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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health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5. 20. 14:11

건강비법, 무릎 세상에 이런일이 카펫 시공의 달인, 치과

 

세상에 이런 일이 TV 를 보다가

나를 즐겁게하는 내용을 보게됬다.

카펱설치하는 사람인데 38년을 했다고한다.

그럼 거의 나이 60살이되간다.

 

카펱 설치위해 무릎을 매일 사용하면

우리 생각으로는 38년 무릎을 사용했다면

다 망가져서 장애인 수준이 됬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건강검진 결과 무릎이 20대 만큼 건강하다고한다.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건강에대한 새로운것을 알게된다.

아니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잘못된 고정관념을 고쳐야한다.

 

의사는 무릎이 나쁘면 사용을 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다, 기계는 사용하면 마모가되어 달아 없어지지만

생명체는 사용을 할수록 재생되고 든든해진다.

 

기계는 스스로 번식하는 생명이 없으나

사람의 세포는 생명이 있다.

생명체는 음식을 먹고

다시 세포들을  reproducing 재생산을 한다.

 

내가 아는 타민족 은퇴한 사람들 중에

당뇨, 고혈압 포함, 성인병이 있고

몸이 약한 사람들이 여러명 있다.

 

그 중에 무릎이 망가진다며 절대 뛰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공원에서 살다시피한다.

몸도 약하고 우연히 손이 닿았는데 차다.

 

그는 겅간비법을 모른다.

뛰는건 젊은 사람들만이 하는거라고 우긴다.

 

속좁은 전 대통령 김영삼이 달리기를 하니까

의사가 무릎 마모때문에 달리지 말라고 조언을 한걸로 안다.

 

건강을 잘못 알고있는게 어디 그 사람들 때문이겠는가.

아래 youtube 에 의사가 아래 카펱설치공의 의료 검사 X 선 사진을보고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아 놀라서 웃는 모습이 보인다.

 

비만을 줄이는 TV 에 수년동안 출연하면서도

살을 못배는 사람들,

 

당뇨 고혈압은,, 약으로 못고치는데도

의사가 시키는대로 고치려고 약만 계속 먹는 사람들,

 

내가 아는 백인은 나이 70이 넘었고 당뇨 2기인데

임플란트 implant 를 하겠다고해서

큰소리로 말렸다.

만일 나이 60 넘은 사람에게 implant 추천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런 나쁜 의사에게는 가지말라.

 

나이 60 넘으면 골다공증이 있거나 bone density 골밀도가 낮으면

임플란트가 흔들리고,  안흔들린다고해도,

정상인 사람들도 음식 찌까기 food particle 들이

잇몸 [gingiva, gum]과 implant 사이로들어가서

4-7년 되면 입에서 냄새가 엄청 난다.

그런 사람을 여러명 보았다.

 

임플란트는 몇년 후 다시 해야하고, 턱을 망치고

인조로 만든 턱 artificial jaw 은

양쪽 고리가 흔들리면  씹지를 못한다.

 

명언 중에

‘음식과 운동으로 못고치면 약이 없다’는

중요한 명언을 잊지 말라.

 

모든 서양약은,, 코비드 주사 포함,, 화학적으로 만들어서

오래 먹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라오고

나타나는 현상을 막는 치료 treatment 일뿐

치유 healing 이 아니다.

 

동양 아시안약 약초 식물 동물에서 만들어서

부작용이 적다.

 

건강한 청년의 무릎, 니킥 카펫 달인의 무릎 정밀 진단

https://www.youtube.com/watch?v=n6KWmULayv8

 

카펫 니킥 달인, 무릎이 닿으면 팽팽해지는 신기한 광경

https://www.youtube.com/watch?v=zS-qGtb36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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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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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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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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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4; 의사 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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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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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6; 일해서 생긴 빨간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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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7; X ray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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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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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5. 15. 13:10

청와대 개방 첫날 미친 개독교인, 불전함 훼손

 

https://www.youtube.com/watch?v=3aqXR2oE1lo

 

[앵커]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지 하루 만에 경내에 있는 불전함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배치돼 있던 경찰은 난동을 피우던 50대 여성을 곧바로 체포해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윤해리 기자의 보도.

 

[기자]

청와대 관저 뒤편에 있는 높이 108cm 불상입니다.

 

'미남 석불'로도 불리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져 지난 2018년 보물 1977호로 지정됐습니다.

 

가파른 산책길을 오른 관람객들이 종종 소원을 빌고 가는 곳인데,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된 지 하루 만에 이곳에 놓인 시설물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상 앞에 놓인 불전함과 공양구가 파손된 건 오후 1시 반쯤.

 

청와대 관람을 위해 이곳을 찾은 50대 여성이

별안간 불전함과 공양을 드리는 데 사용하는 사기그릇을 바닥에 집어 던진 겁니다.

 

불상 바로 옆으로는 이렇게 산책로가 나 있는데요.

 

이곳에 배치된 경찰이 현장 난동 장면을 목격하고 50대 여성을 곧바로 제압해 다행히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관람객들이 불상을 향해 절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불전함을 집어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의견; 야 !! 미친년 아, 국보가 뭔지도 모르냐?]

 

하지만 이 여성은 체포될 당시에도 "내가 청와대의 주인"이라고 소리치는 등 난동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견;; 미친척해서 죄질을 가볍게하려는 개독교, 그리 안될거다]

 

청와대를 전면 개방한 지 하루 만에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문화재청은 경내 시설물 관리 인력을 보강하겠다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현재 있는 관리 인력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려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대처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경찰은 불상이 훼손되진 않은 만큼 재물손괴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입건한 뒤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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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도청장치 (오디오, 비데오) 재빨리 놓고 가는것 잡아야 합니다.

경비 필요.

언젠가 다시 대통령 관저로 사용 가능,

윤씨는 왜 멀정한 청와대 포기하고 딴데서 시무를??

 

개독교가 아프리카에가서 착취하고 나라를 망친건 왜 모느는지?
개독교가 행한 악행을 모르고 우리문화재는 파괴하는 미치ㄴ 녀ㄴ,
안녕하세요?

앞으로 5년동안의 암흑기가 걱정입니다


언제나 행복한 날들이 되세요

 
 
 

전자정보기 computer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5. 6. 14:46

이메일 종료 방법 terminate Gmail, yahoo mail, hotmail

 

Terminate delete Gamil account,

https://www.today.com/money/how-delete-gmail-account-google-account-t138128

 

Here's how to easily delete your Gmail account and Google account

It's time to finally get rid of that embarrassing email address you made a decade ago.

www.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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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inate delete Yahoo email account,

https://help.yahoo.com/kb/account/close-reactivate-yahoo-account-sln2044.html

 

Close or reactivate your Yahoo account | Account Help - SLN2044

Close or reactivate your Yahoo account You can close your Yahoo account at any time. Before doing so, please review the following info to understand what this action means for your account and your data. What happens after my account is closed? You'll lose

hel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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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inate delete Hotmail

핱메일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건 같은데

In box 불필요 삭제하면 60일 인가 보관해서 아주 불편,

https://www.just4dummies.com/delete-or-close-a-hotmail-account

 

Delete or Close a Hotmail Account | Just 4 Dummies - Life Made Easy

This article shows you how to delete or close a Hotmail account. If you use this account with any Microsoft service or Xbox, you won't be able to use it to sign in to those products or services.

www.just4dummies.com

 

 
 
 

사회 Society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5. 1. 10:25

429 폭동 관련 오해를 부르는 NPR.org 아침 방송

 

안녕하세요 교포 여러분,

LA 폭동때 동대문 스왑밋에서 이틀간 자동차 바리케이트 뒤에서 개인 화기로 타운 지키미 역할을 했던 1 인으로서 오늘 아침 미 주류 라디오 방송 내용을 듣던 중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있어 글 올립니다.

 

방송내용은 아래 URL 로 가셔서 확인 하셔도 되고요

또는 NPR.org 에 가셔서 Latasha 로 검색하면 첫번째로 뜨는 내용 (Story Corps) 입니다.

 

Kamilah Kashanie 라는 기자가 올린 Morning Edition 내용의 일부입니다.

 

https://www.npr.org/2022/04/29/1095444468/storycorps-remembering-15-year-old-latasha-harlins

 

Remembering Latasha Harlins, whose death helped setoff unrest in Los Angeles

A brother and sister remember Latasha Harlins, a 15-year-old girl who was shot and killed in 1991 by a store clerk in South Central Los Angeles — the same month Rodney King was beaten.

www.npr.org

 

NPR.org 의견 쓰기, comment;

이메일, 이름 가짜로 넣어도되요.

그러나 IP Address 때문에 받는쪽에서는

한번 연결된건 same IP 라는건 알게됨니다.

https://help.npr.org/contact/s/contact?request=Media-Relations

 

NPR | Contact Us

Sorry, we couldn't find that contact form. Try searching our help articles or go to the home page.

help.npr.org

 

PIC 01. Kamilah Kashanie 흑인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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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02, Kamilah Kashanie 흑인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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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처음부터 좀 이상합니다.

15세 흑인 소녀가 마트에가서 절도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망자의 지인, 친척이 추모하며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기억들만 나오죠. 이해합니다.  망자로 인한 가족 친지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참 안타깝기 그지 없고 고인의 명복을 바랄 뿐 입니다.. 물건 훔치다 총맞았다면 누가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죠.

 

그러나 사실은 바르게 보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자는 해당 리커스토어에서 절도를 하려다 걸려서 두순자씨를 폭행했죠.

키 크고 힘 센 십대에게 맞다가 죽겠구나 싶어서 총을 쏜 것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미디어 사진에 두순자여사 (그때는 두순자여사라고 불렀습니다 )는

눈이 부어있었고 누가봐도 맞은 얼굴 이었죠.

그렇지만 오늘 라디오 방송 내용엔 어디에도 폭력 관련 내용은 없습니다.

요즘 세대 사람들이 들으면 '그깟 몇푼 안하는 거 훔치려다 총맞다 죽었다' 로 들리기에 충분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들어봤습니다. 평소 NPR의 애청자 였으니까요.

 

점입가경으로 끝부분 남자 앵커의 발언이 막장의 끝판을 찍었죠:

 

"The killer was convicted of manslaughter but served NO JAIL TIME."

살인자는 과실치사 판결을 받았지만 실형은 받지 않았습니다.

 

왜....? 를 얘기 하지 않고 그냥 끝납니다.

'과자 훔치려다 총맞은 것도 억울한데,

살인자는 법정에서 실형도 받지 않고 유유히 걸어나왔다'로 들리죠.

 

그럼 법원은 왜 풀어줬을까....?

 

정당방위 였으니까요!

 

자기보다 힘세고 큰 십대에게 쳐맞다가 자기가 죽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는데 운나쁘게도 사망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 때 두순자씨를 많이 원망 했었습니다.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하고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 이셨을 겁니다.

 

미국 주류 미디어에서 사실을 곡해 할 소지가 있는 방송을 하는 건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를 이간질 하는거나 다름 없다고 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때와 다름 없이 주류와 흑인 사이에 한인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이고  이 폭동의 원인을 밤낮없이 리커스토어에 매달려

어떻게 하던 먹고살고 아이들 교육하려고 애쓰던 한인 이미자 두순자씨에게

덮어 씌우려는 시도가 아니면 뭘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보를 하는 건 아니죠.

역사왜곡입니다.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동료직원인 백인 직원에게 오늘이 무슨날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답니다. 429 riot 얘기를 했더니 들어서 조금은 안다고 합니다만, 그 때 이후에 태어난 20대 청년 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요.

해서 방송 내용을 얘기해 주고 미디어가 앞뒤 다 잘라먹고 오해 할 만한 방송을 하더란 얘기를 했더니 본인도 미디어의 그와 같은 작태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더군요.

 

이와 같은 방송을 지금의 세대의 African-American 청년들이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들의 젊은 피가 끓지 않겠습니까?

참 무책임한 작태입니다.

 

해당 방송사이트에 가서 커멘트라도 쓰려고 봤더니 커멘트 쓰는 곳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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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견쓰기 있어요.

 

NPR.org 의견 쓰기,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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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재판에서 증언을 마친 후, 배심원은 두순자를 2급 살인죄로 보고했다.

두순자는 자발적 살인죄 (Voluntary manslaughter)로 유죄를 선고 받았으며 배심원은 두순자가 형법 1203.06 (a) (1) [25] 및 12022.5 [26] 의미 내에서 총기를 사용한 사실을 밝혔다.

자발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배심원은 두순자가 라타샤를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그 살해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함축했다.

따라서, 배심원은 두순자가 의도적 살인이 아닌 방어기제로 살해했다는 것에 대한 변호를 거부했다.

 

CCTV영상에도 나와있지만 두순자씨가 15세 망자에게 먼저 폭행을 당했어도 가게문쪽으로 뒤돌아서서 나가는 망자의 후두부를 3피트 뒤에서 총격을 가한점은 정당방위라고 볼수는 없을것같습니다.

 

https://namu.wiki/w/%EB%9D%BC%ED%83%80%EC%83%A4%20%ED%95%A0%EB%A6%B0%EC%8A%A4%20%EC%82%B4%ED%95%B4%EC%82%AC%EA%B1%B4

 

댓글 2,

위키 인용 감사합니다.

뒤에서 쏜 걸 정당방위라고 보긴 어렵겠네요...

비디오에는 권총집에서 총을 꺼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있고요.

 

그걸 카운터 뒤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보란듯이 카운터 위에서 꺼내려고 애쓰네요. "너... 나 총 있어!" 하는 듯이.. 이 모습이 눈에 들어온 라타샤는 가게 안쪽으로 슬며시 피하죠.

근데 그렇게 총집에서 잘 안나오던 총이 확 나오자마자 격발 되는데 이 때 총구가 향한 방향이 안타깝게도 라타샤가 마침 걸어가는 방향 인것 같고.. 총도 한 번도 안쏴본 아줌마가. 거의 영화급으로 조준도 없이 상대방의 뒤통수에...

 

위키내용 윗 부분에 이 총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어떻게 갱단에서 이 총을 훔쳤으며 어떤 구조 변경을 해놓았는지 그리고 아주 위험하게 구조를 변경 했음에도 누가 이 총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는지.,,

 

각설하고요, 포인트는 그거였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은 미 주류 미디어의 보도 내용과 그들의 의도"

 

댓글3,

나무위키 발췌 내용:

이 사건이 터지자 미국에서는 로드니 킹 사건에서 흑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를 집중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도 보도되었는데, 예를 들어 두순자가 맞은 건 보여주지 않거나 두순자가 총으로 라타샤를 쏜 것만 보도했고 뉴스 헤드라인에는 라타샤가 고작 오렌지 주스 때문에 살해 당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왜곡된 보도로 인해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해당 사건이 인종적 동기를 바탕으로 한 증오성 의도적 계획살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버렸다.

 

댓글 4,

네 맞아요. 미국언론은 라타샤의 선폭행을 보도하지않고 두순자의 살인으로 시선돌리기에 급급해서 왜곡된 보도를 했지요. 또한 한국언론도 밑에 내용과 같이 그 정반대로 왜곡된 보도를 했구요.

 

한국 대다수 뉴스에서는 라타샤의 방어성 폭행만 강조했으며 두순자가 먼저 폭력을 가했다거나 절도범으로 몰아갔다고 보도하지 않았다.

또 라타샤가 절도범이 아니라는 것에 해명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지의 문서에서는 라타샤가 먼저 아시아인 혐오 발언을 하고 폭행을 했다는 법률보고서에 아예 없는 정보까지 넣어 버렸다. #, # 이는 확실히 날조라고 할 수 있다.

 

저는 그 문제점 보다는 글쓴이께서 정당방위였으며 두순자씨가 쳐맞다가 살기위해서 어쩔수 없이 총을 들었다고 한점과 운이나빠서 죽었다는 말에 의아해서 댓글을 달게되었습니다.

 

"정당방위 였으니까요!

자기보다 힘세고 큰 십대에게 쳐맞다가 자기가 죽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는데 운나쁘게도 사망하게 된 것이지요."

 

댓글5,

댓글 1 님 인용내용, "변호를 거부했다" 에 이어지는 부분 입니다:

 

유죄 판결 후, 이 사건의 집행 유예 보고서를 준비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호 관찰관은 두순자가 범죄를 반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이후 두순자는 법원으로부터 10년 형[27]을 선고 받았지만 기각되었고 대신 400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 명령과 함께 집행유예 판결(5년)을 선고 받았다.

또한 법원은 두순자에게 벌금 500달러와 라타샤의 장례식에 관련된 모든 비용을 지불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집행 유예 조건으로 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댓글 6,

정당방위로 무죄를 받지 않았습니다. 형을 살지않았을뿐 살인죄는 인정이 된거죠

 

댓글 7,

그렇습니다. 무죄를 받지 않았습니다.

쥬스를 "훔치려다 총맞은 것도 억울한데, 살인자는 법정에서 실형도 받지 않고 유유히 걸어나오지 않았다”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런 뉘앙스의 보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글의 포인트이죠.

지적 감사합니다.

 

댓글 8,

제가 기억하는 이 사건은

그 흑인 여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는 모범생이었고

그 날도 절도를 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쥬스 한병 사고 가방에 지갑을 꺼내기 위한 제스쳐를

무언가 가방에 집어넣는 걸로 오해한 스토어 한인 여주인께서 먼저 오해의 말을 하였고

그 흑인 여학생이 도둑으로 오인받은것에 화가나 말다툼끝에 가방안에서 손에 잡히는데로 꺼내어 여주인에게 던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체적 접촉으로 인한 폭행이 아니라 화난 십대 여학생이 던진 물건에 맞은건데 이걸 또 도둑질에도 모자라 강도로 돌변한 것이라 생각하고 겁을 먹은 여주인께서 총을 사용한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댓글 9,

두순자가 장사에 지쳐서  정신적으로는 피해망상 [패러노이어 paranoia] delusions of persecution 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듬니다.

 
 
 

사회 Society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9. 14:43

1992 년 429 폭동이 주는 교훈

 

# 피해를 많이 당한 원인;

 

* 정치력, 사법력 부재

돈을 벌려고 변호사는 많으나

한인정치인, 법적인 판사, 검사가 너무 적다.

 

원인은 단결력 부족,

그러나 미국 베트남 아메리칸들은 단결력이 대단하다.

 

한인은 개인적으로 돈 많이 벌어 잘 사는것만 알고

한인사회 전체 성장이 필요하다는데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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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력 낭비

돈을 벌어서 한인사회 정치력, 사법력인 한인 경찰력, 판사, 검사 들을 배출하기위한 투자가 없었다.

돈을 벌어서는 종교단체에 모두 갔다주어서

큰 대형 교회는 많으나 큰 한인회관 건물이 없고

청소년 회관이 한개도 없다.

 

결국 종교단체들이 한인사회 성장을 막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악순환은 반복되고있다.

 

청소년 회관도 한개도 없다.

그러나 일본 불교에 가면 대형 체육관이 있고

거기서 청소년들이 일본 검도를 한다.

 

[ 체육관이 있는 Japanese Buddhist temple

909 S Dale Ave, Anaheim, CA 92804 ]

 

* 돈밖에 모르는 한국 문화의 뿌리

개인적으로는 부자이다.

그러나 한인사회 발전에 기증하는데는 매우 인색하다.

 

목사가 2만달러짜리 audio system 을 갖고있다.

게다가 비영리단체들은 돈을 걷으면

얼마나 받았고, 어디다 사용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인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것과

똑같은 일들이 미 한인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서 장관 청문회를 하면

안걸리는 후보자가 넘들이 한마리도 없이 모두 걸린다.

자녀 부정입학, 부동산 비리, 수입축소 세무보고, 자녀 군복무 조작 회피,,,,

끝이 없이 터지는 부정과 비리,,

그게 여기 미국 비영리단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같은 체육행사도 반목하며 따로 하고

같은 애국 행사도 분열하며 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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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율 저조,

교회에는 일주일에 2번씩 나가면서도

투표는 안한다.

 

상의원 하의원 후보자들, 정치인들이

베트남 커뮤니티에는 가지만

한인사회에는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인들은 투표를 안한다.

 

베트남 아메리칸들은 90% 이상 투표를 한다.

그러나 한인투표율은 30% 정도에 머물러있다.

멕시칸 투표율도 낮다.

 

시민권을 받는 목적이

은퇴 후 노인혜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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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을 가져라.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가르치기를

여러분이 바르게 살면 원수는 없다고 기르친다.

그러나 아니다.

악인들이나 범죄자들은 남을 가해함으로 이익을 얻을수 있다면

강탈하고 죽이기도 한다.

 

따라서 총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명사수가 되려면

실내 사격장 Indoor Shooting range 에 가서

사격 연습을 해야한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고

Lock 로 잠거놓아라. Key 열쇠 보관에 주의하라.

 

비상시에 재산에 피해를 입거나 생명이 휘험하면 쏘아라.

쏘면 죽여야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한다.

 

둘 중에 한명이 죽어야한다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죽어야한다.

생명이 위험하면, 합법인가 불법인가는 나중 문제이다.

나중에 형벌을 받더라도 살고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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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증오 범죄.

Covid 19 이후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아시안증오범죄에 대한

방어력 대책이 전혀 없다.

어느 단체에서도 가르치지 않거 훈련도 없다.

 

간단한 쉬운 호신술을 배워야한다.

간단하지만 엄청 도움이된다.

youtube 에 호신술 또는 self defense 찾으면 많이 나온다.

Self-defense or

MMA [Mixed Martial Art] for women 찾아라.

 

걸어가거나, 차를 운전 할때

주위를 살피고 누가 따라 오나 보라.

 

혼자서 조용한 거리를 걷는것을 피하고

누가 따라오면, 공격할 준비를 하거나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라.

 

절대 3 피트 보다 가깝게 서지말고 멀리 피하라.

 

가해자가 때리기 가장 좋은 거리가 1피트 이다.

 

가해자가공격을 가하면 [한명이면]

가깝게 가서 눈알을 후벼파라.

눈일이 빠지면  보이지가 않아서 못따라 온다.

 

차를 운전하고 갈때 다른 차가 따라오면

911 걸고 경찰서로 가거나,

술취하듯 이상하게 운전하면  다른 차들이 경찰에 신고한다.

고의로 교통위반해서 경찰이 오게하라.

 

호신용 pepper sprayer 를 가지고 다녀라.

==========

아래 내용은

김동찬 / KACE 대표가 쓴 글이다.

 

429 폭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여러 민족과 인종이 섞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2년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한인들은 너무도 조용히 그림자처럼 살았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생활여건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고, 이민 와 피땀으로 모은 재산들이 폭도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잿더미가 되었는데 치안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한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피해를 보았고 그들을 지켜야 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인들 시 행정 관료들 모두 한인들에 대한 걱정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한인들은 선거에 참여 하지도 않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활동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한인들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둘째 한인사회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폭동이 일어나고 지역을 책임지는 많은 행정 관료와 정치인들이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주방위군 배치의 장소와 시기를 논의할 때 그곳에 한인들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며 많은 피해를 보고 있으니 빨리 주 방위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폭동은 끝났고 울분을 참지 못한 수많은 한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을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고 외쳤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난 그 후부터 한인 커뮤니티는 정치력 신장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2년이 흐르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한인 정치인들이 지역의 정치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429폭동은 이민 100년 한인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한인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민족 연합국가라는 미국에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자기 커뮤니티를 위한 똑똑한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가까운 예로 부르클린에서 한인 태시기사가 강도에게 폭행을 당하자 선출 된지 얼마 안 된 ‘로 김’ 주 하원의원이 그곳에 찾아가서 법안을 만들었다.

또 부루클린 지역에서 한인상권이 공격을 받자 동료 의원의 협조를 받아서 지역 주민들과 한인 상인들의 미팅을 만들 재방방지를 위한 노력을 했다.

429 폭동 당시에는 이런 지도자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갈 길은 멀다. 미국의 주류사회 유권자 등록률은 80%이고,

대통령 선거 때는 80% 이상의 투표율을 보인다.

그러나 아직 한인 커뮤니티는 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50%대의 유권자 등록율과 40%대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429폭동 22주기를 맞으며 다시금 우리의 현재 좌표와 갈 길을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자.

 
 
 

정치 politics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9. 11:36

유료 선거자원봉사 모집 apply poll workers

미 정부에서 돈 줌니다.

 

정치력 성장에 도움이 됨니다.

 

Google, yahoo 에다 poll worker 넣고

여러분 사는 county 넣으면 online 신청 되요

미리 선청해야 ,,

 

화일첨부;

4 Poll Work State.docx
0.04MB

 

 

CA 주,  모든 카운티들 연결

이매일들, 전화번호들 있으니

poll worker 하고싶다고, 보내세요

 

California State County Elections Offices;

https://www.sos.ca.gov/elections/voting-resources/county-elections-offices/

 

County Elections Offices :: California Secretary of State

 

www.sos.ca.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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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투표소 찾기,

Polling place locator by state,

https://www.vote.org/polling-place-locator/

 

Polling Place Locator - Vote.org

Wondering where you vote on Election Day? Use our polling place locator to find out.

www.vote.org

------------

LA County;

다중언어 봉사자 신청서

https://apps1.lavote.net/SECURED/pollworker/Default.cfm?AppType=General_Public

 

https://lacounty.gov/government/elections-voting/become-a-pollworker/

 

Become a Pollworker

 

lacounty.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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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fornia State 모든 카운티들 연결

이매일들, 전화번호들 있으니

poll worker 하고싶다고, 보내세요.

 

California State County Elections Offices;

https://www.sos.ca.gov/elections/voting-resources/county-elections-offices/

 

County Elections Offices :: California Secretary of State

 

www.sos.ca.gov

 

Alameda;

https://www.acvote.org

 

Official Election Site of Alameda County

 

www.acvote.org

reply;

https://service.govdelivery.com/accounts/CAALAME/subscriber/new?topic_id=CAALAME_9

 

Tim Dupuis, Registrar of Voters

1225 Fallon Street, Room G-1

Oakland, CA 94612

(510) 272-6973

(510) 272-6982 Fax

Hours: 8:30 a.m. - 5:00 p.m.

---------------

Alpine;

http://www.alpinecountyca.gov

 

Alpine County, CA - Official Website | Official Website

 

www.alpinecountyca.gov

EMail: ttremayne@alpinecountyca.gov

Teola L. Tremayne, County Clerk

99 Water Street

Markleeville, CA 96120

Mailing Address:

P.O. Box 158 Markleeville, CA 96120

(530) 694-2281

(530) 694-2491 Fax

Hours: 8:30 a.m. - 12:00 p.m./

1:00 p.m. - 5:00 p.m.

EMail: ttremayne@alpinecountyca.gov

------------------

Amador;

https://www.amadorgov.org/government/elections

 

Amador County Elections | Amador County

WARNING: ELECTIONEERING PROHIBITED! VIOLATIONS CAN LEAD TO FINES AND/OR IMPRISONMENT. WHERE: Within the immediate vicinity of a person in line to cast their ballot or within 100 feet of the entrance of a polling place, curbside voting or drop box the follo

www.amadorgov.org

EMail: Elections@amadorgov.org

 

Kimberly L. Grady, Registrar of Voters

810 Court Street Jackson, CA 95642-2132

(209) 223-6465

(209) 223-6467 Fax

Hours: 8:00 a.m. - 5:00 p.m.

------------------

Butte;

https://buttevotes.net/35/Elections

 

Elections | Butte County Clerk Recorder, CA

 

buttevotes.net

EMail: elections@buttecounty.net

 

Candace J. Grubbs, County Clerk-Recorder/Registrar of Voters

155 Nelson Ave Oroville, CA 95965-3411

(530) 552-3400, option 1

(800) 894-7761 (Domestic)

(530) 538-6853 Fax

Hours: 8:00 a.m. - 5:00 p.m.

---------------

Calaveras;

http://elections.calaverasgov.us

EMail: electionsweb@co.calaveras.ca.us

 

Rebecca Turner, County Clerk/Recorder

Elections Department

891 Mountain Ranch Road San Andreas, CA 95249

(209) 754-6376

(209) 754-6733 Fax

Hours: 8:00 a.m. - 4:00 p.m.

--------------------

Colusa;

http://www.countyofcolusa.org

EMail: clerkinfo@countyofcolusa.org

Rose Gallo-Vasquez, County Clerk/Recorder

546 Jay Street, Suite 200 Colusa, CA 95932

(530) 458-0500

(530) 458-0512 Fax

Hours: 8:30 a.m. - 4:00 p.m.

-----------------

Contra Costa;

https://www.cocovote.us/

 

Contra Costa County Elections | ELECTIONS DIVISION - DEBORAH R. COOPER, COUNTY CLERK-RECORDER-REGISTRAR

 

www.cocovote.us

EMail: voter.services@vote.cccounty.us

 

County Clerk, Recorder and Registrar of Voters

555 Escobar Street

Mailing Address:

P.O. Box 271 Martinez, CA 94553

(925) 335-7800

(925) 335-7838 Fax

Hours: 8:00 a.m. - 5:00 p.m.

-------------------

Del Norte;

http://www.co.del-norte.ca.us/departments/clerk-recorder/elections

EMail: anorthrup@co.del-norte.ca.us

 

Alissia Northrup, County Clerk-Recorder

981 H Street, Room 160 Crescent City, CA 95531

(707) 464-7216

(707) 465-0321 Fax

Hours: 8:00 a.m. - 5:00 p.m.

-----------------

El Dorado;

https://www.edcgov.us/Government/Elections/Pages/elections_main_info.aspx

EMail: elections@edcgov.us

 

Bill O'Neill, Recorder-Clerk/Registrar of Voters

2850 Fairlane Court Placerville, CA 95667

Mailing Address:

P.O. Box 678001 Placerville, CA 95667

(530) 621-7480

(530) 626-5514 Fax

Hours: 8:00 a.m. - 5:00 p.m.

---------------

Fresno;

https://www.co.fresno.ca.us/departments/county-clerk-registrar-of-voters

 

County Clerk/Registrar of Voters | County of Fresno

HELLO! Welcome to the Fresno County Clerk Website. I'm James A. Kus, Fresno County Clerk and Registrar of Voters. We developed this website to provide instant access to many common services for individuals and businesses.

www.co.fresno.ca.us

EMail: clerk-elections@co.fresno.ca.us

 

Brandi L. Orth, County Clerk/Registrar of Voters

2221 Kern Street Fresno, CA 93721

(559) 600-8683

(559) 488-3279 Fax

Hours: 8:30 a.m. - 4:00 p.m.

