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2장의 우상은 무엇일까요?

김선우목사 2008. 3. 22. 12:28

 

 

  

 

다니엘서  2장의  우상은  무엇일까요?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8)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2:31~35)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다니엘은 순수한 영적인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는 것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14:8)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것 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1~5)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2)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계18:7)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계18:10~13)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계18:21~24)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137:8~9)


바벨론 영적인 어두움’니다.


바벨론을 비유한 것을 보면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

포도주에 취한 상태란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사단은 말씀을 깨닫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훼방과 속임수로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게 된 것을 말합니다.


‘비밀’이라 한 것은 성경의 영적인 의미가 가려져 있기에 바벨론의 이름을 ‘비밀’이라고 한 것입니다.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우상이란 참신이 아닌 것) 즉, 비진리를 따르게 했기에 이것이 영적인 음행이기에 음녀,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❹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의 뜻은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 신랑을 맞을 기름이 준비가 안 된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영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육의 사람이며

거듭났지만 어린 아이의 상태이며

흰옷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벌거벗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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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기 시작했을 때,

즉 애굽에서 출애굽하면

가장 먼저 홍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장관들이 거느린 병거 600승이 추격해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죄의식’입니다.


뒤쫓아 오는 애굽의 장관들이 거느린 병거 600승은

율법의 600여 가지의 조항들이며 ‘죄의식’ 을 말합니다.       

즉, 예수 믿기 시작했을 때, 죄의식에 시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결심하고 신앙생활의 첫발을 내딛으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는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보통 눈만 떠서 움직이면 죄를 짓게 됩니다.

생각만 잘못해도 죄가 됩니다.

또 죄를 아무리 안 짓는다 해도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요구를 완벽히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지고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하고...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죄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입니다.

마틴 루터는 6시간 동안이나 고해 성사를 하며 회개한 적도 있지만 반복되는 죄의식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양심은 늘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루터가 로마서 설교를 준비하던 중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그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죄로부터 헤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 해도 불가능하며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와 상관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마틴 루터를 따라오며 괴롭히던 죄의식

즉, 애굽 군대는 홍해 속으로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죄의식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는 영적인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는 ‘오직 믿음으로’ 라는 말씀을 깨달음으로 건너갑니다.    

           

그렇다면 요단강도 역시 말씀을 깨달음으로 건너가게 되지 않을까요?


광야생활이 마쳐질 무렵 요단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광야가 아니라 요단강 저편인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땅으로 가기를 싫어하고 원망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요단강은 사망의 강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은 육체의 사망이 아닌 영의 사망입니다.

그러면 요단강은 어떻게 건너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홍해는 건넜지만 광야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 믿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성경의 영적인 비유와 상징의 의미, 성경의 핵심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의 참뜻을 모르는 신앙생활이 광야생활입니다.

이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며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습니다(수5:12).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은 성경을 깨닫게 되어 기쁨이 넘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치고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은 것은 성경의 영적인 부분들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 안의 천국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이 보화를 발견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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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화를 발견한 기쁨!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말씀을 영으로

깨닫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❺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바벨론 즉 많은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이 영적 어두움을 사라지게 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는 성경의 참뜻을 아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단의 훼방으로 성경의 영적인 참 뜻은 가려지고 사람의 생각과 해석이 성경의 참뜻으로 알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❼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라고 하신 것을 보면 얼마나 바벨론 즉 영적인 어두움을 싫어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종합해보면,

바벨론은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 비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과부가 아닌 여황으로 앉은 자, 큰 성, 견고한 성, 복술로 미혹한 자,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 진리 없는 성읍, 음녀 등으로 표현하며 바벨론은 영적인 어두움 말합니다.

영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씌어진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어두움은 멸망 받아 마땅한 바벨론입니다.

이 영적인 어두움인 바벨론은 성경을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볼 때 성경의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게 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바벨론의 포로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

즉, 말씀을 영으로 깨달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제 다니엘서 2장의 비유와 상징의 의미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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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단2:36~46)


느부갓네살 왕이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와 같았습니다.


‘뜨인 돌’은 무엇일까요?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보는 말씀입니다.

‘우상’은 무엇일까요? 참신이 아닌 것 즉, 비진리 입니다.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볼 때 성경을 이해하게 되어 비진리는 사라지게 됩니다.


다니엘서의 뜨인 돌과 다윗의 던진 돌 역시 같습니다.

모두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보는 말씀을 의미하며,

다니엘서의 우상과 우상의 상징인 골리앗과 바벨론은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의 우상 =  골리앗(우상의 상징) =  바벨론 


이것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구약의 해석 포인트는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참신이 아닌 것 즉, 비진리를 말합니다.


결국 이 꿈의 해석은,

많은 세월을 우상 즉, 참신이 아닌 것

다시 말해 비진리인 영적 어둠이 지배하겠지만

결국은 뜨인 돌인 말씀

즉,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볼 때

성경을 이해하게 되어

우상 즉 비진리가 사라지고 결국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마음 안의 천국이 성경을 해석하는 키일까요?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우리는 창세기 사건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에덴동산 = 마음 안의 천국


인간인 아담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모양과 마찬가지로 속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속성인 인격과 영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도 주셨다는 것입니다.”(김태원,《자아가 죽은 그리스도인》)


사람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생할 수 있었으며(창3:22) 사람이 일컫는 바가 이름이 되는 엄청난 지혜와(창2:20)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능력의 존재였습니다.(창1:28) 또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이란 ‘기쁨’의 뜻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것은 기쁨의 사라짐 즉 모든 영적인 능력을 상실한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존재에서 혼적인 존재로 전락되었습니다.

모든 능력과 지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질병, 가난, 사고, 생존경쟁, 전쟁 등

오늘날과 같은 문명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 즉 마음 안의 천국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온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엄청난 비극입니다.


하나님과 친구처럼 부모와 자식처럼 지내고 싶으셔서 창조하신 인간이  너무나 불행한 삶으로 바뀌게 된 것을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시며,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하나님 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결정하시고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에덴동산의 첫 아담의 상태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상태,

즉 마음 안의 천국을

회복시키시려는 목적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는 키는

에덴의 회복마음 안의 천국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이 사실을 기록해 놓으심으로

이 모든 내막을 반드시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영적이란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성경의 원래의 뜻과 비유와 상징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식같이 여기셔서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던 인간

그러나 사단에게 속아 영이 죽음으로 혼적인 존재로 전락된 인간

그것을 안타까이 보시며 십자가의 고난을 결정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원래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에덴동산의 상태

즉, 마음 안의 천국이었음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


다시 보면,


인간은 왜 오늘날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십자가 사건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요/

성경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성경의 핵심을 에덴동산의 회복,

즉, 마음 안의 천국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음 안의 천국은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성경의 비유와 상징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 안의 천국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우리의 내부에,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정관념은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천국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하라’의 의미는


잘 못 아는 것을 고쳐라

무지에서 벗어나라입니다.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마음안의 천국을 이루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 역시 마음 안의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온유한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룹니다.”(마5:3~12)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막9:1)


이 말씀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살아서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룰 자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마음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 안의 천국과 죽음 후의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마음 안의 천국으로 성경을 보면,

우상은 부숴지며

골리앗이 쓰러지며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성경의 말씀들은 춤을 추며

당신께 다가올 것입니다.


비진리는 사라지고 성경을 영으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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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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