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賢岩)의 블로그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뉴질랜드호주기행[2006년03월]

댓글 0

나의 이야기

2010. 9. 2.

 

뉴질랜드(New Zealand)-호주(Australia)기행문                          

  필자(筆者)

 

                                                                        김준환[金俊煥]

[서언]

 

20060303-0312일의 910일간에 걸쳐서 이 당훈(李唐薰)학형과 함께 최초로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와 호주를 여행하였다. 뉴질랜드 북섬의 주요 여행지는 로토루아(Rotorua)관광단지였고 동 남섬은 피오르드국립공원(Fiord National Park)의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이었으며 호주는 시드니(Sydney) 및 주변의 블루마운틴국립공원(Blue Mountain National Park)을 비롯한 기타의 관광 명소였다.

 

[20060303][금요일][맑음]

       아시아나항공(OZ601)편으로 0303 20:00에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다. 

 

[뉴질랜드][New Zealand]

[뉴질랜드개요]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알려진 뉴질랜드는 공무원 청렴도와 국가안정도는 세계1위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지리         면적         남한의 약 3(27km2)

             수도         웰링톤(Wellington)

             날씨         한국과 반대의 계절, 여름(12, 1) 16~20,                              겨울(7, 8)8~16

             사회인구     390여만 명(2002년도기준)

             인종         백인 82.2%, 원주민 9.2% 폴리네시아인 2.9%,                                기타 5.7%

             평균수명     74, 80

             종교         영국 성공회 24.3%, 장로교 18%, 가톨릭 15.2%

             역사         AD950  마오리 원주민 이주

             1642         뉴질랜드 발견(네덜란드 : 아벨 타즈만)

             1769         영국인 James Cook 뉴질랜드 상륙

             1840         와이탕기 조약(영연방 편입)

             1852         헌법공표

             1893         여성 참정권 확립(세계최초)

             정치체제     입헌 군주제

             원수         영국왕 엘리자벳 2

             의회         단원제, 의원수 100

             한국 관계    1950 6.25당시 5350명 파병(119명 사상)

             1963         외교관계 수립

             1965         박정희 대통령 뉴질랜드 방문

             현재         교민 8000(유학생 700명 포함)

             경제         GNP 17000US달러, 실업률 4%, 금리 9%

             자원         석유, 석탄, 천연가스, 사철, 목재, 수산자원

             축산         4천만5백만 마리, 9백만 마리, 사슴 150                        만 마리, 알파카 20만 마리

             공업         임산물 가공, 수산물 가공, 시멘트, 비료,                                 , 피혁, 식품가공수출 350US달러, 수입330                               US달러

             특산물양모 제품[양모이불, 순모스웨터, 베이비램 모                        , 캐시미어 재킷 등]

                           녹용, 녹혈, 녹근 등의 사슴 부산품

                           신의 축복이라 불리는 신비의 섬유 알파카

                           남태평양 진주 [흑진주, 골드진주 등]

                           유황머드팩, 라놀린 태반크림, 기타 목공예품

             무역         호주, 일본, 한국, 영국, 독일, 중국 등(한국과                              의 교역량은 약 연간 약 14 US달러)

[역사]

[마오리(Maori)족의 도착]

       쿡 아일랜드나 타히티 섬의 항해자 들이 약 1,000년 전에 돛을 달은 한 척, 또는 그 이상의 쌍 선 카누를 타고 잡목이 무성한 뉴질랜드 섬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노련한 항해자 들이었다. 그들은 식량을 충분히 실은 견고한 배를 타고 주 해류를 따르고 철새들이 날아가는 길을 따라, 그리고 별의 방향을 따라 항해를 했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폴리네시안 인들은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새들이 많고 바닷가에는 포유류가 많았다. 그 후 특이한 마오리문화가 발생했고, 그들이 처음 아오테아로아로 건너온 것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신화들이 생겼다.

       뉴질랜드에 마타호우루아(Matahourua)의 최초의 카누를 타고 도착한 사람은 타히티 출신 선장 쿠페(Kupe)였다고 전해지며, 그의 아내가 이 땅을 아오테아로아,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마오리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선조들이 하와이이키(Hawaiiki)라는 곳을 떠나 많은 카누 선을 타고 북섬의 북동쪽 해안에 처음 도착했다고 한다.

       정착초기의 사람들은 조류와 근처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로 가득 차 있는 땅에 빨리 정착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게 되자 (30년에 배로 늘어났다고 추정)이러한 풍부한 음식 자원들이 모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대지방 생활습관이 온대지방 생활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착인 들은 적응을 해야만 했다. 계절에 따라 식물을 심고 양식을 저장하는 법을 터득했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 대신 플랙스폴로 짜 만든 소매 없는 외투를 입게 되었다. 거주지도 폴리네시아의 개방된 집 대신 더 작고 아늑한 집을 지었다.

[유럽인들의 정착]

       17,18세기에 뉴질랜드를 우연히 발견한 유럽탐험가들은 전설에 나오는 남반구 대륙을 찾고 있었다. 첫 번째는 아벨타스만(Abeltasman)이라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그는 자바(Java)에 있는 무역기지에서 선박 2채의 선장 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1642년 후반에 남섬의 북단 근처에 있는 보호수역에 닻을 내렸다.

       타스만은 현지 마오리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혈전 끝에 네 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따라서 그 지역을 살인자만(Murderer's Bay)이라 부른다. 한 화란 지도 작성자는 후에 이 신천지 땅에 화란어로 Niew Zeeland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란에 있는 한 해안지방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기록상 두 번째로 뉴질랜드에 도착한 유럽인은 영국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었다. 아벨타스만 보다 100년 이상 뒤였다. 과학탐험 항해 차 엔데버(Endeavour)호를 지휘하던 제임스 쿡 선장이 1769 10월 뉴질랜드 북섬의 동해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쿡 선장은 현지 마오리인과 접촉을 했으나, 또 한 번의 불행한 접전으로 몇몇 현지 마오리인 들이 살해되었다. 쿡 선장은 남섬과 북섬을 배로 일주하면서 지도를 그리고 마오리인 들에 대한 글을 쓰고 동식물 견본을 채취했다. 1773년과 1777년에 다시 뉴질랜드를 방문하고 그가 본 바를 기록해 많은 유럽인들이 이곳으로 오도록 자극했다.

       새로 이주해온 유럽인들은 대부분 무역상, 고래사냥꾼, 물개사냥꾼, 그리고 선교사들이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자원을 탐낸 무역상들은 일시적으로 체류하면서 귀중한 물자를 보트에 가득실어 수출했다. 불법이 난무했고 토지 매매질서가 문란했다. 한편 선교사들은 이 땅에 기독교의 소개를 원했다.

[지리]

       초록빛으로 단장된 뉴질랜드 섬들은 적도와 남극 사이 태평양의 남서쪽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호주로부터는 약 1,600km 떨어져 있다. 크기는 일본이나 영국과 비슷하며 전 국토의 면적은 약 270,500km2이다. 두 개의 주요 섬인 북섬과 남섬은 쿡 해협(Cook Strait)으로 떨어져 있으며 이 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은 20km 밖에 되지 않는다. 남섬과 북섬을 합친 길이는 약, 1,600km이지만 두 섬 어느 지역도 바다에서 12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은 없다.

       뉴질랜드의 환경은 지역에 따라 무척 다양하다. 국토의 4분의 3이 해발 200m 이상의 고도에 위치해 있다. 남섬에 위치한 남 알프스는 산맥의 경사는 완만하지만 정상에는 만년설이 덮여있으며 이 산맥에는 3,000m 이상 되는 높은 상봉우리가 18개나 있다. 남 알프스 산맥 얼음은 360개가 넘는 빙하를 따라 이동되며 이 중 가장 유명한 빙하는 타스만 해에서 몇 km 떨어지지 않은 우림(rain forest)속까지 펼쳐져 있다.

북섬에 있는 섬들은 대부분 화산이며 이 화산들은 북섬 중부지방에 밀집해 있다. 화산근처에는 게이저(간헐천), 온천, 유황지대 등이 있다.

       북섬과 남섬 모두 비옥한 농경지와 대규모의 인공림과 자연림, 모래 가득한 해변, 굽이치는 강이 있다. 호수도 많으며 북섬에는 대규모의 호수가 화산지대 가까이에 있다. 남섬에 있는 호수의 대부분은 빙하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산 근처에 자리해 더할 나위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남섬의 남서부, 남 알프스가 끝나는 곳에는 웅장한 피오르드(Fiord)가 여러 개 있다.

[산업]

[농업]

       마오린인들이 태평양에서 가져온 고구마와 다른 작물로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830년대에 마오리인 들이 경작한 막대한 양의 감자와 곡물로 뉴질랜드는 호주를 위한 곡창지대로 변모해갔다. 그 이후 유럽출신 이민자들이 뉴질랜드로 동물과 곡물 씨를 가지고 들어와 새 땅의 기후와 토양 조건에 적응시켜 나갔다.

       양호한 기후와 토양에다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로 인해 뉴질랜드는 19세기 말경 농산물 주요 수출 국가가 되었다. 뉴질랜드는 엄청난 양의 양고기와 쇠고기, 양모, 낙농제품, 가죽을 생산해서 냉동선박에 실어 영국으로 수출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농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 1차 산업은 여전히 뉴질랜드경제의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농업은 뉴질랜드 수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올리고 있고, 1,650만 헥타르 이상의 땅을 사용한다. 4,500만 마리의 양과 거의 900만 마리의 소를 기르는 땅은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농업부문은 최근에 주요한 변화를 겪었다. 1984년 이래 경제개혁의 결과로 뉴질랜드는 선진국 가운데서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없어진 소수의 국가 중 한 나라가 되었다.

       뉴질랜드 농부들은 정부 보조금이 없어진 후 작물을 다양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길러 나갔다. 새로운 수출상품으로는 사슴, , 염소, 타조, 과일, , 야채, 약초, 종자, 유기농산물, 그리고 식용유 등이 있다.

       가축 류가 아직도 뉴질랜드 농산물 생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수출 수입의 절반 이상을 벌어 드린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어린 양고기(lamb)의 약 90%, 성장한 양고기(mutton) 75%, 쇠고기의 80%가 수출된다.

       뉴질랜드 양은 강한 교배종 양모를 생산하는바, 세계 양모 생산량의 4분의 1이 뉴질랜드에서 나온다. 이런 종류의 양모는 카펫, 의류, 담요, 의자 씌우개, 가구 씌우개 등에 사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뉴질랜드 양모의 약 3분의 1이 카펫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뉴질랜드의 거대한 낙농업도 주로 수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뉴질랜드가 생산하는 우유는 전 세계 우유 생산량의 일부밖에 안되지만, 세계 낙농제품 교역량의 4분의1을 차지한다. 1960년 이래로 수출물량은 거의 3배로 늘어났다. 뉴질랜드의 30개 낙농공장에서 생산하는 주요 제품은 분유, 버터, 치즈, 카제인과 같은 단백질 제품이다.

       최근 뉴질랜드 데어리 그룹, 키위 데어리즈와 데어리 보드가 합병되어 글로벌 데어리 컴퍼니(Global Daily Company)로 발족되었고 이 회사는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낙농회사이다.

       150년 이상 뉴질랜드는 세계 최고의 경주마를 사육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수립했다. 1930년대에 뉴질랜드 파랩(Phar Lap)같은 세계 최고의 순종 경주마로 미국과 호주에서 각광을 받았고, 그 이래로 특히 태평양 연안 국가로의 순종 경주마 수출은 계속 번창하고 있으며 그 가격은 1마리당 10NZ달러에서 3백만NZ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70년대 이후 상당한 규모의 땅에 원예작물을 심기 시작해서 지금은 뉴질랜드 농업생산의 8분의1을 차지한다. 키위, 사과, , 복숭아, 살구, 양파, 호박, , 베리등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 키위 산업 개발에 앞장선 나라로 알려져 있다. 10년 만에 수확량을 2배로 늘인 후 뉴질랜드는 이제 전 세계 수확량의 4분의 1을 생산한다. 갈색 껍질에 털이 있고 연두색 과육을 가진 이 키위 과일 중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것은 제스프리(Zespri)라는 라벨이 붙는다.

       포도주 생산은 1970년대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 포도주 품평회에서 많은 뉴질랜드 포도주가 수상을 함으로써 널리 인정되기 시작했다. 1999, 61개국에 수출된 1, 660만 리터의 뉴질랜드 포도주 수출수입은 거의 12천만US달러에 이르렀다.

[임업]

       삼림은 뉴질랜드 3분의 1을 차지한다. 640만 헥타르가 자생 림이고 150만 헥타르는 조림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전 세계 라디아타 파인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바 이 소나무는 뉴질랜드 목재 산업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 자생 림은 산악지역, 특히 남섬의 서쪽 해안에 있다. 너도밤나누, 카우리, 리무 , 마타이 그리고 타와 같은 나무가 이런 자생 림 속에서 다른 희귀한 동식물과 함께 자라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자생 림의 약 5분의 4를 보호하고 있고, 나머지는 카터홀트하비(Carter Holt Harvey)와 플레처 챌린지(Flecher Challenge)같은 대기업에서 보호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목재 가공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4개의 펄프 및 제지 회사, 5개의 합판회사, 350개의 제재소와 80개의 제조업체가 채벌된 나무의 3분의 2를 가공한다. 목재산업은 북섬 중부지역에 관련 산업을 일으키고 중소 도시가 생기게 하여 지역 경제에 현저한 영양을 미쳤다.

       주요한 삼림 제품은 통나무, 재제목, 나뭇조각, 펄프와 종이다. 1970년대 초 이후 수출물량은 4배로 늘어나 1997년에는 수출액 227천만US달러로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큰 수출 산업이 되었다. 수출물량의 3분의 1은 일본으로 4분의 1은 호주로 간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으로 농업과 임업연구 자문서비스 부분에서 선두주자이다. 농림부는 식품, 섬유, 목재 산업을 지원함으로서 인간과 동식물간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한편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환경 보전을 도모하고 있다.

[수산업]

       수산업은 많은 뉴질랜드인 들의 사회, 문화, 경제적 복지의 소중한 원천이다. 뉴질랜드인 5명중 1명이 낚시를 즐긴다. 마오리인 들은 수산업과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법으로 고기를 잡는 권한을 보호받고 있다. 수산업은 1만여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으며 뉴질랜드 수출고의 약 5%를 차지한다.

       뉴질랜드의 배타경제수역(EEZ) 120만 평방해리 지역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4번째로 크다. 그러나 수심이 얕은 전체 3분의 1이하 수역에서만 고기잡이가 가능하다. 배타 경제수역 안에는 1000여 어종이 살고 있으며 그중 약 10분의 1이 경제성 있는 어종이다. 어획고가 높은 어종으로 그린홍합(greenshell mussel), 닭새우(rock lobster), 호키(hoki)와 오렌지 러피(orange roughy)를 꼽을 수 있다.

       배타경제수역 안에 있는 어장은 '공유자산'으로 취급된다. 수요를 조정해서 고기를 남획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어장관리 정책은 1980년대에 자유어획 방식에서 재산권에 바탕을 둔 쿼터 관리 시스템(QMS)으로 바뀌었다. 수산부에서는 연간어획량 한도를 설정하며, 각 어부는 일정한 양을 소유하게 된다. 생태학적으로 고기가 멸종되지 않도록 어획량 한도를 설정한다.

와이탕기 조약에 따라 마오리인 들은 전통적으로 수산업에 중요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1992, 마오리인 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협상이 타결되어 이제 마오리인 들은 상업적 어획쿼타의 37-40%를 소유한다. 협상이 타결된 이후 50개가 넘는 마오리 수산회사가 생겼고, 마오리 부족의 5분의 1이 수산가공 시설을 운영하거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야생동식물]

       뉴질랜드는 세계의 다른 곳과 거의 8천만년 동안 격리되어있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조가 대단이 많다.

       뉴질랜드에 사는 조류들은 수 천년동안 천적이 없이 진화되어왔다. 따라서 많은 조류들이 날개를 사용하지 않아 퇴화되었다. 보통 사람크기의 2배만한 거대한 모아 새(moa)와 같은 몇몇 종류는 멸종했으나, 아직도 존재하는 새로는 야행성인 키위새(kiwi)와 큰 앵무새인 카나포(kakapo)가 있다. 키위는 뉴질랜드인 들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수많은 동식물이 지질학에서 말하는 쥐라기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도마뱀 같이 생긴 투아타라(Tuatara)는 뉴질랜드가 아니었더라면 1억 년 전에 멸종하고 없어졌을 유일한 잔존 파충류이다.

       인간이 발을 디디자 이 땅의 생물에 충격이 컸고 멸종이 가속화되었다. 자연 생태는 개간으로 인하여 멸종되어갔으며 그 속도는 쥐나 주머니쥐, 족제비 등에 의해 더 가속화되었다.

       희귀 종들과 자연생태의 감소는 지난 수십 년간 점차 줄어들었다. 뉴질랜드는 자연생태 복구와 몇몇 희귀 종 갱생에 성공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현재 많은 뉴질랜드 원시림 종들이 법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로 1000년 넘게 사는 카우리 나무가 있다.

(출처: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홍보자료와 기타에서 일부 인용)

 

[20060304][토요일][맑음]

       034일 호주의 시드니(Sydney)공항에 도착하였다. 항공사직원들의 늦장으로 환승 수속에 애를 먹었지만 뉴질랜드(New Zealand) 비행기 NZ102편으로 갈아타고 동일 15:30분경 뉴질랜드의 북섬에 위치한 오클랜드(Auckland)공항에 도착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호주의 시드니나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시 모두가 정원도시로 숲속에 건물들이 놓여있는 것이 우리네 도시와 전혀 달랐다.

       16:00경 전용버스로 오클랜드를 출발하여 유황온천과 유황 진흙(mud)의 도시로 유명한 관광도시 로토루아(Rotorua)로 향하다.

         한국과의 시차는 서머타임 시에는 4시간 차이가 난다. 이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최초로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버스 차장 밖을 내다보니 쾌적한 푸른 초지들에서 한가로이 수많은 양, , , 등이 풀을 뜯고 있다.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는 버스로 약 3 30분이 소요된다.

       차들도 그다지 붐비지도 않는다. 이 나라사람들은 차를 사도 지독하게 오래 탄다고 한다. 중고차의 주행거리가 150km가 되어도 끄떡없다. 운전기사 [에리]는 이 나라 원주민인 마오리(Maori)인과 영국인의 후손이다. 한국의 안내원은 [마이클] 1991년 이래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마오리 인사말을 한 마디 배웠다. 키아오라(Kia ora) - 안녕하세요.

       버스가 지나는 연변은 거의 모두가 양, , 말 등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양지다. 특히 양은 뉴질랜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동물로 1882년 냉동선이 취항함으로써 양고기의 해외수출이 가능해진 것을 계기로 양 사육이 발전하였다고 한다.    

       전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땅에 사육되고 있는 양의 수는 약 45백만 마리 정도로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약 390만 명 정도로 보니까 한 사람당 12마리의 양을 키우고 있다는 셈이 된다. 그 밖에 도 소가 900만 마리, 사슴 150, 알파카 20만 마리가 방목되고 있다니 이를 합하면 국민 한 사람당 약 14마리 정도의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모두 방목을 하는데 예컨대 소1마리가 요하는 면적은 최소 1500평이라며 큰 것은 15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방목장에는 축사가 전혀 없으며 가축들은 사계절 모두 들에 방치된다. 이와 같이 자연식 방목으로 사육하는 소와 우리네처럼 축사에 가두어놓고 각종 한약재와 곡물만 먹고 자라는 소의 스트레스는 어떠할 가도 생각해 보았다.

