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Nest Corner

空手잠빌 2014. 1. 12. 14:16

1월 14일 박종철 열사 27주기를 맞아......

@soloista77  Korea Politics Notes

 

 

1월 14일 박종철 열사 27주기를 맞아, 좌천당한 윤석열 검사, 권은희 수사과장을 생각하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경찰 검찰 공무원이 박근혜 독재와 싸운다?


 

현재는 진행중인 역사이고, 역사는 현재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통성 부재는 516군사 쿠데타와 닮았고, 박근혜 공약사기 사건은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군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거짓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 출마입니다”라고 말해놓고 당선되자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 획책했던 박정희의 거짓말과 닮았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박근혜의 친-자본 정책은 관료주의적 자본통제를 했던 아버지 박정희를 서서히 죽일 것이다. 또한 박근혜의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평행이론이 있지만, 표창원 경찰대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등이 지난 1년간 보여준 ‘대통령 권력에 대한 저항’과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공정성 실천은 이 암울한 ‘대박’의 얼음장 밑으로 온천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7년 1월 14일, 시위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잡아 가두던 전두환 파쇼의 용역깡패였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생)군을 물고문해서 죽인 날이다. 경찰과 검찰의 상징적 이미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와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구속시키고,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사람 피를 말려 죽게 만드는 고문관의 이미지였다.



( 6월 민주화 운동의 촉매제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장례식에서 아버지 박정기 옹의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말씀은 많은 이의 눈물을 적시게 했다)

 

그런데 2012년 12월 대선의 중대선거 범죄 사건를 고발하고 그 진실을 구사한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검사는 기존의 경찰과 검찰의 독재-꼭둑각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윤석열 검사는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중대한 선거범죄자(국정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국감장에서 역설했다. 그런데 그 국감장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윤석열 검사가 상명하복 규율을 위반했다고 역공을 취했다. 그리고 그 이후 윤석열 검사는 1개월 중징계를 받았고, 급기야 어제 검찰 인사에서 대구고검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권은희 수사과장도 사법고시 합격자 출신들은 대부분 무난하게 도달한다는 총경 승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14일 한국의 경찰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시켰다. 그 이후 27년, 한국 경찰과 검찰 공무원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 공히 “상부의 위법한 지시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당신이 광주의 경찰이냐”고 욕을 하던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대한민국의 경찰”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표창원 교수, 권은희 수사과장, 윤석열 검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경찰 검찰 수사독립권과 그 제도의 민주화 길은 멀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해 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권은희 수사과장: 그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댓글 사건을 수사하지 말라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증언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서 진보정당 (심지어 좌파까지도)은 상대적으로 국정원과 국군의 대 시민 온라인 전투 수행의 심각성과 그 위법성에 대해서 둔감하게 대처한 점이.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대선 중대선거범죄 사건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비교해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가올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을 했다. 단순히 “지원하겠다”는 미래 의지 표명으로도 탄핵을 당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국정원과 국군을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이 명백히 대선에 개입했다는 실제 증거들이 있었다. 만약 현재 야당들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면, 박근혜 당선자를 탄핵하거나 당선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다.




(이번 대선 선거 중대 범죄 사건을 알리는데는,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주체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경찰, 검찰, 경찰대학 교수 등 공무원들의 양심적인 업무 수행에서부터 폭발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진은 중도보수임을 표방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많은 비교정치학자들이나 법학자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이 대통령제가 아니라 유럽정당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었다면, 현행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현실과 한국 대통령제도와 국회 제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모든 야당들은 의원직을 내던질 각오로 싸워야 한다. 대선 선거 중대범죄 문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헌정질서 파괴자들을 엄중 처벌하고 나서 그 이후에 '민생 현안'을 놓고 새누리당과 경쟁해야 한다.


 

민주당이나 심지어 진보정당에서도 박근혜가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국정원이나 국군 사이버 사령부 댓글이 대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신은 결과 지상주의가 아니다.


 

또 이런 전략전술가들 이야기도 있다. 대선을 다시 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대선을 해도 새누리당이 이긴다고 한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당선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 대선 선거 중대 범죄자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정원과 국군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적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양심과 정치적 자유를 향해 M 16 총알을 난사했다. 민주주의 기본권인 정치의 자유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1961년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서 시작해서 1993년에서야 종식된 군사독재 하에서 수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그 민주주의 참정권과 자유권리를 지키자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민주당 김한길대표는 ‘대통령 선거 결과 불복’은 아니라고 했다가, 국정원 수사 특검을 2013년 안에 실시하라고 했다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새누리당과 '국정원개혁' 누더기 법안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특검수용하라고 '공갈포'를 쏠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진짜 의도가 뭔지 의심하고 있고, 이번에도 억지춘향처럼 끌려나와 천막 농성 시늉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고 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 우익의 논리 앞에서, 오히려 현행 법대로 수사하다 보니, 국정원 댓글이 선거 중대 범죄였다고 증언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 그는 국정원 진실 증언으로 1개월 정직 중징계를 당하고, 대구 고검으로 좌천 발령되었다.) 