----------------

Glenn;

https://www.countyofglenn.net/dept/elections/welcome

 

County of Glenn | California

Photo courtesy Jean Miller

www.countyofglenn.net

EMail: elections@countyofglenn.net

 

Sendy Perez, County Assessor/Clerk-Recorder/Elections

516 W. Sycamore Street, 2nd Street Willows, CA 95988

(530) 934-6414

(530) 934-6571 Fax

Hours: 8:00 a.m. - 5:00 p.m.

-------------------

Humboldt;

https://humboldtgov.org/890/Elections-Voter-Registration

 

Elections and Voter Registration | Humboldt County, CA - Official Website

 

humboldtgov.org

EMail: humboldt_elections@co.humboldt.ca.us

 

Kelly Sanders, County Clerk, Recorder and Registrar of Voters

2426 6th Street Eureka, CA 95501

(707) 445-7481

(707) 445-7204 Fax

Hours: 8:30 a.m. - 12:00 p.m. 1:00 p.m. - 5:00 p.m.

-----------------

Imperial;

https://elections.imperialcounty.org/

 

Home - Elections - Registrar of Voters

Imperial County Elections – Registrar of Voters official website. Current Election Activities, Voter Registration, Community and Voter Outreach, Campaign Finance Disclosure Reports, Poll Worker Information and Resources.

elections.imperialcounty.org

EMail: linseydale@co.imperial.ca.us

 

Debra Porter, Registrar of Voters

940 W. Main Street, Suite 206 El Centro, CA 92243

(442) 265-1060

(442) 265-1062 Fax

Hours: 8:00 a.m. - 5:00 p.m.

--------------------

Inyo;

https://elections.inyocounty.us

 

Inyo County Elections

Your local elections resources

elections.inyocounty.us

EMail: dsexton@inyocounty.us

 

Kammi Foote, Clerk/Recorder & Registrar of Voters

168 N. Edwards Street Independence, CA 93526

Mailing Address:

P.O. Drawer F Independence, CA 93526

(760) 878-0224

(760) 878-1805 Fax

Hours: 8:00 a.m. - 12:00 p.m./ 1:00 p.m. - 5:00 p.m.

------------------

Kern;

https://www.kernvote.com

 

Home | Kern County Elections

 

kernvote.com

EMail: elections@co.kern.ca.us

 

Mary Bedard, Auditor-Controller/County Clerk/Registrar of Voters

Elections Office

1115 Truxtun Avenue, First Floor Bakersfield, CA 93301

(661) 868-3590

(800) 452-8683

(661) 868-3768 Fax

Hours: 8:00 a.m. - 5:00 p.m.

-----------------

Kings;

https://www.countyofkings.com/departments/administration/elections

 

Elections | Kings County

OFFICIAL BALLOT DROP BOXES Follow us on social media! The County of Kings Elections Department conducts Federal, State, School, County, City, and Special District elections. We are located in the Finance Building, across the breezeway from the Assessor's O

www.countyofkings.com

EMail: Elections@Countyofkings.com

 

Lupe Villa, Registrar of Voters

1400 W. Lacey Blvd. Bldg. #7 Hanford, CA 93230

(559) 852-4401

(559) 585-8453 Fax

Hours: 8:00 a.m. - 5:00 p.m.

------------------

Lake;

http://www.lakecountyca.gov/Government/Directory/ROV.htm

EMail: elections@lakecountyca.gov

 

Maria Valadez, Registrar of Voters

255 N. Forbes Street Lakeport, CA 95453

(707) 263-2372

(707) 263-2742 Fax
Hours: Mon - Thurs: 8:00 a.m. - 5:00 p.m., Closed Fridays

-------------------

Lassen;

http://www.lassencounty.org/dept/county-clerk-recorder/elections/

 

Elections | Lassen County

Behind the Historic Courthouse 220 S Lassen Street, Annex 96130 Susanville , CA

www.lassencounty.org

EMail: lcclerk@co.lassen.ca.us

 

Julie Bustamante, County Clerk-Recorder

220 S. Lassen Street, Suite 5 Susanville, CA 96130

(530) 251-8217

(530) 257-3480 Fax

Hours: 9:00 a.m. - 12:00 p.m./ 1:00 p.m. - 4:00 p.m.

--------------------

Los Angeles;

https://www.lavote.net

 

Los Angeles County RR/CC

County Clerk Apply for a marriage license, file a fictitious business name, or register as a notary public Learn More

lavote.gov:443

EMail: voterinfo@rrcc.lacounty.gov

 

Dean Logan, Registrar - Recorder/County Clerk

12400 Imperial Hwy. Norwalk, CA 90650

Mailing Address:

P.O. Box 1024 Norwalk, CA 90651-1024

(800) 815-2666

(562) 929-4790 Fax

Hours: 8:00 a.m. - 5:00 p.m.

-----------------

Madera;

https://votemadera.com

 

Vote Madera

Learn About Registering to Vote For more information about Registering to Vote, click hereor on "Registration Information" in the menu above. Click here for more information

votemadera.com

EMail: electionsinfo@co.madera.ca.gov

 

Rebecca Martinez, County Clerk-Recorder

200 W. 4th Street Madera, CA 93637

(559) 675-7720

(559) 675-7870 Fax

Hours: 8:00 a.m. - 5:00 p.m.

------------------

Marin;

https://www.marincounty.org/depts/rv

 

Elections Department - County of Marin

Elections / Registrar of Voters

www.marincounty.org

EMail: elections@marincounty.org

 

Lynda Roberts, Registrar of Voters

3501 Civic Center Drive, Room 121

San Rafael, CA 94903

Mailing Address:

P.O. Box E San Rafael, CA 94913-3904

(415) 473-6456

(415) 473-6447 Fax

Hours: 8:00 a.m. - 4:30 p.m.

------------------

Mariposa;

http://www.mariposacounty.org/87/Elections

 

Elections | Mariposa County, CA - Official Website

 

www.mariposacounty.org

EMail: cmorrow@mariposacounty.org

 

Keith Williams, County Clerk

Hall of Records

4982 10th Street Mariposa, CA 95338

Mailing Address:

P.O. Box 247 Mariposa, CA 95338

(209) 966-2007

(209) 966-6496 Fax

Hours: 8:00 a.m. - 5:00 p.m.

---------------

Mendocino;

https://www.mendocinocounty.org/government/assessor-county-clerk-recorder-elections/elections

EMail: acr@co.mendocino.ca.us

 

Katrina Bartolomie, Assessor-County Clerk-Recorder

Elections Department

501 Low Gap Road, Room 1020 Ukiah, CA 95482

(707) 234-6819

(707) 463-6597 Fax

Hours: 8:00 a.m. - 5:00 p.m.

-----------------

Merced;

http://www.co.merced.ca.us/2379/Elections

 

About the Elections Department | Merced County, CA - Official Website

body.hideContent { opacity: 1 !important; } Arrow Left Arrow Right...

www.co.merced.ca.us

EMail: elections@countyofmerced.com

 

Barbara J. Levey, Registrar of Voters

2222 M Street Merced, CA 95340

(209) 385-7541

(209) 385-7387 Fax

Hours: 8:00 a.m. - 5:00 p.m.

-----------------

Modoc;

http://www.co.modoc.ca.us/departments/elections

EMail: darcylocken@co.modoc.ca.us

 

Stephanie Wellemeyer, County Auditor/Clerk/Recorder

108 E. Modoc Street Alturas, CA 96101

(530) 233-6205

(530) 233-6666 Fax

Hours: 8:30 a.m. - 12:00 p.m./ 1:00 p.m. - 5:00 p.m.

------------------

Mono;

https://monocounty.ca.gov/elections

 

Elections | Mono County California

 

monocounty.ca.gov

EMail: elections@mono.ca.gov

 

Shannon Kendall, Registrar of Voters

(Library Building)

74 N. School Street, Annex I

Bridgeport, CA 93517

Mailing Address:

P.O. Box 237 Bridgeport, CA 93517

(760) 932-5537

(760) 932-5531 Fax

Hours: 8:00 a.m. - 5:00 p.m.

-----------------

Monterey;

https://www.montereycountyelections.us

 

Monterey County Elections :: Home

 

www.montereycountyelections.us

EMail: elections@co.monterey.ca.us

 

Claudio Valenzuela, Registrar of Voters

1441 Schilling Place - North Building

Salinas, CA 93901

Mailing Address:

P.O. Box 4400 Salinas, CA 93912

(831) 796-1499

(831) 755-5485 Fax

Hours: 8:00 a.m. - 5:00 p.m.

----------------

Napa;

https://www.countyofnapa.org/396/Elections

 

Elections | Napa County, CA

 

www.countyofnapa.org

EMail: elections@co.napa.ca.us

 

John Tuteur, Assessor-Recorder-County Clerk

Napa County Registrar of Voters

1127 First St. Ste. E  Napa, CA 94559

(707) 253-4321

(707) 253-4390 Fax

Hours: 8:00 a.m. - 5:00 p.m.

-----------------

Nevada;

https://www.mynevadacounty.com/695/Registrar-of-Voters/li

EMail: elections.mail@co.nevada.ca.us

 

Gregory J. Diaz, Clerk-Recorder, Registrar of Voters

950 Maidu Avenue, Suite 210 Nevada City, CA 95959

(530) 265-1298

(530) 265-9829 Fax

Hours: 8:00 a.m. - 5:00 p.m.

-----------------

Orange;

https://ocvote.gov/

 

Home | OC Vote

Voting at Home All registered voters in Orange County will receive a vote-by-mail ballot. If you prefer to cast your ballot in person, you can visit any Vote Center.

ocvote.gov

EMail: ocvoter@ocgov.com

 

Neal Kelley, Registrar of Voters

1300 South Grand Avenue, Bldg. C Santa Ana, CA 92705

Mailing Address:

P.O. Box 11298 Santa Ana, CA 92711

(714) 567-7600

(714) 567-7556 Fax

Hours: 8:00 a.m. - 5:00 p.m.

----------------

Placer;

https://www.placercountyelections.gov/

 

Placer County Elections Office

At Placer County Elections we Provide the public with courteous, prompt and professional service. Work as a team with loyalty and respect for each other. Strive to increase our knowledge and skills. Share ideas and information with others. Upcoming Electio

www.placercountyelections.gov

EMail: election@placer.ca.gov

 

Ryan Ronco, County Clerk-Recorder-Registrar

2956 Richardson Drive Auburn, CA 95603

Mailing Address:

P.O. Box 5278 Auburn, CA 95604

(530) 886-5650

(800) 824-8683

(530) 886-5688 Fax

Hours: 8:00 a.m. - 5:00 p.m.

-------------------

Plumas;

http://www.countyofplumas.com/142/Elections-Division-Home

 

Elections Division Home | Plumas County, CA - Official Website

 

www.plumascounty.us

EMail: elections@countyofplumas.com

 

Kathy Williams, County Clerk-Recorder-Registrar of Voters

520 Main Street, Room 102, Courthouse

Quincy, CA 95971

(530) 283-6256

(530) 283-6155 Fax

Hours: 8:00 a.m. - 5:00 p.m.

-------------------

Riverside;

https://www.voteinfo.net

 

https://www.voteinfo.net

Per County Ordinance 358.8, Registrar of Voters offices will be closed on the following Holidays: Memorial Day Monday, May 30 Independence Day Monday, July 4 Labor Day Monday, September 5 Columbus Day & Indigenous Peoples' Day Monday, October 10 Veterans'

www.voteinfo.net

EMail: rovweb@co.riverside.ca.us

 

Rebecca Spencer, Registrar of Voters

2724 Gateway Drive Riverside, CA 92507-0918

(951) 486-7200

(951) 486-7272 Fax

Hours: 8:00 a.m. - 5:00 p.m.

------------------

Sacramento;

http://www.elections.saccounty.net/Pages/default.aspx

 

Voter Registration & Elections

 

elections.saccounty.gov

EMail: voterinfo@saccounty.net

 

Courtney Bailey-Kanelos, Registrar of Voters

7000 65th Street, Suite A Sacramento, CA 95823

(916) 875-6451

(916) 876-5130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Benito;

http://sbcvote.us

 

San Benito County C-A-R-Edsf

County Clerk, Auditor, Recorder and Elections information for San Benito County

sbcvote.us

EMail: cclerk@cosb.us

 

Joe Paul Gonzalez, County Clerk-Auditor-Recorder

Hall of Records (old Courthouse)

440 Fifth Street, Second Floor, Room 205 Hollister, CA 95023-3843

(831) 636-4016

(831) 636-2939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Bernardino;

https://www.sbcountyelections.com/elections/

EMail: rovwebmail@rov.sbcounty.gov

 

Bob Page, Registrar of Voters

777 E. Rialto Avenue San Bernardino, CA 92415-0770

(909) 387-8300

(909) 387-2022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Diego;

https://www.sdvote.com

 

San Diego Registrar

───  Learning Center  ─── Watch a video to learn more about the voting process.

www.sdvote.com

EMail: rovmail@sdcounty.ca.gov

 

Michael Vu, Registrar of Voters

5600 Overland Avenue San Diego, CA 92123

Mailing Address:

P.O. Box 85656 San Diego, CA 92186-5656

(858) 565-5800

(800) 696-0136

(858) 694-2955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Francisco;

https://sfelections.sfgov.org/

 

Department of Elections |

Review your registration, track your ballot, stop/resume the mailing of your voter information pamphlet, submit your language preference for election materials, and more!

sfelections.sfgov.org

EMail: sfvote@sfgov.org

 

John Arntz, Director of Elections

1 Dr. Carlton B Goodlett Place City Hall, Room 48

San Francisco, CA 94102-4635

(415) 554-4375

(415) 554-7344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Joaquin;

https://www.sjgov.org/department/rov/

 

Registrar of Voters

The San Joaquin County Registrar of Voters Office is a division of the County Administrator's office and is responsible for conducting fair, impartial, accurate, secure and transparent federal, state and local elections. Other functions of the Registrar of

www.sjgov.org

EMail: vbm@sjgov.org

 

Melinda Dubroff, Registrar of Voters

44 N. San Joaquin Street, Third Floor, Suite 350

Stockton, CA 95202

Mailing Address:

P.O. Box 810 Stockton, CA 95201

(209) 468-8683

(209) 468-2889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Luis Obispo;

https://www.slocounty.ca.gov/Departments/Clerk-Recorder

EMail: elections@co.slo.ca.us

 

Tommy Gong, County Clerk-Recorder

1055 Monterey Street, Suite D-120

San Luis Obispo, CA 93408

(805) 781-5228

(805) 781-1111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 Mateo;

https://www.smcacre.org

 

ACRE - Home

 

www.smcacre.org

EMail: registrar@smcacre.org

 

Mark Church, Chief Elections Officer & Assessor-County Clerk-Recorder

Registration-Elections Division

40 Tower Road San Mateo, CA 94402

(650) 312-5222

(650) 312-5348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ta Barbara;

http://www.sbcvote.com/Home.aspx

 

CRAE | Santa Barbara County, CA - Official Website

 

www.countyofsb.org

EMail: electionssupport@co.santa-barbara.ca.us

 

Joseph E. Holland, Clerk/Recorder/Assessor and Registrar of Voters

4440-A Calle Real Santa Barbara, CA 93110

Mailing Address:

P.O. Box 61510 Santa Barbara, CA 93160-1510

(805) 568-2200 / (800) 722-8683

(805) 568-2209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ta Clara;

https://www.sccgov.org/sites/rov/Pages/Registrar-of-Voters.aspx

EMail: registrar@rov.sccgov.org

 

Shannon Bushey, Registrar of Voters

1555 Berger Drive, Bldg. 2 San Jose, CA 95112

Mailing Address:

P.O. Box 611360 San Jose, CA 95161-1360

(408) 299-8683 / (866) 430-8683

(408) 998-7314 Fax

Hours: 8:00 a.m. - 5:00 p.m.

-----------------

Santa Cruz;

https://www.votescount.us/

EMail: Tricia.Webber@santacruzcounty.us

 

Gail Pellerin, County Clerk

701 Ocean Street, Room 310 Santa Cruz, CA 95060

(831) 454-2060

(831) 454-2445 Fax

Hours: 8:00 a.m. - 5:00 p.m.

----------------

Shasta;

https://www.elections.co.shasta.ca.us

 

Shasta County, CA Elections | Shasta County, CA Elections

 

www.elections.co.shasta.ca.us

EMail: countyclerk@co.shasta.ca.us

 

Cathy Darling-Allen, Clerk & Registrar of Voters

1643 Market Street

Redding, CA 96001

Mailing Address:

P.O. Box 990880 Redding, CA 96099-0880

(530) 225-5730

(530) 225-5454 Fax

Hours: 8:00 a.m. - 5:00 p.m.

----------------

Sierra;

https://www.sierracounty.ca.gov/214/Elections/li

 

Elections | Sierra County, CA - Official Website

 

www.sierracounty.ca.gov

EMail: hfoster@sierracounty.ca.gov

 

Heather Foster, County Clerk-Recorder

100 Courthouse Square, Room 11

P.O. Drawer D Downieville, CA 95936-0398

(530) 289-3295

(530) 289-2830 Fax

Hours: 9:00 a.m. - 12:00 p.m./ 1:00 p.m. - 4:00 p.m.

-------------------

Siskiyou;

https://www.co.siskiyou.ca.us/elections

 

Elections | Siskiyou County California

 

www.co.siskiyou.ca.us

EMail: laura@sisqvotes.org

 

Laura Bynum, County Clerk

510 N. Main Street Yreka, CA 96097-9910

(530) 842-8084

(530) 841-4110 Fax

Hours: 9:00 a.m. - 12:00 p.m. / 1:00 p.m. - 4:00 p.m.

---------------------

Solano;

http://www.solanocounty.com/depts/rov/default.asp

 

Solano County - Registrar Of Voters

Registrar Of VotersRegistered Voters as of 04/25/2022 (updated weekly) Democrat: 126,853 Republican: 57,161 Other: 76,257 | Total: 260,271 ↓  All of our services are available by phone or email ([email protected]); (707) 784-6675For Virtual Appointm

www.solanocounty.com

EMail: elections@solanocounty.com

 

Timothy Flanagan, Registrar of Voters

675 Texas Street, Suite 2600 Fairfield, CA 94533

(707) 784-6675 / (888) 933-8683

(707) 784-6678 Fax

Hours: 8:00 a.m. - 5:00 p.m.

-----------------

Sonoma;

http://vote.sonoma-county.org

 

Registrar of Voters Office

The Registrar of Voters Office is a division of the County Clerk-Recorder-Assessor’s Department, under the direction of an elected County Clerk. The Registrar of Voters Office performs a range of election-related duties, in addition to other public servi

sonomacounty.ca.gov

EMail: rov-info@sonoma-county.org

 

Deva Marie Proto, County Clerk-Recorder-Assessor-Registrar of Voters

435 Fiscal Drive Santa Rosa, CA 95403

Mailing Address:

P.O. Box 11485 Santa Rosa, CA 95406-1485

(707) 565-6800 / (800) 750-8683

(707) 565-6843 Fax

Hours: 8:00 a.m. - 5:00 p.m.

------------------

Stanislaus;

http://stanvote.com

EMail: stanvote@stancounty.com

 

Donna Linder, County Clerk-Recorder

1021 I Street, Suite 101 Modesto, CA 95354-2331

(209) 525-5200

(209) 525-5802 Fax

Hours: 8:00 a.m. - 4:00 p.m.

--------------------

Sutter;

https://www.suttercounty.org/doc/government/depts/cr/elections/cr_elections_home

 

Elections | Sutter County, CA

Hours Monday through Friday 7:00 a.m. to 3:30 p.m.

www.suttercounty.org

apply;

https://www.suttercounty.org/government/advanced-components/placeholder-for-sutter-future-pages/apply-to-be-a-poll-worker

 

Apply to be a Poll Worker | Sutter County, CA

 

www.suttercounty.org

chat;

https://www.suttercounty.org/government/contact/contact-elections

 

Contact Elections | Sutter County, CA

 

www.suttercounty.org

 

Donna M. Johnston, County Clerk-Recorder

1435 Veterans Memorial Circle Yuba City, CA 95993

(530) 822-7122

(530) 822-7587 Fax

Hours: 8:00 a.m. - 5:00 p.m.

--------------------

Tehama;

http://www.co.tehama.ca.us/dep-elections/li

EMail: jvise@co.tehama.ca.us

 

Jennifer Vise, ROV/Clerk/Recorder

633 Washington Street, Room 17 Red Bluff, CA 96080

Mailing Address:

P.O. Box 250 Red Bluff, CA 96080-0250

(530) 527-8190

(530) 527-1140 Fax

Hours: 8:00 a.m. - 5:00 p.m.

---------------------

Trinity;

https://www.trinitycounty.org/elections

 

Elections | Trinity County

Shanna S. White County Clerk/Recorder/Assessor Julie K. Barcellona Assistant County Clerk/Recorder/Assessor Welcome to the Trinity County Elections Webpage Duties & Responsibilities The Elections Office is a division of the county Clerk's Office, and is ru

www.trinitycounty.org

EMail: elections@trinitycounty.org

 

Shanna White, Registrar of Voters

11 Court Street Weaverville, CA 96093

Mailing Address:

P.O. Box 1215 Weaverville, CA 96093-1215

(530) 623-1220

(530) 623-8398 Fax

Hours: 9:00 a.m. - 1:00 p.m, 2:00 p.m. - 4:00 p.m.

--------------------

Tulare;

https://tularecoelections.org/elections

EMail: absentee@co.tulare.ca.us

 

Michelle Baldwin, Registrar of Voters

5951 S. Mooney Blvd. Visalia, CA 93277

(559) 624-7300

(559) 737-4498 Fax

Hours: M-Th 7:30 a.m. - 5:30 p.m., F 8:00 a.m. - 12:00 p.m.

--------------------

Tuolumne;

https://www.tuolumnecounty.ca.gov/194/Election-Information

 

Election Information | Tuolumne County, CA - Official Website

 

www.tuolumnecounty.ca.gov

EMail: clerk@tuolumnecounty.ca.gov

 

Deborah Bautista, County Clerk-Auditor-Controller

Elections Department 2 S. Green Street Sonora, CA 95370-4618

(209) 533-5570

(209) 694-8931 Fax

Hours: 8:00 a.m. - 5:00 p.m.

---------------------

Ventura;

https://recorder.countyofventura.org/elections/

 

Ventura County, CA – County Clerk and Recorder / Registrar of Voters

Elections Division What’s New See how elections are changing in Ventura County! (click image below) Vote By Mail Ballots to be Issued to Every Registered Voter Beginning Jan. 1 with New State Law Assembly Bill No. 37, signed by Governor Newsom on Septemb

recorder.countyofventura.org

Email; elections@ventura.org

 

Mark A. Lunn, County Clerk-Recorder-Registrar of Voters

800 S. Victoria Avenue Hall of Administration, Lower Plaza

Ventura, CA 93009-1200

(805) 654-2664

(805) 648-9200 Fax

Hours: 8:00 a.m. - 5:00 p.m.

---------------------

Yolo;

https://www.yoloelections.org/li

EMail: elections@yolocounty.org

 

Jesse Salinas, Yolo County Assessor/Clerk-Recorder/Registrar of Voters

625 Court Street, Room B-05 Woodland, CA 95695

Mailing Address:

P.O. Box 1820 Woodland, CA 95776-1820

(530) 666-8133 / (916) 375-6490

(530) 666-8123 Fax

Hours: 8:00 a.m. - 5:00 p.m.

------------------

 

 
 
 

정치 politics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9. 07:37

선거 투표 유료봉사 모집 Election Vote Registrar of voters Poll Workers

 

화일 첩부 ;

Vote Poll Workers.docx
0.02MB

 

California Poll Worker Application,

https://pollworker.sos.ca.gov/s/

 

Home

 

pollworker.sos.ca.gov

 

----------------

CA State, LA County,

https://lacounty.gov/government/elections-voting/become-a-pollworker/

 

Become a Pollworker

 

lacounty.gov

 

email: voterinfo@rrcc.lacounty.gov

 

Apply now,

https://www.vote4la.com/pollaccess/ElectionRegularWorkerApplication.aspx

 

Election Worker Access

 

www.vote4la.com

==================

CA State Orange County, Poll Worker

 

Email; recruitment@ocvote.gov

 

https://ocvote.gov/about/careers/join

 

Join the Team | OC Vote

 

ocvote.gov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Provision of Services. By using the Services, executing a document that references them, or by clicking to accept or agree to the Terms of Use when this option is made available to you, you accept and agree to be bound and abide by these Terms of Use and o

www.governmentjobs.com

 

Bilingual Vote Center CSR (Chinese, Korean, Spanish, Vietnamese) - 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467059/phone-bank-customer-service-representative-office-assistant-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Provision of Services. By using the Services, executing a document that references them, or by clicking to accept or agree to the Terms of Use when this option is made available to you, you accept and agree to be bound and abide by these Terms of Use and o

www.governmentjobs.com

- Santa Ana, CA

- Extra-Help ; $18.64 - $21.97 Hourly

 Category: Customer Service/ Elections,

 

Community Program Specialist (Bilingual ; Vietnamese Speaking)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354355/community-program-specialist-bilingual-vietnamese-speaking/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 Santa Ana, CA

- Full-Time Regular ; $57,761.60 - $77,604.80 Annually

- Category: Community Services/ Customer Service/ Elections

 

Election Support - Vote Center Supervisor - Staff Assistant/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512276/election-support-vote-center-supervisor-staff-assistant-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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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ta Ana, CA

- Extra-Help ; $23.01 - $30.85 Hourly

- Category: Administration / Clerical & Data Entry / Community Services / Elections

 

Election Support Ballot Collection - Utility Worker/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512313/election-support-ballot-collection-utility-worker-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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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ta Ana, CA

- Extra-Help ; $16.32 - $21.28 Hourly

- Category: Community Services/ Warehouse/ Drivers/ Dispatch/ Elections,

 

Election Warehouse Support - Extra Help Utility Worker/Driver,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467013/election-warehouse-support-extra-help-utility-worker-driver/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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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ta Ana, CA

- Extra-Help ; $16.32 - $21.28 Hourly

- Category: Warehouse / Miscellaneous / Maintenance / Custodial / Elections

 

Lead Vote Center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 - 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525641/lead-vote-center-customer-service-representative-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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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vernmentjobs.com

- Santa Ana, CA

- Extra-Help ; $18.64 - $21.97 Hourly

- Category: Clerical & Data Entry / Community Services / Management / Customer Service / Elections

 

Phone Bank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Office Assistant-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467059/phone-bank-customer-service-representative-office-assistant-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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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vernmentjobs.com

- Santa Ana, CA

- Extra-Help ; $18.64 - $21.97 Hourly

- Category: Clerical & Data Entry / Customer Service / Elections

 

Vote Center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 - Extra Help

https://www.governmentjobs.com/careers/oc/jobs/3472903/vote-center-customer-service-representative-extra-help/apply?department[0]=Registrar%20of%20Voters&sort=PositionTitle%7CAscending&pagetype=jobOpportunitiesJobs

 

Job Opportunities | County of Orange Careers

Provision of Services. By using the Services, executing a document that references them, or by clicking to accept or agree to the Terms of Use when this option is made available to you, you accept and agree to be bound and abide by these Terms of Use and o

www.governmentjobs.com

- Santa Ana, CA

- Extra-Help ; $18.64 - $21.97 Hourly

- Category: Community Services / Customer Service / Elections

===================

CA State San Bernardino County, poll worker,

https://sbcountyelections.com/election-workers/

 

Pho: 909-387-8300

Email: communications@rov.sbcounty.gov

 

Clerk: $100 per day.

Assistant Supervisor: $135 per day.

Supervisor: $175 per day.

Training: $20 per 2-hour session.

Bilingual Pay: $10 per day.

===============

CA State Riverside County, poll worker,

https://www.voteinfo.net/EOapp.asp

 

https://www.voteinfo.net/EOapp.asp

The County of Riverside Registrar of Voters is seeking Election Officers   Help deliver democracy… And make money doing it! All Election Officers must be able to read and write English [EC12303(a)] To be an Election Officer the following requirements mu

www.voteinfo.net

 

Email ; rovweb@rivco.org

 

Ph: (951) 486-7200

(800) 773-VOTE(8683)

===============

CA State by county,

https://www.sos.ca.gov/elections/poll-worker-information

 

Poll Worker Information :: California Secretary of State

 

www.sos.ca.gov

 

* Contra Costa County Poll Worker

https://www.cocovote.us/poll-worker-center/become-a-poll-worker/

 

Contra Costa County Elections

Election Day would not be possible without poll workers. Poll workers are a vital link between the Elections Office and the voters that we serve. Poll workers are on the front lines of democracy, processing voters, issuing ballots, and maintaining voting e

www.cocovote.us

 

apply;

https://www.cocoteam.us/PollWorkerReview.aspx

 

Election Worker Access

A poll worker must be 18 years old, a U.S. citizen, and a registered voter in California. Non-citizens with permanent resident status who would otherwise be eligible to vote also are allowed to serve as poll workers. Election Day can be long (14+ hours), b

www.cocoteam.us

----------------

* Humboldt County Election Worker

https://humboldtgov.org/2626/Election-Workers

 

Election Workers | Humboldt County, CA - Official Website

 

humboldtgov.org

apply;

https://humboldtgov.org/FORMCENTER/ELECTIONS-6/POLL-WORKER-APPLICATION-47

 

Form Center • County of Humboldt • CivicEngage

 

humboldtgov.org

------------------

* Lassen County Elections

http://www.lassencounty.org/dept/county-clerk-recorder/elections/

 

Elections | Lassen County

Behind the Historic Courthouse 220 S Lassen Street, Annex 96130 Susanville , CA

www.lassencounty.org

-------------

* Los Angeles County Poll Worker

https://lavote.gov/home/voting-elections/pollworker-information

 

------------

* Marin County Poll Worker

https://www.marincounty.org/depts/rv/vote-center-workers/become-an-election-worker/election-worker-application

 

Election Worker Application - Elections - County of Marin

Application to Serve as an Election Worker NOTE: the application period to serve as an election officer in the November 3, 2020 General Election is now closed. If you still wish to apply, your name will be placed on our waiting list. We will only contact y

www.marincounty.org

------------

* Nevada County Elections

https://www.nevadacountyca.gov/3446/Elections

-------------

* San Benito County Poll Worker

https://sbcvote.us/registrar-of-voters/pollworker/

 

San Benito County Elections - Pollworker information

Help make elections better for everyone. Information about becoming a pollworker in San Benito County.

sbcvote.us

----------

San Diego county Poll Worker,

https://www.sdvote.com/pollworkers/

 

Poll Workers

We need you! Be a poll worker and be part of American democracy in action. Each election, we recruit thousands of poll workers. As a new or returning poll worker you will receive training and materials to make sure you are confident and ready to help voter

www.sdvote.com

 

email: rovmail@sdcounty.ca.gov

------------

* Santa Clara Poll Worker,

한국어; https://sccvote.sccgov.org/korean

 

https://sccvote.sccgov.org/get-involved/work-vote-center

 

* Sierra County Elections

(Sierra County is an all vote-by-mail county and has no need for poll workers.)

