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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춘 2015. 9. 2. 12:24

 

 

 

8월 31일 아침 산책중에 한중광선생으로부터

해괴한 멧세이지 한통을 받았다.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비판하면서

박대통령을 일본 낭인들에 의해서 시해된 명성황후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일본, 개인도

아닌 한 유력신문사가 어찌 그런 기사를 실을 수 있단 말인가.     원래

춘하추동방송은 시사작인 얘기, 정치성이 깃든 예기는 언급하지 않지만

중국의 전승절을 맞아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2015년 광복절 70주년 공개방송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두가 함께 부른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올렸다.

 

 

 광복절 전승절 박근혜대통령 명성황후

 

 

 8월 15일은 우리나라 광복절이고  

9월 3일은 중국의 전승절이다. 날자는 달라도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나라를 되 찾은 날과 전쟁에서

 일본을 이긴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절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라면 전승절은 중국이 만주를 빼앗기고, 대만을

빼앗기고  1937년 본토 침랙을 받8년간이나 시달리던 전쟁에서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전승국이 된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다시

말하면  8월 15일은 히로히도가 항복을 발표한 날이고  9월 2일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공식적으로 서명한 날이다.  미국동양은 하루의 시치가

 있고 중국은 그 항복문서 접수한날 기준으로 9월 3일을 전승일로

 해서 우리나라 광복절과 비슷한 개념으로 기념행사를 한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뜻을 같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조말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에 

어떻게든지 나라를 지켜 내려고 온갖 힘을 다

기울이던 명성황후였다. 조선침략의 야심을 품었

일본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구중궁궐 깊은곳

 건청궁에 테러분자들을 보내어 국모 명성황후를 가장 못된 방법으로

시해했다. 인류역사에 이런일은 없었다. 한겨레 한민족의 천추의 한이다. 

마침네 일본은 조선을 자기들 손아귀에어넣었다. 그리고는 중국의 만주,

대만을 집어 삼키고 1937년부터는 중국대륙을 향해 총뿌리를 겨누었다.

이로인해 중국은 전쟁의 와중에서 수많은 목숨을 잃으먀 피눈물 나는

고통을 당하면서 산골짜기 중경까지 쫗겨갔다.  중국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벌리던 우리 동포들도 수난을 당하면서 산길

따라 물길다라 몸을 숨기며 중경까지 갔다.

 

그시절 중국은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동포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중국인들은 일본에게

당한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릴 것이다. 난징에서 30만이

학살되어 양자강을 피로 물들였다고 한다.  역사의 죄인들이 역사의

주인공인양 행세하는 것을 보면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명성황후와  비교 된다면  명성황후 시해 때

 처럼 또 무슨 일이라도 저질러 보겠다는 것인가.

 

 

 

 

 

전승절 미리보는 화면

 

 

 

 

 

광복절, 전승절 좀더 크게 보면 일본

항복으로 맞은 한국과 중국 한 마음일 수 있다. 

그럴진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에 가는것이

무엇이 잘못됐다는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뜻을 같이하는 세게

전인류과 보조를 같이한다.   미국도 중국도, 그밖에 세계 전인류와

함께 한다.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뜻을 같이 한다면 일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죄인이 역사의

주인인양 행세하고 심지어  미국과 대한민국을 때로는 이나라

저나라 이간질이나 하는 행위가 일본이 해야 할 일인가?

밀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해서 필자가 쓴

글과 전승절 미리보기 동영상과 일본항복

 동영상을 연결한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건청궁 명성황(왕)후의 최후 이토 히로부미 을미사변 을사조약 한일합방
  http://blog.daum.net/jc21th/17781829

KBS 드라마 명성황후(2001) 

http://blog.daum.net/jc21th/17781107

 

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09

 

 

 

전승절 열병식 미리보기

 

 

 

 

 

일본 항복실황 그때 그 동영상 (미주리함)

 

-1945년 9월 2일-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역사는 진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못된 섬나라 나리들은 이것을 안 보고 있나

 봅니다.  나라 잃은 설음이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흙다시 만져 보자, 바다물도 춤을 춘다.' 라고 광복절

 노래 가사를 썼을까요? 사과 할 줄을 모르고 날 뛰는 족속들,
36년간 식민지로 우리나라를 지배 하고, 온갖 못된짖을 다

해놓고,  그것도 모자라 국빈으로 중국에 가신 우리 대통령을

욕 하는 새끼들,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기에 이제 서서히

바다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 들어 가고

있습니다.사요나라, 닙본!......

