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Public opinion

空手잠빌 2008. 11. 8. 16:28

젊음이여, 바람이 되어라
(서프라이즈 / 유학생수학도 / 2008-11-08)


대학에 가서 세상을 새롭게 깨닫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혹은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새겨진 상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정통성 없는 권력들이 사람들에게 새겨놓은 강요된 나라 사랑 또는 강제된 충성의 주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애국이라는 단어에서 군사독재 파시즘의 잔재를 연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제가 눈앞에서 본 장면들이 저의 이런 생각들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후, 이 학교 캠퍼스 주변에서는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고, 연출하지 않았던 학생들의 자발적이며 자생적인 축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난 월드컵 때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이것이 축구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국기를 흔들어대며, USA를 외쳐대는 이 미국의 젊은이들은 조금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들의 축제에서 분명히 그들이 말하는 애국을 들었고 느꼈지만, 거기에서 파시즘이 남겨놓은 구김살과 상처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이 선거의 승리를 마치 그들 혁명의 성공처럼 대했고, 그들의 돌아온 조국을 기꺼이 환영하는 듯 보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눈앞에서 본 젊은이들은 마치 전부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소리높여 'Yes, we can'을 외쳤습니다.

 

이들의 이 축제를 바라보며, 물론 저는 초라한 조국의 모습이 떠올라 슬프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꺼이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도록 하는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또 외롭기도 했습니다. 부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겁니다. 많은 분들이 다음과 물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오바마가 없을까.

물론 저에게도 이 질문이 떠올랐지요.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방향이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질문이 틀리면 답도 틀리게 됩니다.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된 후, '헬로 시카고'로 시작되는 오바마의 가슴 떨리는 연설이 시작됩니다. 그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국가라는데 회의를 가진 분이 있다면, 우리 건국 선조의 꿈이 우리 시대에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바로 그 답입니다.

지난 세월 방황하던 미국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가 되어줄 수 있게 만드는, 언제고 다시 되돌아갈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오바마가 언급한 이 건국 선조들의 꿈. 우리에게 없는 것은 오바마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던가요?

 

그가 말하는 이 건국 선조들 중 중요한 인물의 하나인 제임스 매디슨의 삶을 조금 살펴봅니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 그 미국 헌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 중 하나인 연방주의자 교서의 많은 부분을 작성한 사람. 초대 의회의 리더가 되어 자신이 설계한 정치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 최초의 제정헌법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수정헌법의 최초 10개 조항을 입안한 사람. 독립선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오늘날 미국 민주당의 기원이 된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을 만든 사람.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제퍼슨 시기에는 국무부 장관을 맡고, 그 뒤를 이어 제4대 대통령이 된 사람. 오늘날 미국이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준 가장 중요한 설계자 중 한 명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오바마가 언급하는 건국의 선조들일 것입니다. 물론 그들 대다수가 노예소유주였으며, 그 시대의 한계 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남겨준 꿈과 비전이라는 유산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독립선언의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됩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이들이 말하던 'all men'- 모든 남자, 그것도 그들의 시대에는 여러 조건이 붙어 있었을 것이 틀림이 없던 이 단어 하나를, ‘모든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기까지 2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고 그 혁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예소유주들의 위선을 묻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선언 속에 담긴 원대한 비전을 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미국의 역사이며, 이 도도한 흐름 속에 바로 링컨이 있고, 마틴 루터 킹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이제 오바마라는 미국의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원대한 비전을 남겨준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것, 그 나라의 리더라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봅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방황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황을 시작했을 때, 다시 바른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며 누구에게 다시 길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그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을까 물어봅니다. 그것은 이승만의 길입니까? 아니면 그것은 박정희의 길입니까?