 

* Sonoma County Poll Worker

Apply;

https://sonoma.prod.simpligov.com/prod/portal/ShowWorkFlow/AnonymousEmbed/db726a8e-cc71-4864-a7ab-2823fa872684

=================

 

 
 
 

고발 complaint Report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2. 15:01

대만사람들이 하는 가게에서 모욕을 당했습니다!!!

 

대만사람들이 하는 안경점에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 안경테가 있어서 오더를 하고 돈을 내고 나왔는데,,

인터넷에 유명 안경 사이트에 보니까 같은 제품이 220불이나 싸게 나와있어서  (160불짜리를 380불에 팔음) 한시간 안에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미 안경알 주문이 들어가서 안된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였고 안경점에서 나온지 한시간도 안되서 취소하고 환불 요청했는데 거절 당했습니다.

거기 매니저라는 사람이 가게에 all sales are final 이라고 써있고

안경알은 주문제작이기 때문에 취소/환불이 안된다면서 dispute 하면 어차피 너가 질거고 너가 수수료 내야되고 너의 크래딧이 나빠질거다고 협박을 합니다.

 

태도도 너무 위에서 아래 내려다보는 태도이고

타이완 사람들의 서비스는 흠잡을데가 없다고 저를 깔보듯이 말을 합니다.

우리는 문명사회에 살고 있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철들은 어른들이라면서 저를 가르치듯이 말하더군요....

왜 주문취소 / 환불을 받는데 이러한 단어들을 들어야 하는지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번에 미셸박 의원의 영어발음을 조롱한 대만계 의원을 보면서

대만사람들의 태도가 왜 이렇게 불량한지 공감이 갔습니다.

 

아직 안경을 픽업하지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환불을 받을수 있을까요?

(원래 4주안에 된다고 했는데 제가 캔슬한다고 하니까 5일도 안되서 만들어왔습니다! 캔슬 못하게...)

어떻게 하면 이 대만인 매니저에게 통쾌한 말을 해줄수가 있을까요?

도와주세요!

------------------

댓글들

 

01, small claim 소송 하세요. Credit card 회사에 분쟁해보아야

쉽게 처리위해 안경점 편을 들검니다.

모든 설명 하고,, 소액재판은 지더라도 해야 합니다.

의사도 Taiwan 의사는 멀리 하세요.

아느 상점에 가도 return policy 하고

cancellation 조건을 먼저 알아보이야 합니다.

 

Walmart 에서 당뇨 측정기는 return 안되요.

사기 전에 물어보고, 서류 확인 필요.

 

02,

글쓴이의 억울하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all sales are final 사인, return policy를 확인 하지않고

구매절차를 끝내신 글쓴이의 실수네요.

싸워도 못이기실꺼같아요.

기분 나빠셔도 액땜했다치시고 맘쓰지마시길.

주말다가오는데 기분잡치셔서 짜증나시겟어요.

 

원글,

좋은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ll sales are final 사인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보지도 못했고

카드 영수증 따로 안주고 오더 들어간 종이 한장 받았는데

거기에는 return policy나 cancelation policy 같은거 전혀 안적혀있고

페이할때 아무도 그런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요즘같이 리턴/환불이 편리한 세상에 이런 막되먹은 사람들은 정말 처음 보네요 ㅠㅠ

대만사람들 나이스하고 공평한줄 알았더니 이렇게 손님을 업신여기는 (정말 너무 차갑게 단 한마디도 들어주지를 않더라구요)

매니저에게 일을 맡겨논 비지니스 오너는 정말 무슨 생각인건지....

그래도 한마디 해주셔서 위로가 되네요 ㅜㅜ

 

03,

와 완전히 나쁜 사람들이네요 양아치같은 장사치네요

한시감만에 왜 취소가 안되나요??

크레딧카드에 dispute 하세요

타이완사람들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더니

완전 얍삽하고 태도가 아주 불손하네요

 

04,

카드사에 디스퓻하시고 Yelp 에 알리세요 평점 1주시고.

미국에서 어떻게 한시간 안에 취소가 안되나요??

렌즈를 하기도 전인데 이건 말도 안됨.

 

원글,

위에 분이 조언하신대로 카드사에 지불정지 신청을 하시거나

아예 카드 분실신고를 하시면 어떻게 해결이 안 될까요?

 

05, 악플, Dongju11 [미주 라디오코리아 질문방]

[반론 ;

불량품으로 만들어 싸게 파는 넘이 나쁜 넘인가?

싼걸 사려는 사람들이 나쁜가?

너는 언제나 값을 2배 더 주고 가느냐? 왜?

싼거 찾는게 미움받을 이유가 아니다.]

 

- 악의성 댓글 -

원글 양아치세요?

세상에 제일 싼가격 찾으면 안경을 집적 만들어쓰고

쌀도 농사해 지어먹고, 야채도 길러서 먹던가.

이세상 최저가 찾으며 비교질하는 인간들 진짜 진상중의 상진상ㅋ

 

모욕당할만 했고 가게서 그정도로 나온것도 다행이며

원글은 중국인간들이랑 별반 다를봐없네.

 
 
 

사회 Society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1. 14:07

쓰레기 수집가들을 고맙게 생각하자.

 

영어 단어 ;;

Garbage = 젖은 음식 폐기물 [쓰레기],

garbage is used for waste from the kitchen; ‘wet’ waste,

 

garbage collector = 가정용 쓰레기를 가져가는 [회사 정부 등]고용자들,

a person employed to cart away[수레로 실러가다] household trash and garbage.

 

Trash [uncountable noun] = 종이처럼 포장되는 마른 물질들,

trash is things like paper and packaging; ‘dry’ materials.

 

Rubbish [uncountable noun] = 영국 영어, British English,

 

Waste [uncountable noun] = [폐기물 廢棄物]

 

Litter = [uncountable noun] 가정용 쓰레기 아닌 깡통 병 종이같은 길거리나 공공장소에 놓여있는 것,

This is not household waste. Litter is small things such as cans, bottles and paper that people leave lying on the streets and in other public places.

 

Plogger;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Scavenger = (먹을 것 등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동물], 죽은 동물을 먹는 동물[조류]

[그러나 아래 영어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안했고 '사람들이 버린 것'을 줍는 사람이라했다]

a bird or an animal that feeds on dead animals that it has not killed itself[스스로 죽지 않은 죽은 동물들]:

someone who collects things that people have thrown away or left somewhere,

---------------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쓰레기 줍는 사람을

밑바닥 인생으로보고 업신여기는 말을 했다.

 

내가 말하기를,

지구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고

그 사람들은 폐기물 중에 재생품들을 줏어서

쓰레기를 줄이는 고마운 사람들이고

쓰레기 매장지 county Landfill 은 점 점 멀리 가서 매장을 하기에,

쓰레기 값이 매년 올라간다고했다.

 

그 사람들이 재생품을 모으지 않으면

쓰레기 값은 급격히 올라간다.

 

그런 사람들이 재생품을 뫃아서

재활용품 수집장으로 가서 매장되지 않는 물건들이 엄청 많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은 환경보호자들이다.

망가져가는 지구를 저지하는 사람들이다.

 

친구는 쓰레기 줍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 자녀들에게 말하지 말라고한다.

나는 아니라고했다.

쓰레기 줍는 건 죄짓는것도 아니고

지구를 늦게 병들게하는 환경보호에 동참하는것이라

자랑스러운 일이라했다.

 

자본주의에 물들어버린 사람들은

하류층을 깔보면

자신은 상류층에 속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상류 망상증 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류층이아니라

상류 악인층 ‘상악층’에 속한다.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산다고 상류층니 아니다.

 

진정한 상류는

약자들을 생각하고

재산, 지식, 감정을 하층 사람들과 나누고

악한자들에 협조를 피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상류인은

재산을 사회에 조금이라도 환원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깔보고

인터넽에 악플을 올려서

자신이 위대해 지는게 아니다.

 

친구는 자신이 조울증 躁鬱症 [manic depressive disorder, manic depression, bipolar disorder] 이 있는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필요할때만 전화가 오고,

상담 할때 전화가 오면

내가 아는것이면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불리하면 말을 얼른 바꾼다.

 

그를 도와주는이유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이고

30년전에 내가 이혼하면서 어려운 입장에 있을때

나를 조금 도와주었다.

 

부끄러운건 정신병이 있는 거다.

 

무엇이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와 대화는 하지만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된다.

오늘은 지구의 날을 맞아서 해야 할 행동 이지요. 지구를 위해서 꼭 해야할 행동이지요. 무엇이 부끄러운 행동인지 생각 하게하는 좋은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웃는 주말 되세요. ♡♡♡♡♡

 
 
 

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 Dream of Un 2022. 4. 20. 13:52

불교와 성경 (오강남 교수)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Regina university of Canada 종교학 명예교수)

 

계간지 <불교평론>에서 이어가는 “불교로 읽는 고전” 시리즈의 하나로

‘성경-불교의 입장에서 읽은 성경 이야기’를 쓰라는 원고 부탁을 받았는데, 그것이 방금 나온 2021년 겨울호 248~265 쪽에 실렸네요.

1. 성경의 구성, 2.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3. 성경에 대한 태도, 4. 해석의 문제, 5. 불교와의 관계에서 성경 읽기로 구성되었습니다.

 

3, 4, 5번을 여기 올려봅니다. 

 

(3번과 4번은 그리스도교인들은 아시는 분은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혹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괄호 안은 각주들인데 페북에는 제대로 올려지지가 않네요.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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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에 대한 태도

 

불교의 경전은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시(啓示)’의 책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1) 문자주의적 태도

 

이른바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근본주의적(Fundamental) 혹은 복음주의(Evangelical) 그리스도인들은 대체적으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경 무오설(無誤說)’을 주장한다. 심지어 성경은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축자영감설(縮字靈感說)’을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우주를 엿새 만에 창조했다든가, 여호수아가 해가 지기 전 쫒기는 적을 완전히 무찌르기 위해 하나님께 태양이 멈추도록 해 달라고 하니 태양이 멈췄다든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3일 만에 살아 나왔다고 하는 등 구약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걷고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하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보였다는 복음서의 이야기 등등이 모두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이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이 모두 문자 그대로 역사적·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문자주의(literalism)’라고 하는데, 이런 문자주의를 받드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야 참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우주를 엿새 만에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히브리어 성경 처음에 나오는 ‘모세 오경’도 모세가 직접 쓴 것이고,

복음서들도 그 이름대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와 요한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바울의 동역자 마가와 누가가 쓴 것이고,

바울의 편지서도 14권 모두 바울이 직접 쓰고, 일반 편지서도 그 이름을 가진 저자들이 손수 쓴 것이라 믿는다.

 

2) 문자주의의 거부,

 

한편 18세기 계몽시대 이후 발달된 이른바 ‘역사 비평학적 접근’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현대 성서학자들 대부분은 창조나 출애굽이나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 등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이 어느 한 때 정말로 있었던 역사적·과학적 사실이라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또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지 않더라도 그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여전히 성경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진보적 학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예를 들어 ‘모세 오경’도 모세가 직접 쓴 것일 수 없다고 본다. 모세 오경 중 『신명기』 끝부분에 나오는 모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어떻게 모세 자신이 쓸 수 있었겠는가 하는 식이다. 모세 오경은 내용이나 문체나 용어 등에서 각각 특유한 몇 가지 종류의 문헌이 나중에 편집되어 이루진 것이지 모세라든가 어느 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는 두 가지로서, 『창세기』 1장1절에서 2장4절까지 나오는 이야기와 2장4절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가 각각 P문서와 J문서라고 하는 다른 종류의 문서였는데, 후대 󰡔창세기』 편집자가 이 두 문서를 적절히 짜깁기해서 붙여 놓은 것이라 보는 것이다.

 

복음서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복음서들이 처음에는 저자의 이름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후대에 가서 지금과 같이 저자들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썼다면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기록하면 될 것인데 왜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 마가가 쓴 『마가복음』에 그 정도로 의존해서 거기서 그렇게 많은 구절을 인용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식이다.

 

또 『요한복음』을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썼다면 그가 『요한복음』을 쓸 당시 그의 나이는 100살에 가까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등의 의문을 제기한다. 그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나와 있는 말씀도 사실 모두 다 예수님 ‘자신의 말씀(verba ipsissima)’이라기보다 거의 다가 후대의 사상을 예수님의 입을 통해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중 어느 것이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인가 하는 것을 연구한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낸 책으로 Robert W. Funk, The Five Gospels: What Did Jesus Really Say?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Words of Jesus,(HarperOne, 1996) 참조.)

 

​심지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니고데모, 나사로 같은 인물이나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이나 신이 인간이 되어 강림하였다는 이야기 등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저자들의 상상에 의한 결과물이라 보기도 한다.

 

(존 쉘비 스퐁 지음, 변영권 옮김,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한국기독교연구소, 2018) 참조.)

 

바울 서신 등도 바울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있지만, 이른바 ‘목회서신’이라는 것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사상이나 문체 면에서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 바울 자신이 쓴 것이라 보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직접 쓴 것이 7편, 논쟁거리가 된 것이 3편, 바울이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것이 3편, 따라서 바울이라고 하지만 “급진적 바울”, “보수적인 바울”, 반동적인 바울“, 세 명의 바울이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마커스 J. 보그, 존 도미니크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첫 번째 바울의 복음󰡕(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참조.)

 

4, 해석의 문제,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하는 신학자로는 20세기 최대 신학자 중 하나인  독일의 성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Rudolf Bultmann, 1884~1976)을 들 수 있다.  그는 『신약 성서와 신화』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등의 저작을 통해 이른바 ‘비신화화(demythologizing)’를 주장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신화적 서술이기 때문에 신화를 이해할 때 그것이 마치 우주의 어떠함을 말해주는 무엇인 것처럼 ‘우주론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실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실존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독일 신학자로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비신화화’라고 하면 신화를 없애는 작업이라 오해하기 쉽고 성경에서 신화를 없애면 남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비신화화라는 말 대신 ‘탈문자화(deliteralization)’ 혹은 ‘신화의 껍질을 깨기(breaking myth)라는 말을 제안했다.  틸리히는 종교적 서술은 근본적으로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징이 지적하고 있는 상징 너머의 뜻을 알아내야 한다고 하고, 신학의 임무는 성경의 상징을 그 시대의 정황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재신화화 (remythologizing)’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역사비평적 접근이라든가 탈문자화라든가 신화적인 표현의 껍질깨기 방법 등이 불교의 텍스트를 읽는데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불교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5. 불교와의 관계에서 성경 읽기,

 

성경을 읽으면서 불교를 연상시키는 진술이나 사건들 몇 가지를 예거해 본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주제들일 수 있기 바란다. 

 

1) 성경 첫째 권인 <창세기>에 보면 신이 6일 동안 세상과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땅을 정복하여라....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고 하였다. 서양 역사는 대체적으로 이 ‘정복’과 ‘다스리라’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땅을 마구잡이로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착취하고 살육하는 일을 계속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 말은 자연을 함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잘 ‘보호하고 보살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각주: Jeremy Rifkin, The Emerging Order: God in the Age of Scarcity, (Ballantine Books, 1979)와 그의 최근 책,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육식의 종말>(시공사, 2002)와 동저자, 안진환 옮김, <글로벌 그린 뉴딜> (민음사, 2020) 참조.)

 

​이런 새로운 이해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불살생(不殺生)의 가르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2) 창조 이야기와 연관해서 야훼 신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동산을 조성하고 먹기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자라게 하고,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지만 그 중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이른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며 먹으면 죽으리라고 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과일을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아담도 먹었다.  둘은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  그러자 야훼 신은 이들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이 이야기를 순종·불순종의 입장에서 보고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므로 쫓겨난 것이니 우리도 불순종하면 안 된다는 식의 윤리적, 율법적 해석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의식의 발달사를 다룬 켄 윌버(Ken Wilber)는 이 이야기가 인간이 선과 악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도 모르던 동물적인 주객 미분의 의식(pre-subject/object consciousness) 단계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줄 아는 주객 분리의 의식(subject/object consciousness)으로 넘어온 단계를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윌버는 물론 의식 발달의 완성은 이런 이분법적 분별 의식을 초월하는 초주객 의식(trans-subject/object consciousness) 단계라 한다.

 

(각주: Ken Wilber, Up From Eden: A Transpersonal View of Human Evolution (Quest Books; Quest ed. edition, 2007) 참조.)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간이 분별식(分別識)을 가지게 된 계기와 이를 넘어서서 분별식을 초극하는 단계로의 완성을 이야기한 것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3) 성경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외친 기별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4:17)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회개’라고 번역한 것은 본래의 그리스 말로 ‘메타노이아(metanoia)’이다. 메타(넘어서다)와 노이아(의식)의 합성어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뜻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메타노이아 체험과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의 체험은 다 같이 ‘새로운 의식’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않을까?

 

4)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했다.  여기서 ‘내가’라는 것은 역사적 인간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기보다는 ‘우주적 나(cosmic I)’,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우주적 생명력’, ‘본원적인 인간성,’ ‘나의 참 나’를 말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 여겨진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친 말이 연상된다.  여기서 ‘나(我)’란 누구인가?  역사적 고타마 싯다르타를 의미할까?  내 속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나, 참 나인 불성(佛性)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선언과 부처님의 외침에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 아니겠는가?

 

5) <마태복음>에 보면 최후 심판 장면이 나온다.  임금님이 의인들을 향해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25:35~36)고 한다.  의인들이 자기들이 언제 그런 일을 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임금이 다시 입을 열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대답한다.  이런 것은 물론 윤리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고 결국은 하나라는 화엄 철학의 상즉(相卽) 상입(相入)의 원리나 이사무애(理事無礙), 사사무애(事事無碍) 사상에 의하면 보잘것없는 사람과 임금이 결국 하나이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임금에게 한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6) 다시 화엄 사상을 원용하면, 예수님이 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19:19)는 말씀도 쉽게 이해된다.  이웃과 내가 따로 떨어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고, 결국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와 이웃만 하나가 아니라 나와 자연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8:12)고 했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이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면 현재 자연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태학적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다를 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학이 가르치는 삼경(三敬) 사상, 곧 경천(敬天), 경인(敬人)과 함께 경물(敬物)을 이야기하는데, 경물이야말로 환경 파괴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깊이 생각할 가르침이라 여겨진다.)

 

7) 일즉다(一卽多) 다중일(多卽一), 일중다(一中多) 다중일(多中一), 모든 것이 결국 하나 안에 있고 하나가 모든 것 안에 있어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라는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은 <요한복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7:21)라고 하였다. 

사실 󰡔요한복음󰡕의 중심 사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인류의 죄 값을 탕감하기 위해 피흘리셨으니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이른바 대속론(代贖論)이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이 ‘하나’라는 ‘신비적 합일’ 사상이다. 

그러기에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1931-2021) 신부는 <요한복음> 해설서의 제목을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Tales of a Jewish Mystic)”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번역에서는 제목을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이라고 했지만, 영어 원본에는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HarperCollins Publishes Ltd, 2013)으로 되어 있다.  신비주의란 절대자와의 합일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더욱이 류영모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외우는 위의 성경절에서 하느님이 세상에 보낸 독생자는 예수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심어준 하느님의 씨앗, 신성(神性)이라고 하였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불성(佛性)이 아닌가?

 

8. 위에서 잠깐 언급한 <도마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달음(gnōsis)을 통해 내 속에 빛으로 있는 신성(神性), 나의 참나를 발견함으로써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기본 가르침으로 하고 있는 복음서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도마복음> 풀이 책 서문 마지막 문장으로 “한 가지 좀 특별한 소망을 덧붙인다면 깨달음을 강조하는 이 책이 한국에서 그리스도교인들과 불교인들을 이어주는 가교(架橋)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졸저, <또 다른 예수> (예담, 2009), 29쪽. 기독교인들을 비롯해 비불자들을 위한 불교 안내서로, 오강남,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현암사, 2006) 참조할 수 있다.)

 

나가면서

 

성경을 필자의 어머니처럼 일 년에도 몇 번씩 읽는 이도 있고, 필자의 사촌 형처럼 국한문 성경을 완전히 필사하고 이제 다시 한글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이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별로 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일반 불교 신도들이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같은 것은 외우지만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 경을 직접 읽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자기들이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성경이나 불경에서 나온 진리 그대로라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해석’과 ‘교리’를 성직자들이 전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그런 전통에 무비판적으로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텍스트를 직접 읽고 그 문자 너머 심층에 있는 속내를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향으로 간취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그 깊이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사 History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20. 13:43

간신론 (간신을 구별하고 제압하는 방법) 
김영수편역, 아이필드,

화일첨부

간신론 4.docx
0.0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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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

▣ 주요 목차

일러두기
역자서문 나만 잘 되면 그만?

서론; 간신을 논하다
왕안석과 당 현종의 비참한 말로
왜 간신을 알아야 하는가

제1장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
젖 주는 자가 내 어미다.
나라와 조직을 망치는 공공의 적

제2장 간신 구별의 노력은 왜 실패했나
현인이 남긴 사람을 살피는 기술
아침에는 진짜, 저녁에는 가짜

제3장 간신을 판단하는 좌표
애국지사와 매국노의 갈림길
사욕이냐 공익이냐

제4장 간신을 잉태하는 사회
간신을 유혹하는 시대
당 태종과 조광윤의 현명한 대처

제5장 간신의 정체성
죽어도 살아남는 처세의 달인
입에는 꿀, 뱃속에는 칼

제6장 간신의 도道
은근하게 떠받드는 아첨술
존경과 두려움을 얻는 권위술
경쟁자를 제거하는 이간술

제7장 간신은 이렇게 위장한다
가식과 허상의 짙은 안개
놀라운 위장술의 대가들

제8장 간신을 절대 얕보지 마라
영웅호걸을 닮은 간신
그들은 무엇이 특별한가

제9장 간신을 제압하라
사람아! 어리석은 사람아!
간신과 싸워 이기는 기술

제10장 내 안의 간과 충
제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10가지 기준

제11장 간의 이해와 오해
사마천의 비극이 주는 교훈
태산은 보잘것없는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12장 간신을 근절하는 법
간신이 자라는 토양 갈아엎기
사람을 뽑을 때 이것을 경계하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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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우당적비’, 1104년 ... 309명의 이름만 줄줄이 새겨져 있는 희한한 비석. 이 명단에는 사마광ㆍ소식(소동파)ㆍ황정견 같은 당대의 간신배의 명단이다.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황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새겨 세우도록 한 비석이다. 
이듬해 명령이 취소되어 다 없애고 지금 단 두 개만 남은 ... 이 비석은 훗날 사가들에 의해 간신 중의 간신으로 평가된 당시의 재상 채경이 주동이 되어 세운 것이기도 하다. 
간신 채경은 또 다른 간신 여혜경 등과 더불어 신법 개혁파의 거두 왕안석을 도와 개혁을 주도했다. 사마광이나 소동파 등은 왕안석의 신법 개혁을 반대했던 보수세력의 대표들이었다. 
간신에게 농락당한 왕안석은 간신인가 아닌가? 시대의 흐름을 명철하게 읽지 못하고 개혁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사마광은 충신인가 간신인가?

-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백성들 책임이다!’
[ 당시 힘없는 백성들이 무슨 책임? ]

❍ 서론 

1. 장적과 평소 교분이 없던 한유가 이렇게 장적을 힘껏 밀어주었으니 장적은 한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세 가지 결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첫째, 당신은 도박을 좋아한다. 
둘째, 당신은 황당무계한 소설을 숭상한다. 셋째, 당신은 말로써 사람을 굴복시키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차분히 학문에 힘써 자기 설을 세우려 하지 않고, 후세에 이름만 남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 왕안석이 궁지에 몰려 재상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 그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 이라며 아부하던 여혜경 무리는 왕안석을 공격했다.

2.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 진나라 때의 유의는 “벼슬살이에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인물을 알기 어렵고, 애증을 막기 어려우며, 정과 위선을 분별하기 어렵다.”고 진서 유의전에 털어놓았다.

3. ‘간’과 수단ㆍ책략을 구별해야 하며, ‘간’과 결점ㆍ실수를 구별해야 하고, 그것을 총명ㆍ재능과 구별해야하며, 병가의 권모술수와도 구별해야 한다. 선량한 사람을 간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 역사의 경종은 우리를 위해 울린다.

❍ 제1장 역사의 기소 -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

1. 굴욕스러운 민족사 - 진회는 악비에게 이른바 ‘막수유’, 즉 ‘혹 있을 지도 모르는’(날조한) 모반죄를 씌워 처형했다. 악비의 나이 서른 아홉. 목창아ㆍ기선은 임칙서의 아편 금지조치를 백방으로 훼방놓았다. 서양 상인들이 임칙서가 재기할 것을 두려워해서 임칙서의 주방장을 뇌물로 매수

2. 암울한 국가 정치사 - 《순자》〈신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명령을 따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것을 순이라 한다. 명령은 따르는데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첨이다. 명령을 거스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명 충이라 한다. 명령을 거스르고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찬이다. 군주의 명예나 치욕, 그리고 나라의 흥망을 돌보지 않고 구차하게 영합해서 녹봉만 받으며 사교에만 힘쓰는 것을 국적이라 한다.』

- 《송사》에 나오는 일화를 한번 보자. 송나라 개국공신으로 재상이 된 조보는 찢어진 종이를 일일이 주워서 집에 돌아와 본래대로 깨끗하게 붙인 다음 다시 태조에게 올렸다. “형벌은 잘못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고, 상은 공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은 고금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형벌과 상은 천하의 것이지, 폐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어찌 좋고 싫음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 북위의 이름난 대신 고필도 이와 같았다. “사냥은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죄가 있다 해도 작은 죄이지만 적을 막는 일을 그르치면 큰 죄지. 지금 외부의 적이 국경을 엿보며 항상 노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만약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어떤 말을 군대에 내보내야 하겠는가? 국가에 이득이 된다면 죽음도 피하지 않겠다.”

3. 화신이 재상으로 있었던 약 20년 동안 긁어모은 재산은 무려 8억 냥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액수는 청나라 조정의 10년 수입액보다 많은 액수였다. 그 때문에 화신이 실각한 뒤 ‘화신이 쓰러지자 가경이 배불리 먹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 ‘팔관육험법’을 제기한다. ‘팔관법’이란 다음과 같다. 『순조로울 때 그가 어떤 사람을 존중하는가를 살핀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을 추천해 기용하는지를 살핀다. 부유할 때 어떤 사람을 접촉하는지, 즉 어진 사람을 기르는지 간사한 자를 기르는지를 살핀다.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무엇을 하는지 살핀다. 한가할 때 그가 무엇을 즐겨 하는지를 살핀다. 친해진 다음 그가 말하는 중에 드러나는 뜻에 주의한다. 실의에 빠졌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 그의 지조를 본다. 가난할 때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가난 때문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지를 살핀다.』 - ‘육험법’이란 다음과 같다.『그를 기쁘게 하여 정상적인 상태를 잃고 천박하게 흐르지 않는지를 살핀다. 즐겁게 해서 그의 취향이나 나쁜 버릇 따위를 살핀다. 화를 돋워 통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핀다. 두렵게 만들어 그것을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슬프게 만들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힘들게 만들어 그의 의지를 시험한다.』

- 백거이는 “옥은 사흘만 불에 넣어보면 충분하지만, 인재는 7년은 족히 기다려야 가릴 수 있다.”고 했다.“지금부터 시간은 내 것이고, 지난날은 관가의 것이었다.”라고 노래했다.

❍ 제4장 간의 근원 탐색 - 과학적 분석

- “인생은 짧다. 병권을 내놓고 많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준 후 노래와 춤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 우리 군신간의 의심을 없애고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이 한결 좋지 않겠는가?” 이튿날 측근 부하들은 모두 사직했다. 이른바 ‘술잔을 돌리며 병권을 풀어놓았다’는 ‘배주석병권’의 역사적 사건은 이렇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 재상 이선장은 개국공신 중에서도 첫손 꼽히는 인물이었으며 주원장의 딸과 혼인까지 했다. 죽을죄를 지어도 죽음은 면해준다는 ‘고명철권’까지 내려주었다. 77세의 노인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다. 그의 집안 식구 70여 명도 모조리 처형당하는 참으로 기가 막힌 꼴을 당했다. - 유기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인물로서 주원장은 이런 그를 ‘나의 자방’이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유기는 홍무 초에 나이를 핑계로 낙향했다. 결국 주원장은 그의 정적을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 무장은 거의 전부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주원장의 숙청은 먼저 문신을 죽이고 그 다음에 무장을 살육하는 수순을 거쳤다.

- 송나라 고종이 금나라 군대에 승승장구하던 악비의 군대를 철수시킨다. 그 까닭은 고종이 타고난 매국노였기 때문이 아니라 악비가 정말로 금의 군대를 꺾고 포로로 잡혀간 휘종과 흠종을 구해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황제자리가 위험했던 것이다.

-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은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러자 신하와 백성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따라 입는 바람에 국내의 다른 색 옷감은 도무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초나라 장왕은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했다. 그러자 아녀자들이 앞을 다투어 가는 허리를 만들려고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 “신은 이 작은 일이 새를 잡는 일보다는 더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끼자루로 신하의 이를 때려 앞니 두 개를 뽑아버렸다. 그 신하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이를 주워 자신의 품속에 간직했다. 화가 난 조광윤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이는 잘도 챙기는 구나. 그래, 내게 뭔가를 충고할 생각인가?” “폐하께 충고할 권리가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사관이 오늘의 일을 기록할 테지요.”

- 제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했다. 송나라 왕 언은 사람을 보내 제나라 군대가 어디쯤 왔는지 알아보게 했다. “제나라 군대가 이미 바짝 다가와 있어 나라사람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송왕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그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렇게 잇달아 세 사람을 처형했다. 마지막으로 또 한 사람이 정탐을 위해 파견되었다. “제나라 군대는 애당초 있지도 않았습니다. 천하는 태평합니다. 앞사람들의 보고는 모두 헛소리였습니다.” 송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많은 재물을 상으로 주었다. 제나라 군대가 수도로 접근할 무렵 이자는 재물을 챙겨 다른 나라로 달아나 잘 살았다.

