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6. 5. 20. 11:39

 

 

 

방송역사 90년! 아나운서 역사 90년!

1927년 2월  16일 이옥경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갖가지

 화제를 뿌리며  고고의 소리를   (呱呱之聲) 울렸다.

 이옥경은 일본인 아나운서 미쓰나가와 함께 개국방송

 사회를 보며 정식방송을 내 보냈다. 방송역사의

 시작이자, 아나운서 역사의 시작이다



방송역사 아나운서 그이름 그 얼굴 KBS 한국방송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희소했던

시절이었지만 방송역사의 개시 목소리는

 여자로 부터 시작되었고    여자들의 직업이

하나 더 탄생했다.    그리고 개국에 때 맞추어

 한사람의 아나운서가  또 선발되었다. 그 아나운서

 마현경! 그 역시 여성이었다.     또 한사람의 방송인

편성원 최승일의 부인이었다. 최승일은 그 시절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의 큰 오빠다.






KBS 아나운서실에 가면

아나운서 역사가 담긴 석장으로된

족보가 있다.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이래  

서울에 있는 중앙방송국에서 근무한 아나운서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족보는 1964년에 처음 작성되었다.

그래서 첫장은 그때까지 서울에 근무한 아나운서가 적혀 있지만

몇분 빠진분도 있어서 이 글을 쓸때는 필자가 아는대로 보완했다.

또 한장은 이규항 아나운서실장시절 1979년에 작성된 것으로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의 정성어린 서체로 작성되었다.          그때 그 얘기가

 2015년에 발행된 '3인의 아나운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 족보에는 

1965년부터 1979년까지의 명단이 있다.      또 한장은 1980년대

방송통폐합으로 민영방송에서 합류한 아나운서들까지를 

망라한 인명록이다. 여기 기초해서 KBS 아나운서

 인명록을 모두 올린다. 이후 명단은

 필자가 작성했다.






이 족보에는 서울 아나운서실에

근무한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이어서 지역에서

근무한 아나운서는 없고 또 같은 기수라도 지역에서 근무

하다가 서울로 온 아나운서는 기록이 늦는 경우가 있다. 마현경

 아나운서 등 몇 분 누락 된 분도 있고 1940년 7월 31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이때 아나운서 공개모집에서 51명이 응시, 9명이 합격해서 합격

자는 박용신(법학전문 졸), 구본명 (경성제대 졸), 서정안 (연희 전문 졸),    

민재호 (연희 전문 졸), 이익령 (보성전문 졸), 이정호 (일본와세다대 졸),

여자 아나운서로는 이경환 (이화졸), 김윤길(경성보육 졸)등 이

합격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족보에는 박용신, 민재호,

이익령 세분만 기록되어 있다.



 


이런부분을 필자가 할 수 있는데

 까지 보완하고  지역방송국 아나운서는 해당

 방송국  역사를 쓸때 아는데로 써 넣을 것이다.

그리고 관련 사진을 함께 넣어 이해를 돕도록 할것이다.

일제강점기 1945년 8월 15일까지는 방송국에는 방송인으로

아나운서와 기술자만 선발되었고 기자나 프로듀서 선발은

없었다. 편성원도 아나운서로 선발되어 편성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나운서 역사 첫 머리에 오른 이름

( ) 안은 아나운서실 족보에 없는 이름이다.

이옥경, (마현경), 김영팔, 박충근, 남정준, (심훈-

상록수의 저자),   1933년 한국말방송 전담방송을 실시

하면서 새로운 아나운서를 선발했다. 이혜구, 이하윤, 이석훈,

김문경, 김준호, 정문택, 윤태림, 최아지   (최아지를 최정석으로

개명), 1933년 우리말전담 방송을 앞두고 촬영한 단체사진.

우리방송인들이 일본방송인과 함께 촬영한 방송부 직원들

사진으로 귀한 방송사료다.   KBS자료실에 있는

박충근 아나운서 엘범에 이 사진이 있다.






1934년 연말 특집 방송극을 끝낸

 제2방송과 직원들의 모습으로   그시절

제 2방송과 우리말 방송을 했던 이혜구, 김문경,

최아지, 이석훈, 박충근, 남정준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이다. 그 시절에는 방송과 직원이라면

아나운서를 의미했다. 





이계원, (송진근, 양제현-단파방송수신

 관련), 박용신, 고재경, 이현,  이원구, 송영호, 

 1930년대 말까지의 아나운서 이름이다. 지금까지 나온

아나운서 명단에서 빠져   괄호안에 넣은 성명 중 송진근은

월북을 했고 마현경의 남편 최승일이 월북한 사람이어서 극심한

 냉전시대에     그 성함을 포함하기가 어려웠을 듯하고 심훈(상록수

 작가) 은 잠시 근무하다가 퇴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양제헌은 뒷날

  편성원의 일을 보았기 때문일것이라고  생각된다. 1940년 7월 31일자

 조선일보 아나운서 합격자 명단에 나타난 아나운서 합격자 명단

 9명 중에서 3명만 기재된 것은 곧 퇴직했거나 지역에

배속된 아나운서가 있어서 라고 생각되지만

 신문내용대로 이름을 올린다.


이때 조선일보는 아나운서 공개모집에서

51명이 응시, 9명이합격해서 그 합격자는 박용신

(법학전문 졸),   구본명 (경성제대 졸), 서정안(연희

전문 졸), 민재호(연희 전문 졸), 이익령 (보성전문 졸),

 이정호 (일본와세다대 졸), 여자 아나운서로는 이경환

(이화졸), 김윤길(경성보육 졸) 등이 합격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때까지 재직한

아나운서의 사진을 모았다.





