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소통

jessihoney 2015. 5. 17. 12:34



미국에서는 매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축하한다. 같은 달 8일에 “어버이날”을 기리는 한국과는 달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각기 다른 날에 기념한다. 아이들은 어머니날이라고 직접 만든 카드와 작은 선물을 아침부터 내게 안긴다. 침대 곁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하자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돈이 들어와 있지 않다고. 매달 초에 용돈을 드리는데 이달에는 어버이날에 맞춰서 드렸다. 보냈으니 다시 확인하시라는 답신을 보내니 바로 어머니에게 문자가 온다. ‘기다려라. 조만간 이번 사업 건이 해결되면 네게 생활비 달라는 소리는 안 하마.’ 나는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걸 꾹 참는다.

어릴 적 나의 고민은 한 가지 맥락으로 이어졌다. 왜 내 가족은 남들과 달라 보일까? 모난 구석 없이 평범하게 자라달라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 가정은 뾰족한 모서리투성이였다. 돌출부위는 드러났고 숨기려 할수록 나는 더 부끄러워졌다. 남의 시선이 두려웠고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을까 전전긍긍했다.



말년의 안정이 제대로 산 증거라고?

문제는 의외의 자리에서 해결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나를 당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동반자처럼 여겨주셨다.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셨다. 우리가 각각의 문제 앞에서 나약한, 그래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공감과 연민을 배웠다. 타자를 배제하는 평범함을 벗어나 개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나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니 나의 개별성 또한 당당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평범하고 평균적인 아이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정상성”에의 압박은 느슨해졌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그 뒤에 알았다. 그리고 그 닮음, 인간이 지향하는 “평균성”이란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이르기 힘든 가치인지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상상의 종합과도 같은 평균치를 향해 끝도 없이 달려가는 것보다는, 더 많은 각각의 다름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 편이 좋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저마다의 이유’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어머니의 연애 고민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내 연애 상담도 그녀를 통해 제일 먼저 시작했다. 20대 중반, 한창 연애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서희야, 너는 지금 네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평범하게 살 수 없으면 평범한 사고방식은 버려라. 연애에 있어도 마찬가지야.”

어머니의 말은 옳았다. 그날의 열렬했던 고민은 잊었지만, 그녀의 조언은 뇌리에 남아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그때 내 고민은 세상의 시선과 내 욕망 사이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잊었으면서 어찌 아느냐고? 20대 시절부터 내 고민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후렴구처럼 반복되니까. 어쩔 수 없이 회귀하는 평균치에 대한 열망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불안 사이를 시소 타듯 오르락내리락했다. 내가 마음 깊이 원하는 것은 정작 평균치를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어머니의 삶은 사건사고의 연속이자 좌충우돌 대응기였다. 그녀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언제나 전면적이었다. 거침없이 불행했고 남김없이 행복했다. 행복과 불행의 화학작용을 자연스러운 삶의 운동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변치 않는 낙천성이 남았다. 때로는 대책 없이 낙천적이라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여전히 살아남은 이유는 그 낙천성 때문이라고 믿는다. 누구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빈털터리가 된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행복할 만큼도 불행할 만큼도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릴 수 있을 만큼 다 누려봤다. 그렇게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미안한 것이 있다면, 자식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자꾸 짐을 안겼다는 거야. 뻔뻔해 보였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는 너희들에게 잘하는 일이었어.”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사이에 벌어진 일이 무엇이었든 간에, 엄마가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서 좋았어요. 정성어린 도시락이나 비 오는 날 엄마가 가져다주는 우산 같은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만큼 강하게 자라났어요. 엄마다움에 휘청거리지 않는 엄마라서 좋았어요. 덕분에 나 역시 남과 다른 내 모습을 일찍 인정하고 익숙해질 수 있었어요. 정아씨, 당신처럼 뻔뻔한 여자가 내 엄마라서 좋아요.”