- 이와 같은 경우는 또 있다. 《사기》의 기록을 한번 보자. 조고가 난을 일으켜 진 2세를 죽이려 할 때 진 2세 곁에는 어린 태감 하나가 남아 있었다. 2세는 태감에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진작에 내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태감은 몸을 떨며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지금 제 목은 붙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제5장 간의 성격 분석

(1) 부귀 영화를 위해 국가를 기왓장처럼 버리며, 백성을 들풀만도 못하게 여긴다. (2) 이권싸움에서는 부모ㆍ자식 간이라도 양보하지 않는다. 야심이 발동하면 형제 사이라도 서로 죽인다. (3)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배척하고 모함하여 반드시 목적을 이룬 다음에라야 그만둔다.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통쾌해 한다. - 하약돈은 북주의 용감한 장수로서 ‘영웅적이고 높은 기개로 이름을 떨쳤다.’ 우문호는 하약돈이 자신을 뛰어넘을까 두려워 그를 ‘꺼려하고 해침으로써’ 마흔다섯의 젊은 나이에 한을 품은 채 구천을 떠돌게 만들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구밀복검’의 대명사 이임보의 꿍꿍이속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 물에 수달이 있으면 연못의 물고기가 고달파지고, 나라에 강력한 방해세력이 있으면 백성이 줄어든다. 숲이 우거진 곳에는 풀이 크게 자라지 못하고, 큰 덩어리 사이에서는 좋은 묘목이 자랄 수 없다.

(4)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교태를 부려 귀여움을 차지하며, 군주를 포악하게 이끌고 사악한 방법으로 사람을 해친다. -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남을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상대방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내 말의 조리가 내 듯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언변으로 내 뜻을 다 보일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설득의 어려움은 바로 설복하려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나의 말을 그의 마음에 맞출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 한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힘써야 할 점은 상대가 자랑스러워하는 바를 더욱 칭찬해주고,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부분을 덮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마음속에 급히 하고자 하는 사적인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모두에게도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꼭 하도록 강조해야 한다. 한편 그가 마음속으로 비천하다고 느끼지만 하지않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있을 때, 유세객은 그에게 그 일을 좋은 일이라 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만일 하지 않는다면 유감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 그가 마음속에 고상한 일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이룰 수 없는 일인 경우에, 유세객은 그에 대한 과실을 거론하고 그 일의 해악을 설명하여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한다.』

- 《순자》〈신도〉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명령에 복종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순이라 하고, 명령에 복종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을 아첨이라 하며, 군주의 이익을 위해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충절이라 하고, 명령을 거역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을 찬탈이라 한다.

(5)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양심을 팔아버리며, 강을 건너고 나면 다리를 부수는 등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6) 신의와 약속을 저버리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며, 맹세해 놓고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 풍몽룡의 《유세명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범거경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약속날짜를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중양절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고는 약속이 생각났던 것이다. 사람이 하루 만에 천리를 갈 수는 없지만 귀신은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했지! 거경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귀신이 되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장려와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친구의 관 앞에서 장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 공을 탐내고 잘못은 숨기며 죄와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세상을 속여 이름을 훔치며 공로는 자기 것으로 만든다. - 명나라 가정 29년, 정여기가 병부상서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황제는 장수들에게 급히 나가 싸우라고 명령했다. 정여기는 수보 엄숭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숭은 패전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겁이나 “먼 변방에서 싸우면 설사 패하더라도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지만 지금은 황상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상황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실패하면 누가 책임을 지겠소?”라며 정여기에게 출전하지 말라고 했다.

- 유법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는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동관은 막무가내로 윽박질렀다. 유법은 하는 수 없이 10만 병력으로 소관을 나와 싸웠으나 패배하고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다. 동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명명에 영향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패배했다는 소식을 감추고는 참으로 뻔뻔하게도 승리했노라고 떠벌려, 백관들이 입조해 너 나 할 것 없이 축하를 드리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저 남이 승리하기를 기다렸다가 공을 가로채고, 패배하면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거짓으로 보고를 올리는 등 오로지 공만 탐냈다. - 휘종은 동관을 하동ㆍ하북로선무사로 삼아 요를 치게 했다. 신종과 왕안석이 변법을 통해 쌓아놓았던 군수를 거의 전부 잃어버리는 엄청난 피해였다. 이 상황에서 동관은 패전의 책임을 면하려고 금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이리를 내쫓으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었다.

- 왕진은 영종에게 선조들을 본받아 몸소 정벌에 나설 것을 권했다. 50만 대군이 소집되었다. 당초 왕진은 영종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가 웃으면서 적을 격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 난 다음부터는 전쟁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진은 앞뒤 재지도 않고 철군을 결정했다. 황제를 자기 고향집으로 모셔 오늘날 자신의 부귀영화를 이웃에 뽐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철수 명령에 당황해 하던 군사들은 철수 노선을 바꾼다고 하자 더욱 놀라 두려움에 휩싸였다. 약삭빠른 왕진은 이대로 고향집에 갔다간 자신의 명성이 도리어 깎이겠다고 판단하여 다시 원래대로 길을 바꾸었다. 이틀 뒤 명나라 주력군은 야선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영종이 포로로 사로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8) 자신과 뜻이 다르면 배척하고, 어질고 뛰어난 인물을 조정에서 내쫓는다. 사사로이 자기 측근을 기용하고 범과 이리를 아무데나 끌어들인다. (9) 흉악함은 이리나 범도 따르지 못하며, 잔인하고 음흉함은 독사나 전갈도 미치지 못한다. (10) 두 얼굴에 세 개의 칼을 품고 다니며, 음모로 귀여움을 얻으려 한다. 겉으로는 떠받들지만 돌아서면 거스르고 등 뒤에서 화살을 쏘아 사람을 해친다.

❍ 제6장 간에도 도가 있다 - 동전의 뒷면

1. 간신의 행동원칙 
(1) 떠받들기 - 관중은 죽음을 앞두고 환공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수조라는 자가 넘치는 홍수와 같다면 저는 그 홍수를 막는 둑입니다. 제가 죽고 나면 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므로 홍수가 사방으로 넘쳐 재난이 초래될 것이니 그 자를 멀리하십시오.”
(2) 비위 맞추기 
(3) 충성 표시하기 
(4) 간사한 아부하기

- ‘오귀’라고 부르는 간악한 권력자들 가운데 하나인 정위는 구준의 수하에 있을 때는 구준을 지극히 공경하며 모셨다. 구준이 국물을 자기 수염에 흘렸다. 곁에 있던 정위가 후닥닥 일어나 구준의 수염을 닦아주었다. 구준은 싱긋이 웃으며 “정사에 참여하는 국가 대신이 어떻게 장관의 수염을 닦을 수 있소?”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수염을 쓸고 말 엉덩이를 두드린다’는, 즉 ‘알랑거린다’는 뜻의 ‘유수박마’라는 성어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 당 태종 때의 악사 고최외란 자는 귀신이나 백치 분장을 잘했다고 한다. “제가 방금 전 물속에서 굴원을 만났사온데 그가 제게 말하길 ‘나야 초나라 회왕이 하도 무도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졌지만 너는 성군을 만났는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하더이다.” - 남조의 송문제가 낚시를 하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왕경이란 자가 이렇게 말했다. “고기를 낚는 사람이 너무 깨끗해서 미끼를 탐내는 물고기란 놈이 감히 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간신의 수단

(1) 거짓 은혜 베풀기 (2) 권세 과시하기 (3) 잔인함 과시하기

3. 간신의 술수 
(1) 이간질하기. (2) 음모 꾸미기. (3) 중상모략하기. (4) 약점 들추기. (5) 부러 일 만들기

❍ 제7장 가식과 허상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다 - 역사의 투시력

1. 간신과 위장 
(1) 환심 사기, (2) 인심 얻기, (3) 나쁜 마음 포장하기,

2. 간신의 위장술 
(1) 충성스럽고 성실한 척하기 (2) 점잖고 너그러운 척하기,
(3) 멍청하고 어리석은 척하기, (4) 때로는 똑똑하고 많이 아는 척하기,

❍ 제8장 간신과 아첨배를 절대 얕보지 말라 - 역사의 겸허함

1. 반복되는 비극 - 간신 소인이 짧은 시간에 신임을 얻고 오랫동안 중용되는 까닭이나, 그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한 피해가 그처럼 오래고 엄청난 까닭은 그들의 비열한 간심이나 교활한 간술 외에 객관적 현실에 영합하는 일정한 소질이 있기 때문이며, 또 일반인으로서는 따르지 못할 ‘총명한 재주와 지능’이 있기 때문이다.

2. 간신의 탁월한 재능 
(1)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주 밝음 (2) 생각이 민첩하고 눈치가 빠름
(3) 마음 씀씀이가 여간 아님 - 석현은 일부러 밤늦게 돌아와서 궁문 앞에서 큰 소리로 황제의 명령이니 문을 열라고 외쳤다. 문이 열리자 석현은 기세당당하게 거들먹거리면서 궁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일이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석현이 황제의 명령을 빙자해 성문을 열게 했다는 고발장이 원제 앞으로 날아들었다.

(4) 권모술수에 정통함 - 위나라가 조 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여 공격했을 때 한 나라의 신석해는 왕에게 두 나라 중 하나와 연합하여 득을 취하라고 건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왕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 건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조탁과 한황에게 “당신들은 나라의 대들보이자 신하로서 나라의 큰 일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바른말을 해야 할 것 아니오?”라며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신석해는 한왕이 어느 쪽 의견으로 기우는지를 은밀히 탐색하고는 그에 맞추어 한왕에게 강력히 건의했다. 그러자 한왕은 신석해를 칭찬했다.

- 소어는 “내 의견을 말했다가 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차 새로 들어설 왕후가 나를 원망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귀고리를 몇 쌍 사십시오. 물론 그 중에는 가장 예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대왕께 갖다주십시오. 다음 날 가장 예쁜 귀고리를 달고 나오는 사람을 왕후로 추천하시면 됩니다.”라고 꾀를 일러주었다. - “단 네 푼으로도 천 근을 압도할 수 있는” 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권모술수와 모략을 열심히 배우고 또 능숙하게 운용할 줄 안다. 그들은 꾸미고 생각한 다음 움직이며, 꾀로 얻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5) 임기응변에 능함 - 당 태종이 어떤 나무를 보고는 “좋은 나무로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우문사급이 잽싸게 그 나무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태종은 근엄한 표정으로 “위징이 늘 아첨꾼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그 아첨군이 누군가 했더니 오늘에서야 알겠구나!”라며 우문사급을 나무랐다. “조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얼굴 맞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야 폐하께서 아무런 신경을 안 쓰셔도 되지요. 그러나 지금같이 산책을 하러 나왔을 때 곁에서 수행하는 제가 폐하의 말슴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면, 폐하께서 아무리 귀하신 몸이라 해도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 진회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한 번은 경성시장에 갑자기 현금이 모자라는 사태가 일어났다. 진회는 이발사를 불러 자기 머리를 다듬게 한 다음 두 냥이면 될 이발 값으로 5천 전을 주며, 이 돈은 며칠이 지나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니 빨리 써서 없애라고 일러주었다. 그 결과 며칠사이에 경성시장에는 현금이 넉넉하게 돌게 되었다.

(6)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주선함 
(7) 기꺼이 도박함 - “담이 큰 사람은 부딪쳐 죽고, 담이 작은 자는 굶어 죽는다.” 
(8) 감추기를 잘함 
(9) 말을 교묘하게 잘함

❍ 제9장 인성의 약점을 이겨내라 - 역사의 교훈

1. 지난날의 허점 - 두목이 〈아방궁부〉에서 “여섯 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여섯 나라 자신들이지 진나라가 아니다. 진나라를 죽인 것은 진나라 자신이지 천하가 아니다.” “여섯 나라가 각각 자기 백성을 사랑했더라면 진나라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다. 진나라가 여섯 나라의 백성을 사랑했더라면 3세가 아니라 1만 세까지 임금 노릇을 한다 해도 누가 그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는가?

(1) 가볍게 간신을 믿어버린다. 
(2)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간신을 따른다. 
(3) 겁이 많아 간신을 두려워한다. 
(4) 어리석음 때문에 간신을 함부로 날뛰게 한다. (5) 자비심 때문에 간신을 키운다.

- 악한 자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어 큰 근심을 만든 교훈으로는 조순이 도안고에게 자비를 베푼 경우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을 것이다.

(6) 자신을 이기지 못해 간신을 받아들인다. - 《자치통감》에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군주가 어떤 말을 해놓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경ㆍ대부들로서는 감히 그 말을 벗어나지 못한다. 경ㆍ대부가 어떤 말을 해놓고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면 서민들은 감히 그 말을 반박하지 못한다. 군주와 신하들이 스스로를 잘났다고 하면 나머지 아랫사람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잘났다고 맞장구쳐야 한다. 그래야만 순종한다고 하여 복이 돌아오지, 거슬렸다간 화를 입기 십상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편안하게 잘 사는 길이다.

2. 간신 퇴치법 
(1) 간신을 막겠다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2) 간신을 물리칠 수 있는 덕을 키운다.
(3) 간신을 살피는 지혜를 갖춘다. 
(4) 간신과 싸우는 용기를 키운다. 
(5) 간신을 제압하는 기술을 익힌다.

❍ 제10장 간인을 가려 자신의 잘못을 살피다 - 역사의 반성

1. 자기반성 
(1) 스스로를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2)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
(3)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 춘추시대 진 문공의 대법관이었던 이리라는 인물. 《사기》〈순리열전〉을 따라가보자. 한 번은 이리가 증거도 불충분한 말만 믿고 어떤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이리는 즉시 자신을 구속하게 한 다음 스스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진 문공은 깜짝 놀라며 “관직에는 귀천이 있고 죄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는 법, 아랫사람의 잘못이지 그대의 잘못이 아니잖은가!”라며 이리를 용서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는 침통한 목소리로 자신을 꾸짖었다. “신은 한 부서의 우두머리이지만 그 자리를 부하들에게 내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신은 녹봉을 가장 많이 받지만 한 번도 그들에게 나누어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잘못으로 사람을 죽여놓고 그 죄를 부하에게 미룬다면 말이나 되겠습니까?” 이리는 사면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군자와 소인 
(1) 군자는 공익을 앞세우고, 소인은 사익을 앞세운다.
(2) 군자는 단결을 말하지만, 소인은 결탁을 말한다. (3)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보면 함께하지만, 소인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4)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떠벌린다. - 방신유는 생사를 돌보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강력한 금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그 때문에 금나라의 분노를 사서 강화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방신유는 관직을 박탈당한 채 유배되었다. 그뒤 왕남을 다시 금나라로 보냈고, 그는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왔다. “강화가 성공한 것은 모두 방신유가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닦아놓은 덕분이다. 나는 그저 그 사람 덕분에 일을 성사시켰을 뿐이다.” 왕남의 행위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조정에서는 왕남이 남의 잘하는 일을 자기 것보다 더 많이 드러냈다고 했다.”《송사》〈왕남전〉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5) 군자는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달려가 구하지만, 소인은 우물에 돌을 던진다. (6) 군자는 큰마음으로 살며, 소인은 밴댕이 속으로 산다. 
(7) 군자는 정의를 지키며, 소인은 사사로운 정에 매여 부정을 저지른다. 
(8) 군자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며, 소인은 사사로운 선심을 베풀어 인심을 기만한다. 
(9) 군자는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며, 소인은 보신을 위해 약삭빠르게 처신한다. - 한안 원년, 조정에서는 민간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여덟 명을 봅아 순행하게 했다. 장강은 수레바퀴를 땅속에 파묻고는 자신은 순행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널리 알렸다. “범과 이리가 길에 넘쳐흐르는데 무슨 여우와 이리를 찾아다닌단 말인가?”

-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취해 잇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소.” 굴원의 대답이었다. 어부는 물 흐르듯 따라가며 살지 그러냐고 했다. 굴원은 상강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될지 언정 어찌 멀쩡하게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10) 군자는 떳떳하게 일을 꾀하지만, 소인은 등 뒤에서 음흉하게 일을 꾸민다. - 어사대부 정유충만이 “물러 나와서는 군주의 잘하는 일을 칭찬하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대답하여 무후의 칭찬을 받았다.

❍ 제11장 애매함은 신중히 살펴야 한다 - 역사의 신중함

1. 간의 구별 
(1) 간과 방법ㆍ책략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2) 간과 결점ㆍ착오를 구별해야만 한다.

- 위징은 이건성에게 ‘일찌감치 손을 써서’ 위협을 제거하라고 은근히 권했다. 뒷날 이세민이 ‘현무문 정변’을 성공으로 이끈 다음, 위징에게 “어째서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는가?”라고 물었다. 위징은 단호한 어조로 “태자께서 일찌감치 내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화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이세민은 ‘각자의 주관적’ 사고에 잘못이 있는 것이지. 도덕적 품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간파하고 그를 용서해서 간의대부로 삼았다.

(3) 간과 총명ㆍ재능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 대종은 그를 달래며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할 줄 모르고서야 어떻게 집안 어른 노릇을 할 수 있겠소? 젊은애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어쩌겠단 말이오?” 라고 말했다.

- 적황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 듣기에 군주가 어질고 후덕하면 대신들이 솔직해진다고 했습니다. 방금 전 임좌는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했고, 저는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어진 군주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문후는 매우 기뻐 적황으로 하여금 임좌를 다시 불러들이게 해서 몸소 그를 맞이해 상객으로 우대했다.

- 우맹은 “저는 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옥으로 관을 삼고, 각국 대표를 초대해 조문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또 사당을 지어 만호 정도의 큰 현을 골라 매년 거르지 않고 제사 지내게 하여, 대왕께서 사람은 경시하고 말은 중시한다는 사실을 천하가 알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왕은 우맹의 말뜻을 알아채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4) 간과 병가의 권모술수는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 연나라 소왕은 5년 동안 악의의 지모와 선전으로 보잘것 없었던 연나라는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차지하는 전과를 올렸다. 소왕이 죽고 난 다음 제나라의 장수 전단이 은밀히 연나라로 첩자를 보내 다음과 같은 이간책을 썼다. “제나라의 성 가운데 연나라에 항복한 곳이라곤 두 군데 밖에 없다. 진작 공격하여 차지하지 못한 까닭은, 악의와 새 임금 사이에 틈이 벌어져 악의가 전쟁을 질질 끌려 하고, 또 자신은 제나라에 남아 임금이 되려 하기 때문이다.” 멍청한 새 임금 혜왕은 제나라의 이간책에 빠져 기겁을 보내 악의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악의가 조나라로 투항한 것은 당연했다. 군사적 두뇌라곤 전혀 없는 기겁은 계속 패해 70여 성을 모조리 다시 빼앗겼고, 여러 해 동안 힘들여 쌓은 공든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2. 간의 오인 
(1) 개인적인 좋고 나쁨으로 간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 - 이사는 〈간축객서〉라는 글에서 “태산은 보잘것 없는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높은 것입니다. 강과 바다는 보잘것 없는 개천물이라도 거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토록 깊은 것입니다.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모두 국경 밖으로 내쫓는 것은 군대를 다른 나라에 주는 것이자 양식을 적에게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2) 자기 마음을 기준으로 누구를 간으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3)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간으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4) 개인적 또는 집안의 은혜ㆍ원한 때문에 간으로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5) 유언비어를 가지고 간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 서문표는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위 문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신은 임금을 위해 업을 다스렸는데 임금은 신의 도장을 빼앗아갔습니다. 지금 신이 임금의 좌우 측근들을 위해 업을 다스렸더니 임금이 신에게 절을 합니다. 이러니 신이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 기원전 308년, 진나라 혜왕은 감무에게 한나라를 치라고 명령했다. 감무는 “한나라는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어 저로서는 그런 무거운 임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혜왕은 그에게 솔직히 말해보라고 했다. 감무는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혜왕은 소인배의 말해 혹해서 감무를 소환했다. 감무는 즉시 회군하지 않고 혜왕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편지에는 “지난날의 맹세를 잊으셨단 말입니까?” 라는 말뿐이었다. 편지를 받아 본 혜왕은 즉시 대대적으로 구원병을 보냈고, 선양성은 이내 함락되었다.

(6) 순간적인 단점을 가지고 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자사가 위후에게 구변을 추천하면서 50량 전차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대장군감이라며 칭찬을 했다. 자사는 이렇게 응수했다. “관리를 뽑는 것은 마치 목수가 나무를 고르는 것과 같아 좋은 점은 취하고 모자란 점은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전국시대에 충성스럽고 용감한 신하를 고르시면서 달걀 두 개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장수를 버리시려 하니, 이 이야기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 조조 진영의 몇몇 사람이 원소와 내통하려 한 편지였다. 조조는 “원소가 막강할 때는 나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해서 무엇 하는가?”라고 말했다.

❍ 제12장 역사로 하여금 미래를 말하게 하라 - 미래지향적 역사

1. 흔들릴 수 없는 위대한 진리 
2. 새로운 지도자를 키우는 올바른 방향

(1) 재능만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 틀을 갖추지 못한 선비라고 해서 그 선비가 꼭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진평이 어디 행동이 독실했던가? 소진이 어디 신의를 지켰던가? 그럼에도 진평은 한나라의 기초를 닦았고, 소진은 약한 연나라를 건졌다. 이렇게 본다면 선비들에게 단점이 있다고 해서 버릴 수 있겠는가? - 삼국지 위서에 나온 말이다.

- 사마광은 “재주는 덕의 자질이요, 덕은 재주를 이끄는 장수와 같다.”라고 했다. 그는 또 “재주와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 부르고, 재주와 덕 모두가 없는 사람을 ‘우인’이라 한다. 덕이 재주를 앞지르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을 앞지르는 사람을 ‘소인’이라 한다. 무릇 사람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성인ㆍ군자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들과 함께할 것이요. 소인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우인을 얻는 게 낫다.”라고 했다.

(2) 잘 따른다고 기용해서는 안 된다. 
(3)가깝다고 해서 뽑아서는 안 된다.(4)친하다고 해서 기용해서는 안 된다.

3. 위대한 철학과 인식의 틀 4. 도덕을 바로 세우는 일

(1) 지난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남겨놓은 썩고 타락한 인생관을 청산해야 한다. 
(2) 도덕 바로 세우기의 이론적 체계를 건설해야 한다. 
(3) 모든 조직의 간부, 특히 지도급 간부의 모범적인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 제13장 역사와 간신

1. 부끄러운 역사적 존재, 간신

2. 간신의 수법 
(1) 허구와 가식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위아래를 거리낌없이 속인다.
(2) 흑백을 뒤바꾸고 시비를 뒤섞는다. 
(3)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모함과 무고를 일삼는다.
(4)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뱉지만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웃음 속에 비수를 숨기고 있다. 
(5) 겉으로는 떠받들지만 돌아서서는 어기며, 두 얼굴에 여러 개의 비수를 감추고 다닌다. 
(6) 주인과 임금에게 마첨하여 그를 포악하게 이끈다. 
(7) 자기편을 드는 무리를 모아 간신 패거리로 결탁한다. 
(8) 이간질해서 모순을 조장한다. 
(9) 말을 뒤집어 죄를 씌워 해친다. 
(10) 권위로 압박하며 이권으로 유혹하는 등 강온책을 동시에 구사한다.

3. 간신의 본질적 특징

(1)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질투하고, 충직하고 선량한 사람은 잔인하게 해친다. (2) 오로지 이익을 위해 일을 꾀하며, 권력을 목숨처럼 탐낸다. (3) 의심이 많고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4) 음흉하고 교활하며, 가식과 위장을 본성으로 삼는다. (5) 늑대와 이리의 본성에 전갈과 독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 주요 어록 모음

-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한휴가 당 현종의 잘못을 지적하자, 누군가 질문했을때]
-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이 가득 차 있을 따름입니다.’: [안녹산이 당현종에게]
- ‘우리처럼 촌구석에 사는 촌놈들도 진작에 천하가 어지러워지리라는 것을 알았건만.’: [당현종에게] 
-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 군주가 물줄기의 근원이라면 신하는 물의 흐름이다. 근원이 흐리면서 흐름이 맑기를 바라는 것은 안 될 말이다. 군주가 속임수를 써놓고 어떻게 신하의 정직 여부를 나무란단 말인가!‘ : [누군가를 시험하라는 말에 당태종]이
- ‘폐하께서 행차하시는데 시간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농민들의 수확에 방해가 된다면 지나가는 곳의 세금을 조금 줄여주면 그만입니다.’: [당현종에게 이임보]가
-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고 높은 자리에 오른 자로서, 또 일찍부터 조정에 들어와 머리가 허옇게 셀 때까지 있었던 자가 정사에 간여함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천하가 무너진 것이 너의 죄로다’: [석륵이 왕연에게] 
- ‘임금은 오로지 한 마음인데 그 마음을 공략하려는 자는 너무도 많다. 힘으로, 말재주로, 아첨으로, 간사함으로, 임금이 좋아하는 것으로 무차별 공략하여 서로 귀여움을 차지하려 든다. 임금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져 그 중 하나라도 받아들였다가는 당장 위기와 망조가 뒤따른다. 바로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 [당태종]
-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기도 한다. 백성은 물과 같고 군주는 배와 같으니라.’ [당태종]
- ‘천하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다면 삼베옷이라도 어떤가? 산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허름한 집인들 무슨 상관인가?’ ; [제갈량]
- ‘폐하께서 잘못이 있다고 하시면 신이 고치면 되는 것이고, 잘못이 없다고 하시면 그것은 신의 행운입니다. 헐뜯는 자가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 [측천무후가 적인걸에게 누가 헐뜯는다고 하자].

 
 
 

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20. 13:23

예수는 없다  오강남 종교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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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면서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

- 파스칼은 그의 책『팡세』에서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는냐 하는 문제는 도저히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므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어차피 일종의 도박을 할 수박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도박을 할 경우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밑천을 거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걸었다가 설령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로선 그렇게 큰 밑천들인 것이 아니므로 결국 밑져야 본전인 셈인데,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쪽에 걸었다가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쪽에 거는 것이 확률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이른바 그의 유명한 도박 논증이다.

- 미국의 어느 사회평론가는 예수 잘못 믿었다가 입을 수 있는 피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몰수당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 전남 강진에서 목회도 하고 농사도 짓는 임의진 목사는 최근에 쓴 그의 글에서 “복음적이고 생명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 대한 집착과 내세의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 충분히 학문적인 신학이 아니라 교권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한낱 교회경영학 따위로 전락해 버린 신학, 조선인 자신의 심성과 문화가 녹아난 토착 민족교회이자 아시아적 가치로 피어난 우리들의 교회가 아니라 서구적이고 단선적이며 전투사령부처럼 배타적이고 경박스러운 교회와는 미련 없이 결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 “우리 아빠 최고” - 자라나는 믿음,
- 종교 생활에서는 우리 대부분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갈 기회가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우리 아빠 최고”만을 합창하는 합창단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이의 아버지도 최고라는 말을 들어보거나 거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기회도 없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2. 무엇이 문제인가? - ‘잘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첫째, 성경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서, 그것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것, 
둘째,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로서 그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로서 세상 사람을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선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만 유일한 진리 - 성경만, 예수만, 기독교만, 우리 신학만이라고 하는 ‘만만주의’의 대명사인 셈이다. 
– 1. 성경무오설, 2. 동정녀 탄생, 3. 기적, 4. 육체 부활, 5. 인간의 죄성, 6. 대속, 7. 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인정하고 의심 없이 믿어야 ‘잘 믿는 것’이고 그래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이런 근본주의적 입장은 주로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현재 미국에는 전체 기독교인의 20~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고, 한국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90퍼센트 내지 95퍼센트 절대다수의 개신교 기독교인이 여기에 속한다 보아도 된다. 
- 철수와 그 형제는 다 같이 아버지에 대해 faith가 있지만 그들이 가진 beliefs는 각자의 나이나 기타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철수는 아버지를 주로 힘이 세어서 최고라고, 그 형제들은 아버지를 주로 용돈을 잘 줘서 좋은 분이라고 하는 beliefs를 가지고 있다. 근본주의자의 교리는 일종의 beliefs이다.

3. 기독교 패러다임의 천이 
첫째,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둘째,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셋째, “저 위에 계시는 하나님에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넷째, “교리 중심주의에서 깨달음 중심주의로”, 
다섯째, “죄 강조에서 사랑 강조로”, 
여섯째, “육체 부정에서 육체 긍정으로”, 
일곱째,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여덟째,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아홉째, “분열에서 연합으로”, 
열째, “예수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님의 종교로”

4. 벌거벗은 임금님과 당나귀 귀 임금님 - 정직한 믿음과 무오설의 andy

5. 허스키와 진돗개 
- 내 종교만 종교인가? – 
종교사나 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종교나 사상의 경우 잡종이란 말 대신에 ‘융합’이란 말을 쓴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나 사상은 고립된 진공관 속에서 보관ㆍ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서로 ‘지평융합’을 하면서 계속된다는 것이다. 

- 유대교도 바벨론 포로 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천사, 부활, 최후심판, 낙원 등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기독교도 이런 혼합된 유대교 사상에다 희랍의 밀의 종교나 철학 사상을 결합시켜서 생겨난 합작품이다. 중국의 선 불교가 인도 불교와 중국 도가사상의 결합이고, 신유학이 유불도의 습합에서 생긴 산물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종교학’ 창시자 막스 뮬러 Max Müller 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 
He who knows one religion, knows none [by Max Müller 1823-1900]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한국에 온 선교사 대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에 간 선교사와는 달리 극단의 근본주의자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버트, 게일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들 거의 모두 한국에 있던 전통 종교는 보나마나 똥개요, ‘허스키만’ 유일한 진리 개라는 것을 전하는 데 전력을 다한 것이다.

-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장미가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그 향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캐나다 연합교회에서는 감리교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주민을 기독교로 인도하면서 그들의 말과 종교와 문화를 경시 내지 말살시키려고 한 일에 대해 1986년 캐나다 원주민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원주민이 한 말로 “유럽 백인이 들어올 때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우리]땅을 가지고 있다.”