다른 한편 진보정당이라고 자임하는 정의당, 노동당 등은 대선 중대 선거범죄 사건을 ‘절차적 민주주의’나 ‘87년 6월체제’ 틀에 국한시키고, 일부 민주당 지지 촛불 시민들의 정치적 아우성 정도로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2013년 여름까지 수사가 진행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뉴스타파 등 언론보도 정도에서 터져나올 때까지, 국정원 국군의 대 시민 심리전투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 등이 국감장에서 밝힌 증언은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 사령부 등이 2012년 대선에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 헌법 자체를 유린했음을 보여주었다.


 

양심적 시민의 입장에서 13일 김한길 기자회견 하는 날, 민주당 점거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검찰청 경찰성 인사과에 가서 항의 방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정치사에서 검사란, 검찰청이란, 독재 반대, 노동자 해방과 인권을 주장하면 '용공,종북' '빨갱이' '국가보안법' '집시법위반' '손해배상청구'로 시위자들과 노동자들을 구속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각인된 검사나 떡검찰청에서, 윤석열 검사같은 '그냥 법대로' 수사하고 보니, 12월 대선은 중대 선거 범죄가 발생했으니, 국정원 직원들 4명을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7시간을 넘게 증언했다.


 

이런 광경을 지난 40년,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1987년 그 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박종철을 물고문 전기고문했고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하던 날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검찰 검사란, 이렇게 경찰이 고문한 것을 용인하고 명령하던 권력이었지 않은가? 독재의 시녀였던 검사들이 대선선거가 중대범죄이고 선거법위반이라고 전 국민들 앞에 나와서 TV 로 생중계해주고 있지 않은가?




(양심적인 종교인들과 진보정당들이 대선 불법 선거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러한 정권 정통성 논란이 된 것은 유례가 없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건 형식적 민주주의건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노동운동, 좌파정치 성장할 수 없다. 87년 6월 항쟁없이 7월8월 노동자 대투쟁 있을 수 있었겠는가?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없이 민주주의 내용이 심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겠는가? 기계적인 이분법과 도그마화한 선차성 (형식보다 내용, 정치적 민주화보다 경제적 민주화)을 단순도식화하지 말라 !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서도 수많은 희생과 피가 필요하고 한국사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성 문장도 있지 않았는가?



 

박근혜는 특검 수용하지 않는다. 원세훈 김용판 법정 판결 이후에 다시 한번 거짓말과 허언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현재 모든 야당들 대표는 사퇴할 각오로, 모든 현직 국회의원들은 사퇴할 각오가 없다면, 박근혜의 정통성 시비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 독재의 시녀였던 경찰은 23세의 청년 박종철의 민주화 희구와 그 양심을 물 속에 처박아 질식시켜 죽였다. 27년 이후 그 독재 시녀임을 거부하는 경찰 표창원, 권은희, 검찰 윤석열 검사 등은 공무원의 ‘양심’과 ‘자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역사는 단순히 반동으로 복고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서세 50주기를 추념하며 - 박영선 의원

 

 

3대 민족 인권 변호사 가운데 한 분이셨던 가인 김병로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 18살의 젊은 나이로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총을 들고 일제침략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또 일제 강점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위해서 무료변론을 하시는 등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셨습니다.

 
105인 사건, 대동단 사건, 단천 농민 조합 사건, 여운형·안창호 등이 연루된 치안유지법 위반사건, 흥사단 사건, 6·10 만세운동, 간도 참변, 정의부 사건, 대한광복단 사건 등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가인께서 변호한 사건은 무려 백여 건이 넘습니다.


193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변호사자격이 정지되자 선생은 귀향하여 농사를 지으시면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셨습니다.창씨개명도 거부하셨고, 일제의 배급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겨레의 사표로 우뚝 서 계십니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가인 선생의 묘비는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합니다.
 


무릇, 시대의 탁류 안에서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는 거기에 굴종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피하여 숨어사는 사람이요,

 

다음 하나는 그 탁류와 더불어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는 만인 가운데서 하나를 만나기도 어려운 것인데,

 

그 같이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모든 겨레의 흠앙속에서 살다가 애도 속에 가신이가 있었으니 가인 김병로 선생이 그 이시다.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대한민국의 법원조직과 운영의 기틀을 잡았던 가인 선생은, 대통령의 독재에 덮어놓고 따라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단호하고 의연한 자세를 지키며 사법부의 존엄과 권위를 확립하는데 힘쓰셨습니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권의 기반을 굳히기 위해 '발췌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킨 정치파동이 있은 후 가인 선생은 법관들에게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한 것처럼 형식을 갖춰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사법부의 독립은 가인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체계의 확립, 그리고 법관의 사명감 고취에 미친 가인 선생의 공로는 더없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가인선생 서세 50주년을 맞이하여 추모행사를 준비하신 양승태 대법원장님 이하 우리나라의 모든 법관들께서도 부디 가인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혼탁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 법언처럼 항상 정의롭고 공정한 사법부가 되어 달라는 것이 국민의 바람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1.13.
 

