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장춘 2009. 6. 8. 04:36

  

 

 

 6.25발발 3일간의 중앙방송국 (3) 

 

 -전쟁 와중의 보도의 실태- 

 

공산군은 물밀듯이 밀려와

6월 27일세벽 벌써 의정부를 넘어섰고
당황한 정부는 이날 새벽 3시에 국무회의를 열어
정부를 수원으로 옮길것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런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정부밖에 없었고 국민의 유잏한 소식원이었던
방송은 갈팡 질팡해서 혼란만을 키우면서
더 많은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은 군이 제공하는 뉴스외에는
취재가 불가능했다.  길도 막히고 사람도,  
장비도 없고 또 설사 취재를 한다해도 군 통제하에서
군이 허용하는  뉴스만이 허용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현실이었다.

 

그런가운데 27일 새벽 6시가  조금
못 되었을 때 정동 중앙 방송국 현관 앞에
한 대의 찦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급정거 했다.
한국방송 70년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윽고 찦차에서 내려 온 사람은
국무총리 서리겸 국방부장관 신성모의
비서였다.   신성모의 비서는 방송국으로
들어오자 마자 숙직간부를 찾았다.
 
 숙직간부였던 민재호 방송과장이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하고 묻자
 
“여기 적혀 있는 내용을 곧 방송해 주십시오."
 
 하고는 인사도 없이 다시 총총히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아직 선잠이 덜 깨 민재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는 곧 신성모가 전해준 종이 족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정부가 수원으로 천도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문면의 맨 끝에는 신장관의 친필 싸인 까지 되어 있었다.
민재호는 재삼 검토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내용을
아나운서에게 넘겨주고 6시 시보때 방송하라고 했다.
 이윽고  6시정각이 되자 아나운서는 정부 천도를
 발표했다.  전파는 순식간에 전국 방방
곡곡에  번져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을 못잡는 국민들,
그 중에서도 서울 시민들 귀에 전해진 이 뜻밖의
 천도 방송은 흔들리는 마음을 더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새벽 6시 방송을 들은 서울 시민들은 너 나 없이 피난 보따리를
 싸기 시작 했다.    그런데 이거 또 웬일인가?   천도 뉴스가
나간지 불과 한 시간이 못되어 공보처로부터 아까 
그 천도 방송을 취소하라고 요구 해 왔다.
 
뿐만 아니라 누구 명령으로
그런 중대 방송을 했느냐고 야단치는 것이다.
아나운서는 같은 입으로  정부 천도방송은
 오보이니 취소한다는 방송을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방송을 믿어
피난 보따리를 싸다가 풀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안하기가 이를때 없었고
방송도 믿을것이 못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오전 11시에는
 북한 공군기가 서울 상공을 내습해서 
공포감을 조성 할 뿐만 아니라 방송이 한때
중단되기까지  했다.  또 방송국안에 있던 좌익계
 직원들은 이른바 방송국 유지위원회를 조직했다가
 육군본부에서출동한 1개 소대 병력에 의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이날 오후 4시 방송에서는 맥아더
사령부가 28일, 서울에 전방지휘소를 설치하기로 
했다는  전혀 사실과 다른 엉뚱한 보도가 나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일도  있고 보니 
아수라장 그것이었다.
 
답답해진  방송국은  직접 전선을
취재 볼 수 없을까하고   이성수,홍양보
두 아나운서를 여의도 비행장으로  보냈지만  
군용기를 아나운서에게 배려 할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이성수 아나운서는
 방송국으로 돌아오고  홍양보 아나운서가
남아  있었지만 끝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이미 일방통행로가 되어 한강을 다시 건널 수
없게 된 홍양보는  피난길 따라 남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에 남아있던 직원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방송국장을
포함한 일부 간부는  직원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강을 건너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은 대전에서
만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었겠는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그때는 그렇게 되었다.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북한과 전쟁을 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호언장담하던 국방 책임자 신성모,
그는 그때 국무총리 서리이기도 했다. 말과는 반대로 공산군의 침략 개시
이틀도 안되어 서울이전을 결정했고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민족의 비극이 야기되었다.  정동 방송국을 비롯한 서울의
중심부는 잿더미가 되었다. 이사진은 1950년

10월 18일에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