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역사 90년

이장춘 2017. 3. 3. 02:36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80IbWMWYHdI 



2017년 3월 3일, 오늘은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 공사로 전환된지

44년이 되는 날입니다.  필자는 1973년  1월 공사

발족을 위해 8명으로 구성된 실무반원의   한 사람으로

공사창립 실무작업을 수행했고     공사후 발족한  기획관리실

차장으로 공사관련 법규와  이사회 업무  규제정과 지역방송국,

계열사  관리업무를 담당하면서  공사창립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한국방송

역사 90년, 한페이지의 기록으로 보존코저 합니다.

 


 한국방송역사 (30) KBS 한국 방송공사창립 그때 그 얘기






1948년 10월 이 나라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영방송이 된 KBS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방송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국영방송으로서는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조직법에 따른 직제에, 정부가 편성한 예산으로,

공무원신분을 갖는 방송인들이 방송을 해야 되는

 국영방송으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 적응 할 수가 없었다.

 




방송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에게

방송수당이나 연구수당을 지급하고 일반직

공무원을 별정직으로 전환해서 융통성을 보이는 등

방편을 강구했지만 그것은 지엽말단적인 대책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방송을 정부가 관장해야 된다는 일부 관리들은 

방송기구만을 확대한 방송 청을 설립해야 된다는

 논의도 있었지만 방송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당치 않는 일이고 당시 세계 공영방송의

 표본이었던 일본 NHK나 영국 BBC를 모델로 한

공영방송 제도를 도입해야 된다는 논의가 한창일 때 

1971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

되면서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이 취임했다.


 

 


님의 꿈은 이 땅에 공영방송을 실현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인사를 단행했다.

일반직 국가 공무원이던 중앙방송국장을 별정직 1급

으로 바꾸어 동아 방송국장 재직 중이던 최창봉을 영입,

일생동안 방송과 함께 한  노정팔을  방송관리국장과

함께 KBS의 공사화를 추진하도록 했다.  두 분은

이 나라 방송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후 1971년 9월 29일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은 국회 문공위원회에서

KBS공영화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의 구상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논의를 거치면서

공영방송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고 1972년 10월 유신이라고 불리는

대 격변기에  국회는 해산되고 비상  국무회의에서 법률을

 제정하던 시대가 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법률이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되던 때다

 

 

국무회의에 상정된 한국방송공사법은 

 1972년 12월 30일자로 공포되었다.

 

 

그로부터 한국방송공사법시행령과

정관을 준비하면서 방송공사 설립을 위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KBS 유 일봉 기획 조사실장과

 민 두식 서무과장을 반장으로 8명의 실무반이 편성 된 것은

1973년 1월 10일경이었다.    시행령이나 정관은 윗선에서

 마련하고 있었고 실무 반은 공사 창립과 동시에 시행될

기본규정과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었다.

 


 


필자에게는 본사의 라디오 방송

예산과 16개 전 지역 국의 예산을 새로

 편성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복식회계에 따른 한국방송공사 첫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었다. 본연의 방송업무는 그대로 수행하고 또 한국

방송공사 창립    기념 논문 (심야방송의 효과적인

편성방안-우수상-)을  쓰면서 실무 반에서

 맡은 업무를 밤낮없이 수행해야 했다.

 

서투른 예산편성을 남상혁

회계사의 친절한 지도로 컴퓨터가

 없던 시절 주판 알 튕기며 20여일 만에

끝내고 그 예산안에 책임을 진다는 사인을

하면서 실무 반 업무를 마무리 지었다.

 필자는 한국방송공사 설립 예산을

 편성했다는 영광을 안았다.

 

 

 

 

2월 21일 홍경모 문화공보부

 차관이 초대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임명되고 최창봉 중앙방송국장이 부사장,

노정팔 방송관리국장이 감사로 임명되었다.

이밖에    조돈준,  이인관,  강찬선이 각각

이사로 임명되어 임원진이 갖추어 졌다.

