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Beaux arts

空手잠빌 2008. 2. 24. 12:39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조롱까지 하다니
[터키의 기독교 성화 탐방 2부]
신병철 (shinbcl)

 

  
▲ 예수의 십자가 처형 카파도키아 암굴교회의 그림이다. 십자가 주변의 두 사람이 창과 긴 막대기로 예수를 찌르고 간지럽히는 것 같다. 마리아는 슬픔에 잠겼다.
ⓒ 신병철
예수의 처형
 
조롱하는 자까지도 용서를 바라는 예수처형도

 

기독교 성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마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는 그림이 아닐까. 카파도키아 암굴교회의 이 장면은 새로운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예수는 별로 높지 않은 십자가에, 널뛰기 판자와 같은 받침대 위에 거의 알몸으로 서서 손발 네 곳에 못이 박혔다. 못자국 표현이 섬뜩하다.

 

왼쪽에는 성모를 비롯한 세 여인이 슬픈 표정을 띠고 서 있고, 오른쪽에는 성인 두 사람이 서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로마군복을 입고 창을 들고 있다. 십자가 가장 가까이 두 사람이 못 박힌 예수의 알몸을 긴 막대기와 창으로 문지르거나 찌르고 있다.

 

마치 조롱하는 듯하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못 내려오지. 그러니 너는 사기꾼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창으로 찔러 고통을 주고 있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목숨이 눈앞에서 다해가는 사람을 측은히 여기지는 못해도 조롱하다니….

 

예수는 아랫도리 속이 다 비치는 치마를 제외하면 완전한 알몸이다. 몸이 축 처진 모습을 대단한 어깨 근육으로 표현했다. 배에는 내장 일부도 나타내었다. 긴 머리에 역삼각형 얼굴에 수염이 조금 났다. 머리 좌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듯한 두 원이 있어 신성한 모습을 더 했다.   

 

같은 카파도키아 지역의 사과동굴교회의 그림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바클동굴교회의 그림에는 같은 날 처형당했다는 두 사람도 함께 그려 넣었다. 이런 그림들은 인간의 모든 죄를 혼자 끌어안고 고통을 감내하며 어리석은 자들의 용서를 바라며 죽음으로 항쟁하는 예수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참으로 감동스런 그림이었다.

 

너무나 잔인한 유아 학살

 

  
▲ 유아학살도 헤롯왕은 갓 태어난 아기가 유대의 왕이 된다는 말에 베들레헴 지역 2살 이하의 유아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한다.(왼쪽)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아기를 죽이기도 하고(오른쪽 위), 발로 짓밟고 아기 목에 칼을 찌르고 있다.(오른쪽 아래)
ⓒ 신병철
유아학살도

 

어째서 처형에까지 이르렀을까? 성화들은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수탄생 이후 그림의 내용은 험악하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말에 심기가 상한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찾으려 했고, 여의치 않자 2살 이하의 모든 어린이를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이 대량학살의 장면들은 끔찍하다.

 

왼쪽 그림은 코라성당에 있는 헤롯왕의 학살 명령 모자이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당에 있는 모자이크 중에서 채색과 구도가 가장 괜찮은 것이란다. 왕좌에 근엄하게 앉아 헤롯왕은 앞으로 유대민족의 왕이 될 아기를 찾지 못하니 베들레헴 지역의 2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두 죽여라라고 명령하고 있고, 주변의 군인들은 그 명령에 따라 오른쪽으로 나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

 

오른쪽 위의 그림은 괴레메 바클교회에서 연습하듯이 그린 그림 중에서 아기학살에 관련된 부분이다. 오른쪽에 어머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데도 군인은 아기를 한쪽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고 칼로 옆구리를 찔러 죽이고 있다. 아래에는 죽은 아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아래 그림 역시 코라성당의 그림으로 한 군인이 아기를 땅에 눕혀 짓밟고 칼로 목을 찔러 죽이고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군상과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 힘없는 자들의 모습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타나는 이런 생생하고 끔찍한 장면들은 예수와 기독교의 인간해방을 향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풍속화 같은 기적도

 

  
▲ 예수기적도 예수가계도 모서리에 그려진 네가지 기적(왼쪽 위)과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오른쪽 위)도 있고 병을 낫기 위해 예수 옷자락을 잡는 여인의 모습(왼쪽 아래)과 병자를 일으킨 장면(오른쪽 아래)도 있다.
ⓒ 신병철
예수기적도

 

꿈속에 이집트로 떠나라는 지시를 받고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났고, 예수는 살아났다. 헤롯왕이 죽자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조금 안전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나이 서른에 예수는 세례 요한을 만나 그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 장면이 코라성당의 그림에 나타나고 있다.