1943년 단파방송사건으로 송진근,

박용신, 이현 등 아나운서들이 방송국 문을

나서면서 윤길구, 이덕근, 장운표, 홍  준, 문제안,

다섯사람의 아나운서가 새로 들어왔다. 이때 들어온

아나운서들이 일제강점기 말 또는  해방공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문제안은 해방되던 다음날 구두로 기자발령을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기자가 되었고 이덕근은 보도계장,

연출과장이 되었으며 훗날 방송학자가 어 후진을 양성했다.

윤길구는 방송과장, 부산방송국장을 거쳐 국제방송국장,

두차례의 중앙방송국장을 지냈다. 윤길구의 사망때

오늘날 원로방송인들의 모임 사단범인 방우회

(한국방송인 동우회)가 창립되었다.



방송국에 같이 들어 오신 문제안, 윤길구, 장운표, 홍준님과 함께 한 사진



아래는 1947년 11월의 방송과 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이때 방송과에는 아나운서와

기자가 근함께 무했다. 번호따라 1.문제안, 2.이계원,

3.윤길구, 4.민재호, 5.전인국, 6.최용희, 7. 9.김인현,

10.이덕근,   12.강문수,  13.윤용노,  14. 편용호,

15.강준원, 16.이진섭, 17.홍준, 18.이성수,

 19. 위진록  7.  8.  ,11번은 미확인







해방전,후 그리고 해방공간, 6.25이전에

선발된 아나운서들이다.      전인국, 윤용노,

호기수가 해방될무렵 들어왔고 1945년 해방되던 해

새로운 여러병의 아나운서를 선발했다. 조봉순   (얄게

작가 - 조흔파), 강문수, 조준옥, 박인자, 노정팔 (아나운서로

 선발 되었지만 아나운서는 해본 적이 없다.) 이분들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다른 글에 있다.





1946년 부터 훌륭한 아나운서들이 많이

들어와 해방공간에서 부터 6.25를 거치는 동안

 활발한 활동을 했고   6.25가 일어나 홍양보, 위진록,

덕훈, 김유선 아나운서 처럼     VUNC나 VOA로 옮긴

 아나운서도 있다.  이진섭,   이성수,  장균, 서명석, 박광필,

황순덕, 장기범, 한희동, 임채흥,  박정희,  홍용기, 박남중,

 이성실, 이증원, 이옥열, 김영권, 최승주, 양현문, 양대석,

 공승규, 민영환, 김순철, 강익수, 이용훈, 양재현, 김유준,

 김경자 등이 이때 들어왔다. 위는 부산 피난

 시절에 촬영한 아나운서들 사진이다.






6.25 전쟁중 1951년 9월, 5사람의

아나운서가 선발되었다. 강찬선,  임택근, 

 황우겸, 정순형,  이수열, 홍일점, 정순형은 원래의

전공을 살려 의사가 되어 하와이에서 살았고   강찬선, 

 임택근,  황우겸은   1950년대,  60년대 아나운서의 중심

인물이었다. 이수열은 부산문화방송 창설의 주역이 되는 등

활동을 했고   KBS에서 퇴직했다. 위 사진은 장기범

 선생님 묘비 제막식 때 촬영한 사진으로 문시형

선생님은 당시 방우회 회장이었다.

아나운서는 아니다.






1957년 5월 1일부터 한달간에 걸쳐

실시한 제1회 아나운서 강습회 사진이다. 

서울 중앙방송국의 최계환, 이광재, 박종세, 임동순,

 장금자, 윤영중, 부산 전응덕, 최재희, 대구 권오상, 광주

 황의돈, 마산 서용수,  이완희,  청주 조창동, 이규영, 이리

 백기홍, 서정복, 이외에 기독교방송 1명,  육군 정훈국

 1명이 참여해서 촬영한 사진이다.(윤영중 제공)





부산에 있던 임시중앙 방송국이

서울로 와, 1954년 아나운서를 모집했다.

이때공모로 아나운서에 입문한 이가 최계환, 전영우, 

강영숙,  김인숙,  이순길 아나운서다. 무렵 이리방송국에서

무하던 윤영중, 최세훈, 그리고 부산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장금자

아나운서가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실에 합류했다. 1956년에는 박종세,

이광재, 임동순 등   남자 아나운서들이 들어왔고 1957년에 들어온 송석두,

문복순, 민병연, 송영필, 이현숙, 다섯명 가운데 남자는 송석두가 청일점었다. 

1954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여자 아나운서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

 1960년대에는 숫적으로 남, 여 아나운서가 균형를 이루면서 어린이 프로그램, 

음악, 주부 프로그램은  대부분 여성아나운서들의 몫이었다. 1957년의

 청일점 송석두는 기자로 전직했다. 뒷날 필자가 물었다. 왜?

전직했느냐? 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여자아나운서들 틈에

기가 죽어 옮겼다는 답이 왔다.    그 시절에

촬영한 두장의 사진을 올렸다.



