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16. 10. 2. 07:15





 


1960년대 70년대를 풍미하던 전설적인

민요조 가수 김세레나!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성주풀이’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서는 김세레나가 불렀던

 그 노래들을 떠 올린다.     1963년에 개국한 DBS 동아방송이

개국 초기 1964년 가요백일장에서 발굴한  김세레나가   그때의

동아방송 (후신: 종편 채널 A)은 갔어도 김세레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종편 MBN이  ‘아주 궁금한 이야기’ 의 줄임말 '아궁이'라는 프로그램

으로  화제의 인물,   화제의 사건을  찾아 올려주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김세레나가 그의 인생역정을 들려주어 그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

에게도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오랜세월 관심을 갖고

 글을 올려왔던 춘하추동방송에 그 글을 모았다.




김세레나, 전설의 가수 신민요계의 여왕




 


 

 1965년 2월 북한강 물줄기를 막아 춘천과

화천사이의 거대한 호수를 조성한 춘천땜, 그 춘천땜

 준공을 축하하는 공개방송에 18세의 어린 가수가 출연했다.

그 이름  김세레나! 위 사진에서 본 제일 젊은 모습 그는 그때 고등학교

학생으로 3개월전 DBS 동아방송이 발족하고 첫번째 실시한 가요백일장에서

장원하면서 원거리 나들이로는 처음 큰 공개방송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연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나애심, 최희준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위 사진은 그 공개방송이 끝나고 춘천방송국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정인식 중앙방송국 편성과장, 이희목 음악계장, 한승은 춘천방송국장,

허종성 방송과장, 김원용 기숳과장을 비롯해서 공개방송 팀 일행이

 함께 한 사진이다. 필자는 춘천방송국 PD로 재직중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더 지난 오늘

김 세레나가 걸어온 지난날들을 바라보면

 실로 격세지감이 있다.  그는 지난 50년간 춤을

추며 민요조의 노래를 불렀다. 그 분야에서는 누구도

그를 넘보기 어려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사생활

에서야 여러 어려움도 있었고 외로움도 있었다지만

 무대 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으로 보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개무대에서 대중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고 군 위문방송  공개무대에서

장병들은 그의 노래,  그가 출연하는 공연과  함께

마음껏 즐겼다.  무대 위에서 또 방청석을 돌며 함께

노래부르며 손을 잡고 춤을 주었다.  김세레나, 군장병

위문공연이라면 발벗고 나섰고 다른 어느공연보다도  

우선시 해서 수많은 군 공연무대에 섰다. 





1960년대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파월장병들에게 더 없는 사랑을 받았다. 월남

위문공연에 나선 김세레나가 월남에 참전했던 육군

J중령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던 일이 있었, 훗날 그 J중령은

 벌두개를 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의 실력자?가

되어 김세레나를 공개방송석상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세레나의 손을 잡고  그때 그 일을 기억하느냐? 고  물었다. 

대답하기 난처해진 김세레나는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

않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시절 가수들과 함께

했던 KBS,    P프로듀서는 그의 저서에서

그 얘기를 자세히 기술했다.      


 



 1969년 군 위문공연에 나선 김 세레나와

 가수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비룡부대에서

사진촬영 등의 일을 했던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는 양방수님의 군시절에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양미란, 권혜경, 김세레나, 한분건너 김하정 





그가 "갑돌이와 갑순이"를 부르면

그 노래를 듣는 모두가 갑돌이와 갑순이가 되고

"뽕따러 가세"를 부르면 모두가 뽕 따러 가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평소에 웃음이 없던 박정희 대통령도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저절로 흥이 솟고 웃음 지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어렵고 힘들던

시절 그는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희망을 주었으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는데 힘이 되었다. 가수가 된지 반세기 수많은 곡을 

부르면서 만요계의 여왕으로 칭송받으면서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

 하기도 하고 때로는 맹열 팬 에게 납치당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남, 녀, 노, 소, 남과 북,  도시 농촌의 경계를

 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봉사에도  힘을 기울였다






김세레나를 찾아낸 

동아방송 가요 백일장에 관해서

얘기를 해 보기로 한다





동아방송의 초기 가수 등용문이고

시민위안 공개방송이었던 가요백일장은 서울의

진명여고 강당이던 삼일당과 금의 조선일보 자리에

 있던 아카데미 극장등에서그리고 동아방송 청취가 가능했던

 수도권과그 인근지역을 순회하며 공개방송으로진행 되었다.  순회

공개방송이 대단한 인기를 끌던 때였다. 그때 담당 PD 김영선님의

글을 보면 군청직원들이 두줄로 서서 박수로 영접한것은 보통이었고

 당진에서는 군수로 부터 "영감님 원로에수고 많으셨다면서 융숭한 

인사를 받기도 했다" 고 한다. 이 가요백일장이 바로 신인 가수

등용문이어서 초기에 김세레나, 김부자, 조미미등

신민요 가수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DBS 동아방송은 개국하던 해

1963년 중창단 노래    경연대회를 열어

남성중창단   자니 부러더스,   여성 중창단

 츄 보론디 등을 발굴  중창단 시대를 열기도 했다.

