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方外之士

空手잠빌 2008. 1. 5. 17:02

 

 

 

 

우리시대에서 방학기란 이름은 분명히 한사람의 만화가 이상입니다.

 

그는 성인극화라는 장르를 우리의 '토속문화'로 개척했지요.

 

만화가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을 바꾸어 놓은 이도 바로 방학기입니다.

 

조현진 인터뷰어가 우리시대의 고수 방학기를 만났습니다.

 

 

 

 

[만화가 방학기 인터뷰] 멈춤없는 고수의 붓 사위.

만화가 만화면 그게 만화냐? 그 미망(未望)의 살수(殺手) / 조현진
작성일:2008-01-04

 

 


[인터뷰365 조현진 인터뷰어 / 사진 안태희] 첫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준비해 간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아내가 내어 온 밀크티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본인의 대표작이 뭐냐?” 혹은 “앞으론 뭘 그리고 싶냐?” 이런 질문은 ‘방학기’ 라는 인물을 꺼내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 아니, 이런 상식적인 수준의 질문을 의미 없이 던진다는 것은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데에 방해만 될 뿐 이다. 라는 것이 파악되었기에 질문지를 덮었다. 또한 사실 이건 어쩌면 그의 작품들이 대중과 만나는 접점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현상이기도 하다. 방학기의 만화를 ‘웃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의 만화를 ‘어렵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드물다.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방학기 만화’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이제 우리시대에서 어떤 약속이나 코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방학기 만화’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어떤 개념을 떠올린다. 웃기지 않고, 쉽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있고, 토속적이고, 독특한 그림체가 있고, 그리고 한번 집으면 끝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을 묻고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곳이 아닌 이 집에 찾아온 곳이다. 이곳 홍제동 집은 지난 23년간 방학기의 집이자, 작업실이었던 곳이다. 그 집 마당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방학기의 원작을 영화화한 <바람의 파이터>의 포스터를 작업했던 디자이너 안태희씨가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그의 모습을 찍었다.



당신을 정의하는 몇 가지 표현이 있는데 ‘가장 한국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 ‘한국 만화의 리얼리즘을 연 작가’같은 표현이 자주 들린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가장 단단한 내러티브를 가진 작가’라고 당신을 쓰고 싶다. 이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설명보다는 당신의 표현이 좋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늘 ‘이야기’를 위해서 노력했고 내러티브에 집착한 건 사실이다.



당신이 집착이라고 표현할 만큼 단단한 그 내러티브는 어떻게 형성이 된 건가?

음... 아버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이 분이 참 희한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쌀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해가 지면 늘 그곳으로 동네 장사치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려 몰려들곤 했다. 아버지가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신 분도 아닌데 말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때다. 등불 켜놓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는 심청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같은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다. 그때 사람들 반응이 아주 대단했었다. 아버지 이야기에 따라 깔깔거리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고... 어릴 때는 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저렇게 즐거워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안다. 그건 바로 아버지가 선천적으로 플롯을 재구성 할 줄 아는 이야기꾼이셨다는 거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구성을 다르게 하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게 하는 거지. 그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극적인 지점까지 몰아붙이다가 잠깐 딱 끊는 법도 알고 계셨다. 이게 정지의 효과라는 거다. 그럼 침묵 속에서 사람들의 꼴까닥 침 삼키는 소리만 들린다. 완전히 사람 홀리는 거지. 난 어렸을 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최배달 선생에게 들은 이야긴데 고수들의 싸움에선 처음부터 최고의 힘을 쓰는 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탑을 쌓듯 합(合)을 모으다가 절정의 순간에 찰나의 휴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진짜 살수(殺手)가 나온다는 거다. 난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이야기의 살수가 무엇인지를 배운 거다.



그렇지만 단지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나, 선천적이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플롯을 재구성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만으로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순 없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거다. 만화를 그리고 살았지만 한 번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 스토리 텔러다. 그러기에 나에게 만화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달 수단인 셈이다. 

 


그것이 방학기 만화에 공통적으로 묻어나오는 어떤 ‘비장함’의 이유인가? 사실 그 비장함 때문에 소년 만화 시대에 복판에서 ‘성인극화’ ‘남성만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니 클라이막스의 부분에서 강하고 자극적이 메시지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비장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비장함 이전에 대중은 언제나 ‘센티멘탈 새디즘’을 원한다는 것이 화자(話者)로써 나의 시각이다. 그것에 대중은 귀를 기울인다. 그러기에 어떤 결정적 순간에는 새디스틱한 표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을 골라서  한다면 그건 재주 있는 이야기꾼이 아니다. 내가 재미있는 것을 말하면서도 대중을 집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이야기꾼인거지.


