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주제별 탐색/이미지와 상징

지 담 2008. 1. 17. 18:34
사전-한국문화상징 | 자유게시판
전체공개 2006.03.07 12:21

 강 ----------------------------------------------------------------------

 

circle09_red.gif어원 : '강'은 한자 '江'의 음으로, 현대국어에서는 '证鿑'의 대체어로 쓰이고 있다. 본래 '江'은'水'와 '工'이 합쳐져 된 형성 문자로서, 보통 명사가 아니라 '장강(長江)', 곧 양쯔강(揚自江)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였다. 양쯔강이 흐르며 내는 물소리, 곧 '꿍꿍'('工'의 고음)을 본떠 만든 의성어가 '江'인데, 후에 일반적인 강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었다. 15세기 표기로 '证鿑, 证鿉'의 두 형태가 있다. 어근은 '诉'로서, '걸, 거랑'의 '걸'과 어원이 같다고 하겠다. 갈매기의 '갈'도 물의 뜻을 지니는데, 매는 매로되'물매'의 뜻이라고 하겠다. 몽골어 고올, 만주어 골오, 튀르크어 골 등은 모두 같은 어원이라고 하겠다. 시베리아에 있는 호수인 바이칼의 '칼'도 고어는 '갈(gal)'이다. 개[川]는 '갈>갈이>가이>개'의 변천인데, 냇갈의 '갈'이 바로 '诉'과 어원이 같다.

circle09_red.gif신화 : [모태, 경계선]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강의 신 하백(河伯)의 딸이다. 하느님(天제)의 아들 해모수가 그녀를 유혹하여 웅신산 아래 압록변에서 사통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주몽이다. 이 모티프는 천신과 수신의 결합에서 오는 치자의 지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유화는 고구려의 수호신으로서 신묘에서 받들어지고 태후의 예로써 섬겼다.그러므로 강은 건국의 신성한 모태를 상징하고 있다. 또 강은 희망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 즉 낙토의 길목이다 추병에 쫓긴 주몽은 어별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서천 서역국에서 생명수를 얻었다. 여기서의 강은 두 세계의 경계선으로 존재하고 있다.

circle09_red.gif무속·민속 : [수신의 거처] 강은 우물, 못, 바다 등과 아울러 수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인식도어, 고대국가에서는 강에 제사를 지내기에 이르렀다. 강은 하나의 성역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는 3월 3일이면 낙랑의 언덕에 모여 돼지오 사슴을 잡아 산천에 제사 지냈고, 신라에서도 삼산 오악 과 명산 대천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대, 중, 소로 구분하였다. 이것은 고려에도 전승되어 '팔관은 하늘과 명산대천, 동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옛날(신라) 제도에 의거하여 산천에 지내는 제사에 등급을 두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결과, 사천단이나 사천 성황 등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산천의 신에게 바쳐지는 제사는 국가의 관리하에 엄격한 규제를 하였고, 대궐 안에 산천단을 두고 왕이 제사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강은 신의 거처로서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circle09_red.gif풍습 : [경계선] 공간적으로 강은 이 쪽과 저 쪽을 구분짓는 경계선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의 의식에서는 가시적 시공적거리의 강을 흔히 형상화하고 있다. '강 건너 불 구경'이나 '강 건너 호랑이'라는 말은 강의 가시적 거리만큼 나와는 상관없다는 무관심을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강은 건너가 봐야 안다."는 말은 외양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고, "강물은 위로 흐르지 않는다."는 말은 순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장강의 물결에 비유하기도 하고, 강물의 쉼 없는 행위에서 끊임없는 재생과 활력을 추출해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필요한 근심이나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사람을 두고 '강에 뚜껑할 놈'이라고 하고, 대세를 모르고 분별 없이 방책을 세우는 사람은 '강물을 손바닥으로 막는 자'라고 비꼬기도 하였다.

[길조, 풍요] 선인들은 꿈에 강을 보면 길조로 쳤다. 즉, 꿈에 강과 모래를 보면 문장이 더하고, 강과 바다의 물이 넘치면 크게 좋으며, 강물이 집 안으로 밀려들면 대길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농경 사회에서 강물의 수급이 곧 농사의 풍흉과 직결되는 문제 였으므로, 풍부한 물이 주는 풍요와 꿈의 예시 기능이 더해져 생긴 해몽이다. 강이 지닌 포용력과 풍요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circle09_red.gif종교 : [육교: 조화] 유교적 관념에 젖은 사대부들에게 있어 강은 인생의 섭리와 자연스럽고 유연한 순리의 관념을 도출해 내게 하였다. 그래서 강은 유교적 이념의 질서 아래 선비다운 기품이나 유유자적한 관조, 그리고 청아한 지조 등으로 이상화되어, 안정을 표현하는 정서로 나타난다.

조선 시대 맹사성은 '강호사시가'를 통해, 강을 무리가 없는 자연과 삶의 완전한 조화로 파악하고 있다.

강호에 여름이 드니, 초당에 일이 없다/유신한 강파는 보내느니 바람이라./이몸이 서늘하옴도 역군은 이샷다.

이것은 '강호사시가' 중의 여름 부분이다. 초당에서 일없이 지내며 강의 서늘한 바람을 맞는데, 오직 '유신한 강파'만이 친근한 벗이다. 일호의 근심도 없는 경지이며, 또 임금의 은혜도 생각게 한다. 마음과 자연, 생활과 정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만족하기만 한 사대부의 유교적 이념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불교: 부처] 강의 상징적 의미가 불교적 관점에서 가장 잘 녹아 있는 것은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천강'이란, 부처가 백억 세계에 화신하여 중생에게 교화를 베푸는 것이다. 마치 달이 즈믄 강에 비친것과 같다는 뜻이다. 달은 하나이나 강에 비친 모습은 수없다는 것은, 부처오 중생에게도 해당되는 비유이다. 부처가 백억 세계에 현신한다고 했지만, 중생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현신하는 것은 아니다. 중생은 각자 자기의 인연과 소견을 벗어날 수 없지만, 완전한 것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거울처럼 부처의 상징인 달을 받아들인다. '월인천강지곡'은 초월적 원리와 일상적 현실, 숭고한 이상과 비근한 경험의 대립을 통하여 이원적이며 역동적인 상징구조를 가지게 된다.

[깨달음] 태능의 다음 한시는 강의 깨달음에 비유하였다.

대지며 산이나 강이 바로 내 집인데./어디에서 다시 고향집을 찾는가./산을 보다가 길잃은 미친 나그네,/종일토록 가도가도 집에는 못가네 <무제>

여기서의 대지, 산, 강, 집은 깨달음을 상징한 표현이다. 즉, 집은 머무를 곳이며, 나그네로서의 방황을 끝낼 수 있는 종착지로서, 찾아야 할 깨달음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서나 머무르고자 하고, 방황을 끝내고자 하며, 딴 곳에서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므로, 스스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교: 은일자의 거처] 조선 시대에는 직접적으로 도교를 표방한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렇지만 허정자수하고 비약자시하며 무위자연을 추구한 이들은 적지않다. 이들의 시가에는 시정의 세속보다 강호를 즐기고, 자연을 완상, 구가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강은 은일자의 거처로 상징되어 나타난다.

평생에 일이 없어 산수 간에 노니다가/강호의 임자되니, 세상일 다 잊어라,/어쩌다 강산 풍월이 그 벗인가 하노라. <낭원군>

영욕이 병행하니, 부귀도 불관터라./제일 강산에 나 혼자 임자되어/석양에 낚싯대 둘러메고 오명가명 하리라. <김천택>

초월적 은일자는 자연을 벗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일러 강호지락이라 하였다. 그들은 강산 풍월과 벗이 되어 낚싯대 둘러메고 오가면서 지내는 곳을 무릉도원으로 여겼다.

circle09_red.gif동양문화 : [중국: 수신] 중국의 신화에서는 강의 신을 하백이라 부른다. 그의 본래 이름은 빙이 또는 풍이이다. 그가 수신이 된 것은, 강을 건너다 빠져 죽어서 되었다고도 하고, 선약을 먹고 물을 만나 신선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의 용모는 흰얼굴의 훤칠한 미남으로 , 북해에 사는 능어처럼 하반신이 물고기의 모양이며, 늘 용이 끄는 연꽃 수거를 타고 미녀와 함께 구하를 유람한다. 그는 남의 약점을 잘 이용하며, 약한 자에게는 강하나 강한 자에게는 약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매년 큰 강에서 지낸 고대 중국의 하백제는 미녀를 제물로 바쳐 그런 강의 변덕을 달래려고 한 것이었다. 이는 번람하는 강, 홍수의 횡포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인다.

[순리, 국가] 중국인의 의식에는 순리를 따르는 것과 근본을 존중하는 성격이 강하게 도출되어 나타난다. 순리를 어기는 자는 천명을 거스르는 자이므로 반드시 망하며, 항상 그 전조가 예시된다. 중국의 '국어'에 실린 다음의 글은 강이 그 순리와 근원의 사징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주나라 유와 3년에 세 강(낙하, 황하, 휘하)이 다 진동하였는데, 백양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나라는 장차 멸망할 것이다. 천지는 차례를 잃지 않는데, 만약 그 차례를 지나친다면 백성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난다. 양은 엎드려 나오지 못하고, 음은 숨어서 그 기능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진이 생긴다. 이제 세 강이 실지로 진동하였으니, 이것은 양이 제자리를 잃고 음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양이 제자리를 잃고 음에 있으면, 강물의 근원이 막힌다. 수토가 뻗어나면 백성들이 활용하게 되는데, 수토가 뻗어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재용이 결핍되어 망한다. 옛날에 이락의 물이 마르자 하나라가 망하였고, 황하의 물이 마르자 상나라가 망하였다. 지금 주나라의 덕이 하·상 2대의 말년과 같으므로, 위하의 근원이 또 막혔다. 막히며 반드시 말라 버린다. 본시 나라는 사천에 의지해야 하는데, 산이 무너지고 강이 마르는 현상은 멸망의 징조이다. 강이 마르면, 반드시 산이무너진다. 나라 망하는 것이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의 한계이다. 하늘이 버린 것은 그 한계를 넘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금년에 세 강이 마르고 기산이 무너지며, 11년 후에는 유왕이 멸망하고, 주나라는 동쪽으로 옮아가게 될 것이다."

중국 북부의 3대 강인 낙하, 황하, 위하는 각각 중국 고대 국가인 하, 상, 주 3대를 상징한다. 특히 이 강물이 붉게 변하면 흉조로 여겼다.

[은일처] 강은 냇물이 모여 형성된 큰물이라는 뜻에서 발전하여 '함께 하다'의 뜻을 지닌다. 또, 강은 호와 연결되어 '조정'의 대립 개념이 되기도 한다. 즉,'강호'는 선비가 벼슬이나 세속적인 가치를 버리고 숨어사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다. 범중엄의 '악양루기'에는 "조정의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는 백성을 근심하고, 강호에 처해 있을 때에는 임금을 걱정한다."는 글이 있다.

강은 그 줄기가 사방으로 통하므로, 외부 세계와 통하는 곳, 또는 나그네가 배를 타고 떠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물줄기가 길기 때문에, 끊임없는 상념이나 풍요로움에 비유되기도 한다.

circle09_red.gif역사·문학 : [차안과 피안의 경계] 고대 문헌에 나타나는 강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또는 피난처의 매개 등으로 표상되어 신비와 영험의 대상으로 숭앙되었다.

삼국사기의 온달 이야기는, 강은 중심으로 한 영토 회복에 나선 온달이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강을 건너는 도중에 장렬한 죽음을 맞는다. 이 강은 설화적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또, 도미 이야기에, 포악한 백제왕의 횡포로 두 눈이 뽑힌 채 추방당하는 도미나, 그와 함께 백제를 탈출하는 그의 아내는 강을 매개로 하여 운명이 전환되었다.

이와 같이 강은 장애물과 뚫림의 경계, 즉 차안과 피안의 경계로 표상되어 나타난다.

[산의 대응물, 자연] 문학에 나타나는 강은 그 자체가 지니는 다양한 속성으로 인하여 상징성 또한 복잡하게 나타난다. 고전시가에서는 강을 흔히 감상이나 관조의 대상물로서 강조하고 있다. 금수강산, 면산대천이라는 표현처럼, 자연을 묘사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산과 대응되는 자연물로 표상된다.

circle05_red.gif강 건너 뭇 봉우리 칼처럼 뾰족하고,/봉앞의 강물은 쪽 푼 듯 푸르구나. <박원형, 차성천루선서>

이러한 이미지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일관하여 많은 작품 속에서 자연자체를 상징하거나 은둔의 장소로 시화되어 나타난다.

circle05_red.gif강변 고을에 돌아가 물가의 마름이나 읊으려 하나,/아직도 서울에 머물러 머리만 희어지네. <이규보>

circle05_red.gif강호에 놀자 하니 성주를 버리겠고/성주를 섬기자 하니 소락에 어기어라./혼자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 <권호문>

[투명성, 거울] 강물의 맑음과 투명성으로 인해 강은 흔히 거울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circle05_red.gif한 줄기 긴 강은 맑아 바고 거울인데,/두줄 수양비들은 멀리 완연 연기로고 <김연, 대동강>

circle05_red.gif풀 우거진 나루터에 손의 길이 나누어지고,/수양버들 푸른 뚝 가에 농가가 있네./거울에 바람 자니 연기 눈썹 비끼었고. <우탁, 영호루>

현대인의 의식에 있어서 강은 관념화되고 내면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명징성은 사라지고, 때로는 더럽고 혼탁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때의 강은 도시의 오염 및 삶의 절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상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circle05_red.gif신이란 이름으로써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박인환, 검은 강>

circle05_red.gif하늘에는 못 별들이 졸리운 듯 깜박거리고 청계천의 흐리터분한 물줄기는 무더운 여름날의 한숨처럼 따분한 호흡을 하면서 그냥 흘러만 가고 있다. <김광주, 청계천변>

[세월, 역사의 증인] 강은 흐른다는 또 하나의 속성 때문에, 세월이나 덧없는 인생과 결부되기도 한다. 역류하지 않는 강의 일방적인 흐름은 굳건한 인간 의지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강은 현대사를 거치면서 역사의 증인이 된다.

circle05_red.gif강은 설명이 없는 이야기/고적한 사람들의 신변을 살피듯 훑어 가는 순서//……//강은 해설리 없는 인행. <김상희, 강>

circle05_red.gif어느 강이나 숱한 전설과 사연을 킨 채 세월처럼 말없이 흐른다. 천 년을 한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하는 것은 오로지 강물뿐이다. <유주현, 임진강>

circle05_red.gif팔월의 강이 손뼉친다./팔월의 강이 몸부림친다./……/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 등을 기억한다. <박두진, 8월의 강>

[두 공간의 분리 또는 매개물] 강은 이 쪽과 저쪽을 분리시키는 특징과 동시에 두 공간을 연결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강이 지닌 격려성과 연결성 때문에, 성격이 다른 공간 사이에 있으면서 두 공간을 이어 주는 상징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circle05_red.gif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니 뭐락카노./바람에 불려서//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박목월, 이별가>

강의 이 쪽은 이승을, 저 쪽은 저승의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승 세계인 이 쪽에 있지만 자꾸만 저 쪽에서 들려 오는 죽음의 소리를 듣는다.

circle05_red.gif장갑을 벗으며/강 건너 돌을 생각한다./해질 무렵에 돌아와 눅눅한 장갑을 벗으며/왜랄 것도 없이/강 건너/저 편 기슭의/돌을 생각한다. <박목월, 강건너 돌>

역시 시적 화자는 강 이쪽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항상 자신의 실존적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인은 삶과 죽음, 일상과 실존이라는 상반되는 두 세계를 상정하고, 이 두 관념적인 공간을 강을 이용해 격리시키면서 내면적으로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circle09_red.gif현대·서양 : [신의 은총]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강은 하늘의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강은 신의 은총에 의해 세상의 축을 따라 수직으로 흘러내린 다음, 다시 수평의 네 갈래로 퍼져 세상끝까지 나아간다. 이 네 갈래의 강들은 각각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할리스, 이락세스라 불리며, 풍요로움, 활력, 지혜를 가져다 준다.

그리스인도 강을 경배의 대상으로, 대양의 아들이나 요정의 아버지로 여기며 신성시하였다. 그래서 강에 살아 있는 말이나 소를 공물로 뛰워 보냈다. 이렇게 신성스런 강을 건너려면 정화와 기도의 의식을 치러야 했다. 기원전 8세기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의 두 눈을 저 거대한 흐름에 불박은 채 기도의 말씀을 올리기 전에는, 그 감미롭고 맑은 물결에 그대의 손을 적시기 전에는, 영원히 그 흐름을 이어갈 저 강물을 건너지 말지어다. 그대의 손에 물든 악을 씻기 전에 강을 건너는 자는 신의 노여움을 받으리니, 신이 이어서 내리는 무서운 징벌들을 피할 수 없으리라.

[공포, 형벌] 신성성이 부여된 강은 은총과 함께 공포라는 속성도 부여받는다. 지옥의 강들인 아케론, 코시투스, 레테, 피리페게톤, 스틱스 강은 각각 고통, 비탄, 망각, 분노, 증오를 상징하는 강들로, 죄를 지은 자에게 가해지는 신의 형벌을 상징한다.

[정화, 재생] 지옥의 강들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 제의적의미를 띤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Tethys)는 그녀의 아들을 불사적존재로 만들기 위해 스틱상에 담갔다. 이것은 강물에 몸을 씻음으로써 이전의 모습을 포기하고 새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인간적 욕망의 흐름] "사랑은 가물처럼 흘러가 버렸다."라고 '미라보 다리'를 통해 아폴리네르는 노래했고, 플라톤은 '크라틸'에서"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읊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덧없이 흘러가고 변하는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 의도 등을 강물에 비유한 것이다.

[부정] 여성적인 이미지와 연결되어 남성적인 의지를 꺼꺼는 부정한 유혹의 이미지는 하이네(Heine, H.)의 노래집 '로렐라이', 괴테(Goethe, J. W.)의 발라드 중의 '시페르,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증의 '라인강의 여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영웅을 유혹하여 파탄에 빠뜨리는 강의 요정들로서, 여인의 부정이 강물과 연결되어 있다.

circle09_red.gif도상 : [유유 자적한 생활] 조선 시대 회화중에는 강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강줄기가 육지와 잇닿는 부분이나 그 부근의강변 풍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또, 강 위에 조각배를 뛰워 놓고 낚시에 여념이 없는 인물의 묘사, 강기슭에 배를 대 놓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을 지내는 모습 등은,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무위한 시간을 보내는 선비의 유유자적한 자태이다.

그 중에서 조선 시대 화원 심사정의 '강상야박도'와 양팽손의 '산수도'등이 대표적이다.

 

 개구리 ------------------------------------------------------------------

 

어원 : 개구리는 맹꽁이, 매미, 뻐꾸기 같이 의성어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말이다. 즉 ,개구리의 울음소리 가 '개굴개굴' 하기 때문에 '개굴'에 명사형 접미사'-이'를 더하여 '개굴이'로 된 단어이다. 그 후 ,한글 맞춤법에서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개굴이'를 '개구리'로 표준삼아 적고 있다.

circle09_red.gif신화 : [신성, 생산] 개구리는 왕권과 관련하여 신성을 상징할 때가 있다.

부여 신화에서 늙도록 후사가 없어 근심하던 부여 왕 해부루는 산천에 치성하여 자식 태어나기를 빌었다. 타고 가던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바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그 바위를 들쳤다. 바위 밑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를 얻었는데, 이가 해부루의 뒤를 이은 부여 금와왕이다.

왕건의 후계자를 금빛 개구리로 상징화한 것은, 개구리 자체의 다산의 생산성과 금빛의 신성성과의 결합을 통해 신성 왕권의 홍성을 기원함에 있다고 추정된다.

[산파] 신이롭게 출생한 금와왕은 추방당한 물의 여신 유화를 도와 궁에 있게 함으로써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을 낳게 하였다. 이것을 물의 생명력(유화의 잉태)과 개구리의 보호(금와왕의 행동)에 의해 탄생한 영웅(주몽)신화로 본다면, 금와왕의 행위는 산파의 기능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circle09_red.gif무속·민속 : [수신의 사자, 보은] 경북 경주 지방의 쾌릉에 얽혀 전해지는 설화에 개구리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가 있다. 즉, 처녀가 연못에 빨래하러 갔다가 개구리와 교접하여 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헤엄을 잘쳐, 한 스님이 연못 속에 있는 미륵불의 오른쪽 귀에 무엇인가를 걸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기의 아버지인 개구리의 시신을 그 곳에 걺으로써 뒷날에 잘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하나의 이류 교구담일지 모르나, 금와왕의 이야기와 일맥 상통한다. 이 설화에서 개구리가 연못에서 나왔고, 또 그 아들이 헤엄을 잘 쳤으므로 뒷날에 부귀 영화를 누렸음을 볼 때, 개구리는 수역을 지키는 신의 사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개구리가 은헤를 갚을 줄 아는 선량한 동물로 인식된 설화도 많이 있다.

[부정적 존재] 개구리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착한 동물인 한편, 인간에게 해가 되는 부정적 존재로 나타날 때도 있다.

개구리 울음소리로 인해 주민들이 잠을 못 자게 되자, 벼슬아치가 부적을 연못에 넣어 개구리 소리를 그치게 했다. 이러한 해주 지방의 '부용당 전설'의 개구리나 '강감찬 설화'의 경주와 남원성의 개구리는 시끄럽기만 하고 이로울 것이 없는, 부정적 개구리의 예로 민간에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처럼, 개구리는 인간 삶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친근감과, 땅과 물에서 이중 생활을 하는 신기한 존재로 설화나 민담에서 자리하고 있다.

circle09_red.gif풍습 : [예언적 기능] 고구려 유리왕 29년 여름에 모천 가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떼를 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일패도지 하였다. 이것을 보고 논의하는 사람들이 "검은 것은 북방의 빛깔이므로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한 것은 북부여가 멸망할 징조이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개구리의 예언적 기능을 표상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든지 "개구리가 처마 밑으로 들어오면 장마진다."고 하는 것 등은 개구리가 비를 예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몰지각한 사람] 과거에 빈천했던 사람이 지난날의 일은잊고 잘난 체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나서는 서툴렀던 때의 생각은 하지 않고 큰소리치는 사람을 가리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정신이 몹시 없는 사람을 '개구리 정신'이라고 하며, "개구리 중에도 수채 개구리다"는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 라는 뜻이다.

circle09_red.gif종교 : [유교: 불효자] 청개구리 형제는 어미가 무얼 시키면 언제나 엇나가 반대로 행했다. 그 어미가 죽을 때, 자신은 산에 묻히고 싶었다. 자식놈이 어미 말을 반대로 행해 냇가에 묻을 것 같아, 짐짓 냇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 어미가 죽자, 지난 일이 뉘우쳐져, 청개구리는 마지막 유언이나마 지킬 생각으로 어미 산소를 냇가에 썼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어미 산소가 떠낼려갈까보아 청개구리는 울게 되었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불순 부모하는 자를 풍자한 것으로, 불효자의 전형이다.

[도교: 불로 장생] 음력 2월 경칩에 개구리나 두꺼비의 알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탈피와 갱생을 되풀이하는 동물의 알을 먹음으로써 불로 장생을 누릴 수 있다는 원시 신앙의 잔존 형태로 보인다.

circle09_red.gif동양 문화 : [중국: 가우] 고대 중국에서는 개구리를 북에 그려 비를 부르는 의식에 사용하였다. 북을 두드릴 때에 울리는 소리는 천둥고 개구리를 자극하게 된다는, 즉 불을 두드리는 행위는 개구리를 울게 하고, 또 북소리는 천둥 같으므로 비가 오는 것을 유도한다는 주술적 의미가 깃들여 있다. 천둥은 비를 몰고 오고, 비가 올 때에 개구리가 우는 현상에서, 고대 중국인들은 개구리가 물과 음에 관련된 동물로 인식하고 이러한 의식을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식견의 좁음] 중국에 '정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하나밖에 모르는, 소견이나 신견이 좁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 추수편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는 참으로 즐겁다. 우물 시렁 위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우물 안에 들어가 부서진 벽돌 사장자리에서 쉬기도 한다. 또, 물에 들면 겨드랑이와 턱으로 물에 떠 있기도 하고, 발로 진흙을 차면 발등까지 흙에 묻힌다.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야 어찌 내 팔자에 겨누기나 하겠는가 ? 또, 나는 한 웅덩이의 물을 온통 혼자 차지해 마음대로 노니는 즐거움이 지극하거늘, 동해에 사는 자라 자네는 왜 가끔 와서 보지 않는가?"

장자에서는 단순히 정와라고만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종지와로 쓰이고 있다.

[시끄러움]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부정적 의미로 비유된다. 고염무는 괜히 성을 내거나 투덜거리는 것을 '우와지노', 즉 비 오는 날 개구리가 성내는 소리 같다고 했고, 소식은 서로 헐뜯기만 하는 의논을 개구리와 매미 소리에 비유하여 '와명선'라고 하였다.

[일본: 불효자] 비만 오면 어미 무덤 때문에 우는 청개구리와 유사한 이야기가 중국과 일본에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주인공이 사람 또는 이리이며, 일본에서는 부엉이거나 우합이다. 여기서 '합'은 조개인데, 조개가 울 까닭이 없으므로'개구리와'의 오기로 보인다.

[용왕, 용왕의 사자] 일본 민담에 개구리나 우렁이를 양자로 삼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유형의 설화는 중국이나 인도에도 있는데, 이들은 용왕의 사자이거나 용왕 자신의 변신으로 보인다.

circle09_red.gif역사·문학 : [분노, 병란, 병사] 신라 선덕 여왕때 겨울, 영묘사의 옥문지에 개구리가 모여 3, 4일간 울었다. 왕은 급히 각간알천, 필탄 등에게 명하여 정병 2000 명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의 여근곡에 가서 적병을 토멸 하도록 하였다. 과연 거기에 백제군 500명이 잠복하고 있다가 이들에게 몰살당하였다. 또, 남산 고개 반석 뒤에 숨었던 백제 장군 우소도 활로 사살하였다.

개구리를 보고 적군의 내침을 알아 군사를 보내 치게 한 까닭을 묻자, 왕은 "개구리는 성난 꼴을 지녔으니, 이것은 병사를 상징하고, 옥문은 여인의 음부요, 여인은 음이므로 그 빛이 희고, 흰빛은 서방에 속하므로 적병이 서쪽에 있음을 알았으며,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필연코 죽는 법이므로 그 곳에서 적군을 잡끼가 쉬울 것을 알았노라."고 하였다.

개구리는 성난 꼴(분노)의 형상을 지닌다고 보고, 이로써 병란, 병사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구속, 시련] '개구리 낭군'의 설화에서, 개구리 낭군은 저주를 받아 개구리의 외양을 하고 있었으나, 어진 아내의 도움으로 마침내 개구리의 껍질을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경우, 개구리는 본색을 감춘 거짓 허울, 또는 그것과 관련 되 구속이나 시련을 상징한다.

[화목한 가정] 동심의 세계에서는 요란한 개구리 소리도 노랫소리로 들린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아들, 손자, 며느리 다모여서/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이동찬, 개구리>

여름 밤 연못에 떠지어 우는 개구리를 화목한 가정의 합창에 비유했다.

circle09_red.gif현대·서양 : [창조와 풍요] 태초의 창조신으로서 풍요를 나타내는 이집트의 헤켓은 '원초의 여신'으로, 개구리이거나 개구리 머리를 한 여신이다. 죽은 곡물이 분해하여 움이 돋아 오르는 상태를 상징하고, 매일 아침 태양의 탄생을 또는 산파의 하나여서, 분만을 돕는 산파역의 여신이기도 하다. 또, 나일 강의 범람 때 미리 나타난 작은 개구리들은 풍요를 알리는 사자로 알려져 있다. 오시리스의 부활 제의에서는 이시스를 도운 여신 헤릿이 개구리의 신화적 속성(기우제와 관련된 달의 동물)을 지녔는가 하면, 개구리는 이시스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들은 풍요의 화신으로 생각되었다. 또, 개구리신들은 한때 '모신'으로 받들어졌는데, 초기 크리스트 교도들은 그들의 상징 체계에 이것을 편입하였다.

[악마의 영, 허영, 거짓] 이집트에서 모세가 행한 둘째 표징으로 나타난 이적의 결과, 개구리는 생명력과 재생의 상징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변하였다. 신약성서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하였다. 여기서 개구리는 이적을 행하는 악마의 영이며, 이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느님을 대적하게 된다. 이 때의 개구리는 불순한 정신, 시끄러운 거짓말과 허영 등을 상징한다.

[어리석은 자] 이솝우화에, 소의 큰 몸집을 부러워한 개구리가 그 흉내를 내가가 배가 터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때의 개구리는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를 상징한다.

[저주받은 인간] 그리스-로마 신화에, 두 아기를 안고 찾아가 물을 청하는 목마른 레토(혼돈의 여신)에게 마을 사람들은 물을 주기는커녕 못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켜 마실 수 없게 하였다. 레토는 저주를 내려, 마을 사람들이 평생 동안 진흙탕 못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개구리가 되게 하였다. 저주로 인해 인간이 개구리로 변신된 모티프는 그림(Grimm)동화의 '개구리 왕자'에서도 나타난다.

개구리는 냉혈동물 중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우며, 진화의 가장 높은 단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개구리가 가지는 물과 육지의 이중 생활의 속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게 했을 것이다. 그 하나가, 저주받은 인간의 상징적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보호자]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신화에서 처가살이를 하는 가난한 사냥꾼을 보호해 주는 것은 초인적 능력을 가진 개구리이다.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사는 동서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게 그를 넘겨 줄 수 없도록 한다. 사냥꾼에게 악운을 가져다 준 몸냄새를 개구리가 없애 주고 기적의 화살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

[재생] 서양에서는, 개구리를 그 자체의 변신 과정 때문에 재생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대 인도의 성전 리그베다에는, 개구리를 대지 모신의 사제로 보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하늘이 대지에 베푼 '풍요로움의 약속'에 대한 감사의 노래로서, 겨울 동안에 메말랐던 대지는 이 개구리의 울음소리안에 메말랐던 대지는 이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로이 깨어난다. 그리고 개구리는 첫 봄비에 의해 풍요로워진 대지의 변신이기도 하다. 멕시코 인디언 중에는 개구리를 인류에게 생명을 주고, 죽은 기운을 없에는 '생명의 여신'으로 여기는 부족이 있다. 그들이 봄에 팔다리와 입에 피가 얼룩진 개구리를 매달아 치장하는 것도 이러한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시조] 이집트 신화의 경우, 이 세상의 시조로 숭배되는 오그도아드는 뱀(여신)이나 개구리(남신)로 그 모습이 형상화된다. 개구리는 태초의 물에서 저절로 생겨난, 아직 유기적 조직을 가지기 전의 모호한 이 세상의 원천적 힘을 상징한다. 그래서 개구리는 바로 여성 생식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불의 발견자] 알타이 타타르 신화에는, 자작나무와 돌이 있는 산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개구리인데, 그 자작나무와 돌에서는 불이 나온다. 개구리는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준 동물로 상징된다.

circle09_red.gif도상 : [다산, 풍요] 개구리의 도상은 삼국 시대부터 나타난다. 즉,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가 장식된 목 긴 항아링에는 뱀에 물린 개구리의 형상이 보이고, 또 토기에 장식으로 붙여졌던 것으로 보이는 토우가 발견되고 있다. 토기 항아리에 개구리를 쫓는 뱀의 모습을 만들어 붙인 것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주술적인 것으로, 이 때의 뱀은 지신을 상징한다.

[평안] 신 사임당의 초충도에서 여러 화초를 중심으로 벌, 나비, 귀뚜라미 등 곤충과 함께 묘사된 개구리느 평안과 풍요를 상징한다.

[상서, 행운] 조선 시대에는 연적등 문방구에 개구리 형상이 즐겨 사용되었고, 회화에도 가끔 보인다. 벼루에 물을 붓는 연적은 선비들의 문방 생활에 긴요한 도구이다.

연적을 개구리 형상으로 만든 것은, 개구리가 물가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부여의 임금 해부루의 아들을 금개구리라 했던 것으로 미루어, 개구리는 상서롭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개미 --------------------------------------------------------------------

 

어원 : 15세기 문헌에는 '가야미'이다. 가야미는 '가아미'로 소급되는데, 가아마의'-아미'는 접미사이다. 접미사'-암'과'-이'가 겹쳤다고 하겠다. 접미사 '-암'이 붙을 때에는 앞말의 말음이 폐음절어가 된다. 즉, '갈암'이 '가암>가아미>가야미>개미'로 변천했다고 하겠다.

어근은 '갈-'이다. 튀르크어 가린자의 어근이 '갈-'인데, 국어'갈-'과 동형이다. 15세기 문헌에 보이는 '가야미>가아미'로 소급하고, 다시 '갈아미'로 소급될 숭 螶을 것이다. 따라서, '갈-'과 '-아미'가 합쳐진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아미'도 개미의 뜻을 지�녔던 고어로 추정된다. '아미'의어근은 '암-'이고, 조어형은 '�-'으로서, '알>알암>아암>암'의 변천으로 볼 개연성이 있다.

그렇게 본다며, '아미'의 조어형 '알(�)'은 일본어 '아리'와 어원이 같다고 하겠다.

circle09_red.gif신화 : [보은] 개미는 아주 약한 미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홍수 신화에서는 은혜를 갚는 의리의 곤충으로 존재한다.

옛날 어느 곳에 한 그루의 교목이 있었다. 그 그늘에 천상의 한 선녀가 항상 내려와 있다가 그 목신의 정기에 감하여 잉태하고는 한 미남자를 출산하였는데, 이를 목도령이라 불렀다. 목도령이 7, 8세 되었음 때, 큰비가 내려 온 세상이 물로 화하고, 교목도 강풍에 넘어졌다. 목도령은 그 교목을 타고 정처없이 표류하면서 개미 떼와 모기 떼, 그리고 동년배의 사내아이를 구했다. 얼마 후 어떤 섬에 표류한 이들은, 친딸과 수양 딸을 데리고 사는 한 노파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다.

어느덧 성년기에 이르렀다. 구해 준 소년이 노파의 친딸과 결혼하기 위해 목도령을 비방하여 이르기를 "목도령은 한 섬의 좁쌀을 백사장에 흩어 놓고도 한나절 안에 모래 한낱섞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목도령이 그 시험을 받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개미떼가 한씩 좁쌀을 물고 섬에 넣으니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어 위기를 벗어났다. 이 목도령은 시험에 통과하고 노파의 친딸과 결혼하여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

여기서 개미는, 비록 하찮은 미물이기는 하나 살려준 은혜를 갚을 줄 알며, 마침내 인류가 땅에 재 탄생하게 되는 근거를 마련한 조력자로 존재한다. 이 설화는 인간의 배은망덕함과 비교되는, 보은의 교훈도 보여주고 있다.

무속·민속 : [비의 예보자] 민간에서는 개미에 대해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 있다. 이것은 개미가 앞일을 예시하는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한 데서 생겨난 속신으로, 일상생활에서 터득한 체험의 소산이기도 하다. 선인들은 개미가 자기 집 구멍을 막거나 행렬을 이루어 이사를 가면 장마가 진다고 하였고, 담을 쌓거나 진을 쳐도 비가 온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개미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현대 과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즉, 개미는 습도를 싫어하며, 대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고 토양의 수분이 증가되면 이동한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 선인들의 인식 능력도 이에 못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개미는 민간에서 비나 장마를 예시하는 예보자의 상징으로서 존재한다.

circle09_red.gif풍습 : [근면, 힘] 개미는 근면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행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부지런하기가 개미 같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몸보다 몇 배 더 큰짐을 지고, 협동으로 더 큰 물체를 옮기는 데서 힘을 상징한다. 또, 집단을 뜻하기도 한다.

circle09_red.gif종교 : [유교: 질서, 예절] 개미가 한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길을 양보하는 것을 유교의 왕도 정치에 비유하였다. 이것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질서를 종중하는 유교의 이념과도 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분교: 지혜] 불교 설화에, 구슬을 꿰어야 하는데 그 실이 통과하는 관이 굽어 꿸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있다. 이에 대한 답은, 반대쪽 구멍 입구에 꿀을 발라 놓고 다른 쪽에서 개미의 허리에 실을 매어 그 굽은 관으로 들여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꿀의 단맛을 아는 개미가 반대쪽 입구로 찾아 나오기 때문에, 구슬을 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circle09_red.gif동양 문화 : [중국: 애국심] 개미를 나타내는 말인 중국의 ???????????는 미덕의 하나인 ??와 음이 비슷하다. 다만, 두 자는 어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개미는 정당한 행위나 애국심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완벽함] 상하이에서는 모든 업무를 한 손가락으로 처리하는 부동산 업자를 개미에 비유한다. 그들은 개미처럼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협동] 개미의 힘은 매우 보잘 것 없지만 끝내 큰 일을 완성한다는 뜻에서 "개미가 태산을 옮긴다."고 하고, 소형 기계로 큰 작업을 해내는 모습을 "개미가 큰 뼈를 갉는다."고 표현한다. 이와 같은 말은 우리의 "개미 금탑 모으듯."이나 "개미 메 나르듯."이라는 속담과 통한다.

[기회주의, 이기주의] 사람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곳에 모여들 때, 일본에서는"개미 단것에 끼이듯 한다."고 하고, 중국에서는 이를 '의부'라고 한다.

[원인]조그마한 실수로 큰 손해가 났을 때, 우리가 "큰 방죽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둑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하며, 중국은 '의궤제'로 표현한다.

