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Culture, History

空手잠빌 2005. 10. 3. 10:08

 

[청계천 새물맞이 D -3] 박경리씨 특별 기고

생명의 물길 되어 다시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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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토지문화관에서 청계천 복원에 관한 세미나가 두 번 있었는데 참가자 중에 청계천 복원을 확신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지 싶다. 10년 후에나 혹은 20년 후에나 가능할지, 막연한 희망뿐이었다.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세미나를 주도한 연세대의 노수홍 교수를 위시하여 청계천살리기회의 회원들은 그 열정이 순수하고 미래를 근심하는 충정에 충만해 있었음에도 국토관리 문제에는 마이동풍인 정치적 현실 앞에 무원고립, 달밤에 도깨비와 씨름하는 꼴이었으며 오늘날 희소가치조차 사라져버린 소위 그 이상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느 날 별안간 사태는 돌변했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하면서 이명박씨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역사가 바뀌었다는 말을 실감케 한 사건이었다.

어쨌거나 청계천은 지금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내었고 우리는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고 보면 시비는 있게 마련, 청계천의 경우에도 갈등과 시비는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말의 하나, 청계천은 서울에 있는데 지방에서 웬 참견이냐, 지역이기주의적 발언이지만 그 오류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청계천은 대한민국 국토에 있는 하천이며 나아가 세계의, 아니 지구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핏줄 한 가닥의 소생은 도화선이 될 수도 있고 깃발이 될 수도 있다. 전국에 복개된 하천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청계천에 고기가 노닐고 새들이 찾아오는 기적 같은 사실에 국민들 인식이 달라졌으며 남의 나라에서도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그간의 소식도 들었다. 환경문제, 생태계에 관한 일만은 지역적 이기주의는 물론 국가나 민족성도 초월한 모든 생명의 공동과제인 것을 절대로 부인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강의 복원이 땅과 바다, 멸종 위기의 동식물, 혼탁한 공기와 찢어진 오존층의 복원으로 이어질 것을 진실로 우리는 염원해야 하는 것이다.

밤이 되면 청계천 다리들은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또 다른 멋을 뽐낸다. 박종근 기자
청계천 복원은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이 시장의 뱃심이 아니었던들 실현이 어려웠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며 사람들의 평가다. 그러나 그것은 꿈의 절반이 이루어졌을 뿐 유감스럽게도 절반은 흉물로 남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와 문명의 충돌이라 할 수 있겠는데 문화가 창조적인 것이라면 문명은 기술 분야로서 문화의 지시를 받는 것이 순리이거늘 문명이 문화를 깔아뭉개고 독주하면 생명은 메말라 버리고 세상은 사막이 될 것이며 미래에 대한 이 같은 예감은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니다. 되살려놓은 청계천의 경우, 졸속이 빚은 결과라고들 하지만 문명의 구조물로 포위돼 있는 것이 더 심각하다. 강가에 조경은 필요 없다는 말을 전에도 했지만, 세월을 두고 주변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생명의 자리를 넓혀나가야 할 것이며 소홀했던 역사의 복원도 지속돼야 한다. 고유의 문화를 잃는다는 것은 민족성을 잃는 것과도 같다. 세계는 각기 독특한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구성돼 있고 균형을 잡고 있는데 독창성을 상실한 민족은 결국 지구에서 죽은 세포가 되고 말 것이다.

나라의 도움이라곤 터럭만큼도 받은 바 없는 한말의 저 만주땅 연해주를 헤매던 우리 유민들이 양식을 털어서 독립군의 뒷바라지를 했던 희생정신이 생각나는데 청계천 공사에도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으며 특히 영세한 노점상의 협조가 마음에 남는다. 시에서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지만 마지막 삶의 터전에서 물러날 때 그분들 심회가 어떠했을까. 항상 그와 같은 민초들에 의해 이 나라가 떠받쳐져 온 것을 우리도 가끔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청계천 주변에 자리한 어느 정도 넉넉한 분들께 희생과 양보를 당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개인의 이득만 챙긴다면 살아서 돌아온 청계천에 미안할 것도 같고, 그분들이 청계천을 신앙하고 보시하는 마음이 된다면, 연인같이 자식같이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떠날 때는 빈손인 것을. 망국적인 놀이터가 아니게 평화스러운 쉼터가 되게 그분들께서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계천의 무궁함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