방학기는 마산에서 태어났다. 해병대에서 하사관으로 7년을 복무했고, 군 제대 후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고우영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2년 후인 31살에 <새소년>에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을 비튼 미스터리 작품인 <사라진 낡은 집>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 이후 <소년중앙>에 <타임머신><태양을 훔친 소년>등의 SF만화를 발표했었다. 아직 그의 유명세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이때의 작품들은 소년용 만화 시장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 작품들을 연재할 때 어린이들의 아닌 부모들과 성인들로부터 연락과 격려를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선데이 서울> 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성인매체와 방학기의 만남을 이끌어낸 원인이다.



고우영 화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당신에게 고우영은 어떤 의미인가?

간단하게 답할 수 있다. 그 분은 나의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그의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나는 끊임없는 의문과 싸웠다.



어떤 의문?

이야기에 대한 의문이지. 최고의 작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젊은 문하생이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 좀 외경스럽긴 하지만 내 성향 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고우영 선생의 <대야망>이란 만화가 있는데 이건 <바람의 파이터>와 같은 ‘최배달’의 일대기다. 그런데 고우영 선생은 이 작품을 누구와 맞서도 이기는 슈퍼 히어로 같은 무술인 최배달로 만든거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무술이 본질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고, 이 최배달 이란 무술인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공포나 두려움은 없는건지? 그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하는 질문들이 그 시절 나에게는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던 거다.

 

지금이야 그런 당신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그때만 해도 만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웃긴 것’ 혹은 ‘웃음을 줘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시대가 아니었나?

만화를 향해 올바로 된 비평조차 없었을 때였다. 만화가 무엇이냐를 떠나서 나는 리얼리티와 디테일이 없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작가는 진실이 아니더라도 ‘진짜 같은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세상에 어디 희극만이 존재하는가? 비극도 존재한다. 희극과 비극이라는 형식은 ‘이야기의 힘’ 밑에 깔려지는 것이다. 웃기려는 생각만으로 사람들이 웃는가? 아니다.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고 웃을 때까지 몰아가는 이야기가 있어야 웃는 것이다. 그 몰아가는 과정이 웃음만으로 되겠는가? 등소평이 인용한 사자성어 중에 ‘백화제방(百花齊放)’이란 말이 있다. 꽃밭엔 수많은 다른 꽃들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밑에는 버섯도 자라고, 뱀도 기어 다니고 그래야만 전정한 꽃밭의 가치가 생긴다는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게 ‘구성’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이게 ‘문화’ 인거다.



그럼 <선데이서울>에 발표했던 성인들을 겨냥한 일련의 토속적 작품들은 그런 이전의 소년 만화와는 차별화되는 장르를 개척하려는 시도였나?

꼭 그 매체와 어울리는 성인극화를 만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말을 들을 만한 대상은 어린이들이 아닌 성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먼저 분명히 밝혀둘 것이 하나 있는데 나에게 만화를 그린다는 의미는 ‘생존을 위한 수단’ 이란 것이다. 어떤 거창한 철학이나 한국문화의 재발견을 시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줄 아는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겠다는 처절한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돈을 받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에게 <선데이서울>이 그리고 여러 스포츠 신문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게재해주고 고료를 준다고 한 것이고 그래서 거기에 작품을 발표한 것일 뿐이다.



<애사당 홍도><바리데기><임꺽정><창부타령>등 남사당으로 대표되는 민초들이 나오는 초기 작품과 남성적인 성향이 짙은 <바람의 파이터>를 비롯한 <감격시대 3부작 (김두한의 감격시대, 시라소니의 바람의 아들, 역도산의 승부사의 노래)>등 시대와 현장성을 담는 당신의 만화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꼭 한국의 전통을 그리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그 일련의 작품들이 나온 것이다. 나 스스로 먼저 그런 이야기의 자료를 뒤지거나 공부하며 플롯을 짜는 것을 좋아했고, 그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남들에게 들려줄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국어사전에 만화(漫畵)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1 이야기 따위를 간결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 대화를 삽입하여 나타낸다.≒만필화. 2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을 과장하여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비판하는 그림. 3 붓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4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당신도 동의 되겠지만 이 4가지 정의 중에 ‘방학기의 만화’를 설명할 수 있는 카테고리는 없다. 그의 작품은 익살스럽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고,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비유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방학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하나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료’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리얼리즘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탄탄한 구성을 받치고 있는 ‘진짜 기록들’이라는 것이다. 그 철저한 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작품을 그리기에 도리어 그의 작품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고 받아들이는 이들 또한 부지기수다.


   

이런 질문 많이 받지 않았었나?