6. 세 부류의 사람 
- 부처님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망설이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진리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진리가 너무나도 심오하고 신비스러워서 사람들이 도저히 깨닫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도덕경』제 41장에 보면, 뛰어난 사람은 도에 대해 들으면 힘써 행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에 대해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도에 대해 들으면 크게 웃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7. 신앙의 여섯 단계 
- 파울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먼저, ‘전단계’라는 지적 능력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엄마나 다른 보호자에게 가지는 무조건적 신뢰의 단계로서 이때 갖는 신앙을 무분별적 신앙이라고 했다. 제1의 단계는 “직관적ㆍ투사적 신앙”의 단계이다. 이 단계의 신앙은 2세에서 6,7세 사이에서 나타나는데, 아이들은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 살면서 이에 걸맞는 믿음을 키워간다. 
제2의 단계는 “신화적ㆍ문자적 신앙”의 단계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것으로서, 상징적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이 이런 이야기가 말하는 것과 같이 문자적으로 이렇게 생기고 굴러간다고 믿는다. 싼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을 주고 갈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제3의 단계는 “종합적ㆍ인습적 신앙”의 단계이다.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여질 때의 모순을 의식하는 단계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외적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자기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수하겠다고 애를 쓰는 열성파 사람들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주저앉은 사람들이다. 제4의 단계는 “개성화와 성찰의 신앙”단계이다. 
20대 중반의 청년기, 경우에 따라서는 30대 후분이나 40대 초반에서도 형성되는데, 반성하고 통찰하는 단계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 조차 이르지 못하고 한평생을 마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되면 자신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고, 지금까지 검토되지 않던 상징체계가 의미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제5의 단계는 “접속적 신앙”이다. 주로 중년기 이후에 생기는 것, ‘양극의 일치’를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이다. 빛이 파장도 되고 입자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한 가지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아는 마음이다. 제5단계는 의식의 영역을 넘어선 단계,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는 단계이다. 교리나 상징체계 등은 어차피 궁극실재에 대한 부분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 자기의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궁극실재와 비교할 때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제6단계는 “보편화하는 신앙”의 단계이다. 성인의 경지, 자유와 무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테레사 수녀가 이에 해당된다.

8. 두 가지 사유 방식 
- 과학의 새 패러다임이 종교 사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참고문헌 목록에 나타난 Ian Barbour의 책을 참조하실 수 있다. 정말 아니러니컬한 현상은 지금까지 이원론적인 사고에 지배받아 오던 서양에서는 이분법적 사고방식만으로는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깨닫는 지성인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는 반면, 전통적으로 비이분법적 사고가 주류를 이루던 동양에서는 서양식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사물을 보는 유일한 진리의 방법으로 떠받드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하는 사실이다. 도가사상이나 화엄사상이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 성경대로 믿는다?

1. 김목사의 성경관 - ‘성경대로’ 믿는다? - 십계명에서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했다해서 그 가르침에 충실하느라 사진 찍기를 거절하고, 그래서 운전 면허증도 내지 못한 사람이 있다. 성경에는 분명 피는 생명이니 피를 취하지 말라 했고, 여기에 충실하여 여호와의 증인은 죽는 한이 있어도 수혈을 거부하는데, 김목사님도 그렇게 할까? 하와가 죄를 짓고 그 벌로 해산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했으니, 해산시 무슨 일이 있어도 마취 등 고통을 없애려는 노력은 결국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일이라 믿는 사람이 있다. 
창세기에 보면 “노아의 아들 중 함의 자손은 ‘종이 되어’ 셈과 야벳에서 나온 자손을 섬기기로 되었다.”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을 성경의 이름으로 옹호해야 한다는 말인가? 
성경에는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았고 일부다처제를 용인했다. 
헌데 기독교인들 중에 일부다처를 주장하는 사람이 몇이나될까? 

2. 흥부전과 성경 - 성경을 ‘믿는다’? 
- 문자대로 믿지 않는다고 해서 흥부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흥부전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그 신나는 판소리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고학 교수는 캐드린 케년 등 옛날의 그 여리고 성터를 파본 성서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여호수아 당시 그렇게 무너질 성벽이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 성경을 어떻게 흥부전과 비교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이 두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정확한 역사적,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성질이 같다.

3. 창조 이야기의 딜레마와 교훈,

- 창세기 1장 1절에서 2장 3절까지의 창조 이야기와 
2장 4절 이후의 창조 이야기는 두 가지 완전히 상이한 고대문서가 짜깁기 식으로 연결된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를 기원전 6세기에 생긴 P문서(제사문서)에 속하는 이야기로, 
두 번째 이야기를 기원전 10세기 경에 생긴 J문서(야훼문서)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P문서는 제사에 쓰는 문서답게 축문 식으로 근엄하고 공식적인 문체로 된데 반해, 
J문서는 완전히 간결한 이야기식 문체로 쓰여져 있다. 
처음 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로힘이라는 이름의 하나님이고, 
두 번째 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야훼라는 이름의 하나님이다. 
우리말로 엘로힘은 그냥 “하나님”으로, 야훼는 개역에 “여호와 하나님”. 표준새번역에는 “주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천지를 창조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엘로힘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는 방식은 그야말로 장엄하다. 
야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지적해보자. 
첫째, ‘아담’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란 뜻으로, ‘흙’을 의미하는 ‘아담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라틴말 ‘homo'라는 말이 라틴어에서 흙을 의미하는 ’humus'에서 나온 것과 같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인간은 ‘남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다. 
둘째, 아담과 하와가 먹은 과일이 사과인지 복숭아인지 누구도 모른다. 
셋째, 아담 하와의 경우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만드셨으니 탯줄이 없엇을 것이고, 따라서 배꼽이 없었을 것이다. 
넷째, 17세기 제임스 어셔 (James Ussher 1581 - 1656) 라는 아일랜드 신부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그 자손들의 생존연대를 전부 게산해서 아담이 흙으로 빚어진 것이 기원전 4004년이라 주장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로 채택되어 왔는데, 한 술 더 떠서 영국의 성 캐더린 대학 학장인 죤 라이트 푸트 박사는 그것이 정확하게 10월 23일 오전 9시 정각이었다고 공표했다.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두 가지 창조 이야기 중 어느 것을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5일에 새들을, 6일에 짐승들을 만드시고, 그리고 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는데, 
둘째 이야기에서는 사람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짐승들을 지으시고 따라서 새들을 지으셨다고 했다.

- 심각성을 몇 가지만 지적하면, 
첫째, 이야기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 완전히 원대한 계획에 따라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단숨에 다 지으시고, 일이 완성되었을 때 극히 만족해하시면서 일에서 손을 떼신다. 그리고 수정 작업이나 추가 보수 작업 같은 것을 하시지 않는다. 물론 일곱째 날 쉬신 것을 보면 완전히 ‘전능’하신 것만도 아니라는 반론이 나옴직도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둘째 이야기에서 나오는 신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둘재 이야기에 나오는 신은 일단 사람을 만들어 놓고 보니까 있어야 할 곳이 필요하구나 생각하시고 동산을 일구신다. 
또 사람이 거기서 쓸쓸히 지내는 것을 보시고 나서 뒤늦게나마 자기의 실수를 알아내시고 짐승과 새들을 만드신다. 이렇게 일을 해가면서 계속 계획을 수정 보완해가고 있다. 아담 하와의 추방으로 결국 실패작이 되고 말 에덴 동산 조성사업마저도 미리 알지 못하고 그대로 추진했던 신이다. 그런 실수 때문에 에덴 동산은 쓸데없는 공터로 남게 된 것이다.

- 전지전능하신 신이라면 아담 하와가 숨어있다고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실 필요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끝까지 다 아시는 신이 아담 하와가 따먹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 왜 그런 나무를 만들어 놓으셨는가?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말을 거역하여 벼랑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으면, 그것이 아무리 부모 말을 듣지 않은 결과에서 오는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붙잡는 것이 부모의 일반적 심정일 터인데, 하나님은 그런 마음마저도 없었다는 것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는 것을 막아야 할 정도로 하나님은 질투심과 이기심이 많으신가? 
선과 악을 알기도 전에 선악과를 먹으면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 우리에게 힘이 되고 지침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번 풀이해 보기로 한다. 
첫째,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한 가지 근원, 같은 태에서 나온 형제 자매라느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모든 인류를 감쌀 뿐 아니라 생물 무생물을 다함게 얼싸안는 우주적 동류의식을 배양해야 하는 것이다.(불교의 자비), 
둘째, 만물을 서로 연관되었다는 것이다.(불교의 연기론), 
셋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불교의 불성)

- 창조론이 진리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외치면서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파괴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진화론을 믿지만 자연보호에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캐나다의 데이비드 스즈키 교수, 누가 창조주 하나님의 정신에 더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겠는가? 
박노자 교수가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대해 쓴 다음의 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오슬로에서 자동차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체력 쇠약 등의 이유로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은 거의 전부 대중교통을 사용한다.』

4. 아담의 갈빗대?

- 갈빗대 이야기를 비교종교학적이라고 할까, 비교신화학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상당수의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은 남녀 성을 한 몸에 지녔던 것으로 나타난다. 
힌두교에서도 그 옛날 최초의 인간은 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플라톤의 『심포지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갈빗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첼라’이다. 그 말 자체는 그냥 ‘한 쪽’이라는 뜻이었다.

5. 선악과 - 이분법적 의식의 출현

- 바람직하지 못한 해석들로부터 몇 가지 예로 든다. 
첫째, 이 이야기를 여자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 해석하는 것이다. 하와가 유혹에 빠져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여자는 책임을 지고 설치지 말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남자를 유혹했으니 여자는 언제나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해석은 이 이야기를 
둘째,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특히 중동 지방에서 뱀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므로, 하와가 뱀의 꾀임에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여자가 성적으로 눈을 뜨게 되어, 결국 뱀의 성적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외경 마카비 4서 등에 나오는 해석으로, 저스틴이나 어거스틴 등 초대 교부들도 이런 해석에 찬동했다. 
셋째, 인간의 ‘원죄’를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6. 노아 홍수를 따져보면 7. 경상도 시리즈와 성경

8.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인가?

- 『5복음서』라는 책 서론 부분에 나오는 이론을 먼저 정리해 본다. 
첫째, 사본 문제이다. 복음서의 경우 가장 오래된 사본이 예수님 사후 175년경에 필사된 것이라 믿어지는 사본이다. 손으로 베껴 쓴 것이었다. 따라서 완전히 똑같은 사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둘째, 복음서 저자와 저작연대의 문제이다. 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그 복음서의 실제적 저자도 아니다. 마가와 누가만은 실제적 저자의 이름이라 보는 성서학자도 있지만, 아무튼 복음서들은 처음에는 저자 이름이나 제목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후에 가서 이름이 붙었는데, 이런 이름은 실제 저자의 이름과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성서학자 견해에 의하면,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기원후 70년 경 제일 먼저 쓰여지고, 그 후 20년 정도 있다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쓰여지고, 기원후 100년 전후해서 요한복음이 쓰여졌다고 본다. 
셋째, 복음서 자료의 문제이다. 공관복음서만 가지고 보면, 마태, 누가 두 복음서 기자들은 마가복음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거기다가 별도로 얼마를 덧붙여서 자기들의 복음서로 꾸몄다. 마태복음의 경우 마가복음에 나오는 것의 90퍼센트 정도, 누가복음의 경우 50퍼센트 정도를 그대로 인용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들이 사용한 마가복음 이외의 자료가 별도로 있었던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Q자료일 것이라 한다. 이 자료는 예수님이 하셨다는 간단한 말슴만 모아놓은 ‘어록’ 같은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 발견된 도마복음서도 그런 종류의 복음서이다. 물론 Q자료의 존재를 이정하지 않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저자들이 스스로 여기저기에서 듣거나 생각해낸 것을 덧붙였을 것이라 믿는 사람도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저자들이 복음서를 쓸 때 자기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쓴 것이 아니다. 목격자로 쓴 것이 아니라, 그전 목격자들이 한 말이 전해내려 오는 것을 듣고 쓴 것이다.

9. 단군신화와 기독교 - 기독교 신학자로서 고집불통의 몇몇을 제외하면 기독교인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믿고 있는 아브라함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이라 간주하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헤롯 왕이 기원전 4년에 죽고, 그의 아들 아켈라우스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백성의 원성 때문에 결국 기원후 6년 왕위에서 쫓겨나고, 유대는 시리아 총독의 관할로 넘어가게 되었다. 바로 그 해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자기 관할의 자산정도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기 예수가 헤롯 왕 재위 시에 태어나서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마태 복음서의 기록은 역사적 신빙성이 결여된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그의 가르침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홍익인간”의 이상이라든가 그가 우리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시조로서의 위상, 민족 정신의 구심점으로 작용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10. 베들레헴과 백두산 기슭

- 김정일 위원장이 정말은 어디에서 났든지 간에 그의 출생지를 백두산 기슭이라 한다고 하여 전혀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종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 베들레헴이 예수님의 출생지일 수 없다고 하는 이유를 여기서 낱낱이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학자들이 주장하는 주요 이유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로마제국 역사상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구조사에 응하라는 칙령을 내린 황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매 5년마다, 조세를 목적으로 각자 거주지 관할 관서에 가서 가족사항과 재산정도를 신고한다. 
둘째, 설령 각자 고향으로 가서 호적신고를 하라는 칙령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만삭이 된 여자를 데리고 한국 거리수로 따져서 330리나 되는 그 거칠고 위험한 길을 가겠다고 만용을 부리는 남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셋째, 땅이 많은 지주가 잠시 외지에 가 있었을 경우 고향에 돌아와 호적신고를 하는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 고향에 땅도 없었고, 또 그가 살던 나사렛은 임시 거처가 아니었다. 
넷째, 예루살렘에 방이 모자로 20리 밖에 있는 베들레헴 여관방까지 다 채워졌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구약 미가서 5장 2절에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메시아는 다윗의 동네에서 나와야만 한다고 믿었고, 이 믿음을 그들의 예수 이야기에다 반영했던 것이다.

11. 성경이 사람을 죽이는 몇 가지 경우 - 성경을 나 개인이나 내 집단의 정치적, 사회적, 조직적 이익을 위해 아전인수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예로 착한 사람은 다 잘 된다는 것을 말하는 잠언과 착한 사람이라고 다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욥기이다.

12. 예수님의 성경 읽기 - “환기식 독법” – 
유대인은 『율법과 선지자와 문서』라는 긴 이름을 쓰고, 이 낱말들의 히브리어 첫 자들을 따서 『타나크』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냥 『히브리 성경』이라 한다. - 예수님의 성경 읽기 방법이 아주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잘 읽어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나는”이라는 말이 모두 여섯 번 나온다. 예수님은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살인하지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13. 싼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가? - 두 가지 문자주의

-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는 “비판적 신학의 적은 자연스런 문자주의가 아니라 자주적 사고를 억누르고 공격하는 의식적 문자주의”라고 결론을 내렸다. - 이렇게 철이 들면서 문자주의에서 해방되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반동적 문자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1697년 토마스 에이큰헤드 [Thomas Aikenhead] 라는 학생은 모세 오경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서 800년 후에 쓰인 것이라는 말을 했다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Edinburgh 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1.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노라” 
-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노라.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시편 137:1-4) 
힘있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택한 백성이 이방신을 섬기고 사는 바빌론의 공격에 그렇게도 무참히 쓰러져 버리고 이제 이렇게 처량한 포로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고 말았으니. 이러고도 어찌 옛날처럼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탄식한다는 이야기이다.

- 종래까지 자기들 민족만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이른바 “부족신의 신관”을 버리고 하나님은 온 세상을 위한 신,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라는 보편신의 신관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출애굽 등 이스라엘 백성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면 애굽인이나 가나안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도 불사하는 한 민족이나 한 집단의 신이라는 믿음이 제2이사야나 에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처럼 세상 만민을 위해 보편적인 사랑과 공의를 베푸시는 신, 그들을 위한 슬픔과 애통함, 안타까움으로 가득하신 신이라는 생각이 등장하게 된다.

2. 하나님은 남자인가? 
- 히브리 성경에 2500번 가량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어원적으로 따져보면, ‘엘’이라는 남성 신과 ‘엘로아’라는 여성 신의 이름이 합해서 된 복합명사에다가 복수를 나타내는 ‘임’을 붙여서 된 것 - 이렇게 신의 ‘양성구유성’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들)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장 26)하셨다고 한 사실에서도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모양’에서 ‘남자와 여자’가 나왔다면 그 ‘우리의 모양’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엘샤다이’라는 이름도 적어도 어원적으로는 본래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라 보는 신학자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 고유의 신이었던 ‘야훼’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너희는 너희를 낳은 하나님을 잊었다.”(18, 이하 표준새번역) - 이사야서에 보면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 백성을 위하여 야훼는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미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49:15)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어머니로 표현한 것이 상징적인 것과 똑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도 역시 상징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3. 하나님 어머니 - 성령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루악은 본래 여성 명사였다. 그것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Spiritus라는 남성 명사로 바뀌었다. - 『도덕경』에 보면 도를 어머니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 실제적 다신론 - 신이 여럿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어느 한 신을 택해 그 신을 경배하는 것을 단일신론이라 한다. - 유대교에서 처음에는 유일신관이 발달하지 않고 있다가 기원전 8세기 선지자 아모스 때, 그리고 그 후 제2 이사야에 와서야 확실하게 유일신관으로 정착했다던가 하는 신관의 역사 문제를 가지고 따지려 하는 것이 아니다.

- 우선 기독교를 ‘다신론’의 종교로 볼 수 있다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첫째, 상당수의 기독교인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따로 있고, 이슬람교의 알라 신, 힌두교의 시바 신, 중국의 상제, 한국 전래의 하늘님 등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또 일상 대화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베다경에서 “진리는 하나, 서인들은 그것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를 분”이라고 했다. 
둘째, 종교철학자 존 힉에 의하면 황금의 신, 사업체의 신, 출세의 신, 권력의 신, 체면유지의 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잠깐씩) 유대-기독교에서 믿는 신 등등에게 분산해서 바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5. 실제적 무신론 - 이론이나 교리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금과옥조 처럼 받들고 살지만,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혹은 돌아가신 것처럼 하고 사는 태도를 일러 ‘실제적 무신론’이라 한다. - 실제적 무신론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 걸맞지 않는 신관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6. 부족신관 - 온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이 어찌 그리 불공평하게도 중동지방 그 조그만 부족 이스라엘만을 택하셔서 ‘택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다른 족속은 모두 흑암 가운데 내팽개쳤나

- 자기 백성밖에 모르는 하나님 : 출애굽 이야기, 바로가 람세스 2세라면, 그는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자기 침대에서 죽었다고 한다. 야훼 하나님은 뭘하고 계시다가 그들의 고통이 극에 달해서야 갑자기 나타나신 것인가? 이스라엘에 속했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생명을 구하고 애굽인에 속했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무조건 죽임을 당하도록 하는 이런 극단의 인종차별 정책이 도대체 사랑과 공평의 하나님으로서 하실 일인가? 열세 번씩이나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바로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해놓으시고, 이스라엘 백성 내보내기를 거절한다고 계속 재앙을 내리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논리인가?

- 잔인하신 하나님 : 가나안 정복 이야기,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시내 광양에서 40년 간 헤매다가 드디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부근에서 기름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땅)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게 된다. 여리고 성을 돌아 그 성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는 전에 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였다는 사실이다. 아이 성 사람을 모두 전멸시키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 성에 있던 사람까지 완전히 진멸시키니 그날에 죽은 사람이 “남녀가 일만이천이라”고 했다. 한 번은 도망가는 적군에게 우박을 퍼부으셔서, “우박으로 죽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찔려 죽은 자보다 더 많았다.”고 했다. 밤이 되어 적군이 도망가게 되자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하였다.

- 거기 나오는 하나님 이야기는 하나님 자체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중동 사막 지대에 떠돌아다니던 유목민이 그들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그들의 신을 그런 식으로 믿고 그 믿는 바를 기록한 것이다. - 이런 신관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유대인 자체 내에서마저 바빌론 포로와 함께 의미 없는 신관으로 취급되어 대부분 방기된 신관이다. - ‘D 문서’ 전통은 포로 이후에까지도 부족 신관을 유지했다.

- 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 : 제사장 제도, 그 이후에도 계속 “문둥환자나 유출병이 있는 자” 등은 부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하기 전에는 성물을 먹지 말 것”(레22:4)이라 했다. 그 뿐 아니라 “외국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은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22:10) - 외국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신23:6) 
- 불행하게도 기원 후 312년 그리스도의 이름 첫 두 글자 ‘Xp'를 투구에 써 붙이고 나가 싸우므로 밀비아 다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로마 황제 콘스탄틴 이후 이런 부족신관이 기독교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7. 율법주의적 신관 - 왕으로서의 하나님 : 성경에는 물론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이 많다. 하나님을 만 왕의 왕이라든가, 만 주의 주, 용사, 전사, 재판장, 법을 주신 이, 목자, 토기장이, 의원, 아버지, 어머니, 친구 등의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한 상징도 있고, 독수리, 반석, 사자, 곰, 구름, 산성, 방패 등 자연이나 인공물에서 따온 상징도 있다. 이런 간단한 상징물을 영어로 메타포라 하고 한국말로는 은유라고 한다. 그 첫째 특성은 소위 ‘이중성’이라는 것이다. 그 상징성을 망각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메타포의 두 번째 특성은 ‘환기성’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목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끌고 앞서 가시는 목자를 상상함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 있는 양으로 생각하게 된다. 노아 홍수처럼 “지면에서 쓸어버리는” 싹쓸이 작전은 한 번으로 끝이라고 했다. 희생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예수님이 그 일을 대신하신 것이다. 나중 최후 심판에서 그 모든 것을 가려내신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적 신관은 부족신관과 마찬가지로 극복해야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 율법주의적 믿음과 삶 : 율법주의적 믿음이란 모든 것을 순종, 불순종으로 따지는 것이다. 
종교적 삶이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 중(마20:1-15)에서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서 일하던 품꾼이 저녁 해질 무렵부터 일하던 품꾼과 똑 같은 삯을 받는다고 불평하던 심사와 같다. 하나님의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죄인이다. 율법주의적 삶은 이렇게 ‘죄’라는 것이 중심문제로 등장하는 삶이다. 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하는 절규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철학자 겸 종교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이렇게 ‘죄’를 중심문제로 하고 돌아가는 종교를 ‘병든 영혼의 종교’라 하고 ‘건강한 마음의 종교’와 대비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이런 율법주의 신관이나 종교관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분이시다.

8. 조건부 신관 - 이기적 신앙 - 철수는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이 났다. 그래서 점점 더 엄마의 말을 잘 듣는다. 엄마는 점점 더 자기의 말을 잘 듣는 철수가 더욱 귀여워져서 더욱 많은 축복을 내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하나님 생각을 이렇게 철수의 이야기로 바구어 놓으니까 유치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지극히 보편적인 신관 아닌가?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셧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하고 노래한다.

- 자기에게만 사탕을 주시는 엄마에게 계속 감사와 찬양만 할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간구하여 다른 형제들에게도 사탕을 같이 나누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야 한다. –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돌아올 때 무조건 받아주는 하나님을 소개하신 것이다. 율법주의적 제사 종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용서에는 반드시 피흘림이든 무엇이든 대가를 먼저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때 하나님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히신 것이다.

9.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들 - ‘하나님의 뜻’이라는 깃발 아래서 서로가 피 터지게 싸우게 된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내 뜻’을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돌이나 나무로 새겨진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에서 상대적인 나를 절대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자기 우상숭배’가 얼마나 더 엄청나고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는 일이 없다.

- 어떻게 해야 이런 엄청나고 무서운 일을 줄일 수 있을까? 우선 생각나는 것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첫째, 현재의 내 특수 입장에서 ‘내 식대로’ 이해한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둘째,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과의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 얻어진 나대로의 결론에 입각해서 내려진 ‘나 자신의’ 결단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이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다리는 일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수 없는 무엇이다. 넷째, 하나님의 뜻 때문에 내가 죽고 우리 사이에 평화가 깃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뜻 아닌가?

10. 하나님과 생태계 문제 - 자연은 벗하거나 더불어 살 대상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정복하고 다스릴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 존 맥쿼리 John Macquarrie 1919-2007 는 이 고전적 신관이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거침없는 지배와 착취”를 위해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고 못박았다. 
- 하나님을 저 위에 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임금쯤으로 보는 신관을 바꾸어, 하나님을 영으로 생각하는 신관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가 등장한다. 하나님을 영으로 생각하면, 창조를 태초에 한 번 있었던 일회적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북미 원주민처럼 지구 자체를 우리의 어머니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다.

11. 신은 존재냐 비존재냐?

- 무릇 모든 존재란 어쩔 수 없이 시공의 범주에 의해 제약된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자를 ‘존재’라고만 해도 그런 절대자는 진정으로 절대적인 절대자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자는 다른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의 근거’이든가, 일반 모든 존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에서 ‘비존재’로, 혹은 일반 모든 사물과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의미에서 no-thing, Nothing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로 인정되는 틸리히도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중세의 신비 사상가 마이스터 에카르트 등이 특히 강조하던 생각들이다. 물론 베단타의 ‘니르구나 브라만’이나 도가의 ‘무’, ‘무무’나 불가의 ‘空’같은 고전 사상도 이 점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 절대자는 절대적이지만 절대자에 대한 우리의 표현이나 생각이나 견해나 개념이나 범주나 이론이나 교리 등등은 모두 절대적일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절대자에 관한 ‘유신론적 교설들’이, 이제 별로 의미 없게 되었다는 것을 “신은 죽었다”라는 센세이션한 말로 표현한 것이다. 
요즘은 “신은 실업자”라는 말을 한다. 창조사업도 6천 년 전에 다 이루어 놓았고, 이제 어느 특수한 민족의 안녕을 위해 전쟁에 매달리는 일도 없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야 할 일도 없고, 천둥 번개로 죄인들을 처벌할 일도 없고, 잘하는 사람 골라 상줄 일도 없고, 결국 ‘unemployed God'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12. 어느 신학자의 신관 - 흔들리는 신관 : 이신론이란 17,8세기 유럽의 뉴턴 같은 과학자나 미국의 제퍼슨, 워싱톤 같은 지성인 사이에서 유행하던 신관으로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일단 창조하신 다음에는 세상이 저절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자동 손목시계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관여나 간섭 없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보통 ‘궐석 신관’이라 한다. 틸리히의 사상은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는 지금도 그의 책 중 하나인 Dynamics of Faith를 교과서로 채택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나의 존재’로 보는 유신론적 신관을 배격하고, 신을 ‘존재의 근거’혹은 ‘존재 자체’, ‘궁극실재’라 주장한다. 신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 따라서 “신은 신의 상징”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 초월이냐 내재냐 :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음이 거의 분명하다는 것,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세상의 죄를 위해 죽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 등을 알게 된 것이다.

- 초월도 내재도 :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신관을 영어로 panentheism (만유내재신론 萬有內在神論)이라 하는데, 한국말로 ‘범재신론’이라 한다. ‘양극적 유신론’이라 하기도 하고, ‘자연주의적 유신관’이라 하기도 한다. ‘변증법적 유신관’이라는 것이다. 존 맥쿼리 교수가 그의 기포드 강연을 기초로 하여 쓴 『신성의 탐구』라는 책을 읽어볼 수 있다. 우선 말 그대로 ‘모든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범신론에서는 모든 것이 곧 신이다. 
신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그대로 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데 반해 범재신론은 우리와 하나님, 혹은 세상과 하나님을 분간한다. 보그가 거친 신관의 변천은 어느 의미에서 신앙이 성숙하면서 거치는 과정과 같다. 많은 경우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유신론적 신관에서 다음 단계를 발견하지 못하면 신에 대한 생각 자체를 그만하거나 무신론, 이신론으로 끝나고 만다.

- 참고로, 현재 서구 사회에서 유대인 중에 불교인이나 불교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유대인의 이런 특수한 경험 때문에 초자연적 신관을 강요하지 않는 불교를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보는 견해가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 예수는 없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 캐나다 연합교회는 이미 1940년에 새로운 신조를 채택하면서, 
“각각 새로운 세대의 그리스도인은 새 시대의 사상에 맞게, 그리고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여 그 신조를 새롭게 천명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2. 예수님의 성생활 - 『예수는 결혼했던가』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결혼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첫째, 그 당시 유대인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창세기 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종교적 의무라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은 결혼문제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하고, 또 이혼문제에 관해서도 남자가 여자를 간음 등의 이유도 없이 버리는 일이 얼마나 그릇된 일인가 하는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셋째,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가 보통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성서학자 중에는 가나의 혼인잔치(요2:1-11)가 예수님 자신의 결혼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한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거기 초대된것, 더욱이 포도주가 떨어지자 자기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도 이상스럽고, 술을 마신 손님 중 연회장이 ‘신랑’더러 “이런 좋은 포도주를 어디에 두었다가 지금 가지고 나오느냐.”고 했던 말이 결국 예수님을 보고 한 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 다른 견해로는 어처구니없게도 예수님이 분명 동성애자였으리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대표자로 캠브릿지 대 성마리아 교회 교구장 몬피오르를 들 수 있다. 
예수님이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마19:12)고 했는데, 이것이 성에 대한 예수님의 혐오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라고 한다. 특히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동성애적 성향에 눈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포되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성전에 가서 환전상의 상을 뒤엎는 등 소란을 피운 것인데, 그것은 마치, 자신의 동성애적 경향을 발견한 옛날 미국의 청교도 젊은이가 너무나 무섭고 혐오스러워서 죽음으로 이 문제를 청산하겠다고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가장 위험한 임무에 스스로를 내던지던 행위와 맞먹는 일이라고 하였다.

3.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이런 저런 교리나 이론을 무조건 믿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믿음, 예수님이 지니고 계셨던 마음을 알고 우리도 그런 믿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 문제는 이 4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길 것을 목적으로 쓰여진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마디로 ‘믿음의 기록, 믿음에 의한 기록, 믿음을 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알아낸다고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의 많은 신학자가 역사적 예수를 알아내려던 시도 끝에 얻은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전 연구사』가 이를 말해주는 고전적 문헌이다.

- 상당수의 신학자는 기독교의 역사적 비극 중 하나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라 본다. 
- 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원시불교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꼭 인간 부처로 남아 있어야 하느냐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 문제는 종교사적으로 보아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4.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 첫째, 가장 먼저 Tm여진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고 그 후에 쓰여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바울의 서신에서도 여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바울이 만약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알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가 쓴 편지 모두에 그 말을 전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어야 된다고 했을 것이다. 
둘째, 첫머리에 나오는 족보부터 다르다. 마태복음 이야기에 의하면 집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고, 누가복음에 보면 밖에서 아기를 낳아 구유에 눕혔다가, 그 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누가 복음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천사의 기별을 받은 목자들이 찾아 온 것으로 되어 있다. 마태복음에는 헤롯이 아기들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신하고 누가복음에는 성전에서 아기 봉헌식에 참석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 탄생연대가 헤롯 왕이 죽은 기원전 4년 이전이고, 누가복음에 의하면 호구조사를 명한 구례뇨가 총독이 된 기원 후 6년 이후가 된다.

