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이장춘 2011. 8. 13. 02:00

 

  

해방공간! 일제 세력이 물러가자

억제되었던 주의주장을 내세우며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정당들이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테어났습니다. 한국민주당, 조선공산당, 고려민주당,

서북청년당, 근민당, 한국독립당, 조선인민당, 조선민주당, 한국국민당,

남조선신민당, 남조선노동당, 민족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들까지 자기들

의사대로 세상이 움직여져야 하고새로운 정부는 자기들이 맡아야 한다고

하는 상황이전개되어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없던 국민들은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해방공간의 정당출현과 정당방송

 

자기 주장과 맞지 않으면 배격하던 때여서

방송국기자도 좌익정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본의 아니게

 청취자들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질타를 받고 또 우익정당을 출입하는

기자라고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민주주의를 하자면

정당의 출연은 필수적이라면서 정당의 활동은 보장되고 방송은 공정해야 했습니다.

취재나 논평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중해야 했고  나아가서 방송국 프로그램에 정당

방송시간이 편성되어 모든 정당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모든 정당 공산당에게까지도 똑같이방송시간을 할애하면서 방송이 진행되었습

니다.방송시간은 방송국에서 제공 하지만 방송내용은 방송국 의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맨트를 넣기도 했습니다.이런 일련의 일에 대해서

당시 이혜구 중앙방송국장님의 기록과 녹음의 책임을 맡았던

 김성재 방송국 조정과장의 기록을 올려 드립니다.  

 


 방송국장 이혜구 선생님의 글 중에서   

 

 

 

방송순서에 정당시간이 결정되어
수십 정당에게 방송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강연 원고의 검열과 그 강연방송 시일 결정은 공보처

강연과가 따로 담당하였고 방송국은 개의치 않았다. 이 제도는

방송국이 정치문제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해 주어

방송국으로서는 대단히 고마운 것이었는데  이 제도를

모르는 방송인사는 종종 방송국을 원망 하였다.
 
 한번은 서북청년당원이 이시간의 방송을  하는
도중 그 방송이 감청직원에 의해서 중단된 일이 있었다.
 이것을 방송국이 고의로 방송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고 격분

끝에 방송국을 극도로 적대시 하였다.  원래 정당방송의 원고

세벌을 작성해서 한 벌은 강연과에 한 벌은 방송국 감청계로

 돌리고 또 한 벌은 강연자에게 돌려주어 그 뒤에는
 글자 하나라도 고칠 수 없게 되어있었다.
 
서북청년회의 원고가 원래의 원고와
다른 부문이 있어서 비로소 오해가 풀어졌다.
 군정당시에는 한민당의 방송시간도 있고 남노당의 방송시간도

있어 같은 방송에서 서로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방송이 나가게 되니

그때 정치계의 혼란은 방송에도 반영 되었다. 이런 방송에 시골 청취자는

 중앙의 정계동향에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불안을 느꼈다. 우익

 인사는 상대방의 방송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 불평의

 화살이 모두 방송국으로 날라 들어 왔다.
 
 방송국은 방송 강연을 한 정당을 방송국이
지지하는 듯 한 인상을 청취자에게 줄까 봐 방송 강연이
 끝날 때 마다 “이 강연은 방송국의 의견이 아닙니다.” 변명 비슷하고
 발뺌 비슷한 아나운서 멘트를 넣기로 했다.  이런 아나운서 멘트가
 미국에서는 물론 방송국을 보호 해 주었겠지만 한국에서는
 도리어 청취자들의 귀를 거슬리게 했던 것 같았다. 
 
당시 방송뉴스가 정확한 것은 정평이었다.
 정당이 수십 개에 달한 것 같이 신문도 여러 가지
색상의 것이 있었다. 인민보와 대한신문이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100% 진실을 구호로 삼은

방송과는 외부의 통신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방송기자를

파견하여 정확한 기사를 얻었다. 그 뿐 아니라

 취재한 기자 이름 까지 방송으로 밝혔다.
 

 

 만약 문제안, 조동훈 양 기자와 편집책임자인
이계원 과장이 정치적인 편견을 가졌거나 무능하였다면
방송이 전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큼에 비례하여 큰 화를
끼쳤을 것이다. 방송기자는 기사를 쓰기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방송에 채택될 통신의 정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도
 우정 관계기관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확인의 노고를 많이 덜어준 사람이
루테란트 “피거링” 이었다. 새로 생긴 사후
 검열제도도 뉴스 정확성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했다.
이 사후검열은 처음에  사전검열에 저진 사람에게  허술하고도

불안 하였다.  마치 허리를 띠로 졸라매었다가  그 띠를  

풀면 당장은느슨하지만 도리어 불편한 것 같다.

 
이혜구선생님 글이었습니다.
 

 

녹음 책임 조정과장김성재님 회고담  

 

 

"공산당 방송이 나가는 날이었어요.

정당강연을 한다는 공산당원이 주조정실에 들어와
행패를 부렸지요. 왜냐하면 재고품으로 남아있던 녹음판이
떨어진 것이에요. 아니 떨어졌다기 보다 마지막 한 장이 있는데
그게 막상 녹음하려 하니 불량품이었어요. 녹음판이 없다는 사정을

간곡히 말하고 생방송할 것을 부탁했는데도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행패를부리지 뭡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어요.  공산당이면 공산당이지 행패를

부리고 야단 했으니 천벌을 받는게 당연하지요."

 

김성재 조정과장은 방송국에서

녹음이 제한되어 겪는 여러 일들을 해결

하기위해 궁여지책으로 뉴므판에 덧씌운'아세

테이트'를 재생하는 방법은 없을까? 연구에몰두하다가 

맨 먼저 KBS 정동연구소 2층에 자리 잡은주조정실 옆에

있던 한 평 남짓한 방을 연구실로 꾸며 녹음을 더 편리

하게 할 수있는 장치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해방공간의 방송국은 어려운일들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그리운 강남-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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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