 

실무반이 활동하고 있을때 공사법

 시행령이 공포되고 정관은 이사회를 거쳐

 2월 24일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공사 창립 일을

3월 1일로 하자는 의견이 많이 있었지만 3월 3일로

 하기로  결정되어  역사적인 한국방송공사 창립행사가

 있었다.  자본금 100억 인원 2,130명,  17개 방송국과

  72개 라디오, TV 송, 중계소를 거느린 한국

공사가 출범한 것이다.


 


 

공사창립 실무 반에서 마련한

규정이나 예산은    이사회를 거쳐

 문화공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공사

직제가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은 3월

9일의 일이고 그때부터 공사 직원

 인사 발령이 이루어졌다.

 

직제는 본사의 업무를

방송총국 기술총국, 경영총국으로

나누고 연수소를 따로 두었다. 다섯분의

 이사중 홍경모 사장을 제외한 네 분

에게 업무를 배정했다.

 

방송총국장 최창봉 부사장 겸직 

기술총국장 이인관 이사 

경영총국장 조돈준 이사 

연수소장 강찬선 이사로 보직이 부여되었다.


  

이어서 차장급 간부발령이

 끝난 것은 3월 말까지였고   일반

직원들까지 모두 발령이 끝난 것은 4월

 20일 경이었다.   처음에는 사무관급 이상

 간부들 중 공무원으로 남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홍경모사장이 취임하면서 모두 함께

일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면서

 방송국을 떠나신 분들은 많지 않았다.


 

 


새로 부여된 개인별 공사 직급은

공무원 직급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

졌는데 본사의 경우   국장은 부이사관과

서기관 중에서 임명하되부이사관 출신은 1급 갑

서기관 출신은 1급 을이 부여되었다.        부장은

 서기관이나 사무관 중에서 임명되었고 서기관

 2급 갑, 사무관은 2급 갑과 대부분

 2급을 직급이 부여되었다.

 

차장은 사무관 출신과 고참 주사

(4급갑 상당)출신중에서 보직이 주어 졌는데

 사무관출신은 2급을주사 출신은 3급이 부여 되었다.

지역국은 부산만 부이사관 출신으로1급 갑이 주어

졌고 나머지 7개 갑지국은 모두 서기관출신

으로 2급 갑이 부여 됐다.

 

갑지국 부장은 고참 주사출신으로

3급이 주어졌고 을지 국장은 사무관 출신으로

2급 을의 직급이 부여 됐다. 이렇게 해서 3월 말까지

간부 발령이모두 끝났고 4월부터는 일반 사원 발령이

있었는데부서가 존속 하는 곳은 현직 발령을 원칙

으로 했고 직급은 대부분 한 등급씩 올려서

부여 했으나 공사전의 직급을 그대로

 이어 받으신 분도 있었다.

 



공사창립시 홍경 모사장으로부터

 첫 인사발령을 받는 간부일동  앞줄과

두번째 줄에  전영효,  손영호,  김도진

김경식,  유신박,  김홍태  이범경 등

부장급 발령을 받은 분들입니다.




 


필자는 4월 1일자로 수원

 출장소장 (차장급)으로 갔다가

 4개월이 지난    1973년 8월 사장직속

기획관리실이 신설되면서 관리부 차장을

 맡아 법령,  사규,  정원,  지역방송국,

계열사, 그리고 이사회 업무를

 담당했다.

 

공사체제 하에서 방송을 효율적으로

수행 할 수 있도록 제도의 틀을 짜 나가야 했다.

 직제, 정원, 인사, 회계, 취업규칙, 제작비 지급 관리,

도 단위 방송체제 구축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접하는

분야들이고 각 분야의 의견들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아

공사의 제도를 단 시일 내에 체계화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밤, 낮 없이 새로운

제도를 마련 해 나갔다.

 

전 지역 방송국이나 송 중계소까지

 현장조사가 이루어 져야 했고 각 부서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해서 여러 위원회가 구성

되고 또 수시로 부서장 회의가 열렸다. 어느

부서장은      공사가 관리부 때문에 있는 

것이냐?  불평도 있었지만 대체로

협조는 잘 이루어졌다.


