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은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 죽이시려 하셨을까요?

김선우목사 2006. 11. 21. 11:11

살아서 이루는 마음 안의 천국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 죽이려 하셨을까요?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4:24~26)

 

 

 

길의 숙소란 나그네들의 휴식처 내지는 숙소입니다.

본문을 읽어 보면 모세를 죽이려 하신 이유는,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서입니다.

 

모세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 지도자로 세운 사람입니다. 80년 동안을 준비시키시고, 다섯 번이나 거절하는 모세를 기어코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를 죽이시려고 하니까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니 모세를 살려주셨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의 커다란 의문입니다.

할례 때문인 것 같은데, 이 할례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할례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때에 맺은 언약의 조건입니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17:9~11)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17:14)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유일한 단 하나의 조건입니다. 이 조건 외의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약대로 할례를 받고 후손들 중 남자는 대대로 할례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7:1~27)

 

심히 번성케 하신다.(2)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아름을 바꾸어주시며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신 다.(4~5)

나라와 왕이 자손 중에 나오게 하신다.(6)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8)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주시며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열국의 어미 가 되게 하시고 민족의 열왕이 나게 하신다.(15~16)

아브라함이 백세, 사라가 90세인데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시며 이삭이라 고 이름을 지어주심.(19)

이스마엘은 크게 번성하며 열 두 방백을 낳고 큰 나라가 되게 하신다.(20 )

얼마나 좋은 조건입니까?

마치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는 축복의 종합선물세트 같지 않습니까?

 

할례만 받으면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조건은 아마 찾기 힘들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기어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할례 언약이 왜 중요합니까?

 

왜 하나님은 이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모세를 너도 필요 없어하는 것처럼 갑자기 그를 죽이려 하셨을까요?

이때에 모세의 아내가 얼른 모세의 아들을 할례 시켜 모세의 발 앞에 던졌습니다.

덕분에 모세는 생명을 건졌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모세는 아마 죽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대노하시는 것일까요?

할례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모세까지 죽이시려 하시고,

또한 아브라함에게는 후한 조건으로 언약을 맺으셨던 것일까요?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다윗도 역시 할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할례에 대해 찾아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하나님에게 서니라.”(2:28~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30:6)

 

신명기에서도 마음의 할례를 말씀합니다.

위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되고 또한 생명을 얻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10:16)

 

신약에서뿐 아니라 구약 신명기에서도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종합하면, 할례의 의미는 육체의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란 무슨 뜻입니까?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17:11)

 

이것은 말씀을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영적 할례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말씀을 알아야 합니까?하나님이 우리가 반드시 알기를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마음의 할례의 이해를 돕는 설명입니다.

 

부모와 자식같이, 친구처럼 지내고 싶으셔서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하며 지혜와 능력 등 하나님에 비해 약간 못한 정도의 놀라운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인간 -

 

그러나 사단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어 영이 죽어버려서하나님과 대화가 불가능하며 영적인 지혜와 능력을 잃어버린 채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놀라운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던 것을 상상조차 못하고,하나님을 모르며 영적 무지, 전쟁, 생존경쟁, 사고, 기근, 죽음, 질병 등

오늘날과 같이 살게 된 인간 -   

 

이렇게 될 인류의 운명을 미리 아시고 안타까워하시며

다시 회복시키시려고

그분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위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십자가의 고난을 결정하시는 하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원래 아담의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시고믿음의 선진들에게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 -

 

   인간이 불행해진 원인과 하나님의 안타까움,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이유와   성경의 핵심인 에덴의 회복  하나님은 이 내막을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은,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 즉 원래 아담의 상태로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며 성경의 핵심입니다.