 

 

미주리함 항복실황 내용

 

 

할지(Halsey)제독이 지휘하는 53,000톤인 미국 제3함대 기함인

 전함 미주리함은 오늘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본의 완전한 항복의식이

거행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도쿄만내에서는 미국구축함인 뷰커넌함이 이 일본의

 항복의식에 참가하려는 연합국 측 대표들을 태우고 미주리 함에 계류치 접근중입니다.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지위로 맥아더(Douglas MacArthur)장군이 승함하십니다.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Nimitz)제독과 ,할지제독이 맥아더 장군과 참모장인 서더랜드(Sutherland) 장군을

영접합니다. 니미츠 제독이 20분간 항복의식이 거행될 갑판으로 맥아더장군을 에스코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945년9월2일 입니다. 미주리함상에는 ,붐비는 국제연합군 대표들이

 일장기가 그려진 기념카드를 살피고 있는 가운데 각국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합니다.

 

이제 해군이 보낸 단정 편으로 일본의 항복대표단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단은 수년 전 상해에서 코리아의 애국자가 던진 폭탄에 다리를 잃고

의족에 의지하고 있는 일본의 항복내각 마모루 시게미츠(Mamoru Shigemitsu) 외상입니다.

일본의 항복대표들은 연합국 측의 테이블 반대편에 도열합니다. 중국에서의 전쟁은 8년째

접어들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이 3년9개월이라는 기간에 걸친 치열한 총력전쟁 노력이

이제 동방에서 벌어진 인류역사상 가장 값비싼, 잔학하고 치명적인 전쟁이

수분 안에 종결되려합니다. 맥아더장군께서 연설하십니다.

 

" 평화가 정착될지 모를 엄숙한 협정문을 체결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 주요 전쟁 당사국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문제는 전 세계 전장에서 이미 결판났기 때문에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일본제국군대에게 제시되어 수락될 항복 규약과 조건들이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항복문서 내에 명시 되어있습니다.

 

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서 이제 본인은 제가 대표하는 국가의

전통에 따라 확고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즉, 본인의 목적은

 항복조건의 완전, 성실 이행이 보장되기 위한 모든 필요조치를 취함으로서

공명정대하게 그 의무와 절차를완수하는 것입니다. 이제 일본 천황대표,

일본정부, 일본제국군 지휘부는 항복문서상 표시된 곳에 서명하십시오."

 

시게미츠가 항복문서 테이블로 나옵니다.

 

이 극적인 최초영상은 뉴스영화 제작 특파원과 미육군,

 해군 카메라맨이 제작하여 도쿄로부터 특별공수 되었습니다.

현재시간은 오전9시5분이며, 일본인들이 승함한지 정확히10분이 되었습니다.

일본제국군 총참모부 야시지로 우메츠가 일본제국육군을 대표하여 서명합니다.

본 군대가 완전한 무기투항에 동의하고, 맥아더 장군이 발하는 제반 명령을

준수하기로 한 항복문서는 피폐된 마닐라 지하에서 발견된

드문 양피지로 미 육군이 인쇄하였습니다.

 

이제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서 서명하십니다.

 

첫 번 째 펜은 코레기도 전투의 웨인라이트 (Wainwright)장군에게 건네지며,

두 번 째 펜은 항복된 싱가포르 사령관인 영국의 퍼시벌 장군에게 전달됩니다. 일본제국주의

테러와 침략 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일본에게 가장중요한 문서에 서명하기위하여 맥아더 장군은

모두 6개의 펜을 사용합니다. 미합중국전군을 대표하여 체스 터니미츠 제독이 서명하고 있으며,

그 뒤로 미제3함대 사령관인 할지제독과 ,유명한 수륙양용군사령관인 셔먼(Sherman) 제독이

 서명합니다.중국국가위원회의 수영창 (Hsu Young-Ch’ang)장군이 서명하고, 뒤이어

영국태평양함대사령관 브루스 후레이져(Bruce Fraser)제독이 서명합니다.

 

쿠즈마 미꼴라이브치 되리브이양코(Kuzma Mykolaiovych Derevyanko)

중장이 소비에트 러시아를 대표 서명합니다. 뒤이어 ,오스트렐리아의 토마스 브레미

 (Thomas Blamey)장군이 서명합니다. 카나다의 로렌스 모어 커스그레이브(Lawrence Moore

 Cosgrave )대령이 서명합니다.아프리카와 파리의 영웅프랑스의 wi크 뤽클레어(Jacques LeClerc)

장군이 서명합니다.네델란드의 씨이엘헬후?(C.E.L. Helfrich )과 뉴질랜드의 앨앰이시트

 (L.M. Isitt )공군중장이 서명합니다.짧은 역사적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을

 종결하면서 맥아더 장군이 희망사항을 피력합니다.

 

"이제 세계평화가 회복되고 하느님께서 언제나 이를 보존하실 것을 기도합시다."

이 항복문서 조인 절차는 이제 종료되었습니다. 식이 종료됨에 따라 상공에는 일단의

미국 항공기 편대가 비행합니다. 최종적인 국제연합승리가 쟁취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평화가 여기에 깃듭니다(끝).