사건사고 연속이었던 어머니 삶
그녀가 살아남은 힘은 낙천성
“난 행복할 만큼도 불행할 만큼도
다 누려보며 살아 후회는 없어”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유보하는 삶 살지 않은 어머니는
인생이 짜릿한 모험임을 알려줘
유혹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사람


모순투성이의 한 인간이었던 어머니는 내게 삶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짜릿한 모험이자 여정임을 보여줬다. 말년의 안정과 성공이야말로 제대로 산 삶의 증거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그녀는 어퍼컷을 날렸다. 청춘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욕망에 솔직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서. 모두가 비참하리라고 말하는 현실에 비참하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은 오랜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다가올지 모를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유보하는 삶은 살지 않았다. 창녀부터 사기꾼까지 그녀 주변에는 차별 없이 다양한 인간상들이 머물렀고 그녀 역시 성녀에서 쌍년까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분 없이 살았다. 구분과 평가는 그녀 몫이 아니었다. 내가 배운 최초의 유혹은 그녀로부터였다. 세상의 다름을 인정하기, 그에 매료되고 다름의 결 속에서 나의 가능성을 탐험하기.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 싶어했다. 자신을 유혹할 수 없다면, 내 삶이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유혹하는 것은 반쪽짜리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삶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세상으로 나아갔다. 일반적 가치 검열에 의존하지 않고도 나를 인정하기, 그리고 그와 같은 인정의 자세로 삶을, 세상을, 사람을 만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하는 일. 이룰 수 없을 꿈일지라도 어머니는 내게 그 감각을, 그것을 꿈꾸는 능력을 심어 주셨다. 불행은 삶의 도발 정도로 받아들인다. 삶의 도발은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나의 품을 넓혀준다. 넉넉한 품으로 나는 삶에 넘길 도발을 준비한다. 이와 같은 작용 속에서 인생은 더없이 흥미진진한 여정이 된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정상’이다

남들 같은 생활수준을 원하고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삶의 가치를 유지하고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정작 “남들”이 의미하는 바에 명확하지 않다. 그들은 유령처럼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혹은 상상 속에나 등장하는 괴물과도 비슷하다. 곧 나타나 우리를 응징할 것 같은, 그리하여 우리 안의 괴물을 스스로 압사하거나 미리 색출하여 처단하게 하는. 인간의 외모에서 평균치란 것도 결코 평범함을 이르지 않는다. 1990년에 발표된 심리학자 랑글루아와 로그만의 실험은, 외모에 있어서도 인간은 평균치를 선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2명의 백인 남성, 여성의 얼굴 사진을 디지털화하여 각각 다른 표본 수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과 원래 사진을 섞어서 300명의 남녀에게 평가하게 했다. 가장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얼굴은 가장 많은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드러난 형질은 그만큼 잘 살아남은 우월한 유전자를 의미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균치를 선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여배우 제시카 알바야말로 평균치 얼굴에 가깝다는 결과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그녀가 태어난 이곳 미국 땅에서도 그녀를 닮은 외모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평균은 가깝지만 머나먼 가치이다. 평균을 평범함으로 혹은 정상으로 대치하는 행위란 위험하다. 다름이야말로 평범하고 다르기 때문에 정상이다. 나아가 각각의 불행이 내 삶의 특별함을 완성한다. 평균치를 벗어난 결점이 내 얼굴의 고유함을 완성하듯. 그것을 재발견하게 되는 자리에 새로운 가치가 창조된다. 바로 사랑이다. 어머니의 불행들이 그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할머니처럼 조용히 살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만, 도로 삼키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이 지향하는 평균치란 내게도 그녀에게도 유혹적이지 않다. 나는 특별한 정아씨를 사랑한다.

이서희
이서희

▶이서희 결혼 전이나 후나 다른 남자(그리고 여자)가 많이 궁금한 여자. <관능적인 삶>이란 책의 저자. 법학도의 탈을 쓰고 영화와 인문학 주변을 맴돌다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와 마음껏 놀았다. 결혼 후 미국에서 12년째 살고 있고, 장차 나와 당신을 함께 발견하고 이해하는 어른들의 학습놀이 공간 ‘유혹의 학교’를 열고픈 꿈을 갖고 있다. 지면으로 먼저 시작하는 ‘유혹의 학교’는 격주 연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