       이따금 까만 울타리를 한 목장이 보인다. 이것은 말 사육장이라고 한다.  이 말들은 식용, 승마용, 경주용으로 구분된다. 특히 경주용 말은 그 가격이 엄청나다. 언젠가는 싱가포르 사람이 1마리를 360NZ달러에 사간적도 있다고 한다. 

       이제 사슴과 유달리 한국인과 중국인만이 사족을 못 쓰는 녹용 얘기를 해보자. 뉴질랜드 사슴은 사슴고기를 먹는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헝가리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광활한 벌판에 야생하는 사슴은 천적이 없어 무한정 번식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는 사슴을 사냥해 꼬리를 잘라오면 포상을 하기도 했단다. 60년대 한 한국인 한의사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며 이 모습을 보게 됐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녹용을 보고 국내에 들여올 결정을 했다. 그래서 70년대 초부터 뉴질랜드 녹용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뉴질랜드 녹용은 레드 디어(red deer)(적록)로 몸집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80년대 초 국내에서 양잿물을 돼지 피에 섞어 매화록에 주입해 제조하는 것이 적발돼 사회문제 된 후 뉴질랜드 산 녹용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중국이나 러시아산과 구별하기위해 '뉴짜'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덩치가 큰 북미 산 사슴, 일명 엘크가 간혹 눈에 뜨이고 있어 현재 뉴질랜드 사슴이 초창기 헝가리에서 수입한 레드디어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초창기에는 성장이 나빠 털의 촉감이 깔깔해 '깔깔이"이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나 영양 상태와 품종개량이 이루어진 현재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녹용은 드물다는 것이다. '원용'이라는 명칭도 이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94년까지 녹용으로 쓰였던 알래스카 순록 일명 '알짜'와 중국산'깔깔이, 꽃 사슴 그리고 러시아에 홍콩을 통해 들어오는 크기가 큰 녹용을 구분하기 위해서 원용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녹용 중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하는 국가에서 지역이건 품종이건 간에 약효차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녹용의 주 수입 처는 한국과 중국이라고 한다.

       또한 알파카(alpaca) 1990년 대에  남미의 칠레 고산지대에서 도입하여 육종된 것으로 그의 털이 최고의 값을 자랑한다. 알파카란 남미 안데스산맥의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빙하지대에서 서식하며 어릴 때는 양, 중간에는 사슴, 자라서는 낙타의 형상을 닮은 낙타 과의 산양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중 약 90%는 남미지역에서 그 밖에 미국과 뉴질랜드 등지에서 사육되고 있다. 1000년 전 GIZA라는 대형 피라미드가 완공될 당시 잉카인들은 그들의 부를 알파카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나 로 평가하였으며 알파카 섬유로부터 옷감을 얻었다고 하며, 2000년 전 이스라엘 통합부족 대비드왕은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신성시 연출하는 것과 같이 알파카 섬유로 생산된 다양한 색상의 의상으로 그들의 우아함과 숭고함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3000년 전 페루인 들은 그들이 보물 시 해왔던 알파카를 상업적 가치로 확대하기 시작하였으며 근세 들어 알파카는 1983년 미국에 알려지기까지는 외부세계로 노출되는 것이 제한되었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미국의 소규모 수입업자들이 이 알파카를 사육하기 위해 조금씩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향후 알파카는 섬유제조업자나, 패션디자이너, 그리고 일반인들이 이 괄목할만한 "(섬유)"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며, 우수한 유전학적 구조로 인한 뛰어난 품질은 계속적으로 인간에게 요구되어 그 수요가 엘리트그룹으로 급속히 옮겨갈 것으로 예상되며 알파카 섬유는 모헤어보다 강하고, 실크보다 섬세하고, 면보다 부드럽고 오리털이나 고어텍스 같은 합성 섬유보다 따뜻하고 니트보다 더 통기성이 좋은 특별한 섬유이다.   

 

[로토루아][Rotorua]

       19시경 로토루아 시에 도착하다. 이 로토루아 시는 북섬의 중앙, 로토루아 호수와 타라웨라 산을 끼고 발달한 도시로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에서 11번째 가는 규모와 인구 65,000여명의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이다. 15만 년 전부터 용암이 들끓던 화산지대로 약 100년 전에도 화산이 폭발하였다고 한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타히티에서 항해한 끝에 이 섬에 도착한 '테 아라우'라는 부족이 신천지를 개척하려고 내륙을 헤치고 들어가는데 호반에서 수증기를 분출하는 로토루아 호수를 발견하여 호수의 이름을 따서 시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전역을 뒤덮는 화산지대 중 북섬의 중심지로 유황냄새를 풍기는 '유황의 도시'이다.

       도시전체가 온천 중심지로 노스섬의 사면 온 난대 중심부에 있는 화산성 공원에 위치한다. 하루에 2-9회씩 20m이상까지 솟아오르는 웅덩이를 분출하는 간헐천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온천의 뜨거운 느낌과 유황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으로 광천수가 나오는 목욕탕, 인접해 있는 정원 및 호반의 국립요양소가 과거에는 주요 관광지였다. 여러 가지 색깔의 지의류, 이끼와 염류퇴적물들을 볼 수 있는 로토루아는 완전한 유색 수영장과 호수들로 수영장과 호수에는 규산염과 광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로토루아는 원시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

       북서쪽으로 240km 떨어져 있는 오클랜드와 남서쪽으로 473km 떨어져 있는 이 나라의 수도 웰링톤(Wellington)이 연결되어 있으며 주된 휴양지 겸 회의장소로 이용되고 있어 전 세계관광객은 인구의 10배를 넘는다고 한다.

 

[마오리 민속쇼와 항이 디너]

       로토루아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아오랑게피크레스토랑(Aorange Peak Restaurant)에서 마오리 식 뷔페를 들면서 마오리족 남녀가 추는 마오리 하카 민속춤을 관람하면서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카(Haka)춤은 마오리족의 진정한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오리족의 역사가 담긴 "하카"를 외우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데 도전적인 노래가사에 위협적인 몸짓까지 갖춰야 하는데 사냥이나 전쟁터에 나갈 때 무훈을 북돋우기 위해 집단적으로 춤을 추는 전통의식이며 한편 포이(poi)춤은 갈대의 일종인 피우피우로 만든 스커트를 입은 마오리 아가씨들이 포이라고 하는 소품을 든 채 추는 춤이다.  마오리 식단 중 항이 디너는 화산 지열로 뜨거워진 돌을 이용하여 돼지고기, 양고기 같은 육류와 감자를 쪄내는 마오리 특유의 전통음식으로 적포도주와 같이 들어보니 맛은 있으나 좀 느끼하여 이런 때 우리의 고추장 생각이 났다.

 

[로토루아폴리네시안풀][Rotorua Polynesian Pool]

       저녁 식사 후에 폴리네시안 풀로 갔다. 이곳은 예부터 있던 노천 유황온천으로 온도에 따라 8군데로 분리되어있다. 탈의장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풀에 들어가 보았다. 우리네 대중탕의 뜨끈뜨끈한 맛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저 따스한 기분이다. 백인남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한중일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한국말, 중국말, 일본말로 요란하게 지꺼려서 마치 연못 속의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듯했다. 온도는 서양 사람들의 기분에 맞도록 조절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서양 사람들은 뜨겁다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풀장은 퍼블릭과 프라이베트로 나뉘는데 퍼불릭은 온천이라기보다는 수영장 스타일과 비슷했다. 커플들을 위해 프라이베이트 온천도 있다고 하는데 추가비용을 내고 동그란 욕조와 나무로 된 의자와 샤워시설을 갖추고 30분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온천중에 유황냄새기 물씬 풍겼다. 유황성분이 많아 수질은 매우 좋다고 하며 가루로 만들어서 기념품으로 팔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시드니를 경유하여 오클랜드에 도착 막 바로 버스로 갈아타고 정신없이 이곳 로토루아에 강행군 한 탓인지 꽤나 피로감을 느꼈는데 탕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다소 피로가 풀린 것 같았다.

       로토루아시의 키위빌라(Kiwi Villa) 호텔에 투숙하다.

 

[20060305][일요일][맑음]

       06시에 기상하여 근처를 산책하다. 맑은 공기 속에서 새하얀 뿌연 증기가 사방에서 솟아오른다. 알고 보니 화산지열지대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다리건너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처에서 솟아나는 증기 속을 지난다. 개울에서도 솟아나고 웅덩이의 맑은 물속에서도 솟아난다. 앞 쪽에서 "back", "back"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난다. 알고 보니 "나가달라"는 마오리 주민의 성난 목소리다. 아마도 주인의 허락 없이 무단출입한 것이다. 마오리조각으로 장식한 교회도 보인다. 부랴부랴 쫓겨나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은 호텔의 한국 식당에서 소고기 국밥으로 들다.

       북섬의 중앙에 위치한 로토루아 지방은 와이카토 강을 시발로 하는데 북섬에서 타우포호수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로토루아 호수(Lake Rotorua)(마오리 말로 제2의 호수)를 중심으로 타라웨라 산을 끼고 발달한 뉴질랜드에서 11번째 가는 규모와 인구66,000명의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이다. 뉴질랜드 전역을 뒤덮는 화산 지대 중 북 섬의 중심인 이곳에서 관광객을 처음 반기는 것은 유황냄새로 이곳의 다른 이름인 '유황의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로토루아 호수는 14세기 중반 하와이키에서 카누를 타고 항해해 온 오호마랑의 부족의 후손인 이헹아가 발견하였으며 '두 번째 호수'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로토루아 호수의 남쪽에는 시내가 형성되었고, 서쪽에는 뉴질랜드의 상징인 양떼들이 뛰노는 아그로돔(Agrodome)과 송어 양식이 활발한 파라다이스 밸리(Paradise Valley), 동쪽에는 진흙 열탕 지대인 티키테레, 남쪽에는 로토루아 관광을 이루는 마오리 마을과 간헐천이 있는 와카레와레와 타라웨라 산이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로토루아에는 약 5천명의 마오리인 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마오리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이며, 온천과 간헐천(geyser), 머드폴(mudpole)과 지열로 끓어오르고 있다.

 

[파라다이스 밸리 송어양식장][Paradise Valley]

       우선 들러본 것이 로토루아 시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계곡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밸리이다. 원이름은 Paradise Valley Springs Wildlife Park이다. 6만여 평에 자리 잡은 무성한 숲과 개울위로 설치된 나무보도를 따라서 수목이 내뿜는 싱그러움을 느껴보기도 하면서 각종 동물식물들을 두루 구경하였다.

       투명한 연못에서 유영하는 무지개송어(rainbow trout), 갈색송어(brown trout), 북송어와 타이거송어(book trout, tiger trout)들인데 이들은 로토루아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Ngongoaha하천에서 매년 2만 마리 정도가 산란하여 이곳 못까지 자유롭게 왕래한다.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무지개송어는 1883년에 북미에서 도입된 것이고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송어인 갈색송어는 스코틀랜드에서 도입된 것으로 최대 10kg에 달하며 수명은 10-12년이다. 기타 북 앤 타이거송어는 이들의 교배종이이다. 이들에게 먹이를 주니 와락 몰려들어 잘도 먹어 치운다. 또한 거대한 장어가 물속에서 요동하지 않은 채 꼼짝도 않고 누워있다.  20kg나 되며 80살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장어는 뉴질랜드 도처의 호수와 강에 서식하고 있는데 마오리족만이 먹는다. 이곳의 송어들은 양식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산 송어로 5~9월 로토루아 호수로부터 올라온다. 송어들은 못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이 개천을 오르내리도록하고 있다.

       동물들 중에는 이방인 사자를 제외하고는 뉴질랜드 토산의 동물들이다. 그중에서도 캡틴 쿡의 배에서 쿡으로 종사하던 중국인이 최초로 뉴질랜드에 상륙시켰다는 돼지인  Kun Kune Pig, 1770년 캡틴 쿡이 도입한 Captain Cook 멧돼지등 하며 야생멜리노(wild merrions), 스페인고래사냥꾼이 Arapwa에 풀어놓았다는 염소(Arapwa Island Sheep), 히말라야 산 외에 유일하게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히말라야 산 염소는 그 무게가 136kg나 된다고 한다. 1837년에 호주에서 상륙한 Oppossum(주머니쥐)도 있다. 이 쥐가 뉴질랜드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포식자의 하나라고 한다.  월러비(wallabies), Cheeky Kea등 희귀조가 허다하다. 이 조류들 일부는 야생조류로 관광객들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러 왔다가 다시 숲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오리들이 모이를 달라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잠깐 뉴질랜드 조류의 희귀조에 대하여 알아보자. 뉴질랜드는 당초에는 천적이 없어서 날개가 퇴화되었다. 카포앵무새, 키위, 타카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새(지금은 멸종된 모아)들은 날지 못하게 되었다. 마오리족과 유럽인들이 정착하면서 쥐와 담비 같은 포식동물도 딸려왔을 뿐 아니라 남획하여 위의 모아나 휘아 등은 멸종하였고 카카포(kakapo)(야행성 앵무새로 날지 못함)는 불과 87마리밖에 안 남아 있으며 기타 타케헤 등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Waireka Sprigngs라는 약수터에서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약수(sweet water)를 퍼 마시면서 병속에 담았다. 이 약수터에 부상한 마오리전사를 데려와서 치료하였다고 팻말에 쓰여 있다. 이 지하수는 우리식으로 약수에 해당되며 2003년도부터는 이 근처에 생수공장이 생겨서 본격적으로 시판에 들어갔다고 한다.

       각종 수목들 중 거대한 양치류들이 인상 깊었다.

 

[양털 깎기 쇼와 양몰이 쇼 관광]

       아그로돔(Agrodome)은 관광객을 위하여 조성된 넓이가 당초에는 150만평에 달하였으나 현재는 50만평으로 축소된 목장에 12000마리의 양과 120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염소, 사슴, 알파카스(alpacas),타조 등을 사육하는 외에 아그로돔 쇼장을 운영하는 대규모회사이다. 이 회사는 3대째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 쇼장 만을 입장하여 쇼를 구경하였다. 이러한 쇼장은 일본에도 있다고 한다. 이 쇼는 하루에 3회 공연한다.

       아그로돔쇼장에 들러서 무대 위의 양털 깎기 쇼와 양몰이 쇼를 구경하다. 공연 중에 헤드폰을 통하여 한국어 방송이 흘러나와 관람하기가 편리했다.

       8각형의 목조 건물 안에서 19종이나 되는 숫양들과 양모의 종류를 알 수 있는 양들의 쇼는 진행자의 짓궂은 유머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양들도 제법 진행자의 말 끼를 이해하는 듯이 질서 정연하게 제 위치에 좌정하기도 하였다. 여러 프로그램 중에도  순식 간에 양의 털을 기계로 깎는 모습이라던가. 관객 중에서 어린이들을 차출하여 새끼 양에게 젖병을 가지고 젖을 먹이는 광경들이 모두 신기하였다. 쇼가 끝난 다음 밖에서 개가 양몰이 하는 쇼도 보았다. 개들의 모리에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양떼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양몰 이개에는 째려보기만 하여 양을 얼어붙게 하는 개와 짖어서 유도하는 개 두 종류가 있단다.

       양털 깎기 요원이 뉴질랜드 국내에 3000여명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전국을 돌면서 2 1조가 되어 하루 9시간 동안에 보통 3-400마리를 깎아댄다고 한다. 최고기록은 남섬의 농부가 하루에 720마리까지 깎아낸 것으로 되어있다. 양털이 깎인 몸에 라놀린이라는 지방층이 생겨 보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양털은 매 6개월마다 깎는데 이들 깎기 들은 여가를 이용하여 호주나 영국까지 해외원정을 나가기도 한다.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마리당으로 값을 받는다. 양털의 양은 마리당 보통 3~3.5kg이며 주로 탄력성이 좋고 불이 붙어도 타지 안 해서 카펫용, Merino Cordidal 옷감으로 많이 쓰이며 또한 메놀린(핸드크림 피부미용)의 재료가 된다.

       또한 젖소가 쇼장에 나타나자 젖을 짜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젖소는 뉴질랜드 소의 1/3을 차지한다. 버터, 치즈용으로 하루에 2회 정도 짠다. 가구당 보통 3~400마리를 기른다고 한다.

[국립농수산부 직영 녹용매장]

       녹용매장에 들렀다. 수출은 주로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라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1970년에 사슴사육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녹용 하면 사족을 못 쓰는 중국과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 속으로 시작한 모양이다. 녹용은 수사슴에서 나오는데 난지 50일 전후에 절단한다고 한다. 가지가 4개인 끝이 푸슬푸슬할 때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녹용을 캡슐로 한 것도 있는데 3개월 분이 300NZ달러 정도. 녹용의 국내반입은 1kg까지 허용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녹용(Deer Velvet)에 대하여 알아본다.

녹용의 효능 및 약리 작용

1. 어린이 성장발육 촉진, 식욕증진, 골격 발육불량 개선

2. 뇌세포의 활성 촉진 - 지능발달

3. 간 기능 개선 및 당뇨 치료효과

4. 혈압 및 빈혈치료(조혈 기능)

5. 노화 방지와 기억력 증진의 효능

6. 허리와 무릎의 강골 작용 및 골수세포를 높임

녹용 생약 만드는 법

1. 녹용 1(37.5g) 2홉 소주 1병과 함께 밀봉한 후 최소 15일 이상 숙성시킨다.

2. 개봉 후 취침 전 1 1회 복용

 어른(17세 이상) : 소주잔 반잔 정도

 어린이 (16세 이하): 1 티스푼

3. 남아있는 녹용은 건져내어 햇볕에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꿀에 섞어두고 차로 복용한다. 또한 녹근과 함께 달여서 복용하면 관절 계통의 질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녹용 복용 및 달이는 법

녹용 3냥 기준으로 물 4리터에 오미자 120, 구기자 120, 생강 10, 대추 20알과 함께 물의 양이 1/2로 줄 때까지 달인 후, 1 1회 찻잔으로 1/2컵씩 아침이나 저녁에 복용한다.

12:30분 인근의 중국음식점에서 점심 뷔페를 들다. 점심 후에 먼저 들러본 곳이 레드우드수목원(he Red Woods Groove)이다.

 

[레드우드수목원][The Red Woods Groove]

       로토루아시내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레드우드수목원에는 뉴질랜드 임업시험장이 있으며 이를 일명 와카레와레와 숲이라고도 한단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뉴질랜드 정부의 초청을 받은 한국인 소장이 책임자로 있다고 한다.

       산책코스는 6개로 나뉘어져 있다. 15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부터 8시간 코스까지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으며 색깔로 구분되어 있는 표시 판을 따라가면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15분 정도의 코스라는 단거리 레드우드 메모리얼 그로브 트랙(Redwood memorial grove rack)을 밟았다. 이 메모리얼 트랙은 세계 2차 대전에서 희생된 뉴질랜드 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된 숲으로 60m 높이의 수목이 우거진 코스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듣자니 온천장의 유황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높이가 17m나 되는 고사리 등도 있다고 하며 "주라기 공원" 영화촬영장이기도 하다.

