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17. 10. 9. 03:18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남인수 南仁樹 강문수



1938년 우리나라 가요사에

불멸의 노래, 박시춘 · 남인수를

영원한 콤비로 맺어준 「애수의 소야곡」

지난 세기 이 노래와 함께 설움을 달래며,

추억을 안겨주며 낭만을 추구하던 그 노래!

그 노래를 부른 남인수가 떠 난지 5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그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 깊이 자리하며 널리

불리고 있다.






1918년 10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1935년 가수로

데뷔하고 1937년 말「애수의 소야곡」으로

선풍을 일으키며 가수왕으로 등단해서 일세를

풍미한 가수로 활동하다가 1962년 6월 26일 세상을

뜬 남인수! 44년의 인생역정, 27년의 노래인생, 그 짧은

삶을 그토록 바삐 살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 경우도 많지 않기에 2005년 춘하추동방송이

문을 연이래 그에 관한 수많은 글을 써

올렸고 노래를 실었다.






어렵던 초기시절과는 달리

글 써 올리는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고

그 간에 송방송 저, 한겨레 음악 대사전이

나오고 인터넷 상에서도 옛 신문기록 등을

볼 수가 있어서 더 큰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게 되어 보완된 이 글을 올린다.


남인수 인생역정에 있어서

늘 함께 했던 박시춘(朴是春),

이난영에 관한 얘기도 함께 곁들

이며   그동안 써 올렸던 관련

글을 골라 함께 올렸다.





무대에서는 늘 화려하고

즐겁게만 보이던 남인수의 젊은

시절과 말년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진주에서 태어난 남인수는 처음 이름이 최창수

(崔昌洙)였으나, 모친의 재혼으로 또는 양자로 가

강문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강문수는 어린 시절 봉래

보통학교를 나온 후 일본으로 건너가 17세까지 동경근처

사이다마 (埼玉)현 전구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던 그가 귀국

노래를 잘 부른다는 주위 분들의 말에 따라 '개다'를 신고

무작정 상경 시에론 레코드 문예부장 박영호(朴英鎬)를

만났고 박영호는    그 사람 됨됨이를 보고 같

레코드사에 근무하던 박시춘에게 소개했다.


1973년 3월 3일자와 5일자,

동아일보 연예수첩 가요반세기 21편,

22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박시춘의 말



"나도 시에론 레코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검은 무명

학생복에게다를 신은 총각 녀석이 찾아왔어요.

하이칼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왔더군요. 충무로

아서원 앞 3층 건물에서 테스트를 해보니 고음,

저음처리를 잘 했어요. (필자 주: 박영호는

조명암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대 작사가였다). 

 

강문수 노래실력을 테스트한

박시춘은 일본에 있을 때 본인이

작곡한 김상화 작사 「눈물의 해협은」을

연습시켜 18세의 강문수에게

취입시켰다. 






"현해탄 푸른 물에 밤이 내리면

임 잃고 고향 잃고 우는 저배야--"

현해탄의 관부 연락선에서 피고 지는 애틋한

사연을 품은 내용의 노래였다.







남인수의 본명인 강문수라는

이름으로 1936년에 <눈물의 해협>이

발표되고 그해 5월 30일 김해화 · 신난수와

함께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방송에 출연했는가

하면 그해 12월 「비 젖는 부두」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반응이 신통치를 않았다. 거기에 박시춘이 「시에론」에서

작곡한 「마지막 선물」,「희망의 노래」를 작곡 음반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반응이 신통치 않아 박시춘은

악극단 낭랑좌 娘娘座 밴드마스타가 되어

북한으로 공연을 떠났고 강문수는

다른 레코드사를 드나든다. 


 



박시춘은 말한다.



함경도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청진으로 전보가 왔어요.’ OK에 근무하던

친구 ‘강사랑’으로 부터 OK에서 전속으로 채용 할

터이니 오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로부터 박시춘은

다시 돌아와    40원을 받는   OK전속 작곡가가 되었다.

