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3. 7. 2. 20:29

 

 

1939년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최초로

합창단이 구성되어 합창곡으로 된 가정가요를

 본격적으로 보급했다. 이때의 상임지휘자가 김성태로

그때 맺은 방송인연은 일생동안 이어져 그의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가 전파를 탔다. 지금 들리는 노래는 1952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김명희 학생이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나 88세의

 할머니가 된 오늘 김성태 선생님 얘기를 하는 모임

에서 반주도 없이 즉석에서 부른 노래다.

 뒤에 설명이 있다.  

 

 

작곡가 김성태님과 방송, 최초의 방송 합창단 지휘자, 이별의 노래/김명희 

 

 

1912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성태는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다녔다. 연희 전문학교

(연세대학교 전신)에는 현제명이 미국유학을 다녀와

 현대음악을 가르치고 있을 때로 김성태는 현제명에게 음악공부를

하고 1935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 가서 작곡공부를 한 제 1호로

 불린다. (김성태가 유학길에서 돌아온 해가 언제냐. 기록이 엇갈린다.

 추후에 확인 할것임)일본 유학길에서 돌아온 김성태는  경성

중앙보육학교 (중앙대학교 전신) 교수로 취임한다.

 

그때 중앙보육하교에는 김형준, 홍난파 등

 현대음악의 기라성 같은 교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JODK 경성방송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고 특히 홍난파는 1935년

 경성방송국의 교향악단을 최초로 구성하고 단장겸 지휘를 맡았다. 방송국

직원이 적던 그 시절, 홍난파는 방송국에 자리를 마련하고 방송국 직원과 같이

활동하면서 현대음악을 지도했다. 방송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커서 그의 주옥같은

 곡들이 전파를 탔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온 것이고 1960년대 남산 방송국시절

 남산방송국 뜰에 홍난파 흉상이 선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온 것이다.

 

 

 

 

그 홍난파가 방송국에서 건전가요를 보급했으면,  해서

구성 된 것이 방송합창단이고 홍난파가 학교에서 함께 일하던

김성태를 추천해서 합창단 지휘를 맡게 된 것이다. 1주일에 한번씩

 방송되는 이 합창단을 통해서 제일먼저 방송된 곡은 김성태 스스로 작곡한

 “즐거운 우리 집”이었고 두 번째 방송된 곡은 홍난파의 “산에 들에”였다. 그때

 방송국이 보급하는 가정가요는 지금의 가곡에 해당하는 노래들이 많았고

참여하신 분들은 현제명, 김매리, 박경호, 이흥열, 박태준, 박태현

김세형 등 당대 음악의 흐름을 잡아가던 분들이었다.

 

 

 

 

그때 보급되었던 노래들을 모아 책으로도 출판했고

그때 보급한 양주동 작시, 이흥렬 작곡의 "어머니 마음"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그 노래를 부른다. 김성태가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음악인들과 인연이 맺어지고 그 중에서

경성방송국 교향악단 악장을 하다가 지휘까지도 맡아하던 김생려와는

깊은 인연이 맺어졌다. 홍난파 사후 김생려가 힘을 기울이던 경성방송국

교향악단이 해방과 동시에 해체되면서 그해 9월 현제명을 이사장으로

하는 고려교향악단을 구성하면서 김생려를 비롯, 그 단원들이

고려교향악단으로 옮겨가면서 김성태도 함께 참여했다.

 

 

 

 

 

현제명과, 김성태, 김생려 등은

이렇게 해서 맺어진 깊은 인연들이다.

현제명이 떠나면서 얼마 안 있다가 고려교향악단이

 서울 교향악단으로 되면서도 같이 참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악단은 고려교향악단 밖에 없었다.

 그러는 중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생기면서 그 학교의 교수가 되고 왕성한

활동을 벌린다.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가 방송전파를 타고 각급학교의 교과목에

올랐으며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를 남겼다. KBS가 공사로 전환할 때 KBS

사가를 작곡해서 2011년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KBS사가로 불렸다.