[비 올 조짐] 개미 떼가 들끓으면 우리는 비가 올 조짐이라 하는데,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뜻의 관용구인 '의봉혈우'가 있다. 일본에서는 개미의 행렬이 길을 가로지르면 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개미가 길을 끊는다."고 하거나 "개미 행렬은 비 올 조짐이다."라고 한다.

[틈] 우리가 허가된 사람 외에는 출입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개미 새끼 하나 얼씬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개미가 기어 들어갈 틈도 없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대미에게 불알 물렸다." 또는 "개미 나는 곳에 범 난다."는 등 인간이 해를 당하는 뜻의 표현은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개미에 대한 속담이나 비유가 매우 단순하고 그 수가 적은 반면,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로 묘사하며, 그 의미가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두 나라보다 그 비유의 가짓수도 많거니와,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함께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역사·문학 : [덕행, 살인자] 개미를 뜻하는 한자 의를 풀이하면 의로운 벌레라는 의미가 된다.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고 순종하는 데서 이루어진 글자이다. 동양 문화권에서의 개미는 덕행과 애국심을 상징함과 동시에, 서양의 '흰 개미'에서처럼 살인자, 파괴자, 또는 사리 사욕과 부당 이득을 취하려는 검은 마음도 상징한다.

[덧없음] 우리 문학의 경우는 이런 상징성외에 미미한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몸이 움직이면 소가 응당 싸울 것이고,/구멍이 깊으니 산 무너질까 두렵네./공명은 몇 굽이의 구슬 구멍을 꿰었던고,/부귀는(개미 집에서 꾼)남가일몽에 처음 시작되었다네. <최자, 보한집>

여기서, 개미의 상징성은 부귀 공명을 비판하는 의로운 삶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접어들면서 존재의 덧없음을 상징하게 된다.

발발 기어드는 개미 한 마리/움직여야 눈에 뛰는 잔 개미. <이광수, 구더기와 개미>

개미 쳇바퀴 돌듯 자기 집 울타리를 맴도는 타성을 벗어나서 멀리 훨훨 떠나가는 상쾌한 기분을 가져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상징이다. <박종화, 기행문을 쓰려면>

[인간의 삶, 여유]현대 문학의 경우, 개미의 이미지는 다음처럼 기술된다.

개미 구멍으로는 언제부터인지 흙빛과 같은 누런 개미 떼가 연달아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같은 빛깔을 한 커다란 왕개미 한마리가 구멍 입구에 서서, 조그만 개미들이 나오는 족족 주둥이로 목을 잘라 버리는 것 이였다. 삽시간에 개미의 시체가 가득 쌓였다. <황순원, 너와 나만의 시간>

뇌신보다 더 사나웁게 사람들을 울리고/뮤즈보다도 더 부드러웁게 사람들의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질책의 권리를 주면서 질책의 행동을 주지 않고/어떤 나라의 지폐보다도 신용은 있으나/ 신체가 너무 왜소한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뛰지를 않는다/고대 형이상학자들은 그를 보고 '양극의 합치'라든가 혹은 '거대한 희열'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19세기 시인들은 그를 보고 '도피의 왕자' 혹은 단순히 '여우'라고 불렀다. <김수영, 백의>

길 잃은 한 마리 개미/신의 잘린 머리칼이다./지구의 무게만한 한 알의 꿈을 물었다./5만분의 1의 지도를 그리누나./모근 같은 발끝에는/은총인 양 달빛도 감기지만,/언제나 어두운 절벽의 얼굴을 간다. <문덕수, 개미>

황순원의 경우에는 개미가 강자와 약자로 대립되는 인간의 삶을 상징하고, 김수영의 백의는 여유를, 문덕수의 개미는 신과 대비되는 허약하고 무력한 인간의 존재를 상징한다.

현대·서양 : [근면성, 조직성] 서양에서의 개미는 일반적으로, 근면성과 조직적인 삶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우화 작가 라 퐁텐은 이러한 성질을 오히려 이기주의나 인색함으로까지 보았다. 그리고 유대교의 성전인 탈무드에서의 개미는 정직성을 의미한다.

[풍요, 세계 창조의 원동력] 고대 로마에서의 개미는 농사와 풍요의 여신 케레스의 부속물이었다. 아프리카 서부 말리의 신화에서 개미는 세계 창조의 원동력이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신성 결혼을 할 때, 땅의 성기는 개미집 이였다. 그리고 세계의 창조가 끝날 무렵, 개미는 대지의 입으로서 태초의 말씀과 기본 물질, 직조 기술을 인간에게 전수하였다. 또, 전통적인 주거 생활의 모델도 전수하여 풍요를 기원하는 모든 의식은 개미와 관련이 있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개미집 위에 앉아 최고신 아마에게 아이배기를 기원한다.

도상 : [경사] 개미 형상이 우리 미술에 나타난 예는 신 사임당의 그림으로 전하는 '가지'가 있다. 이 그림은 화폭의 중앙에 곡선을 이룬 가지의 두 줄기가 좌우 대칭을 이루며 서있고, 그 섬약한 줄기에는 밤색과 흰색의 가지가 곱게 열려있다. 가지 포기의 주변에는 잡초와 곤충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아랫쪽에 개미가 2마리 보인다.

'가지 가'는 '경사스러울 가'와 '개미 의'는 '거동 의'와 음이 같은 데서 그 의미를 취함으로써 가지와 개미는 가의, 즉 '경사스러운 일'을 뜻하게 되었다. 특히 가지는 예부터 다남 또는 다손을 의미했으므로, 가지 자체도 경사스러움을 뜻하고 있다.

 

 구름---------------------------------------------------------------------

 

어원 : 15세기 문헌에 '구룸'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어에서 구모는 우리말 구룸의 鱁이 탈락되고 모음 동화가 이루어진 말이다.

구름은 비를 내리므로, 그 어원은 물과 관련하여 파악해야 할 것이다. 즉, 구름의 어근 '굴-'에 접미사 '-음'이 붙어 이뤄진 말인데, 원말은 '굴'로서 명사이다. '굴'은 证鿑의 어근 '诉-'과 같은 어원이며, 물의 뜻을 지닌다. 냇갈의 '갈'도 물의 뜻을 지닌다.

고드름은 '곧'과 '얼음'의 합성 명사인데, '곧'은 '얼음'의 고어이면서 물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본어 고호리는 고로리가 변한 말로, 어근'골-'은 고드름의 '곧'과 어원이 같다. 鱁은 鑁에서 변한 음이니, 鱁음의 고음은 鑁이 된다.

신화 : [성스러움, 풍요, 자연의 조화] 단군 신화에는 환웅이 바람의 주술사와 비의 주술사, 그리고 구름의 주술사를 거느리고 하늘에서 내려와 360종의 일과 농사를 주관하는데, 이는 풍요의 원리를 나타낸다. 또, 환웅이나 그 밖의 고대 왕들이 지닌 왕권이 우주론적인 권위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구름은 비와 바람과 더불어 이른바 우순풍조와 자연의 순조로운 조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것은 농경 사회의 풍요로운 힘을 상징한다.

동명왕 신화에서는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채운이 깔린 하늘을 난다고 하였다. 이는 구름이 용과 맺어져 풍요를 상징하는 한편, 천상의 원리가 지상에 실현되는 신성함이 드러나는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다만 이 때, 용이 왕권을 상징하는 것과 함께, 채운은 신성한 왕권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대양(신화)

[천지 창조의 원동력] 제주도 무속 신화에서는 구름이 천지 개벽의 첫새벽에 등장한다. 닫혀 있던 하늘과 땅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이 제1차적 개벽이며, 제 2차적 개벽인 '천지인황도읍(天地人皇都邑)'은 동으로 청 구름, 서로 백 구름, 남으로 적 구름, 북으로 흑 구름, 중앙으로 황 구름이 뜨면서 오방이 열린다. 이 때의 각 구름은 각 방위가 신성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로써, 구름은 물기운 다음에 오는 천지 창조의 기운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아침(신화)

풍습 : [예시] 구름이 천문 기상의 중요한 징표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나 비에 비해서는 그 비중이 약하다. 다만, 기우제나 기설재와 관련해 천문 기상적 중요성이 간접적으로 인식되었다.

솜털구름, 뭉게구름, 비늘구름, 먹구름, 열구름 등 구름의 종류를 비교적 다양하게 분류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을 세세히 분류한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구름을 생활과 밀착시켜 관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현상적 관찰의 결과에 붙여진 구름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기록에 의하면, 뭉게구름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징후로 간주되었고, 먹구름이나 짙은 구름이 갑자기 끼이거나 걷히는 상황은 한국인의 사고 양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처용을 만나는 장면에서'홀연 구름과 안개가 캄캄하게 끼여 길을 잃었을' 때, 일관은 이것을 '동해 용의 변'으로 풀이하였다.

이로 보아, 짙은 먹구름은 안개와 함께 흉변의 징조이나, 그것이 음과 물의 기운인 용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처용설화에서 흉변의 징조인 구름이 한 주술적인 과정을 거쳐 걷히게 되자, '구름이 열린 갯벌'이라는 뜻에서 '개운포'라 명명된다. 이 설화는 한국적 구름의 상징성을 이야기 할 때에 흔하지 않은 사레이다. 이것을 확대 해석한다면, 기우제나 기청제처럼 기운제라고 이름할 만한 주술적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속담 중에 "검은 구름이 땅을 덮으면 병이 생긴다."와 같이, 검은 구름은 흉변의 징조이다. 이에 비하여, 오색 영롱한 구름은 채운이라 하여 일종의 신성현시, 즉 거룩한 것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로 여겨졌다.

[예측 불허] "구름장에 치부했다."는 말은 허망한 짓이나 금시 잊음을 비유한 말이고, "검은 구름에 백로 지나가기다."는 정처가 없어서 종적을 알 수 없음을, 그리고 "어는 구름에 비가 올지."는 일을 짐작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종교 : [유교:간신, 입신 양명] 유교는 인의를 중시하고 의가 사회에 실현되는 덕치주의를 이상으로 한다. 그런데 구름은 날빛을 덮는, 즉 임금의 밝은 뜻을 흐리게 하는, 부정적 기능을 하는 간신의 존재로 흔히 나타난다.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중천에 떠 있어 임의로 다니면서/구태여 광명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나니. <이존오>

한편, 구름은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면서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뜻도 함축한다.

보리밥 파 생채를 양 맞춰 먹은 후에/모재를 다시 쓸고 복창하에 누웠으니,/눈앞에 대공부운이 오락가락하놋다. <무명씨>

특히 이 시조에서는, 임금이 게시는 쪽인 북창을 향해 임금이 불러 주기를 바라는 뜻이 대공부운에 담겨있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구름에 간교함, 허무, 초월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한시나 시조를 통해 노래하였다.

[불교:번뇌, 무상] 불교에서는 운수가 곧 승려이고, 도 수행이다. 수도승을 운수객, 운수승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열구름과 흐르는 물은 번뇌와 무상의 표상이었다.

물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잇거라. 네 가는 데 말 물어보자./막대로 흰 구름 가리키고 돌아 아니보고 가노메라. <정철>

위의 시조에서 운수승이 가는 곳은 구름이 흘러가는 곳이고, 그 곳은 정해진 곳 일수 없는 무상한 곳이다.

[도교: 초월, 불로 장생] 도교에서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라는 천둥 번개의 신 아래에 뇌운신이 있어서, 천둥 번개의 집(근거)으로서 구름이 신격화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서왕모의 세 제가 중에 경소, 벽소와 함께 운소라는 이름이 있는데, 위와 비슷한 추론을 하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도교적인 관념에서 중요한 것은, 구름이 안개나 이내와 더불어 이상향 또는 피안의 징표가 된다는 것이다. 겹겹이 층을 이룬 구름 위에 솟은 나라나 구름 너머에 가려져 있는 나라라는 관념이 추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구름은 세속을 멀리 떠난 초월의 경지를 상징한다.

바다 위 봉래산에/학을 타고 노니노라니,/무지개 구름 사이로/봉래 궁궐이 솟았구나./인간 세상은 참으로 풍파 밑에 잠겨 있으니,/백년 동안 괴로울 뿐 한가롭지 못하여라. <김시습, 유상가>

잡다하고 유한한 속세를 초월하여 불로장생의 성게를 그리는 도교적 세계가 구름으로 나타나 있다. 여기서의 구름은 신성의 환유적 등가물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서 구름은 성스러운 지경을 표시, 즉 성속의 경계표시가 된다.

동양 문화 : [희망, 미래, 흉변, 풍요] 구름이 지닌 상징성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가 3국에 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각국의 색채 상징이 차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푸른 구름이 벌레 또는 곤충의 재앙이 일어날 징조로, 흰 구름이 상을 당할 징조로 간주되는 등 개성의 차이는 볼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청운의 뜻', '백운의 영마루' 등이 표현이 시사하듯이, 청운은 희망을, 백운은 미래나 피안을 상징한다. 또, 3국의 공통점으로서, 붉은 구름은 재난을, 검은 구름은 흉변을, 누른 구름은 풍요와 번영을 뜻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문학 : [고고함] 최치원이 그의 호를 고운 이라 지으면서 구름은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 "띠끌 세상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으니, 구름과 노을이 마땅히 나를 비웃으리라."고 한 그의 글귀는, 자신이 품었던 '풍류지도'의 종국적 표상이 다름아닌 고운 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고운의 '고'는 외로움이지만, '고고함'이기도 해서, 현실을 초월한 은일의 경지를 스스로 구름에 부쳐 표상한 것이다.

유란이 재곡하니 자연이 듣기좋아,/백운이 재산하니 자연이 보기좋아,/이 중에 피미일인을 더욱 잊지 못해.

이황의 시조에서도 고운과 같은 은일의 경지가 이어진다. 골짜기와 산이 초현실의 자리를 뜻한다면, 난과 구름은 초현실의 정신적 표상이다. 더불어 맑고 높은 심혼의 표상이기도 하다.

[먹구름: 부정, 은폐] 신라의 향가 '찬기파랑가'에서 "열치매/나타난 달이/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게 아닌가."라고 노래할 때, 구름은 광명의 은폐, 진리의 훼방 등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시조에도 계승되고 있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 진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조식>

이 시조에서 구름은 왕의 총명을 흐리는 간신들의 인의 장막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험악한 구름'같이 세상의 험난한 풍파에 불안을 나타낸 구름도 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곳 몰라 하노라. <이색>

여기서의 구름은 바람과 함께 인생의 풍랑을 상징한다. 그것은 제주 무속의 초감제에서'열두 풍운, 열두 재화'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채색 구름: 서조] 구름의 상징 중에 초기 우리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채색 구름이나 5색 구름은 신령스러우며 하늘의 권능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 하늘로부터 해모수가 내려오는 장면이나,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의 집에 머무르는 장면은 5색 구름이 상서의 조짐, 즉 서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산도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나를 밀어 올려 다오./채색한 구름 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울려 다오! <서정주, 추천사>

이 시에서는 채색한 구름이 화자의 환희에 찬 심정을 표현하는 비유로 쓰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상투어구를 현대적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백운: 왕래자재, 탈속] 해모수는 하늘을 오르내리는 수단으로 구름을 이용했고, 도통한 낭지는 구름을 타고 잠깐 사이에 중국 청량산을 왕래하며 불법을 닦았다고 하였다. 현실적인 구름의 자재로운 변화가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의 꿈과 연결 될 때, 왕래가 자재한 의미가 강조된다. 그러나 구름의 표상은 정처없는 나그네의 인생 행로를 의미할 때처럼,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감상적인 소재로 그 의미가 변화되어 쓰이기도 한다. 한편, 백운은 벼슬에 나아가는 입신 출세의 청운과 대비되는, 탈속적 사물로 상징된다.

용문산 백운봉에 높이 떴는 저 구름아,/세상 영욕을 아는다 모르는다./저 구름 날과 같아야 대면무심하도다. <이정탁>

[무상] 이규보는 '백운 거사 어록'에서, 구름의 구속되지 안는 모습과 측량할 수 없음, 거동이 군자 같고 지사의 취미 같음을 언급한 뒤, "구름을 사랑하여 그의 덕을 배워 가면, 첫째로, 만물에 혜택을 줄 수 있고, 구름이 나를 닮았는지 내가 구름을 닮았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한 서사의 시에서는, 구름이 형체가 없고 빛깔이 희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모습에서 무심무아의 불법의 경지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그름의 구속되지 않는 모습에 불교적인 사상이 이입되어 비유될 때, 구름은 인간의 사심과 대비되는 초원적 원리로서의 무상함과 무아심을 표상하는 긍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는 구름이 가지는 이러한 양면적인 속성을 동시에 상징화했다. 인간 만사로 비유된 구름의 의미는, 성징 쪽에서는 무상함으로, 양소유쪽에서는 입신 출세를 뜻하는 것으로 함께 사용되었는데, 이는 불교와 유교의 이원적인 사유 구조하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한국인의 시정] 구름은 현대 시에서도 여전히 한국인의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다하고 있다.

강나루 건너서/밀 밭길을//구름에 달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긴 머리, 잦은 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저승 곁을 난다. <서정주, 학>

이와 같은 시에서는 우리 민족적 시 정신의 율격의 표상으로서 구름이 노래되고 있다.

현대·서양 : [성스러운 셰게] 서양에서의 구름은, 성경의 '구름기둥'의 이미지에서는 성스러운 세계의 표상이 었으나, '잔인한 전쟁의 구름'같이 흉변을 상징함에는 동양과 큰 차이가 없다.

그 밖에, 광명의 훼방, 덧없음, 비와 맵어진 풍요 등을 상징함에 있어서도 동양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잠, 심부름꾼, 사랑, 배신 등의 상징성은 서양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여호와의 권능] 구름은 크리스트교적 이해에서 여호와와 관련이 많다.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급에 임하시니."에서는 구름이 하느님의 행차시에 타고 다니는 수단으로 표현되었고, "아, 나의 주께서 노여움을 터뜨리시어 수도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구나."에서는 하느님의 진노를 나타냈다. 그리고 여호와는 구름에 숨고, 구름의 모습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황야로 안내하고 있다. 또, 구름을 신의 뜻, 신성, 자비, 영지와 동등한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천국] 구름은 천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내 슬픈 마음 속을 들여다볼 자비로운 하느님이 구름 속에 없는 것일까?" 구름은 진실과 영광으로서의 태양을 숨기지만, 결국은 태양을 이겨내지 못한다. "새까만 구름을 뚫고 태양이 빛나듯이, 남루한 의상에서도 덕은 나타난다."

[허위의 모습, 외로운 나그네] 구름은 진실을 가리는 허위의 모습이다. "때로는 용 모양의 구름이 보이지만, 곰이나 사자모양의 구름도 있다."

위즈워스는 시 '수선화'에서 구름을 외로운 나그네에 견주어 "골짜기와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나는 홀로 헤매었네."라고 하였다.

도상 : [새, 용] 고대인들은 구름이 새 또는 용과 일체라는 관념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당초 형식의 구름에 조두나 수두(대개 용머리를 표현했음)가 표현된 괴운이 보이는데, 이는 "용이 나타나면 구름이 모인다."는 말과 일치한다.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된 조운은 2세기경 후한의 무씨 사당 화상석에 나타나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의 조운문 등은 한대의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진파리 1호분 현실 서벽에서 이러한 조운문을 찾아볼 수 있다.

[괴운문]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는 추상화한 운문이 보이는데, 감신총 덕흥리 벽화 고분, 각저총, 무용총, 천왕 지신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름무늬는 신라 칠기편에서도 보인다.

[당초 운문]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는 천장 굄돌 측면에 여러 가지 모양의 당초 구름무늬가 표현되어 천상계와 벽면을 구분하고 있다. 구름무늬의 기본 형식은 'S'자형의 파상 당초문 형식인데, 구름 줄기에 고사리손 모양의 작은 돌기가 다닥다닥 붙었다. 사신도 고분 등 후기 고분 벽화에서는 인동초화 형식으로 발전하여 인동 당초문 형식의 구름띠가 특징을 이루는데, 진파리 1호분에서 볼 수 있다. 그 이후의 공예품에 나타나는 각종 초화 당초문도 구름을 상징한다.

[유운문]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 진파리 1호분 현실 네 벽면에는 사신도가 그려졌는데, 그 사신의 배경에는 인동초와 천화 등이 물결처럼 율동감 넘치는 유운의 사이사이를 떠돌고 있는 모양이 묘사되었다.

[보운문] 보운문은 구름 머리 부분이 심엽형 또는 여의 모양을 이루고, 꼬리가 두 갈래로 갈라져 도식화된 구름무늬로, 통일 신라 시대의 불화 또는 불교 공예에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점운] 점점으로 흩어져 있는 구름의 모양이다. 13세기 고려 시대의 상감 청자 중에서 운학, 운봉 무늬 등에서 볼 수 있다.

 

 까마귀-------------------------------------------------------------------

 

어원 : 15세기 표기로는 '가마괴'가 된다. 가마괴의 '괴'는 '고이'의 준말이고, '고이'의 고어는 '고리'가 된다. 꾀꼬리의 15세기 표기는 '곳고리'이다. '고리'는 새라는 뜻을 지닌 또 하나의 우리 고어이다. 왜가리, 딱다구리, 병마구리 등에 '가리, 구리'는 새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본디 가마괴는 가마고리가 '가마고이>가마괴'로 변했다.

가마괴는 검은 새의 뜻이다. 일본어 가라스의 가라는 일본어 구로이고, 스는 우리말 '새'가 변한 말이다.

신화 : [해와 당] 삼국유사에는 그 이름이 까마귀를 듯하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신화가 전한다. 신라 아달라왕 4년에 이 부부는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는 바닷가에서 마름을 따다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으러 바닷가에 나간 세오는 남편이 남기고 간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가 싣고 바다를 건너갔다. 세오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왕비가 되었다. 이 무렵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해와 달의 정인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와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불러 오게 하였다.

그러나 연오는 하늘의 뜻으로 자신이 이곳의 왕이 된 것이니,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대신 해와 달의 정기를 모아 세오가짠 비단을 주었다. 영일만 언덕에 제단을 만들고 그 비단을 제물로 제사를 올리니, 과연 해와 달이 전과 같았다. 영일군 동해면 석동에 있는 일월지는 일월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일월신은 연오랑과 세오녀를 가리킨다.

[신의 사자] 신라 제 21대 소지왕 10년에 왕이 천천정에 나갔을 때,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다. 쥐가 말하기를,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은 말탄 군사로 하여금 뒤쫓게 했다. 군사는 남쪽으로 피촌에 다다라 돼지 2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길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 때,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글을 올렸는데, 겉봉에 "이를 떼어 보면 둘이 죽을 것이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편지를 전해 받은 왕은 "떼어 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게 낫겠다."고 했다. 이에, 일관이 "둘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킵니다."고 하자, 왕은 그것을 데어보았다. 글에는 "금갑을 쏘라."고 하였다. 왕이 궁으로 돌아가 금갑을 쏘니, 내전에서 향을 사르는 중과 궁주가 간통하고 있었다. 둘은 죽음을 당했다. 이후부터 정월의 첫째번 돼지남,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이라 하여 약밥으로 제사 지냈다. 여기서 까마귀는 나쁜 일을 알려주는 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국가] 삼국사기에는 까마귀가 국가를 상징하는 대목이 있다.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북부여와 한창 전쟁 중이었다. 어느 날 북부여의 대소왕이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붉은 까마귀를 얻었다. 이것을 본 신하가 "까마귀는 검은색인데 붉은 색으로 변하였고,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이것은 두 나라가 합병될 징조이므로 왕께서 고구려를 정복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왕이 기뻐하여 까마귀를 고구려로 보냈다. 이를 받아 본 고구려 왕은 오히려 기뻐했다. "검정은 북방의 빛인데, 남방의 빛인 붉을색으로 되었다.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이다." 여기서의 붉은 까마귀는 곧 고구려를 상징한다.

[무질서] 제주도 신화인 차사 본풀이에서는, 까마귀로 인하여 저승 가는 사람의 차례가 무질서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승 사자 강님은 염라대왕으로부터 이승에 가서 여자는 70, 남자는 80이 되거든 저승에 오도록 전하라는 명을 받았다. 강님은 분부대로 적패지를 가지고 이승으로 향하다가 도중에서 그것을 까마귀에게 떠맡겼다. 적패지를 날개에 끼고 이승을 향해 날아가던 까마귀는 말 잡는 광경을 목격했다. 말 피나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지친 까마귀는 적패지를 떨어뜨렸다. 그것을 뱀이 삼키고 사라졌다. 그래서 뱀은 9번 죽었다가도 10번 살아난다고 한다. 잃어버린 적패지를 찾던 까마귀는 옆에 있는 솔개가 훔쳐 갔다고 생각했다. 내 놓으라, 안 가져갔다 하면서 둘은 싸웠다. 그래서 까마귀와 솔개는 지금까지도 원수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승으로 온 까마귀는 자기 멋대로 외쳐 댔다. "아이 갈 데 어른 가시오, 까옥. 어른 갈 데 아이 가시오, 까옥. 자손 갈 데 조상 가시오, 까옥. 조상 갈 데 자손 가시오, 까옥."이 때부터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죽어 갔다고 한다.

무속·민속 : [사자]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젯밥과 나물 등을 대문 앞이나 울타리 곁에 놓아두는 관습이 있다. 그젯밥과 나물 등을 까마귀밥이라 한다. 까마귀가 저승에 있는 조상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관습이 이어져 온듯하다. 여기서의 까마귀는 저승을 오가는 사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 무속에 '까마귀 모른 식개'라는 것이 있다. 정식으로 모셔야 할 사람이 모시지 못하는 제사를 일컫는 것으로,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출가한 딸이 시집에서 친정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경우리다. 친정 부모의 제사를 시집에서 치르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기 대문에, 남이 모르게 제사 지낸다는 뜻에서 '까마귀 모른 식개'라고 한다.

[길흉 예보] 까마귀는 대개 3,4월에 알을 낳아 품는데, 이 때 새기를 치는 상태를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즉, 새끼를 하나만 치는 해에는 가뭄이 들고, 둘을 치면 풍년이 되며, 셋을 치면 물이 넘쳐 홍수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농사를 시작할 때에 까마귀가 오면, 농사가 잘 된다고도 한다. 이것은 까마귀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굼벵이를 잡아먹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 밖에, 까마귀에 대한 민간 신앙의 길흉예보에 관한 것으로 "까마귀가 100보 안에서 남쪽을 향해 울면, 크게 흉한 일을 당한다."는 말이 있다.

풍습 : [흉조]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까마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까마귀 울음소리는 죽음의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아침에 까마귀가 울면 아이가 죽을 징조이고, 낮에 까마귀가 울면 젊은이가 죽을 징조이며, 오후에 까마귀가 울면 노인이 죽을 징조이고, 지붕 용마루에서 까마귀가 울면 높은 사람이 죽을 징조이며, 중간 지붕에서 까마귀가 울면 중간 사람이 죽을 징조이고, 처마에서 까마귀가 울면 하인이 죽을 징조이며, 밤중에 까마귀가 울면 역적이나 살인이 날 징조라고 전해 온다. 또 여러 마리가 무리져 울면 싸움이 일어날 징조이고, 동쪽을 향해 까마귀가 울면 양식 없는 집에 손님이 찾아올 징조이며, 서쪽을 향해 까마귀가 울면 나쁜 기별이 올 징조이고, 초저녁의 까마귀 울음은 화재를 당할 징조로 여긴다. 그리고 전염병이 돌 때에 까마귀가 울면 병이 널리 퍼지고, 먼 길을 떠날 때에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부정] 마을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기 때문인지 까마귀에 비유된 속담이 많다. 평소에 매우 즐기던 음식을 싫다고 할 때, "까마귀 고용을 마다한다."고 하며, 모양이 비슷한 것을 빙자해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을 때, "까마귀가 까치집을 빼앗는다."고 한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 한다. 공교롭게 일이 동시에 일어나 오해받게 될 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며,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이면 반갑다."는 말은, 제 고향 것이면 무엇이든 반갑다는 뜻이다."까마귀 열두 소리 다 싫다."는 말은, 미운 사람 짓은 모두 다 밉게 보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우리 생활에서 까마귀가 등장하는 속담은 대부분 부정적 의미를 띠며 사용되고 있다.

종교 : [유교: 개국 공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 시대에는 까마귀가 충, 효, 지조, 죽음 등으로 비유되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을손 너뿐인가 하노라. <이직>

이 시조에서 까마귀는 백로와 대립 관계이며, 조선의 개국 공신인 작자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백로는 자신을 비웃는 고려 유신을 가리킨다. 유교는 충, 효, 인, 의 등의 덕목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작자는 충신은 불사 이군이라는 덕목을 어기고 벼슬길에 나갔으므로 스스로를 까마귀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두 임금을 섬기기는 했으나, 국리 민복을 위해 자기 양심을 저버리지는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효조] 까마귀의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반포라한다. 이처럼 까마귀는 예부터 효조로 알려져 왔다.

늙으신 어버이를 모시고 살건만,/맛 진 음식을 대접 못하네,/저런 미물도 사람을 감동시키는데,/숲에서 먹이 찾는 까마귀를 보며 눈물 흘리노라. <박장원, 반포조>

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 박장원의 이 시는, 까마귀의 효성스런 모습을 보고 자신의 불효를 반성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장성한 자식이 늙은 부모에게 정성이 지극할 때에 반포의 효에 비유하고 있다.

[죽음의 전조, 흉조] 까마귀는 그 울음소리나 색깔과 형상 때문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죽음의 전조를 나타내는 흉조로 믿고 있다.

까마귀 깍깍한들 사람마다 다 죽으랴./비록 깍깍한들 네 죽으며 내 죽으랴./진실로 죽기곧 죽으면 임의 임이 죽으리라. <무명시>

까마귀가 울고 있으니,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시조이다. 까마귀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행해져 왔다.

주자도 시경 패풍의 북풍에 나오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주석하였다. 이 주자의 설을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따랐다. 홍길동전에서 "차야에 촉을 밝히고 주역을 잠심하다가, 문득 들으니 까마귀 세 번 울고 가거늘…… 심히 불길 하도다."와 같은 부분은 유학자들의 일상 생활에서 까마귀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신, 나쁜 무리] 유교적 이념을 표방한 조선의 관료적 사회에서는 간신에 의해 조정이 문란해지고 충신이 소임을 다하지 못해 밀려나는 수가 많았다. 이 때, 간신이나 간악한 무리는 흔히 까마귀에 비유되었다.

까마귀 참 까마귀 빛이나 깨끗하던가./소양전 일영을 제 혼자 띠어 온다./뉘라서 강호에 잠든 학을 상림원에 날릴꼬.

이 시조는 임금의 신임을 받는 간신들을 까마귀에 비유하고, 궁 밖에서 허송 세월하는 작자 자신의 신세를 강호의 학에 비유하고 있다 정몽주 어머니의 시조"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에서도 나쁜 무리, 즉 왕조 찬탈을 노리는 무리를 까마귀에 비유하고 있다.

[불교: 사자] 삼국유사에 의하면, 가마귀는 신령한 새로서 부처의 사자 역할을 한다. 신라 문무왕 원년, 사미 지통에게 까마귀가 날아와 말하기를 "영취산에 가서 낭지의 제자가 되라."고 하였다. 지통은 금 라에 따라 산을 찾아들어 나무아래에서 쉴 때, 보현보살이 나타나 지통에게 계품을 주었다.

게품을 받은 지통이 다시 길을 가다 한 스님을 만나 낭지 스님의 거처를 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자신이 낭지이며, 까마귀가 날아와 알리기를, 거룩한 아이가 찾아올 것이니 맞이하라고 해서 마중 나왔다고 하였다.

동양 문화 : [중국: 태양의 화신] 중국 고대 신화에 의하면, 까마귀는 태양의 화신이다. 하늘에 태양이 10개나 떠있어서, 작열하는 태양에 많은 사람이 타 죽고 산천 초목이 타 들어갔다. 요임금이 예로 하여금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게 하였다. 예가 태양을 소자, 불덩이가 폭발하며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황금색 삼족 까마귀가 화살에 꽂혀 죽어 있었다.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저술한 '회남자'에도 까마귀는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적 원리의 상징으로 나온다. 이새는 태양 속에 살며, 이따금식 땅에 내려와 불로초를 뜯어먹는다고 했다.

[불길함] 까마귀가 고대에는 태양의 정령으로 믿어졌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불길한 새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 한편, 중국에서는 한 해의 신수를 보는 데 까마귀를 이용하기도 한다.

[일본: 신조] '니혼쇼키'에는 까마귀가 진무천황의 동방 정벌 때에 구마노에서 야마도에 이르는 험로를 안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는 예부터 까마귀를 신령스런 새로 보았다. 오늘날에도 까마귀를 산신으로 여기는 경아가 있다. 일본 각지에 까마귀를 신의 사자로 모시는 사당이 있다. 그리고 농가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점치는 데 있어, 까마귀가 새해 첫날 첫째 번으로 먹은 음식에 따라 그 해의 농작물로 정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까마귀를 주제로 한 동요가 많이 불려지고 있는데, 그 가사는 까마귀와 친근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한편, 상서롭지 못한 새로 인식되는 수도 많다.

역사·문학 : [징조] 우리의 고대 문학이나 민속, 속담에서는 까마귀가 어떤 사건의 징조를 상징하는 새로 형상화되었다. 삼국유사 권 1 태종 춘추공에, 소정방의 병영에 까마귀가 날아들자, 이를 불길하게 여긴 소정방이 백제군과의 싸움을 중지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김유신이 까마귀를 죽이고 다시 싸우게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소정방은 까마귀를 불길한 조짐의 새로 보았으나, 결과적으로 싸움에서 이겼다는 전체적이 사건과의 관련에서 볼 때에는 김유신이 옳았을 뿐만 아니라, 까마귀가 오히려 상서로운 의미로 이해된다.

[효] 부모에 대환 지극한 정성이 담긴 까마귀의 반포효는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까마귀 검다 한들 속까지 검을 소냐./자오반포라 하니, 새 중에 효자로다./사람이 그안 같으면 까마귀엔들 비하리. <지덕붕>

우리 시조에서 까마귀는 흔히 부모에 대한 효행을 상징하는 소재로 등장한다. 부모를 섬기는 행위를 두고 미물인 까마귀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비교하는 수사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유가 사상에서 효도에 많은 비중을 두어 왔기 때문에, 문학에서 윤리적인 주제를 언급할 때에 까마귀의 의미는 긍정적으로 사용되었다.

[표리 부동] 까마귀 속 흰 줄 모르고 겉이 검다 뭐무여하여/갈매기 겉 희다 속 검은 줄 몰랐더니,/이제야 표리 흑백을 깨쳐슨저 하노라. <안민영>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야광명월이 발인들 어두우랴./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있으랴. <박팽년>

까마귀가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담은 작품의 소재로 등장할 경우, 까마귀의 검은색과 해오라기의 흰색이 대비된다. 여기서 각각의 표리가 같지 않음이 드러나고, 이 대 잉鱁상적인 의미가 역전되는 표현 양상이 나타난다. 안민영의 시조에서는 겉은 검지만 속은 희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반면, 박팽년의 시조에서는 까마귀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죽음, 천형] 까마귀의 상징성은 현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김소월의 '가는 길'에서는 까마귀가 시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상징하는 새로 나타나며,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에서는 인간의 고독과 천형을 상징하면서 시인 자신의 부르짖음이기도 한, 개인적인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현대·서양 : [탐욕, 죽음]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성경에 나타나는 까마귀는 우리와 비슷하게 부정적 요소가 강하다. 그것은 주로 탐욕, 죽음, 부패, 파괴 등을 상징한다. 노아의 홍수 때에 물의 양을 살펴보라고 내보내 까마귀가 표류하는 시체들을 보고 파먹기 시작했다. 그 벌로 까마귀의 깃이 새까매졌다고 하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새로 비쳐졌다는 것이다. 포는 그의 대표시 '까마귀'에서 까마귀를 우울, 절망 등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또,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오셀로','햄릿'에서 까마귀를 불길한 예언, 죽음, 복수를 알리는 새로 표현했다.

[지혜, 풍요]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신 오딘의 양 어깨에 2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는데, 각각 지혜와 기억이라고 불린다. 이 까마귀들은 하루에 한 번씩 공중으로 날아올라 세상의 동정을 살핀후, 오딘에게 알려 주곤 한다. 그리고 까마귀는 풍요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까마귀의 검은 깃이 비옥한 옥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에서도 까마귀는 앞일을 예언하는 지혜의 새로 여겼다.

[창조자]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켈트족과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까마귀가 세상의 창조자로 숭앙되었다. 이러한 면은 시베리아를 비롯해 북태평양 전역에 걸쳐서 발견된다. 까마귀는 그 지역 창세 신화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중세 유럽사회에서 까마귀가 태초의 어둠이나 연금술사를 상징했던 것과도 의미가 통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의 신인 아폴로의 전신이라는 설도 있다.

[길조, 흉조] 그리스-로마 시대에 까마귀는 사악한 재앙의 별인 토성의 성질을 지닌 새로 관념화되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긴다. 반대로, 아랍세계에서는 까마귀를 징조를 알리는 새로 부르는데, 오른쪽으로 날아갈 때에는 길조로, 왼쪽으로 날아갈 때에는 흉조로 보고 있다.

