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7. 8. 26. 04:43

 



왕년에 청와대 출입 등

왕성한 활동을 했던 이석희

기자가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생,

선후배들과 함께 '황혼의 보금자리'를 마련

해서 살기 시작한지 10년!     오랜 세월 이석희

기자와 함께 해 오신 KBS사우회장,  대한 연론인회

 회장 등을 지내신 김은구 회장님, 아리랑 TV, 스카이

라이프 회장 등을 역임하신  황규환회장님, 왕년

보도 촬영스타 김광남님과 함께 그 도월마을을

찾아 간단한 글을  올렸습니다.






밤에 큰 비가 왔던 서울의 그날 아침

그곳 도월마을에는 비가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왔다.  동서울역에서 30분마다 출발하는 감곡행

버스를타고  빗길에  차 흐름이  다소 느려져 1시간

 50분을 달려 장호원에  다달았을 때, 하늘은 흐렸어도

 비는 오지 않았다. 2013년에도 오카리너 분들과

함께와서    '작은음악회'를열었던 적이

있어서 익숙해진 마을이다.





마을 뒷산은 백족산이요

주변은 주렁주렁 열린 복숭아 나무가

무성하다.  북숭아 꽃이 필때 오라는 주문을

여러차례 받았어도 그때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니 복숭아 꽃이 연상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피어 오를듯 말듯한 무성한 벼로 물들인 별판이고

그 벌판을 지나 임오군란 때         피난와 머물렀던 일로

화제가 된 매괴산,  감곡성당 터, 국망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뒷산 백족산은 100개의 발이 달린

지네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앞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매괴산이고 그 산 앞으로 바라

보이는 마을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이다. 흔히

충청도 장호원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도월마을에서는

복숭아 밭으로 형성된       작은 산들이 가로막혀 경기도

장호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감곡과 장호원은 벌판 사이에 

흐르는  남한강 지류 청미천 (淸渼川)을 경계로 한다. 옛

에는 감곡에 여자중학교가 없어서 걸어서 장호원까지 

학교를 다니는 등 한 문화권이다. 그 경계를 확실히

 보실있도록 빨간 즐을 그어 올린다.  






백족산과 접해있는 이석희

기자의 집이다.    이 집에는 흔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오유지족 吾唯知足’ 

네 글자를 모아 한 글자로 만든 문양이 있다. 

문패인 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올린

문인수기자의 글이 있어서 여기서는 생략

한다.  이 문양은 집안 거실 잘 보이는

곳에도      도자기로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







이날 점심식사을 한 '도월정'이다.

2014년에 들렸을때는 없던 식당인데  '도월정'

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문을 연 식당이어서 도월과

 무슨 인연이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식당주인이 도월마을을

 조성할때 힘을 기울여 주신 분인데 식당을 열면서'도월' 을

넣어 식당 이름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와서 이 이름을

 써서 번창하면 좋은일이 아니겠느갸고 해서 '도월정'

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탄생했다.고 했다.






 도월마을에 관해서 종전에

 쓴  글들이 있어서 새로 촬영한 사진

몇장을 올리고  더 자세한 사항은  종전의 

글로 대신한다.  위사진은 그날 함께 한

좌로부터  김은구, 황규환, 김광남,

이석희 님 순이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2017.08.27 03:27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요?

돌이켜보니, 국장님 덕분에 도월마을에 가서

오카리나 불고하던 그 시절 그 시간이 또 하나의

 아름답고 귀한 추억의 날이었어요. 마침 조인숙 선생이

 한참 오카리나에 재미를  붙여 있을 때여서 시기가

 맞아서 함게 할 수 있었던 추억입니다. ^.^


그 때 이석희 기자님 거실 벽에

걸려있던 샤갈의 그림을 느끼게 하

던 그 도월마을을 그린 그림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번에는 그날 눈에 띄지 않았던,