 


1957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박종세, 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아래는 1958년 KBS 아나운서 앞줄 왼쪽부터

1.송영필, 2.강익수, 3.장기범, 4.임택근, 5.박종세,

 6.최세훈, 7.이규영,  8.강영숙, 9.전영우, 10.황우겸,

11.유석춘, 12.강찬선, 13.김동만, 14.최계환, 15.최두헌,

 16.문복순, 7.장금자, 18.유창경, 19.이광재, 20.한경희 

21.김준철,  22.최만린, 23.이현숙,  24.윤영중,

 25.조영준, 26.이본 (윤영중 아나운서 제공)


 




1950년대 중후반 아나운서



이종완, 임영, 심우성, 최세훈, 장금자,

고흥숙(고은정), 나현수, 윤영중, 이광재, 박종세, 

임동순, 송석두, 송영필, 문복순, 이현숙, 민병연, 이규영,

최두헌, 한경희, 윤석춘, 유창경, 김태권, 김동만, 최만린, 

이 본, 김준철, 조영준, 김주환, 김정현, 김경숙, 서선벽,

김현수, 송한규, 송영규, 김인권, 박노설, 이병열,

이 시절 석장의 사진을 올렸다. 




1958년 방송문화상제도가 생기면서

장기범 아나운서가 보도부문의    제1회

 방송문화상을 받던날 시상식이 끝난후 장기범

아나운서와 1.최계환, 강익수, 김인숙, 5.윤길구

방송과장,  7.문복순,   8.민병연,   9.강찬선,

11.이규영,  12.황우겸 (사진 문복순 제공)



 

 

1958년 봄 남산 중앙방송국 스카이라운지

에서 촬영한  사진 장기범 아나운서 실장을 비롯한

아나운서들, 그리고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이 함께 한

 사진으로  1.최두헌,  2.유창경, 3.최세훈, 4.한경희,  5.민병연,

 6.문복순, 7.황우겸,  8.장기범, 9..이강석, 10.강익수, 이강석은

 틈이나면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들렸다. 남선의 방송인들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남산의 방송인들은 형님이고

 누님이었으며 친구였다. (사진 민병연제공)





1959년  김경숙 아나운서와 함께 들어온

 동기생들이 입사교육을 시작하던 시절 1959년

5월 3일 남산 약수터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김정현, 김순영, 강익수  (계장),  장기범 (실장),

서선벽, 김현수, 김경숙으로 청일점 김주환은

 이 사진 없다. (김경숙 제공} 





 

1959년 아나운서 신입사원 강습회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  7. 이종훈 (기술과장),

8.이운용(중앙방송국장), 9.이규일(방송관리국장),

10.전성천(공보실장), 11.거스  (미국인 방송고문관),

16.배준호,  17.김규, 18.서병돈, 19.김순환, 21.이병열,

22. 24.박진현, 25.허환, 26.김인권, 27.조병해, 29.노정팔,

 34.김영길, 36.오남열, 38.최규락, 39.박노설, 40.김주환,

41.홍종선, 43.송한규, 44.강익수, 45.강찬선, 이때

김정현, 김경숙, 김현수, 서선경, 이연영 등5 분의

 여성 아나운서가 입사했는데 1. 2. 3. 4. 5번이

화인되는데로 기록 하도록 할것임





미국 워싱턴에 사는 김정자 아나운서가

보내준 사진 두장을 올렸다. 김정자 아나운서는

 1961년에 입사 71년까지 재직했다. 위 뒷줄 왼쪽부터

송경원, 임문택, 이규항, 김난숙, 김재영, 심광진, 송한규,

이병열, 이팔웅, 뒤에서 두번째 줄   가운데 김규은.  김정자,

앞에서 두번째 줄 최두헌, 강찬선, 이원춘, 배덕환, 앞줄 김기행,

 이계영, 안용민, 아래는  65년 2월 7일 이라고 쓰여있는 여자

아나운서들이다. 왼족부터 김난숙, 김정자, 김규은,

윤미자, 이게영, 조길자, 송경원





 1962년 KBS 연말 남 : 여 청백전

특집방송 사진, 임택근 : 임국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가수 현인, 신카나리아가 어느편이

 먼저하나 가위, 바위, 보 히는모습이다.    1년차 임국희

아나운서가 대스타 임택근 아나운서와 함께,  대 스타들이

출연한 공개방송에서 흔들림 없이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본

 주위 분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며 대성 할 수 있는

아나운서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 아나운서



5.16이 일어나던 1961년에는

두차례의 공개모집으로  많은 아나운서

들이 들어왔다. 60년대 부터는 남녀 아나운사가

숫자적인 균형을 이루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렀듯

지역 근무를 거쳐 서울에 온 아나운서는 

순서가  늦는 경우가 있다. 





길종휘, 이원춘, 엄복영, 이규항,

이팔웅, 박용택, 김정자, 유경희, 임국희,

배덕환, 인주희,  최부연, 유영옥, 홍종선, 최승일,

 이정희, 최귀영, 성선경, 최규락, 오정열, 송경원, 윤미자, 

 길종휘,  이원춘,  박용택, 이홍우, 임문택, 안용민, 김재영,

 이영열, 윤신애, 조길자, 이계영, 소병규, 변웅전, 이승상,

송인상, 이덕기, 김  용, 이근배, 김주혜, 이기행, 김승한,

최  선, 심광진, 최이자, 이명종, 이기원, 이철규,

방원혁, 원병희, 최인아, 김영조, 장현길,




 

  위: 1962년 9월 10일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이 발족하기 이어서 뒷날 민영방송 아나운서

책임자가 된 박종세 임택근, 최세훈, 김인권 아나운서 등을

볼 수 있는사진이다. 전영우아나운서 몇분은 그 기간중 군 복무 등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 아래 같은 사진 번호따라     1, 배덕환,