도상 : [태양, 남성] 고구려 고분 벽화를 비롯하여 관식금구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 안에 다리가 3개인 까마귀가 있는 도상이 있다. 일반 안에 든 다리 3개인 붉은 가마귀는 중국 한대의 '회남자'에는 적오 또는 삼족오라 하였고, 한대 와당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섬여,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 장생약을 찧는 옥토끼와 같이 들어 있음]와 더불어 일월을 상징하고 있다. 다리가 셋인 까닭은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적 상징이 3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인 쌍영총, 무용총, 천왕 지신총, 각저총, 내리 1호분 등의 일상에 삼족오가 보인다. 고려 시대의 유물인 상감 청자 중에서 표형주자의 일상문에도 까마귀가 보이며, 조선 시대 불화에도 나타난다.

[효금] 까마귀의 하나로, 어미가 늙으면 모이를 물어와 봉양하는 팔가조 또는 팔팔조, 한고라는 새가 민화에 효금으로서 등장한다. 까마귀와 목련 도는 해당화를 함께 그린 그림은 옥당제조라 하는데, 효행이 높은 모범적인 가정이 되라는 의미이다.

 

꿩 -----------------------------------------------------------------------------------------------------------------------------------

어원 수꿩은 장끼 또는 수기라고 한다. 여기서'기'는 꿩의 뜻을 지닌다. 암컷인 까투리의 고어는 가토리이다.가토리는 '가'와 '도리' 와의 합성어이다. '도리'는 닭의 고어 '달'과 같은 어원으로서, 일본어 도리와 어원이 같다. 수기의 '수'가 웅(雄)의 뜻을 지니듯, '가'는 여(女)의 뜻을 지닌다. 가와 도리의 합성어인'가도리'에 사이�이 들어가 '가토리'가 돠었다 한편, 꿩이라는 말은 '껑'이 '꿩'으로 변한 의성어일 개연성도 있다.

일본어에서 기지,기기시,의 어근은 '긷'이다.수기, 장기의 '기'와 어원이 같은데, '긷>길>기'로 변천했다. 갈매기의 '기'도 새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몽골어에서 꿩은 골고올이다 어근은'골'이다. 꿩은'꾸엉'이 합쳐진 것으로 보이는데, '굴엉>구엉>궝>꿩'으로 변천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렇게 보면, 조어는 '굳(굴)'이 된다. 몽골어 골과 일본어 기지의 어근'긷'과도 어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신화 [수렵 부족] 고구려 유리왕 신화에서 유리왕이 지었다는'황조가'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 설화가 있다.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가 죽으니, 왕이 두 여자를 계실로 맞았다. 그 하나는 화희로 골천 사람의 딸이고, 또 하나는 치희로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이 두 여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에, 왕은 양곡에 동서 두 궁전을 지어 각각 살게 하였다. 한번은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7일간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어, 화희가 치희를 욕하되"나는 한나라 비첩의 몸으로 무례함이 어찌 이 같은가." 하였다. 이에 치희는 부끄럽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제 고장으로 가버렸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갔으나, 치희는 노여움을 풀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이름을 풀이하면 치희는 '꿩 아가씨'고, 화희는 '벼 아가씨'가 된다. 이것은 두 부족의 상징적 명칭으로, 두 사람의 대립은 수렵 부족과 농경 부족의 대립, 즉 종족 간의 갈등을 반영한 사건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치희라는 명칭에서 꿩은 고대 신화시대의 부족의 상징이거나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쓰였다고 할 수는 있다.

무속.민속 [길상] 꿩알은 민간에서 제화초복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믿어 왔다. 경주 지방에서는 봄이면 산에 가서, 꿩알을 주워 구멍을 뚫고 알속을 빼먹은 후, 그 껍질을 실이나 버드나무가지에 꿰어 추녀 밑이나 벽에 걸어 두는 풍속이 있다. 이렇게 하면 풍년이 들고, 집안에 우환이나 재앙이 닥치지 않아 태평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농촌에서 마을을 대표하는 농기의 맨 꼭대기에 꿩깃을 꽂는다. 무당은 신을 섬기며, 신기를 받들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제자로서의 기능을 보유한 자이다. 그는 신과 교섭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잇는 자이기에 꿩깃으로 머리를 장식한다.⇒날개 (무속.민속)

풍습 [사자] 함북 경성은 본디 치성이었다. 조선 새대 때김경서장군이 성을 쌓기 위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지금의 경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때는 겨울이었는데,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눈 위에는 꿩 발자국이 쭉 나있고, 동.남.서쪽에 꿩이 날개를 친 자국이 있었다. 이는 하늘의 지시라 생각하고 꿩의 발자국을 따라서 성을 쌓고, 날개친 곳에다 동문,서문, 남문을 냈다고 한다.

[보은] 옛날에 한 서생이 길을 가다가 구렁이가 꿩 새끼를 잡아 먹으려는 것을 보고, 구렁이를 죽인 일이 있었다. 훗날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치악산에서 지난날 죽엿"던 구렁이의 암컷을 만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 구렁이는 날이 새기 전에 이 산마루의 종이 3번 울리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종 소리가 3번 울리자, 구렁이는 복수를 단념하고 사라졌다. 날이 새어 산마루에 올라가 보니, 종 아래에 3마리의 꿩이 머리가 깨져 죽어 있었다. 이 꿩들은 전에 서생이 구해 준 꿩으로, 은혜를 갚기 위해 종을 치고 죽은 것이다. 그 후로, 이 산을 '꿩 치 (穉)'자에 '메뿌리 악(岳)'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했다.

[진미,보약] 흰 꿩은 신성시되었다. 신라 소지왕에게 가락국에서 흰 꿩을 진상한 일이 있고, 벡제에서도 흰 꿩을 진기하게 여겨, 위덕왕때에 일본으로 휜 꿩을 보냈다. 또, 김춘추가 하루에 쌀3말의 밥과 궝9마리를 먹었고, 백제를 멸한후에는 하루에 쌀 6말,술 6말 ,꿩 10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꿩은 진상품 또는 축하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보신 또는 미약의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상서, 행운] 조선 시대 중엽부터 초례상에는 꿩을 놓고 신랑 신부가 교배했으며, 폐백을 드릴때에도 꿩고기로 포를 해서 놓고 신부의 절을 받았다. 꿩은 상서로운 새이므로, 인생의 중요한 의식에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왕비의 대례복에는 136쌍의 꿩과 278마리의 꿩을 수놓았다. 이는 길조인 꿩으로 길상을 상징한 것이다. 또, 꿩고기는 맛이 좋아 진기한 음식으로 여겨 왔다. 꿩 15마리를 통째로 구워 소금과 기름 양념을 발라 임금에게 바치기도 했다. 이것을 전치수라고하며, '진어찬안'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에 본디는 꿩고기를 넣었다. 새해 첫 음식을 잘 먹으면 1년간 잘 먹으며 지낼 수 있다고 믿어, 새해 첫날에는 서조인 꿩을 먹었다.

우리는 친숙한 꿩은 그에 관한 설화만큼이나 속담도 많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쓰려고 하던 것이 없어서 다른 것으로 대치할 경우이다. 전통 혼례식 초상에도 본디는 꿩을 놓았으나, 지금은 닭으로 대신하고 있다.

일을 치른 후에 뒤가 깨끗하여 아무 흔적없이 말끔히 치워졌을 때, '꿩 구워 먹은 자리'라고 한다.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뼈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은 데 유래한다. '꿩 구워 먹은 소식'이라는 말은 기다리는 소식에 대해 아무런 기별이 없을 때에 하는 말이다. '꿩 먹고 알 먹는다.'라는 말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차지할 때 하는 말이다. 맛있는 꿩고기를 먹게 된 것만도 행운인데, 꿩알까지 얻음은 매우 운이 좋은 일이다

[외고집, 어리석음]

꿩은 개성이 강하여 길들여지지 않는다. "꿩 새끼 기른 셈 치라"는 속담은, 성질이 급하고 외고집이어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벋나가는 자를 비유한 말이다. 또, "꿩 풀섶에 머리 감추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꿩은 다급해지면 풀섶에 머리만 처ꁣ고 몸뚱이를 밖에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가리킨말이다. <장자>

종교 [도교: 자유] 숲에 사는 꿩은 열백 걸음에 한번물을 마시면서도 조롱 속에서 길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조롱 속에서 원기는 왕성할지 모르나, 마음의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를 꿩에 비유한 것이다. 구름처럼 자유로운 인간, 이는 도가의 무위자연 사상과 초세적 은일사상에 바탕한다. 이것은 강호에 묻혀 사는 선비나 죽림 칠현등 자연을 즐기는 이들의 행위와도 상통한다.

동양 문화 [양광과 위용] 꿩깃은 길고 아름다워 동양에서는 예부터 머리 장식이나 기의 장목으로 사용해 왔다. 고구려에서는 전쟁에서 개선한 장군의 머리에 깃털을 꽂아 주었고, 무사들은 머리장식으로 꿩깃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것은 영광과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처럼 꿩깃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풍속은 중국과 몽골에도 많이 보인다.

[절개] 중국 고대 예법(예기)에는 선비가 벼슬을 얻어 처음 조정에 나갈 때 꿩을 들고 갔다.

"꿩은 절개가 있어 죽음으로 그것을 지키고, 오색을 구비하여 문채를 이른다. 선비는 문(文)을 갖춰 질을 돕기를 원하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켜 불의에 굴하지 않기를 원하므로, 꿩을 들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즉, 꿩에서 문채와 절개를 취했다.

[무기력] '문심조룡'에는 "꿩이 채색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나는 것이 고작 백 걸음이고, 살갗은 풍만하나 힘이 부실하다.. 이와 달리, 매는 채색이 없으나 날아오르면 하늘을 솟구치니, 뼈가 세차고 기세가 맹렬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꿩은, 문채는 풍성하나 무기력함을 상징하고 있다.

[절조, 빠름] 옛날 중국 황후의 옷에 3마리의 적치를 수놓았는데, 이것은 교미하는 데 때가 있고, 자웅의 구별이 엄연하며 깃의 채색이 아름다운 꿩의 특성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꿩은 한번 쏜살같이 날아가서는 땅에 내린다. '꿩 치(穉)'자에 '화살시(矢)'자가 들어 있는 것도 이 점을 취한 것이다. 또, 사람들이 배나 수레에 꿩깃을 마련해 두는 것도 꿩이 나는 듯이 빠르기를 바라는 뜻이다.

[자아 도취, 지혜] 장화의 '박물지'에 꿩은 자아 도취의 동물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즉, 꿩은 제 몸에 나 있는 아름다운 털을 스스로 사랑한 나머지, 하루종일 물에 제 몸을 비춰 보다가 눈이 어지러워 물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적치는 긴 꼬리가 있는데, 비나 눈이 오면 그 꼬리를 아끼느라고 높은 나뭇가지 끝에 앉아서 내려오지 않아, 먹이를 주워 먹지 못해 왕왕 굶어 죽느다고 한다.

다섯 걸음에 풀 한 번 쪼아 먹고,/열 걸음에 물 한 번 마신다./천성대로 삶을 이어 가니,/산등성이의 꿩이 옳다,/산등성이 주위엔 주살이 없고,/산등성이 아래에는 매들이 없다./암놈과 수놈, 뭇 새끼들/모두 다 타고난 수명까지 산다.<백거이,산꿩>

이 시는 꿩이 그 생활은 고달프지만, 위해가 없는 곳을 택해 살면서 천수를 누리는 지혜를 읊은 것이다.

역사.문학 [현실비판] 조선 후기 문학의특징은 당시의 완고한 유교적 도덕을 비판, 풍자하는 데 있다. 즉, 양반 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거나 비판하고, 인간의 본능을 중시해 서민의 시대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꿩이 주인공인 '장끼전'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끼는 아내인 까투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붉은 콩을 집어 먹으려다가 덫에 걸려 죽는다. 그런데 장끼는 죽으면서 까투리에게 개가를 하지 말고, 수절해 달라고 유언을 한다. 그러나 까투리는 문상 온 홀아비장끼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을 한다. 채혼한 이들 부처는 명산대천을 날아다니며 자손을 번창시키고 행복하게 살다가 물 속에 들어가 조개가 되었다.

이것은 여자의 말이라고 무시하다가 죽은 장끼와, 장끼의 장례식이 끝나자 바로 개가한 까투리를 통해 당시의 남존여비와 개가 금지의 도덕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까투리의 행동을 통해 여권의 신장을 도모한 면도 있다.

[서민의 애환, 자유] 민요에서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사는 서민의 생활을 꿩의 ��ꑁ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꾸엉꾸엉, 꾸엉 서방,/아들 낳고, 딸 낳고,/무얼 먹고 사나./앞밭에 가 콩 한 되/그럭저럭 먹고 살았지. <청양 지방 민요>

이와 같이, 꿩은 서민의 빔한한 살림살이와 결부되어 있다. 근근이 살아가던 당시 우리 농민의 삶과도 같다. 꿩은 우리 민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과 가까이 또는 인간에 비유되어 그 역사를 이어 왔다. 다음의 글에서 꿩은 그 자유의 싱싱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날고 있다.

스무마리는 넘어 되는 꿩 떼가 요란스럽게 푸득여 날개를 뒤흔들며 비둘기 떼처럼 노을 속에 치솟아 올라갔다. 금방 무지개가 섰다가 스러지는 것 같았다.<유현종,비무장지대>

여기서 작가는 생동감 있는 꿩 때의 표현을 통해 우리의 분단 현실을 말하고 있다.

현대.서양 [신비] 극동 지방에서는 꿩의 상징성이 대단히 풍부해 우주적 조화, 태초의 빛 등을 상징하고, 그 노래와 춤으로 세계의 대통치자의 도래를 예고해 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소설가 베른은 꿩을 신비로운 세계에 사는 새로 보았는데, 이는 색깔의 아름다움에 기인한다.

[요절한 아들] 그리스 신화에서, 이틸로스는 어머니에게 잘못 맞아 죽어서 꿩이 되었다. 그 어머니는 나이팅게일이 되어 밤마다 죽은 아들(꿩)을 위해 슬피 울었다. 이후 꿩은 요절한 아들을 상징하고, 나이팅게일은 모성애를 상징하게 되었다. 한편, 꿩은 깃털의 화려한 색상으로 인하여 아름다움과 사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도상[절개,도덕] 고대 중국 황제의 의복에 수놓은 12종의 자수 무늬를 십이장이라 했는데, 십이장 무늬중에서 꿩을 화충이라 하였다. 이 화충�르 수놓은 까닭은 아름다움과 다양한 빛깔이 곧은 절개와 덕을 실천해야 함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 한다.

조선 시대 임금의 면복에는 구장복을 착용하였는데, 꿩은 상의에 수놓았다.

[의장] 꿩깃으로 만든 부채를 치선이라 한다. 그리고 긴 자루에 꿩깃을 엮어 만든 것을 치미선이라 하는데, 의장용으로 사용하였다.

 

낫 ------------------------------------------------------------------------------------------------------------------------------------

어원 낫의 고어는 '낟'이다. 일본어에 나타가 있다. 칼날의 '날'은 '낫'과 어원이 같은 말이다. 일본어 가타나는 우리말 칼의 고어 '갇'과 날의 끝소리가 탈락된 나와의 합성 명사이다. '날카롭다'는 옛 문헌에는 '날캅다'로 나온다. 날과 칼의 합성 명사가 형용사로 바뀌었다고 하겠다. 즉, '날-칼'에; 어미가 덧붙어 '날캅다'가 되었다.

신화 [성조신의 창조물] 무속 신화인 성조대감 이야기에, 그가 낫을 처음 만들엇다는 내용이 있다. 천궁대왕과 옥진부인 사이에 태어난 그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인간에게 집을 지어 주려고 상철과 중철,그리고 하철을 각각 5말씩 녹여 도끼, 칼, 자귀, 톱, 대패, 끌, 낫 등의 연장을 만들었다., 성조신이라는 이름은 인간에게 집짓는 법을 처음 가르쳐 준 데서 비롯된다.

무속.민속[흉기] '낫으로 다른 사람을 겨누지 말라. 겨누다가 살 내리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선인들은 날카로운 쇠붙이로 사람을 겨누면 직접 다치지 않아도 살이 내려 상대방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송곳, 칼, 낫 등으로 사람을 겨누지 못라게 아였다. 사람의 몸에는 여러 가지 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살기가 응집하여 손가락을 통해 뻗쳐 나가면 사람을 해칠 수 있고, 낫과 같이 날카로운 쇠붙이를 통해 뻗쳐 나가면 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으므로, 주책없이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땅바닥에 있는 낫을 뛰어넘으면 질색을 한다. 쇠붙이에도 사람의 심성 같은 것이 있다는 속신이 있어서, 낫을 뛰어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대접을 받지 못한 낫은 사람을 해친다는 것이다.

[보복]낫의 날은 항상 시퍼렇게 갈아 두며, 끝이 뾰족하여 남을 해코지할 때도 이용된다. 도둑을 맞았을 때, 마당에 사람의 형상을 그려 놓고 가슴 부위에 낫을 꽂아 두면 도둑이 죽는다고 여겼다.

풍습[수확, 풍요] 낫은 풀이나 나무, 곡식 등을 베는 연장이다. 벼나 보리를 베는 일은 곡식을 거두는 것이므로, 낫은 당연히 수확과 풍요를 상질할 수 있다

[공격, 파괴] 낫은 풀이나 곡식을 베는 연장이면서 사람을 찍고 칠 수 있는 속성이 그 공격적, 파괴적 상징성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낫은 수확과 풍요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공격과 파괴를 상징하는 양면성이 있다. 후자의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낫은 때로 남성 상징으로 활용되기도한다.

[내기] 여름철에 꼴을 베거나 겨울에 땔나무를 하던 농촌의 청소년들은 낫을 땅에 던져 겨루는 '낫치기'를 하기도 했다. 풀이나 나무를 한 아름씩 베어다가 쌓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낫을 던져 그 위에 꽂는 사람이 풀이나 나무를 차지하는 내기이다.

[풍류] 옛날 선비들은 유람길이나 유배길에 오를 때 낫을 지니는 관습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시흥이 일면 굵은 나무의 일면을 낫으로 깎아 내고 거기에다 붓으로 시를 썼다. 그래서 이 낫을 '풍류 낫'또는 '시도'라고 했다.

유랑 시인 김시습도 그랬고, 기묘사화로 제조도 유배길에 오른 김정도 전라도 해남에 이르러 해변의노송을 풍류낫으로 깎아 이를 시판으로 시를 적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동양문화[청렴]낫은 모양이 작고 날이 얇으며, 나무나 풀을 조금씩 베므로, 청렴한 자와 같다

[흉기] 공자가 길을 가는데, 구오자라는 사람이 낫을 끌어안은 채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저는 세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제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돌아와 보니,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첫째 잘못입니다. 임금을 섬기면서 임금의 교만과 사치스럼움을 간했으나 그것을 고치게 하지 못했으니, 둘째 잘못입니다. 그리고 벗들과깊이 사귀고 나서 절교했으니, 이것이 셋째 잘못입니다. 그러니 낫으로 목을 잘라 죽게 내버려 두십시요"라고 하였다. 여기서 낫은 자살용 흉기로 사용되려고 한다.

낫이 나무나 풀을 베고 곡식을 거두는 연장이면서 흉기로 사용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역사.문학[어머니의 사랑] 고려 가요'사모곡'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더 적극적이고 지극함을 읊고 있다.

호미도 날이언마는,/낫같이 들 리도 없으니이다./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위 덩더둥셩/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아소 님하,/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무딘 호미는 대범한 아버지의 사랑을 비유하고, 날카로운 낫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하였다. 봄, 여름에 곡식을 심고 북을 돋우는 호미는 날을 두터워 튼튼하나, 가을 걷이에 사용하는 벼린 낫의 날은 섬세하고 예리하여 이가 빠지기 쉽다. 이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과도 통한다. 이같이 어머니가 낫이라는 상징성은 특이한 점이다.

[살의, 공격성, 죽음, 방어력] 황토담 너머 돌개울이 타/죄 있을 듯 보리 누른 더위....//날카로운 왜낫 시렁 위에 겅어 놓고/오매는 몰래 어디로 갔나.//바위속 산도야지 식식거리며/피 흘리고 간 두럭길 두럭길에/붉은 옷 입은 문둥이가 울어.... <서정주,맥하>

때로...../초부의 날선 낫이/내 아끼는 가지를/찍어 가고.... <박두진,연륜>

낫의 베고 자르는 속성은 공격과 방어의 무기로 나타난다. 방어는 원초적인 표현인 모성애로도 비유도고, 공격의 속성은 박두진의'연륜'에서처럼 침략자로 비유된다.

서정주의'맥하'에서 낫은 어머니의 보호 본능에 비유되면서 어머니가 없는 집 안에서의 심리적 공포는 집 밖의 멧돼지와 시렁 위에 걸린 낫의 대결이라는 환상을 자아낸다. 홀로 있는 대낮의 공포룰 이기는 무기가 곧 낫이고, 이 낫은 어머니의 비유물이다.낫은 살의,공격성, 죽음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막아 주는 모성의 방어력을 표상이다.

현대.서양[수확,시간, 죽음]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는 농업과 수확 및 시간의 신인데, 그의 손에는 낫이 들려 있다. 수확기에 농작물�르 베어 내듯이, 낫이 시간을 벰을 나타낸다. 따라서 낫을 죽음을 상징한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요한계시록14:15~17>

구름의에 앉으신 이가 가진 낫은 죽음을 상징한다.

[거세, 남근] 낫은 베어 버리는 도구인데서 때로 게세를 상징한다. 고대의 토속 신앙에서 풍요의 왕을 그 치세의 종말에 이르러 거세하는 데 낫을 사용했다.

토머스는 낫을 남근의 뜻으로 사용했다.

짓밟는 것, 씨를 심는 방아질을 두려워하지 말라./방아쇠와 낫을, 그 혼례의 칼날�르 두려워하지 말라.<토머스.모든 메마른 세계가>

[농민]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집권했을 때, 낫과 망치를 국가의 기장으로 사용하였다. 낫은 농민을 망치는 공장 근로자를 상징한다

도상[농경] 낫은 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신석기 시대 유물 중에는 돼지 이빨로 만즌 낫이 발견되었고, 암사동 유적에서는 석기 중에서 낫이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에 농경이 행해진 증거이다.

 

누에 ------------------------------------------------------------------------------------------------------------------------------------

어원'누워 있는 벌레'라는 뜻이다. 중세어형은'누웨,우에'이다.

'눕+벙이>누웨>우에'의 어형 변화는 '굽(굼틀거리는)+벙이', '鏉+방이>나방이>나ꟁ螡'와 같은 조어형으로 '눕다' 동사에 원형 어근'mag,pag'의 변화형 '蝡벙'에 '蝡이' 접미사가 붙은 형태이다.

무속.민속[태양의 사자] 누에는 천충이라 했다. 따라서, 천충을 먹이는 뽕잎은 천약이며, 뽕나무는 천목이 된다. 또 누에를 천잠이라고 한 것은 차가운 외기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벌레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열을 내뿜는 원천으로 태양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누에를 태양의 사자로 생각했다. 그리고 뽕나무를 신성시하는 것은, 옷에 대한 인간의 신앙적 감사에서 비롯되었다.

[신성)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는 잠실에 '우씨공주'라는 신위를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청명일에는 백호 쪽을 향해 기도를 한다. 음력3월25일 밤, 대추와 팥�르 넣어 속칭 잠화죽을 끓여 잠실에 넣으면 누에가 잘 된다고 한다. 2월의 첫 임일에 집 네 귀퉁이에서 흙을 모아 잠실의 네 귀퉁이에 뿌리면 누에가 잘 자란다고 믿었다.

마을에 따라서는 풍년제나 동제 때에 부제로서 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사제는 마을에서 가장 베를 잘찌는 할머니가 맡기도 했다. 제삿날이 정해지면 사제는 보름 동안 외출을 금했다. 상사나 혼사의 행렬이 사제 집 앞을 지나서도 안 되었다. 또, 마을에서 보름동안 살생을 해서는 안 되는 등 신성한 가운데 제사를 지냈다. 이 날, 과년한 처녀들이 곡식을 몇 되 퍼 와 이 사제에게서 손바닥을 스치는 손물림 의식을 치러 길쌈 재주를 주술적으로 물려받았다.

풍습[국가 제사의 대상] 모든 물체에 고루 정령이 있는 것으로 믿었던 애니미즘의 하나로, 가엾게 죽은 수많은 누에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선잠단에서 국가적으로 해마다 지냈다. 고려 때부터 잠신인 서릉씨를 모시는 제단�르 만들고 음력 4월 첫 사일에 선잠(서릉씨)를 모셨는데, 이 때 사용하는 음악을 선잠악이라 했다. 당상에서는 남려, 당하에서는 고선을 썼고,신을 맞이하고 보낼때에는 황종궁을 썼다. 부락제 때, 부제로서 정기적으로 제사를 재냈다.

[신성] 잠실은 신성한 곳이어서, 옆에서 방아를 찧어도 안 되고, 실내에서 곡성을 해도 안 되며, 음탕한 대화나 방사도 안되고, 삼모의 출입도 금지되었다.

[신주택에 대한 경계] 꿈에 누에를 보면 갑갑한 일을 당하리라고 한다. 또, 누에는 평생 동안 일해 집짓고 들어앉아 생을 마치므로, 사업에 성공하여 가산을 이룬 사람이 말년에 집을 짓고 입주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결혼 조건] 며느리를 볼 때, 누에를 몇 해 길러 보았느냐가 결혼의 한 조건이었다. 누에를 기르면서 안존한 습관이나 근면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인]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눈썹을 아미라 한다. 아미로 미인의 눈썹을 비유하기도 한다

[회개, 순종] 뽕잎을 먹고 고치를 지어 비단실을 토해 내는 누에는 인간의 의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난다. 남편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던 부인이 누에로 변하는, 우에의 기원담에 대한 다음의 설화에도 이러한 속성이 반영되어 있다.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고 과거 공부에 전념하지만, 번번이 낙방만 하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하루는 부인이 훑어 온 피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만 읽자, 실망한 선비의 부인은 가출하고 말았다. 선비는 자책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했다. 고을 사또로 부임하는 길에, 선비는 아직도 피를 훑고 있는 부인을 발견하고는 엽전 한 꾸러미를 던져 주었다. 개가한 부인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선비 앞에 몸을 던져 죽었다. 선비가 시신을 수습하려고 손을 대자, 여인은 누에로 변하며 허공에서 "죽어서나마 서방님 몸에 감기고 싶어 누에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남편과 부인의 관계가 몸과 의복의 관계로 전이되고, 부인의 회개가 끊임없이 실을 자아내는 누에의 근면성과 순종성으로 연결됨을 보여 준다.

종교[유교:산업] '주례'를 보면 상고 때부터 양잠은 왕후가 주관하는 국가적 제사에 의해 장려되었다. 조선 새대에는 왕실 직영의 잠실을 설치하였다. 맹자도 일찍이 강조하였지만 유교적인 차원에서 누에는 뽕나무와 더불어 백성의 중요 산업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불교:중생] 누에는 중생과 같다고 하였다. 모든 누에가 고치를 만들고 죽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생사 가운데 스스로 업을 짓고 죽어 버린다고 하였다.

[도교:신선, 불사] '열선전'에 원객이라는 사람이 누에를 쳐서 장독 크기의 고치를 얻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누에의 탈각을 통한 변태의 과정이 불사를 상징한다.

동양문화[중국:여신] 양잠은 고대 농경 사회에 있어서 부녀자의 중요한 생산 활동의 하나였다. 그래서 비단의 생산력 증대를 위한 노력은. 누에를 숭배하는 민간 신앙과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사를 성립시켰다. 전설에는 중국 황제의 비 서릉씨가 최초로 누에를 길러 비단을 짰다고 한다. 고서'산해경'의 해외북경에는 이미 양잠과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수신기'에는 자기가 기르던 말과의 결혼 약속을 위반한 처녀가 죽은 말가죽에 싸여 누에로 화했다고 한다. 이렇듯, 양잠은 여성과 말과 관계가 깊다. 이는 양잠이 여성의 전업이면서 누에의 형상이 말머리를 닮은 것에 비롯된다.

민간에서 누에는 신격화되어 선잠, 마두랑, 청의신, 잠고 등 잠신으로 숭배되었는데, 촉 지방의 청의신 외에는 모두 여신이다.

[교역품] 누에에서 뽑은 실로 비단을 짜는 일은 고대 중국의 특산이었고, 서양에서는 이 신기한 섬우를 손에 넣기에 바빴다. 실크 로드를 통하여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오아시스 국가를 연결해 다니면서 이득을 보았다. 지금도 비단을 한 필 두 필로 세는데 그것은 말 한필과 비단 한필을 맞바꾸었던 데에 유래한다. 또 한자 匹자는 비단을 양끝을 본뜬 상형 문자이다.

[헛수고] 누에 늙어서 고치 되어도 몸 비호하지 못하고, 벌 굶주리며 꿀 모아도 남의 것 되는도다. 모름지기 알아 둘 것은, 늙어서 집안 걱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 두 벌레의 헛수고이리라.

[일본: 신성] 누에를 오카이코사마, 오코사마 등의 경칭으로 부르는 지방이 많다. 벌레에서 비단실이 나오는 것에 외경심과 신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양잠 기간에는 죽순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대의 마디와 같은 음의 후시고라는 병이 누에에 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거상 중인 집에서는 뽕잎을 다른 지방에서 사 와야 한다. 또한, 정월 보름에는 양잠이 잘 되도록 기원을 하고, 누에올리기를 끝내고 난 후에는 수수경단이나 떡을 만들어 축하한다.

역사.문학 [국가 산업] 백성들에게 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는 산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왕비가 궁중에서 손수 누에를 쳤던 친잠단이 경복궁에 있었다. 또, 누에의 넋을 달랜 선잠단을 기념한 표지가 서울 성북동에 있다.

서울 남산의 서쪽 끝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잠두라 이름하고 뽕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는 국가적으로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시책의 일환이었다.

[재산 증식, 권선징악] '유양잡조속집'에 누에가 모티프가 되어 이루어진 신라의 방이 설화가 전한다. 방이는 빌어먹으며 살았다. 이웃에서 땅 한 뙈기를 주어, 농사를 지으려고 누에와 곡식 씨앗을 부자인 아우에게 구했다. 심술궂은 아우는 구것을 쪄서 주었다. 그 삶은 누에 종자 중에서 1마리가 부화되어 무럭무럭 자랐다. 10여 일이 자나 황소만하였다. 아우는 이를 시기하여 몰래 그 누에를 죽여 버렸다. 그러자 사방 100리 안의 누에들이 모여들었다. 이웃이 모두 모여 실을 켜도 다 해내지 못하였다. 방이는 누에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이 설화는 양잠에 의한 재산 증식과 권선징악적인 의도를 표상하고 있다.

[인간의 이용물] 실을 토하여 교묘한 재주를 잘 부리나/고치를 지어 도리어 삶아진다./약은 것 같아도 어리석으니,/내 홀로 너를 가엾어한다. <이규보,누에>

인간의 이용물로 죽어가는 누에를 가엾게 여긴시이다.

[여성 노동] 누에들은 배가 고파서 모가지를 높이 쳐들어 내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에 봉잎을 듬뿍 집어서 누에 위에 확 뿌려 주었다. 누에들은 좋아라하고 봉잎을 소나기 소리를 내면서 먹었다.<이광수,나>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세./정든 임 따라서뽕 따러 가세./얼시구나 좋다, 절시구나 좋다./정든 임 따라서 뽕 따러 가세.<아산 지방 민요>

시누이와 울 어머니/뽕을 따러 가았네/ 동편 가진 내가 따구,/서편 가진 어머니 따네./뽕 가지가 좀먹어서/강물 위에 뚝 떨어지네./오라버니 바라보고/저의 색시만 건지려네./오라버니는 야속하지.<안변 지방 민요>

누에치기는 문학에서 주로 여성 노동으로서 여성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현대.서양[변모] 서양에서 누에는 변모의 상징이다. 누에고치는 입문에 필요한 비밀스러운 방이며, 모태이고 터널이다. 그것은 변화의 두 단계 간에 존재하는 과도기적 상태이다. 빛나는 명주실을 뽑는다는 점에서 완성을 위한 전단계의 상징이다.

[운명, 희생] 괴테는 '타소'에서 "누에가 점점 죽음이 가까워진 다 해도 실을 잣지 않고 배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게오르규는 "누에는 나비가 될 아름다운 몸과 그 날개, 그리고 심장과 발을 모두 용해시킨다."고 하였고,또 "누에는 자신의 모든 존재를 비단으로 변형시킨다. 고작 ꅼ 미터의 비단실을 뽑아 내려고 누에는 죽는다. 기꺼이스스로를 소멸시킨다."고 하였다. 여기서 누에는 운명과 희생,도약을 상징한다.

[일편단심] 그리스 신화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비련은 뽕나무와 얽혀 전한다. 티스베가 사자에 물려 죽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자살한 피라모스의 피가 뽕나무에 튀어, 이제까지 하얗던 열매 오디가 붉게 변했다. 그 후로 오디는 이 연인들의 일편단심을 기리어 검붉은 빛깔이 되었다고 한다.

 

달 -------------------------------------------------------------------------------------------------------------------------------------

어원 달의 또 하나의 고어는 '보름'으로 추정된다. 보름은 음력15일을 뜻하면서 만월이 되는 날이다.

만주어나 여진어 등 퉁구스어권에서는 '뱌'가 있는데, 이는 '바'에서 변한 말이고, 본디는 발[月]로 여겨진다. 국어에서도 원래는 보름의 어근 '볼-'이 달의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달이라는 말의 신진 세력에 밀려 보름의 뜻이 축소되어 15일, 즉 달이 꽉 차는 날만을 가리키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일본어 쓰키는 국어 '달'이 변한 말이다. 보름달일 때의 본뜻은'닫, 달'로 보인다.

만주어에 뱌다리가 있다. 국어의 달이 만주어에서 복합어일 때에 '다리[달]고 나타난다. '뱌다리'는 '달달'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알타이 조어나 고구려어에서 '높다, 산'등을 뜻하며 어근 '달-'이 모음 교체 및 접사 첨가 등에 의하여 '들다/달다/다락/달' 등으로 분화, 발달하였다. 한편, '또 다른 땅'을 뜻하는 '다�'에서 '달'로 변천했다는 설도 있다.

신화[여성] 신라 아달라왕4년(158), 동해변에 사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은 각기 해와 달의 정이었기 때문에,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그리하여 신라의 왕은 사신을 보내어 그들을 오게 했으나 그들은 오지 않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면서 하늘에 제사 지내게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이 신화에서 달의 정기인 세오녀는 여성이므로,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가움, 냉혹] 제주도 무속 신화 천지왕 본풀이에, 천지 개벽 직후에 해도 둘, 달도 둘이 떠 있기 때문에, 낮에는 사람이 타서 죽어가고, 밤에는 얼어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달은 차가움, 냉혹 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법의 법] 어지러운 세상을 걱정하던 천지왕의 둘재 아들 소별왕은 형인 대별왕을 찾아가 혼란을 바로잡아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대별왕은 천 근 활과 천 근 살을 준비하여 하늘에 2개씩 떠 있는 해와 달 중에 각각 앞의 것은 두고 뒤의 것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 후로는 해와 달은 하나씩 뜨게 되어 사람들이 살기 좋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해도 하나, 달도 하나인 것을 우주와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위한 '법의 법' 이라고 말하여, 해와 달의 운행을 우주 빛 인간 세상 질서의 기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무속.민속[전신, 조상신] 고대의 일월(신) 신앙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민속 신앙화되었다. 무속 신앙에서 남녀의 짝으로 표현되는 일월 천신은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신라적인'일월의 정'이 재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일월 신앙의 자취는 제주 무속에서 풍부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 무속에서 '날궁전, 달궁전'의 일월신 외에 일월 조상이 있다. 그 중에서 날궁전과 달궁전은 신격화된 해와 달이지만, 일월 조상은 집안 또는 씨족의 수호신으로서, 조상에 붙은 일월은 일종의 수식적인 관형어로 봄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비손(기도)을 할 때, "천지 신명이시여, 일월 성신이시여!"라고 한다, 이것은 달이 우주론적인 차원의 신격으로 섬겨짐을 의미한다. 또 '현씨 일월본', '양씨 일월본'과 '홍부 일월본','첵불 일월본' 등 본풀이(신화)가 있는데, 이들은 주어진 특정 성을 가진 지역 조상신이나 특수한 직종의 조상들을 다루고 있다. 일월이란 조상신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해와 함께 달의 신격화를 헤아리게 된다.

[풍요, 섭리] 달은 농업과 관련된 풍요를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운행, 섭리까지도 아울러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농어촌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활력은 달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시풍속과 맺어진 달에 대한 민속 신앙 행위는 상원, 곧 정월 대보름에 집중적으로 새행되었다.

달맞이와 달불이 같은 풍흉을 점치는행위, 용알뜨기와 같은 주술 행위, 다리 밟이와 달집에 불놓기 같은 주술적인 놀이등은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이들을 통츨어 생각할 때, 달은 시절 운행의 이법을 상징하는 외에, 농사의 풍요로운힘, 여성 생산력의 근원 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들 세시 행사 중에 용알드기나 다리밟이를 유의해 살펴보면 달은 물이나 여성과 맺어져 풍요로운 생산력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월 영등굿을 할 무렵, 일부 지방에서 행하는 좀생이별보기는 밥그릇에 비유된 반달과 아이들에 비유된 좀생이별 사이의 거리를 기준으로 하여 그 해의 풍요와 흉작을 점치는 것이다. 좀생이별과 달이 나란히 운행하거나 거리가 가까우면 풍년이 들며, 멀리 떨어져 있으면 흉년과 재앙이 자주 일어나 불행하다고 판단한다.