 

 



부서별 정원을 책정하는 일이나

 제작비 지급규정을 새로 제정하던 일,

 도 단위 방송 체제 구축이나 중계소 방송을

현실화 하는 일,   취업규칙이나   여비규정을

새로 만드는 일등 어려웠던 일들이 많았다.

 

 기억을 더듬어 하나의 실 얘를 들어본다.

 

국영방송 시절 제작비 지급은

 출연자를 급별로 분류하고 예산 범위

 내에서 출연료를 책정 지급했지만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필자는 10년간 방송 현업을 하면서

 제작비와 출장여비, 업무추진비 등 현실과

 괴리된 여러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국영방송 시절에는 그 어려움을

주로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서 해결 해

나갔다. 그러나 공사 체제에서는 달라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제작비 지급규정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마련 해 나갔다.

 

행정을 담당 하던 분 가운데는

너무 파격적이라고 하는 분도 계셨지만

최창봉 부사장님께서 관리부 안에 기꺼이 동의 해

주셨고 현업 쪽에서는 관리부 안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남은

문제가 있었다, 특집 제작이나 틀별 인사를

초청 하는 등 특수한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 해결이 어려워 이사회에서

 설명 했더니 홍경모 사장님께서 그럴 때는

사장 별도결재를 맡아서 하도록 제안 하시어 그대로

 의결되었다. 그 뒤에 그 조항의 남발로 행정 쪽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도상 공사의 틀이 잡혀가던

1974년 2월 인사규정을 개정하면서

 마지막 진통이 있었다. 58세로 되어있던

 차장급 이상의 간부정년을    55세로 하고

 55세로 되어있던 일반직원들의 정년을

 53세로 낮추는 것이었다.

 

실무선에서는 잘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사들 가운데 이 내용이 논의되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나이 든 직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공사발족 때 간부들이 공무원으로 남기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혹시라도 이런 경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공사창립 1년도 안되어

이러한 결과가 왔다며  한숨짓는  간부들도  있었다.

 (공무원시절 사무관급 이상의 정년은 60세였음)

 

2월 10일경 이사회에서

인사규정을 최종 의결 하던 날

 이 안이 비밀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4:1로 가결되었다. 이사회 안건이 비밀

표결에 부쳐진 것은 공사창립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2월 20일경 지역방송국장과

 방송부장 본사 부장급 이상의 합동

연석회의가 본사 스카이라운지 회의실에서

열렸다. 새해도 되고 해서 열린 회의였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어둡기만 했다.

 

3월 1일자로 인사규정이 시행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사원들이 있었기 때문

이다. 어느 지방방송국장은 회의 도중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평생직장을 이렇게

끝내야 하느냐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공사 창립

 1년을 맞아 3월 1일자 대폭적인 인사 발령이 있었다.  

이 인사에서 3급이던 지역 방송부장이 모두 2급 을의

직급을 받는 등 균형을 잃은 인사발령이라는

 비평 속에 이때의 인사로 인해서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차장급 이상 전 전 임직원이

 제 1 연주실에 모였고 이 자리에서

 홍경모 사장은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 다는

 전제하에 격의 없는 얘기를 해 보자고 했지만 이 일이

있고난 뒤에도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그때 직언을

간부는 눈총을 받으며 결국 뒷날 어려움을 당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공사의 틀이 잡혀 갈 무렵의

 마지막 진통이었다.

 

공사창립 1년이 지나면서

공사의 틀은 잡혀갔고 각종 사규도

대충 마무리되어 사규집 발간작업에

들어갔다. 3개월간에 걸쳐 인쇄를

 마친 한국방송공사 첫 사규 집은 그해

 6월 말까지 사내에 배포되었다.