       뉴질랜드는 국토의 20%이상이 국립공원, 삼림지역, 자정보호지역이며 국립공원이 13개소나 된다. 식물은 80%이상이 뉴질랜드 고유 식물이고 최북단의 카우리나무숲, 남알프스의 너도밤나무 숲과 고산덤불, 리무(rimu), 토타라(totara), 카우리나무들이 산재하며 수많은 관목과 100여종 이상의 양치류, 이끼류가 자란다. 가장 유명한 나무는 타네마후타(Tane Mahuta)라는 나무인데 나무 중에는 높이가 51m, 둘레가 13m나 되며 수명이 2000년이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와카레와레와 민속촌]

       로토루아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3km떨어진 테푸이아는 로토루아에서 가장 큰 지열지대로 마오리족이 살이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와카레와레와에 온천에는 모여 있는 간헐천이 이채롭다. 수증기가 피어난 지열지대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뜨거운 물이 끓는 소리가 개구리 울음소리와 비슷한 연못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 직진하니 로터루아의 상징인 간헐천 지대가 나타났다. 근처에 마오리족의 묘지가 정결하게 서 있다. 그대로 매장해도 유황 때문에 부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유황의 영향으로 뱀도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포호투 간헐천으로 한 시간에 한번 꼴로 30m 높이로 분출하는 100℃의 뜨거운 물 줄기는   장관이었다. 또한 유황 머드(진흙열탕)지역이 보인다. 진흙이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을 그리면서 지글지글 끓는다. 마오리족이 여기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왔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전투에서 부상할 경우에 이 머드로 치료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주변의 개울물에서 피어나는 증기는 모두가 온천수라고 할 정도였다.

       여기에 마오리 마을의 복원광장이 나온다. 마오리 집회장을 비롯한 마오리의 예술 공예품을 전시해 놓은 마오리 예술공예관은 마오리 민속촌 구실을 하고 있으며 마오리 민속춤을 보여준다고 하나 민속춤은 어제저녁에 이미 보았음으로 그 앞에 세워진 마오리족의 고사리 목으로 진 옛 지상가옥과 지하 가옥 및 우리네 원두막 위에 세운 건물과 같은 냉장고만 보면서 지나쳤다.

14:00~15:30분경에 매장에 들렀다. 그 유명하다는 알카파 담요 1장에 200만원, 알카파 가죽과 털을 혼합한 잠바가 40만 원 정도였으며 주름살을 펴는데 좋다는 보트크 크림 1갑에 우리 돈으로 99천원, 관절에 좋다는 크림 1갑에 39천 원 정도로 모두가 고가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로토루아호수가를 걸었다. 이 로토우라호수는 1830년 피터탭셀이라는 유럽인이 처음 발견한 호수로 로토루아 시내 중북부에 위치한다. 로토루아 시내에 있는 12개의 호수 중 가장 큰 것으로 마오리어로 '화구호'라고 불린다고 한다. 마치 서양 배처럼 생겼으며 총면적이 80km2, 폭이 12km, 길이가 9.5km. 거대한 화산폭발로 생긴 것으로 추측되는 분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는 해발 280미터이며 깊이는 26미터에 이른다. 배수 역의 면적은 526km2이며  물은 오하우 강을 거쳐 로토루아 호수로 빠진다. 이 호수는 온천효과가 있어서 로토루아 시에 온천수를 대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호수 군데군데 색깔이 변하여 있다. 아라와 마오리 인들이 성역으로 여기는 모코이아 화산섬이 이 호수 한 가운데 안에 있다. 오염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로토루아 호수에서는 송어낚시를 할 수 있고 다양한 호수 유람선을 타거나 수상스키 등의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갈매기 떼가 이채롭다. 호수가 광장에는 벼룩시장이 서고 있었다.

       이 밖에도 로토루아의 남쪽에는 뉴질랜드 최대의 호수가 있는 호반도시인 타우포(Taupo)가 있는데 인구는 약 2만 명으로 마오리족과 백인과의 전쟁 중에 군사적 전진기지로 백인에 의해  최초로 점령된 지역으로 이 호수는 해발 357미터, 길이 40km, 30km, 면적 606km2  최대 깊이 159m인데 일정에 들어있지 안 해서 들리지 못했다.

       16:00시경에 로토루아를 출발하여 일로 오클랜드를 향하였다.

       연변에는 모두가 초지 목장이며 감자와 옥수수 밭이 이따금 보였다. , 보리, 쌀은 수입에 의존한다고 한다.

       중도 휴게소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 매점에서 점원  노릇 하는 한국남자는 해군사관학교출신의 중령으로 제대한 분이라고 한다. 뉴질랜드에 이민은 왔지만 특기가 없어서 오클랜드시에서 매일 차로 이곳까지 와서 박봉의 점원 노릇을 한다고 한다. 이민에는 특기가 필수적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인기직종은 목수, 간호사, 미용원, 용접공, 자동차정비공 등 손을 놀리는 직업인 모양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위하여 영어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직종은 세계 어디를 가나 인기인 것 같다. 우리한국정부에서도 이러한 곳에 적극적으로 신경을 써서 국내 실업자들을 과감하게 전 세계에 파견하여 국위를 선양할 뿐 아니라 외화획득에도 도움이 될 장기적인 연구도 필요할 것 같다. 국토가 좁은 데서 북적이기만 하면 되겠는가?

       자본을 한국에서 가져와도 장기적인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것 같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규모 매점과 식당을 겸한 사업을 하려 해도 약 40NZ달러(24천만 원)정도 소요되며 허가를 받는데 까다롭고 더디어 4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이러한 점을 각오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민 온 대부분이 한국에서 사업이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고생도 많고 돈벌이가 그리 시원치가 않은 모양이다. 투자이민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최소 7억 원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2년간 적치해야 하며 2중국적을 허용한다고 한다. 기술자이민은 정수 제 이민이며 장기사업비자이민이라는 것이 있는데 3년마다 정부서 평가한다고 한다. 2년 전에 조사가 있었는데 68가구가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안 해 추방당했다고 한다. 그간의 이민정책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0067월 중에 새로운 이민정책이 발표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인 중산층 기준으로 24평정도의 아파트에서 기거하면서 드는 생활비는 차 3대 굴리면서 4인 가족에 약 4000NZ달러(28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100만원은 한국에서 200만원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이곳의 갑근세는 40%로 혼자서 월급생활은 곤란한 모양. 부부 함께 모두 일해야 할 정도. 인건비부담이 커서 이곳 한국 식당들은 가족이 총동원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천국 같은 지옥"이라 하고 한국은 "지옥 같은 천국"이라고 현지 교민들은 중얼거린다고 한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한국유학생이 5700여명이나 되며 이는 국내의 사교육비 과다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교민들 중에는 토마토 농사를 짓는 분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민들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항상 백 구두만 신고 다니는 "오상철"이라는 사람얘기다. 그는 훤칠한 인상에 언변이 아주 좋다. 이곳 뉴질랜드 은행도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가 6백만NZ달러나 되는 돈을 융자해주었는데 이를 받아지고 삼십육계 줄 행낭을 쳐서 어느 나라로 갔는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니 교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는 뜻.

       그러나 뉴질랜드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남섬의 오양수산 그리고 북섬의 홍성우박사가 유명하며 변 사장이라는 분은 아프리카에서 타조 1500마리를 도입하여 사육하면서 한국 유학생들에게 파트타임을 제공하면서 사육 법을 전수하기도 하는 훌륭한 분 중의 한 분이다. Ostrich대신 "타조상표"를 획득하였다. 타조 버거(고단백)도 인기이며 타조 가죽도 고가로 팔린다고 한다. 하여간에 밤낮없이 토요일과 일요일도 모르면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인과 중국인뿐이라고 한다.

       18:45분경에 한국 사람으로서 29년간 뉴질랜드 이민생활을 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성공한 양모로 고급 요 이불과 침대시트 등을 생산하는 외국인 40여명을 거느린 스프링타임울프로덕트사(Spring Time Wool Products Ltd)(pure new wool New Zealand made)의 오광일 사장을 만나보다. 그의 제품가운데는 BPS(Black Pearl Skin)로 만든 제품으로 이는 양이 배속에서 태어나기 전 가죽을  3년 걸려 아토피성 피부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처리하여 만드는 침대시트가 있는데 한 장에 자그만 치  영국 돈 7000파운드(1400만원)나 되며 알파카 이불 한 장에 60만원이나 된다. 이들 고급제품들은 영국의 유명한 해롯 백화점에 납품한다고 한다. 언젠가 영국의 BBC방송에서 그의 성공담을 듣고자 그를 찾은 모양이다. 우리제품은 "엘리자베스여왕도 깔고 잔다"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우리는 엘리자베스여왕도 깔고 잔다"로 되어 고역을 치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30분경 공장을 떠나 오클랜드시내로 들어오다.

 

[오클랜드][Auckland]

       오틀랜드는 두 항구(동쪽의 와이데마타와 서쪽의 마누카우)사이의 좁은 지협에 위치하고 있다.

       오클랜드는 인구 125만의 뉴질랜드 제1의 도시이긴 하지만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반 도시 반 해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클랜드는 5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수상 세계가 주는 경이로움과 대도시적인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면적은 서울보다 더 넓다. 고층빌딩은 없으며 요트는 무려 47만 척이나 된다고 한다. Auckland는 영국의 장군 명으로 마오리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한다. 57개국의 다국적 도시이기도 하다.

       30분 이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섬을 찾아 항해를 하거나 열대 우림 지역을 탐사할 수 있다. 또는 포도농장에서 와인을 음미할 수도 또는 모래사장을 거닐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을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은 오클랜드만의 지리적 특징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19:40분경 고층빌딩이 없는 오클랜드 시내를 통과하여 해발 198m인 화산분화구가 있는 마운트 에덴(Mount Eden)정상에서 오클랜드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보다. 능선부분에 주택가가 들어선 이곳은 마오리족들이 전쟁시에 '(PA)'라고 하는 방어진지로 사용하던 곳의 하나이기도하다. 마운트 에덴과 오클랜드도시를 개발한 죤캠벨(John Campbell)경이 묻혔던 한 그루 소나무가 섰던 원트리힐(One Tree Hill)은 오클랜드에서 제일 높은 고지대로 여기에서 오클랜드시의 사방을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어두어지긴 했으나 거의 모든 시가지가 아름답게 널려있다. 그중  스카이타우어는 384m이며 하버브리지(Harbor Bridge) 1959년도에 건설한 4차선으로 차량만 통과한다. 그 밖에도 식물원으로 유명한 오클랜드도메인대공원, 뉴질랜드자연사와 폴리네시안, 마오리 유물전시로 유명한 오클랜드 박물관, 최초의 이주민이 살던 Parnell Village(민속촌), 뉴질랜드 최대의 대학인 학생 수 13천명의 오클랜드대학교 등 볼만한 곳이 많다고 한다. 시청에서 주변의 정화를 위하여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소를 방목하여 잔디를 정리하고 있었다. 산 정상 바로 아래는 여기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불리는 나무들이 무성하다.

       21:00경에 시내 뉴코아 레스토랑(Newkoa Restaurant)(한국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스테이크를 맛있게 소주(한 병에 20NZ달러)와 함께 들었다. 그런데 뉴질랜드 소고기치고는 다소 질긴 감이 들었다.

       21:15분경에 한국교포가 경영하는 트래벌러스호텔(Travellers Hotel)에 투숙하다. 150NZ달러(12억 원)를 투자한 호텔이라고 한다.

      

[20060306][월요일][맑음]

       06:00시경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 6분 만에 오클랜드 공항으로 이동하다. 07:30 NZ503호 편으로 오클랜드 공항을 이륙 09:00분경 1시간30분만에 남섬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공항에 착륙하다. 이로서 북섬에서 남섬에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우리를 맞은 것은 변재식가이드이다. 이 크라이스트처치의 인구는 40만 정도이며 한국교포는 약 4천명인데 그 중 부모동반학생이 1000명 정도라고 한다.

       남섬 인구는 남한 땅의 1.5배인 땅에 모두 97만 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구의 3/4이 북섬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 된다.   

       09:20분경에 한국 식당 "춘하추동"에서 시장하던 김에 아침식사로 도가니탕을 맛있게 단숨에 먹어 치웠다.

[테아나우로 가는 멀고도 먼 길]

       이 크라이스트처치는 1850년대 이곳에 상륙한 선교사들이 들어와 모교의 이름을 따서 Christchurch라고 했단다. 골프장이 무려 56개소나 된다.

       09:40분경에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 일로 전용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660Km나 떨어져 위치한 오늘의 목적지인 테아나우(Te Anau)로 향했다.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

        우측에는 남 알프스 산맥이 남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운트 쿡(Mt. Cook)이 있으며 이 산맥은 만년설과 빙하로 둘러싸인 3천여m나 되는 봉우리가 무려 27개나 되고 2000m이상은 무려 202개나 된다고 한다. 태즈만 해협사이의 해안지대는 빙하와 산악지대 그리고 드넓은 황야로 형성되어 있다. 남섬과 빙하의 끝 쪽에는 숲이 우거지고 그 위에 솟아있는 만년설로 덮인 스노의(snowy)봉들은 오세아니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서던 알프스에 의해 둘러싸인 여러 호수들은 남섬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된다.

       또한 이 산맥은 뉴질랜드 남섬 지역기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데, 서단 알프스 산을 기준으로 서쪽 부분(West Coast)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를 형성하고, 반대로 서던 알프스의 동쪽인 캔터베리(Canterberry)지역은 바람이 서쪽보다는 찬 기운이 아니지만 더 강하게 된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위치, 불어오는 바람을 서던 알프스가 막으면서 기단이 상승하여 많은 비를 뿌려 서던 알프스 서쪽에는 습한 기후가 형성되는데 강수량이 2,500~3,000mm까지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산맥을 따라서 남쪽으로 달리는 것이다. 이곳도 가면 갈수록 북섬처럼 끝이 없는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 소떼들 만 보일 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목양 초지는 바둑판같이 정방형 형태로 쪽 곧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 많은데 이는 방풍림 역할과 경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각종 동물의 휴식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슴은 영국인 이 주시에 도입된 동물이라고 한다.

       차 중에서 심심치 않게 주어들은 얘기를 나열해보자.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에 관해서 얘기를 듣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5년 된 중고차 (일본 차)사용자가 전체의 약 70%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산 중고 자동차는 운전석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인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1908년도 자동차도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오클랜드에서 들은 얘긴데 기관차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한국에서 중고로 들여온 기관차도 현재까지 한국에서 부여한 번호를 그대로 달고 다니면서 운행되고 있는 것을 한국에서 다녀간 기관사 한 분이 우연히 보았다고 말하면서 놀라 더란다. 근검절약정신의 발로일까? 현재에는 한국 차도 운전석의 위치를 현지의 사양대로 바꾸어 수출하는 모양이다.

       뉴질랜드에는 현재 한국인이 2만 여명이 살고 있다. 한국에서의 수입이 5번째. 뉴질랜드의 농담한마디를 들어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 한 정치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쌍까풀 수술(?). 여하 간에 한국정치인들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모범적인 싱가포르 국회위원들이 한국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려가는 중에 1번 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는 북섬과 남섬을 연결하는 2000km(바다 페리포함)의 장거리이다.

      양의 숫자로 말하면 호주가 더 많고 호주보다 많은 것은 중국이라고 한다.

       뉴질랜드의 순 자생식물의 종류는 무려 8만 여종이라니 놀랍다. 조류 중에는 앞서 언급한 날지 못하는 모어새(타조보다 큰 새: 이미 멸종)를 비롯한 키위(Kiwi), 파카야등 3종이 있는데 이는 하나같이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8천만 년 전에 외톨이가 된 뉴질랜드 섬에는 그의 천적들이 없어서 구태여 힘들여 날라서 도망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수산물로는 다시마, 전복 등 허다한데 바다를 낀 모든 업종은 마우리 족이 독점하다 시피 정부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전복은 크기가 12.5cm이상 되어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한다. 7cm 미만의 전복은 잡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도 이를 잘 모르던 한국교민이 큰 통에 듬뿍 잡아가지고 가다가 들켜서 10NZ달러의 벌금과 함께 추방되었다고 하는 얘기를 북섬에서 들은 적이 있다.

       이제 화제를 돌려서 소와 양의 나라이니 소와 양에 대하여 들어보자. 1 마리 가격은 평균 우리 돈으로 70만 원 정도이고 양1마리는 5만 원 정도라고 한다. 양은 전부가 암놈이고 수놈은 주인 옆에서 팔자가 늘어지게 아주 잘 먹으면서 보양한다. 보통 암놈 30마리당 수놈은 5마리 꼴로 기른다. 수놈에게 적색페인트를 칠해 암놈과 교배여부를 판정한다. 교배 후에 150~180일 만에 새끼를 평균 1.6마리 정도로 낳는다. 암수는 페인트로 식별하고 6개월 키운다. 고기용은 수놈 양 일부만 남기고 어린양고기를 위하여 도살하기도 한다. 1마리당 차지하는 땅의 면적을 약 8평 정도이고 양의 수명이 7년이 되면 도살한다. 그 이상이 되면 육질이 떨어진다. 8개월에 1회 정도 털을 깎는다. 제일 좋은 털은 가슴 쪽으로 이불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나머지 털은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한다. 이 양털은 특히 보온, 보습에 효과가 있다. 제일 좋은 털은 역시 메리노 양에서 나온다. 메리노양은 암놈과 수놈을 함께 키우며 털이 주목적이다. 털 값은 비싸서 kg 60NZ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수놈 일부는 거세하기도 한다. 최고의 신랑감은 연봉 8만 불인 목수이고 제일 하수직업은 양털 깎기란다. 집을 떠나 떠돌이로 멀리 가서 양털을 깎으면서 6개월 이상 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고달픈 직업인 모양이다. 젖소는 도시근교에 많고 북섬에는 소가 많다. 초지는 국가소유로 99년간 임대 사용한다. 초지 조성은 사료대신 발효건초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족 건초는 외국에서 수입도 한다고 한다. 여하 간에 여기는 모두가 청정지역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촬영도 이 나라에서 했다고 한다. 산림조성은 식목으로 1헥타당 7000NZ달러가 소요되며 한국보다 7배 이상의 비용을 드리고 30년 이상을 기다린다.

       이제 정치얘기를 좀 해보자 1885년부터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1, 2차 세계 대전 중에 전사자가 무려 10만 명 이상이나 되어 여성들이 이 나라 건설의 주역이 된 것이 아닐까? 1998년도 이래 뉴질랜드총리로 있는 헬렌클라크여사(56)를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여성들이라니 그야말로 여인천하인가 보다. 남성이 치마 밑에서 굽실거리는 건 아닐까? 이 나라 에서도 이혼 시 어느 나라같이 5분의 3은 여성 차지라 남자는 거의 알거지가 된다고 한다.