 

양털 옷을 입은 세례 요한이 군중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세례받으러 온 예수에게 다가가고 있다. 물결을 그리고 아래에 백로 같은 새를 그려 요르단 강을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같은 그림의 위쪽에는 검은 날개를 가진 사탄들이 예수를 유혹하고 있다. 이것 역시 석가가 보리수 밑에서 수도할 때 온갖 악마들이 유혹하는 장면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예수는 진리의 지도자가 되었다. 복음을 전하고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일깨웠다. 이때 기적도 일어났다. 전면을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기적의 그림들이 구석구석 나타나고 있는데, 마치 풍속화 같기도 하다.

 

기적과 예수의 활동에 관한 그림은 코라성당에 집중되어 있다. 왼쪽 위의 그림은 예수의 집안족보도라 할 수 있다. 중앙에 예수가 있고 주위에 아담부터 아벨까지 24명의 조상을 그려넣었다. 사각형 모서리 부분에는 예수가 일으킨 기적에 대한 그림들이 자리잡고 있다.

 

위 오른쪽은 예수가 처음 일으킨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 왼쪽은 예수와 접촉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 땅에 엎드려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여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오른쪽은 병으로 누워있는 자리우스의 딸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그림이다. 이 기적을 주변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다.

 

산상 보훈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 암굴교회의 산상보훈도 산 위에서 대중집회를 여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생업에 열중인 듯하면서도 예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왼쪽은 성모, 오른쪽은 세례자 요한이다. 해를 등지고 있어 햇빛이 직선으로 표현되었다.
ⓒ 신병철
산상보훈도

 

예수과 함께 압제자들의 압박도 강화되었다. 탄압과 당당히 맞서기 위해 공개 대중집회를 열었다. ‘산상의 보훈’ 장면이 뒤따른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한 사람이 외쳤다. 저 폭력을 가진 군인들이 쫓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런 설교를 한 장면이 없을 수 없다.

 

카파도키아의 동굴교회인 사과교회·바클교회·암굴교회 모두 산상보훈 그림이 있으나, 역시 암굴교회 그림이 가장 선명하고 짜임새도 있다. 내용은 모두 비슷하나 암굴교회 말고는 훼손이 심한 편이다. 산 위에 올라가 해를 등지고 설교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예수 몸에서 나는 광채는 해를 등지고 있다는 표현인 듯하다.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세례 요한이 양털 옷을 입고 서 있다. 이런 세 사람의 그림은 이후에 전형이 되어갔다. 

 

이렇게 강력하게 대중활동을 벌였으니 탄압이 뒤따르는 법. 예수는 대중선동죄로 구속되고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예수는 죽음을 통하여 자신을 죽인 자들까지 용서를 구하면서 진리와 정의를 외쳤다. 그래서 예수는 모두에게 부활하여 악의 무리까지 포용하며 진리로 세상을 평정했다.

 

부활과 진리로 세상 평정

 

  
▲ 지옥정복도 부활한 예수가 진리의 세상을 완성해가는 모습의 그림이다. 코라성당의 그림은 석관에 죽어 있는 아담과 이브를 구출하는 장면(위)이고 아야소피아성당의 그림은 예수와 성모와 세례자 요한이 활동하고 있는 장면(아래)이다.
ⓒ 신병철
지옥정복도

이것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위 그림은 코라성당에 있는 지옥정복도(Anastasis)이다. 흰 옷을 입은 예수가 석관의 아담과 이브의 손을 동시에 잡아끌고 있다. 상징적으로 죽음과 구원을 나타내고 있다. 사도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 있다. 왼쪽에는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선지자 다비드와 솔로몬과 세례 요한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팡이를 든 아벨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예수 발 아래에는 지옥의 깨진 문과 뭉개진 사탄의 형상이 있다.

 

아래 그림은 이런 형상을 간략화하여 중앙 예수, 왼쪽 마리아, 오른쪽 세례자 요한으로 간략화하였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이 그림은 모자이크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너무나 인자하고 포용적인 모습의 예수와 다소곳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의 마리아가 돋보인다.

 

 

  
▲ 지옥정복도 카파도키아 암굴교회의 그림(위)과 장미계곡 동굴교회 그림(아래)이다. 그림 내용이 시간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 신병철
지옥정복도

이런 그림은 교회 곳곳마다 그려졌다. 위 그림은 카파도키아의 암굴동굴교회의 그림으로 돔을 파고 둥근 천장 중앙에 예수를 좌우에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그렸다. 예수의 발 좌우에 예수에게 뭔가를 봉헌하는 내용이 첨가되었다.

 

아래 그림은 카파도키아 장미계곡에 있는 동굴교회의 그림인데,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예수를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에 천사인지 마귀인지 구분이 안되는 존재들을 그려넣었다. 진리에 의한 예수의 우주 평정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최후의 심판

 

  
▲ 코라성당의 최후의 심판도 최후의 심판 그림은 미켈란젤로 그림과 마찬가지로 3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중간단에서 예수가 구제와 거절을 결정짓고 있다.
ⓒ 신병철
최후의 심판

드디어 최후의 심판 장면으로 넘어간다. 역시 코라성당의 무덤예배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가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그것처럼 크게 3단으로 나뉜다. 아랫단은 열불이 흐르는 지옥이다.