 

공사 창립당시 어렵던 일을

 어렵다 하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밤을 새우며 업무 처리에 열중했던

 그때 관리부의 구성원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

이며 공사의 틀을 마련해서 사규집이라는 문서

책자에 담아 공사 업무처리의 기본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 자랑스러움을  그때 고생했던 관리부원

들과 함께 영원히 간직코자 한다. 그때의 관리부에는

뒷날 텔레비전국장, 편성국장,        기획관리실장을

역임전옥배부장을 비롯해서 부원으로는 KBS

부사장을 역임한 김형준, 본부장을 역임한

이영철 그리고, 고 김성룡, 권의철,

 손춘식 등이 함께 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한국방송공사 창립의 실무진으로

 여러 분야의 일을 담당하셨던 국장님의

다양하신 능력을 새삼 알게됩니다. 이 게시물의

 사진에 보이는 분들 중에는 연세는 드셨지만,     보람

있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뿌듯한 긍지를 느끼실 분들이

많이 계시겠군요.      방송의 역사도 그렇고 한 나라의

역사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인데크게 생각하고,

바른길로 역사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김무생 선생님 글 (KimMooSaeng) 


 

2017.03.05 02:43

★한 집안의 가장이 있듯이 이장춘

 대선배님께서는 한국 방송의 가장이셨습니다.

방송사의 온갖 살림살이를 두루두루 꾸려 오셨어요.

이미 근무하셨던 KBS에 상록수 한 그루를 심어 놓으셨습

니다.제가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지만 지금도 마치 신입사원처럼

현장을 발로 뛰시면서 우리 <춘하추동 방송>을 이끌어 가시니

틀림없는 방송의 상록수이십니다. 제가 감히 대한민국의

 방송의 상록수 두 분 (이장춘 선배님과 김동건

 선배님)을 말씀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견고한 두 분의 상록수

 깃발 아래 여러 방송인 여러분이 만들어

가시는 대한민국의 방송이 <문화의 샘터

겨레의 길잡이>역할을 하는데 큰 촉진제가

 될 것임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인 여러분!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무생 드림.



공사창립 44주년 고대영사장 기념사




뉴미디어 시대,

KBS가 이끌겠습니다


사랑하는 KBS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S 사장 고

대영입니다.

시무식에서 새해 인사를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기

운이 느껴지는 3월입니다. 이처럼 좋은 계절에 KBS 공사

창립 44주년을 맞이하게 돼서 기쁩니다. 먼저, 회사의 생

일날에 수상하신 모든 분께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고하신 것 고맙습니다. 회사는 여러분의 땀과 노

력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KBS, 본격적인 뉴미디어 시대에 진입


사랑하는 KBS 가족 여러분! 이번 공사창립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특별한 날입니다. 지상파 중심의 KBS가 새로운 디

지털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3월 3일 KBS가 모바일 뉴미디어에서 강자가 되기 위한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저는 담당부서에 단기적인 돈벌이

를 목적으로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모바일도 KBS가 선도한다는 인상을 심어주

는 게 우선입니다.

6월에 뉴스 앱과 PC 홈페이지가, 또 9월에는 재난재해 앱

이 서비스에 들어가면 KBS 모바일의 효과는 상상할 수 없

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초기에 이용자를 늘

리는 데 성공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수익모델도 만

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난 달 28일에는 KBS가 세계 최초로 UHD 시험방송을

시작했습니다. UHD 방송은 지상파로도 양방향 서비스

를 가능케하는 기술입니다. 모바일 플랫폼과 UHD 방송은

KBS의 미래 먹거리가 될 소중한 씨앗입니다. 직원 여러분

께서 이 두 분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역량을 모아주실 것

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경영혁신으로 뉴미디어 시대 준비해야


존경하는 KBS 임직원 여러분, KBS가 뉴미디어 시대를 선

도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유능

한 인력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7년 올 한 해 동안 모바일 플랫폼 사업에 190억여 원,

UHD 방송에 580억여 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또 UHD 방

송을 위해 2021년까지 소요되는 재원은 5,200억여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수입구조로는 재원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수신료는 정체돼 있고 지상파 광고는 급격하게 줄고 있습

니다. 지난해 KBS 광고수입은 공전의 히트작 <태양의 후

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818

억 원이나 감소했습니다. 그렇다고 콘텐츠사업 소득이 그

만큼 늘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산수문제입니다. 불필요

한 예산 낭비를 막고 낡은 제작 프로세스와 인력구조를 개

선하는 게 필요합니다. KBS의 인력구조와 제작 프로세스

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6~7명이 작업하던

부조가 이제는 스튜디오 카메라와 조명, 음향시스템이 컴

퓨터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발전과 방송환경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회사는

잡포스팅과 근무형태 변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력관

리실에서는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인력구조를 새롭게

산출하고 있습니다. 또, 매체전략부에서는 최첨단 스마트

기술을 반영한 제작기술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고 있습니

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시간외 소송 때문에 잡포스팅과 근

무형태 변경을 추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추세에 적응하

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입니다.