 

[테카포 호수][Lake Tekapo]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한지 약 3시간이 지난 거리인 테카포호수(Lake Tekapo)가에서 13:00시 하차하여 잠깐 쉬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 청록색 호수를 건너 광대한 알프스로 이어진다. 해발 710m에 위치한 테카포 호수는 길이가 32km이고 깊이가 120m나 되며 빙하운동에 의해 형성되어 물속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미세한 암석 가루와 먼지 때문에 유백색이 가미된 진한 청록색을 띄고 있다. 장엄하고 평화로운 환경 때문에 테카포 호수는 휴식과 산책을 위한 아주 좋은 곳으로 보였다. 필자도 호수 가를 걸으면서 심호흡을 할 수 있었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모자가 날아갈 정도여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여기에 유명한 선한 목자 교회(Church o f The Good Shepherd)가 아담하게 서 있으며 여기에서 바라보는 남 알프스의 풍경은 황홀하기만 하다. 또한 근처에는 청동으로 만든 양치기 개의 동상이 서 있다. 이동상은 '여기 산악 지대에서 양치기 개가 없었더라면 방목이 불가능'했기에 그 보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호수는 맥켄지지역(Mackenzie District)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제철이 되면 테카포 호수와 특히 주변의 작은 호수, 즉 알렉산드리아 호수, 맥그레고르 호수, 콘웨이 호수에서는 갈색송어와 무지개 송어 잡이가 한창이라고 한다. 겨울엔 이 지역이 테카포 인근 스키장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차지가 된다. 또한 서던 알프스 산이 거친 서해안 기후와 동해를 차단한 지형적인 위치로 보아 연간 강우량이 겨우 575mm에 불과하다. 또한 여기는 뉴질랜드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 이기도 하며 크라이스트처치와 퀸스타운(Quinstown)의 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서쪽 저 멀리 산정의 만년설도 보였다.

       13:30분 휴식 후에 다시 출발하다.

       이제 치안과 국방에 관하여 들어보자. 좀 도둑이 많은 모양인데 경찰이 도둑을 구타하거나 공격할 수 없다고 하며 이에 따라 경찰공무원의 연휴가가 무려 90일이나 된다니 우리네 처지의 경찰공무원과는 하늘과 땅 사이가 아닌가? 북섬에는 강력범이 다소 보이나 남섬에는 강력범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근처에 신병훈련소가 있다고 한다. 육해공군 중에 육군병력은 9000명 정도. 1962년도 3월 한국과 수교한 뉴질랜드는 한국전쟁 때 참전국 중 가장 먼저 해군파병을 결정 프리깃함 2척과 당시 뉴질랜드 해군절반에 해당하는 1350명을 웰링톤에서 급파해 보급선단의 호위, 주요도서 방어, 함포사격, 소해함정 엄호 등 유엔군 해상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지상군은 5012 5000명이 부산에 도착 참전하였으며 103명의 사상자를 냈다.

       13:55분경에 푸카키(Lake Pukaki)호수를 지나다. 이 호수는 남북에 따라 대체로 평행하게 놓인 테카포호수와 오하우(Ohau)호수 중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이 호수의 물색은 하늘색(blue)으로 석회가루가 섞여 있다고 한다. 이 호수는 물이 차서 고기가 잘 자라지 않는다. 해발 480m에 위치하며 면적은 80km2이다. 이 호수는 마운트 쿡에 인접한 타스만(asman)빙하와 후커(Hooker)빙하에서 발원하는 타스 만강(Tasman River)과 북단에서 합류한다. 마운트 쿡은 날씨가 좋은 날 호수의 남단에서 제일 잘 보이며 이 남단에서 북쪽으로 70km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호수의 출구는 남단으로 푸카키 강(Pukaki River)으로 흘러 들어 간다. 이 근처에 많은 댐과 운하가 건설되어 테카포호수와 루아타니와(Ruataniwha)호수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 호수는 저수용량을 늘리기 위하여 두 번이나 수위를 높여서 한 때 뉴질랜드 5파운드 지페에 올랐던 파이브파운드노트섬(Five Pound Note Island)은 물속으로 살아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수력발전소가 있어 76Kw에 달하여 남섬 전력의 80%를 커버한다고 하며 15%만이 화전에 의존한다. 북섬은 지열발전소가 큰 역할을 한다.

       14:00시에 푸카키호수근처에 위치한 종전에 수로 공사를 위한 조그만 마을에 위치한 한국식당인 푸카키가든(Pukaki Garden)에서 점심을 들다.

       15:10분에 출발하여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 해발 950m고지를 힘겹게 오르다가 15:35분경에 다시 내려간다. 글라이드 비행으로 유명한 오마라마(Omarama)를 거쳐서 호수를 지나보니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각종 꽃과 과일재배단지가 전개된다. , 포도, 복숭아와 장미 등을 재배한다. 16:45분경 하차 과일가계에서 자두를 한 봉지 사 들다. 17:20분경 양 대신 이제 과수단지로 조성한 대단위 포도단지를 지나다 크롬웰(Cromwell)을 거쳤다.

 

[퀸스타운][Queenstown]

       17:35분경 인구 1만 명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인 해발 350m에 위치한 퀸스타운(Queenstown)을 지나다. 와카티프호수(Lake Wakatipu)가 뻗어있다. 이 호수의 길이는 84km나 되며 최대 수심은 400m, 평균수심은 310m나 된다. 아름답기로는 뉴질랜드에서 제일인 호수라고 하는데 특히 산의 눈이 와카티프호수에 비칠 때이다. 이곳의 높은 산에는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여기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테아나우까지는 2시간 30분이 남아있다.

       산악과 호반의 땅이라 불리 우는 퀸스타운은 서부해안의 산맥들을 끼고 있으며 근처의 리얼 산에서 금, , 구리가 발견된 후 1897년에 세워진 도시로 남섬의 남부에 S자 모양을 한 와카티프호수의 북쪽 호반에 위치하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1901년에 연방국가가 되었다. 서쪽 40km 지점의 스트로언 항과, 동쪽 254km 지점의 호바트까지 연결되는 리얼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하늘이 내려주신 장소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천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서 서던 알프스에 등지고 있는 도시이다. 주변에는 이 도시를 품에 안은 듯 산이 둘러싸여져있고, 그 위에는 옛날의 광부들이 캐었던 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찬란히 반짝이는 호수를 끼고 있다. 이 지역을 방문하였던 "시울라"라는 사람이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여왕이 살기에 좋은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퀸스타운의 경관을 보려고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레포츠로도 유명하며 여름에는 짜릿한 43m높이의 번지점프(bungy jump)나 제트보트,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설원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또한 36홀 골프장도 있다고 한다. 당초 여기에서 1박 하려고 하였으나 호텔방들을 중국사람 들이 몽땅 차지하는 바람에 시 주변 관광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관광지라 이곳에서 방 3개짜리 집값이 무려 200NZ달러에 달한다고 하며 여기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50명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 세계각처에서 몰리는 관광객의 수는 연간 무려 2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18:55분경에 사슴을 최초로 방목했던 "사슴의 수도"라는 모스번(Mossburn)에서 차를 멈추고 잠깐 쉬다. 여기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660km지점이다. 10년 전에 이곳을 방문한 바 있는 한국 분이 다시 이곳을 둘러보고 그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고 하드란다. 이것은 아마도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하는 뉴질랜드 인들의 자부심에서 울어나 온 것일까?

 

[테아나우][e Anau]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한지 10여 시간 만인 19:45분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마을(town)인 테아나우(Te Anau)에 도착하다. 몹시 피로감을 느낀다. 이 토록  장시간에 걸쳐 연속 버스를 타본 적은 아마 난생 처음인 것 같다. 대략 이 거리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것으로 본다.

       이곳은 큰 테아나우 호수(Lake Te Anau)가 위치한 곳이다.       20:00시경에 중국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푸짐한 양이다.       22:00시경에 피오르드랜드호텔(Fiordland Hotel )에 투숙하다. 호텔여직원이 마침 인구조사 일이라 그런지 복잡한 인구 조사서를 내놓고 부산을 떨었다. 인적 사항의 이모저모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곳은 피오드랜드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을 찾은 관광객들이 첫날 묵는 서비스기지(Servia base)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의 관문인 셈이다. 여기는 최대의 명소인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 다우트풀사운드(Doubtful Sound), 1890년 이래의 밀포드트랙(Milford Track)등의 시발점이 된다. 관광객들을 위한 아담한 숙박시설(침대 3000개 이상 제공)이 갖추어진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인구 1500명 정도이다. 1840~42년 아편전쟁 때 중국에서 노예로 끌려온 중국사람 들이 금광에서 혹사당하다가 후에 이곳으로 옮겨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세월이 가면서 대부분이 중국, 기타해외로 나갔으며 일부 그의 후손들이 잔존하여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아직 한국 식당은 없다고 한다.

 

[테아나우 호수][Lake Te Anau]

       테아나우 호수는 남섬의 서남쪽에 위치한 면적 344km2 , 길이 65km인 남섬에서 제일 크면서 뉴질랜드에서 북섬의 타우포호수 다음으로 큰 호수이다. 해발 210m위에서 최대 수심은 270m인데 대부분의 호면이 해저면 보다 낮다. 테아나우 마을의 남동 단 부에 위치하며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의 경계이다.

 

[37][화요일][흐림]

       간밤에 억수 같은 비가 한 차례 쏟아진 모양이다. 호텔 창 밖을 내다보니 공기와 산천초목이 그야말로 싱싱하다. 정말 공기가 맑다.

       08:00경 버스로 호텔을 출발하여 일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동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밀퍼드사운드(Milford Sound)이다. 뉴질랜드 남섬의 남서부에 펼쳐지는 피오드랜드 국립공원은 면적이 무려 12,522km2나 되며 뉴질랜드에서 최대이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의 크기를 자랑한다. 그 대표적인 경관은 험하고 뾰족한 산과 빙하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U 자 계곡(빙하에 의해서 침식된 지형), 깊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피오르드(Fiord)등이다. 이곳은 깊은 숲과 눈 골짜기, 호수, 높은 폭포 등으로 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매력적인 도전은 트레킹(trekking)(뉴질랜드에서는 트램핑:tramping)이다. 밀포드트랙을 비롯하여 무수한 트랙이 있어서 전 세계의 트랙 커를 매료시키고 있다고 한다. 45일에 54km 트랙이 160NZ달러정도면 되고 최소 출발인원은 50명인 일정도 있다. 이 지역의 트레킹시즌은 대부분 여름인 10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로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볼만한 곳은 우리가 가고 있는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이다. 테아나우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려 당일치기 하는 곳이다.

       양치류와 마루카나무, 높이가 20m의 너도밤나무, 높이가 25m 내지 50m나 되는 은사시나무 등과 또한 나무키가 작은 각종 수목이 울창한 숲 속을 지나간다.  연간 7,000mm 내지 최대 8,000m나 쏟아진 다는 호우지역을 통과한다. 나무에 나이테가 없다 그 이유는 1년 내내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이 음산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4계절변화가 나타난다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국립공원에 들어서면서 일체의 가축동물을 볼 수 없고 다만 산양 등 야생동물만 서식한다고 한다. 비가 점점 더 심해져 산골 계곡물이 불어났다. 이곳이 웰링톤강(Wellington River)의 발원지다.

       09:00시경에 출입통제소에서 하차하다. 화장실내 휴게소에 국립공원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보슬비가 계속 내린다.

 

[거울호수][Mirror Lake]

       테아나우에서 38km정도 떨어진 중도에 거울호수가 있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길 바로 옆에 위치한 거울호수를 보러 5분 정도 나무발판을 디디면서 나가보다. 날씨가 좋으면 물이 유리처럼 맑고 앞산의 웅장한 산들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고 하는데 마침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려 볼 수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호수 한가운데에 거꾸로 세워둔 'Mirror Lake'이정표다. 맑은 날 호수에 비친 이정표는 물속이 현실인지, 물 밖이 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고 한다. 야생오리 등 조류가 허다하다. 거울호수가 있는 숲길은 '산이 사라지는 길(Adventure of Disappearing Mountain)'이라는 이름의 명소이다. 이 이름은 도로정면의 숲 위로 얼굴을 내민 산 정상이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깊은 숲에 가려져 마치 숲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 산정의 건 호수(Lake Gunn)가 보인다. 해발 480m에 위치한 이 호수는 길이가 3.25km나 되는 호수다. 이 호수의 물은 4백만 인구가 20년 동안을 마실 수 있는 저수량이고 한다. 계속 울창한 이끼 꽃도 핀 산림지역을 지난다.

       비가 계속 내린다. 도로 양쪽의 까마득한 산정에서 수백m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타고 실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무수한 실 폭포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비가 멈추면 이 실 폭포들은 순식간에 살아져 버린다고 한다. 2500m나 되는 거 봉은 비 안개로 가려서 볼 수가 없었다.

       도중에 차를 세우고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을 마시면서 병에 담았다. 시원하다. 남반구의 끝자락에 와서 빙하 수를 마셔보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호머터널][Homer Tunnel]

       10:10분경에 차가 호머터널을 지나간다. 1889127일에 호머(Homer)와 바버(Barber)가 발견한 산마루이다. 최초 호머부자가 끌과 곡괭이로 뚫기 시작했다는 굴이다. 1929년도에야 정부차원의 공사로 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1935년에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애로가 많았다. 일부 파놓은 터널에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시간당 무려 3만 리터나 쏟아져 들어온 적도 있어 이를 펌프로 퍼 올렸다. 펌프가 고장 나면 다시 퍼 올리기 시작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공사 중에 두 번이나 눈사태를 만나 터널입구가 막히기도 하였다. 1942년에 이르러서 겨우 차가 드나들 정도로 뚫렸으나 2차 세계대전 중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1953년에 재 착공되어 근 20년이 지나서야 천신만고 끝에 완공된 유명한 터널로 3명의 인부들이 공사도중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난공사였다고 한다. 현재 호머터널은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도로에 없어서는 안 될 통행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왕복2차선의 좁다란 길이 1,2km인 헤드라이트 불빛만 겨우 보이는 험준한 터널이다. 주위의 암석지대와 지세가 아름다워 지나는 관광객들이 차를 세우고 관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선을 그어 놓지 않은 이 터널의 바닥은 밀포드를 향해서 5.7°경사져 있어서 배수가 잘 되도 록 하고 있으며 왕복차선이지만 일방통행으로 약 15분정도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암석을 그냥 뚫고 내부 콘크리트를 치지 않고 있다.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

       10:25분경에 밀포드사운드 선착장에 도착하다. 비가 멈춘 것 같으나 날씨는 흐리다.

       마오리사람들은 약 1000년 전에 태평양군도에서 여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현재의 밀포드트랙을 따라서 여기에 도착하여 아니타만(Ania Bay)의 사문석(蛇紋石)을 채취하였다고 전한다. 밀포드사운의 마오리이름은 "Piopioahi"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빠귀 새가 우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 새는 현재에는 멸종되어 볼 수가 없다.

       1770311일 제임스 쿡 선장이 뉴질랜드 서 남단에 그의 인데버(Endeavour)호를 정박시켰으나 바위투성이의 산에는 눈이 쌓였고 때 마침 질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미처 밀포를 제대로 탐사하지 못하고 떠났다고 한다.

       1792년에 최초의 뉴질랜드 물개밀렵꾼들이 등장하여 이 근처 물개들을 싹쓸이하기 시작하였다. 밀렵을 법으로 금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1820년 경에는 물개가 거의 멸종되다 시피 하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존 그로노(John Grono)였다. 그러나 밀포드사운드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은 도날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였다. 그는 말하자면 밀포드사운드의 탐사자이며 개척자였다고 말 할 수 있다. 1880 11월 탐광자인 존 맥케이(John Mackay)와 더불어 금광을 찾던 중에 3단 폭포를 발견하여 서덜랜드폭포(Sutherand Falls)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행과 함께 레드보트크루즈(Red Boa Cruise)에 승선하다. 배에서 점심 뷔페를 들면서 신비의 수역을 구경하는 것이다. 1시간30분 정도의 유람은 황홀과 신비의 세계였나 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람이 거세고 비가 듬성듬성 내렸다. 협곡 수역 주변의 관광순서는 바닷가 방향으로 왼쪽의 해안으로 가다가 바다로 면한 끝 부분에서 회항하여 오른쪽 해안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선착장 방향의 왼쪽을 따라 진행되었다. 배가 타스만 해(Tasman Sea)에 인접한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아름다운 피오르드의 험준한 계곡과 이국적인 설산 그리고 원시림 및 폭포의 장엄한 모습들이 보였다. 미터 봉(Mt. Mitre)이 보인다. 주교가 쓰는 모자(Mitre, 미터)와 비슷하다고 하여 미터 봉이라 불리는 이 봉우리는 밀포드 협곡에서 명물이다. 피오르드 수면에서 1,680m 높이로 치솟은 산으로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산중에서 세계 최고의 높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때 가죽과 기름을 얻으려는 밀렵꾼들에 의해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던 물개들이 보호되어 한가로이 바위위에서 넙죽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9~10월경에는 다수의 펭귄과 50 마리 정도로 떼를 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웅장한 스털링폭포(Stirling Falls)가 보인다. 높이가 155m이며 영국군함 클라이호의 함장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다렌 산맥에서 낙하하는 160m의 폭포는 1871년에 영국군함 클라이호를 타고 밀포드사운드를 방문하였던 뉴질랜드 총독 조지 보웬(George Boen)경의 부인인 보웬여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채즘(Chasm,틈새라는 뜻)이라는 요상한 바위틈을 통해 22m 높이로 자유낙하 하는 폭포도 보였다.

       이 피오드랜드 생성의 역사를 문헌에서 살펴보자. 2백만 년 전 지구에 빙하시대가 왔을 때 피오르드랜드(Fiordland)지역에는 눈이 쌓이고 나중에는 얼음으로 변해갔다. 밀포드사운드를 포함한 깊은 계곡에 있는 얼음이 빙하로 되어 바다로 떠내려간다. 따뜻한 기간과 추운 기간이 반복되면서 빙하는 수없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면서 그럴 때마다 계곡은 더 깊어지고 가장자리는 빙하에 의해 더 깎인다.

       밀포드사운드라고 하는 이 수역의 정확한 이름은 '피오르드'이다. 즉 폭이 좁고 양쪽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빙하가 쓸고 내려간 계곡이다. 빙하가 떠내려 간 후 바닷물이 채워진 것이다.

       배에서 보니 크루즈 승선직전에 뉴질랜드 아가씨가 촬영한 나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장사 쑥인 모양이다. 이곳 경치를 담은 CD를 포함하여 30NZ달러이다.

       13:00시에 밀포드사운드를 출발하여 테아나우로 향하다. 15:10분에 테아나우에 도착 피오드랜드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18:00시에  중국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일행들이 사온 보드카를 즐겼다. 근처 매점에 들렀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택시를 부탁하는데 비가 뚝 그치고 해가 났다. 소나기였던 모양이다. 무지개가 선명하다. 도보로 호텔에 도착하다. 일행과 함께 호텔로비에서 인사를 교환하고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여 리 당훈 형을 회장으로 하는 친목모임인 '신지회'(新知會)가 결성되었다.

 

[308][수요일][맑음]

       07:00경에 테아나우 피오드랜드호텔을 떠나 이제 오던 길로 다시 동북쪽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를 향하다. 

       08:30분경에 와카티프호수가 시작되는 킹스타운(Kingstown)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로 간이 '킹스톤플라이어(Kingston Flyer)'증기기관차역이 호숫가에 아담하게 서 있어 마치 우리네 시골기차역같이 보인다. 이 호수는 남섬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호숫가에 서 있는 동판에 이렇게 새겨있다: 호수수면 해발 1999.11.18현재 312.78m/1878.10.06현재 312.60m 해발 고도가 백여 년간에 걸쳐서 18cm가 높아졌다는 의미인 것 같다. 호수길이는 83km이며 호수의 수위가 6분마다 증감한다고 한다. 3년 전에는 빙하가 녹아 내려 호수 가의 집들이 침수되기도 했단다.  티 하나 없는 맑은 호수로 장어, 송어 등 물고기가 많다고 한다.