2 박종세, 3 이광재, 4 장기범, 5 강찬선, 6 임택근, 7 최세훈, 8 한경희, 9

 최두헌 10 홍종선, 11 김주환 12 이규영, 13 길종휘, 14 유영옥, 15 이정희

 16 최승일 17 김인권, 18 박노설 19 최정현, 20 인주희, 21 이규항;

22 송영규; 23 이병열. 24 송한규 아나운서






 1962년 KBS중앙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 앞줄 왼쪽부터 최귀영, 김윤희,

한사람건너 송한규, 김주환 뒷줄 왼쪽부터 이정희,

 성선경, 이규영 한사람 건너 임택근, 박종세,

오른쪽에서 두번째 안용민





 

위는 1966년 KBS 중앙방송국 

(우리말  라디오 & TV)과  국제빙송국 (외국어)

 아나운서들이 청와 초청 방문때 촬영한 사진이다.    

앞 줄 왼쪽부터 이규항, 방원혁, 김용, 김재영, 이병렬, 김규은,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소병규, 이근배, (?), 임문택, 이팔웅,

김기행 아나운서, 뒷줄 서 있는 사람  왼쪽부터 (?), 송한규, 재.

 강찬선, 최규락, 명 (일어)  사람 건너, 송인상, 최징훈(영어)

사람 건너, 최두헌, 이소원, 한 사람 건너 김용문(불어), 김정자,

 박용순(일어), 최경호(중국어), 손상욱(일어), 네건너,

이우백(일어)두사람 건너 김승한, 김영애, 이수자,

최승빈 아나운서 (사진제공 : 김정자, 김승한)





1960년대 중/후반 아나운서



 송영자, 이인숙, 박창옥, 김영애,

이수자, 정회준, 남승자, 홍재경, 이공순,

최평웅, 김상진, 강영희, 정경래, 최청자, 조춘재

(조춘제), 이길수, 송광자, 이혜옥, 김영자, 이창호,

홍승택, 하영자, 정희숙, 임건재, 김두석, 박찬숙,

김순명, 박용호, 박동수, 정기채, 홍현업, 이세진,

 이정부, 김규홍, 정철응, 이해완, 전인선, 

이학수, 이후재, 김윤한, 정문희,

김순자, 김영소, 이명희,

 




위,1969동기 아나운서와 관계자들이 함께

한 사진   1.전인선, 2.이해완, 3.강미란, 4.( ),

5.김윤애, 6.이혜옥, 7.송광자, 8.윤공순, 9.이숙영,

10.김순자, 11,(      ), 12.오부돌, 13.김선초, 14.장기범,

15.박희양, 16.박상열, 17.김재연, 18.노정팔, 19.이광재,

 20.최두헌, 21.김영자, 22.서금랑, 23.이주복, 24.장희영,

 25.김병래, 26.김지문, 27.김두석, 28.홍승택, 29.김성길,

 30.김운찬, 31.노시창, 32.양창석, 33.김현중, 34.김수홍,

35.박용호,36.어호선, 37.정정화, 38.김성응, 39.정철웅,

40.박기만, 41.최병일사진속의 33명중 정년을

한 분은 9분이고  아나운서로 정년을 한분은

김병래, 이주복, 홍승택 세분이다.




아래 : 1970년에 선발 1971년부터

 방송을 한 아나운서.  1 김기웅, 2.이학수,

3 김승진, 4.이명숙, 5.정문희, 6 이명희, 7 .전옥수, 

8.최종숙, 9.서연희, 10.방부선, 11.배덕환, 12.신상식,

13. 이후재, 14. 송현식, 15. 윤동원,   16, 박교서, 17. 이종태,

18. 임건재, 19. 이신웅,, 20. 정도영, 21.오한신,  22 김원태,

23 김성호,  24.전해진,  25. 김윤한,  배덕환 아나운서는

 서무를 보았었고 임건재 아나운교육을 담당했다.

 69년 선발아나운서까지는 문공부 관리과(담당

김선초)에서 교육을 담당했다.





1974년 KBS남산 방송국 현관에서

촬영한 사진 한장을 올렸다. 박동수 아나운서가

방송국을  뒤로하고   해외로 떠나던 때 촬영한 사진

뒷줄 좌로부터 김영소, 김원태,  김승한,  최선, 이규항,

 조춘제, 김성응, 이정부, 정기채, 홍승택, 김윤한, 김규홍, 

최평웅,  정도영, 채관숙, 최규락, 박기만, 이세진, 이공순,

송무근,    범효춘,  임문택,   유혜선,  최성란,  정강은, 

김주혜,  이 명희,  최두헌,  강찬선, 박동수,  최계환,

유혜숙, 서영숙, 이창호, 이계진, 임건재 아나운서





공사창립 후의 아나운서


(지역에서 온 일부 공사창립전 아나운서포함)


송애경, 천명옥, 김인숙, 성경희, 최소희,

유숙희, 유혜선, 최승희, 김무중, 박기만, 정도영,

 김원태, 김성응, 김영진, 이계진, 최관숙, 유혜선, 남궁문옥, 

우종란, 이영숙, 강혜정, 김광희, 백영수, 정강은, 임혜경, 최성란,

서영숙, 범효춘, 이신웅, 강동순, 김수홍, 박영웅, 김혜자, 유숙경,

강성희, 이강인, 정혜경, 유희순, 진정자, 석화현, 박애림, 윤혜원,

박경희, 박인숙, 백정란, 장주호, 고성균, 이명용, 황  량, 김영임,

이병혜, 김정혜, 서동숙, 진소희, 이영미, 이명화, 김숙영, 이미향,

김경혜, 공병림, 김상준, 이계행, 김미회, 황인우, 오미영

 


 

 공사 8기 동기생들과 함께 한 사진  번호순으로

1.이상근, 2,김영미, 3.정혜실, 4.유애리, 5.전지영, 6.박일경,

7.김형민, 8. ,   9. 황우섭,  10. 최우현,  11.김성수,  12.조봉훈,

 13.정구성, 14.최기홍, 15.송희일, 16.남기석, 17.윤용훈, 18.김철수,

19.정성진,  20.정길남,   21.황봉익,  22.장병천,  23.길환영,

 24.안상륜, 25.이병렬, 26. 이학정, 27. , 28. 김대휘님.