자니 부러더스는 1960년대 빨간마후라, 방앗간 둘째딸,

네가 잘나서 일색이나. 아나 농부야. 등을 불러 1960년대

중창단 붐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참고:동아방송

 17년사,  안평선 프로듀서 증언)



김영선님에 관한 안평선(한국방송인회 부회장)님의 기억  



  김영선은 프듀서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1969년 mbc에서 방송된 연속극 '야생마'
 주제곡 김기팔 작사, 김종하 작곡  김하정이 부른
 노래 '야생마'의 작곡가 김종하는 김영선의 또 다른
 이름이다.      김영선은 방송통폐합으로 KBS에 와
 KBS교향악단 사무국장이 되었다.이원홍 KBS
사장의 부산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야  생  마


       김기팔:작사

      김종하(김영선):작곡


 내 통곡의 의미를 알면은
 다시는 비가 안 내려야지
 빗줄기 타고서 이 가슴 때리는
 그 젊음의 몸부림
 통곡을 했었다 메아리도 없었다
 그러나 조용히 가버린
 내 젊은 내 젊은 야생마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빗줄기 타고서 이 가슴 때리는
 그 젊음의 몸부림
 통곡을 했었다 메아리도 없었다
 그러나 조용히 가버린
 내 젊은 내 젊은 야생마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비가 내리는 밤이면
.

                     


 

 

김세레나님 글  가수로 등단 하던 그때 그 얘기

 

동아방송 17년사에서 

 

 

.........당시 이 프로그램의 담당 PD는
작곡활동도 한 김영선씨였다. 고수머리에 안경을 쓴

PD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거들떠 더니 "빨리 집에가서

공부나 하라" 는 것이다.우리들은 그때 한결같이 교복 차림에 가방까지

 들고 갔던 것이다.  고교 재학생에게는 참가 자격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 마음 먹었던 일을 쉽게 저 버리기도 힘든 일이었다. 얼마후 이번에는

나 혼자서 찾아갔다. 물론 교복아닌 사복을 입고 갔다. PD는 내얼굴을

잊었는지 아무 말 없이 접수를 해주고 출연날자를 지정 해 주었다.

지정된 날 밤잠도 설치다 시피 하고나갔더닌 수십명의

젊은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

 
접수된 사람이 곧바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것이 아니라 그중에 예선을 통과한
10여명이 그 주일의 프로그램 출연 자격을 얻는 것이다.
미쳐 한 소절도 불러보지 못하고 쫗겨 나가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 나는 강화도령을 불러 통과되어
이제 진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장소는 지금의 조선일보사 곁의
조그마한 극장이었는데 수백명의 방청객
앞에 나선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밴드의
반주 소리도 하나의 소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은 상태

 에서 정신없이 목청을 돋우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딩 동 댕하는

합격의 소리만은  분명히 들었다.  합격만 된다고해서 끝나는것이

아니다. 그 주일의 장원으로 뽑혀야월말 결선대회에 나갈 수 있고

 그 월말대회에서 역시 장원이 되어야연말 장원 선발대회에 출전

할 수있는 것이다. 아마츄어 노래 순서가 끝나고 기성 가수가

노래를 하는 사이에 심사위원들의 채점이 진행되는것이다.

무대 뒤의 아마츄어들은 모두가 안절 부잘했다.

 
드디어 사회자 한경희 아나운서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나는 단념을 했다.
그런데 세번째로 부른 이름이 바로 내 이름이
아닌가!  그리고 세번째로 부른 사람이 그 주일의
 장원이라는 사실에 나는 내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다.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 가운데 아나운서와 몇마디
나누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말대회에서 나는 또다시
장원으로 뽑혔고 1964년 12월 20일
남산의 드리마 센타에서 DBS가요 백일장
연말대회에서 나는 당당히 장원으로 뽑혔다.
DBS동아방송이 뽑은 초대 가요 장원이
된 것이다. DBS가 한국 가요계에
진출시킨 초대 가수가 바로
 내가 된 것이다. 

 

 

 

 

김세레나 동영상으로 보기  



김세레나 갑돌이와 갑순이 옛날 그떼 그 흑백동영상




채널 A 그때 그 사람 비디오형 가수 1 


 

 


채널 A 그때 그 사람 비디오형 가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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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김세레나 신민요.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