'시에레온'에서  음반을 만들어  실패한 「눈물의 해협」을

「애수의 소야곡」으로 노래이름을 바꾸고 이부풍(李扶風)이

가사를 새로 써 「강문수」를 「남인수」 라는 예명으로

레코드를 제작 발매 하면서 OK 사상 최고의 히트곡이

되고 불멸의 기린아 「남인수 · 박시춘」이 새로

탄생 한 것이다. 강문수는 「눈물의 해협」

으로 데뷔한지 1년 OK로 옮겨온 지 1달

만에 선배 이난영, 고복수와 함께

중진 가수가 되어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이때 조선에서 활동한

콜럼비아, 포리돌, 빅터, OK, 시에론

5개의 레코드 회사 중 OK는 조선인이 경영

하는 유일한 레코드 회사로 사장은 이철이었다.

경영감각이 뛰어난     이철 사장은 다른 레코드사

소속으로 되어 있던 ‘이난영’, 을 영입 ‘목포의 눈물’

대 히트작을 냈고, ‘고복수’를 영입 ‘타향’ 대 히트작을

내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여기에 강문수가

제 발로 와 OK 문을 두드리자 강문수 · 박시춘의 관계를

 알고 있던 이철 사장은 둘을  다시   만나게 해서

대단한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다. 

 





남인수의 대표곡이

애수의 소야곡이라면 그 애수의

소야곡과 가사만  다를 뿐  곡이 같은

눈물의 해협은 남인수의 데뷔곡이었다. 같은

곡을 같은 사람이 불렀어도     운용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OK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성의

가수 탄생」 이라는 레코드사의 캐치프레이즈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박시춘도

1973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남인수를

100년에 한번 나올 가. 말 가 한

대 가수라고 했다.


남인수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1938년 4년 만에 다시

일본을 찾았다.       1973년 3월

3일자 동아일보를 인용한다.




 

저음과 고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3옥타브의 음역을 지닌 특유한 음성은

국민 모두의 심금을 울리면서 일제강점기부터

8.15광복, 6.25, 7.27휴전, 4.19, 5.16등을 겪으면서

그 시대에 부응하는 노래로 국민들과 함께했다. 남인수는

해방될 때까지     무려 800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불렀고

해방 후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200 여곡의 노래를

더 불러    1,000여곡의  노래를  남겼다. 쉼 없는

노래를 불렀기에  일제강점기 때 부른 노래의

일부가 문제가 되어 뒷날 친일파 인명

사전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춘하추동방송에 드나들며

옛 노래 글을 올려 주셨던

운수납자님이 남인수의

연도별 히트송을 정리

해주기도 했다.


“눈물의 해협>은 36년 7월,

<흑마탄식>은 38년,

<울며 헤진 부산항>은 40년,

<청춘항구>, <비오는 상삼봉>은 41년,

<어머님 안심 하소서>는 43년,

<무정천리>는41년,

<고향은 내 사랑>,<이별의 부산정거장>,

<고향의 그림자>는 54년,<추억의 소야곡>은

55년에 각각 발표된 작품입니다.”





쉼 없이 활동하던 남인수 이었지만

1943년부터 병마의 침입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8.15 해방직전 OK레코드의 "OK

싱깅팀"이평양 제일극장 "금천대좌"에서

악극 춘향전을 공연할 때였다. 

 

이도령 역의 남인수가 어사출두

장면에 달려 나오다가 퍽 쓰러졌다.

관중들은 그것이 연기인 줄 알았다.

남인수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나오고 결국은 난리와 아우성속

에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남인수는 악화된 폐병 속에서도

약을 먹으면서 관중들의 환호 속에

대공연을 계속했다.   병 치료를 위해

돈 관리에 인색,    별명이  ‘돈 인수’ 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급회사원의 월급이 40원

이던 시절 남인수의 극단 전속료는 5,000원,

월급이 100원으로 대단한 수입이 있었

지만 병 치료에 많은 돈을 썼다.