   더 자세한 얘기는 김성태 선생님 약력과 춘하추동방송에

이미 써울린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2013 4월 20일 최종고 교수가 마련한 김성태선생님

전기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명희 여사는 60년이

더 지난 옛 추억담을 얘기 해 주시며 즉석에서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김성태선생님이 1952년 박목월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혀

김명희 학생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는 말씀에 그 노래를 부르자 꼭 껸안아

 주시면서 “이 노래는 김명희를  위해서 작곡된 노래구나” 하며 칭찬 해 주셨고

 김명희님은 그날 이래 일생동안 이 노래를 불러 오셨고 그런 인연으로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모임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오리지널 노래를 들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김성태 : 윤선항 선생님 내외분과 유석진 :

김명희 여사님 내외분이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는 노래 부리는

김명희 여사님입니다. 양가의 아들 김기훈과 윤태혁은

경기고등학교 동기 동창이기도 합니다.

 

 

KBS와 작곡가 김성태 (별세) 선생님, 노래 김성태 작곡 KBS사가

http://blog.daum.net/jc21th/17781226

 

경성방송국 양악을 이끌었던 사람들/ 홍난파, 박경호, 김생려 view 발행 

http://blog.daum.net/jc21th/17780883

 

어머니의 마음, 80년간 한결 같이 불린 양주동시, 이흥렬(열)곡               

http://blog.daum.net/jc21th/17781688

 

사진과 함께 보는 김명희여사 인생 파노라마 / 1950년대 KBS 음악 PD

http://blog.daum.net/jc21th/17780768

JODK오케스트라(교향악단)에서 KBS교향악단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948

 

김성태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동심초

http://blog.daum.net/jc21th/17781225

 

 동심초(同心草)가, 해방공간에서 불리던 때, 노래 이규도

http://blog.daum.net/jc21th/17780930

 

 

 

이별의 노래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

김명희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약력

 

 

김성태 (金聖泰), (KIM SUNG TAI) 아호 요석 (樂石)

1910년 11월 9일 서울출생  

사망 2012년 4월 21일

 

 

 

학력

 

 

1935 연희전문학교 상과 졸업

1936 일본 동경(東京) 고등음악학교 작곡부 졸업

1969 연세대 명예문학박사

 

 

경력

 

 

1939년 JODK 경성방송국 방송합창단 상임지휘자

1945년 현제명, 김생려와 함께 고려교향악단 창단

1946년 ~ 1976 서울대 음대 교수, 학장

1981년 ~ 예술원 회원(작곡),

1991년 ~ 예술원 회장

1970년 ~ 1986 음악협회 고문

1976년 ~ 1990 중앙대 음대 객원교수

1976년 ~ 영남대 음대 초빙교수

~ 2012 서울대 명예교수

1982년 ~ 예음 회장

1988 ~ 예음 고문

1989 ~ 예음문화재단 상무이사

1993 ~ 1996 예음문화재단 부이사

1993.5 ~ 서울예술단 후원회 고문

~ 1999.7 예음문화재단 객석 발행인 겸 편집인

~ 예음 대표이사

 

 

 

상훈

 

 

문화훈장 대통령장

예술원상

고마우신 선생님상

국민훈장 동백장

홍조 소성훈장

3.1 문화상

5.16 민족상

MBC가곡공로상

제17회 대한민국 동요대상(특별공로상)/2004.6/서울YMCA

제19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2009.10/서울대

제1회 세일 한국 가곡 상 수상/2009.11/세일음악문화재단

     

 

 

공연

 

 

김성태 음악인생 60년 연주회(예술의전당 콘서트홀)/1995.11.26

 

 

 

작품

 

 

관현악 한국기상곡

현악합주를 위한 모음곡/1969

실내악 현악4중주를 위한 작은 모음곡/1937

현악 4중주를 위한 3개의 인벤션/1937

현악4중주 C단조/1938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1971

독주곡 피아노를 위한 3개의 2성부 인벤션/1936

피아노를 위한 3개의 3성부 푸가/1936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모음곡/1980