       교육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자. 학제는 13년이고 대학 갈 사람은 13년 공부해야 하고 대학안갈 사람은 12년 공부한 뒤에 실업대학에서 4~5년 더 공부한다. 학비는 무료이다.

       뉴질랜드도 엘리트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생명공학연구소를 오지에 두고 있는데 여기에 1500명의 인재를 연구에 종사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들의 집은 대부분이 오클랜드나 클라이스트처치에 있다고 한다. 12세까지는 치과관리를 학교에서 하고 치료는 무료이다. 20분 이내에 앰뷸런스 동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09:20분경 테아나우로 갈 때에 지나친 퀸스타운(Queenstown)에서 하차하여 휴식을 취하다. 이곳은 앞서 언급한 유명한 관광단지로 언덕 위에 서 있는 집들이 고가이다. 휴가철에만 사용하는 별장도 허다한 모양이다. 와까티프 호수내의 섬에는 골프장이 있는데 그린피는 1년간 35만 원정도. 이러한 골프장의 시가는 무려 1NZ달러나 간다고 한다. 호수 가에서 한가로이 배가 떠다닌다. 여기에도 양털 깎기 쇼장이 있다. 한국인들의 사업장은 아직 없다. 300년 묵은 크리스마스트리도 있다고 한다. 한국교민으로는 13가구가 살고 있다.

       "DEER FLAT" 녹용매점에 들르다. 녹혈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녹혈을 영하 45℃이하에서 급랭하여 캡슐로 만든 대체의약품으로 조혈, 혈액순환촉진제, 심장질환, 혈관벽 이완, 당뇨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현재 16개국에 특허를 내놓고 있다. 일간 2알 복용하며 냄새가 없고 알레르기성 체질에도 문제가 없다.

       10:10분경에 퀸스타운을 출발하다. 10:35분경에 카와란강(Kawaran-River)을 가로 지른 1880년에 설치된 카와란교(Kawarans-Bridge)의 번지점프(Bungee Jump)장에 들르다. 번지 점프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자. 번지점프는 남태평양 펜테코스트 섬 부족들의 성년식에서 시작한다. 성인의 대우를 받을 만한 체력과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발목에 포도덩굴, 나무줄기, 칡뿌리 등을 감고 30m 정도 높이의 대나무로 된 탑에서 뛰어내려 지상에서 1m에서 멈춰야 하는데 그야말로 생사를 건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다. 번지점프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짜릿한 스릴감을 충족시켜주는 레포츠로 발전하였다. 이것의 종주국은 역시 뉴질랜드이며 관광객을 끌기 위한 상품으로 개발되어 현재에는 미국 및 유럽, 괌 등지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번지점프를 열심히 보는 독일 부부들과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이들은 우리같이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 관광이 아니라 유유자적하게 한 달간 뉴질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10:55분에 번지점프 장을 출발하다. 인근에 한국에서 도입한 누렁이 소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다. 1마리 500만원에 500마리를 들여와 시험 사육 중이며 한국에 판로를 모색할 모양이다.

       12:00경에 오마라마고원(Omarama Plaeau)을 넘다.12:45분에 홀리데이파크(Holiday Park)와 클리클리프(Clay Cliffs)를 거쳐서 13:00시경에 푸카키(Lake Pukaki)호수를 지나다. 간판을 보니 현지 연어 1마리 값이 9.5NZ달러이다.13:05분에 푸카키호수인근의 Witzwel에 도착 푸카키가든 한식당에서 점심을 들다.

       13:50분에 푸카키가든 한식당을 나와 출발하다. 여기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277km 거리이다. 14;15분 테카포호수 남단에 위치한 마운트 쿡 전망대에서 테카포 북단 쪽에 위치한 저 멀리 60km 떨어져 있는 마운트 쿡의 장관을 보려했으나 구름에 가려서 소원을 풀지 못하고 말았다. 날씨는 그런대로 맑았는데 교묘히 그곳만 가려서 유감이었다.

 

[마운트쿡][M. Cook]

       먼발치에서나마 잠깐이라도 지켜보고자 했던 마운트쿡을 포함하는 여기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마운트 국립공원(Aorak/Mt. Cook National Park)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 국립공원은 저 유명한 프란츠 조셉 빙하와 폭스 빙하가 있는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의 쿡강(Cook River)근처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다녀온 피오르드 국립공원의 경계에서 끝이 난다. 크기는 700km2 로 그다지 넓지 않지만 뉴질래드 최고봉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3000m가 넘는 27개의 봉우리 가운데 22개가 이 공원 안에 버티고 서 있다. 또한 공원 내 지역의 1/3이 빙하로 덮여있다.

       마운트 쿡은 이 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 일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나아가 호주를 포함한 오세아니아에서도 가장 높다. 얼마 전 까지 3,764m의 높이를 자랑하다가 19911214일 대규모의 눈사태가 나면서 정상 부근이 11m나 함몰되어 지금은 3,753m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무려 1,400m3 의 눈이 7,3km나 쏟아져 내려갔을 정도라고 하니 눈사태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만하다.

       마운트 쿡은 마오리 족의 전설에서 나오는 신의 이름을 따서 원래 아오라키(Aoraki)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년 여를 마오리족의 영산으로 남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쓸데없이 뉴질랜드에 들러 이런저런 측량을 하고 간 일개 선장의 이름을 따 마운트 쿡이라는 엉뚱한 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불평들이다. 이제 뜻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산의 본래 이름을 찾아 주자는 운동이 조용히 일고 있어서 조만간 그 이름이 기대된다.

       마운트 쿡을 정복하려는 노력은 1882년부터 시작되어 몇 번의 실패를 거치다가 1884년 크리스마스 날 몇 명의 키위(Kiwi)(뉴질랜드 인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들이 정상을 밟았다. 당시 여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소극적이었는지 남자들이 정상을 오른 지 근 30년이 지난 1913년이 되어서야 한 호주 여성이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14:30분경에 테카포 호수 가를 떠나 일로 북으로 달린다. 제랄딘(Geraldine)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다시 들려 휴식을 취하였다. 여기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약 162km가 남아있다.  17:00경에 비가 내렸다.

 

[크라이스트처치][Chrischurch]

       17:50분경에드디어 크라이스트처치 시에 도착하다.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는 뉴질랜드 남섬의 동쪽에 위치하는 캔터버리(Canterberry) 지역의 주요 도시이며 인구가 남섬에서 제일 많은 도시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시인구는 34만여 명이지만 시외 인구까지 포함하면 36만여 명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과 해글리 공원 등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 많아서 "정원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1830년대부터 크라이스트처치가 세워지고 1850년에는 뉴질랜드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1976년에는 영연방의 경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캔터버리는 작물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관광산업에도 치중하고 있다.

       18:20분경에 모나베일가(Mona Vale Ave)에 위치한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는 시에서 관리한다는 주택가를 구경하다. 이곳의 정원관리는 시청이 직접 한다고 한다. 주택한가운데를 흘러가는 맑은 개울물에는 오리들이 놀고 있다. 이곳의 주택 한 채 값은 줄잡아서 300NZ달러 전후라고 한다. 이 모나베일 주택가는 개인이 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1950. 6.25 참전용사들이 지나갔다는 '추억의 다리'도 보고 시내중심에 위치한 고딕식 크라이스처치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거리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다. 아름다운 고풍의 빌딩들도 보인다.

       시내 한국관에서 돼지찌개백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20:35분경 시내 가든 호텔(Garden Hotel)에 투숙하다.

 

[호주][Australia]

[호주 개요]

 

공식명칭            Commonwealth of Australia

위치                대양주

인구                19,547,000(2002)

면적                7,686,850km2(남한의 약 78)

수도                캔버라

언어                영어

화폐                호주 달러(AUD)

종교                성공회, 천주교, 그리스정교, 기독교

정부형태            의원 내각제

원수                엘리자베스(Elizabeth II)영국여왕

행정수반            수상

정당                노동당, 자유당, 국민당, 민주당

정부성향            자유

한호무역            호투수출은 32US달러이나 석탄 철광석등 주요 원자재                       의 수입으로 수입은 71US달러에 달한다.

 

[호주의 특징]

기후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이다. 봄은 9-11, 여름은 12-02, 겨울은 6-8월이며, 여름은 우기로 평균 기온은 27, 겨울은 건기로 13℃다. 전체 대륙이 남위 10.41° - 43.39°에 걸쳐 있어 여러 개의 기후대를 가지고 있어서 열대 우림 기후, 열대성기후, 아열대성 기수, 온대성 기후, 사막 성 기후로 나뉜다. 전반적으로 건조하며 일교차가 큰 것이 특징이다.

 

역사

호주는 1770년 영국의 쿡 선장이 보타니 베이에 정박하기 전까지 애버리진이라는 호주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냈던 지구 남반구(Down Under)대륙이다. 영국에서 약 75%의 죄수들과 관료관리들이 시드니 항 더 록스(Rocks)에 건축 구조물 등을 세우면서 인구가 증가되어 1793년에는 자유이민이 시작되었다.

특히 1851년에는 호주에서는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나 중국인 수만 명이 이주하면서 약 10년 후에는 인구가 약 1백만 명에 육박하였다. 이 때 백호주의 조합이 생겨 백인만의 이민정책이 이루어졌다. 1901년에는 호주 자치제가 이루어졌으며 1926년에 영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독립하였다.

사회

호주는 다민족국가이며, 호주 교민은 약 25천명으로 추산된다. 사용언어는 영어. 1960년부터 실시된 복지정책 성공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 국민건강 복지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로 손꼽힌다.

사회보장제도

호주는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노령, 불구, 실직 또는 자녀양육 등의 이유로 인하여 해당수당을 지급한다. 연금이나 수당은 수입 및 소유재산 등에 대한 요건을 만족시키는 자에게만 지불된다. 호주영주권자나 시민권자만이 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교육제도

호주는 높은 수준의 교육 혜택을 보장하기 위해 연방 부의 엄격한 감독 하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교육의 질을 자랑하고 있다. 호주의 초--고생 교육이라 하지만 교육의 기본적인 체계는 연방정부가 만든 국가협정에 따른다.

 

[0309][목요일][맑음]

       05:00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의 가든 호텔(Garden Hotel)을 출발하다. 07:00 NZ181호 편으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을 이륙하다.    

 

[시드니공항-에버톤하우스-블루마운틴]

        2시간30분 비행 끝에  08:30분 시드니(Sydney)공항에 도착하다.  한국인 가이드는 OUR CHANNEL LTD의 류성림 실장이 맡았다. 그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13년간 거주하다가 호주로 온지 8년이 되며 양국 및 한국 모두 3개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버스기사는 호주에 이민 온지 20년이 되는 이창천씨이다.

        10:30분경 에버톤 한국 식당에서 신선한 쌈장과 더불어 야채 쌈으로 맛있게 중식을 마친 다음 11:30분 경  교외에 위치한 불루마운틴 국립공원(Blue Mountain National Park)으로 이동하다. 버스에서 들어본 얘기를 기록해본다. 

       호주는 청정지역이라 조류독감이 현재까지 한 건도 없다. 미국은 소고기 수출 국가이면서도 호주 산 소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각종 농산물 생산에 농약과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야채,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조차도 농약이 들어있지 않은 호주 산이다.

       오늘은 이상기온으로 35℃까지 올라가 있지만 이맘 때 보통기온은 27℃정도이다. 여기에서도 영국을 닮아서 뉴질랜드와 같이 차량의 운전석은 오른쪽이다.

       호주에서 주의할 사항 중에는 여권과 현찰이다. 동남아에서 한국여권이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값은 자그마치 5000US달러이다. 동남아인 들은 이 여권을 변조하여 미국비자를 받는데 4000US달러가 소요된다. 그러니 9000US달러를 써서 미국으로 잠입한다는 것이다.

       시드니 서쪽 시내중심부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가옥을 알아보자. 대지 1200평 정도에 건평 50평정도로 평균 가격은 우리 돈으로 7억 원 정도라고 한다. 10여 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사람이 살만한 땅은 주로 해변 가이다. 이민자들은 주택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현재 호주는 자유당이 4회 연속 집권하고 있으며 노동자 대우보다는 내수경기를 진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로 미국과의 거래가 활발하나 향후 중국과도 활발한 교류가 이루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드니 항은 나폴리, 리오데자네이로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이지만 현재는 4대 미항을 들먹인다. 한국의 포항이 포함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호주의 면적은 한반도면적의 대략 35배로 보면 된다. 면적의 크기 순위로 보아서는 러시아-캐나다-미국-중국-브라질이다. 미국의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면적과 호주면적이 거의 같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km2 467명인 반면에 호주는 2.7명밖에 안 된다. 1800만 명의 인구가 해변 가 50km이내에서 거주하고 있다. 국민소득은 26000US달러 정도. 내륙은 거의 사막으로 비가 없으며 따라서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제일 새로운 땅이라고 한다면 호주는 제일 오래된 땅에 속한다. 50억 년 전 해저융기로 생겨난 땅으로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또한 지질학적인 구조로 보면 아메리카대륙과 호주대륙이 붙어 있다가 이탈한 것으로 보며 평균 해발고도는 298m이다. 호주의 중앙부는 해면보다 낮은 곳도 있다. 온난화 현상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 수위가 28m올라가게 된다. 그리 될 경우에 호주의 중앙부는 가라앉아 버린다(?). 석탄, 철광석, 우라늄 등이 풍부하며 철광석은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매장량(해저)도 세계 13위이다. 석유는 현재까지는 공해관계를 감안하여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정유소가 없다.

       그린피스활동(Greenpeace Aciviy)을 통하여 호주에는 환경문제에 특히 신경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캔베라대학교의 1990년대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1980년대부터 남반구의 오존층이 파괴되어 북반구공기는 빠르지만 남반구의 공기가 느려 햇빛의 강도가 한국에 비해 6~7배 훨씬 세다. 따라서 기미와 주근깨가 많으며 피부암 발생률이 세계 최대라고 한다. 특히 서양 사람들은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없어서 항상 선팅을 할 필요가 있다. 일광욕을 하지 않으면 비타민이 흡취 되지 안 해서 박테리아 등이 많이 서식하게 된다. 서양 사람들의 노린내는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누드비치(noode beach)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시드니근처에는 양이 없다. 목장은 내륙 안에 있다. 보통 한 사람이 소유한 목장면적은 60만평이나 된다. 양의 종류는 뉴질랜드가 19, 호주가 23종으로 42종정도이다. 양은 메리노종이 60%를 차지한다.

       호주의 한국교민은 7만 명 정도이다. 류실장과 그의 부인은 한국의 명문대 출신이다. 그의 부인은 당초에 호주병원에 근무했으나 의사들은 준 공무원에 속하여 대우가 연봉 6AUD달러 정도로 그만 두고 대우가 보다 좋은 의학연구소에 다니고 있다. 그녀의 연봉은 12AUD달러로 대우가 좋다고 한다. 노인연금제도는 영주권자와 시민권 자도 포함 적용되며 남자가 65세 여자는 62세로 주급 280AUD달러( 100만 원 정도)정도이며 의료제도는 무상이다. 호주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2.8AUD달러로 높은 편이다. 노동시간은 일 8시간 오후 4시면 퇴근하며 공무원과 교사는 1 7시간 근무한다. 소득세 기준 연 66000AUD달러를 초과하면 47.5%의 세금을 문다. //국경일의 특근수당은 평일의 2.5배이다. 일반적으로 연봉이 33000~66000AUD달러이면 30%의 소득세를 물고 13000AUD달러 이하이면 세금이 없다. 세금 때문인지 돈 많은 부자들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계속 늘어나는 의료비와 연금이 호주정부의 골칫거리이다. 의료비 절감을 위하여 노인들이 운동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예컨대 매주 1 '까만 공굴리기 운동'이 그것이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노인연금을 감액한다고. 공산품가격은 비싸며 예컨대 담배1갑이 우리 돈 1만 원 정도. 술은 알코올 18도 기준 15000원정도.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세금이 올라간다. 사진필름 등 환경오염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공산품의 값이 비싼 편이다. 산유국에서는 휘발유가 고가이고 경유는 저가이지만 호주에서는 환경오염관계로 디젤유가 비싸다. 한국에서는 차도의 중앙선에 노란 페인트를 쓰지만 뉴질랜드와 호주는 흰색을 쓴다. 노랑페인트에는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들어있어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차량의 배기관이 천정위로 향하고 있다. 이는 공중분산을 위한 것이다. 요컨대 환경적인 측면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건강을 위하여 신경 쓴다.  건강수명이 중요하다. 예컨대 반신불수는 건강수명이 45세이다. 사는 동안 병원신세를 안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평균건강 수명은 여자가 75세이고 남자가 71세이다. 월 우리 돈으로 200만원수입이면 평균 생활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어데 가나 빈부격차는 있는 모양이다.

 

[블루마운틴국립공원][Blue Mountain National Park][Scienic World]

       시드니 시내에서 차로 1시간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블루 마운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이곳에 늘 나타나는 푸른빛 아지랑이 때문이라고 한다. 푸른빛 아지랑이는 고무나무에서 발산되는 기름 성분의 알갱이에 햇빛이 굴절되어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아지랑이는 먼지나 물방울, 공기 분자와 같이 떠 있는 물질에 햇빛이 통과하면서 발생되는데 이곳 블루마운틴에서는 작은 기름방울 입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닉 월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수칙이 입구에 적혀있다.

-열대 우림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화장실에 들러 주십시오.

열대우림에서 방뇨하거나 거시기하면 여자에게는 550AUD달러, 남자에게는 1100AUD달러의 무거운 벌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책길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산책길은 사람들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모든 쓰레기는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열대 우림에서는 금연해 주십시오.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이 블루 마운틴(시닉월드)(Scienic World)에서 관광산업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 카툼바 지역의 주요산업은 석탄 및 등유용 혈암을 캐는 광업이었다고 한다. 시닉 월드는 과거 Katoomba Coal&Shale사의 본사가 위치했던 곳이다. 광산은 1879년부터 1895년까지 운영되었고 1928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29년 말이 되자 석탄 채굴 원가가 상당히 높아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을 방문하여 Federal Pass '도보'로 걷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가파른 절벽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대신 탄광용 광차를 타고 가기를 원했다. 추가 수입이 생길 가능성을 눈치 챈 탄광 책임자는 여객 수송용 궤도차량을 건설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 한 것이 바로 "Mountain Devil"이다. 1945 Katoomba Colliery 회사는 문을 닫게 되고 이 지역의 임대권은 해리 해먼(Harry Hammon)과 그의 여자형제인 이사벨 파헤(Isabel Fahey)에게 이관되어 Katoomba Scenic Railway Pty Ltd가 탄생하게 되었다.