많이 받았다. 어떤 독자들은 <바람의 파이터>를 ‘최배달의 일기장’ 이라고 까지 생각하더라.



이해를 돕기 위해 실체는 어떤 건지 설명해 달라.

어떤 것이긴. 1%의 재료를 가지고 99%의 픽션을 넣어 만드는 거지. 최배달이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죽였다는 사실 위에 나는 외양간 만들고, 소 주인 만들고, 백정 만들고, 그 집 딸을 만들고 그러면 그 딸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 거고, 삼각, 사각관계가 그려지다가 최배달이 나타나 그 집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거지... 뭐 이런 식 인거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도 마찬가진 거다. <연려실기술>에 ‘명종 14년 3월 임꺽정의 난 (林巨正亂) 발생’ 이라는 한줄 가지고 그 장대한 이야기를 만든 거 아닌가? 소설가 이문열씨가 했던 말 중에  ‘모든 소설은 자서전적이며, 모든 자서전은 소설적이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독자들이 그렇게 반응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황홀하지. 쾌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고통과 쾌락은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의 얼개를 짠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무수한 가지들을 모아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 하나라도 잘못 된 것이 있으면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까. 그러니까 이건 이야기꾼이 아닌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하는 치열함이고 엄청난 고통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었어도 독자가 외면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내 작품을 보며 독자가 이걸 ‘실제’라고 믿는다면 나는 세상을 속인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아주 황홀하다. <바람의 파이터>연재가 끝났을 때 무술관련 협회와 K-1을 하는 단체 같은 곳에서 무슨 명예임원직을 준다며 연락이 왔었다. 만나보니 다들 무술 유단자인 분들인데 난 평생 도복 한번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을 했더니 그 분들이 무술을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바람의 파이터>에 그런 완벽한 무술 고수의 동작을 그려낼 수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나는 그 말이 그 분들이 제안한 명예직 보다 훨씬 명예로웠다. 물론 그 분들 제안은 사양했고.



대중을 속이는 재미라는 말인가?

속인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사실과 진실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리얼리티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허망한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사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현상을 오감(五感)을 통해 받아들인 신호를 뇌가 해석하면서 발생되는 정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물건을 볼 때 눈이 ‘예쁘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호접몽(胡蝶夢)’이 이 팩트(fact)의 오류를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오감으로 획득한 정보는 당연히 오류를 동반하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자기 해석에 따라 진실 혹은 거짓으로 판단하는 거다. 좋은 이야기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오류를 좁히는 사람인거다. 오감을 일치시키고 마비시키는 거지. 그런 상황의 극치에 서있는 인물들이 히틀러, 역도산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완전히 대중을 조작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중을 몰입시키기 위해선 철저하게 대중을 속이는 마음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방학기에겐 그 마음의 다른 말이 ‘고통’이었고, 준비의 다른 말이 ‘자료’가 되는 셈이다. 그에게 자료란 단순한 기록만이 아니다. 영화와 TV드라마, 철학서, 사상서 모두가 이야기를 만들 때 필요한 자료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보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드물 것’ 이라고 말했다. 젊었을 때는 점심도 먹지 않고 충무로의 극장들을 순례하며 하루에 6편까지도 본적이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찾고 기억하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작품들이 그의 안에서 충돌을 하다가 새로운 무엇이 자료로 재생산 되는 것이다. 그 치열함속에서 대중은 결국 방학기에게 당했다. 그는 성인극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고, 국어사전 어디에도 정의되지 않는 만화의 기준을 창조한 것이다. 대중과 한 번도 떨어지지 않은 채 대중의 복판에서 세대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매체들을 화판(畵板)삼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설득시킨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남이 듣는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왔다.



최근 몇 년간 새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방학기가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의 준비가 안 된 건가?

그렇다. 신문사들로부터 계속 연재요청이 오는데 그쪽에서 제안하는 기획으로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거절하고 있는 거다.



다음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대답 안 할 것이니(웃음),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음...그렇게 물으면 생각하는 것을 대답 할 수 밖 에 없는데(웃음) 요즘 여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자? 너무 광범위 한데.

안다. 하지만 인류의 반이 여자고, 나도 제법 인생을 살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내도 딸도 모두 여잔데 내가 여자를 알고 있기나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와 남자는 너무 다르다는 차원 이상으로 모든 것이 다르다. 왜 남자와 여자는 끊임없이 서로의 성(性)을 상대로 투쟁하며, 일생을 마주하고 살면서도 왜 서로에 대한 해답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죽는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섹스만을 봐도 남자와 여자가 느끼고 원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근래에 프로이드와 융을 다시 읽고 있다. 프로이드가 쓴 <히스테리 사례분석>이라는 책을 보면 여자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남자보다 훨씬 많은 원가가 들어간 발명품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범위가 너무 넓다.