 

우리는 오바마가 하늘에서 떨어져 주기를 기대하지 맙시다. 오바마를 보지 말고, 오바마가 자라나는 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바마가 아니라, 저 미국을 그 시작부터 떠받쳐주고 있는 원칙들입니다. 우리에겐 꿈을 가졌던 선조들이 남겨준 기댈 수 있는 원칙이 없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묶어주고, 그 동력을 현실 속의 정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당이 없으며, 지역마다 촘촘하게 잘 짜여진 정치제도를 통해 정치인을 훈련시키고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이런 땅에서 오바마 같은 열매가 알아서 맺혀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독한 불성실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지금 코리아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남과 북을 함께 말하는 단어로 코리아를 쓰는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코리아의 역사에 있어서 어제 오바마가 언급했던 그런 선조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고, 아마도 그 시험의 때는 머지않아 찾아올 것입니다. 이러한 기회는 역사에 있어, 모든 세대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왕조 오백 년에서도 창조적이었던 단 한 세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며, 미국의 건국에 있어서도 가장 창조적이었던 한 세대만이 그 과업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며, 그 길을 다듬고 넓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먼 훗날의 후손들이 언제고 다시 찾을 수 있는 창조적이었던 세대로 기억될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원망스런 조상들이 되어 그저 잊고 싶은 악몽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 코리아는 잠을 자고 있고, 침묵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애국이란 말에서 감추고 싶은 파시즘의 상처가 연상되는 나라가 아니기를 꿈꿔 봅니다. 젊은이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구김살 없는 애국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 역사의 과업을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언급되는 미국인들의 그 선조들처럼, 새 시대를 열었던 창조적인 세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원망하며 저주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을 아끼고 키우며, 젊은이들을 깨워야 합니다. 바람이 없다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도록 합시다. 바람이 없으면, 우리가 바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유학생수학도

 

 

 

 

'오바마'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한국

[김동석의 뉴욕통신] 한국의 생뚱맞은 '오바마 인맥찾기'

2008-11-08 08:37:55 

 

오바마는 지난 3월 오하이오와 텍사스 예비경선에서 힐러리에게 패했다.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었는데도 대패를 했다. 뉴햄프셔에서 패한 후에 슈퍼 화요일에도 ‘박빙승부’가 되면서 경선을 조기에 마무리 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긴급전략회의에서 오바마는 후보인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며 침울한 전략팀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오바마는 과묵하지만 부드럽고, 신중하지만 단호하다. 취재기자들에게 오바마의 캠페인 매니저인 데이비드 플러프는 “오바마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정치인은 기억에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참모들과 직원들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후보라고 입과 입을 통해서 선거판에 흘러 나왔다. 그의 전략회의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은 오바마라고 한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의 의견에 더 주목한다고 한다.

오바마 캠프의 전략회의는 늘 조용하다. 오바마는 고민거리가 있어도 그런 걱정을 다른 사람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그는 쉽게 동요하지 않고 늘 침착을 유지한다고 한다.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 발언의 여파로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수행기자들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어오자 그는 “실제 상황이고,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을 했다. 오히려 오바마는 핵심참모들에게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런 오바마의 담대한 리더십이 입소문이 나면서 오바마의 캠프는 무보수 직원으로 점점 불어났다. 대다수가 당적이 없는 정치권내 고급인력들이었다. 이러한 자원봉사 고급인력들은 전국의 각 주로 배정, 파견되었다. 이것이 오바마의 성품이고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역사책에 올렸다.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고 인류 역사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 지금 미국은 결코 짧지 않을 고통의 터널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지금 어렵다. 이제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니다. 지금 미국이 처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계각층이 함께 고통을 나눌 각오를 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국제사회에 미국의 새로운 리더쉽을 보여주는 일이 또 중요한 일이라 했다. 세 번 이상을 “오늘은, 오늘밤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고 했다. 오바마는 시작과 끝이 '팀웍'이다. 이리저리 꼬이고 설키는 관계엔 질색을 한다.

필자는 2006년 뉴저지 호보콘에서 이뤄진 오바마와의 만남에서(겨우 10여분이었지만) 그야말로 천둥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두 가지 현안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고, 강한 인상을 줬다, 하나는 아시안계의 현실 정치참여, 그리고 아시안계의 투표율에 관해서다. 그는 흑인들의 민권운동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는 “유색인종의 투표권 획득”이란 점을 두 번 강조했다. 간결하고 명확했다.

다른 하나는 '풀뿌리 사회운동'이다. 오바마는 1960년대 흑인들의 민권운동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개인의 능력과 실력으로 주류사회에 혼자서 뛰쳐 나가는 일과, 공동체의 평균적인 발전에 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했다. 그가 공교육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으려면 공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빈민활동 과정에서 그는 "깊은 비애와 사회적 책임을 통감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필자에게 "당신 같은(likely you) 풀뿌리 활동가들이 사회의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 했다.

