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미래 이야기/훈훈한 이야기

경기북부보훈이 2013. 1. 16. 09:34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애국지사 중에서도 이 날 작고하신 분들이 계신데요. 낭산 김준연 선생도 그 중 한 분 입니다.

 


<낭산 김준연>

 

김준연은 1895년 3월 14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908년 13세에 영암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10년 2월에는  한성고등보통학교(경술국치 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변경. 경기중학교·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고, 재학 중 일본의 도쿄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결심합니다.

 

1914년 졸업한 김준연은 유학 후,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교장은 유학하여 공부하는 동안 질서가 잡히면 지금 같지 않아 일이 별로 없을 거라며 판임문관 견습시험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김준연은 결심한 대로 일본 유학을 단행하고, 법학을 전공 후 다시 독일로 유학하여 정치와 법률학을 연구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 기자가 됩니다.

 

1927년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의 창설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퇴사당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이 되었으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당합니다. 1934년 석방 후에는 동아일보 주필로 일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에 관여하였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사임하고, 김성수의 배려로 경기도 전곡에서 해동농장을 관리합니다.

 

이후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흥업구락부사건, 조선어학회사건 등을 주동하여 국내에서는 항일투쟁을 벌이면서 8년의 투옥 생활과 9년 동안의 연금생활을 겪고,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광복을 맞이합니다.


 

 

<제4대 국회의원 총선거 무렵, 왼쪽 맨끝이 김준연>

 

광복 후에는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정부수립에 참여하고, 반민특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합니다. 6·25전쟁 때는 법무부 장관으로 조병옥 내무장관과 함께 빈약한 장비로 무장한 경찰 병력과 함께 대구 사수에 임하고, 1·4후퇴 때는 안전한 철수를 위한 계획을 입안하기도 하였습니다.

 

1960년 3·15부정선거 후에는 이기붕 부통령 후보에게 사퇴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5·16군사정변 후에는 군사정권과 군정 연장을 비판하며 독재에 반대하고 야당으로 정치활동을 하다가 1971년에 별세하였습니다.

 

김준연 선생은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8년 낭산 기념사업회가 구성된 뒤, 2009년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고향인 전남 영암에 낭산 김준연 기념관이 건립되었는데요, 영암을 찾을 있이 있다면 이곳도 관람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낭산 김준연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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