- 동정녀 탄생과 관련하여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동정녀 탄생은 세계 어디서나 발견 할 수 있는 극히 보편적 현상이다. 
둘째, 인성과 신성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결합에 의해 태어나신 분임을 고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셋째,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마태는 밤하늘을 비추는 별을 등장시키고 누가는 목자들을 두루 비추는 ‘주의 영광’의 천사를 등장시킨 것이라 풀어 볼 수 있다. 또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하고, 누가는 예수님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위한 선지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든 것이다.

5. 탄생 이야기에 얽힌 몇 가지 의문 
첫째, 동방박사의 방문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별이 갑자기 없어진다. 
둘째, 이 별의 이상스런 출몰 때문에 무고한 아기들만 죽임을 당했다. 
- 마태복음 저자는 이렇게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다음의 절을 인용한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2:18)고 했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이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두 마을은 완전히 다른 마을이다. 예레미야에서는 다 큰 자식이 적군의 땅으로 포로가 되어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터이니 ‘최후의 소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렘31:15-17) 두 이야기는 전혀 상관이 없다.

-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을 모세와 같이 위대한 인물, 제2의 모세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 중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아이들이 바로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출1:15)를 원용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바로 왕을 피해 미디안으로 피신하는 것과 같이(출2:12) 예수님도 헤롯 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도록 하였다. 유대인의 역사에 맞추어 묘사하던 문학 기법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 셋째, ‘나사렛 예수’의 문제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둘 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들이 본래 베들레헴 사람이라 했기 때문에 그들을 나사렛으로 이사를 시켜야만 했다. 꿈에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거기로 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간 것이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2:23)고 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하는 말씀이 히브리어로 된 선지서 아무 곳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마태복음 기자가 그 당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구약’을 읽을 때 히브리어 원문을 읽지 않고, 기원전 200년 경 히브리어 성경에서 희랍어로 번역해 놓은, 70인역이라는 희랍어 번역판을 읽었고, 거기에 따라 이사야 11:1을 완전히 오해한 데서 생긴 실수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한 구절 중 ‘가지’라는 말의 희랍어가 ‘네제르’인데 마태복음 기자는 그것을 ‘나사렛 사람’으로 잘못 읽었던 것이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뿌리에서 한 ‘나사렛 사람’이 나서 결실할 것이요”로 해석했던 것이다.

6. 동정녀 탄생의 신학적 배경 - 마태복음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른바 ‘구약’이사야 7:14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도 그 희랍어 번역판 70인역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희랍어 번역판에는 파르테노스라고 하여 ‘처녀’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알마’였다. 그저 ‘젊은 여자’ ‘젊은 여인’이란 뜻이지 결혼도 안한 처녀라는 뜻이 아니었다.

- 기독교가 희랍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처녀 탄생이 문자적인 의미로 그 중요성을 띠기 시작한다. 예수를 희랍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신의 아들로 믿기 원했고, 그런 소원에 따라 예수도 다른 신처럼 처녀 탄생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 성령을 체험했다. 이런 일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 바울이다. - 물론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은유적인 의미로 그냥 ‘위대한 분’이라는 뜻이지 희랍사람이 생각하듯 본체론적으로 하나님과 ‘본성’에서 같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후 한 10여 년이 지나 쓰여진 마가복음에 보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그의 출생시로 당겨진다. 요한복음이 나타나서는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이 그의 출생 이전으로 올라간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동시에 그대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시작한 처녀 탄생설은 ‘출생 전의 처녀’ 설이었는데, 4,5세기에 와서는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때 처녀막의 파열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출생 동안의 처녀’설로 되었다가 결국에는 마리아가 아기를 낳고도 계속 처녀성을 유지하므로 일평생 처녀였다는 ‘출생 후 처녀’설 및 ‘평생 처녀’ 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동정녀 마리아“설이다. 
특히 어거스틴 이후 교회의 중심 교리가 도리 정도로 강조된 동정녀설은 성을 원죄와 연결시켜서 보던 어거스틴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거스틴은 자기가 젊었을 때 방종의 삶을 살고 사생아까지 가졌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성을 지극히 죄악시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성욕이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이 성욕이 바로 ‘원죄’라고 규정했다.

- 그는 아담의 죄가 그의 정액을 통해 아담 이후 모든 남성에게 내려와 모든 남성이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야말로 인간에게 씌워진 저주는 ‘아담에게서부터가 아니라 어거스틴에게서부터’라고 할 정도로 어거스틴은 성욕을 가진 모든 사람을 다 죄인으로 만들었던 셈이다. 
- 죄로 오염된 정자에서 나온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온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했다. 1827년 난자의 존재를 발견하기 전까지 여자란 남자의 씨앗을 키워주는 토양 정도에 불과하다고 행각했기 때문에 여자의 요소가 자식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7. 청년 예수 -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예수님의 ‘잃어버린 해’라고 하는데, 후대에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위서가 많이 나타났지만 역사적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 『도마에 의한 유년기 복음』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5세 경 안식일에 흙으로 참새 여러 마리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안식일을 범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듣자, 손뼉을 쳤다. 흙으로 만든 참새가 다 날아갔다는 것이다. 6세 경에는 친구들하고 놀다가 친구가 예수님의 어깨를 흔들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너는 더 갈 수 없을 거다.”라고 말하자 그 아이는 금방 땅에 쓰러져 죽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병좌 복음서』이 책에 의하면 ‘아카샤’라고 인간역사의 자료가 모두 저장된 하늘의 큰 디스크에다 주파수를 맞춤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 전 삶을 재생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대학교를 나오고 그 길로 동양으로 향해 인도 등지를 여행하고, 심지어 중국 변경에서 중국의 현인들과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 그당시 목수 계급은 농사짓는 사람보다 더 하층으로 대우 받았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목공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성서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 젊은이 예수는 말을 잘 했다. 그가 뭔가를 썼다고 하는 기록은 간음한 여자가 잡혀 왔을 때 땅바닥에다 무엇인가 썼다고 하는 것밖에 없다. 당시 그 지방에서 실제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던 사람이 3퍼센트 미만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예수님이 실질적 문맹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하는 주장도 하지만 확실히는 모르는 일이다.

- ‘뒤집어엎는’과격한 행동도 불사했다는 뜻이다. 또 사회 지도층을 대단히 여기지 않았고, 특히 위선적이고 율법주의 종교 지도자를 신랄하게 욕했다. 이들에 대해서만은 ‘독사의 자식’이라는 등, 그 당시 가장 과격한 욕설도 서슴없지 않았다. 독사의 자식이란 독사가 사탄의 상징인 것을 생각하면 어느 쌍소리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

8. 싸움꾼 예수 - 찬송가 384장부터 420장까지 연속으로 싸우는 노래만 쓰여 있었다.

- 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이여. 정말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로구나. 어디 가서 실컷 싸운다 해도 부디 내 이름을 대지 마시길, 난 너희에게 다시 오지 않으리라.“(『기독교사상』99년12월호 26-29쪽) - ‘싸우는 예수’ - 이는 지난 세월 군국주의 사고방식이 팽배할 때 군국주의적 시각에서 본 예수 상이다.

9. 싸움 말리는 예수 - ‘싸움꾼 예수’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예수 상 중에는 예수님을 오로지 ‘곧 오실 예수’로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예수님의 ‘현재적’ 측면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궐석 예수’ 상에 빠질 위험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10. 예수님을 어떻게 볼까? - 예수님의 죽음 이후 인간의 실존적 한계라는 필연적 상황뿐만 아니라, 처참한 식민지 치하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신음하던 자기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 예수님. 자기에게 ‘구원’의 기쁨, 일종의 ‘빅뱅 체험’을 가져다 주신 예수님, 이런 예수님이 더할 수 없이 귀하고 중요한 분이었기에 이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그 예수님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선포하던 분’이 이제 ‘선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어떤 분으로 선포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에 대한 여러 해석이 등장하게 된다. 이른바 일련의 각이한 기독론의 포물선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 그 당시에 있었던 기독론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첫째, “마라나타 기독론”이다. 재림하실 주님, 구주로 보는 것이다. 강조하는 단어는 바로 ‘주님’과 다니엘 7장 13절에 구름 타고 오실 ‘인자’이다. 
둘째, “신인기독론”이다. ‘신인’이란 그 당시 희랍 사회에서는 기사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예수님의 신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반드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본체론적 의미는 아니었다.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기독론을 배경으로 하고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셋째, 예수님을 하나님 ‘지혜’의 현현으로 보는 것이다. 유대인사이에서는 잠언 같은 지혜서에 나오는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로서, 이 지혜에 따라 백성을 가르치는 자가 나타난다고 보았는데, 예수님을 바로 그 분이라 본 것이다. 
넷째,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수육의 기독론이다. 로고스는 우주의 원리나 이성이라는 뜻으로 ‘지혜’와 비슷하지만, 지혜가 여성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로고스는 남성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지혜와 로고스 모두로서의 예수님으로 내려오다가 4,5세기에 이르면 점차 로고스로서의 예수님 상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다섯째, “대속적 기독론”이다.

여섯째,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자’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이 기독론은 특히 핍박으로 죽어 가는 동료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굳어졌다. 
일곱째, ‘신령한 스승’으로서의 예수님이다. 그 당시 서기관이나 철학자와는 달리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온갖 사람을 골고루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예수님을 부각하는 것이다. 
여덟째, 예수님을 ‘만유의 주’로 보는 것이다. 로마황제 콘스탄틴 시대에 생겨났다. 콘스탄틴이 그리스도를 자기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인 이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로마 황제보다 더 위대한 세상의 통치자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때 이후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만 허용되던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은 하늘 제국의 황제로 그려지기 시작하고, 그 하늘 황제를 위한 알현의 장소로서 거대한 성당이 생겨난다.

- 당시 사람의 영적 상태와 지적 능력과 심리적 필요와 실제적 문제와 정치적 여건과 사회적 환경 등에 따라 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의 이해요, 해석 방법이었다. 
- 기독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의 관계에서 생겨났다. 유대교에서 말하는 지혜, 희생양 같은 개념이라든지, 희랍 사상에서 논의되던 로고스 사상, 희랍의 밀의 종교에서 신이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믿음, 신의 아들이나 하늘의 구원자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을 구원하리라는 생각. 
둘째,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나타나 서로 대화나 변증법적 관계에서 오랜 기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온 것이다. 
셋째, 우리도 이 시대의 구체적인 역사 맥락에서 우리의 삶과 정황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예수를 다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분 아니라 ,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실존적 삶과 직결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다.

11. 성불하신 예수님 - ‘성불하신 예수님’이란 뜻은 ‘엄청난 종교적 체험’을 갖는 다는 뜻이다.

- 예수님의 이와 같은 성령 체험은, 마커스 보그에 의하면, 부처님의 성불 체험과 맞먹는 일이라고 한다.(그 체험이 동일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간에 중요한 논쟁거리) 
- 틱낙한 스님은 교회에서 예수님 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만 보이는 것은 예수님께 좀 미안한 일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 하면서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좌선하는 모습을 좀 보여주엇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과 부처님은 “인류 역사에 핀 가장 아름다운 두 송이 꽃”이라 하고 이 두 분은 “한 형제”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참선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 예수님의 성령 체험이나 부처님의 성불 체험은 사실 세계 종교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세계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극히 보편적인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 “자비” 어머니의 태처럼 : 당시 유대 사회는 이런 정결 제도에 지배를 받는 사회였다.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부정한 죄인 취급을 받은 것은 물론,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장애자도 정결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의로운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아 번영하는 게 당연한 일이므로, 가난은 의롭지 못하다는 반증이었다. 제사장에게 나아가 제물을 바치고 다시 정결함을 얻어야만 했다. 예수님은 이런 ‘정결제도’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는 말을 하셨다. 히브리어로 자비함이란 ‘어머니의 태처럼 됨’을 의미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도는 어머니처럼 만물을 낳고, 기르고, 감싸주고, 보살핀다고 하는 말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이 스스로 이런 사람을 만졌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부정해짐도 불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가, 그리고 도의 사람이, “티끌과 하나”가 되고 “흙탕물처럼” 된다고 한 『도덕경』4장과 15장의 말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도 하셨다. 누구를 향한 욕인가? 그 당시 자기만 깨끗하다, 자기만 하나님을 바로 안다고 주장하던 집단에 대해서이다.

-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이 말이 예수 자신의 말이 아닐 수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알면서도 여기다 옮긴다. Funk, The Five Gospels, 241f. 참조. 후대의 삽입이라 하더라도 초대교회의 기본 태도를 말해주는 것)

12.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예수님 - 간디나 류영모는 모든 종교를 초극하는 구경각에 이른 것이다.

- 다석의 기독론에 대해서는 최인식, 『다원주의 시대의 교회와 신학』박영호,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상하권)』김흥호,『십자가와 참말을 모시고 산 유영모의 영성』을 참조 할 수 있다. 13. 함석헌 선생님과 간디 옹과 틱냩한 스님의 예수님 
- 스탠리 존스는 간디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 같은 사람 중 한 분” 이었다고 했다. -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귀향: 예수님과 부처님은 한 형제』

14. 참다운 길벗

- 조셉 캠벌에 의하면 영적 모험을 감행한 동서양의 정신적 영웅이 간 길에 대한 여러 영웅담을 종합해보면 거기에는 크게 네 가지 대목이 있다고 한다. 
⑴ 집을 떠나는 것 ⑵ 위험의 고비를 넘기는 것 ⑶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는 것 ⑷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 그것이다. 
⑴ 길을 간다는 것은 물론 우선 ‘집을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것, 인습적인 것, 일상적인 것, 영어로 해서한 것을 뒤로 한다는 정신적인 뜻이 중요하다. 
⑵ 이렇게 집을 떠난다 하더라도 어디 분명히 정해진 곳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20) “나 홀로 빈 털털이 같고, 바보 같고, 흐리멍텅한 것 같은가.”(『도덕경』제20장) ⑶ 오로지 영적 영웅, 믿음의 용사만이 이런 위험과 시험을 뚫고 이 길을 계속 간다. “내가 바로 진리라.” 선언할 수도 이고 “천상천하에 나밖에 없다.”고 하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세상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이 이르렀던 득도의 경지이다. ⑷ 이런 경지, 이런 상태에 이른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 수가 없다. 남을 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 조셉 캠벌의 책은 한국 말로는 이윤기,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으로 번역되었다.

❍ ‘지금ㆍ여기’에서의 mission,

1. 철수의 어린 시절 - 자기가 거기 태어나서 그 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 종교가 무조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 지방 KKK 단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차별주의적 태도,

2. 어느 신학자의 선교관 - 배타주의에서 : 『하나의 지구 여라가지 종교』와『예수와 다른 이름들』, ‘우리만’ 말슴과 성령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죄악과 이교주의의 어둠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 다원주의로 : 불교의 ‘무아’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한 바울의 말슴을 더욱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5년에 나온 그의 책 『다른 이름으로는?』에서 다른 종교가 일방적으로 기독교에 흡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가 다 같이 협력하여 그 무한한 신비, 그 엄청난 진리를 함께 발견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닛터의 이런 신학적 변화를 요약하면, 처음 그가 가졌던 ‘배타주의’에서 칼 라너의 ‘포용주의’로 넘어 갔다가 마지막으로 ‘다원주의’에 귀착된 것이다. 1986년 죤 힉과 함께 편집한 『기독교의 독특성이라는 신화: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을 위하여』라는 책을 냈다.

- 지구적 책임 : 폴 니터 Paul F. Knitter 는 1993년 6월에 있었던 북미 원주민 모임에 참석해서 지구와 자연을 신성의 임재로 보는 그들의 경건한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반드시 지구의 해방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더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폴 닛터는 최근에 나온 그의 두 책을 통해서, 이웃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결코 기독교 신앙을 희석시키는 일이 아니라는 것,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유일한’ 계시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선교(사명)라는 것,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생태계와 인간의 안녕’을 증진하는 일이라는 것, 이런 일을 이루는 것은 여러 종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종교간의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 따라서 종교간의 대화가 곧 선교라는 것 등을 역설하고 있다.

폴 니터 Paul F. Knitter ;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 
'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81

3. 교회는 강아지 훈련소가 아니다

- 오랫동안 종교학을 강의하신 정대위 박사님이 내게 하신 말씀, “어느 면에서 교회가 많다고 하는 것은 부러워해야 할 일” 초등학교 학생 수가 대학원 학생 수보다 많다고 하여 초등학교가 대학원보다 더 성공적이고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빈 교회가 차라리 머리가 빈 사람으로 가득찬 교회보다 낫다. 빈 교회는 적어도 많은 사람을 끌어모아 그들의 머리를 비게 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약속한 쉼은 그가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고 그것을 ‘가벼운 멍에’로 씌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체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우리를 얽매는 종교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려고 하는 종교 본연의 목적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것 
-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으로 대략 
첫째, 교리의 절대화, 둘째, 획일적인 행동강령, 셋째, 무조건적인 복종, 넷째, 철통같은 소속감과 헌신, 다섯재, 전도열 등을 꼽을수 있다.

4. 하룻강아지 진리 무서운 줄 모른다. - 자기가 진리를 찾았다. 소유하고 있다면서 겁도 없이 떠들고 다니는 사실 자체가 진리에 대해 그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도덕경』, 힌두교의 경전 『캐나 우파니샤드』에도 궁극 진리로서의 브라만은 “아는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지는 것”이라고 했다. 
-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이 파놓은 흙무덤이나 약간 뒤적거려 보고, 지구 뿐 아니라 우주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만용을 부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5. 김칫국 - 누가 천당에 갈 수 있는가?

6. 땅 끝까지?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나오는 “너희는 가서……”의 구절은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 기록된 최고의 신약성서 사본들 속에는 이 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이방 전도를 생각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노라.”(마15:24)고 하고, 제자들에게도 “이방인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마10:5)고 했다. 
자기 제자들이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니지 못하여서”(마10:23) 세상 끝이 이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신학자 한스 큉 Hans Küng [Swiss Catholic priest] 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스스로나 그의 제자가 이방 족속들에게 가서 전도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더욱이 교회 같은 것을 세워 전도본부나 전투사령부 같은 것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7. 선한 사마리아인과 유마 거사 
8. ‘지금 여기’에서의 mission - 하나님 나라의 건설

-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정의와 질서와 평등이라는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실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 ‘들어갈’ 대상이 아니라 ‘구할’ 대상이다.

9.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 -김진홍 목사님의 경우 - 김진홍 목사의 『황무지가 장미꽃같이』(한길사,1999년) - 청계천 활빈교회를 시작하다가 남양만으로 옮겨 두레공동체를 일군 분이다. [그런데 김진홍 목사가 약자들편에 섰다가 왜 부자들에 붙어먹는 보수로 돌아섰나?]

10. 메타노이아 
- 『장자』제4편에 보면, 유명한 ‘심재’의 이야기가 나온다. 
- 공자는 자기가 말하는 ‘재’란 바로 ‘마음의 재’라고 한다. 의식구조의 개변을 뜻한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여기서 우리말로 ‘회개’라고 번역된 말의 희랍어 원문은 ‘메타노이아’이다. [즉 죄진것을 뉘우치라는것보다는] ‘의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민족을 위해 나아가 외치기 전에 반드시 “주의 영이 내게 임하시매” 하는 체험을 했다.

11. 그들도 우리처럼 - 종교간의 대화를 증진시키고 갈등을 해소한다고 해서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들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들판의 모든 꽃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 토인비는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독교와 불교가 의미 있게 만난 사건을 곱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기독교사상』(1991년 11월호)와 “깨침과 메타노이아.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기독교사상』(1996년 6월호) 등을 참조

❍ 부록 

1. 현각 스님의 책을 읽고 눈물 흘린 까닭은

-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오랜 동안의 번민과 고뇌 끝에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에 와서 ‘현각’스님이 되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인 “진리를 알지니”를 바로 실행하는 길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 왜 우리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미국화”를 위해 그리 광분해야 하는가? 
- ‘꼭막힌 기독교’는 유럽이나 미국 동부에서는 보기 드물고, 오로지 미국에서도 교육수준이나 경제상태가 지극히 저급한 남부 일부지역,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의 꼭막힌 선교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일부 피선교지에서나 서식하는 기형적 현상이다.

2. 예수 숭배 - “아직도 교회에 다닙니까?”

- 길희성 교수를 잠깐 소개하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려 시대의 스님 시눌의 선 불교 사상으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수 보살론”이라는 영어 논문도 있다.

- 예수는 너무나도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너무나도 하나님을 닮았다 하여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던 것이다. 이런 예수지만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으며,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면서 자기를 선하다고 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마가10:18). 예수는 또한 인간을 지극히 귀히 여기고 사랑한 사람이다. - 예수께서 현대 세계에 사셨다면,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 외에 자연 사랑의 계명을 추가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와 같이 예수께서 보여주신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람으로 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셧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의 신앙 이해와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님보다 자기들의 종교전통과 기득권을 더 사랑하고 인간보다 율법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처형당한 것이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자취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자기 아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도록 한 연후에야 비로소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는 계산적 하나님, 대가를 요구하는 야박한 하나님이 아니다.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상호주의를 고집하는 식의 하나님이 아니다. 전통적인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과 상호주의를 고집하다가 인간 측에서 도저히 그 엄청난 죄 값을 치를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 쪽에서 자기 아들로 하여금 대신 형벌을 받게 하고 인류의 죄를 용서했다는 얘기인데, 이거 병 주고 약 주는 식 아닌가?

-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 이유는 우리도 예수와 같이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우리 자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지, 우리와는 무관하게 2000년 전 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어느 한 사건 때문에 온 인류가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황당무계한 논리 때문이 아니다.

3. “오강남 칼럼을 읽고”를 읽고 - 반박에 대한 대답

❍ 참고 문헌 
1. 민영진. 『성경 바로 읽기』서울. 기독교서회, 1999. 
2. 오강남. 『도덕경』서울. 현암사, 1995. 『장자』서울. 현암사, 1999. 
3. 조태연 외. 『뒤집어 읽는 신약성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 찾기』(서울.기독교서회, 1999). 
4. 크리스쳔 아카데미 편. 『열린 종교와 평화 공동체』.서울. 대원출판사. 2000. 
5. 틱냩한.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오강남 옮김. (서울. 한민사, 1997).『귀향: 예수님과 부처님은 한 형제』오강남 옮김. (서울. 도서출판 모색, 2001).

 
 
 

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9. 13:54

세월호 앞에서 종교를 다시 생각한다 오강남

입력 201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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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 세월호 종교 다시 생각.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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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평;;

학자분들은 대부분이 정치나 대기업에 붙어서 살아가는것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강남 님은 참으로 독자적인 바른 종교관 정치관을 설립하신 훌륭한 분 입니다.

오 선생님의 글은 어떤 것을 읽어도 배울게 있는 가장 건전한 내용들 입니다.

 

종교, 경제, 사회, 교육이 변하려면 더러운 정치인들이 먼저 변해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되려는지 걱정 입니다.

국민 전체의 의식 개혁이 있어야하는데,,

제가 가장 좋와하는 책은 한비자 韓非子  Han Fei Tzu [Zi] 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제도가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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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님 글

 

- 기독교, 불교, 영성을 중심으로,

 

** 이 글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주관한 ‘열린논단(2014년 10월 23일)’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들어가면서;

 

《불교평론》 ‘열린논단’에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쯤 《도마복음》과 불교에 관해 이야기하라고 해서 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세월호 사건 앞에서 기독교와 불교가 각각 어떻게 반성해야 하고,

또 함께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문제로 몇 가지 이야기하라는 부탁을 받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말이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불교인으로서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기독교와 불교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 서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몇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리를 위해 제 이야기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기독교와 불교가 이런 일을 계기로 현 한국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마땅한가 생각해보는 문제입니다.

둘째, 통속적으로 받아들여진 기독교의 신관과 불교의 업/카르마 이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셋째, 현재 기독교와 불교가 표층 종교의 형태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는데, 일종의 종교적 발달장애에서 벗어나 심층 종교가 되도록 두 종교를 심화시키는 일에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습니다.

 

1. 함께 행동하고-인간화의 길에서 협력한다.

 

2009년 영국 BBC 방송국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욕망지수가 1등이라 합니다. 구태여 이런 연구결과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규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차적으로 그 원인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욕망, 욕심, 더 구체적으로 물질 제일주의, 배금주의, 성장 제일주의 같은 것이라고 하는 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화물을 과적했다든가, 평형수를 뺐다든가, 점검이나 감독을 소홀히 하고 봐주었다든가 하는 등등도 결국 생명, 안전 같은 것에 대한 관심보다, 무리를 해서라도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욕심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한국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기독교와 불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든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을 받들고 있는 기독교, 그리고 욕심이 모든 괴로움(苦)의 근본 뿌리라고 가르치고 무욕(無慾), 무아(無我)의 진리를 가르치는 불교, 이 두 종교가 지금껏 한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불교든 기독교든 몇몇 뜻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다가 지금까지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라든가 안녕이라는 대의(大義)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 교회, 자기 사찰의 성장에만 몰두해 오고, 개인적으로도 복을 많이 받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욕심에서 생겨난 이 엄청난 참사 앞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맹자님 생각이 납니다. 맹자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 모두 사지(四肢)를 가지고 태어나듯, 사단(四端)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입니다.

그러면서 맹자님은 우리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하면 바로 “인간이 아니라(非人也)”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런 인간 본연의 가능성이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자기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수오지심을 보더라도 청문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든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변호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 자동차로 출퇴근하면서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그것이 곧 죽임인 것처럼 운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가 과연 인간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맹자의 말이지만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 명심하고 함께 비인간화된 한국인들을 인간화(人間化)하는 작업에 동참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가 절대 빈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교와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손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가난이 생기는 정치․경제적 근본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불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오히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부대 이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조광작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되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을 빚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가난한 집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거나 용공분자다.”라고 하며 위정자의 눈물을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직접 책임질 일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일은 한국 교육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교육의 목표를 보통 ‘지덕체(智德體)’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지혜 지의 지(智)보다는 알 지의 지(知)가 강조되고, 덕이나 체 부분은 아예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는 오로지 입시나 입사를 위한 시험 예비학교 같은 실정입니다. 《유진의 학교》 저자인 교육철학자 한석훈 교수의 말처럼 이제 한국 교육은 지덕체가 아니라 ‘지덕성(智德聖)’을 목표로 하여 지금 실종되고 있는 영성 교육을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성(聖)’이란 조선 유학에서 목표로 삼던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성학’이라고 하고, 퇴계 이황 선생은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율곡 이이 선생은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지은 것입니다.

오로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월급을 위한 교육이라는 현실이 오늘의 배금주의, 출세지향주의를 낳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는 교육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계도 힘을 합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 생각됩니다.

결국은 ‘성(聖)’이란 ‘영성(靈性)’의 함양에서 가능한 것으로 영성은 결국 엄격한 의미의 종교적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신체지수(PQ),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를 지나서 영성지수(SQ)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욕망지수에서 1등을 할 것이 아니라 영성지수에서 최고점을 딸 날이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영성지수의 계발과 관계되는 책으로는 최근에 나온 Cincy Wigglesworth 지음, 도승자 옮김, 《SQ 21》(신정, 2014) 참조)

 

물론 우리를 비인간화시키는 요인이 많지만 그중 중요한 요인 하나는 남북분단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의 인권탄압은 논외로 하더라도, 남한 사회에서도 기득권의 이익에 저해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종북’이라 낙인찍어 매장합니다. 남북 분단 현실을 자기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남북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불교, 기독교는 이 일을 위해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참된 인간이 못 되도록 하는 비인간화의 장본인, 탐욕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암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암초를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불교, 기독교의 어깨 위에 놓여 있습니다. 두 종교가 함께 행동해야 할 이유입니다.

 

2. 함께 생각하고-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A. 기독교의 경우 : 신관(神觀)의 문제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먼저 기독교의 반응을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경우 자연히 신을 찾게 됩니다. 신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는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침묵하시는가, 신이 정말 계시는가 하는 등의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종래까지 기독교가 일반적으로 유지해온 초자연적 유신론(supernatural theism)에서 제공하는 신관(神觀)으로는 대답이 곤란해집니다.

이런 신관을 가지고서는 한국 대형 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 정도의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지난 6월 1일 설교에서 세월호 침몰을 두고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대로 안 되어 이 어린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전지전능하신 신이 모든 것을 아시고 나라를 구하려 어린아이들을 희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을 변호하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변호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살 뿐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유신론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들의 신관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래전 유대인들은 신이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출애굽 당시 유대인들은 야훼 신이 이집트 가정의 처음 난 아이들은 다 죽였지만, 문설주에 피를 묻힌 유대인 가정은 ‘건너 뛰어[逾越]’ 그들 집은 무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 후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자기들의 야훼 신이 자기들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야훼 신은 자기 민족, 자기편, 자기 사람들만 보호하고 인도한다고 믿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런 신은 이른바 ‘부족신관(部族神觀)’에 의한 신이었습니다. 《출애굽기》 혹은 《탈출기》에 나오는 신은 이런 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은 이웃 나라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들을 지켜주는 신이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외국의 침입에 쓰러지도록 하다니, 우리가 받들던 신이 도대체 어떤 신이란 말인가. 우리가 받드는 신이 이방 신들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이들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부족신관이 도전을 받아 크게 바뀌었습니다.

자기들이 받들고 있던 신은 이제 자기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 함께 다스리는 우주적 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보편신관(普遍神觀)의 등장이었습니다. 《제2 이사야서》 등에 나타나는 신입니다.

그리고 또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족신관에 입각한 신이 아니라 우주적인 신, 보편적인 신, 이 세상을 공평하게 다스리는 신, 그러면서 자기들을 선민으로 특별히 지켜주시는 신이라 믿어 믿어왔는데, 나치 치하에 유대인 6백만 명이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비극 앞에서 그들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이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관은 다시 크게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태생의 엘리 위젤이라는 유대인 소설가가 쓴 《밤(The Night)》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보면, 나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불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나의 믿음을 영원히 소멸해버린 그 불길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절규했습니다. 또 교수대에 달렸지만 몸이 가벼워 금방 죽지 못하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어린아이를 보며, 신도 “그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되고 있다.”고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많은 유대인은 자기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유신론적 신관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서양에서 불교를 비롯하여 동양 사상을 선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유대교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도 근본적으로 고대 유대교의 부족신관을 그대로 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인들 중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자기를 믿고 교회에 잘 다니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을 특별히 더 사랑하시고 복을 많이 주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지켜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제가 4월 2일 자 〈한겨레〉 칼럼에서 〈노아〉라는 영화를 두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 영화가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잔뜩 기대했는데, 막상 그 영화가 개봉된 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르게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여 관람 거부 운동을 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글에서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노아 이야기는 황당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만들고 나서 얼마를 지나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사람들을 물로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오로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 노아와 그 가족만을 살리겠다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1980년대 말 시작된 기업 경영 전략으로 ‘식스 시그마(six σ)’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전략에 의하면, 제품을 만들 때 불량품 수, 혹은 결함 발생 수를 제품 백만 개당 3.4개 이하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량품이 0.00034% 이하로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 합니다만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어느 제품 회사든 불량품이 10% 이상 나오는 것은 허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됩니까?

