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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있는 진짜 유관순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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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8.



1. 우리가 알고있는 유관순 사진은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유관순이 진짜 맞는가?


 지인들이나 친척들의 증언에 의하면 유관순은 청초하고 갸름한 얼굴이었다고 하는데





이 수형사진이말해주는 팩트는  


키는 5척6촌? (170cm)또는 5척0촌(150cm) 에


비녀를 꼽은 쪽머리 (유부녀)를 한


고문으로 구타당한 얼굴이 아니며

(얼굴모양이 좌우대칭임,,,다음날 수형사진 찍을건대 고문한다?)


19세소녀가 아닌 대략 25~35세 전후의 결혼한 여자로 추정됨...



비슷한 시기(배경이 같다)에 구속된 유관순 동기생 수형사진으로


댕기머리(처녀)와 비녀를 꼽은 쪽머리(유부녀)가 혼재하고 있다

(당시결혼 적년기는 16~19세라고함)



유관순 열사와 배경사진(유관순:적벽돌)도 틀리며


수형의도 유관순은 겨울 솜배옷을 입고 있으며 


동기생들의 수형사진(1919년 3월에 독립운동하고 재판받기직전 4월에 찍은거라고 함)은 비교적 얇은 옷(봄)을 입고 있다 

 



[노순경열사]

열사는 1919년 12월 2일[겨울]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으로 근무하던 중 서울 훈정동 대묘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여 구속 되었으므로 두꺼운 수형의를 하고 있다


2.유관순의 무덤에는 시신이 없다..


 순국후 이장과정에서 소실 되었다고 함...


(1937년 이태원 공동묘지가 택지로 조성되면서 이장하는 과정에서 묘를 잃어버려,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1947년에 조직)에서 1989년 10월 12일에 생가 뒷산인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招魂墓)를 봉안하였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유해를 찿으려는 노력도 안하는 이유가 과연 멀까?


3.유관순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 아무도 모른다.,,,,


걍 고문에의한 후유증이라고함....증말....


그니까 직접적인 사인이 머냐고...


4.우리가 아는 유관순은 국립 교과서가 출판(1952년) 되기

   전까지 일반인의 인지도는 아예 없었다.. 

   (일제와의 투쟁을 매우 강조하는 북에서는 당연히 모름)


====> 많은 항일 학생운동가들 중에서 유독 유관순이 선택된 배경에는 이들이 자신의 친일행위를 덮으려는 목적이었다는 의혹이 있다


(1946년, 이화학당 출신의 박인덕과 이화여중고 교장 신봉조는 이화학당을 알릴 인물을 찾는다. 신봉조가 박인덕에게 "이화학당 출신 중에 국가와 민족에 공헌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박인덕이 3.1 운동 때 순국한 유관순을 제안하면서 비로소 유관순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유관순을 널리 알리기로 하고, 유관순 기념사업회를 구성한다. )

당대의 공판 기록을 보면1919년 아우내 장터 3.1만세를 이끈 실제인물은 19세 소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실질적인 주동자로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로 훗날 미군정청 경무부장, 민주당 당수 등을 지낸 유석 조병옥의 부친이다. 이분의 이름은 조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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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상기와 같은 이유로,

        

         진짜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고의적으로 소실 되었거나


         1950년대 부터 본격적(갑자기)으로 조명 되었으므로

        

          보관하고 전해져내려오는 사진이 다?


          물론 제 추론(가설)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