그의 말년 얘기가

1973년 동아일보에서

박시춘과 인터뷰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인용했다. 







 

반듯한 매너에,

술, 담배를 멀리하면서

바른 생활 태도는 뭇 가수들의

모범이 됐고  진정한 '서정가요의

황제'라고     일컬어 지기도   했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그가 남긴 주옥같은        1,000여 곡들은

때론 나라 없는 설움을 달래주기도 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에 위안을

주기도 했으며 못살던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었다. 국민가수

라고 불린 이유다.





1937년 OK에서 다시 만난

강문수 · 박시춘은 일생동안 명콤비가

되어 불후의 명곡들을 남겼고 선배 이난영은

6.25로 납북당한 남편 김해송을 잃은 후, 역시

 부인 김운화와     이혼하고   山紅이라는 팬과의

사랑을 나누다가 해어진 이래 배우자가 없었던

남인수와 삶을 같이 하기도 했다. 



 


남인수·이난영의 인연은 깊고

넓다. 남인수가 있는 곳에는 이난영이

있었고 이난영이 있는 곳에는 남인수가 있었다.

둘이 같이 공개방송에 출연 할 때면   아나운서가

‘부부가수’ 라는   소개 멘트를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졌고   남인수   마지막 가는 그 모습을

지켜본 이도 이난영이다. 그가 가던 장례식장

에서 가장 큰 슬픔을 머금고 통곡

하던 이도 이난영이다. 




위는 공개방송 출연자들과 함께 한

남인수, 이난영(중앙)이고 래 왼쪽사진은

1941년 당시의 부인 김운화와 가수 백난아



 

1961부터 한국가수협회 회장,

연예인협회 부회장을 하던 남인수는

1962년 6월 26일 향년 44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6월 30일 남인수의 장례식은

연예인협회 장으로 조계사에서 애수의 소야곡

주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던 노래 ‘낙화유수’

노래를 부르며 보내드렸다.


그가 떠난 뒤,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음악회를 연다.

더 자세한 사항은  관련 글을

 연결하는것으로 대신한다.



애수의 소야곡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잊을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모두다 흘러가면 덧없건 만은

외로운 별을안고 밤을 세우면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 하고나 




유경환 (유카리나)여사님 


 

2017.10.10 06:47

글을 읽어 내려가며 남인수에

관한 관련 자료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있겠나하며 감탄하게 됩니다.

또한 위의 동영상 게시물들에 표시된 각각의

조회 수를 보며 또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군요.

사람이 일생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가지며

살다가 가는 것이지만, 44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만나고 헤어짐의 인연들이, 그분의

가수인생에 절묘한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선천적인 좋은 목소리는

부모님으로부터 타고나야 한다지만,

어려운 시대적 환경조차도 그분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밝고, 기쁘고 즐거운

노래만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한스러운 멜로디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고,

또한 그런 느낌들이 우리에게      '치유'를 해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분이 떠나신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최근까지도  서울 도심에서  그 추모모임이

이어지고 있는 줄은 이 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어요.

제가 가금씩 찾는 인사동  ‘시가연’에서였군요.

.

저의 은사님이 애수의 소야곡을 좋아하셔서,

몇년전 은사님의 8순 잔치에 가서 이 애수의

소야곡과 스승의 은혜를 오카리나로 불어

축하 해 드렸었는데, 동영상을 남기지

못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한 5년 쯤 전인지, 제주 갓을 때,

이중섭씨가 살던 집 근처 조그만 정원인지

인지 옆에 있는데,스피커 장치로 '남인수의

'서귀포 70리' 라는 노래를 남인수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설치 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 노래를 들어볼 수 있었지요

이장춘

2017.10.10 18:08

유 여사님 글 감동입니다.

