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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질곡속의 인물 김상겸(金相謙)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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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2018. 8. 31.

[김대성이라는 조카분이 한분 존재함을 확인했고 직계가족들은 한국을 떠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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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백두산포수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京畿道 楊州,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원산출신이라고 했다)에서 출생한 김상겸은 백두산포수인 아버지가 죽을 위기에 처한 러시아 귀족을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아들 김상경을 러시아로 데려가 달라하여 1909년 김상경은 러시아로 이주한다. 그 후 제정 러시아 할곰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러시아 장교로 러시아 터키주재 대사관 무관등을 지낸다. 이후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과의 전투에서의 공으로 대위를 거쳐 중령으로 진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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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은 귀족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가 쫒겨나고 1917년 10월 볼세비키혁명 후 제정러시아군에서 해임된다. 이 후 적백내전에 백계러시아군으로 참전하지만 소유하던 1만2천핵타르의 방대한 토지를 볼세비키에게 몰수당한다. 러시아군에 복무하는 동안 러시아 여자(마리아)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919년 적백내전이 적군 승리로 점점 굳어지자 백계러시아군에 속해 있던 폴란드군을 이끌고 폴란드로 이주하여 신생 폴란드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폴란드 여성(헬레네)과 결혼한다. 폴란드 아내는 두 번째 아내다. 나중에 결혼한 폴란드인 아내와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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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폴란드군에서 대령까지 진급하고 폴란드 제9사단 제8경비대장으로 복무한다. 20년대말 독일령 동프로이센 굼비넨으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가족을 이끌고 꿈에 그리던 북한으로 귀국한다. 해방후 백계 러시아군 장교였던게 소련파 남일 허가이등에게 발각되자 가족을 이끌고 남한으로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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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바로 1947년 만59세의 나이로 육군 사관학교 3기로 입교한후 단기 교육 후 대령으로 임관한다. 5여단장으로 재직하지만 여수.순천 반란사건에서 예하부대14연대가 반란군에 가담하여 문책당하고 해임된다. 당시 주소지는 서울시 금병동 6 (서울市 錦兵洞 6)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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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대령은 러시아어, 폴란드어, 일본어, 체코어, 터키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백선엽장군의 회고록 "실록 지리산"에도 등장하여 '폴란드군출신이고 부인이 폴란드인이라 장교들 사이에 화제이던 인물'이라고 백선엽은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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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哈爾濱外國語學校(하얼삔외국어학교) 卒業, 露西亞할곰陸軍士官學校 卒業

경력 및 활동 : 歐州第1次戰(구주 제1차대전) 出征, 土耳其駐在 露西亞大使官附武官(터키 주재 러시아대사관부무관, 波蘭國第9師團第8警備隊長(폴란드 제9사단 제8경비대장), 光復軍 國內支隊 司令部 高級參謀(광복군 국내지대 사령부 고급참모), 平山牧場長(평산목장장) 等 歷任. 1950년 現在 陸軍大領, 大韓國軍 總司令部 勤務(國防部 第一旅團長).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문서, 참고문헌 대한민국인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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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찍은 가족사진. 가운데 서 있는 유럽인 여성이 부인인 폴란드 여성 헬레네이고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딸이다. 왼쪽에 선 남자가 러시아인 첫 아내와 사이에서 난 장남으로 20살이라고 나온다.



▲ 砲煙彈雨의 歐洲를 九死一生으로 脫出 卅年 만에 도라온 金相謙氏[寫]//都宥浩博士도 昨日橫濱에 到着 - (동아일보 1940년 1월 25일)

▲ 異域風霜三十個年 寤寐不忘의 故土에 昨日 金相謙氏 朝鮮向發[寫] - (동아일보 1940년 1월 28일)



http://blog.daum.net/enature/1585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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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김삼겸대령은


하얼삔외국어학교 => 러시아군 => 1차세계대전 => 러시아 적백내전시 러시아 백인군에 가담 => 폴란드군 => 동프로이센 이주 => 2차세계대전 => 북한==> 남한


-기사내용중에 독일 보쿰 에서 거주시 폴란드군의 침공으로 급히 일본 대사관으로 피신 햇다고 하는데 통상 2차대전은 독일의 침공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저야 할듯함니다..

(근데 할곰 군사학교도 검색불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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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김상겸 대령은 왜 이리 자주 옮겨 다녀야만 햇을까요?