 

 

미주리함 항복실황 내용  영문

 

 

A battle ship Missouri, 53,000 ton flag ship of the admiral Halsey’s third fleet

 becomes the scene of an unforgettable ceremony marking the complete and formal surrender

 of Japan.In the bay of Tokyo itself, United States destroyer Buchanan comes alongside bringing

 representatives of allied power to witness the final capitulation.

General of the army, Douglas MacArthur, supreme allied commander

 for the occupation of Japan, boards the Missouri.

Fleet admiral Nimitz, Pacific fleet commander and admiral Halsey welcome

 MacArthur and his chief of staff, general Sutherland aboard.

Admiral Nimitz escorts MacArthur to the Missouri veranda deck

where the twenty-minute ceremony is to take place. It is Sunday, September second,

1945.Cameramen and reporters of many countries record this historic

moment as United Nations military leaders crowd aboard the Missouri and examine

souvenir cards bearing Japanese flag, special mementos of the occasion.

And now in a navy launch, the Japanese surrender party arrives. They are headed by

 agent Mamoru Shigemitsu, foreign minister of the Japanese surrender cabinet.

 He was wounded by a Korean patriot in Shanghai years ago and walks on an artificial leg.

Japanese delegation lines up on the opposite side of the surrender table from the alliance.

 A war which had entered its eighth terrible year in China which had raged for three years

 and nine months for America and Britain which was the brutal, costly eastern half

of the most horrible world wide war in human history is now within minutes of ending

 for good.General MacArthur speaks:

“We are gathered here, representatives of the major warring powers to conclude

a solemn agreement whereby peace may be restored. Issues involving divergent ideals and

 ideologies have been determined on the battle fields of the world and hence are not for

our discussion or debate. The terms and conditions upon which surrender

of the Japanese imperial forces is here to be given and accepted are contained in the instrument

of surrender now before you.

As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I announce it my firm purpose in the

tradition of the countries I represent to proceed and discharge my responsibilities

with justice and tolerance while taking all necessary dispositions to ensure that

 the terms of surrender are fully, promptly, and faithfully complied with.

I now invite the representatives of the emperor of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Japanese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to sign the instrument of surrender

at the places indicated.”Mr. Shigemitsu comes to the surrender table.

These dramatic first pictures were made by newsreel war correspondents and army and navy

cameramen and were specially flown back from Tokyo. The time is 9:05 a.m. Japanese

have been on board exactly 10 minutes.

General Yoshijiro Umezu of the imperial general staff signs for the Japanese army.

The surrender documents by which Japan agrees to lay down

 arms completely and obey all allied orders issued by General

 MacArthur were printed by the army on a rare parchment

 found in a basement at ravaged Manila.

General MacArthur signs as supreme allied commander.

The first pen used is presented to General Wainwright of Corregidor.

The second pen to British General Percival, commander at the surrender of Singapore.

MacArthur used six pens in all affixing what will be the most

important signature in Japan to the document that ends permanently

 that nation’s regime of terror and aggression.

For the forces of United States itself,

 Admiral Chester Nimitz signs.

 Behind Nimitz are the third fleet’s Admiral Halsey and

Admiral Sherman, famed amphibious commander.

General Hsu Young-Ch’ang,

Chief of Military Operations for the Chinese National

Council signs for China.

Admiral Sir Bruce Fraser, commander of the British

 Pacific Fleet for the United Kingdom.

Lieutenant General Kuzma Mykolaiovych Derevyanko for Soviet Russia.

General Sir Thomas Blamey for Australia.

Colonel Lawrence Moore Cosgrave for Canada.

General Jacques LeClerc, hero of Africa and Paris for France.

Admiral C.E.L. Helfrich for the Netherland.

Air Vice-Marshal L.M. Isitt for New Zealand.

Concluding the brief history-making ceremony, General MacArthur expresses a wish.

“Let’s pray that peace be now restored to the world and that

 God will preserve it always. These proceedings are closed.”

Swarms of United States aircrafts fly in formation

overhead as ceremony ends.

The final United Nations victory has been won.

The war is over. Peace is here! (END)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애국가 광복 70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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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광복 70년.mp3  
   
비밀댓글입니다
역사는 진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못된 섬나라 나리들은
이것을 안 보고 있나 봅니다.나라 잃은 설음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흙다시 만져 보자, 바다물도 춤을 춘다.'
라고 광복절 노래 가사를 썼을까요?
사과 할 줄을 모르고 날 뛰는 족속들,
38년간 식민지로 우리나라를 지배 하고,
온갖 못된짖을 다 해놓고,그것도 모자라 국빈으로
중국에 가신 우리 대통령을 욕 하는 새끼들,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기에 이제 서서히 바다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 들어 가고 있습니다.사요나라, 닙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