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方外之士

空手잠빌 2007. 6. 3. 14:54

[Why] 사건마다 귀신같이 나타나는…활빈단, 그 정체는

경찰청 앞에서 시위하고 공기업 감사에 미꾸라지 뿌리고…
회원 대부분이 직장 잃거나 사업 망한 사람들…
후원금 거의 없어 점심은 각자 먹고 오후에 모여 활동

 

김영민 기자 now@chosun.com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입력 : 2007.06.01 23:17 / 수정 : 2007.06.01 23:18

 

지난 28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정문 앞에 그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둘둘 말은 플래카드를 쥐고 태연히 자리를 잡았다. 경찰들은 그를 잘 아는 듯 경계 자세를 취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 시작해볼까” 말 한 마디와 함께 그는 1m 너비의 플래카드를 펴며 구호를 외쳤다. “이택순 청장은 용퇴하라” “거짓 경찰 물러나라”는 구호를 시작으로 ‘혁신 경찰청’ ‘범죄와의 전쟁이냐, 범죄와의 타협이냐’이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그리고 30분 뒤 그는 “이 정도면 혼쭐냈어”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 ▲지난 달 24일 오후 서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 입에 재갈을 문 채 기자실 통폐합 철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시민단체 ‘활빈단’ 홍정식(57) 단장. 활빈단을 이끌며 시위 현장을 누비는 활동가다. 1998년 4월 세관 공무원을 사퇴하고 지인 60명과 함께 활빈단을 창단했다. 홍길동전의 활빈당(活貧黨)에서 활빈(가난한 사람을 돕는다)을 따고, 사회주의 색채를 버리기 위해 당(黨)이 아닌 단(團)을 붙였다. 이후 활빈단은 매일같이 시위 현장을 찾고, 부패 공무원들을 항의 방문하고, 사찰이나 교회를 찾아 ‘나눔’을 주장해왔다.

지난 5월에만도 7일 음주문화상을 제정한 괴산군청을 항의 방문해 대나무 회초리를 전달했고, 17일 인천공항에서 이과수 폭포로 해외시찰에 나섰다가 물의를 빚은 공기업 감사들에게 미꾸라지를 뿌려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닷새 뒤 22일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불법으로 곰고기를 판매한 군의원과 동석한 진천군수, 진천군의회에 곰 인형과 함께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또, 24일 오후에는 서울 정부중앙청사를 찾아 입에 재갈을 물고 기자실 통폐합 철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활빈단은 창단 이후 매일 같이 언론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시위 현장을 찾는 단원은 10명 안팎이다. 인천공항에서 미꾸라지를 던진 날 활빈단 이름으로 참석한 단원은 단 2명, 괴산군청을 찾던 날도 홍 단장을 포함해 3명이 움직였다. 홍 단장에 따르면, 창단 당시에는 60명의 회원과 함께 했지만 현재 활동중인 회원은 홍 단장과 몇 명의 지인뿐이다.

활빈단 회원들은 대부분이 IMF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뜻을 모아 20여평 규모의 단 사무실도 꾸렸고, 운영자금은 세관 공무원을 지낸 홍 단장의 개인 자금 4000여 만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외부 지원은 물론 후원금도 거의 들어오지 않자 회원들은 한두 명씩 떠나갔다. 현재 활빈단의 시위는 홍 단장 혼자 나서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홍 단장은 “매달 받는 공무원 연금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다니며 시위 현장을 찾으려면 매달 200만원은 족히 든다”며 “매스컴에도 나고, 사람들 이목도 집중시키려면 오전 11시쯤에 시위를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회원들 밥 사줄 돈이 없어 요즘은 보통 오후 1시에 시위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대부분의 점심 식사를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있다.


  • ▲홍정식 단장

활빈단 홈페이지에 적힌 지부(支部) 수는 10개소. 하지만 현재 지부를 책임지는 지단장이 있는 곳은 홍 단장의 지인이 있는 강원도, 울산, 인천 3곳이다. 서울에서 시위를 할 때에도 홍 단장의 핸드폰에 저장된 150여명의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참석할 사람만 시위 장소로 찾아오는 식이다. 그래서 홍 단장은 어떻게든 매스컴에 나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내 주장을 펼치고, 사람들이 관심 갖고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카메라 앞에 서서 남다른 행동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했다. 그동안 고춧가루 던지고, 소금 뿌리고, 차도로 뛰어들어 낸 각종 벌금만도 200만원이 넘는다.

경찰은 활빈단의 활동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일 독도 문제와 대중 동북공정 논란 속에서 활빈단이 애국 운동을 앞장서 한다는 관점도 있지만, 홀로 ‘튀기’ 위해 퍼포먼스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부정부패 추방 운동도 많이 하고, 좋게 보면 애국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서도 “자기의 소신, 아이디어만 고집해 관심은 끌어도 대중의 지지는 못 얻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활빈단은 그들의 튀는 행동으로 인해 보수단체 내부에서도 따돌림 당하기도 한다.

활빈단의 행동 방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적을 유인하여 이쪽을 공격하는 체하다가 그 반대쪽을 치는 전술), ‘삼한사온(월 화 수 3일은 강성 시위, 목 금 토 일 4일은 평화 시위), ‘치고빠지기’(시위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은연중에 사라지기)를 추구한다. 모을 수 있는 조직이 없는 만큼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활빈단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시위 ‘아이템’. 홍 단장에 따르면 혼쭐내야 하는 사람은 회초리, 자기 속만 차리는 사람에게는 밴댕이젓, 나라망치는 사람은 꼴뚜기, 사회 물 흘리는 사람은 미꾸라지, 못 믿을 사람은 메주를 직접 사가지고 건네준다. ‘밴댕이 소갈딱지’(속이 좁은 사람을 이르는 말인 밴댕이 속 아주 작은 부스러기 같은 마음 씀씀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미꾸라지(자기 자신에게 이롭지 않으면 요리조리 살살 피하거나 잘 빠져나가는 사람),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시위 도구를 생각해낸 것이다.


현재 활빈단 후원 통장의 잔고는 30여 만원에 불과하다. 5개의 후원 통장이 있지만 한 달에 들어오는 후원금도 10여 만원 미만이다. 어린 학생들이 시민단체를 공부하면서 몇 천원씩 후원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홍 단장은 9년째 매일 같이 집회 일정을 챙기며 시위 현장을 찾는다. 플래카드와 같은 시위도구는 이전에 쓰던 것을 자르고 오려 스테이플러와 테이프로 재활용한다. 꼭 필요한 문구의 플래카드만 1만원씩 주고 새로 만든다. 웬만한 시위 도구는 대규모 시위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남아 버려진 전단지, 어깨띠, 피켓 등을 수거해 사용한다.

한 때 홍 단장은 정계 입문도 생각했다. 2000년 ‘민생개혁신당(가칭)’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려고도 했고, 그 해 4·13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도 했다. 하지만 동참하는 회원들이 적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사기만 당해 정치의 꿈을 접었다. 이후 활빈당 단장이란 명함만 가지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난 28일 만난 홍 단장은 지금의 생활이 즐겁다고만 했다. 그는 “가족들도 이젠 그만하라고 말리지만, 대한민국에서 남 눈치보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인데 어떻게 그만두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오른쪽 눈두덩에는 어디서 맞았는지 모르는 시퍼런 멍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활빈당, 남대문 경찰서 앞 시위 네이버  뉴시스 사회 | 2007.04.29 (일) 오후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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