잘해 줬기 때문에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너 외아들 에다가

젊은 과부 엄마 에다가 장가 못 간다기에 웃기지 마라

우리 어머니 얼마나 잘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데 뭐 어쩌고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가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그러더라고요.」



KBS TV 카메라 앞에 선 고성원



아내 김희자 얘기를 하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고성원은 1969년 TBC로 옮겼다.

MBC TV가 새로 출범하면서 TBC방송진이

MBC로 옮겨가자 공백상태가 되어 친구이자

 TBC에서 드라마 부장을 맞고 있던 김재형의

간청으로옮겨간 것이다. 고성원은 이로부터

 제2의방송 생활에 임한 것이라고 했다.





KBS TV 초창기 제작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프로를 제작 하더라도

재미와 인기 위주의 내용보다는 공공성부터

늘 체크해 왔고 그것이 공영방송에 투신한 보람이요

방송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업방송으로

적을 옮기면서 방송이 갖는 공공성은 다 같으면서도

상업성을 우선하여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았고 그로인해 방송인의 새로운 자세가

필요했기에 제2방송인생이라고 본 것이다.

이로부터 고성원은 새로운 방송형태의

방송을 추구 해 나간다.





TBC로 옮겨 한, 두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뒤이어 연출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

방송사상 대 히트 작 「아씨」다. 1970년 7월 3월부터

TBC TV 채널 7로 시작된    일일 연속극  임희재 작으로

방송된 아씨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까지 바꾸면서 새로운

시대를예고했다.   이때까지 기껏 한달을 넘기기 어려웠던

일일연속극은 무려 253회나 계속되었다.  뜻밖의 일이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또 하나의 드라마 여로가 KBS

에서 방송된 것은 아씨가 끝난 1년 후의일이었다.


그때는 아씨가 방송되고 있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종영되기도 전에 이미

 2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으며 주제가 또한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이

무렵그야말로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생활이었다.



아씨 연춯 고성원과 작가 임희재



비원(창경원 후원)에서 있었던

주제가 영상 촬영에는 고성원 연출자가

당연히 현장에서 지휘했어야 했지만 그럴시간도

없어서 조연출 하강일의 연출로 촬영되었다. 주제곡은

 백영호가 하루만에 작사해서 불려졌다. 고 했다. 

      다른 사람의 작사로      계획되었지만 사정이

생겨 작사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씨 마지막회 출연자



이 타이틀이 좋아 의욕이 생기고

프로그램의 성공을 예감 했다고 했다.

그 결혼식 행렬로 꽃가마 행렬이 뜨고 이것이

이미자 주제가와  맞아 떨어져 그 장면을 보며

드라마가 막 떠오르더라고 했다.       아씨에

 대해서는 이미 써 올린 글이 있어서 그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고성원이 연출한 또 하나의

대 히트작 1971년 12월부터 선보인

이성재작 여보 정선달은 김성원, 김순철의

명콤비가 호흡을 맞추면서 74년 11월까지 3년간에

걸쳐 인기리에 방송되어 789회를 기록함으로서 단위당

드라마로는 동양방송 최 장수 드라마 프로그램이 되었다.

대한민국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연예인 모두 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고 할 만큼    폭넓은

프로그램으로 엮어졌다. 다음은 하춘화가

출연한 영암 아리랑 연기 장면이다.






고성원은 이 프로그램으로

1973년 처음으로 마련된 제1회 방송대상

연출 상을 받았다. 방송대상은 올해로 44회가

 되었다. 늘 바쁘기만 했던 고성원은 그 시상식장

에도 못가 부인 김희자가 대신 수상했다.     

그때의 사진을 구해서 올리려고 했지만

 보존된 사진을 구할 길이 없다.





1977년 TBC TV주말연속극

청실홍실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1956년대 KBS 연출계장 조남사가

6개월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내놓은

우리나라 멜로드라마의  원조 「청실홍실」

그 청실홍실을 원작자 조남사가 각색

해서 1977년 TV드라마로 다시

방송된 것이다.




위 전성기의 정윤희

아래  장미희 원안

달동네 1980년 6월부터 81

12월강부자, 차화연, 연규신, 조옥희,

이동진, 김인문, 장미희, 백찬기, 여운계,

 김소유, 김인태, 추송웅,






이 프로그램의 여주인공

장미희와 정윤희를 스타로 각광

받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작품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커서 작품이

종말에 관한 시청자 의견을 공모하기도 했는데

 연일 공모 우편물이    쇄도해서 예상치

못했던 큰 혼란을 빚기도  했다.





1980년 11월 30일 방송 통폐합으로

TBC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고성원은

옛 친정집 KBS로 돌아왔다. 초창기 8년간에 이어

20년간의 방송드라마 역사가 펼쳐진다. 고성원이

KBS로 돌아와 얼마 안 있어 곧 주어진 프로그램이

대하 역사 사극의 원조로 불리는 「대명」이다.