풍습[흥망 성쇠, 영생, 재생] 달은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찬다. 완전히 기울면 사흘 동안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이것이 달의 기울고 차는 이치이지만, 그것이 주기적, 항구적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달은 삶이나 시절의 영고와 기복, 흥망 성쇠를 상징한다. 또, 달이 사흘 동안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죽음으로 비유되는 데 비하여, 차고 기욺은 탄생에 이은 성장과 노쇠에 비유됨으로써 달은 '중단 있는 영생과 재생'을 상징한다.

부녀자들의 강강술래를 비롯한 몇몇 지방의 원진무는 달이 가지는 중단 있는 영생이라는 관념이 구체화된 것이다. 이들춤은 기본적으로 달춤으로 ,특히 강강술래는 매우 미세한 묘사를 통해 달의 차고 기욺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달은 재생 또는 부활의 기본적 원형이 됨으로써, 또 다른 중단 있는 영생의 상징들 중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즉, 곰과 뱀, 두꺼비, 개구리 등 겨울잠을 자고 봄에 다시 나타나는 동물들은 달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또 달은 밀물과 썰물에 영향을 끼치므로 조수의 주관자로 생각되어 왔고, 나아가 우주적인 힘의 주관자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조화, 융하브 정화력] 달은 그 빛이 부드럽고 감싸는 듯, 물기를 머금은 듯한 느낌으로 말미암아 여성적인 서정성, 조화와 유합, 내밀스런 공감 등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밝은 빛은 정화하는 힘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외로움, 소외] 달은 차가운 듯한 느낌 때문에, 외로움과 슬픔, 소외의 온유로 흔히 쓰였고, 정한의 서정을 표상해 왔다. 그런가 하면, 삶의 생체 주기 또는 생체 시간이 달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데서 달은 삶의 운행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점은 특히 여성의경우에 강조되어, 여성의 월경을 달의 것 또응 몸의 것으로 부르게 되었다.

종교[유교:군자의 덕] 유교에서 직접 달의 상징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으나, 사대부의 시조를 통해 달은 청한 ,청정하고 은일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것으로 노래되어 왔다. 때로는 제왕의 밝은 식견이나 품성이 달에 견주어지기도 했다.

[불교: 원융] '월인천강지곡'이나 '월인석보'는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한 책이다. 이 책명에서 한국 불교가 달에 부여한 상징성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즉, 한국 불교에서 달 그림자 또는 달빛이 불법을 상징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달은 밝고 원만하되,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는다. 원융 자재한 달은 불교적 이념 구현을 상징하게 되었다.

한편, 강이나 바다 등 물에 비치는 달은 어느 곳에서나 같은 모습,같은 밝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항구여일한 진리의 보편성을 상징하고 또 진리가 구석구석에 고루 미쳐 있음을 상징한다. 또, 달은 해와는 달리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점으로 해서 무명 곧 불교적 무지를 벗어나게 히는 힘- 유명을 상징한다.

[도교: 여성적 아름다움] 도교적인 관념으로 달은 항아라는 선녀가 살고 있는 월궁이므로 맑고 거룩한 신선의 삶이 지닌 빛으로 생각되어 왔다. 서쪽 하늘의 신인 소호의 어머니이자 월궁의 선녀인 항아의 신화와 전설, 전체가 우리에세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항아라는 선녀를 통해 달의 여성적 아름다움이 집약적으로 표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달은 도교적인 초월이나 승화에 관련된 상징성을 갖추고 있다.

동양 문화[천신, 여성, 풍요, 재생] 중국에서는 태양군과 태음군이 있어서 그들의 달숭배를 구상화시키고 있다. 태양군과 태음군, 그리고 자미군 셋을 합치면 일월성신이 되므로, 이것은 한국인이 축원할 때 부르는 천지 신명, 일월 성신과 비견될 수 있다. 또,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제왕이'조일석월'이라고 하는 신앙 의식을 집전하였다. 여기서, 달 숭배는 국가적 공식 종교로 수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중국인은 달 속에 두꺼비나 토끼가 있고, 계수나무를 무단히 찍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특이하다.

달은 음에 속한다. 초승달이 처음 서쪽 하늘에 나타나고, 서쪽은 음에 속한다. 가을도 음에 속하므로, 중국인들은 가을의 달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가위인 8월 15일 밤, 달에 바치는 물건들은 모두 특정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조롱박은가정의 결속을, 석류는 자식의 많음을, 배는 평안을 상징한다. 그리고 추석에 먹는 둥근 달떡, 즉 월병은 만월의 모양과 같다.

일본 신화에서도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짝지어진 달의 신 쓰키요미노카미가 있어서, 해와 함께 달이 숭배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달은 바다를 에워싼 우주론적인 힘이나 원리라고 생각되었다. 일본인들도 정월 대보름과 8월 추석에 달과 관련된 행사를 치르는데 대보름과 추석을 성대하게 치르는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문학[서방 정토의 빛] 달은 문학에서 중요한 소재였다. 그 상징성을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까지 일관되게 추적할 수 있다. 백제 가요'정읍사' 에서의 달은 삶의 간난과 어둠을 쫓는 밝음으로 그리고 기다림의 정과 더불어 기구의 환기자로서 노래되고 있다. 신라 향가'원왕생가'에서의 달은 서방 정토의 빛, 서방정토와 사람 사이의 매체 또는 구원자로 나타난다.

광덕은 달빛 아래에 가부좌하고 참선 삼매에 젖었다. 또, 월명사가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이 운행을 멈추었다고 한다. 여기서 달은 자연적 신비 체험의 매체나 객체였음이 짐작된다.

[시정, 절개, 고독, 정한, 평화] 한시와 시조에서 달은 시정이나 시흥을 일깨워 주는 매체이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야광 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있으랴.<박팽년>

이 시조에서의 달은 맑고 높은 절개의 상징이다. 그러나 현대문학에서는 개인의 개성에 따른 이미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고, 말으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세상에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평화와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든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나도향, 그믐달>

나도향의 글에서는 달이 고독, 정한, 변덕, 무정, 몽롱, 몽환, 평화 등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다.

현대.서양[집단적 무의식] 현대에 있어서도 달은 전통적인 집단적 상징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인공 위성 등으로 달이 다소 탈신화했으나, 시적 서정이나 생활 정서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징성은 지켜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보름 달놀이나 추석 달놀이 등은 집단적 무의식을 끊임없이 촉발하고 있다.

[여성, 변화, 사후의 땅] 서양에서 달을 남과 여, 물과 휘발성,영원과 변화 등 서로 모순 대립되는 것들의 짝을 그 상징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와 이집트에서는 달이 지상에서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땅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모성, 물의 흐름이나 인체에서의 피의 흐름의 통제자. 신비롭고 주술적인 힘의 환기자 등을 상징하는 한편, 성스러운 처녀성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 전통을 크리스트교에서 그대로 계승하여 성처녀 마리아라는 관념과 맺어졌다.

도상[대지, 공명정대] 선사 시대 이전부터 토기 또는 청동기에서 달이 해와 함께 표현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으로 그려져 전해 오는 것은 고구려 고분 벽호에서이다. 남성적인 원리가 해로 형상화되고 여성적인 원리가 달로 묘사되었다. 벽호에서 해를 머리에 이고 나는 월신은, 하체는 용신이고 상체는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상은 고대 우주 발생설과 관련되어 신화적으로 그려 왔다. 해는 양, 달은 음으로, 음은 대지, 어둠, 정적, 여성 등의 상징성을 지녔다.

궁궐의 옥좌 뒤에 일월과 산악의 그림을 그려 놓은 오봉일월도는 장생의 의미와 관리들의공명 정대한 행정을 촉구하는, 선정의 의미도 담겨 있다.

[두꺼비, 토끼] 무덤의 천장에는 7개의 성좌와 북두칠성이 표현회고, 또 해와 달의 도상이 그려져서 천체를 나타내고 있다. 달의 도상은 원곽 안에 섬여라 부르는 두꺼비로 표현되어 있다. 또는, 원곽안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 장생약을 만드는 옥토끼가 약을 찧고, 그 앞에 두꺼비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선비의 멋] 달 밝은 가을 밤에 깎아 세운 듯한 낭떠라지 아래 잔잔한 강물에 작은 배1척을 띄우고 동자 1명과 술 항아리를 싣고 즐기는 선비가 있다. 그 선비는 물 속에 비친 달을 두 손으로 건지려고 한다. 이는 '급월'이라는 제하에 작가 미상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중국 당나라 이백의 고사와 비슷한 장면을 그려, 호방한 선비의 멋을 상징작으로 나타내고 있다.

신윤복의 '풍속도첩'중의 '월하정인'은 "달이 기울어 밤은 삼경인데, 두사람 마음은 그 두사람이 안다."라는 화제이다. 야삼경을 알려 주는 초승달이 강조되고, 어느 집 담장곁에서 남녀가 밀회를 즐기고 있다. 쓰개치마를 머리에 쓴 여인의 얼굴에는 발그레한 빛이 연연하고 젊은 선비는 호롱불을 들고 정담을 나누고 있다. 조선 시대의 유교적 사회 윤리관으로 볼 때, 이 같은 밀회는 모험적인 풍정이다.

 

도깨비-----------------------------------------------------------------------------------------------------------------------------------

어원 도깨비는 15세기 문헌에는 '돗가비'로 표기되었다.

허수아비는 헛아비의 뜻을 지닌 말이라 하겠다. 방언으로는 '허새비,허재비'가 있다. '모가비'는 낮은 무리의 우두머리라 하겠는데, '목아비'라 하겠다.

'돗가비'는 '돗衁'과 '아비'의 합성어이다. '돗衁'의 원형은 '돗' 이다. '도섭'이라는 말은 능청맞고 수선스럽게 변덕을 부리는 것을 뜻하는데, 어근은 '돗'이다. '돗아비'에 衁이 첨가되어'돗가비'가 되었는데, '돗가비'는 수선스럽고 능청맞게 변덕 부리는 아비라는 뜻이다.

다 닳은 부지깽이나 빨랫방망이, 절굿공이, 키, 홍두깨 등은 여자의 생리적인 피가 묻으면 도깨비로 변한다고 한다. 이렇게 닳아빠진 생활 도구를 쓰기까지에는, 가난과 괴로움과 무력한 남편에 대한 여인들의 한이 스며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한이 스민것들이 변해 '돗가비'가 된다.

신화[신통력, 야행성] 도깨비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귀류이다. 그런데 도깨비의 특징이 너무 다양해 그 개념의 한계를 분명히 하기가 어렵고, 때로는 귀신이나 유령과 혼동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도깨비의 특징으로 두드러진점은 그것이 자연귀라는 것이다. 신화에서의 도깨비는 그리 중요하거나 큰 역할을 하지 않지만, 그가 지닌 신통력을 발휘하여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최초로 도깨비가 문헌에 나타나기는 삼국유사의 도화녀 비형랑조이다. 여기에 나오는 귀신은 도깨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라 제 25대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와 7일간 교혼하여 비형을 낳았다. 그는 밤마다 나가서 새벽 종 소리가 울릴 때까지 서천 가에서 도깨비들과 놀다가 돌아왔다. 진평왕이 이를 알고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으라 하니, 비형이 도깨비들을 이끌고 하룻밤 사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이를 귀교 또는 대석교라 하였다. 또, 도깨비 중에 선발된 길달은 홍륜사의 누문을 지었는데, 그가 여우로 변해 달아나자. 비형은 다른 도깨비를 시켜 죽여 버렸다. 이로 보아, 도깨비는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의 속성이 있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완성하는 등의 신통력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왕의 혼령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은 귀신과 인간의 양면성을 지닌 신인이며, 그 능력은 음의 물형인 귀신이 양의 상징인 복숭아나무 가지를 무서워하는 점으로 미루어, 어머니 도화녀의 이름도 그 위력에 한몫을 했을것으로 추정된다.

무속.민속[한풀이] 무조 신화 바리공주에 나오는 무장승의 모습은 도깨비의 어느 한 면과 일치한다. 무상 신선, 무상 선관 등의 도교적 이칭을 가진 그는'날 짐승도, 기는 버러지도 못 들어오는' 세상의 끝에서 네 기둥으로 둘러싸인 곳의 중앙에 서서, 부모의 중병을 고치기 위해 당도한 바리공주를 맞이한다. 그러나 '키는 하늘에 닿은 듯하고, 얼굴을 쟁반만 하며, 눈은 등잔만 하고, 코는 줄병 매달린 것 같으며, 손은 소댕만 하고, 발은 석 자 세 치'여서 공주가 하도 무섭고 끔찍하여 물러나 삼배를 하였다. 무장승의 키가 하도 커서"아랫도리는 안개나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고, 상반신만 까마득히 하늘 높이 구름 위에 솟아 보인다."는 대목은 거인족의 하나로서의 도깨비를 연상시킨다. 이 무장승이 바리공주와 인연을 맺어 일곱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것은 일곱째 공주로 태어났다고 하여 버려진 공중의 한을 풀어 주는 한풀이의 상징적 의미를 띤다. 그리고 죽음에서 소생할 수 있는 영약을 주어 죽은 왕과 왕비를 환생시킨 것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도깨비의 초자연적 능력을 뜻하며, 그가 산신제와 평토제를 받아 먹고 살게 점지받는 것은 도깨비의 인간화와 현세 적응 과정을 의미한다.

[당신] 육지에서는 도깨비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드물지만, 제주도에서는 도깨비가 당신으로 행세하며 굿거리에 등장한다. 그러나 신 중에서 하위의 잡신으로서, 참봉이니 영감이니 하는 말로 불린다. 특히 제주도의 '도채비'는 해녀나 미인을 좋아해, 같이 살자고 덤비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해녀가 정신 착란을 일으키면 '도채비가 지폈다' 하여 '영감놀이'라는 굿을 한다. 여자에게 붙은 아우 영감을 형영감 둘이서 횃불을 들고 데려가는 모의극을 연출하는 굿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도개비는 부의 신, 풍어의 신, 가업수호신, 역신, 대장신, 촌락 공동쳉,l 당신 등 광범위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풍습[장난꾼] 민담과 전설에는 도깨비 이야기가 비교적 많다. 사람을 잡아 먹는 도깨비도 있지만, 대개가 무서우면서도 어리석어서 잘 다루면 오해려 사람에게 이로울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금은 보화가 원하는 대로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거나. 쓰면 보이지 않는'도깨비 감투'를 인간에게 주기도 하면서 인간과 잘 어울리는 자연기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이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했을 때, 도깨비 장난 또는 도깨비 조화라는 말을 한다. 이는 도깨비는 장난기가 많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가령, 솥뚜껑이 종이쪽처럼 구겨지거나. 솥 안에 있던 떡시루가 뒷간에 있다든지, 국수가 뒷동산 소나무에 걸려 있고, 외양간 황소가 지붕 위에 앉아 있다는 식이다. 또 어떤 사람이,밤에 신기하게도 게가 잘 잡혀 좋아하며 밤새워 잡고 있는데 새벽녘에 누가 "김서방, 게 많이 잡았소?"해서 돌아보니, 키가 9척이나 되는 큰 사람이 킬킬거리며 달아나고, 동이 터서 보니 망태기에 쇠똥만 가득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도깨비가 악귀가 아닌, 장난기어린 선량한 귀신이라는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예이다.

[징벌]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는 민담에서의 도깨비는 노래를 무척 즐기며,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 도깨비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의 흉내를 내거나 시기하는 사람을 철저히 응징하는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금 방망이 은 방망이' 이야기는, 개암 깨무는 소리를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리로 오인해 도망치는 도깨비를 통해, 거짓이 아닌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음 이야기도 이와 같은 궤에 속한다.

어떤 어부가 도깨비에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면 떡 한 시루를 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도깨비는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었는데, 어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난 도깨비는 사흘째부터는 송장 뼈다귀, 개뼈다귀만 그물에 가득 걸리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놈아, 입으로 거짓부리를 했으니, 입이 비뚤어지거라"하고 고함을 쳐 어부의 입이 비뚤어지게 하였다.

도깨비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욕심쟁이와 악인을 곯려 주며, 노래와 춤도 잘 추는 풍류쟁이로서, 일종의 초능력자라 하겠다. 도깨비는 한국 여성이 이상으로 하는 남성상이라 하겠다.

[인간의 욕구 충족] 도깨비는 무섭고 짓궂은 장안을 치지만, 매우 어리석은 면도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이를 이용해 득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도깨비가 논에 돌을 가득 쌓아 놓고 심술을 부릴 때, 논 주인은 "올해는 돌이 많고 물은 없으니, 농사가 잘 되겠다,"하고 하루 종일 중얼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튿날 아침 논에 나와 보면 물이 가득하고 돌은 하나도 남김없이 치워져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과부가 도깨비와 친하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밀묵을 쑤어 도깨비가 먹게 하였다,. 그 후로 과부는 도깨비를 자기 방에 들게 하여 친해지고 갖가지 보화를 얻었다. 그러나 도깨비가 귀찮아진 과부는 도깨비가 말의 피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아 내어 도깨비를 몰아 내고 원하는 남근도 얻어 냈다고 한다. 이런 설화들은 도깨비의 신통한 능력을 믿는, 한국인의 요구 충족의 한 발상으로 보인다

종교[음의 괴물] "도깨비도 숲이 있어야 모인다.", "덤불이 커야 도깨비가 난다." 라는 속담을 통해, 도깨비는 어두운 숲 속이나 낡은 집, 우물, 산 속 깊은 곳 등에서 밤에만 나타나는 음의 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깨비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빗자루, 짚신, 체, 절굿공이, 부지깽이 같은 것에서 생긴다고 한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도깨비에 대하여, '굴하고 팰 줄 모르는 울결된 요귀'라고 하였다 또, 요물의 신은 인물과 혼돈되어 산에 있는 요물, 물에 있는요물, 수석의 요물, 물건을 잘 해친는 요물, 남을 괴롭히는요물, 물건에 의지하는 요물, 사람을 유혹하는 요물로 구분하여 이들 모두를 귀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도전은 "모든 산해의 음허지기와 초목 토석지정이 훈염 응결하여 이매가 된다"고 하였다.

이익은 그의 문집' 성호사설'에서, "귀는 음의 넋이며, 신은 양의 넋이다. 음양은 본래 일기의 왕래이니, 신이나 귀는 본래 하나이다. 기가 모여 형을 이루고, 혼이 나가 귀가 된다. 사람이 있으면 곧 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백기신은 모두 죽음에서 나오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물(物)의 회멸에 의해서도 나오므로, 만물이 모두 귀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가가 응취하는 데도 강약 대소가 달라서 귀의성립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굳은것과 그렇지 않은 것, 오래 가는 것과 덧없는 것 등이 있다. 또, 영능의 발휘에서도 신명한 것이 있고, 변괴를 나타내는 것이 있으며, 초인의 능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물이 오래 된 것은 그 기도 오랜 것이므로 귀기와 감응하기 쉽고, 구기와 물의 기는 서로 근접하여 귀기가 물에 먼저 빙의하고, 그 뒤 오래 되면 서로 훈화하여 하나가 된다. 독각귀도 아마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빗자루 같은 것이 도깨비가 되는 것은 '사람의 기를 많이 받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불교: 방퇴잡귀] 불교에서는 민속 신앙과 습합되면서 도깨비가 잡귀를 퇴치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 예는 삼국 시대 이래 발견되는 귀면문화에서 보인다. 도깨비의 모습은 불교나 그 밖의 여러 고대 종교문화의 영향을 받으며서 기와 무늬의 형태로 고정되고, 그 괴이성과 수성이 강조되었다. 그 목적은, 인간의 마음에 충격을 주어 사악한 것을 억제하고 나태함과 권태로움을 쫓으며, 흥을 돋우어 신성한 영역을 보존하고, 그 신성성으로 상징되는 마음의 중심에 들어설 수 있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다. 이것은 귀면와뿐만 아니라 도깨비에 관한 속신이나 이야기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동양 문화[귀신, 원귀] 우리 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한 존재를 동양 문화권에서 찾는다면, 중국의 이매, 망양, 독각자와 일본의오니, 덴구, 갓파, 고목의정에 악령이 붙어서 변했다는 요괴인 기지문등이 있다. 오니는 머리에 뿔이 돋쳤고, 험상궂은 얼굴에 송곳니가 밖으로 길게 나온 모습이다. 또, 가시 돋친 쇠몽둥이를 들고 다니다. 이런 외형은 우리 나라의 도깨비외 비슷하지만 원령으로서 잔인한 행동을 하는 복수귀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니의 웃음'이라는 말은 악마의 웃음을 뜻한다. 그러나 잘 사귀면 운이 트인다고 믿는 기지문은 제주도의 도채비와 매우 흡사하다.

역사.문학[괴물] 성현의 '요재총화'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도깨비의 형상과 관련된이야기가 있다. '요재총화'에는 "허리 위는 보이지 않고 허리 아래만 보이는데, 종이 옷을 둘렀고, 다리는 고수무육으로 마치 흑칠한 것 같다."고 하였다. '어우야담'에는, 도깨비의 장난에 시달린 어떤 사람이 모습이라도 벽에 그려 달라고 간청하였더니, 모습을 보면 놀랄것이라고 하면서 보여 주었는데, 너무 무서워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도깨비의 형상은 "머리가2개, 눈이 4개, 높은 뿔에 아가리를 벌리고 이빨을 드러냈는데, 코와 입이 터져 있고, 아가리와 눈동자가 모두 시뻘갰다."고 했다. 비록 쌍두 사목은 아닐지라도 이런 모습은 삼국 시대 이래로 유행한 귀면와의 상과 비슷하다.

[유혹] 조선 중종 때의 김안로가 지은 '용천담적기'에는 도깨비가 여자로 변해 사람을 유혹하는 기담이 있다.

어느 길손이 으스름 달빛을 받으며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 여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동침하였다. 별안간 천둥과 벼락이 치는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자신은 다리 밑에 누워 돌을 베고 몽당비를 안고 있었고, 주위에 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이 도깨비로 변한 경우이다. 이렇게 변신하는 것의 대부분은 빗자루, 부지깽이, 키 , 절굿공이, 체, 기명 등 손때나 여성의 혈액이 묻은 것이다.

현대.서양[보호 신령] 우리 나라의 도깨비는 게르만계의 민담에서 나타나는 난쟁이, 거인,요정, 유령 등의 심술궂은 점이나 초인적 능력, 보물과 관련되는 점이 매우 흡사하다. 특히 코볼트와는 거의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코볼트는 집의 보호 신령으로서 가족과 늘 함께 살고 있다는 믿음이 우세하다.

[트릭스터] 도깨비의 변화무쌍한 초자연적 능력이나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세계에 분포된 점으로 미루어, 융의 말처럼 도깨비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 중에서도 트릭스터(장난꾼)의 상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것은 도처에서 말썽을 일으키고,사람을 황홀하게도 놀라게도 하면서, 그러나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끄는 힘을 지닌 무의식의 심혼의 상징적 표상이다. 의식의 경직성과 합리적 편향성을 깨뜨리고, 무의식의 초월적 세계로 길을 열어 주는 매개자의 기능도 발휘한다.

도상[벽사] 우리 나라에서 삼국 시대 이래로 발견되는 도깨비 모양의 귀면와는, 그 기원을 중국 은의 제기에 새겨진 도철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귀면와 표현 양상은 시대에 따라 독특한 차이를 보인다. 고구려의 귀면은 눈과 입을 크게 강조하고, 뿔이나 사지는 없다. 백제의 동남리 출토 귀면은 상단 좌우에 큰 눈이 있고, 가운데에 코가 있으며, 그 아래로 이빨을 드러낸 입과 수염으로 구성되었다. 과감한 생략과 강조는 살아 있는 듯한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신라의 것은 강인한 힘이 넘치고, 특히 뿔을 나타낸 예가 많으며, 때로 혀를 내밀고 있기도 하다. 고려의 것은 선보다 면을 중시한 경향이며, 두꺼운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고 있다. 때로 입이 작거나 수염이 좌우로 길게 뻗지만 이전의 귀면에서 느끼는 위력적인 느낌은 둔화되고, 가면을 연상시킨다. 조선의 것은 인상이 험상궂은 사람의 얼굴처럼 퇴화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시대에 따라 표현 양식이나 솜씨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의 가면이나 방사시의 사목가면, 봉산 탈춤의 취발이 가면 등도 도깨비의 상과 어떤 관련이 있음 직하다.

도깨비의 도상으로는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괴수의 형상과 백제 문양잔 중의 귀면전 , 신라 시대 무덤인 경주 식리총에서 나온 금동식리의괴면 등이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러한 도깨비 형상은 벽사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또 신라 시대 귀면와를 비롯하여 고려와 조선 시대의 와당에서도 도깨비 얼굴의 망와와 수키와 등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벽사의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고구려 고분 벽화인 팔청리고분벽화중에 현실 주두에 그려진 도깨비 얼굴과 퉁거우 사신총 천장받침돌에서도 도깨비를 볼 수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념 외리에서 발견된 7세기 초의 8종 백제 전이 있다. 그 중에서 2종의 귀형문전은 눈을 부라리고 입을 크게 벌렸는데 털북숭이의 큰 얼굴이 몸체에 비해 과장되었다. 산하에 버티고 선 모습으로, 몸에는 과대를 띠고, 양팔은 벌려 3개의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이 도깨비는 산천을 제압하는 상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것으로 사천오아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중, 머리에 용각이 돋고 두 눈을 둥그렇게 부라린 도깨비가 있다. 큰 주먹코, 유난히 크게 벌린 입에는 아래위로 송곳니가 튀어 나왔고, 얼굴에는 더부룩한 우모가 사자의 그것처럼 덮였다.

고려 시대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생동감 넘치는 도깨비 기와는 퇴색하고 형식화된것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오면 절터에서 발견되는 기와 중에 도깨비 형상이 보이는데, 매우 추상적이고 도상화되었으며, 한편으로 해학적인 면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벽사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매미 -------------------------------------------------------------------------------------------------------------------------------------

어원 '매미'는 개구리나 뻐꾸기처럼 울음을 본떠서 된 의성어이다. 매니는 '맴맴'하고 울기 때문에 '맴'에 명사형 접미사'-이'를 더한, '맴+이>매미'의 형태로 이루어진 말이다.

고어에서는 'ꏁ葡야미>ꏁ螡얌이>매암이' 등으로 쓰였는데, 울음소리는 'ꏁ螡얌ꏁ螡얌'이나 '매암매암' 등으로 적었다.

신화[불사, 재생] 매미는 땅 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을 지낸 후에, 번데기로 되었다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된다. 이러한 매미의 변태과정은 불사와 재생을 상징한다. 이 같은 특성은 고대인에게 있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작용과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매미는 신화적으로 태음원리, 여성 원리를 상징하며, 나아가 불사와 재생의 관념을 표상한다. 선연이라는 단어는 매매의 조촐한 모양에서 곱고 예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서, 매미의 신화적 여성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매미는 햇볕을 피하여 허물을 벗음으로써 외각을 탈피하여 신생을 누리기 때문에, 재생과 부활과 탈속의 상징으로 찬미되었다. 신선이 변신하거나 고승이 해탈할 때 선세라 했는데,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이다.

무속. 민속[비를 부름] 매미는 한여름을 울기 위해 4~6년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지낸다. 여름 한 철만 사는 짧은 기간에 매미를 죽인다면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민속에서는 매미를 죽이면 하늘의 벌로써 가뭄이 든다고 믿었다. 또, 여름에 비가 오기 전에 개구리가 우는데, 나무 위에서 우는 매미도 개구리와 응해서 비를 부른다고 생각하였다.

[재생, 부활] 우리 선조들은 매미 허물을 약제로 사용했다. 매미 허물에 재생의 주술적 기운이 서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전통 약전인 '언해두창집요'에 보면, 인삼선게산,선퇴탕, 선국산 등의 약방문이 나오는데, 이는 매미 허물이 주된 약재이다.

[빼어난 목소리]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여염집 아녀자들이 매미를구워 먹는 습속이 있었다. 매미를 먹으면 목소리가 청아하고 좋아지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유사한 것끼리는 효력을 가진다는 유감 주술이 작용한 것이다. 속어에서 술집 여인을 매미라 함도 그들이 노래를 하기 때문이다.

풍습[여름] 매미의 울음에는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함께 부여 되고 있다. 긍정적 이미지로는 시절을 정확히 알려 주어서 농사짓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매미가 울어야 할 5월에 매미가 울지 않으면, 그 해 여름에는 아이들에게 병이 많이 번진다고 하였다. 또, 칠팔월에 농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우는 매미는 농사를 마무리한다고 하여 '맘맘맘' 소리라 한다. 매미를 친근히게 생각하고,또 일을 빨리 마감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참매미는 가을을 알리는 찬바람이 날 때 울기 시작하므로 매미 소리로 계절을 알 수 있다.

[도약]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은 매미 될 생각이 있어서이다,"는 말이 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고 미련한 행동일지라도 제딴에는 요긴한 뜻이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는 굼벵이가 매미로 변신하는 차원으로 발전함을 뜻한다.

종교[유교: 오덕] 매미는 다섯 가지덕이 있다 하여 유교 전통에서 숭앙받다 온 곤충이다. 머리 부분은 관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이 있어 일덕이고, 오로지 맑은 이슬만 먹고 살므로 그 맑고 깨끗한 청이 이덕이며, 사람이 먹는 곡식을 먹지 않으니 그 염이 삼덕이고,다른 벌레들처럼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사니 그 검이 사덕이며,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틀림없이 울며 절도를 지키니 그 신이 오덕이다 <육운.한선부>

매미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문, 청, 염, 검, 신'을 갖추어, 군자지도를 제일로 삼던 사회에서 상징적 존재로 긍정적이었다. 이 오덕은 백성을 다스리는 이도의 조건이기도 하여 그 은덕의 상징적 구상으로서 벼슬아치들에게 매미 날개를 단 익선관을 씌웠다. 조정의 신하들뿐아니라 임금도 곤룡포로 정장할 때에 익선관을 썼다.

[불교: 해탈] 불교에서는 매미의 탈각현상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비상하는 모습은, 모든 번뇌의 소멸과 인생의 고해에서 해탈하는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도교: 재생] 허물을 벗어 육체를 갱신하는 매미의 생태는 도교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불사적 존재인 신선의 경지에 그대로 유추되었다. 도교에서 시해라고 하는 경지는 흔히 선세 또는 세변이라는 말로 표현된는데 그것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시체가 갱신되어 낡은 옷을 벗듯이 새로워지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후에 도교에서 죽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의례적인 표현이 되었다.

동양 문화[중국: 부활] 매미의 유충은 땅 속에서 오래 지낸 후에 번데기의 모습으로 나와 등가죽을 가르고 성충으로 나타난다. 이를 중국인은 무덤을 차고 일어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들은 매미의 변태에서 불멸과 부활의 상징을 본 것이다. 중국 민간에서 사람이 죽어 매장할 때 비취로 조각한 매미를 입에 물리는 습속이 있다. 이는 부활, 재생을 바라는 염원에 기인한다. 제단에 올리는 신기나 약탕을 담는 도자기의 무늬에 매미 형상을 많이 그려 넣는 것도 부활과 재생을 염원하는 뜻에서이다.

역사.문화[빈곤, 소음] 한 조사에 의하면, 1000마리의 매미 울음소리는 압축 공기를 사용한 철판 차단기 소리보다 크다고 한다. 그만한 크기의 소리이기 때문에 매미 울음소리의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다. 쓸데없는 의론이나 형편 없는 문장을 두고 개구리와 매미의 울음소리에 빗대었던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밉고 쓴 줄 몰라라. <이연신>

세류청풍 비 갠 후에 울지 마라. 저 매암아./꿈에나 임을 보려 겨우 든잠 깨우느냐./꿈 깨어 곁에 없으면 병되실까 우노라. <호석균>

바람을 마시고 사니, 진정 마음은 비었겠네./이슬만 흡수한다니, 몸 또한 조촐하구나./무슨 일로 진작 가을날의 새벽부터./ 슬피슬피 우는 소리 그치지 않는가. <허목>

현대. 서양[신격]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미는 먹지도 마시지도 배설도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신격화했다. 호메로스는 매미가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며, 따라서 체내에 피도 없고 배설도 하지 않으므로 신과 샅다고 찬미하였다. 아나크레온도 매미가 땅 속에서 태어나 신과 같이 피가 없다고 하여 찬미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들의 조상이 타국에서 흘러들어오지 않고 그 땅에서 태어나 그 땅에서 살아 왔다는 자존심을 매미에 비겨, 그들의 가계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삼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폴로 신전에 바치는 신물이 매미였던 것도 이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재생] 그리스 신화에서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장난으로 인간 남성에게 반하였다. 에오스는 새 남편 티토누스를 영원히 놓치지 않으려고 제우스 신에게 늘 젊고 죽지 않을 것을 부탁하였는데, 제우스는 그 약속을 잊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자, 티토누스는 결국 노쇠해졌으며, 방에 갇힌 채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신들이 티토누스를 매미로 변하게 했다.

[나태] 여름 긴긴 날을 종일 울고만 있는 매미는 근면에 위배되는 나태를 상징한다. '이솝 우화'나, 라 퐁텐의'우화'에 보이는 매미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이 닥치자, 굶주림 끝에 개미에게 먹을 것을 청한다. 근면을 일깨운 이 이야기는 베짱이나 귀뚜라미로 번역되어 전하기도 한다.

[허무, 버림받은 여인] 서양에서 매미는 배가 비어 있다 하여 공복이나 굶주림을 상징한다 또, 매미가 단명하면서 노래만 부른다 하여 현세의 허무한 영광을 상징하며, 꿈을 먹고 사는 가난한 시인을 상징하기도 하고, 허물을 벗는다는 점에서 버림받은 연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도상[오덕] 임금이 정무를 볼 때에 쓰던 익선관에 매미 날개 모양의 뿔이 붙어 있다. 이는 매미의 오덕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하의 관모에도 오덕을 기리어 매미 날개를 붙여 사용하였다.

[청빈한 선비] 조선 시대 회화에 매미가 그려진 예가 더러 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심사정의 '화훼초충도'에, 꽃나무에 낮게 앉아 아침 이슬을 먹는 매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매미는 예부터 청빈한 선비를 상징해 왔다. 김인관의 '산수어해화훼초충도권축'에는 고목의 가지 끝에 앉아 우는 매미가 묘사되어 있다. 곧게 뻗은 입이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을 연상시키고, 다른 곤충들과는 달리 집이 없이 검소하게 살며, 겨울이 되면 때맞춰 죽으므로 신의를 지녔다 하여 매미는 선비를 상징하였다.

[신선] 신 사임당의 '범부채와 매미'가 있다. 들판에 핀 범부채의 가느다란 줄기에 매미가 앉았고, 나비가 쌍을 이뤄 날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개구리가 그려져 있다. 범부채의 뿌리 줄기는 한방에서 사간이라 하여 약재로 쓰였다. 예부터 매미 선(蟬)은 신선 선(仙)과 음이 같고, 또 이슬을 먹고 산다 하여 매미는 신선의 상징이었다.

박-------------------------------------------------------------------------------- ----------------------------------------------------

어원 그릇의 어근은 '글-'이다. 고대의 그릇이 나무로 되었다고 볼 때, '글'은 나무의 뜻을 지닌다. 고구려어에 글이 있다. 박은 초목류의 하나이다. 풀의 고어는 '불'이다. 상추를 '부루'라고 하는데, 어근의 '불-'이다. 상추는 풀의 하나이다.

한편, '받'이 나무의 뜻을 지니고 있다. ꟁ螡는 'ꟈ>Ꟊ이>ꟁ이'로서, 'ꟈ'은 나무의 뜻을 지니고 있다. 박도 '받>발>밝>박'의 변천이라 하겠다. 함지박의 '박'은 그릇의 뜻을 지닌다. 뚝배기, 옹배기, 자배기의 '배기'는 '박이'에서 변한 것으로 역시 그릇의 뜻을 지닌다. 보시기의 어근 '봇-'에도 근원적으로는 그릇의 뜻이 있다.

이와 같이, '박'은 '받'이 조어형으로, 풀 또는 나무의 뜻�르 지니고 있는 말이 그릇의 뜻으로 전위되었다고 하겠다.

신화[밝음, 다스림]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박 같은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백마가 알옆에서 절하는 형상을 하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알에서 나온 동자를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천지가 진동하며, 일월이 청명하였다. 그래서 혁거세왕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박은 그 빛깔이 희고 큰데서 백마와 더불어 밝음을 표상하고, 또 알과 해, 달을 대칭시켜 세상을 밝게 다스림을 상징한다.

[천상의 통로] 제주도 무속 신화 천지왕 본풀이에, 천지왕은 해와 달을 하나씩 먹는 굼을 꾸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귀동자를 얻을 것이라고 해몽하여 지상으로 내려와 총맴부인과 합궁하였다. 천지왕은 장차 탄생될 두 아들의 성명을 지어 주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징표로서 박씨 2개를 내주며 "아들이 나를 찾거든 정월 첫 돌날에 박씨를 심으면 알 도리가 있으리라"고 했다.

'아비없는 호래자식' 이라는 모욕을 받던 형제는 아버지가 두고 간 박씨를 받아 천지왕이 말한 날짜에 심었다. 박씨는 곧 돋아 덩굴져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아버지가 박씨를 주고 간 것은 박 덩굴을 타고 하늘로 찾아오라는 것임을 깨닫고, 박 덩굴으 타고 올라가 천지왕인 아버지를 만났다. 천지왕은 기뻐하며 두 아들에게 각각 이승과 저승의 통치 구역을 주어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게 하였다.

이 신화에서 박씨는 하늘로 오르는 통로를 놓아 천지왕과 만나게 함으로써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박덩굴은 하늘로 오르는 통로를 상징한다.