1980년 방송 통폐합 이후의 아나운서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하나된 KBS아나운서

뒷줄 왼쪽부터 임건재, 황량, 송지헌, 원종관, 김영소, 

이정부, 박기만, 김윤한, 이계진, 최윤락, 김영길, 허주, 김승한,

 전우벽, 강성곤, 이천규, 임화숙, 유수호, 박영웅, 이규항, 윤성원,

 김상준, 맹관영, 최평웅, 윤영미,  박용호, 박영주, 신은경, 원창묵,

최선, 지영서, 손석기, 강성희, 박경희, 황인우, 이미선, 서재원,

 차경애, 홍승택, 정혜실, 김주환, 박병학, 정미홍,

임문택, 유애리 아나운서.





2005년 1월 현재 재직 아나운서 (본사)


 

표영준, 김관동, 지영서,  김윤한, 김선동,

안희재, 유수호, 허주, 이미선, 이천규, 윤성원, 유애리, 

김성수, 윤영미, 조건진, 이규원, 김동우, 전인석, 서기철, 김병찬,

 태의경, 임수민, 정용실, 성기영, 황수경(휴직), 성세정, 김성은, 김현태,

최승돈, 이형걸, 이성민, 김재원, 한상권, 김홍성, 백정원, 신윤주, 원석현,

김태규, 이창진, 홍소연, 윤인구, 국혜정, 신영일, 윤지영, 이재후, 손미나

(휴직), 변우영, 이재홍, 김현욱, 이규봉, 최윤경, 최원정, 이지연, 박노원,

김기만, 정은승, 김경란, 이영호, 강수정, 이상호, 김보민, 김윤지, 한석준, 

 박경희, 최윤락, 박영주, 박태남, 박현우, 황정민, 오유경, 유지철,

 신성원, 김은성, 정세진, 오태훈, 장웅, 배창복, 박주아,

지승현, 이상협, 김희수, 김지윤, 위서현, 이광용

(순서없이 작성했습니다.)

 


2010년 1월현재 재직 아나운서 (본사)


 

 박태남, 김성수, 이규원, 김관동, 성기영,  

유애리, 임수민, 안희재, 표영준, 이미선, 강성곤,

김은성, 홍소연, 윤인구, 이재후, 이재홍, 장 웅, 배창복,

김현욱, 최윤경, 박주아, 이지연, 김기만, 정은승, 김경란, 이영호,

백승주, 이상호, 박현선, 김보민, 김윤지, 한석준, 박사임, 최동석, 고민정,

 김진희, 조우종, 이선영, 이정민, 윤수영, 김흥수, 조건진, 전인석, 서기철, 태의경,

정용실, 황수경, 성세정, 김성은, 김현태, 이형걸, 이성민, 김재원, 한상권, 김홍성,

 백정원, 신윤주, 원석현, 김태규, 이창진, 신성원, 전현무, 이지애, 오정연, 지영서,

박영주, 황정민, 최승돈, 오유경, 유지철, 최시중, 정세진, 국혜정, 윤지영,

오태훈, 변우영, 이규봉, 최원정, 김정화, 이상협, 김희수, 김지윤,

이승연, 위서현, 이광용, 김재홍, 조수빈, 오언종, 

박은영, 박지현, 엄지인, 

 

 

2008년 이후 입사 아나운서


 

(2008년 34기) 김승휘, 유지원,

가애란, 정다은, (2009년 35기) 이현주,

차다혜, 도경환, 김솔희,  (2010년 36기) 김한벌,

손지민, 양문석, 김지연, 이해수, 김서련, 힌승훈, (2010

37기) 이지연, 오승원, 전주리 (2011년 38기) 이슬기, 조중현,

김민정, 상헌, 정지원 (2012년 39기) 조항리, 강승화, 이각경,

 김지원, 이승현(순서없이 작성했습니다.) 2014년 41기 서 강서은.

김선근, 충청권 백선일, 영남권 신유진, 이지현, 진유현, 최현호, 호

남권 김형철, 봉효정, 제주권 고새롬 2015년 42기 이재성, 박소현



각 기별 아나운서 사진 (2011년-2015년)

  


2011년 새내기 아나운서와 선배 아나운서가

 함께 때 : 2011년 9월, 장소 아나운서 실장실 함께

하신분, 선배 : 황우겸, 김규홍, 황인우, 새내기 : 

이슬기, 조중현, 김민정, 한상헌, 정지원



2012년 39기  1.조항리, 2.강승화, 3.이각경, 4.김지원, 5.이승현 



2014년 41기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유진, 강서은, 진유현,

봉효정, 고새롬, 백선일, 이지현, 최현호, 김선근, 김형철



 2015년 42기 이재성, 박소현



 

2013년 말 현재 아나운서 명

 