대명 출연진과 함께 한 고성원



대명을 시작으로 KBS 대하 역사 사극

「풍운」,「개국」,「태조 왕건」,「용의 눈물」,

「무인시대」등등 역사적인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다.

국난 극복의 역사적 의식을 심는 KBS 2TV로 방송된

이철향 극본의 대명, 그동안 고성원은 여러 편의

사극연출을 대명은 일반 역사의 의미를 넘어

국난 극복 의지를 담아내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고성원과 서미경



특히 병자호란과 효종대왕의

북벌정책을 드라마 화하면서 수난의

역사를 그대로 재연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청국에 패하는 장면처리에 분개하는 시청자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그럴수록 애국심이 더욱

굳건해지는 상승효과도 있었다. 요즈음 롯데 그룹 가정사와

관련해서 화제에 오른 서미경은 프로그램 출연을 마지막으로

동경유학을 떠나 중간에 빠지게 되니까 이 프로그램에서는

독립 투사로 장엄하게 마지막을 화형 당하는 장면처리로

끝냈고 그 후로 신격호 회장과 결혼한 서미경은

더 이상 드라마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1년 여 간의 대명 방송을 마친

고성원의 후속작품은 역시 대하사극

여명 黎明이었다. 이철향 극본의 이 작품은

조선 초기 한양천도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극화한 “서울 천도 500주년을 기념”하는

드라마였다. 그 후에도 KBS TV 주간사극 「젊은

그들」, 「태평무」 등 몇 편을 사극을 계속

연출하면서 사극의 전통을 확립했다..





그의 말년 10년간의 드라마는

사극과는 좀 다른 장르로 1990년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1994년 아침 드라마

 창밖에 부는 바람 1997년 신년특집    옹고집전 1997년

 8월아침 드라마 신부의 방 KBS TV을 연출했고 2000년

 KBS TV아침 드라마 송화연출을 마지막으로 TV

드라마 연출의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고성원의 연출로부터 시작된

양근승 극본 농촌시츄에이션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내용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고성원은 유년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라

농촌 일정에 대해서는 거리가 매우 멀었지만 마침 촬영

현장이 서울과 가까운 김포로 정해져 자주 현장으로 달려가

농촌생활의 갖가지 실상을 체험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특히 전체 스태프와 연기자들의 하나 된 심정, 노력으로

이 작품은 장기 프로그램으로서 이어져 왔고 중간에

연출자가 바뀌고 다소 멤버가 교체되기는 했어도

2007년까지 17년에 걸쳐 852편이나 이어졌다.






고성원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아씨」와임학송의 여의도 야화 고성원 펀,

 KBS초기 TV드라마 금요무대 (극장)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김무생 아나운서님 글


이렇게 금싸라기 같은

방송역사와 함께 할 수 있는 곳

<춘하추동 방송>이 있어서 기쁨입니다.

함께 하시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늘 변함없이 이 창문을 열어

주시는 이장춘 대선배님

고맙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아씨, 1970년 그때 그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1400


고성원으로 본 대한민국 TV드라마사 / 임학송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3242


KBS 초기 TV드라마 금요무대 (극장)

http://blog.daum.net/jc21th/17781639

  

 



고성원 방송사료
















위는 김희자. 하명중 박근형, 김무영 등

연화궁 촬영 탤런트 들이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는 김희자와 함께 입문한 6기탤런트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김희자님이 위, 아래 사진을 보내오며 카톡으로

짤막한 글을 보내 오셔서 옮긴다. “어찌 이런 사진이 저에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박근형씨는 당시 최고의 미남배우로 기억

하구있구 하명중씨는 저의선배인데 연기 활동이 연화궁 전에는

 별로 활발치 못했던거 같네요그리고 제 이름이 원래는 김희자

 지만 결혼 하고 나서는  나이가 어려두 이름을 안부르구 정민

엄마라구 들, 강부자 선배님도 모두들 그리 알구있지요.

 선배님들두 이름보다는 정민 엄마라구 지금두 혹

만나면  정민(고정민)엄마라고. 합니다. 저의

큰딸 아이에요  지금LA에 살구 있어요.

막네는 고승연으로 제주에 살아요. 



방송사史에 관해 애정을 많이

가지구 계신것    대단한 열정과

보람입니다.    사라져 없어질 자료들을

다 이렇게 발굴해서 모아놓으시니 대단하셔요.

저는 늘 대본이구 가지구계시면 죽으면 굴러다닐 걸

버리라구 매일 이사 때마다 잔소리를 했지요 버린것두

많습니다, 그리구 한복에서 당시 옷을 입으러

분장실에 가면 옷에 이가 붙어 다니던

생각두 나네요 그당시 에는

그랬어요ㅎㅎ"











































































































귀중한 자료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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