오바마는 유세에서 “여러분! 우리가 하는 건 선거운동이 아닙니다. 사회운동(Movement)입니다”라면서 “나를 지지하고 후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워싱턴으로 가자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오바마에겐 “함께(Together)”가 아니면 어떠한 소통(Communcation)도 불가능하다. 그는 시민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시카고 커뮤니티 활동에서 아시안계의 지역사회 참여가 미비하다는 그러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필자에게 “참여”라는 것을 언급한 것이 그러한 그의 경험에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만 2년여 동안의 선거운동 기간에 오바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곪아터진 워싱턴의 모순, 로비스트에 오염된 워싱턴 권력”을 명확하고 과감하게 지적하고 비판했다. 그러한 오바마의 용기를 미국사회의 지성인들과 여론주도층이 높게 평가했다. 그의 견해는 캠페인을 위한 전략적 발언이 아니다. 만일에 오바마가 워싱턴 권력과 협력관계를 만들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예비경선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바마는 '승리'라는 목표 이전에 "우리의 초점이 시민들의 요구에 정확하게 맞추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다. 지난 4월16일 펜실베이니아 경선을 앞두고 오바마의 최측근 참모인 데이비드 액슬로드는 펜실베이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에 아시안계 시민활동가들을 초청해서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엑슬로드는 80여명의 아시안계 커뮤니티 활동가들에게 “오바마후보는 이기고 지는 것과 관계없이 여러분들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초청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다. 단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무모한 시도"라는 충고만 잔뜩 들었다.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였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을 위해서 워싱턴을 바꿀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고 한다. 당권을 독식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을 생각해서는 펠로시의 용기도 대단했다.

필자는 지난 1월8일 뉴햄프셔 예비경선장에서 오바마의 정치파트너인 일리노이의 '딕 더빈' 상원의원을 만났다. 필자가 건넨 명함을 보고는 오바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바마는 한인들이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서 "한인들이 풀뿌리 운동으로 워싱턴에서 일본의 거대로비를 이겼다. 정말로 인상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더빈 의원은 오바마의 말을 전해줬다. 60년대에 사라진 풀뿌리 정치 운동에 집착하는 오바마의 의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바마’가 신인이고 예상치 못했는데(선거 한달전부터 세계는 다 예상했음에도)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며 한국은 지금 '오바마 인맥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워싱턴의 어느 분은 "오바마와 가까운 인맥의 절반은 내가 알고 지내고 있다"며 "한국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고 한다. 오바마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어쩌면 모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야말로 정치신인이고 내세울 만한 경력이 전무한 데다가 더구나 흑인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를 미국의 국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대통령으로 만들어 낸 원인과 과정을 한국 정치권력은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살피길 바란다.

지난 2월11일 오바마는 상원외교위원회에서 한미관계에 대해 "한미관계는 미국내 200만 한국계 미국시민과 한국내 10만의 미국시민들이 기본이다"라고 했다. 한인동포들의 '풀뿌리 정치력'이 이룩한 성과이다. 한국은 생뚱맞은 '오바마 인맥 찾기' 대신 미주지역 한인동포의 비중과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다.

◀ 오바마는 워싱턴의 정치권력과 거리를 둔 채 시민운동을 하면서 풀뿌리 사회운동을 통한 정치개혁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사진은 2007년2월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 위키피디아

 


필자

◀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6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선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저작권자 (C) 뷰스앤뉴스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

 

 

 

 

경향신문-김용민

장도리-박순찬

 

 

 

ㅈㅅ

 

 

한국일보-배계규

 

 

ㅈ ㅇ

 

 국민일보-서민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백무현

 

대추씨-조기영

 
 

강원일보-김현철

 

 

영남매일-김경수 

 

대구신문-김영석 

대구일보-권혁준

 

 

경남만평 

대일만평-심민섭

 

노컷뉴스-권범철

매일경제-양만금

 

서울경제

 

FNN-유사랑

 

증시만평-전성규 

 

 

 

 

 

[관련 링크]

 

철학을 공유한 오바마­­와 2MB? 2008-11-05

"개그하지마~이씨~ㅂ, 성질 뻗쳐, 으~ 성질 뻗쳐, 으~ 이씨~ㅂ, 개그하지마"… 두 정상이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오바마 : 나는, 미국을 편견과 차별이 없는 평등한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이명박 :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