 

아나운서실

실장 김흥수

 

아나운서1

부장 김동우

 

팀장 한상권, 김홍성

 

아나운서

 

안희재, 김성수, 조건진, 전인석, 서기철, 황정민, 김현태,

백정원, 원석현, 이창진, 신성원, 김은성, 정세진, 이재후,

오태훈, 장웅, 이규봉, 김희수, 위서현, 김윤지, 최동석, 이정민,

윤수영, 오언종, 박지현, 엄지인, 김승휘, 이현주, 한상헌

 

아나운서2

부장 황수경

 

팀장 성세정, 김성은

 

아나운서

 

이미선, 박태남, 이규원, 김관동, 임수민, 정용실, 최승돈,

최시중, 홍소연, 이재홍, 배창복, 최원정, 이지연, 김기만,

정은승, 이상협, 백승주, 이상호, 이승연, 이광용, 김진희,

조우종, 이지애, 박은영, 유지원, 정다은, 차다혜, 김솔희,

김민정

 

한국어연구부

부장 성기영

 

팀장 이성민, 김재원

 

아나운서

 

지영서, 유애리, 박영주, 태의경, 이형걸, 신윤주, 유지철,

김태규, 윤인구, 국혜정, 윤지영, 변우영, 최윤경, 박주아,

박노원, 이영호, 김지윤, 김보민, 한석준, 박사임, 박태원,

고민정, 김재홍, 이선영, 조수빈, 오정연, 장수연, 가애란,

도경완, 오승원, 전주리, 이지연, 조충현, 정지원, 이슬기

 



화   보



 

1993년! 전국의 KBS아나운서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토록 많은 현직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김영길님이 제공 해 주신

 이 사진을 접하고 모두의 성함을 기록하려는 마음으로 아나운서

클럽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20 여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모두의

확인이 어려웠지만 일일이 확인을 거쳐주신    황인우 회보

편집장님의 노고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이 사진 역사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같은 사진을 두편으로 나누어 아래 올렸습니다.

3.박원철, 4.서기철, 5.김동우, 9.손석기, 11.최평웅,

12.전우벽, 14.홍승택, 15.이명용, 16.임문택, 17.이규항,

 18.김영길, 19.김승한, 20.조춘제, 21.김병래, 22.유수호,

24.이계진, 25.홍현업, 27.이미선,26.차경애,

32.김진형, 33.이종섭, 34.이종태,


36.맹관영, 37.원예종, 38.지영서,

 40.박경희,41.이홍열, 43.오한신, 44. 원창호,

47.길종휘, 49.윤영미, 50.박용호, 51.정현조, 52.배유선,

58.장현호, 60.김선동, 61.박영웅, 62.우제근, 63.이천규,

64.김신환, 68.유애리, 69.구영희, 70.김자영, 73.정도영,

 74.윤성원, 76.김상준, 77.태의경, 80.최선규, 81.이숙영,

 82.김국향, 83.정미홍. 84.김명숙, 85.이규원, 87.황량,

 88.정혜실, 89.서재원, 90.이종태(12기),


91.박기만, 92.김성은, 99.이재윤,

103.강성곤, 104.노영환, 107.김성수

아나운서가함께 했습니다,성함이 빠진분

잘못된 분이 있을 줄압니다. 차츰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장기범 선생님 24주기 추모회에서 만난

선, 후배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 앞줄 왼쪽부터

 이종태. 유애리, 이규원, 박경희, 김영우, 이윤재. 최홍준,

황인우, 김성호. 정도영, 뒷줄 왼쪽부터 이장춘, 이세진, 구본출,

박영웅, 배덕환, 김수웅, 김승한, 이규항, 박경환, 이팔웅, 이장우,

 이광주,박현우, 황 량, 이계진, 한분건너, 홍승택, 고광수, 박현우,

 김규홍님이 함께 했습니다. 장기범선생님을 존경하는

방송인이 함께 한 사진이어서 아나운서가

 아닌 분도 계십니다.




 김동건 아나운서 방송인생 50년

 경축연에 참여한 아나운서입니다. 이때

공민영 현역아나운서들과 프리 또는 퇴역 원로

 안나운서도 대거 참여 했습니다. 3.유지철, 4.김병찬,

 5.박찬숙, 6.박민정, 7.김상준, 8.황인용, 9.이혜옥,

11.유애리, 13.박영주, 14.윤지영, 15.백승주,

16.황인우 17. 전찬희




 



황 량  아나운서



이대표님 참 ...대단하십니다.
100년가까운 아나운서의 방송사를
 

그림처럼 엮어서 문화유산으로 승화

시켜 주셨네요... 그저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김규홍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님



이장춘선배님에 대한
황량국장의
아나운서 문화유산으로
승화시켰다는 표현도
부족하리만큼 정말로
대단 대단 대단 또 대단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UN본부에 보고합시다



윤영중 (1950년대) 아나운서님


깜짝 놀랐어요. 말로 전해오던 내용

얘기로만 듣던    그때 그 얘기,  이름

부분, 부분 알고 있는 얘기일지라도 이토록

사진을 모으고   이름을 모으고 사연을 모아 집대성

해 놓으니 생생한 아나운서 방송역사네요.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겨야 할 우리들의 발자취이고 문화유산입니다.

사진과 내용을 전해주신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드리며

밤, 낮없이 이 일을 해 오신 이장춘님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전옥수 아나운서님



이국장님! 이국장님께서는 아나운서의

 역사적기록과 인연을 이어 살 수 있도록 하는데 

큰역할을   하신 국내 유일무이하시는 분이십니다.