또다시 그 곡을 연주사실 기회가

되시면 제가 그 노래 연주

하실 때 가겠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동영상, 최고의 미성가수 남인수님

http://blog.daum.net/jc21th/17780423

 

남인수와 박시춘

http://blog.daum.net/jc21th/17780751


1935년, 남인수 데뷰곡, 눈물의 해협 

http://blog.daum.net/jc21th/17780447


동영상, 남인수의 황성옛터

http://blog.daum.net/jc21th/17780448


남인수 53주기 246곡 전곡 특별감상회 14시간 유정천리

http://blog.daum.net/jc21th/17782540


유정천리 옛 가요사랑

http://blog.daum.net/jc21th/17782314

 

낙화유수 작곡가 이봉룡과 남인수의 노래 조명암작사 박남포(반야월)개사

http://blog.daum.net/jc21th/17781621


민중과 더불어 산 가요 한평생 박시춘, 이별의 부산정거장

http://blog.daum.net/jc21th/17780298


박시춘 손목인, KBS 최초 전속 경음악단 지휘자

http://blog.daum.net/jc21th/17780881


남인수와 이난영 동영상 노래모음

http://blog.daum.net/jc21th/17781967


이난영 탄생! 100년, 목포의 눈물 82년!

http://blog.daum.net/jc21th/17782891


이난영 김해송가족과 가요 노래 남행열차  

http://blog.daum.net/jc21th/17781944

 

남인수의 생애, 애수의 소야곡과 눈물의 해협 (동영상 남인수 타계 장례)

http://blog.daum.net/jc21th/17781174

 

이난영의 생애,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 시립교향악단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1371

  

김 시스터즈,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스타 여성 보컬그룹 김씨스터즈

http://blog.daum.net/jc21th/17781378




남인수 노래 가사모음




낙화유수


 

 조명암 작사

박남포 개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 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 냐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

꽃다운 이강산에 봄맞이 가세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 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청춘은 언제 또 피나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황성옛터


 

작사 왕   평

작곡 전수린

노래 남인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없난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난 이 설음을 가슴 속 깊이 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나는 사람이 아니외다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하늘도 날 버리고 세상도 날 버리고

돌에도 나무에도 붙일 곳 없는 신세

한강수 푸른 물에 던지고 싶은 이 목숨

살아서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손구락 (손가락)도 발구락 (발가락)도 내 것이 아니외다 

 

사랑도 날버리고 친구도 날버리고

날보면 피해가네 침뱉고 돌아가네

달리는 철길 우(위)에 깔리고 싶은 이목숨

이름만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다빠진 두 눈썹도 내것이 아니외다 


 

물방아 사랑


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1937년 OK레코드


달뜨는 저녁에 지은 맹세가

꽃피는 아침에 시들었구려

뜬세상 인정은 이런것이냐

울어야 옳으냐 아-춘홍씨 웃어야 하랴


맹세는 덧없고 상처는 크다

원수의 미련만 어이길던고

눈물은 구비쳐 하염이 없고

한숨은 길어서 아 - 춘홍씨 속절이 없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심사

화류계 사랑은 벙어리사랑

황금과 사랑은 돌고 도는 것

화류계 사랑은 아 -춘홍씨 물방아사랑 


 

울리는 만주선


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남인수 노래

1938년 OK레코드


푹푹칙칙 푹푹칙칙 뛰이-

떠난다 타관천리 안개서린 응- 벌판을

정을 들고 못살바엔 아 - 이별이 좋다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하늘은 청황적색 저녁노을 떠돌고

차창에는 담배연기 서릿 서릿 서릿 서릿 풀린다 풀린다


푹푹칙칙 푹푹칙칙 뛰이-

넘는다 교랑숲을 파도치는 응- 언덕을

허물어진 사랑에는 아 - 이별이 좋다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한정없는 동서남북 지평선은 저물고

가슴속엔 고향산천 가뭄 가뭄 가뭄 가뭄 비친다 비친다


푹푹 칙칙 푹푹 칙칙 뛰이-

건는다 검정다리 달빛어린 응 - 철교를

고향에 못살바엔 아 - 타향이 좋다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크고 작은 정거장엔 기적소리 남기고

찾아가는 그 세상은 나도나도 나도나도 모른다 모른다 


 

눈오는 네온가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1940년 OK레코드


이등잔 저등잔에 불은 꺼지고

넘어진 술잔마다 서리는 피눈물

울다가 만져보는 치맛자락엔

그누가 그누가 쏟았는가 술이어렸다. 