국회법제사법위원장 박 영 선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의 정치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학 교수

 

 

“정말 나쁜 일은 대부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착한 사람들이 벌이죠.”

 

 

뉴스를 보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탄식을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건 제 정신이 아냐’, ‘미친 거지’ 하고 혀를 차는 것 또한 흔한 일입니다. 멀리는 딱 20년 전 지존파의 엽기적인 연쇄살인행각이 있었고 작년에도 용인에서 엽기 살인이 있었습니다. 모두 도저히 제정신으로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범행들이었죠. 하지만 과연 제정신이 아니고 미친 사람들이나 끔찍한 일을 하는 것일까요?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상대로 고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나 침대에 꼼짝할 수 없이 누워 얼굴을 천으로 가린 채 물을 얼굴에 부어 숨을 쉴 수 없게 하고 따라서 죽음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물고문(Waterboarding)은 그중 악명 높은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이를 고문이라는 용어 대신 ‘강력한 조사기법’이라고 부르며 합법화 했었죠. 십여 년이 지났지만 고문을 주도했던 미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변호사 존 리죠는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그 조사기법들은 그 당시에도 고문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법무부에서 고문이라고 했다면 중앙정보국이 그런 기법을 이용했을 리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미국 내 다수의 목소리에 반하는 것이죠. 미국 내 인권단체까지 볼 것도 없고 우선 오바마 대통령부터 이러한 기법을 ‘고문’이라고 했고 더군다나 미군이 적군의 고문을 소개하는 문건을 보아도 그 ‘강력한 조사기법’들을 고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중들 또한 대테러전 초기만 하더라도 이를 고문으로 보는데 주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조사가 고문이라는 데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런 논란을 다 떠나서 자신이 그런 조사를 받을 상상을 해보면 누구라도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자연히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차분한 목소리로 고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리죠의 인터뷰는 어찌 보면 참으로 끔찍한 것입니다. 미친 사람도 아니고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조지와싱턴 법대를 나온 수재가 고문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마치 법의 정의를 말하듯 하고 있으니까요.

 

리죠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지도자들의 이러한 확신에 찬 지휘하에서 감금, 고문, 살인, 사체유기 등 끔찍한 범행이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막가파’의 만행은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죠. 이는 자연히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했고 미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추락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고문과 더불어 정치체제를 약화시키는 이중의 심각한 죄를 저지른 셈인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끔찍한 비극은 미치거나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해하기 힘든 상황에 있고 정신질환으로 인해 상해를 가하는 경우에도 그 피해는 대부분 극히 제한적입니다. 

 

나쁜 사람도 나빠서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일 뿐입니다. 정말 나쁜 일은 대부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착한 사람들이 벌이죠. 그리고 그 나쁜 정도가 더한 경우—피해자가 수천수만에 이르는 전쟁과 같은 예—는 비범하고 영특한 나라의 엘리트가 벌이는 경우가 거의 다입니다.

 

둘째는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 해도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문이 한 인간을 파괴하는 끔찍한 공권력의 행사임에도 미국사람들의 많은 수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고문을 지지한 것은 좋은 예입니다. 더욱이 아직도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체제는 오늘 아주 안녕치 못합니다.

 

 

대한민국, 정상적인 민주체제?

 

그런 면에서 1월 6일 하루에 접한 일련의 보도는 한국은 역시 사람 사는 냄새가 정말 진하게 나는 곳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을 선출한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권위주의적 행보를 거듭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간신히 마련한 기자회견에서도 “불법으로 막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런 비정상적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걸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건 저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소통인지 호통인지 애매한 말들을 이어갔고 김무성 의원은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 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며 테러와 자유의 정의를 재정립했습니다.

 

그날 한 보수단체 회원이 권총과 실탄을 허리춤에 버젓이 차고 한 반정부 시위대를 위협하는 사진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민주체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들이었죠. 실망과 개탄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날의 뉴스는 하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의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이기에 더욱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즉 정신이 나간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죠. 

 

모두들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는 확신이 있기에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해도, 불법선거를 방치해도, 공존을 거부해도, 역사를 왜곡해도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있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애써 쌓아온 소통, 공정한 선거, 공존, 민족의 역사, 즉 한마디로 민주체제의 초석을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주체제와 그 전통이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그에 하루 더 가까워진 것이죠. 대한민국의 민주체제는 오늘 아주 안녕치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