  국장님덕분에  아나운서 선배님과  후배들과의 연대가

더욱 강화되고 잊어버렸던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에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도시간되면 사진들 찾아 보겠습니다



황인우 (아나운서클럽 회보편집장)아나운서님



세상에, 놀랍습니다!

우리 아나운서들이 못한 일을

춘하추동방송에서  정리해 주셨네요
역사학자도 해내지 못한 귀중한 사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이장춘 선배님,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이혜옥 아나운서님



정말 대단하신 영원한

 아나운서 방송국장님!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역사적인자료들을 

모으셨을까요?무어라고 감사의표현을 해야

할지?  말이부족합니다  정말 감사합

니다  이장춘방송국장님 만세!!!



김무생 아나운서님 글



***제가 KBS 아나운서실에서 "아나운서

족보"를 본 것은 시골에서 이제 막 올라와 서울

생활이 시작된 1974년 봄 3월 대학 1학년 때입니다! 

고 이광재 아나운서님이 마국의 VOA 방송을 하시기 위해

 떠나신 그때인   제가 중 3 늦은 때 KBS의 고 최규락 아나운서

님께 최 아나운서님께서 생각하시는<아나운서가 되려면-

아나운서로서의 갈 길>에 대해 알려 주시라 편지를

 올렸더니 뉴스 용지 5쪽의   쉽고도 자상하게

답장을 주신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학생의 신분으로 7

4년 봄 3월에 남산에 있는 KBS아나운서실을

찾았더니 고 최규락 아나운서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중 3인 학생이 의지가 강하고 정성을 다 해

편지를 잘 써서 관심을 갖고 바로 답장을 해 주셨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아나운서실을 찾을 때

 뭔가 허전해서 넉넉하지 못한 학생 신분에 별 다른 것은

 못 하고  담배 한 갑을 사서 잘 포장을 해서 최규락

아나운서님께 드리면서 "이건 별 거 아닙니다!

제 마음입니다, 받아 주십시오"하니까

 자꾸 안 받으려 하시자

바로 옆에 앉아 계셨던

"정기채 아나운서님"이→ "아! 받으세요!

성의인데요!" 하시니까   마지못해 받으시며

 "이런 것 가져 오지마!"하시며 멋적은 웃음을 웃으셨던

 그때 그 시절 42년 전의 모습이 어제 오늘 일처럼 선명하게

 아른거려 옵니다! 46년전에 고 최규락 선배님이 제게 주셨던

 그 편지 물론 현재 가지고 있죠! →아주 소중한 것이니까요!
1995년 3월에 <집념과 열정의 아나운서>라는 주제로

KBS-1TV:<이것이 인생이다> 에 제가 소개될 때

제가 직접 이 편지를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아나운서실을 빛낸

<아나운서 족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그때의 모습이   희미하게 영상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라성 같으셨던 선배님들이

한 분 두 분씩 떠나시고 없는 지금의 그 빈 자리는,  

솔직히 너무 허전해서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만큼 후배들의 몫이 크다 할 수 있겠죠?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릴 때
 이장춘

 이사님을 가리켜 <대한민국 방송 문화와

 역사의 보물창고의 박물관장님>이시라고 칭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가 없고, 그 역사가

 하나로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죠! 그 나라의

문화의 샘터요 길잡이 인 →"방송 문화와 역사"가 없거나 하나로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그 나라의 문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365일 묵묵히 우리나라의 방송문화와 역사를

또 거기다 "아나운서의 역사 "까지도 일목요연하게

틈틈히 이렇게 견고하게 하나씩 하나씩 탑을

 쌓아 주시는 이장춘 이사님!

현재의 모든 방송인들과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 후세의

모든 방송인들과 후배 여러분!   할 것 없이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도→ 이장춘 이사님을

"대한민국의 방송문화와 역사의 보물창고 관장님이시자

상록수"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변함 없는 건강을 기원

합니다!   무척 고맙고 흐뭇합니다!  우리 "춘하추동

 방송"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

습니다!   김무생드림...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 글



<옛 동산에 올라>를 들으며 지난날을 반추한다.


저희보다 훨씬 앞서,  방송의 未明期

부터 아나운서의 길을 걸어오신 기라성 같은

 대 선배님들과...저처럼 막 아나운서를 은퇴했거나

 한창 현역의 길을 가고 있을 후배 아나운서 여러분 모두

에게, <춘하추동방송>화면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아나운서

역사를 한눈에 보시는 감회는    다 같이 큰 행복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열어 그곳에  나이테

처럼  음각된 소중한 방송사료들을 볼 적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년 전 국경도 울타리도 없는 인터넷이라는

 막막한 공간에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개설,

단기필마로  일인 언론을 일구어, KBS자료실에서 마저도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방송, 예술 등의 역사는 물론, 관련 종사자들의

삶의 기쁨과 보람, 고통과 극복의 이야기를 소중히 보존하고 국내외에

널리 알려온 방송사의 증인, 이장춘님의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 IT 역량,

사명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68년부터 아나운서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동시대의 방송인, 그것도 저희보다 연로하신 방송원로서

해내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업적에 경의와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한국방송인 동우회(방우회)이사이시며  한국 아나운서클럽 특별회

원이신 이장춘 선배님께서 (-그는 청사없는 방송의 연봉 없는

국장이란 별칭을 얻고 있습니다.) 방송역사 아나운서

 편을 위해 기울여 주신 각별한 애정과 노고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나운서 관련 글 더 보기 영문자 클릭->