무속.민속 [벽사] 박으로 만든 바가지는 무속이나 민속에 흔히 등장하는 도구이다. 질병이 돌아 무당이 굿을 할 때, 바가지를 마루에 엎어 놓고 두손으로 마루를 문질러 소리를 내거나, 장대 끝에 바가지를 매어 두면 병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전자는 무속의 축귀법 중에서 음향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귀신이 요란한 소리에 놀라 달아나게 하는방법이다.

사람이 죽으면 사자밥을 문전에 베풀어 놓고, ,전염병이 돌면 잡귀가 먹고 멀리 가게 하기 위해 밥과 음식, 짚신을 큰길 삼거리에 놓아 둔다. 이 때에도 바가지를 함께 놓거나,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서 놓아 둔다. 바가지는 취사용 도구이지만, 두드리면 소리가 크게 나는 데서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죽어 방에서 관을 내갈 때, 맨 앞의 사람이 문 밖에 엎어 놓은 바가지를 밟아 큰 소리가 나게 깨뜨리고 마당을로 나간다. 이 역시 잡귀를 쫓는 음향법이다.

신부가 탄 가마가 처음으로 신랑 집에 들 때, 문전에 미리 피워놓은 모닥불을 타고 넘게 하거나,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모닥불을 넘어가도록한다. 이 때 시어머니는 바가지나 호박을 들고 나와 문전에서 땅에 던져 깨뜨린다. 이 것은 바가지나 호박이 깨지면서 내는 큰 소리가 신부 집에서 붙어 온 잡귀난 길에서 따라온 악귀를 쫓아 내도록 하기 위한 주술적 방법이다.

[질병 방퇴] 치질이나 어린아이의 태독에 바가지를 태워 그 가루룰 환부에 바르는 민간 요법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정월에 아이들이 작은 호로박 3개에 파랑, 빨강, 노랑으로 색칠을 해서 차고 다니다가, 열 나흗날 밤에 몰래 큰 길에 버리면, 한 해 동안 재액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여름철에는 더위를 먹고 배탈이 나거나 식욕이 없어서 잔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박의 꼭지 부분을 도려 내어 구멍을 뚫은 후 차고 다니는 일이 있다. 질병 방퇴의 한 주술적 방법이다. 바가지가 주술적 기능이 있고, 호리병박의 색깔이 파랑, 빨강, 노랑임을 미루어, 모두 음귀를 제압할 수있는 양색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풍습[풍요, 다산] 가을날 초가 지붕에 박이 주렁주렁 얹힌 모습에서 풍요와 다산을 느낄수 있다. 농경 사회에서 박과 바가지는 중요한 생활 용품이었다. 물을 떠 마시거나 밥을 지을 때도 바가지를 사용했다. 그 밖에, 들일을 나갈 때에는 바가지에 밥을 담았고, 술을 떠서 마시기도 했다 , 대농가에서는 일꾼들의 식기용으로 작은 바가지를 수십 개씩 장만해 두기도 했다. 이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관습의 일면이다.

남해안 지방에는 2월 초에 대나무를 땅에 꽂고 윗부분을 몇 갈래로 쪼갠 다음, 그 위에 정화수를 담은 바가지를 올려 놓는 풍속이 있었다. 이 풍속은 가뭄이 들지 않게 비를 많이 내려 풍년이 들게 해 주십사고 하늘에 기원한 데서 비롯되었다.

충남 해안 지방에서는 신부 집이 사주 단자를 받았을 때, 바가지에 그 사주 단자를 넣어 성주 앞에 고한 후 풀어 보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바가지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둥글고 씨가 많은 박은 예부터 생명력과 생산성, 불멸성이 인정되어 왔다.

[장수, 부] 도자기나 떡살, 가구의 장식등에 나타나는 조롱박은 덩굴이 뻗어 나가는 모양에서 장수를, 주렁주렁 달린 모양에서 다산과 부를 상징하여, 자손이 영원히 번영히기를 염원하였다.

[저장, 보호] 농가에서 곡식을 퍼내거나 되질을 할 때에 바가지를 사용했다. 걸인들이 동양할 때에도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담았다.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에는 두레박을 사용했고, 물을 푸는 기구는 타래박이었다. 곡식의 종자를 저장할 때에는 박의 꼭지 부분을 도려 내고 l속을 파내어 만든 뒤웅박에 넣어쥐가 먹지 못하게 하였다.

농가에서 새를 쫓을 때에는 바가지를 두들겨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바가지는 밥상위에 올려 놓지 않았고, 깨어져도 불에 태우지 않는 금기가 있었다.

[불평, 거지] 박에 대한 속담에는 우리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것이 많다. 아내가 남편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바가지를 긁는다."고 하고, 부당하게 많은 대금을 받는 것을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그리고 거지가 되었다는 말을 "쪽박 찼다."고 한다. 돕기는 커녕 훼방만 놓을 때에는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라고 하며, 의지할 데가 없어진 처지를"끈 떨어진 뒤웅박"이라고 한다.

종교[불교: 세상의 목탁] 신라의 고승 원효는 파계하여 요석궁 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후, 속복으로 바꿔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였다. 우연히 광대가 무롱하는 큰 박을 얻었다는데 그 형상이 기괴하였다. 원효가 그 형상을 본떠 박으로 도구를 만들어 무애호라 이름하였다. 원효는 무애호를 두드리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수많은 촌락을 춤추며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쳐 부처의 이름을 기억하고 염불하게 한 교화의 큰 힘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원효의 교화를 도운 무애호는 죽살이길을 벗어나 무애인이 되게 한 공능으로, 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목탁을 상징한다.

동양 문화[쓸모있음의 비유] '장자'에 의하면, 혜자가 위왕에게서 큰 박씨를 얻어 심었더니, 5섬들이 큰 박이 열렸다.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가 말하기를 큰 뒤웅박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우면 뜨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이는 모든 사물은 다 쓸모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보호처, 영원성] 중국에는 복희와 여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복희와 여와의 아버지가 뇌공을 잡아 새장에 가두었다. 새장에 갇힌 뇌공은 두 아이(복희와 여와)를 꾀어 물을 얻어 마시고 탈출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빨을 하나 빼 주면서"이것을 밭에 심어라. 만일 재앙이 닥치거든 열매 속에 들어가 숨으렴."하고서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뇌공의 이빨을 심자,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나게 큰 호리병박이 열렸다. 뇌공이 하늘로 올라간 3일째에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 천지가 홍수에 뒤덮였다. 두 아이는 호리병박 속으로 피신하였다. 이 홍수로 사람들은 전멸하고, 이 두 아이만 살아 남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부부가 되어 다시 인류가 번창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호리병박은 인류의 씨가 생존할 수 있게 한 보호처요, 그 생명력을 대대로 유지시킬 수 있게 한 영원성을 상징한다.

[부표, 약방, 자유] 중국 뱃사람들은 아이들이 배를 타다 표류할 때를 대비해 아이의 등에 호리병박을 달아매기도 한다. 또, 호리병박은 약품을 넣어 두는 그릇으로 쓸모가 있어서 약방 간판에 그 형태를 그려 놓기도 한다. 그리고 호리병박은 신비의 상징인 도가의 팔선 중의한 사람인 이철괴의 문장이다. 이철괴가 호리병박을 들고 있으면 연기가 소용돌이쳐 피어오른다. 그 소용돌이는 육체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장수, 방어] 전에는 노인들이 호리병박을 등에 차고 다녔다. 그리고 노인들이 구리나 나무로 만든 호리병박을 장수의 부적으로 목이나 손목에 찼다.

둘리틀은 "호리병박 껍데기나 나무, 종이에 그린 호리병박으로 해로운 기운을 막기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여자의 불행, 단명] 일본에서는 박꽃이 저녁 무렵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특성에서 여자의 불행한 운명 또는 단명을 상징한다.

역사.문학[다용도] 이규보는 박의 다용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쪼개서 바가지로 만들어 물을 뜨니 얼음 물같이 차고,/온전한 대로 호리병 만들어서 담으니 옥 같은 술이 맑구나./막힌 마음으로 평퍼짐하니, 큰 것을 근심할 것이 없네./어지간히 커지기 전에는 삶아 먹어도 좋으니까. <동국이상국집 제4권>

[축복 또는 저주의 상자] 흥부전은 조선시대의 우의 소설이다. 착한 흥부와 악한형 놀부가 있었는데, 흥부는 다리를 다친 제비를 구해준 갚음으로 박씨를 얻어 심어 거기서 연 박 곡에서 금은 보화가나와 부자가 되었고, 놀부는 멀정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고쳐 주어 그 앙갚음으로 얻은 박씨를 심어 똥과 귀신을 만나 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박은 제비(신)의 뜻이 담겨져 선악에 따라 축복 또는 저주를 내리는 상자를 상징한다.

조선시대의 소설 "전우치전'에서 기인 전우치가 효자 한자경에게준 박도 축복 또는 저주의 상자이다. 한자경이 박의 종을 불러 돈을 가져오게 하면, 종은 박 안에 보이는 창고 안에 들어가 돈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하루에 100냥으로 한정한 전우치의 당부를 저버리고 한자경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가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현대.서양[부활, 순례] 동양에서는 박이 풍요, 다산, 불멸성 등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서양 사회에서는 부활,순례 등을 나타낸다.

헤브라이에서는 여호와가 니네베의 붕괴를 기다리는 요나의 머리 위에 기적을 베풀고 호리병박을 길러서 그늘을 만들었가다 다음 날에 시들게 하였다. 이것은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됨을 보임으로써 부활을 표상한다. 또, 크리스트교에서는 박이 콤포스테라 사원의 성 야곱이 가지고 다닌 테서 물통을 뜻하고, 또 순례를 표상한다.

도상[약합,술병] 박은 민간에서 바가지를 비롯하여 약품을 넣는 약합, 또는 술을 담는 술병 등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호리병박 같이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모양은 그림이나 능화판 등에 새겨져 책 표장 무늬에 쓰여졌다. 또, 의상의 금박 무늬나 떡살 무늬로도 쓰여졌다.

[신통력] 김홍도의그림중에서 '선객'은 옆에 사슴을 거느리고 쇠지팡이를 짚고 허리에 호리병박을 찬 신선이 그려져 있다. 이 신선은 중국 전설상의 여덟 신선 중의 이철괴인데, 호리병박은 그의 정신을 담아 자유롭게 선계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이러한 그림으로 최명룡의 "선객"도 있다.

[부, 다산] 떡살, 능화판, 도자기, 가구의 장석 등에 시문된 호리병박은, 덩굴의 뻗어나가는 모양은 장수를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다산과 부를 상징하여, 자손이 영원히 끊이지 않기를 염원하는 뜻이다. 또, 칠보무늬 중의 호로보무늬는 장수, 복 ,부의 삼다 신앙에서 비롯된 상징 문양이다.

뱀(구렁이))---------------------------------------------------------------------------------------------------------------------------

어원 15세기 표기로는 'ꟁ얌, ꟁ암' 등이 보인다. ꟁ암의 '-암'은 접미사 이다. 그리고 'Ꟊ>Ꟊ암>ꟁ암>ꟁ얌>빔' 으로 변천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한자 뱀사(蛇)는 벌레 충(蟲)+옛 뱀사'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뱀'의 조어 'Ꟊ'은 벌레, 벌 등의 말과 같은 어원일 개연성이 보인다.

신화[불사, 재생, 영생] 뱀의 신성은 불사의 존재라는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 그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라는 인식을 낳게한 듯하다. 뱀이 재생한다는 내용은 제주도서사 무가인 차사 본풀이에도 있다.

그 때 마침 담 구멍에 있던 뱀이 저승 차사인 까마귀의 적패지를 받아 옴찍 삼키고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뱀은 죽는 법이 없어 아홉 번 죽었다가도 열 번 다시 살아나는 법이다.

=까마귀(신화)

[풍요, 다산] 많은 알 또는 새끼를 낳는 뱀이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내용은 특히 제주도 무속 신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 밖에, 각 지역에서 섬기는 본향당 신의 본풀이에서도 사신 신화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부와 재물의 신(뱀)인 칠성신은 자식 일곱을 한꺼번에 낳으며, 그들이 신격으로 좌정하게 된 내력도 인간에게 풍요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 후 7일 만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지며 왕후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와 방해하므로 오체를 각각 장사지냈다. 그래서 오릉 또는 사릉이라 하는데, 담엄사의 북능이 바로 이 능이다.

이 기록에서, 혁거세왕은 신성한 존재이므로 시신을 나누어 묻는 것을 풍요의 공유로 해석한다면, 뱀의 등장은 풍요의 분배를 뜻한다. 또, 뱀은 보편적으로 달 동물로 생각되는 풍요의 상징이다.

무속.민속[풍요] 뱀에 대한 민속 신앙에는 '업'이라는 것이 있다. 업은 흔히 '집안 살림이 그 덕이나 복으로 늘어 가는 것으로 믿고 소중히 여기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한다. 업 동물로는 구렁이, 두꺼비, 족제비 등이 일컬어지는데, 구렁이가 일반적이다. 또, 업단지는 살림을 늘게 해 누는 신을 모신 단지로서 주로 쌀이나 돈을 넣는다.

이 업단지는 지역에 따라서 곳간에 모시기도 하고, 뒤꼍에 터주와 같이 짚주저리를 씌운 업가리를 모시기도 한다. 제주도의 뱀 신앙은 개별 가정 신앙인 칠성신과 마을 공동 제사인 여드렛당신으로 2분 된다.

칠성신에는 귀꼍 정결한 곳에 칠성눌이라는 주저리를 씌워 모신 밭칠성 또는 뒤할망과 집안 고방의 쌀독에 모신 안칠성이 있다. 밭칠성은 곡물을 지켜 주는 것으로 신앙된다. 그 형태나 위치는 안칠성은 본토의 업단지와 유사하고 밭칠성은 업가리와 유사하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신화로서의 칠성 본풀이가 있다. 즉, 귀한 집 외동딸이 중의 자식을 배어 쫓겨나 제주에 들어와서 뱀이 되었다. 그리고 7마리 새끼뱀을 낳았는데, 어미뱀은 안칠성, 새끼 뱀들은 밭칠성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신은 집안에서 큰굿을 하게 되면 본풀이의 구송과 함께 모시는 거리가 있고, 명절이나 생일에 음식을 만들면 각각 상을 차려 모신다. 또, 년 1회 밭칠성눌을 갈아 덮고 신곡을 갈아 넣는 철갈이라는 의례도 지낸다.

[길흉] 여드렛당신은 본풀이에 나주 금성산의 뱀신인 여신이 제주도에 들어와 표선면 토산리에 좌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당신은 잘 모시면 은혜를 베풀지만, 잘 못 모시면 질병 등 탈을 내리는데, 딸에서 딸로 계승된다. 시집에 따라온 뱀신을 모르고 모시지 않으면 시가의 가족이 병을 앓게 되고, 그것이 이 당신 때문임을 알게 되어 결국 모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지역을 제하고는 제주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 신의 제사일이 매월 매 8일(8, 18, 28)로 되어 있어서 이 당을 여드렛당이라고 하고, 신명을 여드레 한집이라 한다. 이와 같은 제주도의 사신 숭배는 '동국여지승람'등 문헌에 많이 보이는 풍속으로 역사가 오래다. 그런데 이것은 본토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고, 본토의 고형과 아울러 특히 제주도에 농후한, 사신 숭배의 지방형을 보이고 있다.

풍습[혐오, 불분명한 태도] 일반적으로 뱀은 위험하고 경원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다. 속어에도 "밤에 피리나 휘파람을 불면 뱀이 온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의 뱀은 혐오의 대상이다. 또, "실뱀 한 마리가 온 바다를 흐리게 한다."라든지 "조그만 실뱀이 온 강물을 휘젓는다."는 말은 소인이 사회 전체를 흐리게 하는 데 대한 비유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는 일을 처리하는 데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남이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한다는 뜻이다.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는 말은 숨긴 재주나 재물이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렇듯 뱀은 분명하지 않고 밝지 않은 부정적인 인상을 지니고 있다.

[풍요, 다산] 구렁이로 대표되는 업은 재물과 풍요, 다산의 상징이 된다. "부작집 업 나가듯 한다."는 속담은 재물을 늘게해 준다는 업구렁이가 나간다는 것이니 부자가 까닭없이 몰락해 감을 이르는 말이다. 집안에 업이 나가면 망하고, 업이 들어오면 흥한다는 말을 한다. 제주도에는 사신인 부군 신령이 길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집에 모셨더니 금방 부자가 되었다든지, 부군 신령이 달아나자 그 웅크렸던 곳의 흙을 가져다 모셨는데도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이와 같이. 뱀은 재물을 늘려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뱀은 곰이나 두꺼비 등과 같이 달 동물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풍요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것들은 겨울철에는 보이지 않다가 봄과 여름에 나타남으로써 기울고 차는 달의 이미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종교[유혹, 애욕] 불경 중에서 '법화경'등에 "뱀은 유혹이요 애욕이다. 그는 제 몸을 그냥 드러내는 게 아니라, 꽃나무 뿌리 밑에 숨어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또는 "뱀은 악업이 깊은 동물이라, 그의 일생이 대단히 고롭다."고 하였다. 유혹이란 남을 꾀어서 정신을 어지럽히거나, 나쁜 길로 꾀는 것을 말한다. 불료에서 애욕이란, 욕망에 마음이 사로 잡히는 일을 이른다.

동양 문화[중국: 성인의 덕] 황하 유역에서 일어난 중국 문화는 신화 단계에서부터 뱀과 관련을 맺는다. "열자"황제편에, '복희씨와 여와씨는 뱀의 몸둥이에 사람의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지만, 성인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들은 천지 개벽,문화 창조 등의 위업을 수행한 것으로 전한다.

[강의 신] 중국에서 뱀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큰 강 유역의 사람들은 하신, 즉 강의 신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중국인들은 황하의 신이 네모진 얼굴에 황금색을 띤 작은 뱀으로, 그 눈 밑에 붉은 점이 있다고 여겼다.

[총명, 간사, 음흉] 중국에서 뱀은 총명하고 간사, 음흉하며, 집념이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은 간사한 사람을 가리켜 뱀의 생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길흉] 꿈에 보이는 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꿈에 뱀이 따라오면 행운이 있다고 하는데 검은 뱀을 보면 딸을 낳고, 흰 뱀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타이완에서는 꿈에 뱀을 보면 재산의 손실이 있다고 한다. 또 뱀이 자기를 에워싸는 꿈을 꾸면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한다. 남자가 꿈에 뱀을 보면 여자 친구를 사귈 예시라고 한다.

[남근, 여근] 뱀은 종종 여자들의 속옷 냄새를 맡고 나타난다 하여, 여자 속옷으로 뱀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뱀을 남근의상징물로 삼는 듯하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서호 부근에는 사람과 뱀의 애정 생활을 소재로 한 민담이 전한다. 흰 뱀이 아름다운 여자로 변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청년과 결혼하고, 그 청년을 부자가 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대가리가 삼각형인 뱀은 여근을 상징한다고 한다.

[보약] 뱀의 쓸개를 복용하면 눈이 밝아지고 백태가 벗겨지며, 심한 풍증을 치유하는 좋은 약재라고 한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뱀의 쓸개를 좋은 약재로 찾는다. 타이완에서는 보약으로 뱀고기를 대량 소비하고 있다. 한편, 뱀의 기름은 위험한데, 남자가 뱀의 기름을 먹으면 성기능이 상실된다고 한다. 뱀의 껍질은 보존해 두면 조만간에 많은 재물이 생긴다고 하여 버리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닛는 가장 호려하고 장엄한 다리는 무지개인데, 한자 (무지개 홍)은 뱀이 승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 또는 뱀(용) 자체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일대에서 정력 기호식으로 알려진 생사탕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조화에서 힘을 얻으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신체] 일본위 건국 신화에 보면, 뱀은 신체롤 등장한다. 아마테라스 모미카미의 남동생 스사노 오노미코토는 대가리가 8개 달린 구렁이 야마타노로치를 죽였느데, 그몸에서 보검이 나왔다. 아메노무라쿠 모노쓰루기라는 이 보검은 일본의 3대 국보의 하나이다. 여기서의 뱀은 신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 고대 일본인은 뱀을 조상으로 여겼다.

역사. 문학[수호신] 신라 통일 후 문무왕 때 전 가야국 김수로왕 왕묘에 금옥이 많이 있다하여 도적들이 이를 훔치려고 하였다. 이 때 30여 척이나 되는 큰 뱀이 번개 같은 안광으로 사당 곁에서 나와 8, 9명의 도적을 물어 죽였다. 지금도 능원 안팎에는 신물이 있어서 보호한다는 믿음이 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침전에는 저녁마다 무수한 뱀이 모여들므로, 궁인이 놀라고 무서워서 쫓아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은, 나는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자지 못하니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왕이 잘 때는 뱀이 혀를 내밀고 왕의 가슴을 덮어 주었다.

이상에서 뱀은 왕의 사당과 왕을 수호하는 동물로서, 삼국 시대부터 민속 신앙에 깊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짝사랑, 탐욕] 현대 문학에서의 뱀은 좋지 않은 부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 모습이 징그럽다는 선입관뿐만 아니가, 독을 품고 있는 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사뱀이란 것이 있다. 남녀 간에 외짝사랑을 하다가 죽으면 뱀이 되어 생전에 사랑하던 사람의 몸에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재산에 탐을 내면 구렁이가 되고, 여자에게 탐을 내면 상사뱀이 된다. 무엇에나 탐을 내어 잊지 못하면 이승의 몸을 받는다.

<이광수, 나는 바보다>

[혐오, 슬픔] 사람은 누구나 뱀을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란다.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와 경계의 자세를 취한다.<채만식, 태평 천하>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꽃다님 같다.//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꾀어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 .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서정주.화사>

현대.서양[인류의 원형] 중국의 인류 창조 신화에서 뱀이 등장하듯이, 그리스 신화에서도 최초의 인간은 뱀이다. 뱀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흙으로 빚은 인간'의 원형을 상징한다. 즉 원초적인 생명의 율동을 뱀에서 본 것이다. 뱀으로 현신하는 인류의 선조인 이브를 페니키아의 지하 여신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생명의 윤회] 아트드 브리스에 의하면, 뱀은 불교에 있어서 생명의 윤회를 나타낸다고 한다. 윤회를 상징하는 뱀은 제 꼬리를 입으로 문 형태의 뱀으로 나타내는데 이는 우주의 통일, 자연계의 자기 충족,양성 구유, 생명의 지속, 육체와 물질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 신화적인 뱀은 음양 원리에서처럼 반면은 밝고 반면은 어둡다.

[지혜, 예언력] 뱀의 형상을 한 바빌론의 대지의 에아는 인간에게 세계의 질서에 관한 지식을 주었다. 그러나 인간이 젊게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죽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뱀은 지혜의 신 아테네의 상징물이며, 후일 논리학의 상징이 되었다. 잎새의 흔들림 소리로 제우스의 신탁을 알려 주는 도도나의 나무에도 뱀이 있었고, 트로이의 패망을 예언한 카산드라는 뱀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

'뱀같이 슬기롭고(신중하다는 뜻)'라는 말이 있다. 구약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따라 금단의 열매를 먹고 벌거벗음과 선과 악, 성의 창조성 등 지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 뱀은 기원전 7세기에 그 청동상이 있었다. 즉, 헤브라이인에 있어서 뱀은 인간의 친구였고, 진리의 옹호자였다. 그것은 마치 신의 불을 훔침으로써 인간이 신과 창조의 권능을 다툴 수 있게 한 프로메테우스와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태양]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의 올리브잎 머리 사이에는 뱀이 있는데 이 뱀은 태양을 상징한다.

[간계, 교활, 유혹] 크리스트교에 있어서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킨 뱀은 간계와 교활의 상징이다. 인간에게 범죄와 병마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지옥으로 인도한다는 사탄은 이브를 유혹하여 원죄를 저지르도록 하였다.

[재생, 불사, 영생] 고대 근동 지방의 풍요의 신 이슈타르 의식에서 나무와 더불어 지구의 재생을 상징하는 뱀은,그리스 신화에서는 영생의 황금 사과나무를 지키는 수호자 또는 용이 된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본래 땅 속에 산 뱀으로, 명부(저승)의 주신이었다는 설도 있다. 뱀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기 때문에, 재생과 불사 등을 상징한다. 뱀은 땅 속에 사는 동물의 전형으로, 모든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날개를 얻으면 지하와 천상을 넘나들어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여성, 달, 남근, 다산, 풍요] 뱀은 달의 에파파니이기 때무에, 달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뱀을 손에 들고 있다. 서양의 많은 민족들은 달이 뱀의 형태를 하고 인간의여성과성 관계를 맺는다고 믿었는데,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믿는 민족이 있다. 아브루치족은 지금도 뱀이 모든 여성과 교미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그것을 믿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는 뱀과 놀아났으며, 수에토니우스와 디오카시우스는 아우구스토의 어머니가 아폴로의 신전에서 뱀과 포옹하고 임신했다고 한다.

헤브라이 인은 처녀가 뱀과 성 관계를 가진다고 믿었다. 그 밖에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 등에서도 여성들이 잠자는 중, 특히 월경 중에 뱀이 입으로 들어가 임신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고대 풍요의 의식에서 뱀을 남근의 상징으로 숭배한 민족이 있었다. 다산에 관한 뱀 신앙은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뱀-여인-풍요' 또는 뱀-비-풍요, '여성-뱀-주술' 등과 같은 형이 이루어질 정도로 뱀에 대한 상징성은 세계 도처에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치유의 힘, 생명] 구약 성서에 불뱀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 죽이자, 모세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다니, 사람들이 그것을 봄으로써 뱀에 물린 상처가 나았다고 하였다. 이는 뱀의 치유력을 암시하고 있다. 쌓은 돌 무더기로 길 가는 사람을 보호하고 안내한 헤르메스신은 인기 높은 의료의 신이기도 하다. 서양에 있어서 의술의 상징은 2마리의 뱀이 얽혀 있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인데, 융은 이 길들인 뱀과 길들이지 않은 뱀이 겨루는 지팡이 그림에서 질환 치료의 원리를 읽었다.

또, 뱀은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로렌스는 시 '뱀'에서 뱀을 생명의 왕이라 하여 경외감을 나타내었다. 북유럽 신화에서 발데르는 뱀이 독을 흘려 놓은 음식을 먹고 천하 무적의 장수가 되었다.

[불신, 공포, 혼란] 그리스 신화의 괴녀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모두 뱀으로 되어 있고 자기를 보는 사람들을 돌로 화하게 하여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 영어에서 뱀은 교활, 음흉, 불신, 공포, 혼란 등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뱀은 초월, 깊이, 사악, 타락, 위험, 경계, 죽음 등 많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도상[자신] 뱀은 예부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땅을 맡은 신령으로 믿어 왔다. 이 때문에 공포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5~6세기경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뱀의 형상이 보이며, 신라의 경우에는 토우가 붙은 토기 중에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있다.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모양의 토우를 장식한 토기가 경주 노동동 제11호 북분 출토품과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제16지구 제30호분에서 출토된 적이 있고, 그 밖에 고배의 뚜껑에 장식한 뱀과 개구리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토우는 토기의 어깨 부분이나 목 부분 또는 고배의 뚜껑에붙어 있는데, 그 바탕에는 대개 사격자문속에 여러개의 원권문을 새기고 있다. 이 사격자문과 원권문은 천체를 표현한 것으로, 이도상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천상도와 일치한다.

고구려 고분 천왕 지신총 북벽에는 인두사신상의 지신이 그려졌는데, 그 모습은 한 몸체에 두 얼굴과 네 다리이다. 언뜻 현무와 유사하나 인면이 남녀상을 표현한 것은 중국 창조신화에 나타나는 삼황 중에서 복희여와상과 유사하다. 이 지신은 천왕도와 같이 그려져 있어서 천지에 대한 원시 신앙의 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탄생] 고구려 고분 벽화 삼실총의 교사도는 2마리의 뱀이 서로 감겨서 매듭을이루어 교합, 즉 탄생을 의미하는 형태이다. 또, 장사도에서는 왼팔에 뱀을 감고 있는데, 역시 지신으로서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작(符作, 符澱) ------------------------------------------------------------------------- -------------------------------------------------

어원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잇게 만든 상징물 또는 그 증표라는 뜻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符(병부 부)자는 대 죽+줄 부:성부 로, 대쪽에 표지를 해 절반을 나누어 지녔다가 붙여 보고 확인한 후에 도울 수 있게 만든 증거물이다.

이 부작은 의미가 부여된 자연물에서 시작했는데 후에 신을 불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목적물로 제작되었다. 제주도 한라산의 산방굴사 아래의 붙임바위나 서울 세검정에 있는 붙임바위등의 오목한 부분에 돌멩이를 붙였을 때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으면 그 날 재수가 있고 득남하는 등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이 같이 하늘의 뜻과 사람의 뜻이 부합되면 신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뜻에서 '부작'이라는 말이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신화[천부인] 삼국유사에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천부인 3개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파록'에는 천부인이 옥새의 조형으로 보인다는 기록과 함께 도장 내용의 부작 그림이 나온다. 제정 일치새대에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관인벽사변증설처럼 관리와 귀신을 다 같이 불러 호령하며 복종시켰음을 알 수 있다. 천부인으로 찍는 직부는 직부 사자로 불리는 인부의 관리가 관장했는데 불교에서는 사찰의 명부전에 생전의 행적에 대해 증명을 해 주는 관리로서 탱화에 그려져 있다.

[신을 부림] 청구 봉래 자부신선이 접신을 통해 헌훤 황제에게 천문, 병법, 장생술을 전했다. 이 방법은 '옥전결'에 기록되어 우리나라의 무당들에게 전해 오는데, 신들을 부리는 부작 사용법도 포함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에도 발해의 봉래산신선에게 황제가 불사약을 구한 기록이 있고 '포박자'에는 자부신선에게서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불러 치우를 물리쳤다고 기록되었다. 이 '삼황문 오악 진형도'는 지금도 부작으로 쓰이고 있다.

무속. 민속[부정풀이] 사람이 죽으면 집의 부정함을 없애기 위해 무당이나 판수를 시켜 악귀를 물리치는 부정풀이를 한다.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 이삭의 부정풍이: 숙종실록에, 임금이 상가를 방문할 대 도열(복숭아나무 갈대 이삭)로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초에는 대문에 복숭아나무 가지와 판에 신도의 얼굴이나 글을 써서 걸었고, 봄, 가을에는 역병을 쫓는 의식에 도검과 도판을 사용했다.

[주물] 부작은 복을 빌고 재앙을 쫓으며 자신과가족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물로 몸에 지니거나 집 안의 벽에 걸거나 붙인다. 또 장롱, 요, 베갯속, 옷 속에 넣거나 땅 속에 묻고 관 속에 넣으 뿐만 아니라 이르 태워서 먹기도 한다.

[기복] 주력으로써 복을 증가시켜 이를 성취할 수있게 한다

●버선 부작: 헝겊이나 은과 주석 등으로 대추알 크지로 버선 모형을 만들어 허리끈에 찬다.

昌盛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도 있는데 집안이 편안하고 재물이 쌓이며 자손이 번창한다는 것이다. 또 한지를 버선처럼 오려 간장독에 거꾸로 붙이면 살림이 늘고 간장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조개 부작: 제주도 근해에 여근을 닮은 조개가 나는데 이를 몸에 지니면 재수 있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이는 안산, 구자, 풍요의 의미를 가졌으며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알 부작: 산내아이의 불알을 염두에 둔 유감 주술로 달걀 껍데기에 꼬챙이를 꿰어 출입문 위에 걸고 아들 낳기를 빌면, 그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우물가에 토란을 심고 마당에 대추나무 석류나무를 심는 뜻도 이러한 다산 신앙에서 비롯된다.

●도끼 부작: 도끼 모형 3개를 끈에 꿰어 주머니에 넣고 허리에 차면, 3정승에 오를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도끼는 무력(권력)의 상징이었는데 민속에서 훌륭한 아들을 얻기 위한 태교의 방편으로 쓰였다.

세종실록에는 불임녀가 도끼 부작을 지니면 사기를 쫓아 내 임신할 수 있다고 하여 신하들에게 하사한 기록이 보인다.

●바늘 부작: 바늘의 꿰매는 역할을 부부 간의 불화를 해소하고 정을 두텁게 하는 유감 주술로 삼은 것이다. 공방귀를 쫓고 부부 화합을 도모할 목적으로 붉거나 흰 실을 써서 천 조각에 꿰어 옷 속에 넣어 둔다.

●박쥐 부작: 박쥐는 직녀성의 정령으로 집안의 행복을 담당하며 오복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경면 주사로 그려진 종이 부작 외에 막새기와, 베갯모, 귀주머니, 조바위, 부채, 담뱃대, 도자기, 반짇고리, 놀이개 등에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동이로 된 기복부에는 장수, 부귀, 화합, 취직, 승진, 건강, 구자, 안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벽사] 재액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범의 뼈, 이빨, 발톱, 털가죽과 그림 부작

●사슴 뿔과 털 부작

●복숭아 나무와 복숭아 모형 부작

●벼락맞은 대추나무, 목맨 나무, 일식날의 대문 수빗장, 월식날의 암빗장 등을 채취하여 벽사부를 새기고 주사로 그려 몸에 지닌다.

●오색실과 오색 헝겊을 채삭이라하여 단옷날에 종이에 싸서 몸에 지닌다. 설날에 설빔으로 색동 저고리를 입는 것도 무병 장수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를 벽병부, 장명루, 오색루 라고도 한다. 종이에 그려진 벽사부로는 퇴병부, 삼재 소멸부, 귀신 불침부 등이 대표적이다.

[호신] 악귀의 침해를 막고 가호를 받는다는 주술적 상징물이다.

●동자상: 무신도, 산신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자가 백제 무령왕릉에서 유리 동자(키2.5cm)의 형태로 한 쌍 나왔다. 이 동자상은 무덤 앞의 돌 동자나 도투락의 금박무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별전 형식으로 부조된 것, 판화로 찍혀진 것 등을 몸에 지니는데 '자미전서'에서는 남을 복종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것을 지닌 사람은 보호받으며, 어린아이의 병을 없애거나 순산을 돕는다고 한다.

또, 주술이 가해진 기석, 벼, 머리털, 나뭇잎, 나뭇가지 등도 부작으로 쓰인다. 이를 지니면 신비한 힘을 얻어 위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풍습[사랑의 주술]●여우 보지: 술집 접대부, 기생 등이 이를 가지고 있으면 남복이 터져,사랑하는 남자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남자의 접근이 많은여자에게 "여우 보지 가졌나?"하고 야유하는 데 노름꾼이 이를 지니면 돈을 딴다고도 한다. 여자가 짝사랑하는 남자 마음을 돌리게 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이는 성기 신앙과 직결되는데 '불여우의 것' 이 더 효력이 크다고 한다.

● 첩떼기: 무서운 신장이 왼손으로 첩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어 죽음과 이별 중에서 택일 하도록 강권하는 그림을 주사로 그려 지니고서 하늘에 간절히 기원하며 덕행을 쌓으면 첩이 떨어지고 남편이 돌아온다고 한다.

●아내의 음행 교정: 아내의 음행을 교정하려고 할 때의 비방으로 아내의 월경대를 찢어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상사라는 글자를 한지에 써 넣어 아내가 출입하는 뒷간 땅 속에 묻어 두면 행실이 바로잡힌다고 전한다.

종교[유교: 권선징악, 적덕 부작] 충효를 강조하는 도덕적 시구나 덕담,춘방 등을 주사로 써서 벽에 붙이거나 몸에 지닌다. '부모 자손 화합부', '가화 만사성', '당상 부모 천년수, 슬하 자손 만세영', '�효 전가자녀손, 의관계서 문무겸'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부작을 고등 종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무속적 전통을 방편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권선징악과 적덕을 강조하는 데 활용되었다.

[불교: 일체의 복덕 근원] 불교 전개와 함께 많은 불상이 조성되면서 주머니에 넣어 지닐 수 있도록 한 호신불이 만들어졌다. 삼국 시대에 비롯된 종이 부작은 석가탑의 복장으로 넣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 못판본 부작이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된 밀교 부작은 신라 문무왕 때에 혜통이 당나라에서 선무외 삼장을 통해 인결을 얻어 오면서 함께 가져온 듯하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은 옴 마니 밧메 훔(Om mani padme hum)부로 육자 대명왕 진언이라고도 한다, 이는 관세음보살의 보호로서 일체의 복덕과 지혜의 염원이다.

[도교: 길흉 및 농경의 관장] 우리 나라 부작에서 최고신은 자부신선이다. 작자 미상의 필사본인 '자미결'에 의하면 자부신선은 하늘의 별에 비유하면 북극성이다. 태일신으로도 불리는데 동서 남북 중앙의 오제를 임명하여 그 보좌를 받는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중앙을 다스리며 또 모든 별을 주재한다. 그리고 인명을 관장하고 음양과 오행을 통솔한다. 7개의 정성과 4개의 조성으로 구성된다

과거에 급제해 입신 출세히기를 빌 때엔, 문곡부를 몸에 지니고 북두 넷째 별인 문곡성에 기구한다. 아기의 수명 장수는 파군부에, 업장 소재는 녹존부를 지니고, 해당 별에 기구한다. 병자의 수명 연장은 하늘의 천부를 다스리는 남두육성에 빌고, 액살풀이와 소원은 여섯별 칠살과 천량, 천기, 천상, 천동, 문창에 각각 빌며, 해당 부작을 지닌다.