       시닉 스카이웨이는 1958년 건설되었다. 건설될 당시부터 현재까지 남반구에서 유일한 여객 수송용 수평 케이블카의 위치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명물이다. 1962년 호주 최초의 회전식 레스토랑이 시닉월드에 개장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다양한 명물들이 시닉 월드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장관을 연출하는 새로운 케이블카인 시니센터이다.  이 첨단 케이블카는 84명의 승객을 3분 만에 급경사 절벽을 가로질러 재미슨 밸리(Jamison Valley)까지 수송할 수가 있다. 해발 1100m인 전망대의 에코우포인트(Echo Point)에서 서서 저 멀리 광대한 계곡을 바라본다. 상쾌한 산 공기와 숲으로 덮인 협곡, 광대한 사암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보다 1.5배정도 큰 미국의 그랜드캐년(Grand Canyon)보다 그 규모가 크지 않은 것 같지만 수목이 우거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오른 쪽으로 보이는 세 자매봉은 이채로웠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남성적이라면 호주의 이 블루마운틴은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단다. 에코 포인트(Echopoint)에서 첨단 궤도열차인 시닉레일웨이(Scienic Railway)  타고  금방 높이 250m를 급강하하여 아래 계곡에 도착하다.  여기에서 경사진 목판 산책로를 따라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열대 우림을 돌아보다.  산책로는 총 연장 2.2km로 호주에서 가장 길게 경사진 산책로라고 한다. 각종 새소리가 아름답기도 하다.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으로 유명한 호주 산 금조는 개나 고양이, 개구리, 농장의 전화소리 심지어 카메라 모터 드라이브 소리까지도 똑 같이 재현하기도 한단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400여종의 동물 중에서 가장 두드려지는 종이 바로 조류이다. 낮에 계곡과 골짜기를 가득 채우는 것은 까마귀와 노란 꼬리 검정앵무새의 아름답고 생생한 노랫소리라고 한다. 물총새를 비롯해 킹 패럿, 로젤라는 블루 마운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들이다. 밤이 되면 고무나무 사이로 올빼미가 유령 같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다니며 순진한 주머니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고 한다.

       블루 마운틴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로는 주머니쥐, 캥거루 쥐, 동부 회색 캥거루, 습지 왈라비 등이 있다. 푸른 꼬리 바위 왈라비와 점박 꼬리바위 왈라비는 이제 보기 드문 동물에 속한다. 점박 꼬리 메추라기, 코알라, 노란 배 다람쥐, 작게 휜 날개 박쥐나 긴 코 포타루 등 40여종의 동물들도 희귀 동물에 속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코알라는 각종 알콜류를 내 뿜는 유칼립스 나무위에서 무려 4시간은 졸고 18시간 동안 늘어지게 잠을 자는 팔자 늘어진 얘기도 들어본다.

       블루 마운틴에는 다양한 동물만큼 식물도 다양하다. 블루 마운틴 광역 지대에는 전 세계에서 서식하는 유칼립스 700종중 92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카툼바 지역에만 약 65종이 서식하고 있어 세계 최대의 유칼립스 군락지대라 할 수 있다. 이 유칼립스가 블루마운틴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기후와 지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건조 기후에서 준 고산 기후까지 그리고 척박한 토양에서 비옥한 토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토양이 이곳에 존재한다. 유칼립스는 이 모든 조건에서 잘 서식하는 식물이다.

 산책로를 따라 좀 더 내려가면 옛 탄광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도달하니 탄광입구에 옛 광부복장의 실물 동상과 탄차 및 광부들이 사용하던 각종 채탄기구가 전시되어있었다. 다시 전망대에 오를 때에는 플라이웨이붐스테이션(Flyway Boom Station)에 이르러 플라이웨이(Flyway) 케이블카를 탔다. 오르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3자매 봉을 비롯한 험한 절벽과 수목들은 장관이었다.

 

[세자매봉에 얽힌 전설]

       에코 포인트에 아름다운 세 자매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마왕이 세 자매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세 자매는 주술사를 찾아가 마왕의 것이 되지 않기 위해 잠깐 동안만 바위로 변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주술사는 이들 세 자매의 간청을 받아들여 세 개의 바위로 만들어 주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왕은 주술사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세 자매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현재까지 바위로 남았다는 전설이다.

       13:40분경 블루마운틴을 떠나 호주의 희귀야생동물만 모아놓은  페더데일야생동물원(Featherdale Wildlife Park)으로 향하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들은 얘기들을 간추려보자:

       호주의 기술 중에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는 것은 생명공학분야의 생약개발, IT산업, 환경공학, 나노기술(Nano Technology)의 화장품, 노화방지산업 등이다.

       현재 호주의 한국교민은 7만 명 정도로 늘어났다. 2001년도는 3만 명 정도였다. 호주이민의 경우 까다로운 편이다. 한국인의 호주관광인구는 매년 15만 명 정도이며 교민의 여행 안내자는 80%가 호주유학생이다. 호주교민 7만 명중 약 40%정도만 영주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학생비자를 유지하려면 부부 중에 한 사람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 예컨대 남자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나 주당 20시간에 한한다. 불법체류자도 많은 모양이다. 호주이민 1세대는 월남전의 참전용사로 영어구사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이 청소사업에 종사한다. 세대교체 후에도 역시 청소에 시달리고 있는데 오후 17:00로부터 익일 새벽6시까지 고되다. 따라서 청소 업에 투신 10여 년이 지나야 생활이 안정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불법 체류자는 항상 불안하다.

 

[페더데일야생동물원][Featherdale Wildlife Park]

       페더데일야생동물원에 들러서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동물들을 구경하다. 유칼립스에 올라앉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본체만체 계속 잠만 자는 코알라, 사람이 가도 태평하게 누워있는 캥거루군상, 들개, 펭귄, 악어며 각종 조류들이 볼만했다.

       이중에서 특히 코알라(koala), 캥거루(Kangaroo) 및 에뮤(emu)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코알라:

유대 목 쿠스크과 포유동물. 몸길이 60~80cm, 몸무게 4~15kg, 꼬리는 거의 없고 비경은 크고 노출되어 있다. 뒷발에 모두 5개씩 발가락이 있는데, 앞발 제12발가락은 다른 발가락과 서로 마주보며 나뭇가지를 잡는데 적합하다. 뒷발 제1발가락은 짧고 굵으며 발톱이 없고 다른 발가락과 서로 마주보며 제23발가락은 결합되어 있다. 암컷의 배에는 육아낭이 있는데, 뒤쪽으로 입구가 있으며 내부에는 2개의 유두가 있다. 털은 양털처럼 빽빽이 나 있으며 윗면은 암회색, 아랫면은 회백색이고 특히 귀의 털이 길다. 맹장은 몸길이의 약 3배로 포유류 중에서 가장 길어 2.4m나 된다. 주로 밤에 활동하며, 유카리나무의 삼림지에만 서식하는 수상성동물이다. 보금자리는 만들지 않고, 낮에는 나뭇가지 위에서 쉰다. 코알라가 집게손가락을 이용하여 먹이를 채취하는 것은 600종의 유카리나무 중에서 35종에 불과하다. 단독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성질은 순하고 동작도 느리다.

수명은 15~20년 정도이다. 임신기간은 약 35일이고 보통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몸길이 1.7~1.9cm, 몸무게 1g이하이고, 털이 나지 않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 뒤 육아낭 안에서 몇 달 동안 자란 뒤 약 6개월 동안 어미에게 업혀 지낸다. 이유 시에, 어미의 항문에 입을 대고 반쯤 소화된 유카리나무 잎을 먹는다. 모피 때문에 남획되어 수가 감소하였으므로,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미국일본 등지의 동물원에서 사육보호되고 있다. 호주의 남동부에 분포한다.

캥거루(kangaroo):

       유대 목 캥거루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의 총칭. 이 중에서 약 15 65종이 있으며, 좁은 의미로는 캥거루 속에 포함되는 대형 종을 가리킨다.

       몸길이 25~160cm, 몸무게 0.5~80kg으로 종에 따라 크기가 다양하며, 보통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 암컷의 하복부에는 잘 발달한 육아낭이 앞쪽으로 열려있다. 대형 종은 뒷다리가 잘 발달하였으나, 소형종과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종은 그렇지 않다. 앞발에는 5개의 발가락이 있다. 뒷발의 제23지는 작고 서로 결합하여 있으며, 4지는 크고, 5지는 작다. 1지는 모스카투스쥐캥거루에는 있으나 다른 종에는 없다. 꼬리는 길고, 모스카투스쥐캥거루 이외는 털이 있으며, 집 지을 재료 등을 감아 운반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대부분은 지상생활을 하지만, 나무기 캥거루는 나무 위에서만 생활한다. 덤불, 숲 속 나무 그늘의 풀밭, 암석지대, 트인 초원과 나무숲 등에 서식하며 쉬고 새벽과 저녁에 활동한다. 소형 종 일부에 다소 잡식 경향이 있는 외에는 초식성이다. 일반적으로 어금니는 폭이 넓고 융기나 결절이 있어 먹이를 씹는데 적당하다. 대형 종은 뒷다리가 잘 발달하여 도약을 잘하며, 한번에 5~8m 때로는 13m나 도약한다. 또 시속 40km로 달릴 수 있다. 임신기간은 종에 따라 다소 다른데, 30~40일 정도이다. 한 배에 1마리를 낳지만 드물게 2마리를 낳기도 한다. 태반이 없거나 발달이 나빠 새끼는 성숙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며, 크기는 1~2cm, 몸무게는 1g전후이다. 출산 직후의 새끼는 눈이 감겨있고, 몸에는 털이 없으며, 앞발을 사용하여 혼자 힘으로 육아낭에 들어가서 4개의 유두가운데 하나에 달라붙는다. 그 뒤의 성장은 종에 따라서 다르지만, 6개월에서 1년이면 독립한다. 천적은 독수리비단뱀여우태즈메니아빌 등이 있다. 호주태즈메니아섬뉴기니아섬 및 그 주변의 섬에 분포한다.

에뮤(emu):

       타조 목 에무 과의 새. 전체길이 약 2m, 머리높이 1.5~1.8m, 몸무게 36~54kg, 대형 새로, 현생의 새로는 타조 다음으로 크다. 몸은 어두운 회갈색이며 얼굴과 목 쪽은 피부가 노출되어 푸르다. 화식 조와 닮았으나 머리 위에 투구모양의 각질돌기가 없다. 관목이 섞인 초원이나 황무지에 서식하며 종자장과 등을 먹지만 곤충류도 잘 먹는다. 날개는 퇴화되어 날지 못한다. 최고시속 40~48km로 달리며 헤엄도 잘 친다. 둥지는 지면의 오목한 곳에 나뭇잎과 잔가지를 약간 깔아 놓은 것뿐이며, 한 배에 7~12개의 알을 낳고 수컷만이 알을 품는다. 새끼는 암수가 돌보며 포란 기간은 58~61일이다. 고기와 알은 식용으로, 지방은 램프의 기름으로 이용하였으나, 밭을 짓밟아 망치거나 곡식을 먹기 때문에 최근까지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구제하였고 현재는 보호구역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 각지의 동물원에서도 사육번식되고 있다. 호주와 태즈메니아섬에 분포하였으나 태즈메니아섬에서는 멸종되었고 인구가 많은 동부 호주에서도 희귀하다.

       15:30분경 페더데일야생동물원을 떠나 시드니 시내로 향하다.

       가정은 홈닥터(Home Doctor)를 가져야 하며 의사는 최소한 20분 이상의 진료를 해야 한다.

       호주의 무역에 있어서, 수출품은 각종 지하자원과 육류이고 수입품은 자동차, 가전제품 및 컴퓨터이다.

       일반적으로 호주인 들의 행동은 느리다. 예를 들면 슈퍼에서 생수 43병을 살 때 겪은 일이다. 계산대의 할머니는 동일한 가격인데도 키를 43번 누르더란 다. 우리한국인이면 43x가격하면 금방 나오는 금액을 이렇게 계산하니 느릴 수밖에. 그러니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계산은 이들에겐 어려운 산술문제가 된다.

       호주의 1차 산업으로서 석탄, 철광 등 광물,  , 소등 사육 23%정도, 2차 산업은 제조업으로 26%, 3차 산업으로 서비스, 관광업이 29%를 차지한다.

       1788년 영국식민지 1901년에 호주는 자치제가 되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문학1, 순수과학9, 약학7명 등 17명이나 된다. 호주는 많은 로열티(Royalty)를 해외에서 받고 있다. 페니실린도 원래 호주가 개발한 것이라고 하며 초음파진단도 호주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복사기부품, 잔디 깎기 블랙박스 등이 그 예이다.

       호주 돈 10불짜리는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으며 이러한 플라스틱 특허는 100년간을 호주가 23개국에 가지고 있단다. 한국 돈의 수명은 평균 3개월 정도 호주 돈의 수명은 2년 또한 재활용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돈을 개발 한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 지페에는 대장균이 평균 15천 내지 2억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단다. 일반적인 지폐는 종이와 솜으로 만들어져 수분이 함유되고 이에 따라 대장균의 온상이 된다. 그러나 플라스틱 돈은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멸균처리가 된다.

       호주에는 국립영재학교가 28개교나 되고 학생 수는 3400여명 이들은 각 학교 상위 2%이내에 든다. 이들이 향후 호주를 이끌 인재들이다.

       대학교를 평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서울대학교는 99위에 그치는데 호주의 종합대학교 가운데에 50위권 내에 드는 학교가 6개나 된다. 예컨대 멜보른대학교는 23위에 이른다.

       이제 버스는 본격적으로  시드니 시내로 진입하다. 달링하버(Darling Harbour)로 가기 전에 시의 개요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시드니][Sydney]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의 주도로 인구는 약 360만 명 정도이다. 호주의 남동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로 남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중의 하나이다. 아름다운 항만으로 유명하며 19세기 초 유배지로 세워진 뒤 최초의 개척자들이 내륙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요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호주의 가장 거대한 대 도시권으로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시드니 항만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1788126일 보터니 만으로부터 포트 잭슨에 들어온 총독 필립은 유형수 770, 군인 250명을 데리고 이곳에서 최초의 식민지 건설을 개척하였다. 도시이름은 당시 영국의 관료였던 시드니경의 이름을 딴 것으로 천연의 양항이라는 점과 육상교통의 요지라는 사실도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842년 시제가 시행된 이후 1851년 시드니 근처의 배더스트에 금이 발견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였다.

       시드니의 대도시권은 서쪽의 블르산맥에서 동쪽의 태평양까지이며 북쪽의 호크스베리강에서 보터니 만의 남쪽까지 뻗어 있다. 호주 인구의 4분의 1이 몰려있을 정도의 최대 도시이기도 한다. 중생대의 사암 층의 대지와 서쪽 내륙에는 이암질의 파랑상의 저지를 사이에 두고 해발고도 1000m전후의 블루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대지의 계곡은 하류지역에서 익곡을 이루어 포트잭슨만, 보터니 만 등을 이룬다. 포트잭슨만의 남안 일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 항이 항역이 되어 있다. 이 항구에서는 호주 무역액의 4분의 1을 취급할 정도로 크다. 시드니 시는 이 항만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구릉 위에 세워졌다.

       시드니는 수상 스포츠와 위락시설 및 문화생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항만의 잔교 동남쪽에 세워진 오페라하우스는 극장, 음악당을 모두 갖춘 곳으로 공연예술의 중심지이다.    

 

[달링하버][Darling Harbour]

       어느덧 버스는 시드니만의 달링하버(Darling Harbour)에 이르다. 옛날의 화물창고가 오늘날 수면과 맞대고 있는 고급호텔로 개조됐다는 말을 들으면서  버스를 내렸다.

        이곳은 시드니항의 낙후된 항만시설과 버려진 철도부지 등 32만평을 아름답고 쾌적한 워터프런트(Waterfront:친 수 공간)로 재개발한 지역이다.

       호주건국 200주년인 지난 1988년 완공 이후 매년 1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관광과 쇼핑, 식도락, 여가 등을 즐기는 호주 최고의 관광지라고 한다.

       본래 달링하버는 1788년 호주 개척 초기부터 항구에 들어온 선박화물을 철로를 통해 2km 가량 떨어진 중앙역을 거쳐 내륙으로 수송하고, 전국에서 모인 양털과 지하자원 등을 해외로 수출하는 수출입기지로서 일반시민들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돼 있었다.

       그러나 시드니 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시드니공항 인근 보터니 만에 현대화된 컨테이너항만이 들어서고 재래식 부두의 하역기능이 크게 위축되던 1980년대 초 재래부두를 해양문화와 관광 상업 오락 휴양 등 복합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시드니항만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시드니가 속한 뉴 사우스 웨일스(NSW)주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설립한 DHA(달링하버공사:Darling Harbour Authority)를 앞세워 재개발에 나섰다. DHA는 현재 달링하버의 관리운영을 맡고 있는 SHFA(시드니항만연안공사 Sydney Harbour Foreshore Authority)의 전신이다.

       DHA 1984년 총 사업비 10AUD달러( 8천억 원)를 들여 재개발사업에 착수, 재래부두 일대에 깔린 철로를 모두 걷어내고 일반화물 처리기능을 보타니항으로 완전히 이전했다.

       화물선과 화물, 복잡한 철도가 뒤엉켜 우중 충하고 어지러운 모습 때문에 도심의 흉물로 인식됐던 달링하버 지역을 4년간의 공사를 통해 대형 크루즈선과 유람선, 페리선 등 각종 선박의 선착장과 요트계류장, 해안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 상점들이 즐비한 해양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로써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번듯한 관광상업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항만재개발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달링하버는 현재 연간 200만 명의 외국인이 반드시 찾아오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여기에는 재개발 시 건립된 해양생물을 보유한 아쿠아리움(수족관), 해양과 선박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해양박물관, 전시컨벤션센터, 영화관, 쇼핑센터, 분수대와 수목이 어우러진 수천 평의 잔디밭광장, 달링하버와 인근 시내 중심가를 15분 가량 순환하는 모노레일, 다양한 등급의 호텔 등이 많다.

       여기 길과 건물 앞 어디에나 자투리 공간만 있으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사람들은 밤낮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남국 해양도시의 청명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달링하버에는 1988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15천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현재까지 입주 업소들의 매출액과 수입도 각각 57천만AUD달러와 3600AUD달러에 이르고 업소들의 자산 가치는 9AUD달러에 달한단다. 특히 연간 600여건의 각종 이벤트가 개최돼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컨벤션센터는 1년에 4 AUD달러( 3200억 원)를 벌어드리고 있다.

       SHFA는 최근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달링하버와 하버브리지 사이의 또 다른 재래부두 및 야적장과 물류창고 시설 등 7만여 평의 항만 부지를 민자 유치를 통해 재개발하기로 했다.

 

[시드니수족관][Sydney Aquarium]

       달링하버에서 우선 시드니 수족관에 들르다. 거센 파도를 연상케 하는 시드니 호주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호주 연근해에 서식하는 650여 종류의 11000여 마리의 해양 생물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투명한 유리벽 사이로 컬러풀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 사는 각종 열대어를 비롯하여 상어, 악어까지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무시무시한 상어와 피라미 각종 어류가 함께 사는데 정기적으로 잠수부가 적정량의 먹이를 상어에 대주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물고기들을 먹어 치운다고 한다. 그러니 신경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시드니 수족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수심 10m에 길이 145m의 수중 터널을 들 수 있다. 바닷속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중터널은 바닷속 풍경의 신비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이 투명 아크릴로 만든 터널을 따라 지나가면서 다양한 열대어와 영화에서나 볼 듯한 3m길이의 상어무리가 쉴 새 없이 유영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산호초들은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선화식당][Sun Hwa Restaurant]

       수족관을 구경하고 나서 달링하버 중심가인 피어몬트 다리(Pyrmont Bridge)근처의 카시노건물에 위치한 한일 식을 겸한 뷔페전문 선화식당(Sun Hwa Restaurant)에서 풍부한 뷔페를 즐겼다. 그 중에서도 콜레스톨에도 문제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자연산 삶은 새우는 순식간에 닥치는 대로 다들 먹어 치워서 동이 나기도 했다. 근처의 야외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즐겼다. 3잔에 25AUD달러(18000원 정도) 역시 자릿값이 비싼가 보다.