한국방송의 기원과 노창성 이옥경

http://blog.daum.net/jc21th/17782346

 

아나운서와 이장춘의 인연 반세기

 http://blog.daum.net/jc21th/17782524

 

대한민국 아나운서 명단 KBS MBC DBS TBC  

http://blog.daum.net/jc21th/17781384

 

남산시절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18

 

일제 강점기 우리말 여자 아나운서와 최아지(兒只), 김문경

http://blog.daum.net/jc21th/17780489

 

京城放送局의 女性 아나운사(아나운서)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454

 

한국아나운서클럽 20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186

 

임국희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제 8대 회장취임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2413

 

일제 강점기 우리말 방송인들과 해방공간의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20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67

  

 

본 블로그 검색창에서 "아나운서"

검색하시면 여러편의 아나운서에 관한

 글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제가 KBS 아나운서실에서 "아나운서 족보"를 본 것은 시골에서 이제 막 올라와 서울 생활이 시작된 1974년 봄 3월 대학 1학년 때입니다!

고 이광재 아나운서님이 마국의 VOA 방송을 하시기 위해 떠나신 그때인 제가 중 3 늦은 때
KBS의 고 최규락 아나운서님께 최 아나운서님께서 생각하시는<아나운서가 되려면- 아나운서로서의 갈 길>에 대해 알려 주시라 편지를 올렸더니 뉴스 용지 5쪽의 쉽고도 자상하게 답장을 주신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학생의 신분으로 74년 봄 3월에 남산에 있는 KBS아나운서실을 찾았더니 고 최규락 아나운서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중 3인 학생이 의지가 강하고 정성을 다 해 편지를 잘 써서 관심을 갖고 바로 답장을 해 주셨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아나운서실을 찾을 때 뭔가 허전해서 넉넉하지 못한 학생 신분에 별 다른 것은 못 하고
담배 한 갑을 사서 잘 포장을 해서
최규락 아나운서님께 드리면서
"이건 별 거 아닙니다! 제 마음입니다, 받아 주십시오"하니까 자꾸 안 받으려 하시자

바로 옆에 앉아 계셨던 "정기채 아나운서님"이→ "아! 받으세요! 성의인데요!" 하시니까 마지못해 받으시며 "이런 것 가져 오지마!"하시며 멋적은 웃음을 웃으셨던 그때 그 시절
42년 전의 모습이 어제 오늘 일처럼 선명하게 아른거려 옵니다!

46년전에 고 최규락 선배님이 제게 주셨던 그 편지 물론 현재 가지고 있죠! →아주 소중한 것이니까요!
1995년 3월에 <집념과 열정의 아나운서>라는 주제로
KBS-1TV:<이것이 인생이다> 에 제가 소개될 때 제가 직접 이 편지를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아나운서실을 빛낸 <아나운서 족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그때의 모습이 희미하게 영상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라성 같으셨던 선배님들이 한 분 두 분씩 떠나시고 없는 지금의 그 빈 자리는, 솔직히 너무 허전해서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만큼 후배들의 몫이 크다 할 수 있겠죠?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릴 때 이장춘 이사님을 가리켜
<대한민국 방송 문화와 역사의 보물창고의 박물관장님>이시라고 칭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가 없고, 그 역사가 하나로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죠!
그 나라의 문화의 샘터요 길잡이 인 →"방송 문화와 역사"가 없거나 하나로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그 나라의 문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365일 묵묵히 우리나라의 방송문화와 역사를 또 거기다 "아나운서의 역사 "까지도 일목요연하게 틈틈히 이렇게 견고하게 하나씩 하나씩 탑을 쌓아 주시는 이장춘 이사님!

현재의 모든 방송인들과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
후세의 모든 방송인들과 후배 여러분! 할 것 없이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도→
이장춘 이사님을 "대한민국의 방송문화와 역사의
보물창고 관장님이시자 상록수"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변함 없는 건강을 기원합니다! 무척 고맙고 흐뭇합니다!

우리 "춘하추동 방송"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김무생드림...


<옛 동산에 올라>를 들으며 지난날을 반추한다.
저희보다 훨씬 앞서, 방송의 未明期부터 아나운서의 길을 걸어오신 기라성 같은 대 선배님들과...
저처럼 막 아나운서를 은퇴했거나 한창 현역의 길을 가고 있을 후배 아나운서 여러분 모두에게, <춘하추동방송>화면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아나운서 역사를 한눈에 보시는 감회는 다 같이 큰 행복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열어 그곳에 나이테처럼 음각된 소중한 방송사료들을 볼 적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년 전 국경도 울타리도 없는 인터넷이라는 막막한 공간에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개설, 단기필마로 일인 언론을 일구어, KBS자료실에서마저도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방송, 예술 등의 역사는 물론, 관련 종사자들의 삶의 기쁨과 보람, 고통과 극복의 이야기를 소중히 보존하고 국내외에 널리 알려온 방송사의 증인, 이장춘님의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 IT 역량, 사명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68년부터 아나운서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동시대의 방송인, 그것도 저희보다 연로하신 방송원로서 해내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업적에 경의와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한국방송인 동우회(방우회)이사이시며 한국 아나운서클럽 특별회원이신 이장춘 선배님께서 (-그는 청사없는 방송의 연봉 없는 국장이란 별칭을 얻고 있습니다.) 방송역사 아나운서 편을 위해 기울여 주신 각별한 애정과 노고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