하늘의 소관인 길흉사에는 별부작, 입산과 관계되는 일에는 산신부, 강과 바다 등 물과 농경에는 용왕부, 집안의 길흉사에는 조왕부 등이 쓰인다.

동양 문화 중국과 일본에서는 종이 부작을 부주 또는 주부라 한다. 불교나 도교면에서는 한,중,일 동양3국이 공통적이나, 토속 신앙면에서는 각기 다르다.

중국은 제갈 무후부, 관운장부, 풍수부, 짐승뼈와 생선뼈를 이용한 화골부 등이 특이하다. 일본에서는 부작을 신사와 절에서 발행하는데 백화점에서 초속신인 금복신을 콩알만하게 만들어 지갑에 넣어 팔기도 한다.

역사. 문화[음양화합과 소원 성취] 오늘날에도 부부 화합부로 쓰이는 들쇠 부작 한 쌍과 번뇌의 해탈 및 소원 성취부로도 섬기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석가탑에서 나왔다.

[총애] 고려사에는 의종 15년 오앙의 총애를 얻기 위한 비방으로서 왕의 요속에 닭 그림 부작을 넣었다가 발각되어, 관계된 내시와 주부가 참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득남] 세종실록에 아이 배지 못란 여자가 돌도끼, 돌칼 등을 지니면 사악한 기운을 자르므로 임신할 수 있다는 어의의 말에 따라, 이를 수집하여 신하에게 나누어 준 기록이 있다.'사씨남정기'에도 득남부의 사용이 이야기되고 있다.

[귀신쫓기] 처용의 아내를 범한 역귀가 처용의 용서를 받고는 그의 화상을 그려 문에 붙여놓으면 절대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처용 부작이 유래했다고 한다. 귀신 쫓는 축귀부는 고대 소설'구운몽'에도 나온다.

'본초경'에 소개된 고구려의 '구루신서'에는 밤마다 찾아와 슬피 우는 귀신을 쫓고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는 부작이 소개되어 있다. 즉, 부지깽이의 한쪽을 깎아 글을 써서 책상밑에 넣어 두었다.

[귀신부르기] 세종실록에 백제의 유습이라고 지적된 지전이 저승에 간 혼을 부르는 부작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를 들면, 해전에서 죽은 남편의 시체를 인수해 지전으로 혼을 부르고 위패를 모셔 조석으로 곡을 하였다. 성종 때에는 지전 사용을 금지하였다.

[전염병 예방] 고려사에 정종 6년 말, 나례에 닭 5마리를 찢어 죽임으로써 나라의 전염병을 예방하는 의식을 참관한 왕이 그 끔찍한 원시 풍속을 폐지시키고 흙으로 만든 1w 크기의 흑소를 죽이는 의식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현대.서양[장식, 공예] 우리 나라에는 종이에 빨간색으로 그린 글자 또는 그림부작과 입체로 제작한 부작이 공존하는 데 비해, 서양에서는 주고 입체인 마스코트가 종교와는 무관하게 전승되고 있다. 크리스트교인들은 입체 부작을 단순한 액세서리로서 장신적이고 공예적인 가치로 보려고 하는데, 이러한 사고는 현대 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행운, 호신] 서양인들도 말굽 부작은 행운을 가져오고, 토끼 뒷다리는 악운을 막아 준다고 쓰고 있다. 또 소형으로 축소된 동물 모형을 부작으로 쓰고 있다. 6.25때에 참전한 미군 부대는 막사 앞에 마스코트라아여 한국인의 해골을 걸었고, 고아 소년을 마스코트라 하여 데리고 다녔다. 또, 출정하는 남자에게 여자의 목걸이를 마스코트라 하여 호신부로 걸어 주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부작은 무당, 승려, 한의와 점치는 능력이 있는 특정인이 만드는 데 비하여 서양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 필요에 따라 부작을 만든다.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 나라에서는 쓰임새가 구체적이고 다양하며, 삼재 일치 사상에 의해 천문, 의학,역사, 교육 등의 효용도 기하고 있는 데 비하여 서양에서는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도상[자부선생의 신력] 뼈, 뿔, 이발 발톱, 조개 등으로 된 입체 부작은 석기 시대의 산물이며 금은 보석으로 신상, 범, 사슴, 말 , 도끼, 방울 , 자물쇠, 가위, 거울 등을 작게 만들어 부작으로 사용한 것은 청동기 이후이다.

먼저 '포박자'에서 유래한 청구 자부선생의 '삼황문 오악 진형도'가 있다. 오악 진형도가 새겨진 조선 때의 부작 목판이 전주 남고사에 있었고,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자손 부귀] 송나라 요우의 풍수서 '천기외원'에 동남동향의 무덤에 청동경을 넣으면 자손이 부귀를 누린다고 하였다. 이의 영향으로 보이는 청동경의 부작 무늬가 있다.

[기복, 벽사, 호신] 현재에도 쓰이는 종이 부작은 문자 부작이 가장 많다. 한문 전서체와 산스크리트가 주종을 이루고 한글로 된 것도 있다. 글자를 조립, 암호화, 재구성하여 회화성이 높다. 조자된 한자 부작이 가장 많은데 기복부, 벽사부, 호신부, 소원 송취부, 도덕부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림 부작은 신상, 동물, 건축 등 구상형과, 추상형으로 나뉘며, 혼합된 것도 있다.

 

부채 --------------------------------------------------------------------------------- -------------------------------------------------

어원 고려 시대의 우리말 사전인 손목의 '계림유사'에 '선을 부채라 한다"고 하였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인 '부치다'의 동사 어간 'ꚙ-'과 말채, 파리채, 골프채 할 때의 잡음막대를 뜻하는 '채'라는 명사와의 합성어이다.

부채를 뜻하는 한자 '扇'은 삽짝문을 뜻하는 '호戶'와 새의 날개깃을 뜻하는 '우羽'가 합쳐져 된 외의 문자이다. 즉, 삽짝문 엮듯이 새깃을 엮어 만든 '부채'를 뜻한다.

무속. 민속 [벽사]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고 먼지를 날린다. 부채가 먼지 같은 가시적인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듯이 재앙을 몰고오는 액귀나 병을 몰고오는 병귀 같은 불가시의 사를 쫓는다고 믿었다.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이 부채를 염병을 쫓는 부채라는 뜻인 벽온선이라고 일컬었음은 부채가 벽사 기능을 했음을 말해 준다.

[초신] 악마를 쫓고 신명을 부르는 굿에서 부채는 필수적이 무구이다. 이 무선은 벽사, 초신을 위한 상징 용구이다. 신명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신명이 싫어하는 부정과 사귀, 액귀를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또, 환자에게 도사린 병귀나 사귀를 쫓아 내기 위해 부채의 상징적 바람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벽사용 부채는 부챗살이 길고 큰데 그려진 그림에 따라 일월선,삼불선, 사선선, 팔선녀선 등이 있다.

[베의 기구] 굿을 하면서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무당 모습이 풍속도에 흔히 보인다. 신을 불러 내고 오신하는 과정에서 무당이 부채를 들고 춤추면서 잡귀를 쫓아 내는 모습은 부채가 제의 기구의 필수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 3명이 나란히 그려진 삼불선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하는 과정에서 채택된 무구이다. 조선 시대에 무속이 혹세무민한다고 하여 탄압을 받자 무당들은 산속 암자를 찾아들었다. 그리고 굿당에 부처를 모시고 불구를 갖추는 등 불교로 무속을 위장하여 연명하였다.

[기복] 경기도 장말의 도당굿[산 사람의 제재 초복을 위해 부락의 수호신을 위하는 굿]에서는 집집마다 꽃반이라고 하여 밥상 위에 백지를 깔고 그 위에 쌀을 두어되 부어 놓고 돈과 음식을 차려 놓는다. 도당할아버지가 신옷을 입고 수건과 부채를 들고 외다리춤을 추며 신을 청한다. 신이 오르면 부채를 꽃반에 세우는데 부채가 단번에 세워지면 그 집의 운수가 대통하다며 즉시 상은 치워지고 쌀은 무당의 자루에 채워진다. 도당할아버지는 부채가 세워 줄 의무가 있다.

풍습[동정] 신랑이 신부를 맞기 위해 장가 가는 날 백마에서 내려 신부 집 문을 들어설 때 얼굴의 하반부를 가리는 파란 부채나 신부가 초례청에 나올 때 수모가 신부의 얼굴을 가리는 빨간 부채는 신랑 신부가 처녀 총각이라는 동정의 표상이다. 부채를 거둠으로써 동정을 주고받았다는 상징을 나타내게 된다.

[수치를 감춤] 국상이나 친상을 당하면, 소선이라하여 그림이나 글씨가 없는 백선을 2년간 지니고 다녔다. 이것은 군부를 잃은 죄인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하여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굳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얼굴가리개의 상징적 효과를 발휘했다.

[정조] 쥘부채는 펴지고 접히는 구조이다. 이 개폐의 구조는 여자의 정조에 비겨져 정조를 지키고 변절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사랑의 약속과 그 약속의 신물로서 부채를 주고받는 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기방 풍습에도 마음을 주고 싶은 임이 생기면 기생은 자신의 화선을 접어 넌지시 임 앞에 밀어 놓았다. 이것도 부채의 정조 상징에서 비롯되었다.

[신분] 부채는 부챗상이 10 골에서 60 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부터 단옹; 단오선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단옷날을 앞두고 림금에게 부채가 긴상되염 임금은 다시 그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벼슬의 품수에 따라 부챗살의 골수를 맞추어서 내렸다. 그 부채 주인의 벼슬과 신분의 정도를 어림할 수 있었다. 부챗살의 공 수뿐만 아니라 부채 끝에 다는 패믈로도 신분 식별이 가능했다 비취나 호박, 서각 등은 품수가 높은 부채이고, 옥이나 쇠뿔이면 중간 품수이며, 쇠붙이면 낮은 신분이다.또, 3품 이상의 벼승아치에게 하사하는 부채네는 내의원에서 만든 옥추단에 구멍을 뚫어 다는데, 가지고 다니다가 복통이나 곽란 등 급병이 생기면 이 선초의 옥추단을 긁어 물에 타 마심으로써 응급처치하게 했다. 부채는 구급약통 구실도 했다.

종교[불교: 도의 전수] 지눌이 혜심을 처음 만났을 때 들고 잇던 부채를 주었다. 이에 혜심은 "전에는 스승의 손에 있던 것, 지금은 제자 손바닥으로 왔네. 만약 미친 듯 달리면, 맑은 바람 부쳐 일으켜도 무방하리"라고 읊었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부채를 전함으로써 도를 전수했다고 했다.

[도교: 도술] 훤수 문득 생각하고 백학선을 들어 사면을 향하여 부치니, 홀연 광풍이 대작하매, 벽력이 진동하고 모진 빙설과 무수한 신장이 적진으로 들어가니 살벌지성이 천지에 진동하더라 <백학선전>

"백학선전'에서 조은하는 부채의 도움으로 적을 물리쳤고 '금방울전' 에서는 금방울의 어머니 막씨가 선관에게서 신통력이 있는 부채를 선물로 받았다. 이는 도술에 의한 초능력의 행사에 부채가 쓰인 경우이다.

동양 문화[중국:통치권] 순은 요에게서 왕권을 물려 받고, 널리 눈과 귀를 열어 어진 사람을 구해 보필하도록 한다는 뜻에서 오명선을 만들었고, 그 후 진과 한나라의 통치자들도 이 오명선을 지녔다.

오명선의 오명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문헌에서 찾아볼 수는 없으나, 정치를 밝게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주나라 무왕을 비롯하여 양, 위, 진의 모든 임금이 꿩깃으로 만든 부채인 치우선을 지녔던 것으로 미루어, 부채는 통치권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휘봉] 수령이나 무관 등은 반드시 부채를 휴대했는데 이는 납량용이 아니라 손가락 대신 지시, 지휘하기 위한 도구였다. 부채를 내리치므로써 응진 또는 견책을 표하거나, 폈다, 접었다 함으로써 아랫사람에게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었다. 중국 문헌 ' 배계어림'에 제갈 양은 백우선을 들고 삼군을 지휘했다는 대목이 잇는 것으로 미루어 지휘봉으로소의 상징을 역사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애정] 문학 작품에서 부치는 남녀 사이의 애정을 상징한다. 중국 한 성제의 후궁 반첩여는 '원가행'에서 "제나라 흰 비단을 새로이 쪼개니, 희고 깨끗하기 서리와 눈 같네. 마름질하여 합환선을 만드니, 둥글기 명월 같구나. 그대 품 속에 들어가 서늘한 바람 일으키는데, 항상 두렵기는 가을이 와서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배앗아 가면 상자 속에 내버려, 은혜와 정이 중도에 끊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여 부채로 애정을 상징하고 있다.

[선행] 부채 선자와 착할 선자가 동음인 데서 부채로 선행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국 한대와 당대에는 착한 사람을 천거한 기념물로 부채를 사용하였다.

[일본: 벽사, 기예 전수] 일본에서도 군배단선이 있어 서늘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모기와 파리 떼를 쫓기도 했다. 또, 군졸을 통솔할 때에나 화살 등을 피할 때에 사용하기도 했다.

역사.문학[통치권]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하자, 견훤이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고, 왕 3년 9월에는 공작선을 바쳤다. 이는 견훤이 고려 태조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금기] 부채가 일으키는 바람에는 벽사의 기능도 있지만, 농사에 필요한 비구름도 날려 보낸다는 발상도 생겨났다.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부채를 쓰지 못하게 하는 금휘선의 영을 내렸다. 즉, 고려 의종 5년 4월부터 7월까지 가뭄이 계속되자, 임금은 부채를 쓰지 못하도록 금령을 내렸고, 문종, 선종, 숙종, 충렬황 때도 가뭄이 들자, 부채를 쓰지 못하게 했다.

[신분의 은폐] 양반집 부녀자는 열굴을 남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외법 때문에 주간 외출을 삼갔는데, 외출시에는 얼굴을 가려야 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부녀자들은 외출시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이 장면 풍속이 해이해졌던지 태종 14년 11월에는 부녀자들로 하여금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금하고, 대신 모자 앞에 발을 드리운 염모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도록 하였다. 이 염모는 머리에서 상반신을 덮어씌운 장옷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로 바깥 나들이할 때 부채를 들고 다니는 이는 기생과 무당에 국한되었고, 여염 여자가 부채를 들고 다니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또, 신준이 높고 낮음에 따르는 번거로운 법도를 배려하여 신분을 가리는 상징적 도구로 부채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양반 신분의 사람이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 신분이 낮은 상민이나 천민은 길을 비켜 읍하고 서 있거나 말을 탔으면 하마하였다. 이 때, 신분이 낮은 상대방의 번거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려 신분을 은폐하고 지나가면, 읍하거나 하마하지 않아도 되었다. 양반이 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닌 것은 이 때문이었다.

[결의] 같은 목적하에 결의나 서약을 할 때, 그 마음을 묶어 두는 유형의 증거물, 즉 결의 상징의 하나로 부채가 이용되었다. 쥘부채인 접선은 다수의 부챗살이 한데 졀속되어 있으므로 일심 동체를 다질때에 그 신물로서 사용되었다. 동심계를 맺을 때, 부챗살 하나하나에 결의자가 이름을 쓰거나 시구를 한 구절씩 써서 보관함으로써 변심을 경계했다. 이러한 부채를 일심선이라 했다.

신미양요 때, 전투 전에 병사들이 원형의 부챗살에 각기 이름을 적어 일심선을 만듦으로써 공생 공사를 결의하였다. 그 일심선은 미국 해군의 노획물이 되어, 오늘날 미국 아나폴리스의 해군 사관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일편단심] 단심선이라는 부채는 자신의 충성이나 효성, 의리의 일편단심을 고하려고 부채에 그 뜻을 적어 보낼 때에 사용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의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동래부가 함락되자, 동래 부사 송상현은 자결, 순직하였다. 자결직전에 송상현은 백선에(외로운 성에 달무리졌는데, 진을 치고 메개를 높이었다. 군신의 의는 무겁고, 부자의 은혜는 가볍다)라고 써서 아버지에게 보내었다.

[사치품] 부채는 축재 또는 뇌물로서의 효용이 컸다. 성종24년 10우러, 대사헌 허침이 임금에게 사치를 경계토록 하는 상주에 "부채값이 무명 팔구동에 이르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무명 1동이 50필이므로, 무명 400~450필이나 되는 고가의 부채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인] '금오신화' 중 만복사 저포기에서 "비단 부채가 맑은 가을 하늘을 원망하는 일은 하지 마셔요."라는 구절이 있다. 가을의 부채처럼 자신을 홀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라서, 가을날 부채는 소박당한 여인을 상징한다.

또 민요에, "가을에 곡식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이 되니 첩을 팔아 부채 산다."는 구절이 있다. 여름에는 무엇보다 부채가 제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현대. 서양[감정] 현대에는 판소리나 창을 하는 소리꾼들이 무대에서 노래할 대 모두 부채를 사용한다. 부채의 조작으로 소리의 극절 효과를 높이고자 함이다. 목청을 갑자기 높일 필요가 있을 때에 부채를 순간적으로 펴 들면, 시각 효과로 고성 효과를 높여 주며, 서서히 접어 나가면 삼성 효과가 보다 실감나게 발휘 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접으면 단성 효과가 커지고, 펴 들고 하느적거리면 소리의 완곡효과가 커진다.

[벽사] 유럽에서 부채는 악마를 쫓는 바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 비치한 성선은 바로 악마를 쫓기 위한 상비 기물이다.

[사랑의 징표] 유럽에서 부채는 사랑의 징표이기도 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 때에는 , 사랑하는 남자에게 짐짓 부채를 떨어뜨려 줍게 함으로써 사랑을 표하는 풍습이 있었다. 말라르메의 시 '플라셀 퓌틸'에 '사랑은 부채의 날개를 타고'라는 시구에서도 알 수 있다.

[언어] 유럽에는 부채말이 있어, 부채의 조작으로 어려운 의사 표시를 행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18세기 에스파냐에는 '부채말 사전'이 있었고, 영국에는 신사 숙녀를 위한 '부채말 학원'이 있었다.

서전에 보면, 부채를 입술에 갖다 대면 "기회가 주어지면 당신에게 키스를 허용한다."는 뜻이고, 부채끈을 오른손에 걸고 부채를 접은 채 들고 있으면 "나는 연인을 구하는 중입니다."는 뜻이며, 부채로 앞머리를 문지르면 "지금 당신 생각을 하고 있다."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당신을 진정으로 싫어한다."는 뜻이다.

도상[벽사, 위엄] 고대에는 공작, 꿩등의 깃털로 만든 쥘부채가 쓰여졌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 안악3호분 주인공이 이러한 부채를 쥐고 있다. 이 부채는 깃털 부채인데, 부채 중앙에 귀면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벽사의 의미와 함께 위엄을 돋보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쥘부채는 종이, 헝겊, 부들 등을 이용하여 연엽, 오동엽, 파초엽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 부채면에 색지를 붙이거나 채색으로 그려서 만든 태극선등이 있다.

[팔덕] 예부처 부채에는 8덕이 겆춰져 있다고 하였다. 팔덕이란, 첫째,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고, 둘째, 방석으로 사용하며, 넷째, 머리에 이고 다른 물건을 얹어 나를 수 있으며, 다섯째, 차일 구실을 하고, 여섯째, 비를 막으며, 일곱째, 파리나 모기를 쫓고, 여덟째, 얼굴�르 가리는 차면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사슴 --------------------------------------------------------------------------------- -------------------------------------------------

어원 15세기 표기로는 '사-'인데, 어근 '삿-'에 접미사'-'이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일본어에 시시가 있는데 짐승의 뜻도 지니고 있다. 또, 일본어 시카는 국어 사슴의 어근 '삿-'과 같은 어원일 개연성이 있다.

신화[우주 동물] 동명왕 신화에서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한 우주 동물로 상징되어 있다. 주몽(동명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나서 이웃인 송양왕의 비류국을 합병하려고 할 때, 흰 사슴을 잡아 해원의 큰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주문을 외었다. 사슴의 울음소리는 낮과 밤을 이어 길게 하늘에 메아리쳤고, 결국은 하늘에 사무쳐 큰비가 내렸다. 비류국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두려움에 싸인 송양왕과 그의 백성은 주몽에게 항복하였다. 비류국 합병 이후로 고구려는 날로 강대해졌다.

이 경우의 주몽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비의 주술신이며, 사슴은 주술의 효험을 보장하는 영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슴은 주술사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에 천신에게 쓰는 희생의 제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여러 층위에 걸친 사례로 미루어 사슴은 신령스런 영매 구실을 하는 우주 동물로 봄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무속. 민속[영생, 재생] 오늘날의 민속이나 무속 신앙에서는 사슴이 중요한 신앙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경북 고령 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나온 사슴뿔은 당시에 녹각 숭앙 이 행해졌음을 시사해 준다.

녹각 숭앙은 곧 사슴 숭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부장품으로서의 사슴뿔은 수사슴이 누리는 권위가 죽은 이에게 전이된 결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사슴뿔은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 및 공동체의 수장의 상징일 수 있다. 죽은 이의 부장품이라는 것을 강조해 생각한다면, 사슴은 영생 또는 재생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사슴이 후대에 와서 십장생의 하나로 된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 크다.

사슴이 영생이나 재생의상징으로 된 주요 언인은 사슴을 대지의 덩물로 믿었기 때문이요 원인은, 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뿔이 돋는다. 이러한 순환 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여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 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원리를 갖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의 몸에서 자라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거듭남을 되풀이하는 이 사슴뿔은 영생력, 즉 죽음에 의해 중단되면서도 거듭 재생을 누리는 영생력 자체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면헤서 사슴은 동면하는 곰이나 뱀 등의 동물과 더불어 한 무리의 재생 동물이라는 관념을 낳게 되었다.

[신령스러움] 사슴의 출현을 좋은 일이 생길 징조로 보았다. 신령스러운 사슴, 즉 신록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특히 흰 수사슴은 신록다음이 두드러진 것으로 생각했다.

풍습[왕권] 사슴은 원시 시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는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와 그 가까운 곳의 천전리 안각화에서 볼 수 있다. 즉, 종교난 생활면에서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이미 인간과 사슴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 사슴은 중요한 사냥감이었다. 사슴뿔은 왕권의 상징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라의 일부 왕관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무와 새의 날개 및 사슴뿔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나무와 새 날개와 사슴뿔이 왕권을 상징한다는 것은, 이들 세 물건이 상호 연관되어 어떤 전채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새가 하늘이면 사슴은 대지이며, 나무는 하늘과 대지를 이어 주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는 한데 어울려 신라인의 전체적인 세계상을 표상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신라 왕관이 지녔던 우주적 차원에 관한 추정도 가능해 진다.

[거룩한 동물] 우리 민족은 사슴을 상상의 동물인 기린에 준하는 거룩한 동물로 숭상하였다. 우리의 전래 동화나 전설에서 사슴이 인자하고 어진 짐승으로 등장하는것으 우리 민족의 이러한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나 다른 짐승에 상처받기 쉬운 약한 짐승이지만 남에게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짐승이 사슴이기도 하다. 상상의 동물인 용의 형상화된 것 역시 사슴에 대하 신뢰감에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유교: 보은] '역옹패설'에는 사슴이 신의 자식이자 보은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고려 문신 서희의 조부 서신일이, 화살에 맞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 살려 준 일이 있었다. 그의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 "사슴은 나의 자식인데, 그대의 힘으로 살아났다. 나는 그대 후손이 대대로 재상이 되게 히리라."고 했다. 그 이후로 과연 자손이 태사내사령이 되었고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의 유교에서는 사삼에 관한 도교적인 관념이 부분적으로 접목되어 있다.

[불교: 진리의 안내자] 성현의 '용재총화'를 보면 고려 환암국사와 사슴에 얽힌 설화가 나온다. 환암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13상때 아저씨를 따라 사냥을 갔다. 달아나던 어미사슴이 새끼사슴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쳐 스님이 되어 국사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사슴은 진리의 안내자로 볼 수 있다.

[도교: 신성] 학(청학)이 신선의 벗이자 짝이듯이, 사슴도 신선의 벗이자 시종이다. 이 경우, 사슴은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의 탈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슴은 호랑이와는 달리,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겨졌던만큼, 신성한 동물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어질고 인자한 짐승으로 생각했으므로, 신선이나 도인의 품을 갖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양 문화[환생]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 랩 족의 샤머니즘에서는 죽은 샤먼의 영혼이 사슴의 육체를 빌어 이세상에 나타난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슴 신앙은 시베리아 전역과 극동 지방까지 발견된다. 골디족이나 사모예드 족은 무당이 죽으면 다리와 뿔을 갖춘 순록의 목각을 만든다. 죽은 자의 넋이 그 곳에 깃들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퉁구스족의 무당은 등이나 어깨, 머리를 사슴뿔로 장식한다. 이러한 퉁구스족 무당의 복장은 신라 왕관의 녹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장수] 사슴을 장수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슴을 불멸의 신성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유일한 짐승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슴의 그림은 관리들의 봉급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어의 '사슴록'자와 '녹봉록자가 음이 같은데에 연유한 듯하다.

[일본: 신성] 일본의 민속 신앙에서는 동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여우 등과 함께 사슴은 하차만신이 지닌 신성의 징표로 간주된다. 그 예를 가스가 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문학[상서물, 영생력] 고구려에서는 3월 3일 국가적이 규모로 사냥을 했는데 그 때 잡힌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로 미루어, 사슴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여의 사신이 고구려 태조왕에게 꼬리가 긴 토끼와 삼각록을 바치자, 태조왕이 이를 상서물이라 해서 죄인들을 풀어 준 기록도 있다. 일본에는 신라가 일본에 보낸 진귀한 물품 중에 말, 개, 앵무새, 낙타, 까치와 함께 사슴 가죽이 포함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슴 가죽을 매우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사슴은 우주 동물로서 재생력을 갖춘 상서로운 동물로 숭앙받으면서 거북, 학과 더불어 십장생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 때의 사슴은 영생력을 상징하고 있다.

[무당] 다음과 같은 고려 가요에서, 사슴은 무당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마당을 돌아서 가다가 듣노라./사슴이 짐대에 올라서 해금을 켜는 걸 듣노라<청산별곡>

여기서 사슴은 사슴의 탈을 쓴 무당을 가리킨다. 짐대는 우리의 무속과 연관되는 솟대이다. 제의 때에 무당이 가무로써 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음을 비춰 볼 때, 여기서의사슴은 무당으로 봄이 타당하다.

[우아함, 순결] 현대 문학에서도 사슴은 우아하고 고귀하며 순결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은 한 개인의 자아 세계로 투영되면서 구체화되어 또 다른 세계를 보여 준다. 다음의 사슴은 고귀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존재로서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슬픈 모가지를 하고/먼 데 산을 바라본다.<노천명. 사슴>

여기서의 사슴은 옛날의 영광을 돌이키고 싶어하는 슬픈 존재이다. 고귀한 신분을 잃고 낙원을 그리워하며 어찌할 수 없는 현재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는 먼 데로 눈을 돌리는 존재이다. 외모로는 아직도 고귀하고 우아하지만 내적 자아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사슴의 존재에 작가는 자기 자신을 투영시켰다.

현대.서양[생명력]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녹용이나 녹혈을 정력제로 복용한다. 이것은 사슴이 지닌 여려상징성이 구체화된 예이다.

서양에서도 사슴은 재생력을 갖춘 동물로 생각했다. 뿔이 떨어져 나간 후에도 거듭해 돋아나기 때문에 사슴은 코끼리보다도 더 오래 산다고 믿어 왔다. 사슴은 독버섯이나 독풀을 먹고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을, 허무] 사슴이 가을이나 허무, 또는 영혼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예는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동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르테미스신] 그리스 신화에서의 사슴은 사냥과 달의여신인 아르테미스가 아끼는 동물로 나타나며, 아르테미스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어떤 때에는 아르테미스 자신이 암사슴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유럽 대륙의 여러 민담이나 전설에 등장하는 사슴은 태양의 수레를 끌고, 주인공을 선녀의 나라나 거인의나라 또는 죽은 이들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

[인간의 영혼] 사슴이 인간의 양혼으로 상징화되어 여러 주술에 이요되었다. 사삼의 내장은 제각기 특효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 졌다. 사슴의내장은 사랑의 묘약이며, 여성의 생산력을 증진시킨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양에도 사슴이 사냥꾼이나 맹수, 마귀에게 쫓기는 이야기가 널리 분포되어 있고, 설화 중에 사슴을 돕는 사람은 사슴에게서 큰 보상을 받는다.

[그리스도] 중세 크리스트교 교회 미술에서 사슴은 흔히 세례받는 물가에 등장한다. 그것은 사슴이 뱀을 물리치거나 해를 입지 않고 사악한 뱀을 삼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사슴을 그리스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메르쿠리우스] 빛나는 황금 뿔을 가진 사슴설화에서는 그 뿔이 닿는 물으 금새 만병을 '치유할 수 있는 물로 변한다.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그들이 만들고 싶어하던 최고의 물질인 메르쿠리우스'라는 상상의 물질을 '언뜻 스쳐가는 사슴'에 비유하고 있다. 붙잡기 어렵고 파악하기 힘든, 기체도 액체도 아닌 신비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재빠른 사슴에 비유, 설명했다.

[영혼의 인도자, 아니마의 원형] 심리학상의 사슴은 번득이는 본능적 파악 능력이며, 의식의 자아를 무의식의 전체 정신으로 이끌어 주는 영혼의 인도자이다. 그리고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는 아니마(심령)의 원형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사슴은 삶의 풍요를 상징하고 생명의 새로운 전환을 매개하는 마음의 측면을 대변하며, 때로는 그러한 작용의 주체인 자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도상[주술적 장식] 동물 견갑 사슴장식은 갑옷의 어깨에 사슴 2마리와 호랑이 1마리가 선각된 것으로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이다. 이는 갑옷을 입은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고 위세를 보이기 위한 주술적 장식이다.

[부작] 높이 3.3cm로 경북 영천에서 출토된 사슴머리 부작은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코 끝에 앞과 옆으로 구멍을 뚫어 끈으로 꿰어 몸에 찼던 것을로 보인다. 이는 신석기 시대 이래 사슴을 숭앙했던 결과이다. 그 기원을 시베리아 일대의 구석기 새대 수렵인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한서' 서역전에 사슴종류인 도발이라는 짐승이 보이는데 뿔이 1개인 것은 천록, 2개인 것을 벽사라 하였다.

[장생] 사슴은 십장생 중의 하나이다. 사찰의 산신각에서 볼 수 있는 선수이고,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장수의 영물로 전한다. 1000년을 살면 천록이 되며, 다시 500년을 더 살면 백록이 되며, 또 500년을 더 살면 흑록이 되는데, 검은 사슴은 뼈도 검어 이를 얻으면 불로 장생한다고 한다.

샘 --------------------------------------------------------------------------------- -------------------------------------------------

어원 우물이 인공으로 파서 괸 물인데대하여 샘물은 자연적으로 새어 넘쳐 흐르는 물이다.

샘으 고어에는 '섬'외에도 '�螡암물,�螡옴' 등이 있는데 흘러 나온다는뜻의 '�螡다'라는 동사와 비교해 보면, '�螱, �螡옴'은 곧'�螡다'의 명사형임을 알 수 있다. 또, 샘솟다의 고어에 '�螱다'가 있는데 '신>신다/배>배다/품>품다' 등과 같이, '�螡다'에서 '�螱'이 형성된 후에 형성된 동명사형으로 보인다.

만주어에 셔리라는 말이 있다. 어근은 '셜(설)-'이라 하겠는데, 물의 뜻을 지닌다. 또 설거지의 '설'이 물의 뜻을 지니는 거것과 같이 서리(霜)의 '설-'도 물의 뜻을 지닌다.

'�螱'은 '�임'의 준말이고, '꿉'이 원형이다. 이 '꿉'은 물의 뜻을 지닌다. '꿉임>사임>�螱'으로 변천한 말이라 하겠다. 몽골어에 블락이 있는데, 어근 '블-'은 국어 물의 뜻을 지니는 말과 어원이 같다고 하겠다. 즉, 바다의 '받', 그릇을 부시다의 '붓(붇)', '비'등이 물의 뜻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신화[생명력]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나정 가에 알에서 태어나 동천가에서 몸을 씻었다. 그의 비 알영도 알영정 가에 나타난 계룡의 옆구리에서 나왔다. 이와 같이 샘이 시조의 출생과 관련되는 것은 샘물의 생명력과 함께 농경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성징성을 띤다. 단군과 주몽의 신화가 산이나 강하를 무대로 형성되는 데 비해, 혁거세는 정천에서 시작된다. 이는 곧 정천이 가장 중요한 생활원이자,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상징한다. 이것이 혁거세가 성스러운 산꼭대기나 깊고 넓은 강하에 강림하지 않고 나정 가로 내려온 이유이다. 농경 문화에서 마르지 않는 샘은 생명력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또 샘은 그 물로써 신이한 인물을 탄생시킨다.

강원도 명주 학산리의 한 처녀가 굴산사 앞의 돌샘에 비친 아침해를 떠 먹고 아들을 낳았다. 이가 범일국사로서, 훗날 대관령의 국사 서낭신이 되었다.

[통로] 고려사 세계에 의하면 태조의 조부 작제건의 아내는 용녀 였다. 그녀는 개성의 대정을 통해 용궁을 내왕하였다. 여기서 대정은 용궁으로 통하는 입구라는 상징성과 함께 샘과 관련된 민간의 용신앙을 나타내 준다.

무속.민속[근원, 생명력] 샘은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정초에 정제를 지낸다. 그리고 전통적인 마을에는 거의 대동샘이 있는데, 신성시 한다. 집에서 개인소유의 샘에 치성을 드릴 때 묵은 물을 퍼 내고 새 물이 괼 때에 제의를 시작한다. 이렇게 샘이 제의와 관계되고 신성시되는 것은, 샘물이 지닌 성징성에서 연유한다. 샘물은 끊임이 없다. 모든 동식물의 생명의 원천이자 낡고 묵은 것을 없애며, 새 것으로 바꾸는 재생력과 정화력을 지닌다. 그래서 샘은 근원을 상징한다. 동민들이 대동샘에 가서 합동으로 정제를 지내는 것은 , 해가 바뀌었으니 마을의 모든 것이 새롭게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루어야 할 시발의 근원을 대동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인이 단독으로 집에서 치성드릴 때, 물을 푸고 새 물이 괴기를 기다렸다가 제를 지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새로운 것의 근원은 새 샘물이다.

동제당에서 동신제를 지낼 때에는 따로 샘을 지정한다. 이 때도 샘의 묵은 물으 퍼내고 새로 괸 물로 제수를 장만하며, 정화수로도 바친다. 굿이나 고사, 치성에는 반드시 정화수가 제상에 올라가기 때문에 새로 또 온 샘물을 기본 제물이다. 이 역시 샘물이 지닌 생명력과정화력에 연유된다.

풍습[거울, 풍요] 거울이 없던 시대에는 샘에 가서 얼굴을 비춰 보고 마음을 가다듬곤 하였다. 지리산 여신 마야고가 장터목의 산희천에 얼굴을 비춰보곤 했다는데서 이같은 행위가 오랜 관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샘은 강이나 바다와 통하는 통로로 인식했다. 고려의 작제건과 용녀 이야기가 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승은 민담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정월의 세시 풍속인 '용알뜨기'도 이와 관련된다. 즉, 정월 첫 진일 전야에 용이 샘에 내려와 알을 낳고 간다. 그 옹알이 들어 있는 샘물을 맨 먼저 길어다 밥을 짓는 사람은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고 하여 앞을 다투어 샘물을 길어 간다.샘이 용과 관련되어 풍요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일면이다.

[변고의 예시, 생명력] 백제군을 토벌하고 돌아오던 김유신은 백제군이 또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전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 때, 그는 집앞에 나온 가족은 보지도 않고 말을 멈추고는 집의 샘물을 떠 오게 하였다. 이를 마시고는 "우리 집의 물은 옛 맛 그대로군." 하고서 행군하였다. 이는 집안의 샘물 맛이 집안에 변고가 있고 없음을 알려 준다는 풍습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이나 개인에게 변고가 있을 때, 노인들은 대동샘이나 그 집의 샘물이 뒤집혔다는 이야기를 한다. 샘은 생생력과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믿어, 장님이 눈 뜬 이야기, 조막손이 펴진 이야기, 극심한 속병이나 피부병이 나았다는 이야기 등이 전승되고 있다.

한 효자가 있었다. 병든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나, 돈이 없었다. 샘물이라도 떠다 드리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물을 길러 다녔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샘물이 술로 변하였다. 그 술을 떠다 드리자,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또 어떤 사람이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 젊어졌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친구는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아이가 되었다. 여기서는 샘물의 약수로서의 효능과 생생력이 강조되고 있다.

앞을 못 보는 감천이가 앉은뱅이 지성이를 업고 다니며 밥을 얻어 먹었다. 하루느 s길을 가다가 어느 샘에 이르렀는데 커다란 금덩이가 들어 있었다. 금덩이를 건져 서로 가지라고 권하다가 도로 넣어 두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는 행인에게 금덩이를 가져가라고 하였다. 행인이 샘에 가 보니 큰 구렁이가 있어 샘 옆의 큰 돌을 힘껏 던지며 화를 내고 갔다. 지성이와 감천이가 가서 보니 금덩이가 똑같은 크기로 갈라져 있어 나눠 가졌다. 한 처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버지를 위하여 매일 아침 일직 샘에 가서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였다. 어느 날 샘에 오이가 떠 있어서 그것을 먹었는데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는 훗날 보조국사가 되었다. 이 설화는 샘의 신비한 능력과 함께 잉태력이라는 인식의 면모가 나타난다. 민담으로 전승되는 샘에 대한 인식은 물의 상징성에서 파생되는 생명력과 근접해 있다.