의인 노아의 식구 여덟 명만 살리고 그 당시 전 인류를 다 불량품으로 폐기처분을 한 셈입니다. 말하자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이 만든 인간 중에 거의 다가 불량품이었다는 뜻입니다.

어찌하여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데 불량품이 0.01%가 아니라 거꾸로 99.99%일까요.

어찌하여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사람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악하게 될 줄도 모르고 만들었을까요? 이런 경우 신은 ‘전지’도 아니고 ‘전능’도 아닌 것 아니겠습니까?

또 성경에 의하면, 세상이 끝날 때 신은 사람들을 심판해서 착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지금 세상 형편 돌아가는 것을 볼 때 틀림없이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최후심판이란 최종 품질검사 단계인 셈인데, 이때도 합격품보다 불합격품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신이 자기 실수 때문에 생긴 불량품들을 지옥불에 던지고 영영세세토록 그 속에서 타고 있으라고 한다니, 그런 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요?

물론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격체로서 신을 변호하는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의 올바름을 변증하려는 노력입니다.

가장 많이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인간이 그것을 잘 못 써서 결국 이런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준 자유의지가 왜 이런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이것도 완전한 해답은 못 된다고 하는 것이 신학적 결론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의 변호를 받아야 그런 신을 참된 신으로 받들 수 있을까요? 인지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이런 ‘신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고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가볍게 생각하고 받들어 오던 신은 이제 ‘실종된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신의 실종은 어느 면에서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런 유신론적 신관에서 묘사하는 신이 아니라 더욱 의미 있는 신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신론적 신관의 한계에 대해서는 Richard Dawkins, Daniel Dennett, Sam Harris 등의 저술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류영모 선생은 15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20세에 오산학교에서 가르칠 때 수업 전에 기도도 하고 학과목 시간에도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등,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한 분입니다. 그러던 그가 2년 후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던 동생이 19세의 젊은 나이로 죽는 것을 보고, 그리고 《도덕경》과 톨스토이의 글을 대하면서, 기독교가 종래까지 무비판적으로 받들던 그런 신을 버렸습니다. 그의 신관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 그의 신은 이른바 “없이 계신 이”가 된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이나 류영모 선생뿐 아닙니다. 현대 많은 그리스도인도 ‘저 위에 계시는’ 하느님, 그러면서 역사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하나하나 관장하시는 하느님, 특히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간섭하는 신(interventionist God)”이라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뉴턴, 제퍼슨, 프랭클린, 볼테르, 루소 등이 주장하는 이신론(理神論, Deism)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신학자들, 심지어 상당수의 목회자 사이에서도 이런 초자연주의적이고 초월적이고 간섭주의적인 신이라는 신관을 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런 신을 상정한다면 인간사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마치 뉴턴의 역학을 가지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저 위에 계시는 초월적 신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트린 사람은 1963년에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라는 책을 쓴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셸비 스퐁(John Shelby Spong) 신부가 쓴 베스트셀러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 (김준우 옮김)라는 책에서 ‘유신론의 종말 [디마이즈 (dɪˈmaɪz) Demise of Theism]’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심장(The Heart of Christianity)》 (김준우 옮김)을 쓴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도 기독교를 둘로 나누어 지금까지의 기독교를 ‘재래 기독교(conventional Christianity)’ 혹은 ‘천당/지옥 기독교(Heaven/Hell Christianity)’라 하고 오늘 새롭게 등장하는 기독교를 ‘신흥 기독교(newly emerging Christianity)’라고 하였습니다.

저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는 기독교에서 인간의 내적 변화(transformation)를 강조하는 기독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쓴 《예수는 없다》 (현암사, 2001)도 같은 맥락에서 쓰인 것이고, 최근 출간된 이찬수 교수의 《유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동연, 2014)라는 책도 종래까지 받들어오던 유신론적 신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 (Phil Zuckerman)이 쓴 《신 없는 사회 (Society without God)》 (마음산책, 2012)라는 책이 있습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신이 없는 이런 세속 사회가 사회복지, 교육, 건강, 인권, 평등, 범죄율, 부패지수, 자살률, 행복지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신을 그래도 많이 믿는다고 하는 미국보다 더 잘 산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미국의 경우 교회 출석률이 다른 어느 주보다 높은 루이지애나 주가 미국 전국 살인범죄 사건 평균수의 2배가 된다고 합니다.

교회 출석률이 비교적 낮은 동북부 버몬트 주나 서부 오레곤 주는 전국 평균치보다 낮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무신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교회 다니기를 그만해야 한다는 주장도 물론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신관이나 교리나 설명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받들 수 있는 신은 어떤 신이어야 할까 진지하게 검토하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습적인 신관, 초자연적 신으로서 신관을 심화시켜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초자연적, 초월적 신, 저 위에 계셔서 낮고 천한 저희 인생들을 굽어살피시는 하느님 대신, 우리 인간들 속에 계시는 하느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는 그런 하느님, 그런 신관으로 업그레이드된 신관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1886 ~ 1965] 가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의 눈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틸리히에 의하면, 우리가 신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신은 ‘personal’ 하지만 ‘a person’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을 모실 때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행 17:27, 28)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B. 불교의 경우 : 카르마 / 업의 문제

이제 불교의 경우를 생각해봅니다. 세월호 같은 참사를 두고 불교에서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해답은 이를 업(業, karma)의 관점에서 보라는 것일 것입니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된 대로의 업이란 사람들이 몸[身], 입[口], 생각[意]으로 짓는 선악의 ‘행위’를 말합니다.

과거에 행한 행위로 현재에서 거기에 대응하는 응보를 받고, 다시 현재의 행위로 미래에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과거에 행한 일의 업보입니다. 착한 행위는 즐거운 열매를 가져오고[善因樂果], 악한 행위는 괴로운 열매를 가져온다[惡因苦果]는 일종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입니다.

 

물론 업 사상도 심층적 뜻이 있고, 이를 영적으로나 더욱 복잡한 이론으로 풀어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과응보 같은 상식적으로, 그리고 통속적으로, 심지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런 업 사상이 과연 세월호에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비극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희생자의 가족이나 그것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업 / 카르마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통속적 태도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잘살고 악한 사람이 잘못 사는 것을 보기보다 오히려 악한 사람이 더 잘살고 선한 사람이 잘못 사는 경우를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집단적으로도 적용되는 ‘공업(共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미에서 무자비하게 인종 말살을 획책한 백인들이 오늘 버젓하게 잘살고 있는 경우 같은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상식적 업/카르마 사상의 한계를 말하는 불교 지도자 세 사람을 예거하고자 합니다.  첫째, 달라이 라마; 둘째, 종밀; 셋째, 암베드카르입니다.

 

첫째, 달라이 라마입니다. 그는 최근에 낸 그의 책 《종교를 넘어서 (Beyond Religion)》 (김영사, 2013)에서 인과응보로서 카르마 사상이 윤회의 가르침과 함께 “불교 윤리와 내적 가치의 함양을 위해 힘 있는 기초”가 되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이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사후 생명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어서 그는 이런 종교적 설명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지극히 중요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오늘같이 종교가 많은 이들에게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과학 시대에”는 더 이상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카르마 이론 같은 종교적 바탕에 근거하지 않는 내적 가치와 윤리체계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달라이 라마는 구체적으로 심리학, 신경과학, 임상과학 같은 분야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새로운 윤리적 근거로 ‘영성(spirituality)’을 제시합니다. 그에게 영성이란 ‘종교와 관계없이 사랑과 자비와 애정으로 기울어지는 인간 내면에 깔린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 한 가지가 상호의존의 원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 자신의 안녕이 다른 이들의 안녕과 직결됨을 직시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될 때 결국 윤리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최후 심판이나 불교의 업보 사상과 관계없이 가능하게 되는 윤리를 그는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s)’라 부르고 있습니다.(한국어 번역판에는 ‘현세적’이라 했습니다. secular는 종교와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세속적’이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조언은 그가 “불교인이나 종교 신봉자로서가 아니라 거의 70억 인구 중 한 인간으로서, 인류의 운명을 걱정하고 인류의 미래를 보호하고 개선하기를 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는 충언이라 밝히고 있습니다.(영문 pp.15~20 참조)

둘째, 한국 조계종의 창시자 지눌(知訥) 사상에 크게 영향을 준 당나라 승려 종밀(宗密, 780~841)입니다. 그는 그의 저술 《원인론(原人論)》에서 불교가 유교와 달리, 카르마의 가르침으로 윤리적 책임 문제를 거론한다는 점에서 카르마 교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불교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르침의 종류를 심천(深淺)의 순서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할 때 카르마에 입각한 가르침을 제일 하급으로 취급했습니다.

그 다섯 가지란 인천교(人天敎), 소승교(小乘敎),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입니다.

인천교란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느냐 천상에 태어나느냐 하는 업보를 궁극 관심으로 삼는 입장을 말합니다. 이런 인과응보적 태도는 ‘내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제5단계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의 가르침과 너무 먼 저급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카르마 교리의 방편적 효용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최상의 가르침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셋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 1956)의 경우입니다.

그는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온갖 수모와 천대를 받으면서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으로서는 두 번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뭄바이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다음,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으로 유학하여 경제학과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32세에 인도로 돌아가 변호사와 노동장관, 제헌국회의 제헌위원회 의장, 네루 내각의 법무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동시에 불가촉천민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나 힌두교로서는 이런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1935년 힌두교를 떠났습니다.

이슬람, 시크교 등을 알아본 다음 결국 만인평등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불교로 귀의했습니다. 1955년 인도불교협회를 조직하고 그다음 해 1956년 부처님 열반 2천5백 주년 기념일인 10월 14일 부인과 함께 삼귀의를 외우고 계를 받았습니다.

불가촉천민 50만 명이 그의 호소에 호응해 불교인이 되었습니다. 불행히 건강 악화로 그해 12월 65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5년 만에 불가촉천민 3백만 명이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1990년에는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라는 인도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암베드카르는 죽기 3일 전에 탈고한 그의 유작 《인도로 간 붓다 (The Buddha and His Dharma)》에서 불교의 카르마 이론을 배격합니다.

불가촉천민은 과거의 업에 의한 결과로 불가촉천민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사성(四姓) 카스트 제도를 교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마누 법도론》을 불태워버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는 사회 불평등이 생긴 것은 카르마 때문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요인이므로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고치기 위해서는 카르마 이론에 순응하지 말고 정치․경제적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기독교의 신관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모두 신의 소관으로 돌리는 태도가 인간 스스로의 노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을 믿지 않는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오히려 재래의 신관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보다 훨씬 더 잘사는 복지국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천박하게 이해된 대로의 업 사상이 인간을 무력한 숙명론자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경제적 불의나 인권유린 같은 사태에 접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이나 집단이 쌓은 업의 결과로 취급하고 그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요인을 밝히는 데 등한히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차라리 안이하게 피상적으로 이해된 대로의 업/카르마 사상이 없어지는 데서 참된 인간성 회복과 복지가 꽃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종교는 일단 인과응보와 같은 율법주의적 태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교에서도 의(義)와 이(利)를 대조시키고, 의를 따르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이를 따르는 사람을 소인이라 합니다. 의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할 옳은 일이기에 하는 것이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8세기 유명한 수피의 성녀 라비아의 기도에서 더욱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소서.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3. 함께 깊어지고-영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저는 평소 어느 종교에나 표층이 있고 심층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불교에도 표층과 심층이 있고, 기독교에도 표층과 심층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 종교, 특히 불교와 기독교가 표층에서 심층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제 나름대로 몇 가지를 간략하게 열거해 봅니다.

 

첫째 표층종교는 지금의 나(現我), 이기적인 나, 불교 용어로 하면 탐·진·치로 찌든 나, 기독교 용어로 하면 죄인인 나를 위하여 애쓰는 종교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심층종교는 이런 나를 부인하거나 극복하고 비울 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나, 참나, 큰 나, 온전한 나[全我]를 찾으려는 종교입니다. 불교 용어로 하면 내 속에 있는 불성(佛性)을, 기독교적 용어로 하면 내 속에 있는 신성(神性) 내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갈 2:20)를 찾으려 노력하는 종교입니다.

 

다 같이 절에 다니거나 교회에 다녀도, 다 같이 시주를 하거나 헌금을 해도, 다 같이 기도를 해도 지금의 내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되기만을 바라는 종교는 표층종교요, 그것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욕심을 버리고 참된 나를 찾기 위한 수단이라 여기는 종교는 심층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심층 불교에서는 무아(無我, anātman)를 강조하고 심층 기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마 16:24)고 합니다.

 

둘째, 표층종교가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한다면, 심층종교는 ‘이해’나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표층종교는 자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나 율법 조항을 무조건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는 반면 심층종교는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을 벗고 새로운 눈뜸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눈뜸을 일반적인 용어로 고치면 새로운 의식, 의식의 전환, 혹은 ‘특수 인식능력의 활성화’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경우 심층 불교는 우리가 다 잘 아는 것처럼 ‘깨치신 분’이라는 뜻의 붓다가 가르치는 ‘깨침을 위한 가르침’을 앞세우는 종교입니다. 오로지 문자나 전통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깨쳐서 그것으로 해탈의 경험을 하라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심층 기독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하는 예수의 명령을 따르는 종교입니다. 여기서 ‘회개’라는 말의 본래 뜻은 메타노이아(metanoia), 곧 ‘의식의 변화’입니다.

불교나 기독교의 심층은 이처럼 기복신앙이나 번영신학, 장례불교 같은 물질주의적이고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적이고 상업주의적인 표층종교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첫째 특징과 관련된 것입니다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본 것입니다.

표층종교가 절대자와 나를 분리된 두 개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 데 반해, 심층종교는 그 절대자를 신이라 상징적으로 의인화했을 경우 그 신이 내 속에 계신다고 합니다.

나아가 내 속에 계신 그 신이 바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 신과 나는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그것을 “Tat tvam asi.(梵我一如)”라고 하고 우리나라 동학(東學)에서는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절대자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적 입장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교의 경우 불성이 내 속에 있다는 가르침, 혹은 화엄의 이사무애(理事無礙), 사사무애(事事無礙), 상즉(相卽), 상입(相入)의 이론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기독교의 경우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요17:21)라는 말에 함축된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표층종교는 그야말로 경전의 표층적인 뜻에 매달리는 종교라면 심층종교는 경전의 속내, 더 깊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종교입니다. 심층종교가 문자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 우주 만물이 하나라는 체험 등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불립문자(不立文字)로 강조하고 기독교에서는 “문자는 사람을 죽인다”(고후 2:6)고 한 바울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표층종교는 대체로 자기 종교만이 오로지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심층종교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절대적 진리는 어느 누구의 독점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군맹무상(群盲撫象)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코끼리를 만진 시각장애인들이 같이 앉아서 서로 대화하며 실재의 코끼리에 가까운 코끼리 상을 찾자는 것입니다.

저는 적어도 이런 다섯 가지 심층적 요소를 갖춘 종교를 영성적 종교라 부르고 싶습니다.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거장 카를 라너(Karl Rahner)는 21세기 종교가 심층적이고 영성적인 종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한국 종교가 표층에서 심층으로 심화하여 진정으로 영적 길잡이가 되도록 하는 데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21세기 이 두 종교에 지워진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나가면서;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가 최고 책임자는 ‘국가개조론’을 부르짖었습니다. 국가개조가 실행에 옮겨질 기미는 아직까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책임 소재와 사건의 진상을 묻는 일을 그만두고 국민 모두가 이번 일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하여, 일종의 책임 회피, 사건 은폐를 조장하는 발언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국민 개조가 있으려면 우선 종교계, 특히 한국 종교 인구의 절반씩을 차지하는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 자기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과 불의 부정을 통회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위로하는 일이 있어야 하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래까지 거의 무의미하게 되풀이하던 교리나 관행을 새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여 철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에 표층적인 면이 필요할 경우도 있지만 이제 표층에만 머무는 종교적 발달장애에서 벗어나 종교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종교의 심층으로 심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종교 전체가 침몰하는 일이 없으려면 불교와 기독교가 손잡고 이 시대, 이 사회에 걸맞은 삶의 지침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종교로 발돋움해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결국 종교의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오강남 /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길벗들의 대화》 《도덕경》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장자》 《예수는 없다》 《예수가 외면한 그 한 가지 질문》 《또 다른 예수》 등과 번역서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예언자》 등이 있다. 현재 ‘경계너머 아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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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독자 의견;

 

기독교 불교인들은 자기들은 행동을 개같이 하면서

‘Jesus love you’ 라고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역겹게 들리고,

불교를 10년 이상 믿었다면서 비종교인보다도 못한 행동을 보면서

왜 종교가 필요한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교회나 절에가서 사장처럼 권위와 지배자가 되려고한다면 그런 종교는 버리세요.

예수님은 남을 다스리려고 십자가에 달리지 아니했습니다.

 
 
 

먹거리 음식 FOOD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8. 06:55

물 알칼리성 마시지말라 건강에 나쁘다.

Ionized water Side Effects,

 

거짓말 ▶ 제조회사들 “몸 산성화 막고 독소 제거 질병예방”

거짓말 ▶ 몸은 물 흡수때 기관에 맞게 pH 지수 변화시켜,

 

화일첨부

물 알칼리성 마시지말라 건강에 나쁘다.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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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그냥 마시지 왜 알카리 산성으로 분해 이온화해서 마시는가?

정수기 파는 회사들의 상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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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칼리수의 부작용 및 위험성;

 

부정적인 부작용의 예로는 박테리아를 죽이고 다른 바람직하지 않은 병원균을 혈류로 유입시키는 천연 위산성의 저하가 있다.

 

또한, 체내에서 알칼리수의 전반적인 과잉은 위장 문제와 피부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

알칼리성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신체의 정상 pH를 자극하여 대사 알칼리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 구역질 나다,

- 구토,

- 손 떨림,

- 근육 경련,

- 극단이나 얼굴이 따끔따끔하다.

- 혼동,

알칼로스는 또한 체내 칼슘의 자유 감소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것은 뼈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저칼로리혈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알칼리수을 마시기 때문이 아니라 부갑상선 기능 저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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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칼리성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내용의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몸의 산성화를 막고 독소를 제거하며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다. 매일 몇 잔씩 마셔야 하는 것이 물인데, 알칼리성(alkaline) 물에 정말 그런 효과가 있는지, 물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꾸준히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모두 마케팅 판매전략 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알칼리성 물이 수돗물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증거는 없다.

그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과학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캘거리 의과대학의 영양사이자 역학학자인 타니스 펜톤 박사는 말했다.

 

pH 지수는 용액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를 0~14의 숫자로 나타낸다.

7 아래는 산성, 7 이상은 알칼리성을 나타낸다.

순수한 물은 pH가 7인 중성이지만, 수돗물은 미네랄 함량에 따라 자연적인 변화가 있다. 대부분의 병물은 약간 산성이고, 탄산음료와 주스는 훨씬 더 산성이다.

 

알칼리성이라고 판매되는 생수는 보통 pH가 8에서 10사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물은 샘이나 지하수에서 나온 것으로서 녹아있는 광물들 때문에 자연적으로 알칼리성이다. 다른 물들은 이온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온수 기계는 가정용도 판매되고 있다.

 

알칼리성 물 회사들은 알칼리 물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독소를 제거하여 우수한 수분보급 작용을 한다고 막연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떤 회사들은 이온수가 두통에서부터 암에 이르는 모든 병을 예방하는 만병통치의 생명수라는 식으로 광고한다.

하지만 pH가 더 높은 물을 마시면 몸의 pH 지수를 바꿀 수 있다든가, 그 결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혈액은 pH 농도가 7.4 정도에서 엄격하게 조절되는 한편 위는 pH 1.5에서 3.5 정도로 매우 산성이어서 염산을 분비하여 단백질을 소화하고 음식매개 병원균을 죽인다.

펜톤 박사는 약간 알칼리성인 물을 마시면 위의 염산은 혈액에 흡수되기 전에 빠르게 중성화된다고 말했다.

 

알칼리성 물 회사들의 자금 지원을 받은 몇몇 연구는 이런 물이 운동선수들의 수화작용(hydration)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 잠재적 이익은 적었고, 수화성을 향상시키는 더 쉬운 방법은 단지 물을 마시는 것이다.

 

2016년 펜튼 박사와 동료가 실시한 연구 리뷰에서는 알칼리성 물이나 알칼리성 음식이 암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작년에 발표된 연구는 식물성 식단과 알칼리성 물을 섭취하면 위산이 식도까지 역류하는 심각한 인후두 역류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의 주요 저자인 뉴욕 펠프스 병원의 후두전문의 닥터 크레이그 잘반은 “환자들이 채식 식단으로 전환하면서 알칼리성 물을 마시면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환자들의 회복은 대부분 물 때문이 아니라 식단 변화에서 오는 것”이라며 일단 증세가 호전되면 계속 알칼리성 물을 계속 마실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알칼리성 물로 인한 잠재적 위험의 조짐도 있다.

알칼리성 물을 마신 쥐의 새끼들은 성장 장애가 있었고 심장 근육에 손상을 보였다.

또한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한 마을에 있는 수도 공장에서 실수로 물의 pH를 12로 올렸을 때, 피부 화상이 뒤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병에 들어있는 알칼리성 물의 pH가 그렇게 높지는 않겠지만 높은 pH가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닥터 펜톤은 “건강에 위험하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알칼리성 물의 광고와 판매는 계속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있지도 않은 건강 효과에 현혹되지 않기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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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nized water Side Effects,

 

ionized water harmful,

 

high pH could make your skin dry and itchy or cause an upset stom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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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sible side effects and risks of alkaline water,

Although alkaline drinking water is considered safe, it may produce negative side effects.

 

Some examples of negative side effects include the lowering of natural stomach acidity, which helps kill bacteria and expel other undesirable pathogens from entering your bloodstream.

 

Additionally, an overall excess of alkalinity in the body may cause gastrointestinal issues and skin irritations. Too much alkalinity may also agitate the body’s normal pH, leading to metabolic alkalosis, a condition that may produce the following symptoms:

- nausea,

- vomiting,

- hand tremors,

- muscle twitching,

- tingling in the extremities or face,

- confusion,

 

Alkalosis can also cause a decrease in free calcium in the body, which can affect bone health. However, the most common cause of hypocalcemia isn’t from drinking alkaline water, but from having an underactive parathyroid 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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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can be high or low in pH, but if it is too high or too low, it can have adverse effects.

 

Water that is too alkaline has a bitter taste.

It can cause deposits that encrust pipes and appliances.

Highly acidic water may corrode metals or even dissolve them.

안녕하세요?

자연의 품에서
자연의 뜻으로 정화된물이
진정한 생명수이지요


언제나 행복한 날들이 되세요

 
 
 

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7. 15:14

또 다른 예수, 도마복음, 오강남

 

1. 저자 오강남에 대하여

학력 및 경력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맥매스터대학교대학원 종교학과 박사 (화엄 華嚴 법계연기 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Regina university of Canada,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역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역임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Regina university of Canada,

 

대표저서,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를 썼으며,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를 펴냈다. 2011년에는 대담집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인류의 영적 스승 60명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본 『종교, 심층을 보다』을 출간해 종교의 대중적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그가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

'종교 다원주의'를 말할때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다원주의가 "내 종교만 옳다, 내 종교의 경전은 문자 그대로 옳다"는 독단까지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다원주의란 그런 '독단'을 배격하자는 것이지, 이런 독단까지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233)"

거기에 우리 불교의 사상가 원효의 주장을 덧붙였다. 

"원효는 언제나 어느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거나 독단화하면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입장을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상반된 견해들이 실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강조(238)"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관점이다. 민주주의와 조화를 말할 때, 근본주의적 입장에 기반 한 독단적인 주장과 특정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발언들 까지도 포용하고 가야한다는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과 기만은 떨치고 가야한다.

 

종교의 금기를 깨다

기독교적 배경에서 출발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동양철학의 비주류인 <도덕경>, <장자>의 번역서를 통해서 였다.

그 또한 동양고전의 번역을 통해 '종교란 이런 것이로구나, 이 책을 통해 좁은 시야를 탈피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그 뒤로 2001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다양한 종교 관련한 번역서와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다가 최근에 <종교, 심층을 보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라는 책으로 종교 간의 화해, 깊은 곳에서 연결된 종교의 심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사적인 장소에서 금기시 되는 주제였다. 최근에 와서 이 금기가 깨지고 있는데, 정치적 무관심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종교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각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원래 종교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대중의 열망이 강해졌다.

종교가 금기시 되는 것 자체가 종교의 고립적, 배타적 해석을 가져온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이 건강한 종교의 모습을 되찾는 길이 될 것이다.

 

현대인의 한 흐름으로 보이는 무신론과 반종교적인 분위기도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면 무조건적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근본주의적인 성경해석과 전도와 헌금을 강요하는 종교의 행태 때문에 일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며, 물신숭배적 사회 분위기와 신학의 생명력 상실이 다음 이유일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소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종교가 본래 가지고 있는 큰 가치인 '사랑, 평화, 평등, 조화, 포용, 자유' 에 목말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종교의 금기를 깨는 저자의 시도는 시대적 과제로 평가할 수 있다.

 

예스인터뷰 2011.6.1. (발췌)

아하, 종교! 깨달음의 체험

 

대담자: 오강남(오), 성해영(성), 김수영(글/사진)

 

책을 보면 종교에 대한 여러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자리도 그렇게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정의해주신다면요?

 

오: “종교가 뭐냐는 대답은 수없이 많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 정의는 ‘깨달음을 통한 자기 변혁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개구리가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새로운 의식을 가진 새로운 개구리로 바뀌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산을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고 ‘아하, 아하’ 깨닫게 되는데. 저는 종교를 이런 ‘아하’ 체험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성: “종교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알려주기도 하고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뭐든 한국에만 오면 약효가 세진다?

오강남 선생님께서는 보수적 종교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다가 어떻게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되셨나요?

 

오: “종교학과에 들어가 이런 저런 종교를 접하면서였죠. 특히 캐나다에서 불교를 연구하면서, 불교 도덕경, 도가 사상 선불교 이런 사상을 접하면서 ‘종교란 것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좁은 시야를 탈피한 거죠.”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는 도발적인 제목 못지않게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보수적인 개신교들로부터 협박도 당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오: “캐나다에 있었으니까요.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좌중 웃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타락했다고……. 누님들 중에서도 절더러 타락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받은 이메일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훨씬 컸습니다. ‘이런 게 기독교라면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겠다’ ‘성경이 이런 거라면 성경을 다시 읽겠다’어느 보수적인 교회 목사님은 이런 메일도 보내셨어요. ‘교회 목사라고 하면 다 이 책을 반대할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교직원과 다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들었고요. 책 내고 나서 강연 할 때, 강의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거라고 협박하는 전화가 와서, 경호원도 부르기도 했는데요, 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강연할 때 기독교인, 불교인들이 고루 모였는데 반응이 뜨거워 인상적이었죠.”

<예수는 없다>를 집필 할 때, 책을 내면 ‘어떤 반응이 있겠구나.’ 예감은 하셨죠?

 

오: “예감했죠. 한국 풍토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나’지금 이런 식으로 있어선 안되겠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한국 기독교인만 이 바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적입니다. 즉 문자의 표피적 뜻에 집착합니다. 둘째, 모든 것을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심층차원의 종교는 문자를 넘어서 있는 더 깊은 뜻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글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더욱이 심층종교는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참나, 큰나, 얼나로 부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p.39)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입니다. 주로 ‘깨달음’은 불교, ‘믿음’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가치인데 특별히 불교 쪽 색채가 짙은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심층종교로 발전하는 첫걸음 역시 ‘보살의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 “기독교에도 깨달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기독교를 단순화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깨달음을 강조하는 걸 거부당해요. 그런 경전은 파기처분 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마복음’이에요.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깨달으라고 해요.다른 종교를 보더라도, 의식의 변화(깨달음)를 통해, 안보이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요소에요. 새로운 인식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자유를 누리자는 거죠. 불교책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 기회에 자극을 해서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이야기다,라는 얘길 하려고 했죠.”

 

성: “깨달음이 심층 종교에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모든 개인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개인의 인식능력이 확장됩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깨달음이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책에서는 개신교를 비롯한 일신교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개인이 심층종교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신교 전통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 “심층종교가 목표지만, 그렇다고 표층종교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원이 좋다고 초등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다만, 초등학교에서 잘 훈련시켜서 심층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현실은 자꾸 초등학교에 머물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만 학생수가 많죠. 상당수가 퇴학을 하고 있고요.”

 

성: “일신교 정착 과정에서 심층의 측면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 거죠. 표층적인 신 관념이라든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유일신 종교가 반드시 타자에 배타적이거나 힘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유일신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 사랑을 주고 받고 대화할 수 있는 신입니다. 불교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으레 궁극적 실체가 ‘공’이다 하면, 막연하기만 한데, ‘사랑의 신’이라고 하면 확 와 닿잖아요. 기본적으로 매력을 갖고 있는 종교죠.”

 

오: “산이 그냥 산일 때는 산입니다. 매일 산에 가서 산을 어머니다, 나를 품어준다. 생각하면 관계를 맺게 되는 거죠. 인격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relationship)를 갖게 되요.

인도에서는 종교적 궁극 목표에 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지혜, 신, 행동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

인격적 관계를 맺는 곳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심층종교로 들어가기엔 현대인이 너무 바쁜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와 심층종교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성: “심층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가능합니다. 심층종교란 신이든 실제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면 깊숙한 있다고 보니까요. 이렇게 보면. 세상에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이 자신을 깊고 넓게 만드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도 종교는 특정 공간에, 특정 경배 대상을 만날 때만 종교생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비해 심층종교는 바쁜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적합한 종교죠.(웃음)신 자유주의 시대는 한마디로 경쟁사회잖아요. 심층 종교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 내면에 심층종교적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불성이든 신이든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을 싸우고 이길 존재로 볼 수 없겠죠. 함께 가는 존재로 보일 거예요.”