김메리의 학교 주제에 의한 10개의 피아노 변주곡/1987

성악곡 교성곡 비바람 속에(모윤숙)/1960

축전 교성곡 빛나라 내 조국/1978

말(정지용)/1937

바다3(정지용)/1937

산 넘어 저쪽(정지용)/1937

호면(정지용)/1937

소곡(양주동)/1938

즐거운 우리집(김동환)/1939

동심초(설도, 김안서역)/1946

사친(신사임당,김안서역)/1974

진달래꽃(김소월)/1947

꿈길(김소월)/1948

백마강(모윤숙)/1949

오륙도(이은상)/1949

꿈(황진희, 김안서역)/1950

가시덤불(김소월)/1950

바다(한갑수)/1952

한 송이 흰 백합화(김호)/1952

이별의 노래(박목월)/1952

사슴(박목월)/1952

한시 네수에 의한 노래모음곡/1954

가는길(김소월)/1954

고기잡이 노래(김용호)/1958

수련의 노래(박목월)/1958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1959

내 마음 아시리/1960

어버이의 노래/1960

봄이 오면(김동환)/1963

가을 국화(김안서)/1963

바닷가에서(박목월)/1965

못잊어(김소월)/1966

나그네(박목월)/1966

사자수(이광수)/1967

자장가(조병화)/1973

고향3장(김소월)/1976

추억(조병화)/1976

연가곡 꽃 앞에서(이은상)/1977

산백합(이은상)/1978

가야산(이은상)/1980

겨울 바닷가(박목월)/1980

향수(김동리)/1984

물가에서(박미혜)/1985

작곡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1934

한국민요편곡집/1954

김성태 가곡집/1971

김성태 가곡집/1991

가곡-고향3장 





박창학 선생님 글

박목월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


 

1952년 6. 25전쟁이 끝날 무렵

박목월 시인이 중년이 되었을 때,

그는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가정과 명예, 그리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자리도 버리고 빈손으로 홀연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목월의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 

 

부인은 남편과 함께 있는

여인을 마주한 후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에게 힘들고 어렵지

않으냐며...돈 봉투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며 두 사람에게 겨울옷을 내밀고

부인은 서울로 올라왔다 

 

목월과 그 여인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이 아파 그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한 후, 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이 시를 지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그때 그 시가 바로

이 노래라고 전해진다. 

 

(주 : 이별의 노래

가사를 함께 보내오셨지만

이미 위에 올라 있어서

생략한다.)



한시인의 사랑과 이별,

그 고통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시가

탄생하였단 사실이 뭔가 일깨우는 듯합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혼을

명징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한 알의 열매가

익기 위해 오늘의 더위가 있다면

당연히 이기고 차라리

즐겨야겠지요.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김명희 이별의 노래.mp3




- 첨부파일

??? ??? ??.mp3  
   
우리나라 음악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반갑습니다.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 잘 지내셨는지요.
행운을 빕니다.
개인적으론 현대자동차가 FIFA 파트너인 것도 왠지 준영국계 로열더치 쉘 헤이그 본사/런던 지부 & 비영국계 프렌치 토탈 파리 라 데팡스 본사가 이미지 마케팅 직무대행을 정몽구 회장의 친동생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겸 FIFA 비중동(?) 명예부회장한테 몰래 요청한 듯한..ㅎ
2013년이니, 올해 부르셨군요.
8순을 넘기신 분의 노래라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저도 이 이별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언제 한번 찾아뵙고, 이 노래를 오카리나로 한번 불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명희 여사님의 건강하심을 기원합니다.
올해 88세 이시지요.
이달 16일이 오재경장관님
추모모임을 갖는 날입니다.
그날도 서울에 오신다고 하시는 군요.
전화를 하시면
아주 반가워 하실 것입니다.
이장춘 얘기만 하시면
다 한가족처럼 대해 주십니다.
저와는 친 누이동생보다도 더 친한분이시거든요.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네, (><) 고맙습니다. 저도 이미 자주 그러는걸요.
김명희 여사님을 꼭 한번 뵙고싶은데,
이시간엔 전화드리기가 넘 일러서..........
전화번호 메모 해 두었다가 꼭 한번 인사드려야겠습니다.
전화 올리시면 반가워 하실겁니다.
어릴때 라디오에서 많이 듣던노래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