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6. 7. 27. 01:36

 

 







박종세 아나운서! 5.16 첫방송을 한

주인공이다.  2004년  ◀ 방송, 야구 그리고

나의 삶 ▶ 이라는 회고록이 출판 될 때 그 내용이

생생하게 공개되었고, 그때 춘하추동방송은 그 내용의

전문을 올려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 글을 보았다. 그때까지 

주변 얘기로 전해오던 여러 얘기들은 하나로 모아졌다.

 박종세 아나운서5.16 55년을 맞아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에 특별기고문을    올렸다. 이 글은

회보에 오른 글 전문이다. 






5·16 첫 방송, 55년 전 그 날은

권총 위협 끝에 5시 뉴스 대신 행진곡과

 함께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5.16 궐기 취지문 읽어 1961년 5월 16일, 5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라일락 꽃 향기가

유난히 진하던 늦봄,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현장 

 한복판 서 있었다. 전 날 야구 중계방송을 마치고

복귀해 지친 몸으로 밤 방송 까지 끝낸 나는

새벽 1시에 3층 숙직실로 올라갔다.


그 날 남산 KBS 숙직자는 프로듀서 박종민,

음악 프로듀서 도상보, 기자 김기주, 기술 한영식,

임시현, 아나운서 박종세, 송영규 등 7 명. 그 중 연장자는

 도상보 PD였지만 방송국 직급으로는 26세 의 내가 야간 당직

 책임자였다. 새벽 4시경, 정문 수위가 다급한 목소리로 깨워

현관으로 내려가니 헌병들이 깔려 있었다. 책임자 말이

 “정체불명의 군 인들이 김포에서 진격하고 있다.


서울에 오면 방송국을 접수하려

할 것이니 지켜주러 왔다.”는 것이었다.

걱정에 휩싸인 채 10분쯤 지났을까. 헌병들이

 서둘러 빠져나가더니, 채 5분도 안 돼 얼룩무늬 군복의

 공수부대 장병들이 들이닥쳤다. 일제히 총 을 쏘아대는 요란한

소리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하늘을 향한 총구銃口가 돌격 명령

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엔 온 몸이 벌집이 되는 듯

지레 죽을 지경이었다. 숙직자들은 수색 중대장 출신

 도상보 PD를 따라 1층 보도국 안에 있는

 텔레타이프실로 피신했다.


  6.25 때 납치되었다는 윤 용로,

전인국 선배들 이름이 떠올랐다. 얼마 후

 누군가 문을 두 드리며 “거기 박종세 아나운서

 있습니까?” 하며 나를 찾았다. 정중한 목소리에 안도하고

따라나선 나는 2층 계단 앞에서 별 두 개인 장성과 마주쳤다.

“박종세 아나운서입니까? 나 박정희 라고 하오.” 하며 악수를 청한

박 소장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 하고는 5시 정각에 방송해달라면서

 전단을 내밀었다. 쭉 훑어보니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명의 의 격문이었다. 일단 북한군이나 정체불명의 군부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과거 정치인들 이 쓰던

 관념적 용어에서 벗어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실용적인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은 레지스탕스 부대장 같던

박 소장 조카사위, 김종필 예비역 중령이

썼다고 한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박 장군님이 직접

 방송하시고,     제가 소개 멘트를 하면 어떨까요?”라고

했지만, 박 소장은 단호하게 “박 아 나운서가 하시오.”라고

말했다. 나중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 하기를, ‘무엇보다

 국민이 편안하게 듣고   안심할 수 있도록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아나운서가 낭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거사군 쪽에서 직접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 안에 엔지니어가

없다는 사실에 난감해진 나 는 “엔지니어가

 필요합니다. 저 혼자서 방송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한웅진 중령이란 자가 “방송 못 하면,

당신 죽을 줄 알아.” 하며 권총을 장전하지 않는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는 현기증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4시 55분쯤

극적으로 엔지니어들이 돌아왔다.    명동으로 피 신했다가

 ‘방송은 내보내야 되지 않나’     생각해 돌아온 그들이

구세주 같았다. 남산연주소에서 아리랑타령으로

연희송신소와 연락을 하고 애국가에 이어

 5시 정각에 첫 방송이 송출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방송 시작 30분 전에

보내야 할 아리랑이 5시 직전에 울리기 시작

했고, 뉴스가 아니라 7호 스튜디오에서 행 진곡과 함께

 5.16 궐기 취지문이 낭독되었다는 것이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미명今朝未明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 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점차 평온을

 되찾고 담담한 목소리로 6개항의 공약을 읽어 내려갔다.


그 날, 숙직 아나운서는 둘이었지만

 방송 담당 이석재 중령(전 감사원장)이 나만

방송하라고 지시해, 송영규 아나운서는 보조 자리에서

 행진곡 등 음악을 틀거나 콜사인 등 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나 이외에 그 당시 숙직자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그 분들이 그립고, 명복을 비는 바이다.

리고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오며 너무나 큰 행운을

주신 하늘과    그리고  사랑을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박종세 아나운서,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의 현장

http://blog.daum.net/jc21th/17782499


5. 16 새벽 첫 방송 박종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61

 

박종세 아나운서와 야구, 한국야구 반세기 생생한 현장기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157

 

5.16 새벽 첫 방송 그로부터 반세기에 올리는 그때 그 아나운서 박종세님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1982

 

 TBC 동양방송 아나운서 이름(명단) 그때 그 얼굴들

http://blog.daum.net/jc21th/17782344

 

임택근, 전영우, 이광재, 박종세, 1960년대 방송 4사 대표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011

 

1960년대 KBS라디오 게임과 박종세 아나운서 PD 김석호 이상익 

http://blog.daum.net/jc21th/17782567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최초로 공개하는 1960년 70년대 사진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610

  

동영상, 아씨 출연진 253회 최종회에서의 특집좌담 그때 그 방송 사회 박종세

http://blog.daum.net/jc21th/17781802


1960년대의 KBS라디오 께임 사회 박종세 PD 이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