[생명의 젖줄] 촌락 사회에서는 공동 우물과 관련된우물계가 있었다. 정계, 정호계라고도 하는데 마을 공동 우물의 신축과 보수, 관리를 위한 계조직이었다. 어느 곳이나, 가물 때도 마르지 않고 항상 식수를 공급하는 '큰샘' 또는 '동네샘'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다.이것을 보통 초봄이나 장마철, 가을 추수 뒤에 계원들을 소집하여 보수하거나 청결히 하였다. 여기서 샘은 공동의 생명을 보전하는 젖줄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종교[유교: 근본] 유교적 사유 체계에서의 샘은 근본을 표상한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그칠 새, 내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용비어천가 제2장>

샘은 풍파에도 끊임없이 물을 뿜어 낸다. 그래서 유구하게 흐르는 물은 마침내 크고 넓은 바다에 이른다. 여기서 샘은 겨레의 정신과 문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불교: 사유의 깊음] 금강수보살이 대일여래에게 유가행자의 심상에 대해 물었다. 이에 육십심으로 답했는데 그 25번이 정심이다. 즉, 사람 마음의 선과 불선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것을 우물을 보기만 해서는 그 깊고 얕음을 헤아릴 수 없음에 비유한 것이다 우물은 사유의 깊음을 상징한다.

[도교: 편협된 세계] 도교에서는 좁고 편협된 사람의 사고 방실을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하였다. '장자' 추수편의 정와에서 보듯이, 우물은 좁은 견문과 자기만의 편협된 세계를 표상한다.

동양 문화[중국: 근원, 돈, 저승] 샘을 뜻하는 '泉'자는 '水'자를 기본으로 하여 돌틈에서 솟아나는 물 모양을 본뜬 상형 문자이다. 이것의 중국음은 '전체'를 骕하며, '全'과 같다. 그래서 샘은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샘물은 끊임없이 솟고 잘 쓰인다는 뜻에서 돈을 상징한다. '한서' 식화지에 "화폐는 가치가 금보다도 귀중하고, 쓰임이 칼날보다 날카로우며, 샘물보다 더 잘 유통된다."고 하였고, '주례'지관소에도 "돈과 샘은 고금에 걸쳐 같은 것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사람이 죽으면 땅에 매장하였다. 땅 밑에는 샘이 있어서 저승과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천', '황천'과 같은 말이 생겼다. 조가의 '도망시'에 "밝은 달빛 쓸쓸한데 바다 위에 바람일고,/임은 황천길 떠나시고, 나만 홀로 떠도는 신세."라는 구절이 있다. 이 밖에 천석은 경관이 수려한 산수를 이르고 염정 문학에서의 샘은 여근을 상징한다.

[일본: 신의 은혜, 고향] 일본에서 샘은 신의 은혜로 생각되었거, '영천'으로 숭배되었다. 그래서 샘가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잔재가 '탄생수' 나 '산탕수'와 같은 무수한 전설로 남아 있다.

나가사키현 히라도섬이나 고토 열도에는 임종시의 환자가 '소망의 물'이라는 말을 한다. 특별히 차갑고 수질이 좋은 샘이나 우물을 정해, 죽기 전에 그 물을 마시고 싶다고 희망한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입에 익숙한 고향의 물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샘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마음의 고향을 상징한다.

역사. 문학[생명력의 근원] 샘은 인류, 국가, 종교 또는 한 개인의 생명력의근원이다. 그래서 그 샘이 마르면 인류도 국가도 종교도 같은 운명이 된다는 우주적 신비력을 동반한다. 이차돈이 순교할 때에 감천이 말랐고, 심지가 절을 세우기 위해 던진 간자는 임천에 떨어졌다. 여기서도 샘은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 비유되고 있다.

[거울, 우주의 눈] 현대 시에 있어서 샘은 자아와의 교감에 의해 거울의 이미지를 띤다. 산 모퉁이를 돌아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샘은 자기 반사, 자아에의 집착을 상징한다. 또, 샘은 땅에서 솟아나 내가 되고 바다가 된다는 자생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마음이나 넋이 눈으로 표상된다면, 샘은 눈에 비유된다. 특히 서정주의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한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라는 시구에서 이같은 상징성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우누의 샘이 인체의 눈으로 비유되어, 우주적 리듬의 조화가 남녀의 눈맞춤으로 표출된다. 여기서 샘은 우주의 눈, 인체의 샘이라는 체계가 형성된다.

현대. 서양[생명의 원천] 생명의 원천인 샘은, 지상의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수 아래에서 솟아나 네 방행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각기 생명의 샘, 불사의 샘, 청춘의 샘, 교훈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샘물의 이 같은 원초적 상징은 소생과 정화라는 의미의 변주를 이루기도 한다. 프랑스 남부 골 지방과 켈트 지방, 특히,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지금도 숭배받는 유명한 샘이 많다.

[지혜] 게르만족에게 있어 미리르샘물을 지혜를 상징한다. 그러나 아주 귀하기 때문에 그 물을 마시려면 최고신 오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즉, 한쪽 눈을 실명해야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지혜와 예언과 시정의 물을 마실 수 있다.

[기억과 망각] 오르페우스신화에 다음과 같은 샘이 전한다. 지옥의 입구에 2개의 샘이 있다. 그 중에서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기억의 샘을 마실 자격은 하늘의 종족에 속하거나 영적인 존재에게만 있다. 즉, 하데스가 살고 있는 곳까지 내려가면 문 왼쪽 흰 실편백 곁에 망각의 샘이 있다. 마시지 않고 더 나아가면 맑고 신선한 기억의 샘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 문지기에게 "나는 땅과 하늘의 자식이지만, 내 종족은 하늘로부터 왔다."라고 말하면 물을 마실 수 있다. 그 물을 마시면 영웅들 사이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한다.

[여성] 샘은 우물과 함께 고대 여러 종교에서 여성을 상징했다. 지하의 자궁으로 통하는 수로로 여겼는데, 이 자궁은 북유럽의 대모신 헬과 관계가 있다. 워커는 'holy(성스러운)', 'healing(치유)'이라는 말은 그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단.

도상[생활 근거, 치성] 샘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그려진 예는 고구려 고분 벽화중에서 안악3호분의 우물가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용두레 우물이라고하는 이 우물은 지렛대를 이용하여 물을 푸는시설이 갖춰져 있느데, 그 평면은 '井'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우물은 생활의 근거를 나타낸다. '井'자는 우물뿐만 아니라, 별 이름으로 정성을 기도 하고, 밭이랑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민속에서, 하늘에 기원하거나 약 달일 때에 쓰기 위해 이른새벽에 길은 샘(우물)물을 정화수라 하여, 치성의 상징으로 삼는다.

소 --------------------------------------------------------------------------------- -------------------------------------------------

어원 15세기표기로는 '쇼'이다. 윷에서 4점인 윳(>윷)을 소라고 일컫고 있다. 방언으로 윳을 '슛,쑹'이라고도 한다. '슛'의 경우에는 끝소리 �이있다. 황해도 지방세서는 윷이 나오면, '쑹'이라고 하고 윷이 되었을때에는 '쑤었다'고 한다. '쑤다'의어근은 '쑤-'이고, '숟'이 조어형이다. 이는, 소의 조어가 '�'이,'솔>소' 로 변천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15세기 문헌에 윳이 있는데 '슛'과 '윳'이 방언의 차이를 지니고 공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윳'은 '슛'의 첫소리 �이 떨어져 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蒡,虡,蝁등 상승 이중모음일때에는 첫소리가 遁인 것이 우리말의 특징이다. 따라서, 윳은 '눗>윳,>윳'으로 변천하였다. 윷은 그 재료가 나무이다. 나무의 조어형은 '날(낟)'이다. 널은 바로 나무의 고어 '날'과 어원이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윷의 어원은 그 재료인 나무에 근거하고, 4점인 윳은 슛에서 첫소리�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나무의 뜻을 지닌 윷이 전용된 것이라 하겠다. 슛과 윷이 병존하다가 윷으로 통일 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4점인 '윷'의 어원은 본래 소가 아니라, 나무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신화[재산] 신화의 소는 고대에 이미 목축이 존재했음을 반영하고 있다. 제주도이 삼성혈 신화는 소, 말의 목축 기원을 말하고 있다. 태초에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태어나고, 바다에 떠서 온 돌상자에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종자가 있었다. 이들이 결혼하여, 비로소 오곡을 심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 날로 부유해지고 번창하였다.

수로부인에게 헌화가와 함께 꽃을 꺾어 바친 노인도 암소를 끌고 있었으며, 세경 본풀이에서 축산신으로 좌정하는 정수남도 우마를 길렀다. 따라서, 이미 농경의 바탕으로서의 인식과 함께,부유와 번창이라는 데서 소에 재산의 관념이 나타난다.

무속. 민속[풍요] '후한서' 동이전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부여조에, "전쟁 때 희생으로 바쳐진 소의 발굽이 붙어 있으면 길하고, 갈라져 있으면 흉으로 점쳤다."고 하였다. 이는 소가 희생용만이 아닌, 점술용르호도 이용되었음을 의미한다. 희생으로서의 이용은 후대에도 전승되어, 궁중에서 이를 관장하던 제도가 고려 문종 때에 완성되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매년 농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물로 소를 바쳤다. 이 때의 제단을 선농단이라 하는데 경칩 후 첫 해일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풍수 지리설에 "묏자리가 소의 형국이면 그 자손이 부자가 된다."고 하였다. 이는 소를 재산으로 인식한 농경 시대의 유풍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제물] 무속에서 소는 신의 제사상에 바쳐지는 제물이다. 칠성굿이나 씻김굿에 "소를 잡고 잔치를 시작하였다."거나 "소를 잡아 성주 조상 위하여 놓고" 등과 같은 사설이 있다.동해안 별신굿의 하나인 범굿에서도 소가 제물로 쓰인다. 굿이 끝난 후 범이 사람 대신 쇠머리를 가져가라고 뒷산에 묻는다. 한자의 고할 고(告)도 소 우(牛)에 입 구(口)를 더한 것으로, 신령에게 소를 바쳐 소원을 빈다는 뜻이다.

[축귀] 장사를 하는 집에서는 대문에 쇠코뚜레를 걸어 두었다. 이것은 소를 잡아 먹었다는 표시로 악귀가 침입하다가 이를 보면 도망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외양간에도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소의 턱뼈를 엄나무 가시와함께 문 위에 묶어 걸어 두었다.

풍습[생구, 조력자] 소를 생구라 불렀다. 식구는 가족이며, 생구는 한 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한다. 소를 생구라고 한 것은 그만큼 소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자, 재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월의 첫째 축일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며,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먹였다. 이처럼 소를 인격시한 측면은 민담으로도 전한다. 황희가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2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귀엣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간다."고 하였다. 이상히 여겨 "어째서 귀엣말로 하는가?" 물으니,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 없으니, 질투하지 않겠는가."하였다.

김시습은 지조 없는 선비들을 소에 비겨 희롱하였다. 그에게 설법을 듣기위해 온 사람들에게 소를 나무에 묶어 놓고, 뒤에다 꼴을 두고는 "이것이 내 설법이다"고 하였다.

종교[유교: 의] '삼강행실도'에 호랑이와 싸운 끝에 주인을 구하고 죽은 소에 관한 전설이 실려 있다. 여기서 소는 의를 상징한다.

[불교: 진면목] 불료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하였다. "십우도'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10우는 심우, 견적, 견우, 득우, 목우, 기우귀가,망우존인, 인우구망, 밤본환원, 입전수수이다. 이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 할 점과 회향할 것을 이르고 있다. 그런데 망우로 망면목에, 진우로 진면목에 배대하기도 한다.

고려 조계종 수선사의 개조인 보조국사 지눌의 호는 목우자이다.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마음을 장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이라고 하고, 스스로의 진면목 찾기에 전념하였다.

[도교: 유유자적] 도교에서는 무위자연을 표방하는 만큼 유유히 살기를 원한다. 옛 사람들 중에는 소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김홍도의 '목우도'와 '군선도', '나들이' 등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의 명상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동양 문화[중국: 성스러운 동물, 저능] 중국인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들은 밭을 갈고 짐을 날라 사람을 돕는 소를 먹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중국 남부 지방에서는 소를 숭배하여 '우묘'도 있다.

전설에는 검은 소 2마리와 푸른 소 2마리가 낙양성 옆의 강에서 나아 싸웠다고 한다. 이처럼 소와 물은 일찍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소를 강에 던져 홍수를 누르고 제방을 보호했다. 특히 베이징에는 거대한 소 청동상이 궁의 못가에 있었다. 성스럽고 강력한 동물이 못과 강, 바다를 어지럽히는 악귀를 제지할 것이라는 신념에서 세운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으로 대체되어, 부정적 측면이 확대된다. "소가 크면 왕 노릇하나!"나 '우이독경', '대우탄금' 등은 우직하고 어리석음을, "소와 천리마가 한 구유를 쓰고, 닭이 봉황과 같은 대접을 받느나."는 상대적으로 저능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일부의 소수 민족은 소싸움을 좋아하며, 진 놈은 잡아 먹는다. 이를 중국 서부의 소 형상을 한 수신에 대한 제사가 재현된 것이라고도 하며, 풍요 의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기간을 부녀자들이 북을 치고 춤을 추는 '고무절'이라 한다. 중국 남부에서는 황소의 상징인 우편과 암소의 상징인 뉴아지에를 미약으로 꼽고 있다.

[일본: 성수] 인본에서 소는 성수로 받들어진다. 헤이안 시대 이후 소는 경작이나 운반에 이용되어, 이에 관한 연중행사가 많다. 오이타현 시모게에서는 1월 6일을 '소의 설'이라 하여 휜떡을 넣어 끓인 조니를 먹인다. 후쿠오카현 기쿠에서는 1월11일을 '소의 첫부리기'라 하며, 쟁기를 당년에 처음으로 끌게 하고 논을 간다. 가가와현은 단옷날에 소를 밖에 내놓지 않는다. 대신 외양간에 두고 뿔에 창포나 댓잎 혹은 조릿대 잎으로 싼 쌀떡, 감성돔의 포를 걸어 준다. 야마구치현에서는 6월15일을 소의 제례 또는 소의 우란분재라하여 물가에서 몸을 씻어 주거나 바다에서 헤엄치게 한다. 미야자키현 니시모로가타에서는 6월 28일, 소의 수호신사에서 소의 건강과 신의 은총을 기대하며 통나무 위를 건너는'소의 넘기' 행사를 한다. 오사카의 이즈미를 중심으로 긴�, 주코쿠, 시코쿠는 우신 신앙이 깊다. 이는 오사카의 우시타키산 다이이토쿠메이오당이 중심이 되며 7월7일이 제례일이다. '우신공양'이라 하여 흙을로 만들어 구운 우형을 소에 비겨 제사한다. 또, 오카야마현 오사초에서는 '우시고진'에게 기원하면 마구간이 번창한다고 한다.

나그네를 태운 소가 젠코지에 와서 죽었다는 '우시즈카'전설이 있다. 이는 '소에 이끌린 젠코지 참배'라는 설화와 결부되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이끌려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오아신이 붉은 소를 타고 왔다는 '아카우시즈카'전설이 있다.

역사. 문학[부활, 재생] 역사와 문학에 나타나는 소의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농경 문화권인 우리 나라의 경우, 농사와 관련되는 측면에서 그 상징성이 발현되고 있다. 소는 월동물로 기울고 차는 달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부활과 재생을 상징한다. 소가 농촌의 봄맞이 행사나 기년 행사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도 이 같은 상징성 때문이다. 특히 우각의 형태가 기운 달, 즉 반월을 닮아 특이한 생생력의 예로 거론된다. 이러한 부활과 재생의 상징성은 쇠고기를 먹는 것을 접신의 한형태로 보는 주술적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여유] 소는 농사의 도구 또는 탈것이라는 이미지로 여유와 한가로움을 수반한다.

청초 우거진 곳에 쟁기 벗겨 소를 매고,/ 길 아래 정자나무 밑에 도롱이 베고 잠을 드니,/ 청풍이 세우를 몰아다가 잠든 나를 깨우다. <무명씨>

청풍 북창아에 갈건을 젖혀 쓰고,/ 희황 베개 위에 풋잠을 깨어 보니,/ 석양에 우배적성이 양양귀래한다. <무명씨>

특히 소가 12지에서 둘째 번에 놓이는 이유에 대한 속설이나 이상의 수필 '권태'에서 되새김질하는 소가 강한 권태감을 표상하는 것도 이러한 속성의 변형이다.

[자애, 무분별] 소는 자애의 한 상징물로도 인식된다. '지독 지애'라는 말에서처럼,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사랑은 인간의 귀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때로 "말 갈 데 소 간다."는 속담처럼 분별력없는 존재로 폄하되기도 한다.

현대. 서양[하늘,대지] 소가 풍요의 상징이란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다, 소는 세계의 창조자이자 양육하는존재로서, 특히 인도에서 크게 존중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소는 하늘의 여신 하토르와 함께 자연과 죽음을 관장하는 오시리스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이며, 대지의 여신인 이시스로 머리위의 쇠뿔 사이에 원반을 끼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소는 하늘과 달의 상징이며, 한편으로는 대지의 상징으로 죽음과 생성의 양면에 걸져 있다. 이집트에서 죽은 자의 관은 암소의 모양이다.

[파괴적 본능]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이로가 헤라의 질투로 한동안 소의 모습으로 변해야 했고, 아름다운 왕녀 에우로페는 제우스가 변한 멋진 황소에 의해 크레타섬에서 미노스왕을 낳았다. 그리고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선물한 황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아 벌을 받았다. 벌은 그의 아내를 걷잡을 수 없는 욕정에 빠지게 하여 황소와 교접하고,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낳게 한 것이다., 이는 쇠머리의 형상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황소가 풍요와 창조력을 상징하나 여기서는 파괴적 본능을 상징한다.

[대모, 회귀] 암소는 분석 심리학에서 대모를 상징한다. 황소는 아버지이고, 암소는 어머니로서 모든 것의 근원인 원초적 포괄자, 즉 생성의 모체이자 휘귀의 장이다. 세계의 많은 민담을 통해 보듯이, 소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불교의 십우도가 상징하듯이, 소는인간이 찾아야 할 참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융 학파의 분석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원형상을 상징한다.

[생명의 원천, 제물] 인도와 이란 신화로 유럽에 깊은 영향을 끼친 빛의 신 미트라는 생명의 원천인 황소를 죽여 그 피로써 주곡 보리를 비롯한 모든 식물이 풍요롭게 자라도록 하였다. 3~4세기에 로마군인 사이에서 널리 숭앙된 승리의신 미트라는 계약, 정의, 질서와 함께 충성의 상징으로서, 초기 크리스트교 최대의 적이었다. 보리와 황소 제사의 주신인 미트라가 "로마 제국 사람들에게는 데메테르(곡신)나 성처녀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였다."고 한다.

황소는 인간의 근심을 없애주는 주신이며, 남근과 인간 내부의 비합리적 요소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신'자신이다.

흰 황소는 재생과 풍요를 약속하는 제의를,검은 소는 죽음을 뜻한다. 메소포타미아의신 신은 달의 신이며, 빛의 신 미트라를 위한 의식인 황소 희생은 여자가 없는 밤, 지하실에서 행해졌다. 희생 의식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축을 신에게 바침으로써 더 큰 보상을 보장받으려는 일종의 투자이다. 그러나 풍요의 신 미트라는 마침내 인류의 영생을 보장하려는 신흥 종교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걸었고, 현대는증권시장의 상승세를 표현하는 단어인 'Bull'로써 가장 오래 된 투자 심리의 여운으로 남아 있다. 또, '엘리아데 회고록'에 의하면, 죽음을 극복하는 바지라바이라바 신의 머리는 소의 머리이다. 바지라는 인드라신의 예리한 무기이고 번개이며, 남근인 동시에 이 기관에 내재한 정신적 모든 능력의 상징다.

도상[제물] 신라 고분에서 소 형상의 토우가 발견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의 농우에 대한 숭배 신앙이 엿보인다.

경주 황남 대총출토 동물문 칠기편에서는 말과 함께 2마리의 소가 확인되었다. 흑칠 바탕에 붉은색으로 윤곽을 그렸다. 이 칠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의 상징물로 추정된다.

[여유, 평화로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김식의 그림으로 전하는 '우도'는 한국적 정취를 느끼게 하는 특유의 소 그림이다. 한 그루의 나무 아래에 어미소와 송아지가 있다. 이런 그림은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서, 소는 농촌의 상징이었다.

소나무--------------------------------------------------------------------------------- -------------------------------------------------

어원 소나무는 '솔'과 '나무'가 합성될 때 '딸+님>따님', '불+삽>부삽', '쌀+전>싸전' 등의 형태와 같이 鱁이 탈락된 말이다. 솔은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을 나타내는 '수리 >솔'로 변천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신화 [성주] 성주는 가신 주에서 집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인데, 대들보에 좌정하므로 상량신이라고도 한다. 성주신의 신화인 무가'성주풀이'에 보면, 성주신의 근본과 솔씨(소나무의 씨)의 근본이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으로 되어 있다. 이 고t에서 솔씨가 생겨나 전국으로 소나무가 퍼지고, 그 재목으로 집을 짓게 되었기 때문에, 제비원이 성주신의 본향이자 솔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성줏굿 무가에서 성주신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성주는 본시 천상의 천궁에 있었는데 하늘에서 죄를 지어 땅으로 정배된다. 강남에서 오던 제비를 따라 제비원에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는 집짓기를 원하여 제비원에서 솔씨를 받아 산천에 뿌린다. 그 솔이 점점자라 재목감이 되자, 성주는 그 중에서 자손 번창과 부귀 공명을 누리게 해 줄 성주목을 고른다. 성주목은 '산신님이 불끄러 오고, 용왕님이 물을 주어 키운' 나무이므로, 함부로 베지 못하고 날을 받아 갖은 제물로 산신제를 올린 후에 베어 내어 다듬어서 집을 짓는다. '성주풀이'는 집을 짓거나 이사하여 성주신을 받아들이는 의례인 성주받이와 마을 굿 중 성줏굿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집안의 안전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주받이의 성줏거리에서 그 집의 대주로 하여금 성줏대를 잡게 하여 성주를 내료 좌정시키는 절차가 있다. 이 때 잡는 성줏대는 소나무 가지인데, 이것은 집을 지은 나무의 상징이며, 또 성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무속. 민속 [동신, 수호신] 마을을 수호하는 동시목 중에는 소나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산에 있는 산신당의 신목은 거의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등이 하강할 때에는 높이 솟은 소나무 줄기를 택한다고 믿었다. 신목으로 정해진 소나무는 신성수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재앙을 입는다고 한다.

소나무를 개인적인 수호신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 명주군 옥계면에서는 매년 단옷날이면 집집마다 부녀자들이 동틀 무렵에 마을 앞산에 가서 '산멕이기'를 한다. 곧, 한 해 동안 부엌에 매달아 두었던 '산'을 각자 자기 소나무에 묶어 놓고 제물을 올려 가족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다. '산'이란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물이 있을 때 먼저 신에게 바치기 위해 왼 새끼를 꼬아 만든 줄에 음식을 일부를 자르거나 혹은 통째로 꽂아 둔 것을 말한다. 특이한 점은 산에 있는 신목이 일반적으로 마을 집단의 수호신 기능을 하는 것과는 달리, 집집마다 소나무를 개인의 신목으로 삼고 있는 점이다. 그 신격은 뚜렷하지 않으나 집안의 수호신으로서 조상신 또는 산신의 신격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 정화] 소나무 가지는 제의나 의례 때, 부정을 물리치는 도구로서 제의 공간을 정화 또는 청정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제를 지낼 때, 제사 지내기 여러 날 전에 신당은 물론,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집, 공동 우물, 마을 어귀 등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왼새끼를 꼬아 만든 중에 백지 조각이나 소나무 가지를 꿰어 두는데, 이는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아 제의 공간을 정화 또는 신성화하기 위해서이다.

풍습[민족의 심성] 우리 나라에서 전국의 산야에 널리 분포하는 소나무는 집을 짓는주요 자재로 쓰였다. 그 중에서 경북 봉화군에서 자란 춘양목은 속이 붉고 단단해 특히 유명하다.

그리고 연료, 식품(송기떡), 약재(송진), 관재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고 할 정도로 소나무는 우리의 생활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유럽이 자작나무 문화, 일본이 조엽수림 문화로 표현된다면, 우리 나라는 소나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장수] 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므로 예부터 해, 산, 물, 돌,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십장생의 하나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로 삼았다. 흔히 병풍에 그려진 십장생 그림은 이들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려진 것이다.

[절개, 지조] 비바람, 눈보라와 같은 자연의 역경속에서 변함 없이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의 기상은,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여 왔다.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했듯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우리의 강인한 의지와 씩씩한 기상을 소나무를 통해 상징화하고 있다.

소나무를 일컬어 초목의 군자라고 하낟든지, 군자의 절개, 송죽 같은 절개, 송백의 절개를 지녔다는 등의 표현은 절개 또는 지조를 나타낸 말들이다. 혼례식의 초례상에 소나무 가지와 대나무를 꽂은 꽃병을 한 쌍 남쪽으로 갈라 놓는데 이는 신랑 신부가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굳은 절개를 지키라는 뜻에서이다.

[액막이, 정화] 세시 풍속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 전후에 소나무가지를 문에 걸어 놓아 잡귀와 부정을 막는다,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삼신과 성주에게 빌고, 병을 막기 위해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이 때의 솔잎과 팥죽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산 때에나 장 담글 때에 치는 금줄에 숯, 고추, 백지, 솔가지등을 끼워 놓는 데 이것들도 모두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아기가 아프면, 삼신할머니에게 빌기 전에 바가지에 맑은 냉수를 떠서 솔잎에 적셔 방안 네 귀퉁이에 뿌린다. 이는 부정을 씻어 내어 제의 공간을 정화하기 위해서이다 무덤 가에 둘러서 도래솔도 벽사와 정화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밖에 홍만선도 '산림경제'에서 "집 주변에 송죽을 심으면, 생기가 돌고 속기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길조, 흉조] 꿈에 소나무를 보면 벼슬한 징조이고, 꿈에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꿈에 솔이 비온 후에 나면 정승 벼승에 오르고, 꿈에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한다. 반면에, 소나무순이 많이 죽으면 그해에 사람이 많이 죽고, 소나무가 마르면 사람에게 병이 생긴다고 한다.

[신이] 소나무 자체의 신이한 이야기를 담은 성화들이 전한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정이품송이 있다. 조선의세조가 법주사로 핸차할 때,타고 가던 연이 이 소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는데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연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신이 함에 탄복하여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장릉을 향해 굽어져 있다. 이는 억울한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에 대한 충절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강릉의 향토지 '임영지'에 보면 임진왜란 때 대관령 산신(김유신 장군신)이 팔송정의 소나무를 노적가리와 군사들의 무리로 보이게 하여 왜적을 퇴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오래 된 소나무 뿌리에 외생균근이 공생해서 혹처럼 비대하게 된 곳을 복령이라고 하는데 이 복령을 오래 먹으면 신이한 약효를 나타낸다고 한다. 즉, 복령을 복용한 지 100일 만에 병이 없어지고, 잠을 안 자도 되며, 4년이 지나면 옥녀가 와서 시중을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황초기라는 사람은 복령을 5만일간 먹었더니, 낮에 나가도 그림자가 없었다고 전한다.

종교[유교:의인, 절개] 식자층에서는 소나무를 절개의 표상으로 꼽았다. 특히, 이이는 소나무를 아끼는 것이 애국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또, 세한 삼우라 할 때에도 소나무를 대나무, 매화나무와 함께 꼽았다. 윤선도는 그의 시조 '오우가'에서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하고, 거기에 달을 더하여 다섯을 벅으로 쳤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이 시조는 성삼문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여 죽음을 당할 때에 지은, 충절의 노래이다.

[도교: 장생 불사] 도교에서는 오곡을 먹지 않고 풀과 나무 열매 등으로 장생 불사의 식품을 만들어 먹었는데, 주자료는 솔잎과 솔씨였다. 이러한 생식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추위를 몰라 더운 방에서 지내지 않으려 한다.

동양 문화[장생, 견정] 소나무는 추위에 잘 견디고 엄동 설한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장생과 견정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소나무는 학과 함께 노인들의 장수를 상징한다. 중국인들이 고대 풍속에 따라 묘 주위에 나무를 심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논어에서 "날T가 추워진 뒤에라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한 것 이나, 이백의시에"화산의 낙락장송, 눈서리 견디고 정정하고나." 라고 한 것은 소나무의 기상을 예찬한 것이다. 그리고 예기에서 "소나무, 잣나무는 깊은 뜻이 있어서 사계절 내내 변함이 없다."라고 한 것이나, '남사' 악에전에서 "절개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길만하며, 한결같은 의지로 풍상을 겪었다.'라고 한 것은 소나무와 같은 굳은 절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존경, 행복한 혼인] 중국에서 고송은 숭배와 존경을 받는다. 태산 기슭의 한 그루 고송은 일찍이 진시황에게서 오품관의 봉직을 받았다. 소나무는 잎이 모두 짝으로 되어 있어서 행복한 혼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소나무의 상징성은 우리 나라와 일본에 있어서도 거의 유사하다.

역사. 문학[절조, 의지, 충신] 소나무는 늘푸름과 청청한 기상으로 문학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져 왔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윤선도>

위의 시조에서 소나무는 눈서리로 비유된 변화무쌍한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는 곧은 절의를 지닌, 남성적인 절조를 표상하고 있다. 송이의 시조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 절벽에 낙락장송 내 긔로라./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에서는 여인의 절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는 붉어 있다./도와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아마도 사절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 <무명씨>

도화는 장송보다 아름답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자태에 불과하므로 장송의 모습에 견 줄 바가 못 된다고 보았다. 이 경우, 일시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도화는 아첨하는 신하고, 장송은 충신으로 각각 알레고리화되었다.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소나무를 충신이나 인재에 비유한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간밤에 불던 바람에 눈서리 치단 말가./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하물며 못 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유응부>

어인 벌레인데 낙락장송 다 먹는고,/ 부리긴 딱따구리는 어느 곳에 가 있는고./공산에 낙목성 들릴 제 내 안 둘데 없어라. <무명씨>

위의 작품에서 눈서리나 벌레는 간신이나 암울한 정치적인 현실이며, 박락장송은 국가의 인재인 동량을 의미하고 있다

[탈속] 솔 아래 아이들아, 네 어른 어디 가뇨./ 약 캐러 가시니 하마 돌아오룐마는,/산중에 구름이 깊으니 간 곳 몰라 하노라. <박인로>

솔 아래 앉은 중아, 너 앉은 지 몇천 년고./ 산로 험하여 갈 길을 모르는다./ 앉고도 못 이는 정이야 너나 내나 다르랴. <무명씨>

위의 작품에서 소나무는 선적인 분위기에서의 탈곳을 표현하고 있다.

[풍류, 풍치] 소나무에는 바람이 있어야 그 소나무의 값을 나타낸다. 허리가 굽은 늙은 솔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에는 마치 그 위엄이 능히 눈서리를 무서워하지 않지만는, 서늘한 바람이 '쏴아' 하고 지나가면 마디마디 가지가지가 휘늘어져 춤을 추는 것은, 마치 칡물 장삼의 긴 소매를 이리 툭 치고 저리 툭 치며 신나게 춤추는 노승과 같아, 몸에 넘치는 흥을 느끼게 한다. <나도향, 벽파상에 일엽주>

송은 그 곳에 따라 형태가 멋지게 적응하는 운치 있는 나무다.... . 바람 소리가 청아하고 냄새가 신선한 향기를 퍼뜨린다. 공기를 청신하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해 주는 점은 다른 나무로는 당할 수 없다. <윤오영, 백의와 청송의 변>

위의 글에서 소나무는 풍류와 풍치를 느끼게 하는 나무로 묘사되어 있다. 김동리는 '송찬'이라는 글에서 "오오, 솔이여, 솔은 진실로 좋은 나무, 백목지장이요, 만수지왕이라 하리니, 이위에 또 다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고."라고 하였다.

현대. 서양[영속성, 순환] 디오니소스는 솔방울을 손에 쥐고 있는데 그 솔망울은 식물적 삶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솔방울을 쥔 디오니소스는 타이탄에게 먹혔다가 다시 소생했는데, 이는 식물의 힘과 생식을 상징한다. 솔씨는 미약으로 쓰이는데,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퀴벨레는 소나무의 여신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신의 몸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 소나무는 아르테미스, 비너스 신의 나무이기도 하다.

도상[보리수] '석가세존 인과 보제경'에는 소나무가 많이 그려져 있어 소나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석헌의도의 경우, 목욕을 하고 소나무 아래에 나온 석가에게 옷을 공양하고 있다. 하늘에는 가릉빈가(사람 머리에 새 몸)가 날아오르고 있다. 또, 예보리장의 경우, 불교에서 최상의 이상인 불타 정각의 지혜, 즉 도, 지, 각, 삼보리의 불멸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보리장에 이른 석가와 하늘에 길상 서상보살이 구름을 타고 소나무 아래로 날아오고 있다. 여기서는 보리수의 대행목으로 소나무를 그리고 있다.

[장수] 조선 시대의 민화, 청화 백자, 화각 장식에는 십장생으로서의 소나무가 많이 그려지고 있다.

[노군자] 예기에는 "소나무에 참마음이 있어서 사철 그 잎을 갈지 않다가 겨울이 지나서야 낡은 잎을 털어 버릴 뿐이니, 그는 노군자이다."라고 칭송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솔바람 태교'가 전해 온다. 임신부가 소나무 아래에 정좌하여 솔잎을 가르는 장엄한 바람소리를 온몸으로 맞아. 밉고 고운 정이며, 시기와 증오, 원한 등 모든 앙금을 가라앉히고 솔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 준다. 또, 사군자를 공예품에그려 넣을 때, (四)자를 싫어하는 탓으로 소나무를 더 넣어 오군자로 그리기도 했다.

오방색--------------------------------------------------------------------------------- -------------------------------------------------

오방은 동, 서, 남, 북, 중앙으로, 이 다섯 방위에 각각 청, 백, 적, 흑, 황을 대응하여 오방색이라 한다. 이 오방색을 상징적인 동물로 나타낼 때에는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로 일컫는다.

1] 오방 처용무, 백수 백복도, 오방신장

조선 새대에 성행한 오방 처용무는 주로 궁중에서 나례를 행한 후에 추었다. 이는 저포나 칠포로 엮어 붉게 기름칠한 처용탈을 쓰고 오방색의 옷, 즉 동쪽의 청의, 서쪽의 백의, 남쪽의 적의, 북쪽의 흑의 중앙의 황의로 구분해 입은 오방의 다섯 처용이 추는 군무이다. 혹은,이 오방 처용을 동은 청제장군, 서는 백제장군, 남은 적제장군, 북은 흑제 장군, 중앙은 황제장군으로 된 오방신장이라 하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2]오방색 복식

왕이나 왕비, 상궁, 그리고 포도 대장이나 오광대들이 오방색 복식을 하였다. 오방색을 택한 데는 오방신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하양, 검정, 빨강은 전통적으로 재앙과 악귀를 막는 주술색으로 상징되고, 노랑은 중앙색 또는 제왕색으로, 파랑을 청춘색 또는 희망색으로 상징되어 왔다.

3]오방색 유물

우리의 복식이나 색채 감각에 있어서의 색동은 음양 오행설이 전해진 이후에 정연한 논리로 발전하였다.

음양 오행설은 우주와 인간의 생멸을 음과 양 두 원리의 조화로 설명하는 음양설과 만물의 생장과 소멸을 목, 화, 토, 금, 수의 변화로 설명하는 오행설을 이름이다. 선인등은 이로써 길흉 화복을 점쳤고, 또 오행을 색으로 나타내어 목은 청, 금은 백, 화는 적, 수는 흑, 토는 황으로 대응시켰다. 그리고 동서남북 중앙의 다섯 방위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의 색동은 이 오행색을 중심으로 배열하여 색동옷, 까치두루마기(오방장두루마기), 오방낭자 등을 낳았다. 특히 색동옷은 까치설날인 섣달 그믐날에 어린이에게 입혔고 오방색 천은 불상의 복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색동옷에는 무병 장수와 제액을 기원하는 뜻이 들어 있다. 이 같은 오방색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전통색으로서 건축물의 단청에서부터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태양(해)-------------------------------------------------------------------------------- -------------------------------------------------

어원 '태양'은 해를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본래 해를 본뜬 한자는 '날일'이다. 천지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음양중에서 '양'의 정수를 해로 생각하여 '태양'이라 일컬었다.

'해'는 한자어 태양에 대한 고유어이다. '해'의 '�螡다'인 것은 보면, ',�螡다'는 면사 '�螡'에 어미'-다'가 붙어서 된 말이다. 즉, '배>배다, 신>신다, 빗>빗다' 등의 단어처럼 형용사를 이룬 것이다.

신화[태초의 혼돈] 무속 신화천지왕 본풀이에서는 태초의 혼돈 상태 때에 2개의 태양이 있었다, 이 두 태양의 열의 과잉 공급으로 사람이 타 죽게 되어, 하늘의 천지왕은 아들에게 명하여 1개를 없애 버렸다. 이로써 인간계는 질서 있게 정리되어 번성했는데 나라와 고을, 마을로 갈리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경 남도 지역에서 채록된 서사 무가 창세가에도 이와 같은 2개의 태양이 뜨는데, 여기서는 미륵님이 혼돈을 정리했다. 두 무속 신화의 공통된 주제는 태초의 혼돈을 정리 하고 우주의질서를 바로잡는 다는 근원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2개의 태양은 태초의 혼돈을 상징한다.