       한식 뷔페를 포식한 후 18:45분경 달링하버를 떠나다. 시드니 광역시는 그 넓이가 서울의 6배 이상이나 된다. 이 안에 53개의 도시가 있다.

       호주는 하나의 연방국가 그 밑에 주정부 그 밑에 지방정부(local government)가 있는데 6개 주와 2개의 특별 주로 구성되어 있다. 시드니는 뉴사우스웰스주(New South Wales)주의 주도이다.

       1901년도에 호주연방국가가 수립되었고 연방정부는 주로 정치, 외교, 국방, 대학교육, 이민정책만 다루며 기타의 국가기능은 주 단위가 한다. 지방정부의 경찰과 주 경찰이 있다. 운전면허제도는 각 주마다 다르다. 호주의 수도는 캔베라로 원래 목장지역을 1927년도에 방사선 계획도시로 개발하였으며 한국의 창원시가 이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나 필자가 8년간이나 기거하였던 창원시가 그러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1901년도 이전에는 6개의 식민지로 구분 통치되었으며 그 당시 인구는 200만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금광이 발견되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남쪽에 있는 미지의 땅" "가면 돈 번다면서 중국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들에 위협을 느껴서 통합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19:35분경에 시내에서 좀 떨어진 서니부룩호텔(Hotel Sunnybrook) 3 박 예정으로 여장을 풀다. 방안과 침대가 널찍하여 숨을 돌릴 것 같았다. 조용하며 주변의 숲들에는 각종 아열대성 수목이 우거져 있고 공기가 맑았다.

 

[0310][][맑음][30]

       07:00 호텔에서 아침 뷔페를 들은 다음 09:30분경 호텔을 출발 3시간 20분이 소요되는 240km의 여정을 달린다.

       오늘 아침신문에는 시드니 달링하버의 설계자가 82 세로 사망하였다는 기사와 호주생태학자 탐사 팀이 뉴기니에서 새로운 동식물과 온난화 현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발견하였다고 전한다.

       호주인 들은 일반적으로 럭비와 축구를 좋아한다. 히딩크 덕분으로  32년 만에 월드컵출전이 예상된다.

       투자이민을 온지 15년이 되었는데도 한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영어다운 영어를 하지 못한다. 한국에서 드려온 비디오만 보고 주로 한국 사람들과만 왕래한다. 이 곳 호주인 들과 의사소통이 많지 않다. 호주정부의 각종 홍보물과 뉴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어공부는 필수적이다.

       호주정부는 국민에 대하여 정직하게 일한다. 예컨대 2004 6월에는 호주정부가 쓰다 절감한 국가예산을 만 18세 미만에게 1인당 600AUD달러씩 환급하였다. 그러나 본인이 이를 센터링(centering)에 신청해야 했다. 한국교민들 중에는 뉴스를 듣지 안 해서 그냥 지나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감나무 밑에서 누워서 입을 벌린 채 감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뉴사우스웰즈 주에서는 신학기마다 학생들에게 학용품대조로 50AUD달러씩 지급한다고 한다.

       호주에서 돈 버는 방법 중에는  호주에 깔려 있는 암염장사(?), 단기간으로는 브리스베인 쪽에 있는 주택을 구입해 보는 것도 좋다.

       시드니/멜보른 부자들은 최근에 환경이 좋은 황금해안(Gold Coast)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하면 아직 떼 묻지 않은 호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섬(Tasmania Island)을 들 수 있다. 이 섬은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에 있는 남한만한 면적에 인구 47만에 불과한 때 묻지 않은 세계희귀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섬 전체의 20%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호주연방의 한 주이다.

       호주의 동서방향은 4200km에 달하고 남북방향은 3400km에 달한다. 호주의 총 해안길이를 한 바퀴 도는 거리는 무려 36km에 달한다.

       전 세계의 상어 3분의 2이상이 태즈메이니아 지역에 서식한다. 난류성 어류로 유일하게 태즈메이니아수심 200m에서 잡히는  심해상어. 심해어종 중에는 수심 7000m에 서식하는 것도 있다. 빙하 수와 난류의 경계선에서는 급격한 해류가 상승하는 곳으로 심해 어종이 많다. 이곳에 일본 어선들이 출몰하여 호주해안경비대가 나포하기도 한다.

       호주의 서쪽 끝 퍼스의 땅은 100년간 무상임대가 가능하다. 공장건설을 허용하며 30년 전부터 일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지역이 심층 수 개발대상이 된다고 하는데 호주도 심층 수 개발이 한창이다. 심층 수 깊이가 3km정도면 일본인들이 투자한다.

       서기 1500년대에 네덜란드인이 시드니 위쪽 절벽을 발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역사상으로 뉴질랜드를 먼저 발견한 후에 호주를 발견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호주연안에는 산호초가 많아 탐험 선이 이를 피하여 내려가다가 뉴질랜드에 먼저 접근하여 발견하였다고 한다.

       호주의 원주민을 에버리진(Aborigines)라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에 아시아대륙에서 인류 최초로 바다를 건너 이주한 용감한 민족이었다. 호주 대륙의 북부, 케이브 쵸크에 상륙한 파파 뉴기니아계 민족들에 의해 침범 당하고 외국과의 교역도 시작했다. 1426년에는 중국 명나라 해상 채집선의 선원이 호주 북서부 해안에 상륙한 적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호주 원주민의 존재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처음 북부 이방 민족 및 서양 백인들에 의해 땅이 침략 당했을 때도 이들은 침입자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고립되어 생활해온 그들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수백 년 동안의 지배와 약탈에 의해 심신이 많이 거칠어졌다. 호주원주민은 한 때 200만에 이르렀다고 추정되지만 18세기 영국의 식민지 겸 유배지가 된 이래 이들의 말살정책이 마각을 들어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초에는 감기라고는 없었는데 일부러 원주민에게 퍼뜨려 면역성이 전혀 없는 그들이 죽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술로도 유혹하였다고도 한다. 원주민들에게는 4만 년 간 "" 문화라는 것이 전혀 없어서 선천적으로 그들의 간에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으며 이에 따라 알코올중독자가 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하루에 맥주 2병정도만 마셔도 만취상태로 된다고 한다. 지금도 알코올중독 노숙자가 많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원주민의 특수보호지역으로 도시에서 100km이상 떨어진 곳에 기거하도록 하고 있으며 정부의 기본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흔히 지상 낙원처럼 알려진 호주도 원주민의 인권 탄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점에 있어서 백인이 마오리족과 잘 어울려 사는 뉴질랜드와 다르다.

       '전사의 후예', 일그러진 사상'이 현대의 호주 원주민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면, 필립 노이스/에블린 샘피주연, 케네스 브레너 감독의 영화 "토끼울타리(The Rabbit-Proof Fence)" 1930년대의 호주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전한다.

       영국정부가 파견한 백인 고위 관리 네빌(케네스 브래너)은 원주민 소녀들의 교육을 핑계로, 오지의 아이들을 납치하다시피 해 백인 가정의 하녀로 보낸다.

       호주 서부 지가롱에 살고 있던 14살 소녀 몰리와 8살 여동생 데이지, 10살 사촌 그레이시도 강제로 차에 실려 수용소에 감금된다. 어머니가 그리웠던 몰리는 두 동생과 탈출하여 1907년도 이래 토끼들이 비옥한 서부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리장성처럼 거대하게 쳐 놓은 토끼울타리(The Rabbit-Proof Fence)를 길잡이로 삼아 무려 2400km나 걸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간다는 스토리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몰리크레이크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증언 한다: "같이 붙잡혀 갔던 아이들은 나보다 어렸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엄마가 그리웠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실제 얘기였으며 도리스 필킹톤의 소설 '토끼 울타리를 따라(Follow he Rabbi-Proof Fence)'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감동과 슬픔이 배가된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1930~1973년까지도 계속되었다고 하며 오늘날 호주교과서에는 나와 있지도 않다. 원주민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을  어머니 품에서 강제로 빼앗아가 족보도 남기지 않은 채 백인들의 하인으로 가정부교육과 영어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들 호주원주민들의 인권의식도 증가하는 추세인가 보다. 아테네 올림픽대회에서 여자 400m 금메달을 따 낸 호주의 캐시 프리맨은 원주민의 후예이다. 자기는 원주민이라면서 호주국기와 호주원주민의 기를 들고 스타디움을 돌았다고 한다. 그는 말하였다한다: "호주라는 나라는 나의 친부모를 찾아 줄 의무가 있다". 호주정부가 이를 보고 속이 타는 모양이다.

       영국죄수도 구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시드니에 정착한 일반 죄수는 켈트 족으로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하류층이었고, 영국의 정치 사상범으로 앵글로삭손족은 주로 당초 수도였던 멜보른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대부분이 앵글로색숀계이며 호주는 켈트 족이 70%정도이고 앵글로색숀족이 30%정도이다. 

       따라서 그들의 후예가 살고 있는 시드니와 멜보른은 서로 은근히 앙숙의 관계라고 한다. 수도 쟁탈전을 버리다 지쳐서 그 중간지점인 캔버라에 정한 것도 그 예이다.

       현재 멜보른 항은 아치형 수심이 문제이나 시드니 행 평균 수심이 피오르드 해안으로 수심이 40m나 되어 양항으로서의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어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1956년 호주 올림픽대회를 놓고 시드니와 멜보른이 치열한 경쟁을 벌린 끝에 멜보른이 이긴 것도 그 예이다. 그러다가 2000년에야 시드니가 올림픽을 치르는데 성공했다.

       호주이민사에 있어서 당시 영국에서 호주까지는 배로 6개월이 소요되었으며 3분의 1이 선상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총독, 귀족책임자와 인솔자 모두가 저급이었으며 죄수들과 그의 후손들이 오히려 똑똑하여 우량 한 죄수출신과 그의 자손들이 대거 기용됨에 따라서 기득권 자와의 투쟁이 계속되었다.

       1990년대에 영국이 EU에 가입함에 따라서 과거에 누렸던 무역간 혜택이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이래서 호주는 1999년에 영연방소속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그러나 대다수가 끝까지 100년간 영국치마폭에 있고 싶어 했다.

       20045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호주태생 메리 엘리자베스 도날드슨(Mary Elizabeh Donaldson)양이 덴마크국왕의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1994년 태즈메이니대학을 졸업하고 부동산 중개업자가 되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세자를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드디어 결혼에 꼴인 하게 된 것이다. 2005 1115일 코펜하겐 대학병원에서 장남 크리스티안을 낳았다. 이로서 조상의 핸디캡에서 해방이 되다시피 기뻐하면서 호주 BBC 방송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이러한 황실뉴스를 요란하게 발표하면서 호주 전국이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한편 뉴질랜드는 뉴스방송시간에 느긋하게 제일 마지막에 이 황실뉴스를 전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죄수의 후예와 이제 덴마크 왕실 간에 사둔 간이 된 셈이니 우쭐 할만도 하다.

       호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치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예컨대 20041226일 쯔나미 재해 때에 호주는 국제모금원조에 세계최고금액인 10US달러를 선득 내 놓았다. 미국이 6US달러, 일본이 4US달러, 한국이 5천만US달러를 내놓은 것으로 기억된다. 이는 인도네시아를 가상의 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지도 모른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정정이 불안하면 다량의 보트피플이 호주로 몰려들어오는 것을 우려하여 예방차원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2년 반전에 한국여행객 1명이 특이한 바이러스성 호흡곤란으로 호주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호주정부가 한국대사관에 연락하여 데려가라고 하였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호주정부에서 우리 돈 35천만 원 전세비행기로 한국에 실어다 주었으나 사망하였다고 한다. 사망한 분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부부가 호주여행 중 불행하게도 그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의 부인의 말 "우리 남편은 가셨지만 후회는 없다". 들은 얘기로 확실하지 않지만 호주정부는 외국관광객에게도 이러한 특전을 베푼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려서 더욱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복안도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13:00경 포도원(Weinery)에서 중식으로  바비큐를 맛있게 들었다. 포도주를 시음하면서 포도주 3병을 사 들었다. 식당 바로 뒤의 포도원에는 우리말 팻말이 붙어 있다. '포도밭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한국관광객들이 빈번히 들리는 곳인 것 같다.

 

[포트 스테판][Port Stephens]

       13:30분 포도원을 떠나 포트 스테판(Port Stephens)으로 향하다. 이 포트 스테판은 시드니에서 동부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20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환상적인 해변 도시로 40km길이의 환상적인 황금해안과 호주 내륙지방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사막지대가 해변지역과 어울려 있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도는 곳이다.

       13:50분에 스테판에 도착하다. 14:00시경 넬슨베이(Nelson Bay)라는 곳에서 자연 돌고래가 노는 모습을 보려고 돌핀크루즈(Dolphin Cruise)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그 배의 남편은 선장이고 그의 부인은 안내원이다. 항해 중에 돌고래가 이따금 조금씩 들어내긴 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펄쩍 뛰어오르는 모습은 보지 못 하였다. 날씨가 다소 음산한 탓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포트 스테판은 타루아강과 뮈얄 강이 만나는 곳으로 원래에는 오리미족이 거주한 곳으로 제임 쿡 선장이 처음으로 이곳의 풍치를 기록한 유럽인이다. 1770 5월 이 동부 해안 상에서 북쪽을 향해 항해를 해가던 중 그는 이 지역을 장군의 보좌관인 필립 스테판 공을 기념하여 포트 스테판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넬슨베이(Nelson Bay), 살라만더 베이(Salamander Bay), 레몬트리 길(Lemon Tree Passage), 아나베이(Ana Bay), 핀갈베이(Fingal Bay), ()정원(Tea Gardens)같은 안식처가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조용한 곳이다. 아나베이에서는 한국에서 홍보영화 촬영 차 다녀간 적이 있다고 한다(한국의 하이트맥주외 다수).

       호주의 해수욕장은 1300여 개 인데 그 중 시드니 근처의 해수욕장이 43개나 된다.

       15:30분경에 해안선 사구(砂丘)에 도착하다. 사구란 바다에 밀린 모래가 바람에 날려서 생긴 모래언덕이랄까 거대한 사구가 사막처럼 전개되어 있다.  4WD 특수차량에 타고 사구언덕에 도착하여 모래썰매를 타보다. 모래언덕을 미끌어 내려간 것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올라오는데 푹푹 빠져서 고역이어서 한번 타보고 말았다. 아나베이의 해안에서 저 멀리 밀려오는 남태평양의 시원한 파도를 바라보다. 피 조개가 많다고 하여 바닷가 모래를 파면서 이를 캐보려 모래 바닥을 파보았으나 남획이 되어서 그런지 조개껍질조차도 구경 못했다. 해안가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족속들도 보였다.16:45분경 아나베이를 떠나다.

       호주는 급여가 주급제로 되어있다. 집세조차도 매주 지불해야 한다. 매주 목요일은 payday로 쇼핑으로 붐빈다. 금요일에는 젊은 층들이 밤새면서 놀아서 funny Friday라고 하며 토요일은 party day이다. 일요일은 야외와 바다로 피크닉을 간다. 월요일은 우울한 working day, 화요일은 영화개봉관, 수요일은 운동을 하는 sports day라고 한다. 이렇게 지나다 보면 다시 목요일 payday가 돌아온다.

       초등학교교과서에 5개 구슬(, 건강, 사랑, 가족, 친구)을 끼고 태어난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고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의료비절감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요는 호주의 가치관은 '건강'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 '명예'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인의 인생관은 위만 본다는 것이고 이에 반하여 호주인은 아래만 본다는 것이다. 한국과 호주와의 다른 점은 기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데도 있다. 호주에서는 MAN to MAN 즉 아래를 보고 한다. 호주사람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변호사를 통하여 유언장을 쓴다. 자손들에게 돌아가는 자산은 16%정도로 보고 있다.

       시드니시내를 향하여 계속 달리던 중 19:00 COOLABAH REE 휴게소에서 잠깐 쉬다. 시드니시의 북쪽은 좋은 학군으로 한국의 강남처럼 집값이 보통 10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고 한다. 주거단지의 변동사항은 정부에서 공중에서 수시로 관찰하여 보고 이상이 있으면 정밀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개인 주택 안에 있는 정원수도 5년 이상 된 것이면 정부의 허락 없이 맘대로 베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깨끗한 산소의 공급원이므로 공 개념에 속하여 정부의 소유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집을 살 때에는 가급적 나무가 없는 집을 사는 것이 좋다.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은 한국도 그러는 추세지만 금요일에 호주는 먹고 마시고 놀자는 날(Burning Holiday)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급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19:30분경 시내 한국 식당(Korean Restaurant)에서 버섯전골로 저녁을 들면서 소주잔도 기울였다. 20:30분경에 호텔에 도착하다.

 

[311][토요일][맑음]

       오늘은 07:00시 호텔에서 아침을 든 다음 08:00시에 호텔을 출발 전적으로 시드니의 동부 시내관광에 나서다.

       호주는 유전공학과 면역학에 있어서 세계최고의 수준에 이른다. 노화방지산업에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묘지는 우리네와는 달리 주거지단위로 동네 주거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같으면 집값이 폭락할 텐데 전혀 상관이 없단다. 사후에도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멀리 가지 않는다. 오히려 상가가 있으면 주택 값이 떨어진다고 하니 우리네와는 전혀 다른 철학이다. 사후에는 매장 또는 화장으로 하는데 1인당 면적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개의 묘지도 있다.

       공원의 면적은 계속 증가추세에 있으며 용도변경이 불가능 하다.부자들이 땅을 기증하여 공원조성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호주의 양에 대하여 들어본다. 호주에는 약 18천만 마리의 양이 있다고 한다. 털은 방화벽 역할도 하여 벽과 벽 사이에 넣는 건축자재로도 쓰인다. 소방복과 우주복 등은 양털로 누빈다. 양 뼈로는 파우더로 압축 성형하여 그릇을 만든다. 내장 중 창자는 소시지를 만드는데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다. 또한 스포츠산업에 있어서 양의 창자를 꼬아 테니스 채 제작에 사용하며 또한 수술실로도 쓰는데 회복 후에 뽑아내지 않는다. 양 태반은 화장품과 태반 호르몬의 원료로 쓰인다. 양의 마리 수로 따지면 중국-호주-뉴질랜드의 순이다. 그러나 양과 사람과의 친화력에 있어서 세계에서 양의 품종이 많은 나라는 어쩐지 한국이라 하니 잘 이해가 안되었다.

       시드니에서 제일 고가인 집들은 해안선의 선착장이 있는 집이다. 최저 6백만AUD달러(45억 원)에서 1500AUD달러(111억 원)정도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사는 곳이며 특히 브루나이국왕의 저택은 무려 3800(281억 원)AUD달러나 된다고 한다.