최초 김삼겸대령은 최초 군생활을 러시아(제정)에서 함니다..


제정러시아...볼세비키 혁명전이죠....


당연히 김삼겸대령의 정체성은 반유태인 정서에서 출발함니다..


볼세비키는 유태인집단이죠...(조제프 스탈인==> 당연히 유태인.요셉...ㅎ)


그당시 시대상황에서 편가르기를 해보면 유태인과 반유태인(동유럽일대) 전쟁으로 봐야 함니다..


고로,


영국(유태인)

=미국=프랑스 =폴란드 =러시아(볼세비키)


독일(반유태인)

= 러시아 (제정)= 체코=헝가리 = 오스트리아 =터키=불가리아 =루마니아 = 이탈이아=크로아티아 = 동유럽 대부분


의 관점에서 보면 왜이리 자주 옮겨 다녀야 햇는지 알수있죠..


(당연히 구글 검색해 보시면 볼세비키에 끝까지 대항해 싸운 제정러시아 귀족가운데는

독일 출신이 상당히 많슴니다..)



물론 북에서 탈출한 것도 북에는 당시 러시아(볼세비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 하던때이니


이해하는건 어렵지 않을 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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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참모차장 김상겸?

(일단 한자는 같네요..)


동일인 인지는 확인불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486

대한국군준비위원회(大韓國軍準備委員會)

현대사단체

 광복군을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계열의 사설군사단체.   


해체시기
1946년 3월 1일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광복군을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계열의 사설군사단체.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설립목적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한 오광선(吳光鮮)은 광복군 국내지대를 편성하기 위해 1945년 10월 29일 종로도서관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출옥동지회, 국군준비대, 사관학교기성회, 국민회, 3·1동지회, 건국청년단 대한의용대 등 7개 단체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중경의 광복군 총사령부와는 연락을 취할 수 없어 광복군 국내지대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대한국군준비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조직은 대한국군준비위원회와 대한국군총사령부로 이루어졌다. 대한국군준비위원회는 위원장에 유동열(柳東說), 부위원장에 전성호(全盛鎬)와 조각산(趙覺山), 비서장에 김의연(金義演)으로 구성되었고,
대한국군총사령부는 총사령에 오광선,
참모부장 김승학(金承學),
참모차장 김상겸(金相謙),

헌무부장 장두관(張斗爟), 군수부장 최관용(崔寬用), 군기부장 김기동(金基東), 교통부장 김해강(金海崗), 경비부장 이기환(李箕煥) 으로 구성되었다. 본부는 총독부 중추원 건물에 두었다.
오광선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귀국이 지연되자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이청천으로부터 국내지대로 개칭하라는 허가를 받고, 대한국군준비위원회를 광복군 국내지대로 개칭하였다. 이후 조직 확대에 주력하여 12월부터 모병활동을 전개했다.
광복군 지원자격은 일본군 지원병, 혹은 학도병 경험이 있거나 국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하였다. 국내지대는 서울에 1개 대대를 편성한 뒤 대구, 부산, 광주, 대전, 개성, 인천에 순차적으로 1개 대대씩 창설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광복군 국내지대의 1개 대대는 약 600여명으로 구성되었다.
미군정이 사설군사단체의 해산을 지시하자 1946년 3월 1일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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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을 흔히 게르만 족이라하죠..


우리는 이 "게르" 란 단어를 유심히 봐야 하죠..


게르는 당연히 유목민의 집을 뜻하는 단어 입죠..


따라서 당연히 게르만은 이 "게르에서 사는 사람"을 뜻하는 명칭인 것임니다..


(게르)



영국인들이 독인인을 비하할때 흔히 쓰는 말이 야만스러운 훈족 임니다...


이 독일인을 비하할때 쓴 "훈족"이란 단어가 아무 근거없이 나온게 아니란 말이죠...


헝가리이름이 "훈" 인것도 마찬가지구요,,


아직도 동유럽 곳곳에는 훈족의 전통이 아직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죠


근데 싱기한건 독일인도 러시아인을 비하할때 훈족 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검니다..


당연히


러시아 => 로시 =루스=우스 =우즈=쥬스 =주잔=조선


이건 무얼 의하냐면 먼 태곳적


동유럽과 아시아대륙을 아우르는 대 제국이 태곳적에 존재햇다는걸 암시하죠...


아쉬운건 유목민은 특성상 (순환)이동을 하기때문에


땅을 소유하지도 글자(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