조금 더 축소하자면 ‘한국여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여자들은 대단하다. 옛날에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잔치를 베풀 때 기생들이 진검을 들고 칼춤을 추었고 그 칼에서 나오는 금광(金光)에 사신들이 눈이 멀 정도였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게 뭐냐 하면 그 사신들에게 품위 있게 공갈치는 거다. 여자들이 이 정도인데 남자들은 오죽하랴 하는 정보를 심어주는 거지. 그 만큼 한국여자는 우수하고 잘났다. 이 잘난 한국여자들의 대한 이야기가 지금 대중에게 말해야할 코드가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설명을 듣고 나니 흥미롭다. 하지만 그 여자라는 화두에는 ‘회귀(回歸)’ 의 뉘앙스도 풍긴다.

맞다. 그 역시 내 고민의 범주다. 자궁은 여성의 상징이자 생명의 상징인거니까. 모두가 자궁으로부터 와서 자궁을 그리워하다가 자궁으로 가는 거다. 자연스러운 거지. 당신 말대로 그러기에 내가 지금 ‘여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내 작품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회귀라는 표현처럼 ‘끝’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처음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처음과 끝은 연결이 되는 거니까. 그 중심에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배달 선생이 일흔이 넘었을 때  주먹 쥐는 법과 서는 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연습하고 있다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무술의 대가로 평생 살아온 양반이 초심자처럼 자신이 쥐고 있는 주먹이 바른 것인지를 의심하게 되었다는 거다. 여전히 어렵지만 이젠 그 분 말씀이 뭔지 알 것 같다. 여자를 통해서 과연 내 삶, 이제까지의 내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방학기가 가진 생각의 스펙트럼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일찍이 일련의 만화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와 영역너머를 꿈꾸며 고민하다가 결국 그 곳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든 작가.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영역 밖의 세계를 지향하고 상상하며 그 곳을 스케치해 보는 중인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그가 고독하고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방학기의 화풍을 따르는 후배 만화가들이 있을법 한데 그렇지 않다. 제자나 문하생 없이 혼자 작업을 하는 건가?

대체로 그렇다. 특히나 요즘은 연재를 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사실 누구에게 맡기지 못하는 성격이고, 맡고자 하는 사람도 없다.



왜? 당신의 화풍이 독특하고 어려워서 일까?

글쎄. 그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연필로 고갯마루의 무너질 것 같은 집 한 채를 그려서 수련생에게 이걸 잉크로 그리라고 하면 백이면 백 다 말끔한 새집이 나온다. 그 친구들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무너질 것 같은 집을 그릴만한 삶의 체험이 없어서 그런 거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다시 뒤를 돌아보고 그늘진 곳을 바라본다. 거기서 바라보는 시선이 내 그림의 파인더가 되는 거다.

 


젊은 세대들이 당신과 같은 시야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에 동의된다. 그렇다면 혹시 방학기와 같은 작가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아쉬움은 없나?

전혀 없다. 나는 내가 뒤에 남길 것 혹은 나를 평가할 것을 신경 쓰는 사람들과 다르다. 나는 직업인으로써, 이야기꾼으로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것 뿐이다. 내 화풍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걸 남기고, 또 그 이후를 신경 쓴단 말인가? 전혀 관심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까지 하면 그걸로 되는 거다. 지금 영화나 만화가 가진 공통적 문제의 원천은 '이야기의 빈곤'이다. 재주들이 있어서 그런것이겠지만 준비없이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모습들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방학기와 같은 화풍의 작가가 아니라 대중을 속일만큼 충분히 준비된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꾼의 등장이다.



믿지 않아도 좋지만 방학기 선생과의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약간의 ‘성장통’을 느꼈다. 이 단어 말고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영화 연출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로 인해 방학기는 자신의 말처럼 만화가가 아닌 스토리 텔러 임이 명백해졌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속삭이고 싶어서 - 그리고 자신의 속삭임에 대한 반응에 궁금해 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여드름배기 소년 같은 그의 기운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고통과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열중한 이들의 모습에서 나오는 황홀함을 동시에 즐기는 사람.  체험이 없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인 ‘이야기가 없는 시대’에서 방학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상징이다. 오늘 그가 여러 번 읊조린 미망(未忘)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맞다. 그 미망의 캐릭터, 미망의 이야기, 미망의 그림을 우리에게 선물한 작가 방학기. 망설이다가 아직 우리에겐 당신의 이야기 선물이 더 필요하다는 부탁을 뒤늦게 남긴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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