       시드니 시에서 큰 다리는 1923~1932년간에 걸쳐 건설한 하버브리지(Harbor Bridge)이며 시드니올림픽 때 건설한 마돈나브리지(Madonna Bridge)가 있다.

       원래 경마장이었던 곳에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Hyde Park)의 이름을 딴 공원, 사암으로 축조된 성 매리성당(St. Mary Cathedral), 야외콘서트 홀인 도메인공원(Domain Park), 주립미술관건물, 옛 양모창고건물을 개조한 선착장이 딸린 고급호텔을 지나 맥콰리 공원(Macquarie Park)에 도착하다.

[맥콰리 포인트][Macquarie's Point]

       맥콰리공원(Macquarie Park)은 포트 잭슨에 툭 튀어 나와 있는 곶으로 왕립식물원 옆에 위치한다. 여기에서 하차하여 보니 시드니만과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가 어울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미시즈 맥콰리체어(Mrs. Macquarie's Point의 애칭)는 바위를 파서 만든 자리로 이를 맥콰리체어(Macquarie's Chair)라고 한단다. 맥콰리총독 부인이 낭군이 영 본국의 출장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항구 바다 쪽을 바라고 앉아있었다던 '바위 의자'이다. 여기에 앉아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밑으로 내려와서 사방을 둘러보니 발 앞의 바위에 잔잔한 파도가 부딪치며 물결을 일으킨다. 왼쪽에는 저 멀리 좌측에 오페라하우스, 우측에 하버브리지가 눈앞에 전개된다. 오른 쪽 바다 한가운데에는 탑이 서 있는 조그만 섬이 있다. 이 섬에는 죄수들을 수용하는 감옥이 있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한 사람도 탈옥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물속에는 상어 떼 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서 헤엄쳐 도망갈 염두도 못 내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현재 상어 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망을 쳐 놓았다고 한다. 상어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자. 4억 년 전에 출현한 상어는 척추동물의 일종으로 전 세계에 약 250여종이 있는데 그 중에 심해상어는 수심 500~1000m의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심해상어는 체중의 4분의 1이 간장이며 그 중의 약 90%를 차지하는 간유에는 다량의 스쿠알렌(squalane)이 들어있다. 이것은 불포화탄화수소로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여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등 사람의 건강기능식품으로 고가에 팔리고 있으며 상어의 연골도 건강기능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정부는 이 건강식품을 주요 보조 의약품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해변을 따라서 도로 가에는 어린애들을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는 등 즐겨 워 하면서 산책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여기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공원 정상에서 뒤쪽으로는 호주해군기지가 위치한다. 육중한 나무 밑에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앉아서 잠깐 쉬기도 했다. 다음 코스는 오페라광장과 오페라하우스이다.

       중도에 생약매점[Proudey P/L]을 들러보았다. 고가인 다량의 호주 산 생약이 전시되어있었다.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

       11:00경에 오페라하우스광장에 도착하다. 내부는 구경할 수가 없었고 외부의 웅장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시드니 아니 호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이 건축물은 1957년 정부에서 개최하는 국제 공모전에서 32개국 232점의 경쟁을 물리치고 선발된 덴마크의 건축가 요른 우츤(Jorn Uzon)의 디자인 작품이다. 1959년에 착공하였다. 25m짜리 기둥을 580개나 박아서 바다 위에 세운 건물이다. 예상외로 설계상에 문제가 많고 건축비가 많이 들어 설계자 요한우츤에게 비난을 퍼부으면서 중도에 포기하려고 하였다. 요한우쯔는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하면서 호주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착공 후 14년만인 1973년에 완성하였다. 이와 같이 장기간의 공사와 당초 예산의 11배나 되는 총 공사비 1 200 AUD달러를 들여 건설된 오페라하우스는 105 6000장의 타일을 요트모양으로 만든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 타일은 강한 자외선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인 꼬마가 잘못하여 타일 1장을 깨먹어 큰 사건이 되었었다고 한다. 건축형상은 오렌지를 12등분한 조각대열로 조개 껍질 형태로 조립하면 둥그런 오렌지가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건축 구조의 결함으로 공사 시작이 불가능하였으나 1966년부터 호주 건축 팀이 공사를 재개하여 완성하였다. 내부는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4개의 커다란 홀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1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페라 극장을 비롯하여 2900명이 들어설 수 있는 콘서트 홀이 있고, 544석의 드라마 극장, 288석의 스튜디오, 400석의 연극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복권을 발행하여 공사비를 충당하였다고 하며 벽에 나무를 박아 오페라 공연 시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2 ~3일마다 오페라프로가 바뀌며 하루에 6~7회 공연한다고 한다.

       한국의 세계적인 오페라 여가수 조수미도 여기에서 출연한 적이 있었으나 이유 없이 하루를 펑크 내는 바람에 두고두고 호주사람들의 욕을 먹고 있다고 한다. 패티 김도 여기에서 패션쇼를 연적이 있는 모양이다. 기념촬영을 한 다음 11:55분경 오페라하우스 광장을 떠나다.

 

[시드니 하버크루즈][Sydney Harbour Cruise]

       차이나타운을 거쳐서 12:20분경에 중앙부두에 도착하다. 맞은편에 거대한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정에 잡히지 안 해서 구경은 못했지만 들러 보고 싶은 곳이다.

       캡틴쿡크루즈(Captain Cook Cruises) 선상에 올라 시드니 내항을 유람하는 것이다. 배에서 지정석에 앉아서 뷔페중식을 맛있게 먹고 난 다음 위 갑판에 올라갔다. 사방에 전개되는 항구의 아름다운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 관광객들이 어울려 환성을 울리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1시간30분 동안 선상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심호흡하면서 특히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및 주변의 고층 빌딩들이 돋보였다.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

       먼발치에서나마 온종일 바라본 하버브리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이 다리는 시드니 교통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곳으로 1923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9년이라는 세월 끝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북쪽의 교외 지역과 시내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은 오직 페리(Ferry)뿐이었고, 총 공사비 2000AUD달러를 들이면서 매일 1400 여명의 인부가 투입되었다. 하버즈리지가 시드니의 명물이 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시드니의 남과 북을 오가는 다리인 만큼 밀려드는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바다 밑에 해저 터널을 뚫어 교통량을 감소했지만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하지 않았다. 초기 하버브리지 건설비용은 영국에서 차관을 들여와 충당했으며 1932 3월 개통 후부터는 차량 통행료를 받아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1988년 모든 빚을 청산했지만 여전히 통행료를 받아 하버브리지 유지보수비와 해저터널 공사비로 사용한다. 가장 높은 부분의 높이가 134m 인 거대한 아치형 다리로 시드니만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보도 위를 걷다 보면 오페라 하우스와 하얀 요트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 하버브리지는 8차선의 차도와 다리 서쪽에 전차용도로, 지하철 선로와 동쪽에는 보도가 있다.

        하버브리지 교각관광코스도 있는데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 개설한 것으로 오르내리는데 3시간이 소요되며 주간에는 입장료가 150 AUD달러이고 야간에는 180 AUD달러를 내야 한다고 한다. 먼발치에서 올려다보니 이곳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드니타워][Sydney Tower]

       14:30분에 중앙 부두를 떠나 시드니타원에 이르렀다. 이 시드니 타워는 피트스트릿(Pit Street)과 마켓스트릿(Market Street)의 모퉁이에 있다. 1983년에 완공된 시드니타워는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첨탑을 포함하면 높이가 305 m나 되고 전망대까지는 250m에 이른다. 엘리베이터 시설은 3단식으로 되어있는데 오르기 전에 보안검색이 철저하였다. 매시간 약 2천명의 승객이 이용할 수 있고 최저 층에서 최고 층까지 올라가는데 약 40초가 소요된다. 1504의 비상계단이 있다. 건축가 도날드 크론 작품으로 무게 7톤의 케이블 56개 다발로 지탱되고 있는 이 타워는 9층까지 있다. 사진촬영은 엄금으로 되어있다. 올라가 전망을 보니 시드니의 아름다운 항만 전경과 바다를 꽉 메운 각종 선박과 흰 돛을 단 요트들을 바라볼 수가 있어 장관이었다.

       15:15분경 시드니타워를 출발하여 본다이비치로 향하다. 15:40분경에 도중에 본다이 교차점(Bondi Junction)에서 잠깐 하차하여 왼쪽에는 항구 오른쪽에는 망망한 남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항구입구는 지그재그 형 해안의 천연방파구조로 되어있다. 시드니는 서울의 6 배 크기나 되며 48개의 항구로 되어있다. 위로 40km 아래로 40km나 뻗어있다. 시드니 행 해안에서 안쪽으로 22km나 들어와 내항을 형성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제일 자연과 친화력이 어울린 호주의 제일 큰 도시이며 항구이다. 따라서 인공방파제시설이 없이도 파도를 막게 되어있다. 2차 세계대전 초 일본해군 잠수함이 내항으로 몰래 숨어들어 와서 군함2척을 격침시킨 다음 유유히 항구를 빠져나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호주인 들은 일본의 위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본다이 비치][Bondi Beach]

       15:55분경에 본다이비치에 도착하다.

        본다이비치는 시드니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휴양지로 시드니 중부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고 1km의 거대한 백사장을 자랑한다. 넓은 백사장과 거친 파도가 조화를 이루어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으로 주말이면 늘 많은 인파로 붐빈다. 본다이는 원주민어로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라는 말에 걸맞게 서퍼들이 서핑을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들을 갖추었다고 한다. 본다이 비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캠벨 퍼레이드 근방에는 번화가가 형성되어 각종 편의 시설을 비롯하여 쇼핑센터, 커피숍,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특히, 본다이 비치는 일명 '토플리스'라 하여 남, 여 모두 하위만 걸쳐도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본다이 비치 근방에는 타마라마 비치를 비롯하여 쿠지 비치, 브론테 비치 등의 아담한 해변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311일 호주는 초가을에 접어든 기후다. 그럼에도 뜨거운 날씨에 이름 그대로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가 매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모래가 정말 고왔다. 많은 남녀인파가 몰려들어 해수욕이나 서핑을 즐기기도 하고 제트보트들이 쉴 새 없이 파도를 헤치며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모래찜질하는 남녀들도 많다. 해안구조가 한국의 해운대를 연상케 한다. 모래사장을 걷다가 올라와 맥주 집에서 한 잔 들이키면서 목을 축였다.

       16:50분경에 본다이비치를 떠나다. 도중에 스노면세점(Ausway Trading Pty Ltd)스노면세점을 구경하다. 18:05분경에  한국의 강나루식당에 도착하여 석 식을 하다. 18:50분경에 호텔로 향하다. 20:40분경 Sunnybrook Hotel에 도착하여 3일간의 마지막 하루 밤을 지내면서 짐을 꾸렸다.

 

[0312][][맑음]

       호텔에서 조식 후 07:15분 호텔을 출발하여 시드니국제공항에 도착하다. 탑승시간이 촉박하여 시드니 공항 면세점을 두루 구경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09:30 OZ602편 아시아나 국적 기에 탑승하다.

       당일 17:55분경에 인천공항에 착륙하다. 남북회귀선을 지나는 태평양상공을 10시간30분의 지루한 비행을 마친 것이다. 세관이 전처럼 까다롭지 않고 신고서를 제출하는 즉시 통과할 수 있었다. 공항에 일산 행 버스가 마침 대기하고 있었다. 910일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호주와의 시차가 1시간인 때문인지 시차의 피로감은 느끼지 못했다.

 

[후기]

       선진국을 여행할 때 마다 느끼지만 이번 뉴질랜드와 호주를 방문하는 동안 보고 들은 얘기들은 역시 철저한 준법정신에 있다. 이를 어기면 무거운 벌금과 벌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어떠한가? 부끄러운 노릇이다. 매일같이 신문의 지면을 채우는 것은 불법의 작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죄를 짓는 사람도 있는 것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한국은 이들 선진국에 비해서 불법과 부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법을 만들고 이를 운영하는 소위 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자체가 법을 어겨서 일단 감옥에 다녀온 후에도 뻐젓이 높은 감투를 쓰고 큰 소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정되어 우리도 남들마냥 선진국으로 가보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 마다 관광명소를 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진국이나 후진국을 불문하고 그들 나라들의 장점을 배우고 우리의 단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이를 일소하는 것이 또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끝으로 뉴질랜드와 호주여행에서 우리일행을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뉴질랜드 북섬의 전우성부장님, 남섬의 변재식차장님 그리고 호주의 류성림실장님 및 장거리 버스 안전 운행에 수고가 많으셨던 운전기사 여러분께 감사 드리며 뉴질랜드와 호주여행 중 그들의 역사와 도처의 지명에 약방의 감초마냥 따라다니는 영국인 대 탐험가인 캡틴 제임스 쿡(Captain James Cook)에 대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본 기행문을 마치고자 한다.

 

[부록]

 

[캡틴 제임스 쿡][Captain James Cook][1728~1779]

       역사의 물결 위에서 찬란하고 영롱한 이름을 기꺼이 파도 위에 내던질 수 있는 위대한 선장. 그가 만들어낸 잔설(殘雪)과 같은 파도는 바위 위에 선명한 이름의 흔적을 남긴다. 캡틴 제임스 쿡(Captain James Cook), 열 여덟의 꿈 많던 소년이었던 제임스 쿡은 선주 존워커(John Walker)에게 고용되면서부터 바다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듯이 끊임없는 노력과 바다를 품은 꿈은 그를 견습선원(apprentice)에서 숙련선원(ableseaman)으로 승진하게 하고, 24살 때인 1752년에는 마침내 항해사(mate)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 꿈을 펼친 뒤 9년 만에 드디어 바크(bark)선의 선장이 된다.

       그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영국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한 달 만에 마스터메이트(Master's mate 오늘날의 하사관급)로 승진하게 되는 가하면 , 1758년 세인트로렌스 지역의 해도를 제작하는 데 공을 세우게 되며, 1763년에 제작한 뉴펀들랜드 해역 도는 훗날 『북 아메리카 수로지 North America Pilot』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제임스 쿡의 행보는 1776, 뉴펀들랜드 인근의 버지오(Burgio)에서의 일식 현상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것을 바탕으로 경도를 계산하여 그 결과를 왕립협회에 보고하였고, 『철학회보 Philosophical Transaction1767년 판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첫 번째 항해 - 미지의 남방대륙을 향하여>

       "과연 미지의 남방대륙은 존재하는 것일까?"

       1768년 영국 왕립협회는 해군성과 공동으로 태평양 탐사를 계획하였는데, 18세기 중엽은 고대 이래 남쪽 바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전해져 내려오던 '미지의 남방대륙'이 곧 발견될 것이라는 시점이었다.

       1768 5월 마흔 살에 대위(lieutenant)의 옷을 입게 된 그는 금성관측 단원을 타히티까지 수행해야만 하는 공식적인 목표 외에도 '미지의 남방대륙의 존재여부'를 조사하라는 해군성의 지시를 받았다. 창해(滄海)에는 쿡이 이끌고 있는 인데버(Endevour)호의 기품 있는 모습으로 가득 찼다.

       뱃머리는 대서양을 향해 남하한 뒤 케이프 호를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진입하였고, 투아모투(Tuamou)제도를 경유하여 타히티 섬에 닿게 되었다. 뱃머리가 잠시 멈춘 시간 동안 원주민들과 접촉하여 진기한 동식물을 관찰하였다. 타히티의 서북방으로 항해하여 무리 지어 있는 섬을 발견하고는 '사회제도(Societe Is)'라고 명명했다.

       1769 10 7일에 파버티(Poverty)만 부근에서 뉴질랜드(New Zealand)에 도착하여, 6개월 동안 뉴질랜드 전도를 작성하였고, 400여종에 달하는 새로운 식물을 채집하였다. 뉴질랜드 전역을 탐사하여 그동안 ""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실제로 "해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쿡 해협"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으며, 또한 호주 퀸즐랜드 동북부의 작은 항구가 금광이 발견되면서 정착촌으로 건설이 되고 "쿡 타운"으로 명명되었다.

<두 번째 항해 - 남극해 탐사>

       최초의 남극해 탐험을 향한 열정으로 시작된 두 번째 탐사항해, 어느 누구도 항해해 본적이 없는 남위 고위도 해역까지 탐사하여 남방대륙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서 거대한 빙산의 공격을 이겨내야 했고, 녹아 내린 빙산 사이를 헤쳐 가며 항해를 계속해야만 했다. 두 번째 시도되는 '남극해 탐사' 1773, 태평양 해역에서 이루어졌다. 1774140일 남위 71°10, 서경 106°54′ 지점에 도착함으로써 당시로써는 지구 최남단까지 항해하는 기록을 세웠다.

       계절이 3번씩 바뀌는 동안에 이스터 섬, 퉁가섬, 뉴헤브리디스 제도, 뉴 칼레도니아 등을 탐사하고 사우스샌드위치 섬과 사우스조지아 섬을 발견한 뒤 1775730일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결국 쿡은 "남위 60°이북에는 대륙이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대륙이 존재한다면 그 대부분은 남극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항해사상 최초로 크로노미터를 활용하여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해 냄으로써 항해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바다 위에 바치는 동안, 공포의 병인 괴혈병으로 탐사대원을 잃은 일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공로는 포스트 캡틴(대령과 제독 사이의 계급)의 영광을 안겨주어, 왕립협회의 정식회원으로 선출되게 만들었으며, 최고의 영예인 코플린(Coplyn)메달을 안겨주었다.

<세 번째 항해 -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

       "샌드위치 섬은 도대체 어딜까? 그리고 그는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를 발견하자"라는 신념으로, 17771224일 태평양 위의 조그만 섬을 발견한 후 크리스마스 섬이라고 명명하고 이듬해 118일 하와이를 발견하였는데, 이곳을 해군성의 후원자인 샌드위치경의 이름을 따서 "샌드위치 섬"이라고 명명하였다. 북극해의 알래스카연안을 따라 북위 77°44′까지 탐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범선으로 항해할 수 있는 북서항로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2년이 넘는 시간을 또 다시 바다 위의 물결 속에 잠재운 후, 사람도 배도 모두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와이로 항로를 바꾸게 된다. 그런데 하와이 원주민들은 닥치는 대로 쇠붙이를 떼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디스커버리호의 보트 한 척이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잃어버린 보트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한 명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제단의 울타리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심하게 격분한 원주민들은 쿡 일행을 습격하였고 이런 와중에 쿡은 원주민이 던진 창에 맞고 죽게 되는데, 그때가 1779214일이었다.

       바다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바다였던 캡틴 제임스 쿡. 그는 일생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내면서 남태평양의 대부분의 섬을 탐사하여 해도를 작성하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지도를 완성하였다.

       비록 해양탐험에서 호주의 전체 윤곽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북서항로의 존재유무도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지만 그는 사실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해역을 탐사하였다. 그러한 바다 위의 인생은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사이의 '쿡 해협', 호주 퀸즐랜드 북동부의 '쿡 타운', '쿡 제도', 뉴질랜드 남섬의 '마운트 쿡'등에 그의 이름이 명명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인들은 그의 이름 앞에 "캡틴"이라는 경칭을 덧붙임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름 앞에 "캡틴"이라는 경칭이 붙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수중 호흡기 발명가 자크 이브 쿠수토(Jacques Yves Cousteau 1910~1997)와 제임스 쿡(James Cook), 두 사람만이 그러한 영광의 빛을 안게 되었던 것이다.     

 

                           ()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