[천제자, 국조, 신성함] 개국 신화에서의 태양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불덩이형태가 아닌 알이나 일광들으로 나타나며, 하느님 또는 그 아들이나 국조를 상징한다. 이 겉은 선인들의 의식에 내재하는 천제자로서의 태양묘사가 단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동명왕편이다.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거를 타고 왔다. 그를 따르는 100여인은 모두 흰 고니를 탔으며, 채운이 위로 뜨고, 음악 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렸다. 웅심산에 머무르며 10여 일이 지나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오우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을 찼다. 그리고 천궁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해모수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모두 태양이나 일광의 변형된 상징이다. 아침과 저녁의 거처가 다르다는 그의 거동 역시 하루 동안의 태양 운행을 상징하고 있다.

광개토 대왕의 비문에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 곧 주몽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모두루묘지'에도 그가 일월의 아들이라 하니, 일월의 '월'은 자수를 맞추기 위한 허자에 불과하므로 곧 태양의 아들이다. 아것은 중국의 사료인 삼국지위서에도 주몽이 햇빛의 작용으로 잉태했다 하고, 논형, 후한서 등에도 유사한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권] 태양의 화신인 군왕에 관한 것은 주몽뿐만 아니라, 신라의 박혁거세와 김알지,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혁거세가 태어날 때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전광과 같은 빛이 수직으로 내려왔으며, 그 곳에 알이 하나 있었다. 이 알에서 나온 이가 바로 혁거세이며,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일월도 청명하였다고 한다. 김알지는 금빛 찬란한 궤에서 태어났고,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자에 든 알에서 태어 났다. 이것으로 보아, 신화에서는 왕이 곧 태양이었고, 왕도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 하여 절대적 권등과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 태양에 관한 설화로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태양과 달의 정인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빛을 잃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타나는 까마귀 오는 바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조임을 알 수 있다.

무속, 민속[기복신] 동해안 별신곳 절차에 일명 세존굿이라고 하는'일월맞이굿'이 있다. 이것은 별신굿 진행에서 둘째 번에 행해지는데,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굿을 올린다."는 사설로 시작하여 만사 형통의 축원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일월맞이굿을 달리 세존굿, 중굿이라하는 이유는 일신이나 월신, 세존이 모두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근원은 청배 무가로 부르는 당금애기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당금애기가 태몽을 꾸는데,"한짝 어깨에는 해가 돋구, 한짝 어깨에는 달이 돋구 하늘의 별 세낱이 입으로 들어가구."한 것이 삼형제로 태어나며, 이들이 훗날 '삼제석'이된다.이것은 풍습에서의 꿈풀이와도 연관된다.

또, 황해도 무속에서도 이러한 일월맞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일월대를 세운다. 이 일월대는 큰 소나무에 일월과 칠성의 무늬가 있는 일월명두를 달고, 옥황선녀를 위한 치마 저고리와 일월성신을 위한 도포를 매단다. 그리고 "해는 따다 일월명두, 달은 따다 소슬명두."고 사설을 시작하여 저손 만대의 부귀 영화를 축원한다. 이같은 굿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의 무속에서는 태양이 신으로서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기복의 상징적 대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민간의 주술적 치료 방법에서, 아이들이 눈에 삼이 들었을 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풍습[아들] 무속신앙을 저변에 깔고 민간에 전래되는 꿈풀이법에는 태양이 남성을,달이 여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즉, 꿈에 태양을 삼키거나 달과 합쳐지는 것을 보면 아들을 낳고, 해와 달이 한꺼번에 방 안에 드는 굼은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라 하였다. 반대로, 태양과 달이 떨어지는 꿈은 부모에게 근심이 생긴다고 하여 근신하였다.

[서조] 태양을 보는 꿈은 졸은 일이 있음을 예고하는 서조로 믿었다. 꿈에 태양이 뜨고 구름이 걷히면 놓은 일이 있을 길조이고, 햇빛이 집 안을 비추면 귀인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태야이 단독적으로 등장하는 것보다는 달과결합되면 그 의미가 강해진다.

일월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꿈은 벼슬을 얻고, 일월이 처음 나오는 것을 보면 집안이 번성한다고 하였다. 또, 해와 달을 등에 지거나 가슴에 안거나, 보고서 절을 하는 꿈은 재길한 것으로 여겼다. 속담에서도 서조에 비견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 "9년 장마에 해 돋느다."라든지, "구름이 지나면 해가 뜬다."는 말이 있다.

[청춘, 진리] 태양은 청춘을 상징한다. "해가 서산에 기운다."는 말은 사람이 늙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줄로 해룰 잡아맨다."는 말은 늙어 가는 청춘을 아쉬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속담은 세상의 이치가 뒤바뀐다는 뜻이니, 이 때의 태양은 진리를 상징한다 하겠다.

종교[유교: 충과효] 유교에서는 태양을 임금, 부모,남편에 비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불사이군','불경이부'와 통하는 것으로서,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없듯이, 신하에게는 임금이 둘이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가 있다. 이는 태양을 임금과 부모에 비겨 동격으로 생각한 충효 사상의 발로이다.

[불교:진리, 광명] 불경에서는 "사막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불꽃은 오묘한 진리와 지혜와 같아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태양의 형상을 조형으로 재구성해 나타내었는데, 불상의 광배가 대표적이다. 이 광배는 사바세계를 비추는 부처의 진리와 광명을 상징한다.

동양 문화[국가의 영원함]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태양을 바탕으로 한 원과 음양의 이분법적 조화로 형성되어 있고, 중화민국의 청천백일 만지홍기와 일본의 일장기는 태양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청천백일 만지홍기의 백일은 히늘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태양을 상징하여 스스로 중화라 하였고, 일본도 태양의 제국이라 했다. 이렇게 한. 중. 일의 기에 나타난 태양은 "조국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중국: 세발까마귀] 중국의 신화에서 태양은 황금색세발까마귀롤 나타낸다. 그래서 태양을 양오라고도 한다. 옛날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떠 있어서 작열하는 열기롤 사람이 타 죽었다. 그 때 예가 나타나, 흰색의 화살을 시위에 재어 태양을 향해 쏘자, 불덩이가 폭발하여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것은 화살에 맞아 죽은 거대한 황금색 세발까마귀, 즉, 태양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는 1개의 태양만 남게 되었다.

[남편] 황도의 해석에 의하면 해는 남편과 영계되고, 달은 아내와 연계된다. 일식은 황제가 가려진 것을 상징하는데 그가 황후의 영향을 나무 받는 것으로 풀이 된다. 월식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광명] 일본의 '고지키'에는 일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천신 이자나기 노미코토의 왼쪽 눈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동생 스사노 오노미코토 때문에 화가 나 하늘의 바위 굴 속에 들어가 문을 걸어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낮과 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게 되어 혼한해졌다. 이에 하늘의 80만 신이 숙의 끝에 수탉들을 모아 울게 해 그사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 이로써 온 세상은 다시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 문화[임금] 태양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가에 나타난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쐰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하노라. <조식>

월출산이 높다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천왕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었다./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랴. <윤선도>

여기서 볕뉘, 해, 월출산 등은 임금이나 임금의 은혜를, 구름, 안개는 간신배를 상징한다.

태양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높은 곳에서 따뜻한 빛을 온 세상에 보내듯이, 임금도 그러한 상징체로 생각했다.

[풍요, 자애] 태양은 임금이라는 도식적인 상징이 현대 문학으로 오면서 보편적 관념이나 개인의 심상에 비추어 노래되었다.

해는 모즌 것에게 젖을 주었나 보다./동무여, 보아라./우리의 앞뒤로 있는 모든 것이/햇살의 가닥-가닥을 잡고 빨지 않느냐. <이상화, 비 갠 아침>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여기 피비린 옥루를 헐고,/따사한 햇살에 익어 가는/초가 삼간을 나는 짓자.

<조지훈, 흙을 만지며>

이상화는 태양이 주는 풍요와 자양분을, 김영랑은 봄 햇살의 다정함을, 조지훈은 햇살 속의 휴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양은 만물을 생육하는 어머니의 품이며, 그 품에서 만물은 영글어 가고 휴식을 취한다. 햇살의 자애는 결코 편벽되거나 조급하지 않다.

[영원성, 광명, 역동성] 태양은 태고의 영원과 함께 오랜 어둠을 물리쳐 깨뜨리는 희망으로서 존재한다.

머언 태고 적부터 훈풍을 안고 내려온/황금가루 화분은 분분히 이글거리던 그 태양이로다.//처음 꽃이 생겼을 때,/서로 부르며 가리켜 조화를 찬탄하던/그 아름다운 감동과 면면한 친애를 아느뇨. <유치완, 오오랜 태양>

해야,송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 해>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박두진, 묘지송>

동천이 불그레하다. 해가 뜬다. 시뻘건 욱일이 불쑥 솟았다. 물결이 가물가물 만경찰파엔 다홍 물감이 끓어 용솟음친다. 장인지 쾌인지 무어라 형용하여 말할 수 없다.

<박종화, 청산 백운첩>

우치환은 태고의 창조와 유구한 역사의 증인이던 태양을, 박두진은 억압과 탄압의 세월 속에서 다시 살아 숨쉬는 광명을 , 박종화는 솟아오르는 태양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좌절, 상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 버린다.<이상, 날개>

날이 저문다./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무한천공 바람 겹겹이/사람은 혼자 펄럭이고,/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어딜까 어딜까,도시를 끌고 간다.

<강은교, 자전 1>

태양은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은 소실을 뜻하며, 좌절과 상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상과 강은교의 경우는 이것이 두드러지게 형상화된 예이다.

현대. 서양[멀고도 영원한 사랑]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에게는 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정사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 바친것도 데메테르레게 그녀의 딸을 납치한 포세이돈을 일러바친 것도 그였다. 그 복수로 아프로디테는 헬리오스로 하여금 바빌론 왕의 딸 레우코테아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레우코테아의 언니 클리티에는 그보다 앞서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억울하게 여긴 클리티에는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헬리오스는 죽은 레우코테아를 향나무로 변신시켰다. 대신에 클리테에는 헬리오스의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가벗은 채 쓸쓸한 들판에 누워 9일간을 이슬과 눈물로 목을 축이며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마침내 몸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혈색은 빠지고, 사지는 변하여 광채가 없는 나무 줄기가 되고, 머리는 아름다운 꽃송이로 변하여 그리운 헬리오스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 꽃이 해바라기이다.

[이상적 남성] 아폴로는 완벽한 남성미를 갖춘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청년신이었다. 그의 명철과 예지를 높이 산 그리스인들은 아폴로를 태양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는 젊음과 힘과 에능을 한몸에 지닌 궁술, 의료, 음악, 시,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아들이고,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자손이라 한다. 그리스 조각에서는 늠름하고 명랑한 나체의 청년으로서, 은으로 만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있거나 황금 리라를 들고 있다. 그의 성조는 백조이고, 성수는 월계수이다. 그 유명한 델포이 신전은 그를 모신 곳으로, 이 신전에서 아폴로가 내린 신탁은 그리스인의 생활을 규정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

[왕] 바빌론에서는 왕이 태양이었고, 잉카제국과 이집트의 왕은 태양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왕은 머리에 햇빛의 관을 쓴 태양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절대 왕정기에는 왕이 태양과 동격이었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국가의 중심이었으며, 그의 위대함은 만방에 빛을 발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스스로 태양왕이라 불렀다. 이것은 천상의 태야이 하나이듯 지상에는 그랑스 황제만이 유일하며, 여타의 유럽 국왕들은 한낱 주위를 맴도는 위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창조, 신성, 영광, 질서, 자유 의지] 태양은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정의의 태양'이라 부른다. 그래서 성스러운 주일을 태양의 날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신과 신의 창조를 상징하는 태양은 신성, 권위,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회화에도 나타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부처, 마호메트, 그리고 호머나 버질 같은 대시인을 그릴 때에는 태양의 변형인 후광을 몸에서 내비치게 하여 영광을 상징하였다. 태양은 만물을 비추고 세상의 운행을 다 알고 있다는 뜻에서 만능, 직관, 지혜, 진리도 상징한다. 또,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가장 규칙적이며, 에측할 수 있는 현강이므로, 절대의 신뢰와 불변의 우주 질거를 상징한다. 그리고 위대한 나그네, 고독한 탐험가, 자기의 길을 가는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생명의 원천, 권력 권화, 신의 눈] 태양 숭배가 발달한 곳은 멕시코와 페루였다. 엘리아데는 태양 숭배야말로 인간의 역사적 존재 양식의 발달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생명을 주는 원천, 세계를 밝히는 빛으로서, 인간에게 신같이 보고 깨닫는 힘을 주고 질서의식을 찾아 주는 태양은, 같은 남성 원리인 정치 권력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지금도 위력을 지니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근대 프랑스에서 최고 권력의 권화는 태양 이미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특히 현대 북한 정권의 '수령'부자의 이름에 태양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부자를 호핑할 때에 테양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

피그미족과 부시맨에게 태양은 가장 위대한 신의 눈이다. 사모예드족은 해는 좋은 눈으로 악령과는 다른 눈으로 구별했다. 그러나 동서 사상계에 깊은 영향을 준 인도고전 리그베다에서의 태양은 양의적인 존재이다. 생명의 충만과 검은 것,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표상했다. 태양이 관련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손, 헤라클레스, 지그프리트 같은 영웅의 죽음은 해의 돌연한 잠적과 관련지었다.

연금숭에서는 태양이 정상으로 떠오르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검은 원형 물질이 백열화하고 붉은색을 발하며, 마침내 황금이 되는 과정으로 상징화되었다. 보들레르는 그의 서한집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바그너의 음악을 예찬하는 데 쓰고 있다.

도상[삼족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일월상이 그려져 있다. 태양속에는 세발까마귀가 들어 있는데, 이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이다.

[장생불사] 장생 불사를 상징하는 열 가지 물건 중에 태양이 들어 있다. 이 십장생 그림을 궁전이나 관청 건물에 표현한 까닭은 지상 최고 권좌의 상징으로서, 또 관리들에게 공명 정재한 행정을 펼 것을 촉구하는 뜻에서이다.

풀 --------------------------------------------------------------------------------- -------------------------------------------------

어원 들판, 풀 등을 뜻하는'곧'에서, 또는 퉁그스어에서 어린 것, 새것 등을 뜻하는 '훌-'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따라서 어형은 '곧>골>꼴/쿨/플>꼴/쿨/플'이라는 변화 과정과, '훌->프르>플>풀'의 변화과정을 가정할 수 있다.

풀의 고어는 '불'이다. 상추를 '부루'라 하는데, 어근 '불-'은 풀의 고어이다. '잎새, 이파리'의 '새, 파리'는 고어에서 풀의 뜻을 지닌 말이다. '파리'의 어근은 '팔-'로서 '풀'과 어원이 같은데, 모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어 하의 고어 발은 국어 풀의 고어 불과 어원이 같다.

낙엽을 '갈비'라고 하는데, '갈-'은 나무의 고어이고, '비'는 불과 어원이 같게 된다. 诉품이 문헌에 보이는데, '품'은 꽃의 뜻을 지닌 말이다. 이것은 풀과 어원이 같다고 하겠다. 사실 꽃과 풀에 차이를 두기는 어렵다. 옛날에는 꽃이 풀의 뜻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15세기에는 곳(花)이다. 풀을 '꼴'이라고도 하는데, 조어형은 '골>곧'이다. '곶'과 어원이 같다.

일鱁본어의 하나(花)는 '반, 받'이 조어형인데, 국어 풀의 조어형 '붇'과 어원이 같게 된다. 만주어에 올호(草)가 있고, 일하(花)가 있다.

봉오리는 '보오리'에서 온 말로서, '볼오리>보오리>졸로히'로 변천하였다. '볼'은 풀의 고어 '불'과 어원이 같은데, 옛날에는 '볼'이 꽃의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주고 있다. '꽃이 퓌다'할 때 '퓌다'의 어간 '퓌-'는 '푸이'의 준말로서, '불이'가 원형이다. 따라서, '불'이 꽃의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봉오리의 '오리'는 만주어 올호의 어근과 일치하고, 역시 '오리'가 옛날에는 꽃의 뜻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튀르크어에 떨이 있다.

신화[재생] 무속 신화에서, 풀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사회생의 식물로 등장한다. 부모위 목숨을 구할 영약을 찾아 서천 서역국으로 간 바리공주는 무장승을 만나, 약값으로 고와 9년을 살고, 또 일곱 아들을 낳을 때까지 산다. 그런 후 그녀는 약수와 개안초 및 3색꽃을 얻어 온다. 그녀는 이미 죽은 부모에게 3색꽃은 눈에, 개안초는 품에, 약수는 입에 넣어 살려 낸다. 여기서 바리공주의 부모를 회생시킨 영약의 하나인 개안초는 무장승과 살때에 매일 나무하러 가서 항시 베던 풀로서, 죽은 사람도 살리는 재생의 영약을 상징한다.

무속. 민속[생명력, 풍요] 관북 지방의 무가에 나오는 풀 중에서불로초, 환생초 등 약초는 생명의 지속과 소생을 가져오는 영약이다. 불로초에 대한 다음의 대목은 그 기능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대탈광의 시절에는/까마귀 불러 내어/신구심산 들어가서/삼신한 불로초를/파 오라하니,/불로초를 파 가지고 나오다/시내 강변에 내따 보니/개친병 소친병 났또진다./그 불로초를 금당당/자지소나무(잣나무) 밑에 묻어 놓고/개친병과 소친병은/삼으로 줏워 먹으라./네레 가서 주워 목고/금당당 자지소나무 밑에 와/불로초를 파 보니,/소나무가 다 집어 먹고/짓을 남아 지텄구나./그 때부터 소나무가/춘충양철 가더라도/검고 푸르고 있구나./짓을 남아 있는 것을/이거 가지고 가/뉘기 먹고 뉘 안 먹으랴./내나 홀 집어 먹자./까마귀가 그 불로초를 먹고/그 때부터 맥까마귀/감등까마귀되었구나.

[풍흉] 풀의 풍요에 대한 인식은 길조어나 금기어에서 동일한데, 산에 초목이 무성하면, 풍년이 든다 하여 길조로 여겼다. 이와 같은 생각은 풀이 꿈의 대상물이 때에도 같아, 꿈에 산이나 밭에 초목이 무성하면 재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또, 식물의 특성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주술적 관념으로서 민들레꽃을 꺾으면 어머니 젖이 준다든지, 식물이 말라 죽으면 집안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신물]싸릿개비로 만든 신물로서 농불과 싸리말이 있다. 농불은 싸리로 만든 부처이며, 싸리말은 배송굿을 할 때에 천연두의 두신을 태워 보내던 말이다.

[벽사] 단옷날에 왕이 쑥으로 인형을 만들어 신하들에세 하사하였다. 쑥 인형은 문위에 걸어 두면 그 해의 액운이 모두 물러 간다고 믿었다. 또, 창포 뿌리를 제웅 모양으로 깎아 붉은 칠을 해 머리에 꽂아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풍습[생명의 영약] 생명을 살리는 풀의 기능은 대홍수 때에 있었던 민담, 즉 짐승은 보은하고 사람은 배신한다는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뱀과 사람을 구해 준 사람이 자기가 구해 준 사람의 모함으로 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중 역시 구해 준 뱀이 물고 온 풀잎으로 원님 가족의 병을 고침으로써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는 이댜기이다. 풀 중에는 생명을 소생시키는 신령한 풀이 있음을 나타낸 이야기이다. 풀의 생명력에 대한 믿늠은 세시 풍속에서도 발견된다. 단옷날 익모초즙 내어 먹기, 약초 베어 말리기, 백 가지 풀 뜯어 고약 만들기, 아홉 고랑의 풀 말려 찜질하기 등은 단오 절기의 특성과 약초의 생병력에 대한 관념이 보강된 것이다.

[유희물] 어린 여자아이들이 가늘고 긴 풀로 각시를 만들고 옷을 해 입혀 신방 모양을 꾸며 각시놀음을 하였다. 이를 풀각시놀음이라 하였다. 또 풀놀이라 하여, 어린아이들이 정해진 시간안에 누가 가장 많은 풀을 뜯을 수 있는지 겨루는 놀이가 있다. 서로 풀줄기를 엇걸어 끊는 놀이나,쇠코끼기, 또는 꼬지라 하여 풀뿌리를 구부려 가락지 모양을 만들어 그것을 모래에 파묻고 가는 작대기로 찍어 찾아 내는 놀이도 있었다. 이와 같이, 특별한 놀이 기구가 없던 시절에 풀은 아이들의 좋은 유희물이었다.

[가난] 초근목피라는 말은 풀 뿌리와 나무 껍질이라는 뜻으로 산나물이나 송기로 만든 험한 음식을 말한다. 보릿고개의 어려운 생활을 꾸려 나가는 비참한 상황을 나타낸 말이다.

종교[유교: 백성] 풀은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는데 이러한 모양은 통치자의 뜻에 따르는 백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성을 불처럼 불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불교: 성찰의 계기, 불모] 서산대사는 선의 특징을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았더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하였다. 즉, 세월이 가나 오나 알 바가 아니지만 봄이 되면 풀잎이 푸은 것은 특별히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돌이켜 살피게 하려는 계기로 보았다. 또 만공화상은 온갖 풀이 부처의 어미라고 했다.

동양 문화[중국: 생성] 풀초자는 원래 봄에 지표면을 뚫고 뾰족뾰족 돋아나는 풀잎을 그린 상형문자이다. 풀이 돋아나는 것은 무엇을 처음 만든다는 의미와 연관시켜 초창자의 개념으로도 쓰인다. 초안, 초고라는 단어도 같은 뜻이다.

[덧없음]풀은 쉽게 자라고 쉽게 시들므로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이는 값어치 없는 물건이라는 의미와 연계되어 초개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시골] 풀이 무성한 땅은 미개지, 황무지를 연상하게 된다. "논밭 갈고 풀을 뽑아 내어 백성들의 생산을 증대시킨다."고 말한다. 흔히 초야에 묻혀 산다고 하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세속의 공명을 멀리하고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의 생활을 말한다.

[보은심의 통로] 춘추 시대 진나라 위무자의 아들 과는 아버지가 죽은 후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하였다. 후에 위과가 전쟁터에서 싸울 때, 서모의 아버지의 혼이 적군의앞길에 풀을 잡아 맺어 적을 넘어뜨려 위과가 승리하게 하였다. 여기서 결초보은하는 풀은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보은심의 통로를 상징한다.

[민심의 응징] 원제 영광 2년과 평제 원시 3년에 하늘에서 풀이 비처럼 쏟아졌는데 잎들이 뭉쳐서 크기가 탄환 같았다. '경방역전'에 "임금이 녹에 인색하고 신용이 없어지고 현량한 인물이 떠나가면, 하늘에서 풀이 쏟아지는 요괴가 생긴다."고 하였다. 여기서 풀은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서 민심의 응징을 나타낸다.

역사. 문화[생명의 약동] 엊그제 경루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화, 행화는 석양리에 피어있고, 녹양방초는 세우중에 푸르도다. <정극인, 상춘곡>

풀 중에서도 봄에 돋는 풀을 붉은 꽃과 함께 생명의 약동을 상징한다. 녹음방초라는 성어는 풀의 생명력에 대한 직접적인 감흥을 나타낸 말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 나타나는 풀의 상징성은 이 단편적인 어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 꽃이나 대나무, 소나무 등 유교적 가치관에 부응하는 식물에 그 긍정적 의미를 넘겨 주고 있다.

[덧없음]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윤선도>

장생술 거질말이 불사약을 제 뉘 본고./진황총 한무릉에 모연추초뿐이로다./인생이 일장춘몽이라 아니 놀고 어이리. <무명씨>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더라. <원천석>

추초로 대표되는 위의 시조에 나타 나는 풀의 상징성은 변하기 쉽고 시들어 가는 것으로서 생병력을 상실한 사물에 불과하다. 봄풀이 가지는 생명력은 사라지고,인생 무상이나 인간사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으로 전도되어 있다. 그 까닭은 범칭으로서의 풀이 가지는 속성에서 비롯되는데 고유한 명칭을 가진 풀이나 꽃 등은 그 자체가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인함] 구렁에 난 풀이 봄비에 절로 길어/알을 일 없으니 그 아니 좋을 소냐./우리는 너희만 못라여 시름겨워 하노라. <이정환>

이 시조에서는 풀이 실의에 잠긴 인간보다 강한 존재로서 표상되었다.

[신비] 다 죽었다가도 봄만 오면 또 나는 풀, 심은 이 없는 나는 풀, 너는 조물주의 명함 아니냐? 푸른 너를 먹고 소는 흰 젖을 내고, 사람은 붉은 피가 뛰고, 소리도 없는 너를 먹고 꾀꼬리는 노래하고, 사자는 부르짖고, 물에서나 마른 모래밭에서 다름 없는 향기를 너는 뿜어 내니, 너는 신비의 못이 아니냐? <함석헌, 할 말이 있다>

[친구] 첫여름아침 이슬을 머금고 햇빛에 반짝이는 그 청초하고 단아한 풀잎의 맵시....! 우리의 발길이 가는 곳이면 언제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친한 벗이다.

<모기윤, 녹음과 방초의 미>

[부드러움, 연약함, 날카로움] 풀, 여름풀,/....../이슬에 젖은 너를/지금 내가 맨발로 사뿐사뿐 밟는다./애인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남궁벽, 풀>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이어 울었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풀>

꽃보다/밝은이름//물방울보다/맑은이름//흙보다/가까운 이름//칼끝보다/날카로운 리름//풀잎이여/아, 어 홀로 어디에고//살아 있는 이름이여.<박성룡, 풀잎>

암궁벽의 풀은 부드러움과 연약함을 상징한다. 김수영의 풀도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러나 강자의 횡포에 재빨리 대처하는 약자의 지혜를 풀을 통해 보여 준다. 박성룡의 밝고 맑고 친근한 풀잎은 칼끝보다 날카로운 속성도 있음을 보여준다. 홀로 어디에고 살아 있는 풀잎은 바로 끈질긴 우리의 민족성이기도 하다.

현대. 서양[인생 무상]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인생은 그 알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빨리 자라서 곧 시들어 버리는 속성 때문에 덧없음을 상징한다. 죄짓고 사라져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인간은 죄, 육체는 풀'이라고 그린은 노래하였다.

[원초적 생명] 휘트먼은 그의 대표시 '풀잎'에서, "풀 자체는 어린 아이, 식물에서 갱겨난 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모양이 같은 상형 문자라고 생각한다. 넓은 지역에서도 백인들사이에서도 싹트는."이라고 하여 풀을 원초적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재물] '야고보의 편지'에서는 풀을 이 세상의 부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부는 천국의 척도로 볼 때 무가치한 것이다. 풀라망어의 옛 격언에는 "이 세상은 누구나 앞 다투어 뽑을 수 있는 한 뽑으려 하는 것초의 산이다."라 하여 건초가 현세의 쾌락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다. 보쉬의 그림에는 건초가 산처럼 쌓인 한 대의 수레에 사람들이 미친 듯 몰려들어 밀고 다투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건초는 무가치한 현세의 재화와 그에 대한 기쁨을 상징한다.

[보금자리] 풀은 사랑의 보금자리를 상징한다. 집 안이나 침실에서의 부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닌, 자유스럽고, 소탈한 연인들의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또, 풀은 인생을 낙관시하는 힘을 상징한다.

[죽음] '풀 밑' 이란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도록 명령받은 자의 머리에 풀을 올려 놓아 거짓 죽도록 하였다. 목숨을 걸고 협상에 임하면, 반드시 협정이 성립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영예] 풀로 된 관은 가장 뛰어난 장군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경기의 승리자에게 아폴로와 연고가 있는 월계수의 가지와 잎으로 둥근 테를 만들어 영예의 관으로 씌워 주어,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였다.

도상[한국적 정서] 조선 시대의 신 사임당은 초충을 즐겨 그렸다.현존하는 초충도는 팔폭 병풍으로 꾸며졌다. 그 그림의 소재는 오이와 메뚜기, 물봉선화와 쇠똥구리, 수박과 여치, 가지와 방아깨비, 맨드라미와 개구리, 가선화와 풀거미, 봉선화와 잠자리, 원추리와 벌 등이다. 도자기에 나타나는 초충도가 있는데, 대체로 사군자, 들국화, 민들레, 패랭이꽃 등이 주로 소재로 사용되어 한국적인 정서가 나타나 있다.

호미 --------------------------------------------------------------------------------- -------------------------------------------------

어원 15세기 표기로 '호ꏁ螡'가 있다. 호ꏁ螡의 ꏁ螡는 'ꏁ이'의 준말로 원형'ꏁ리'의 鱁 탈락으로 추정된다. 'ꏁ리'의 어근은 'ꏉ-'다. 호ꏁ리가 줄어 '호ꏁ이>호ꏁ螡'가 되었다고 하겠다. 호ꏁ螡의 호도 그 고어는 '홀'로 추정된다. 호미도 날이 있는 쇠붙이므로 '홀'이나 'ꏁ리'도 모두 칼의 뜻을 지녔던 또 다른 고어였을 것이다. 만주어에 하두훈이 있는데, �이 칼 등의 뜻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고 호미의 홀(톨)과도 어원이 같을 것으로 보인다.

신화[성조신의 주물] 무속 신화 성조대감에서는 천궁대왕과 옥진부인 사이에 태어난 성조가 세상�르 다스리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는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려고 상철, 중철, 하철을 각각 다섯 말씩 노경 도끼, 칼, 대패, 끌, 낫, 괭이, 호미 등의 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처음오로집짓는 법도 가르쳐 주였는데, 성조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호미는 성조신의 부물을 상징한다.

무속. 민속[흉기] 호미와 낫 같은 이기도 흉기화할 수 있다."기둥에 호미와 낫으로 자국을 내면 가난해 진다."는 속신이 있다. 여기서 기둥이란 한 집안이나 단체, 또는 한 나라의 중추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서 호미는 쓰임에 따라 흉기화할 수 있음을 표상한다.

풍습[농사의 고통] '농가월령가' 6월령에 "날 새면 호미 들고/긴긴 해 쉴새 없이/땀 흘려 흙이 젖고/숨막혀 기진할 듯."이라고 하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뉴월에 밭을 매면, 치밀어 오르는 지열로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무더운 여름, 벼가 자란 논에 들어가서 호미로 김을 맬 때면 볏잎이 눈과 얼굴을 찔러 견디기 어렵다. 이때의 호미는 농사의 고통을 상징한다. 지금은 대부분 제초제를 사용하고 기계로 김을 매지만, 지난날에는 호미나 맨손으로 김을 매었다.

[망중한] 음력 7우러 중순경이 되면, 농촌에서는 논밭의 김을 다 매고 호미를 씻어 걸어 두고 쉬었다. 농부들이 냇가나 산기슭 나무 그늘에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농악을 울렸는데, 이것을 '호미씻이' 라 한다. 지방에 따라 호미걸이. 세서연, 풋굿, 초연,농부의 날, 머슴날이라고도 한다. 풋굿은 풀밭에서 굿 행사처럼 놀기 때문에 붙여졌고, 초연은 풀밭에서 잔치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호미씻이 때에는 마을에서 가장 농사가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삿갓을 씌우고 황소에 태워서 여러 머슴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서면 그 집 주인은 술과 음식을 내놓았다. 이처럼, 호미씻이는 호미로 김을 매는 고된 노동에서 잠시 풀려난 것을 기뻐하고,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잔치이다. 그러므로 다음의 일에 대비하는 잠시의 휴식으로서 망중한을 상징한다.

1977년 제 18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서울팀은 '서울 호미걸이'를 공연하였다. 김매기가 끝난 당제를 지내고, 판놀음을 벌인 후에 풍농제를 지내는 형식이었다. 이로써 서울 지역에서도 '호미걸이'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경기도 고양군에 전승되어 오는 김매기 소리의 하나인 '호미걸이 소리'가 있어 그 것을 반증한다.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호미를 내세워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하다

동양 문화[중국: 도움, 농사의 고됨] '호미서'는 돕는 것을 뜻한다. 즉 쇠붙이인 호미는 김을 매어 싹이 자라는 것을 돕는다. 제나라 사람이 호미의 자루를 강이라 함은 바르고 곧음을 이르는 것이다. 호미의 머리를 학이라고 함은 학의 머리 같아서이다. 그러나 다른 문헌에서는 호미가 농사의 고됨으로 나타난다.

[일본: 풍요] 일본에는 호미가 없고, 그 대신 호미 모양의 괭이가 있다. 농가에서는 정월 11일이나 길일을 택해 길방의 밭에 나가 첫 괭이질을 한다. 그런 후 떡이나 쌀을 처려 놓고 풍년을 축원하는 행사를 한다.

역사. 문학[아버지의 사랑] 고려 가요 '사모곡'에 등장하는 호미는 낫과 대비되어 무딘 것을 다나내고 있다. 호미와 낫의 날을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로 상정하여 그 사랑을 비교한 이 노래에서 호미는 낫과 같이 예리하고 섬세한 사랑이 아닌 대범하면서도 두터운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호미도 날이언마는/낫같이 들 리도 없으니이다./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느,/위덩더둥셩/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시련의 해결] '콩쥐 팥쥐' 이야기에서 계모는 전실 자식 콩쥐에게 나무 호미를 주면서 돌밭을 매라고 한다. 나무 호미는 금새 부러져 버린다. 울고 있는 콩쥐 앞에 암소 한 마리가 나타나 쇠호미를 주어 힘 들이지 않고 일을 마친다. 여기서 쇠호미는 시련의 해결을 나타낸다.

[노동] 호미는 농경 문화권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기구의 하나로 쉽게 들고 다닐수 있어서 친근감을 더해 준다. 그래서 고대 시가에서는 다른 농기구보다 호미가 자주 등장한다..

베잠방이 호미 메고 논밭 갈아 김매고/농가를 부르며 달을 띠어 돌아오니/지어미 술을 거르며 내일 뒷밭 매옵세 하더라. <신희문>

사립에 도롱이 입고 한 손에 호미들고/산전골 매다가 석양에 누웠으니,/목동이 우양을 몰아 잡든 나를 깨운다. <무명씨>

이와 같은 시조에서 볼 수 있듯이 호미를 멘 농부는 힘든 농사일에 찌들지 않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호미의 본래적인 기능에서 비추어 보면 힘든 노동을 항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의 두 시조에서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좀 매어 주마/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정철>

지란을 가꾸려 하여 호미를 둘러메고/전원을 돌아보니, 반이나마 형극이라./아이야, 이 김 못다 매어 해 저물까 하노라 <강익>

정철의 시조는 '훈민가' 중의 '무타농상'으로 부지런하게 남을 도와 가면서 농사짓고 누에도 치자는 내용이다. 강익의 시조는 전원이 가시밭이어서 매기 어려움을 나타내었다.

[애착]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의 시에서는 호미가 강한 애착으로 표상된다. 일제에 강점당한 살진 젖가슴과 같이 부드러운 조국의 흙을 마음껏 밟아 보고, 땀을 흘리며 호미로 김을 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충동은 조국의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

<김상용,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의 시에서는 호미를 통해 고향땅이나 전원 생활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 서양[근면, 고초, 여성] 서양 농기구에서 호미와 일 대 일로 등가가 되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손으로 사용하는 농기구로 일반화하거나 괭이 등속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손으로 사용하는 쟁기는 농경, 풍요, 근면 등을 상징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괭이가 칼날과 등가가 되면서 농지에 대한 인간의 위무와 권리를 상징하는 점이다. 또, 선택된 자의 일어섬을 상징하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호미는 밭일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호미는 주로 여성이 사용하는 농기구라면, 주로 밭에서 쓰이는 농기구라는 면을 강조하면, 호미의 여성성이 괭이나 가래 등과 아주 다르게 드러난다. 호미는 여성들의 근면과 생산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여성이 겪는 고초 등을 상징할 수도 있다.

잔돌을 캐내는 일 잡초를 매는 일은 호미의 몫이지만 이것은 밭을 갈고 일구는 일에 비하면 종속적이고 보완적인 작업이므로 여성의 역할과 상응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호미는 여성적 노동성을 상징한다.

도상[여성의 노동] 호미는 대개 삼각형의 날과 가는 목을 휘어 꼬부리고 자루를 끼웠다. 지방에 따라 다소 모양이 다르기도 하다. 호미가 사용되는 장면은 조선새대 몇몇 풍속도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마군후가 그린 '촌녀채종'이 있다. 이 그림은 고복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낙과 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호미를 들고 부지런히 나물을 캐는 한 여인이 작업을 하는 장면이다

우리문화 상징총람
▲▲▲▲▲▲
신비의도깨비도로 보기hym2Y8snuy(참고)

******************
*개*필*아*비*생*무*
*인*요*이*밀*성*료*
*정*없*디*번* *이*
*보*이* *호* *용*
******************

****************************
*최*영*드*애*예* 성①* 연 *다*
*신*화*라*니*능* 인⑨* 예 *운*
*******마*************인*****
▲▲▲▲▲▲
신비의도깨비도로 보기utbyh60R3c(참고)

******************
*개*필*아*비*생*무*
*인*요*이*밀*성*료*
*정*없*디*번* *이*
*보*이* *호* *용*
******************

****************************
*최*영*드*애*예* 성①* 연 *다*
*신*화*라*니*능* 인⑨* 예 *운*
*******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