吾唯知足 이라는 글자를 한데 모아서 쓴 글자가

 볼수록 인상적입니다. 「하늘의 구름을 밭 갈듯이,

  밤하늘의 달을 낚시질 하듯」함께     같은 길을

가시는 도월마을의 머루 알이 까맣게 익어

가듯이 마을 분들의    행복도 짙게

 익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장춘

 

2017.08.27 05:02

그로부터 벌서 4년세월이

흘렸네요.   그때 쓴  글 한편을

연결하고 밑에 조인숙여사 오카리나

연주에 맞추어 마을 분들이 함께

부른 도월마을 노래 영상을

 올렸습니다.



김정숙 여사님 글


국장님, 안녕하세요!!!
아침저녁으로 제법선선하여 좋은

 계절에 이미 들어선듯합니다. 도월마을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시 그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한결 나은

 연주로   함께하면 어떨까  꿈을  꾸어봅니다
뵈올때까지 안녕히계셔요^^!
김정숙 드림




관련글 보기



도월마을 2013년 모습과, 오카리나 연주회 추억

http://blog.daum.net/jc21th/17781880





마을 이름은 두자인 것이 상레인데

장호원은   왜 석자로 되어  있을까요?

이런 질문이 왔을때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 보았다.

아무래도  만족한 답이 없지만 장호원

유래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다.



장호원읍

[長湖院邑, Janghowon-eup ]



경기도 이천시의 동남단에 위치한 읍이다.

 진암리 · 장호원리 · 어석리 · 선읍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조선시대 음죽현(陰竹縣)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내면 · 동면 · 남면의    여러 동리를 합쳐

청미면(淸渼面)이라 하고 장호원리에 소재지를 두었다. 1941년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96년 이천군의 시 승격과 함께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

 현내면(읍내면) · 동면 · 남면에 속한 동리들과

 편호, 남녀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장호원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던 장해원(長海院)이라는 역원과 관련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음죽현 편에 "장해원은 현 동쪽 13리 지점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장해원이란 명칭은

 『여지도서』, 『해동지도』, 『여지도』, 『조선지도』 등에서도

 계속되다가 『1872년지방지도』 「충주목지도」에서

장호원(長湖院)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1872년지방지도』「음죽현지도」에는

장원(長院)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천민천을

가로지르는 교량도 장해원석교 · 장원석교라고 불렀다.

혹시 주변에 용담(龍潭) 또는 추택(秋澤) · 천민천(天民川)

등의 물길이 많이 있는 지리적 조건이 지명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설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설성산(雪城山)에 인접한 선읍리(善邑里)는 1914년 음죽군이

이천군에 병합되기 전까지 수백 년 간 음죽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관아와 음죽향교의

 터만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호원읍 [長湖院邑, Janghowon-eup]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도월 마을 내력과 이력을 소상히 담아주셨네요
가본듯 머문듯 실감합니다
고맙습니다.
더 자세히 썼는데
이기자께서
간단히, 간단히 더 간단히
줄여달라고 하시네요.
마침 조인숙 선생이 한참 오카리나에 재미를 붙여있을 때여서 시기가 맞아서 함게 할 수 있었던 추억입니다. ^.^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요?
돌이켜보니, 국장님 덕분에 도월마을에 가서 오카리나 불고하던 그 시절 그 시간이 또 하나의 아름답고 귀한 추억의 날이였어요.
그 때 이석희 기자님 거실 벽에 걸려있던 샤갈의 그림을 느끼게하던 그 도월마을을 그린 그림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번에는 그날 눈에 띄지 않았던, 吾唯知足 이라는 글자를 한데 모아서 쓴 글자가 볼수록 인상적입니다.
구름에 밭갈고, 달을 낚으며 함께 같은 길을 가시는 도월마을의 머루알이 까맣게 익어가듯이
마을 분들의 행복도 짙게 익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로부터 벌서 4년세월이 흘렸네요.
그때 쓴 글 한편을 연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