이미 미래방송센터 건립을 위한 설계공모가 시행중입니

다. 첨단기술과 제작기술 마스터플랜에 따라 미래방송센

터가 건설되면 지금의 인력운영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드

러날 것입니다. 1인 부조시스템이 기본이기 때문에 현행의

6인 시스템에서 5명이 남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송신망 운영도 마찬가지로 이에 걸맞게 변화할 수밖에 없

습니다. 때문에 충격을 완화하고 순차적으로 대비하기 위

해서 지상파에 묶여 있는 인력을 뉴미디어 사업으로 활용

하기 위해 인사제도가 바뀐 것입니다.



KBS의 미래 밝아


사랑하는 KBS 임직원 여러분, 저는 취임 후 여러분의 능력

이 뛰어나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지난해 KBS 드라마는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도 공전의 히

트작 <태양의 후예>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성공시켰고

드라마 명가로 부활했습니다. 지금도 수목드라마 <김과

장>이 시청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방송 90

주년을 맞은 KBS 라디오도 장안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예

전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는 탄핵정국

속에서 우리사회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기술부문도 디지털서비스국과 인프라투자국을

중심으로 KBS에서 가장 혁신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있습

니다. 관료적이고 수동적인 관행을 깨고 회사를 위해 필요

한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지원하는 조직도 늘고 있습니다.

그룹마케팅총괄국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 6개 지역총국을 돌아봤습니다. 직원들에게 직

접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질문도 받고, 미래에 대해 대

화를 나누면서 지역도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

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

을 느끼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저는 KBS 미

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차례 밝혔지만 여러분의 능력을 믿습니다. 여

러분도 경영진을 믿고 경영혁신 노력에 동참해주시기 바

랍니다. 그러면 1, 2년 뒤 여러분은 가장 창조적이고 최강

의 경쟁력을 갖춘 뉴미디어 그룹의 주인공이 돼있을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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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한국방송공사창립 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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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방송공사창립 37주년 기념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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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한국방송공사 창립 3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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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으로 듣는 윤주명, 최창봉 공사창립 그때 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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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역사 3. 이장춘과 한국방송공사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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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KBS방송터와 옛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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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방송 개시 86주년 공사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와 축시(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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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창립 41주년 특집 ‘K-POP 국악에게 길을 묻다’ 가 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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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방송 10년 2015년 4월 24일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비밀댓글입니다
한국방송공사 창립의 실무진으로 여러 분야의 일을 담당하셨던 국장님의 다양하신 능력을 새삼 알게됩니다.
이 게시물의 사진에 보이는 분들 중에는 연세는 드셨지만, 보람있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뿌듯한 긍지를 느끼실 분들이 많이 계시겠군요.
방송의 역사도 그렇고 한 나라의 역사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크게 생각하고, 바른길로 역사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있듯이 이장춘 대선배님께서는 한국 방송의 가장이셨습니다.
방송사의 온갖 살림살이를 두루두루 꾸려 오셨어요.
이미 근무하셨던 KBS에 상록수 한 그루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지만 지금도 마치 신입사원처럼
현장을 발로 뛰시면서 우리 <춘하추동 방송>을 이끌어 가시니 틀림없는 방송의 상록수이십니다.
제가 감히 대한민국의 방송의 상록수 두 분 (이장춘 선배님과 김동건 선배님)을 말씀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견고한 두 분의 상록수 깃발 아래 여러 방송인 여러분이 만들어 가시는 대한민국의 방송이
<문화의 샘터 겨레의 길잡이>역할을 하는데 큰 촉진제가 될 것임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인 여러분!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무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