 

중간단에 예수와 성모 세례자 요한 그리고 12사도와 천사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예수의 오른손은 허용, 왼손은 지옥에 대한 거절의 표현을 하고 있다. 윗단에는 파라다이스를 상징하는 달팽이 하나를 천사가 떠받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한번 비교해볼 일이다.

 

성모 마리아도 죽고

 

  
▲ 코라성당의 마리아 사망도 마리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면 어떻게 죽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중앙에 금빛 옷을 입은 예수가 있고 사도들이 둘러싸여 마리아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 신병철
마리아 사망도

예수가 죽은 뒤 성모 마리아는 에게해 연안 에페스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죽은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코라성당에는 마리아의 사망에 대한 모자이크가 있다.

 

성모 마리아는 덮개 없는 관에 편안히 쉬고 있고, 주변에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다. 뒤에 반 타원 안에 항상 마리아에게 안겨 있던 예수가 신생아를 안고 있다. 마리아의 영혼을 상징한단다. 위에는 두 천사가 맴돌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의 주름, 얼굴 표정, 서 있는 자세 등이 상당히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 베드로와 바울 및 성 오누포리우스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성 베드로와 바울의 역할이 컸다. 위 사진 왼쪽이 성 베드로이고 오른쪽이 바울이다. 아래는 카파도키아 지역의 기독교에 큰 역할을 한 오누포리우스, 토마스, 바실리우스 성인이다. 오누포리우스의 모양이 재미있다.
ⓒ 신병철
베드로와 바울

이런 시기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고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도 피터(베드로)와 폴(바울)의 활동과 업적이 가장 돋보였다. 성화들에는 사도들과 교회를 짓고 지키고 활동한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그림은 성 오누포리우스 교회에 있는 세 성인의 그림이다. 성오누포리우스는 하얀 백발에 여자 젖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하체에도 이상한 모양의 그림을 넣었다. 그는 원래 여자였으나 기독교에 헌신한 뒤에 남자 몸이 되어버렸단다. 혹은 절제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표현했다고도 한다.

 

코라박물관의 예수와 성모도가 최고

 

  
▲ 코라 성당의 성모와 예수 성모의 아리따운 모습과 늠름하고 다부지면서도 성스러운 표정, 그리고 포근한 피부색과 그에 대비되는 검은 옷이 대단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화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는 데 손색이 없다.
ⓒ 신병철
성모와 예수

결국 기독교 성화들은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기독교를 쉽게 강인하게 알리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 더 많은 그림이 존재하는 교회를 짓고 돈을 대고 보수하고 지키는 사람들의 그림 또한 만만찮게 많이 그렸다. 이 중에서 가장 빼어난 그림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나는 코라박물관의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림을 꼽고 싶다.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얼굴을 비롯한 중요부분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너무나 순결한 피부와 포근히 감싸는 표정은 아름답다. 성화는 종교의 그림이지만 역사의 그림이기도 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그림이 아직 남아있고 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이런 그림이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인의 관용이 살린 그림

 

우상파괴령이 해제된 843년부터 1453년 오스만의 정복 때까지 수많은 성화가 제작되었다. 우상을 철저히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 오스만의 500년 가까운 지배에도 이런 그림들이 남아 있는 것은 정복자들의 무관심 혹은 관용 때문이었다.

 

정복자 메흐멧2세가 에디르네문으로 들어올 때 바로 옆에 코라성당이 있었으나 그냥 지나쳤다. 코라 성당은 이후 한동안 기독교성당의 역할을 하다가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아야소피아 성당과 마찬가지로 이때에도 성화들을 지우거나 파괴하지 않고 그 위에 회반죽을 발랐다. 20세기 들어 회반죽을 지우고 박물관이 된 것이다.

 

카파도키아 동굴교회들의 그림들도 이스탄불에 있는 성당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우상파괴령(우상숭배금지령) 이후에 주로 그려진 그림들이 투르크족의 침입으로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 11세기 전반에 셀주크의 지배를 이어 13세기에는 오스만의 지배를 받은 이 지역의 기독교 활동은 훨씬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덜 중요한 지역이었던 점과 찾기 어려운 동굴이라는 점이 비밀스럽게 기독교의 종교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20층 가까운 지하 동굴도시가 이런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동굴교회의 그림들이 투르크 무슬림 지배자들에게 발견되었을 경우에도 관용 혹은 무시로 말미암아 그림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영혼의 중심이라 여겨졌던 눈 주위를 지우는 정도에 그쳤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고려시대 불화들을 조선시대 들어와 개작하거나 없애버린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기독교 그림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 터키사람들의 자세가 아름답게 보였다.

2008.02.21 18:13

ⓒ 2008 OhmyNews

 

 

 

[터키의 기독교 성화 탐방 1부]
오래된 보려거든 터로 가라 가장 오래된 들을 보고 싶으면 터에 가야 한다. 카파도아 암굴교회(The dark church)에 있는 '최후의 만찬... [2008.2.20 신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