이 내용을 묵상하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성경을 결국 깨닫게 되는데

이것을 할례 즉, 영적할례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헬라어 영어번역 안에within , ‘내부에’, ‘마음 안에의 뜻입니.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에,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즉 아담의 상태로의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로 생각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죽기 전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

 

이 부분에 대해 여러 해석 중에, 오순절 날 성령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정확히 표현하면 죽기 전에 즉, 살아있을 동안 아담의 상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예수님은 늘 천국 즉,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3~10)

 

이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진리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사모하는 사람,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사람,

겸손한 사람,

서로 사랑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이 마음 안의 천국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또한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살아서 마음 안에 천국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원래 아담의 상태로의 회복, 천국, 하나님 나라는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원래 아담의 상태로 회복되면 즉, 마음 안에 천국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가장 큰 특징은,

원래 아담처럼 살아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9~12)

 

고린도 전서13장의 사랑의 은사는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은사는 죽어서 천국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받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미 은사가 필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의 은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사야6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65:24~25)

 

고린도전서 13장과 같은 살아서 마음안의 천국을 이룬 상태,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 안에 이루어진 원래 아담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원래 아담처럼 살아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죽기 전에, 살아서, 현세에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하나님나라 즉, 천국이란 마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는 원래 아담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를 바실레이아’(하나님의 주권으로 완전히 통치되는 완전한 나라) , 하나님나라, 천국 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미국의 풀러 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김세윤 교수는 그의 저서 주기도문 강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탕자 비유는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아담적 운명을 극복해서 다시 한 번 창조주와 연합시키는 것, 그래서 창조주의 초월 곧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아포데오시스(apotheosis)' 라고 합니다. 즉 인간이 참으로 하나님같이 됨을 뜻하는데 그런 구원을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가르치심은 똑같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천국 오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원래 아담 상태로의 회복, 즉 살아서 이루는 마음 안의 천국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천국복음 즉 마음 안에 내재하는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며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4:23)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 안에 임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16)

 

천국은 두 가지입니다.

죽음 후에 영원히 사는 천국과 살아서 마음 안에 이루는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이루는 마음 안의 천국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살아서 이루는 마음 안의 천국, 살아서 이루는 마음 안의 하나님 나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열리게 됩니다. 결국 성경을 이해하게 되면, 영적인 사망의 강인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란, 영으로 이해하는 영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열어진 것을 마음의 할례라고 합니다.

영적 사망의 강인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과 영광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현재와 같은 고통스러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지금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강해설교자로 불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저서 <창세기에 나타난 복음> 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때 인간은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세상이 늘 이 지경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의롭게 창조되었습니다. 거룩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어그러진 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화답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완벽한 지복의 삶이었습니다.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해서 그리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노력이 문명의 전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등장했던 철학과 정치사상, 이상향의 청사진들은 전부 이 노력 - 낙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의 일환이었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인류최대의 불행이며 하나님의 큰 슬픔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내막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주제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 즉 에덴동산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서입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 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          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순간을 정점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풀러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인 김 세윤 교수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구원의 시대가 열렸을을 설명 

     합니다.

 

우리 인간의 아담적 숙명을 극복하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회복되어 창조의 신적 생명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입니다. 어떻게 열렸습니까?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 노릇 해주시겠다는 과거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탄의 통치로부터 해방시켜서 자신의 의와 생명의 통치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이 세대 끝에 하나님의 오심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묵시 문학적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의 메시아를 보내사 사탄의 세력을 꺾고 오는 세대를 열므로 하나님의 하나님 노릇 해주시겠다는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리라고 선지자들은 예언했는데, 그것이 지금 임박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 구원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인간의 아담적 숙명을 극복하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회복되어 창조의 신적 생명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 수의 복음입니다.’

  

     , 에덴동산의 아담의 상태가 회복되는 구원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복음 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영적인 사망권세를  

     폐하시고 에덴동산의 아담의 상태로 다시 회복되는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두 번 바뀌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한 번 바뀌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사망권세를 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두 번째 바뀌었습니다.

 

     모세는 아들에게 이러한 내용들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즉, 아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시키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