 

이들창 저들창에 눈은 퍼붙고

쓰러진 테이블엔 휘도는 긴한숨

울다가 맺어보는 저고리 끈은

그누가 그누가 뜯었는가 험집이 젔다


이거리 저거리에 밤은 깊었고

가슴은 생각마다 두말을 구르네

울다가 찾아보는 머리의 꽃은

그누가 그누가 가져갔나 종적이 없네



인생선



김다인 작사

이봉룡 작곡

1942년 OK레코드


똑같은 정거장이요 똑같은 철길인데

시름길 웃음길이 이어한 한길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아득한 인생선에 달이 뜬다 해가 뜬다


똑같은 시그넬이요 똑같은 깃발인데

고향길 타관길이 어이한 한길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아득한 인생선에 비가온다 눈이온다

.

사나이 옷고름이 바람에 나부낄 때

연기는 구불구불 희망의 깃발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아득한 인생선에 밤이 온다 꿈이 온다




화        보























남인수 작곡가 박시춘 이난영,

젊은시절  남인수 (맨왼쪽) 고향인 진주
촉석루, 작사가 구완회 (오른쪽에서 두번째 ), 
 작사가 박영호   (오른쪽) 과 함께한 사진,  


 1939년 OK악극단시절의 연예인들입니다. 이철단장과 이봉룡, 남인수를 비롯해서 손목인,

이난영, 서봉희, 이화자, 김정구등 그 시절의 이름있던 연예인들이 함께 했다.

 

 

가요무대 1,000회 특집


  

 


글을 읽어내려가며 남인수에 관한 관련자료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있겠나하며 감탄하게 됩니다.
또한 위의 동영상 게시물들에 표시된 각각의 조횟수를 보며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군요.

사람이 일생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가지며 살다가 가는 것이지만, 44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만나고 헤어짐의 인연들이,
그분의 가수인생에 절묘한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선천적인 좋은 목소리는 부모님으로부터 타고나야 한다지만, 어려운 시대적 환경조차도 그분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밝고, 기쁘고 즐거운 노래만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한스러운 멜로디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고,
또한 그런 느낌들이 우리에게 '치유'를 해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분이 떠나신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최근까지도 서울 도심에서 그 추모모임이 이어지고 있는줄은 이 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어요.
제가 가금씩 찾는 인사동 시가연에서였군요.
저의 은사님이 애수의 소야곡을 좋아하셔서, 몇년전 은사님의 8순 잔치에가서 이 애수의 소야곡과 스승의 은혜를 오카리나로 불어
축하 해 드렸었는데, 동영상을 남기지 못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유여사님 글 감동입니다.
또다시 그 곡을 연주사실 기회가 되시면 제가 그노래 연주하실때 가겠습니다.
다음에 올렸던 G선상의 아리아, 황성엣터 등 유여사님 곡에 붙은 수많은 조회수가 카키어톡으로 간 이래 표시가 되지 않으니 아쉽습니다. 어딘가 표시가 될터인데 제가 확인을 할 수가 없군요.
비밀댓글입니다
한 5년 쯤 전인지, 제주 갓을 때, 이중섭씨가 살던 집 근처 조그만 정원인지 뜰인지 옆에 있는데,
스피커 장치로 '남인수의 '서귀포 70리' 라는 노래를 남인수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설치 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 노래를 들어볼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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