그럼 지금 일반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좀더 건강한 고민을 하려면,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일 정도가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오: “더 알고 싶으면. 성해영 교수님께 가라고 해요. (좌중 웃음)”

 

성: “선생님이 수십 년 공부한 내용과 제가 뒤따라 배운 이야기가 많으니까 이 책이 도움이 될 겁니다. 종교는 양날의 칼이에요. 자기나 타인을 위할 수도 있고 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살인사건까지 일으키는 게 종교죠.

종교가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갖는 건데, 지금 사람들은 너무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죄를 짓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에 가려고 하고, 고통스러운 이 땅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종교활동을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경우일 거예요.”

심층종교는 종교를 신나는 종교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상벌에 관계없이 자기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져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자연스럽게 참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까요?(p.179)

 

 
 
 

먹거리 음식 FOOD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7. 02:28

마켓판매 고사리를먹고 구토 통증,

 

3일전 마켓에파는 물고사리가

$3.99에 세일을해서 사가지고와서 삶아서

볶고(따로 조리법이없어서 잠깐삶았어요)

 

남편과 먹고나서 제가 구토.설사. 어지럽고 목에

떫은이물감과 타는통증등...괜찬다시퍼서

자고 다음날 고사리삶은 냄비에 토마토를 삶아서

믹서에 갈아마셧더니 얼굴에 머가 나고 ..

해서 고사리삶던 그릇. 믹서기. 접시 다 버렷는데

깜빡하고 오늘 그때 고사리 삶던 젓가락으로

저녁을 먹었어요.

 

그리고나서 또다시 목이 타는듯하고 두통에 정말

너무 힘듭니다.

보험도없어서 당장 병원비걱정에 못가고있는데

네이버찾아보니

고사리 독성이 방광암을만든다함니다.

 

궁금한것은

이 물고사리가 따로 조리법이없어서

오래 삶지도않고 먹었는데 ..삶아서 판매하는게 아닌지..

또 이럴땐 어느병원 독초해독,,

가게되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많은 분들의 의견 부탁드립니다.

사진 첨부함니다.

 

다른분들도 조심하셔서 저같은 일을 피하셨으면함니다.

 

----------------

댓글 1, 독성 제거하라는 경고나 문구가 있어야 하는데,,

먹는 사람들이 병원가면 그 돈을 마켙이 주려는지?

 

댓글 2, 윽!! product of China.

 

댓글 3,

고사리에 독성성분이 있어 30분이상 끓이고 12시간 물에 불려주며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합니다.

 

고사리 독성 제거하는 비법,

https://www.youtube.com/watch?v=0ZqjTbKD_SM

 

 
 
 

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6. 15:08

현실도피적 열광은 행복 아니다, 오강남 11P

종 현실도피적 열광은 행복 아니다 오강남.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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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종교학자,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honorary(emeritus) professor, in Regina University of Canada]

 

예수·부처 등 선각자들은

지금의 나에서 해방되어

‘참나’를 찾으라고 해,

 

일상의 어려움 같은 것은

새옹지마·고진감래 원리를

기억하며 기다리는 편,

 

에리히 프롬의 안식일 의미

6일은 소유 위해 산다 하더라도

하루는 존재 위해 살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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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다섯번째 멘토는 종교학자 오강남(79)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다

 

오강남 사진,

기복적인 표층신앙인, 이기적 나를 벗어나 참나로 나아가는 심층신앙을 진정한 평화와 안락의 길로 제시하는 오강남 교수.

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728/imgdb/original/2021/1123/20211123503809.jpg

 

오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마스트대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지냈으며,

<예수는 없다>와 <장자> <도덕경>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

<종교란 무엇인가>등 베스트셀러의 저자다.

지난 2006년 은퇴한 뒤엔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강좌나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귀국하지 못하다가 2년 만에 귀국한 오 교수를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여기저기 강연초대에 불려 다니느라 분주하다. 며칠 전엔 오대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오르는 중에 달리는 차를 피하다 넘어져 눈 부위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미쳐 못 본 고국의 산하를 둘러볼 생각에 하산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면서도, 한국이 캐나다보다 훨씬 발전된 전자시스템을 보여 매번 놀라게 된다며 고국의 발전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갤럽이 한국의 종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대별로 변화는 있지만, 한국인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로 ‘마음의 평안’이란 답이 60~70%로 가장 많다. ‘죽음 뒤의 영원한 삶’이나 ‘복을 받기 위해’나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를 압도한다. 종교의 정수를 보여준 성현들의 사상을 예리하게 간추려내고 해석해 대중들에게 전해준 종교학자가 보는 ‘마음의 평안법’은 무엇일까. 개신교 가정에 자라 서울대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 재학 때까지도 기독교를 근간에 두고 공부하다가 캐나다에 유학 가서 불교와 노장 등 동양종교사상을 접하고,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의식의 큰 전환을 경험한 오 교수는 동서고금 모든 종교 사상을 회통한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이론보다는 ‘아하!’ 하며 깨달아가는 체험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종교체험’에 대한 강조는 자칫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특히 고대부터 한민족의 의식과 문화 속에 깊게 내재해 있는 무교의 영향으로 개신교에서도 방언과 열광적인 성령 체험을 강조하며 반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그런 현실도피적이고 반이성적인 열광주의와 성령주의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위한 종교의 길과는 반대임을 분명히 했다. 인간의 의식을 3단계로 나누면 보통의 이성적인 의식을 초월해 이타적 사랑과 평화의 화신이 되는 게 종교적이라면, 히피처럼 마약을 해서라도 이성 이전으로 가는 것은 반종교적 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울고 웃고 광적인 열광으로 환각 상태로의 도피는 종교의 길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전(前)이성’과 ‘초(超)이성’, 이 둘을 혼동하는 것을 ‘전초오류’”라며 “기독교적으로 보더라도 이성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쓰라고 준 것이므로 먼저 이성적이 되고 나서 사랑과 평화의 초이성체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기복적인 표층신앙에서 이기적 나를 벗어나 ‘참나’로 나아가는 심층신앙을 진정한 평화와 안락의 길로 제시한다.

 

특히 오 교수는 크리스천으로 자랐으면서도 개신교의 독선과 배타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문자주의적 맹신을 넘어서야 진정한 크리스천,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갖는 종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문일답이다.

 

―성령이 임했다든가, 거듭났다든가 등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사랑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경우는 왜 그런가?

 

“이성을 넘어선 초이성 체험은 사랑이나 평화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 이전은 본능적이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기도 하고 성령을 받았다면서 집에 와서 폐물이 없어진 것을 보고, 성물까지 집어 던지며 타인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성령을 받았다면서 윤리적인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진짜 성령을 받으면 이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도, 사랑까지 넘친다. 이성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세에 신과 합일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룬 신비주의자들이 거치는 단계가 있다.

첫째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고, 흠이 많은 삶을 회개해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정결 단계다.

두번째는 빛을 본다거나 내면의 깨달음을 얻는다.

세번째는 자신이 없어지니, 그대로 신이 되어 신과 합일을 이룬다. 내가 없어지는 단계에서는 최고의 겸손을 보인다.”

 

―현대인들의 마음 건강과 내적 평화를 위해 소개하고 싶은 현인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종교적 선각자들이 한결같이 가르치는 것은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므로 지금의 나에게서 해방되어 ‘참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를 따르는 조건으로 지금의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하고, 부처님도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는 무아(無我)를 가르쳤다. 개신교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류영모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이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한다. 지금의 내가 없어지고 큰 나를 찾게 되면 그 큰 나는 결국 절대자나 우주와 ‘하나’되게 된다고 가르친다.”

 

―삶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비난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척추협착증으로 캐나다에서 두번 수술을 받았다. 그런 일상의 사소한 어려움 같은 것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 )나 고진감래(苦盡甘來·고생 끝에 낙이 옴)의 원리를 기억하며 기다리는 편이다. 단 고진감래만이 아니라 감진고래(甘盡苦來·즐거움 뒤에 고통이 옴)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한다. 순풍에 돛 단 듯이 가다가도 언젠가 파도나 태풍을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수는 없다> 출간 이후 보수 쪽 목사들이 공격했지만,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누구든 내 의견에 반대하고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위해 자신만이 하는 명상이나 기도가 있는가?

 

“한때 확철대오(완전한 깨달음)의 경험을 해볼까 애써보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퀘이커(기독교의 한 교파)뿐 아니라 캐나다연합교회 모임에 종종 참석한다. 캐나다에서도 가장 열려있는 곳이다. 퀘이커는 한시간 동안 가만히 있다가 명상만 한다. 참선도 한다. 또 한국이나 일본의 선방에 가서 참선도 해본다. 학위 받고 혼자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마이애미대에 가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냉수마찰도 하고 열심히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정기적으로나마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고, 독서삼매에서 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험도 한다. 옛 영성가들의 저작을 차근차근 읽을 때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느끼기도 한다.”

 

<에스비에스비즈>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와 서울을 연결해 오강남 교수가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와 대담을 하고 있다. <에스비에스 비즈> 프그램 화면 갈무리

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543/imgdb/original/2021/1123/20211123503807.jpg

 

―예수님의 첫 가르침인 ‘회개하라’는 것은 죄를 뉘우치라는 것보다 새로운 의식, 새로운 가치관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율법주의를 버리고, 사랑을 가르친 이가 예수님이다. 그 당시 유대교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누가 깨끗하냐 안 깨끗하냐, 정결하냐 더러우냐’만을 따졌다.

구약 레위기에 의해 당시 정결하지 않다고 여긴 창녀와 병자들, 장애인들을 내쳤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멀리한 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왔다. 그리고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의로워라’는 구약을 ‘하나님이 자비하심처럼 너희도 자비하라’며 누구든 자비롭게 대하라고 했다. 이런 가르침이 핵폭탄이자 빅뱅이다. 그러나 늘 내쳐지던 약자들에게 예수님은 진리요 생명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종교 성자들과 비교한 배타적 진술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한 개인들의 고백적 언어다. 그렇게 시작된 게 예수 운동이다.”

 

―종교에도 단계가 있다고 하셨는데, 종교적 성장이란 무엇인가?

 

“하버드대 심리학부에 있다가 에모리대로 옮겨간 제임스 파올로 교수가 <신앙의 발달 단계>에서 6개의 단계를 제시했다.

처음엔 직관적인 단계. 의심 없이 말한 대로 받아들이는 단계다.

두번째는 신화적·문자적으로 믿는 단계다.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듣고 정말 굴뚝으로 산타클로스가 들어온다고 믿는 단계다.

세번째 단계는 의심이 되는데 설명하면 받아들이는 단계다.

세번째 단계가 문자주의 단계다.

미국의 성직자들은 교인들이 이 3단계에 머물게 한다.

제일 높은 단계가 보편화의 단계로, 보편적인 것을 보는 단계다. 간디나 디트리히 본회퍼(독일 루터교회 목사·신학자)나 테레사 수녀 같은 인물들이 도달한 단계라고 한다.”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은 안식일은 자연 파괴를 멈추는 것으로 보았다. 뭔가 일을 한다는 것은 건설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연을 훼손시키는 것이므로, 적어도 하루는 훼손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라고 한다.

프롬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존재냐 소유냐’다.

6일은 소유를 위해 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는 존재를 위해서 살자는 것, 즉 얼마나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존재 자체를 즐기고 살자는 게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요수아 헤셀(유대교 신학자, 랍비)은 좀 더 철학적으로 봤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의 정신적인 태도가 있는데, 하나는 공간을 중시하고, 하나는 시간을 중시하는 것이다.

공간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성전이 발전했고, 시간을 중시하는 데서는 안식일이 나왔다는 게 헤셀의 해석이다. 안식일 자체가 성전 노릇을 하며, 신과 교통하게 한다는 것이다.”

 

― 2001년께 낸 <예수는 없다>는 널리 알려졌는데, 통상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알고 있는 예수와 진짜 예수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은 50대 스웨덴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고, 눈이 파란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영국 <비비시>(BBC)에서 예수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예루살렘 해골들을 분석해 보니 예수님은 머리가 까맣고, 코가 납작하고, 키가 작은 전형적인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진짜 가르침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무엇이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인가 하면, 죄를 지으면 다 용서해주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이었는데, ‘회개하라’는 그리스어로 ‘메타노이테’다. 명사형은 ‘메타노이아’다. ‘뭘 넘어서다’, ‘바꾼다’는 뜻이다. 쉬운 말로 하면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노이아’는 의식이다. ‘우리의 의식을 넘어서라. 의식을 바꿔라’라는 것이다.

그건 ‘잘못했으니 뉘우친다’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가치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서 톡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소리다.”

 

―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는 어떻게 다른가?

 

“기독교에도 불교에도 표층이 있고, 심층이 있다. 전통마다 더 두껍거나 얕은 데가 있다. 대부분의 종교인은 표층종교인들이다.

표층종교의 특징은

첫째 기복적이다. 헌금하고 기도하는 것도 자신이 잘되려고 한다. 한편, 지금의 나를 떠나서, 진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심층종교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은 심층종교로 이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류영모 선생님은 ‘탐진치 삼독’(탐욕·성냄·어리석음)으로 꽉 차있는 ‘제나’가 ‘정신적인 나’이자 ‘참된 나’인 ‘얼나’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져라’고 했다.

 

표층종교의

두번째 특징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한다. ‘무조건 믿어라’. ‘이성을 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 표층종교에선 독립적 사고를 몰수당할 위험성이 크다.

심층종교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해하고 헌신하는 태도가 ‘심층’이라고 볼 수 있다.

 

세번째, 표층종교에서는 신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 신과 인간을 분리한다. 심층종교에서는 신과 내가 하나다. 신 속에 내가 있고, 나의 안에 신이 있다. 내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신인 것이다. 신이 내속에 있지만, 사실은 그게 나다.

동양에서 많이 쓰는 만물일체, 동귀일체가 심층종교의 핵심이다. 지금의 나를 없애고 진짜 나를 찾으면 신과 합일되는 경지에 이른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에 매달린다. 문자주의에 매달리면 종교는 그때부터 힘이 없어진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면 문자 뒤의 속내를 알 필요도 없어서 결국 모르게 된다. 모든 문자는 상징인데 말이다.”

 

―문자주의는 왜 문제인가?

 

“‘호랑이 담배 먹는 시절’이란 표현은 아주 오랜 옛날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호랑이도 그때는 담배를 피웠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셸피 스퐁 신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맹신하는, ‘문자주의는 이단’이라고 했고, 문자주의 신봉자들은 2천년 동안 헛다리를 짚었다고 했다.

 

실제 당시 하나님이란 말을 못 쓰니 대신 하늘나라라고 썼다. 한국에선 이를 천국이라고 번역하는데, 그건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지배하는 ‘신국’이다. 문자주의에는 반동적 문자주의도 있다.

가령 산타클로스가 진짜 온다고 믿었다가 어른이 되면 안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다고 주장하는 게 반동적 문자주의다.

일반 신도들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신도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해서 이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등의 성경 구절을 예로 들면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구절을 살펴보자.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쳐주는데, 다른 데를 보니 다른 신의 이름으로도 병을 잘 고치고 있었다. 제자들이 ‘우리도 다른 이름으로 고치면 어쩌냐’고 바오로에게 물으니 그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한 것이다. 다른 종교와 다 비교해서 예수님만이라고 한 게 아니다.

체구가 조그만 아이가 엄마를 따라 복잡한 시장에 갈 때 엄마가 ‘내 손 놓으면 죽는다’, ‘내 말 잘 들어야 돼’라고 하는 것은 ‘내가 길이요, 진리니 내 말만 잘 들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우리 엄마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다른 엄마들은 다 가짜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인 중엔 강한 배타성으로 다른 종교와 종파는 이단이고, 마귀고,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은 지옥에 간다고 하는 이가 많지 않은가?

 

“예수님은 한번도 그런 하나님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구약의 야훼에 대해서도 한번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으니, 내 종교로 오라’는 게 아니다.

‘종교의 짐에서부터 벗어나라. 자유를 얻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내, 영원히 불에 타도록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서구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성공회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같은 기독교라도,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인습적이고 제례적인 종교와 변화와 변혁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로 나뉜다고 했다.”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은 땅끝까지 전도하라는 게 예수의 명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가?

 

“예수님은 기독교라는 말을 몰랐고, 자신이 종교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질서 속에 살게 하려는 것이었지, 특정 종교제도 속에 우리 인간을 넣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든 나라에 보내, 너희는 땅끝까지 전도하라.

제자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일 수 없다.

거기서 나오는 삼위일체 사상은 서기 3~4세기 후에 나온 것으로, 예수님이 생존하던 당시엔 삼위일체 사상이 없었다.

예수님은 유대 땅을 다 돌기 전에 세상이 끝날 거라고 했는데, ‘땅끝까지 전도하라'고 했다니 성립되지 않는다.”

 

―<예수는 없다>에서 캐나다 최대 개신교 교단인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빌 핍스 목사가 1997년 <오타와 시티즌>과 한 인터뷰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밝힌 내용을 소개해 한국 개신교 목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 어떻게 보나?

 

“빌 핍스 목사는 변호사이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인권 행진도 함께한 깨어있는 목사다.

그는 ‘예수님이 부활했냐’는 질문에, ‘내 속에 살아계신다’고 하며, ‘무덤에서 걸어 나온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핍스 목사의 인터뷰에 제일 반박을 많이 한 게 캐나다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들이었다.

핍스 목사의 글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예수는 없다>가 됐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열려있나?

 

“은퇴하고, 밴쿠버 유비시알연합신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어떤 수업에 들어가든 세가지를 강조하라고 했다.

첫째는 생태·기후환경.

두번째는 성평등.

세번째는 종교 다원주의를 강조하라고 했다.

그것이 학교 지침이다. 캐나다연합교회도 그런 지침이 현대 기독교가 나아갈 길이므로, 교회에서도 종교다원주의를 포함해 가르치라고 했으나, 한국교회는 이 지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교회가 소속된 가장 큰 연합기관이다.

캐나다에서도 한인교회들은 그렇게 폐쇄적이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폐쇄적이다.

원래 종교든, 문화든 번져갈 때 원래 있던 곳보다 새롭게 받아들인 곳이 더 근본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유럽보다 미국 기독교가 더 근본주의적이고, 미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이 더 그런 것처럼 말이다.”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예수님 살아있던 그 당시에도 종말이 당대에 올 것처럼 여기기도 했는데, 부활과 심판의 날은 어떻게 보는가?

 

“심판의 날은 구약에서 나온 말이다. 다른 종교들에서도 나오는데,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가 죽고, 새로운 나로 부활하는 것이다. 무덤에서 새로 나오는 게 아니고, 새로운 나로 부활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으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천국에 가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쉬운 게 없다. 그런 식의 믿음은 믿는 거라고 할 수 없다.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의하면 믿음은 ‘궁극 관심’이다. 내게 가장 중요해서, 궁극 관심의 대상을 무엇으로 하느냐.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

 

부정부패로 돈을 벌어도 돈을 조금 내면 축복해주고, 교회 나가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

영화 <밀양>을 보면 사람을 죽여 놓고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다고 하는데, 그건 참된 의미의 믿음이 아니라 가짜 믿음이다.

또 하나는 이념.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 과학주의 등 이런 것에 목숨을 거는 믿음은 진짜 믿음에 가깝지만, 이 또한 유사 믿음이다.

진짜 궁극적인데 관심을 갖는 것이 참믿음이다.

궁극적인 관심은 내가 없어지고,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한 철학>를 보면, ‘나와 브라만이 하나다’라는 그것에 관심을 갖는다. 하늘나라 가는 것을 ‘궁극 관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예수는 없다>를 읽은 세명의 목사가 공격을 했을 때 어떻게 반박했나?

 

“갈릴레오의 예를 들었다. 갈릴레오가 태양이 도는 게 아니고 지구가 도는 것이라고 했을 때 교회는 반대했다. 갈릴레오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다며 갈릴레오를 정죄했다.

가톨릭은 뒤늦게 갈릴레오를 사면했다. 문자주의는 말이 안 된다.

신학적으로,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성령 숭배라고 한다.

재밌는 게 가톨릭은 전통을 중요시하고,

개신교는 전통을 뒤에 놓고 성경을 절대화한다.

사실 그것은 개신교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다. 당연시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게 프로테스탄트다. 이런 정신에 상반되게 한번 결정된 교리는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는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다.

신학은 그 시대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지금 주장하는 것들은 17~19세기에 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 놓은 이론이다.

약으로 치면 그때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내놓은 약이다. 지금은 앓고 있는 병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면 성경을 옛날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후서 3장6절에도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 했다. 문자 뒤에 있는 정신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스퐁 신부는 일관되게 문자주의 배격했다. 기독교가 살아나려면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 홍수’는 가능한 것인가?

 

“문자적으로 불가능하다. 공룡을 실으면 어떻게 되겠나. 모든 동물을 실으면 배설물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런 말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고 하는데, 그럼 다른 방법을 쓰지 왜 홍수를 일으켜 배를 만들고, 다 거기에 싣는가.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의식 발달사를 말해주는 것이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도 1장과 2장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1장 이야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로 되어있고,

2장4절 이후엔 야훼 다큐다.

1장에선 새들과 짐승을 만든 다음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2장에선 인간을 먼저 만들고 나서, 인간이 심심할까 봐 짐승들을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성경 편집자가 짜깁기하다 이렇게 된 듯하다. 따라서 성서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는 과학적이거나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창조과학처럼 결론을 내놓고 하는 건 과학이 아닌 유사 과학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서 ‘아무 형상(이미지)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자 이미지, 즉 사진찍기를 거부해 운전면허증도 못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보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발목 잡는 근거로 삼는 동성애 반대도 성경에 근거하는가?

 

“성경에 동성애 하지 말라는 게 레위기에 있다.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게 그것만은 아니다. ‘혼방으로 된 옷은 입지 말라’거나 ‘밭에 여러 씨앗을 뿌리지 마라’, ‘월경 때는 불경하니 성전에 가지 마라’, ‘장애인은 성전에 들어가지 마라’는 것들도 있다.

지금 기독교에서는 전부 무시해 버리는 것들이다.

다른 건 다 무시하면서, 오로지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것이 좋지 않다며 반대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지키려면 다 지키고, 버리려면 다 버리면 몰라도 말이다.

성경에 근거해서 동성애가 안 된다는 것은 성경을 오남용하는 것이다.

특히 성경에 함의 자손이 흑인이라는 말이 없는데도, 흑인으로 규정해 흑인은 노예가 되어야지 친구가 되면 안 된다고 한다.

과거 미국 남부에선 아이들이 흑인들과 놀면 성경에 종으로 삼으라고 했다며 못 놀게 할 때도 있었다.”

 

―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이 대형교회 확장의 일등공신이 되었는데, 기복신앙을 어떻게 평하나?

 

“모든 종교의 거의 모든 신자들은 표층신앙부터 시작한다. 빌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점점 표층신앙에서 자라나서 심층신앙으로 들어간다.

더 성장하지 못 하고 표층신앙에서만 멈추면 종교적 발달 장애다.

기복신앙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기복신앙에서 출발해 더 성장하지 못 하고 끝까지 기복신앙에만 머물러 있으면 문제라는 것이다.”

 

―헌금을 하는 것도 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경향이 적지 않은데, 십일조가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성경이 말하는 당시 사회는 12지파가 있어서 11지파가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를 먹여 살렸다. 그것을 십일조의 근거로 삼는데, 그러나 지금은 제사장 지파가 없으니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 특히 한국교회는 십일조를 복 받는 것과 연결지었다.

그래서 백만원을 미리 내면 천만원의 복이 들어온다는 가불십일조까지 있다고 하고, 헌금 봉투에 구멍까지 뚫어 얼마를 넣었는지 볼 수 있도록 한다. 헌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내 욕심을 줄이고, 나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바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돈을 내고 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여긴다면 종교에서 버려야 할 자기중심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성경 이사야 1장을 보면 ‘정의를 짓밟고 불의를 행하고 드린 재물이나 기도가 하느님께는 다 역겨운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 돈이나 가져오면 죄 사함 받아 면죄되고, 모든 게 능할 것이라는 건 성경과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돈을 바치는 것보다 정의를 실현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성경은 강조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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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Religion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6. 15:04

예수는 한국 교회에서 쫓겨났다 오강남 교수,

 

[도전 인터뷰] <예수는 없다> 저자 오강남 교수

 

03.06.18 / 최종 업데이트 0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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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는 누구인가,

명예교수 honorary[emeritus] professor, in Regina University of Canada,

오강남 교수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종교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원로 종교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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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어머니를 따라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한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학 비교종교학, Louisiana State University in Canada) 교수는 중·고교 시절에 신앙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는 교회의 일방적인 믿음 강요에 갈등하다가 <사상계> <기독교사상> 등의 잡지를 통해 신앙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저서와 강연 등을 통해 교리보다 예수의 행동을 본 받아야 한다고 한국 교회에 호소하고 있다. 그는 예수를 '울타리를 없애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를 분별하고 패로 무리 짓고 있다며 삐뚤어진 신앙 형태를 꾸짖고 있다.

 

그의 저서 <예수는 없다>에 대한 반향은 매우 컸다.

기독교인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고 구속된 기독교 신앙에서의 '해방감' 느끼고 또 '감동'을 받은 반면, 일부 목사들은 그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열린 종교관은 재작년 10월 현각스님(하버드대학원 종교학과 재학 중 숭산 스님의 강연을 듣고 91년 출가한 미국인으로 현재 경북 영주 현정사 주지)과의 대담에서 나눈 다음과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틱낫한 스님은 부처님 모시듯이 예수님도 모신다고 하더군요.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 전통으로 들어가고, 기독교인을 만나면 기독교 전통으로, 불교인을 만나면 불교 전통으로 들어가라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그런 열린 마음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그가 17일 여수YMCA에서 마련한 '생태계의 위기와 종교' 강연을 위해 여수를 찾았다.

이날 여수 정병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솔샘교회 전도사·정병진의 '즐거운 책읽기' 오마이뉴스에 연재)와 함께 솔샘교회에서 오강남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기독교와 한국 교회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금발 머리의 예수는 없고, 우리 삶을 신나게 하는 예수는 있다"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교수. 맥매스터대, 마이아미대, 알버타대, 서울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바 있다.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오 교수는 재작년 펴낸 <예수는 없다> (10만 부 가량 판매)로 한국 종교계 안팎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밖의 저서로는 <길벗들의 대화>(1983)

<도덕경(1995)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1996)

<장자>(1995)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2002)이 있으며

<세계 종교 둘러보기>(현암사)가 곧 출판된다.

 

번역서로는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종교>(1993)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1997)

<귀향>(2001)

<예언자>(2003) 등이 있다.

           

- 한국 기독교는 지난 99년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한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이 광고에서 "돈과 권력 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하고, 교회 자원을 사회 정의실현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를 고백"한다고 자백했다.

죄의 고백과 함께 바른 신앙과 삶, 교회 일치와 개혁, 나눔과 섬김의 삶을 향한 연대를 이루겠다고 선언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한국 교회의 개혁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든다.

 

"완전한 세상은 없다. 다만 완전을 향해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북극성을 향해 가지만 북극성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다만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발걸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깨어 걸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 교회의 개혁 가능성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개혁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많은 분들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큰 것은 이기주의적 신앙과 배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천주교와 불교는 서로 교류하면서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반면

기독교는 유독 다른 종교에 대해 닫힌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근본주의 색채로 인해 배타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현각 스님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기독교·불교를 떠나 나의 모자람은 스님이 채워주고 내가 가진 것의 일부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종교학의 창시자인 '막스 뮐러'는 '한가지 종교만을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맑시즘의 이분법은 기독교의 이분법에서 배워온 것이다. 기독교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거기다 북한은 맑시즘의 이분법, 남한은 기독교의 이분법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분법은 상대를 포용할 공간이 없다. 남한의 기독교는 자신의 종교와 민족을 위해서도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이승만 정부이래 한국 기독교는 권력과 밀월을 즐기며 급성장했다.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독재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소리치기 보다 조찬기도회로 권력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데 일조를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본다.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의 기독교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됐다. 기독교는 인류 역사에서도 과학의 발달과 관용주의가 흐르는 세상으로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그런데도 교회들은 기독교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해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를 자각하고 조심스럽게 회개해야 한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3절)

 

-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은 교인만을 이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 교수의 저서 <예수는 없다>는 제목처럼 한국 교회에 예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예수에 대한 믿음보다 예수의 믿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교리에 매달리기 보다 예수가 한 행동과 마음을 따르는게 중요하다.

예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다. 예수를 본 받게 되면 한국 기독교는 자연스레 개혁되고 사회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당수 교회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립서비스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예수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 뜻을 따르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예수는 삼위일체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교리 논쟁보다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상당수 교회들은 무조건 '아멘' 하고, 헌금을 내는데 따라 복을 받는다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예수 따르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 과연 예수는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그런 예수는 없고 이런 예수는 있다. 이제 본 받고 싶고, 우리 삶을 신나게 하고,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이런 예수를 찾아야 한다.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한 그런 예수는 없다.

그런 예수의 교리는 우리 삶을 신나게 해주지 않는다.

예수는 믿음과 거룩함을 뽐내지 말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거룩한 예수가 아니라 자비한 예수이다.

 

유대 사회 당시에 정결하지 않은 계층은 배척하는 '정결 제도'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부정한 계층과 가까이 할 경우 엄혹한 벌이 뒤따랐다.

하지만 예수는 배척받던 창녀, 세리, 문둥병자, 혈루병 걸린 여인, 남자 관계가 복잡한 사마리아 여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예수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함께 먹고 마시며 위로하고 치료해주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예수는 쫓겨났다. 예수가 교회를 찾아갔더니 기독교인들이 냄새나고 누추하다고 옆에 오지도 않는다. 예수는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닌데 찬송에서 싸움의 대장으로 만들고 있다. 예수는 내 이름을 걸고 전쟁하고 공격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예수가 교회에 가서 목사가 앉는 보좌가 얼마나 화려한지, '천국의 내 자리보다 더 영광스러워 보인다'고 개탄한다."

 

- 교회가 바벨탑처럼 높고 거대해지고 있다. 국민들은 거대해지는 교회에 대해 반발심을 갖고 있다. 지금은 대형 교회를 지을 때인가 아니면 허물 때인가.

 

"21세기의 패턴은 다양화다. 대형, 중형, 소형, 천막교회도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추세가 문제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교회는 건물이며 예배당일 뿐이다. 그러한 교회가 목적이 되면 건물이 우상화된다. 신학적으로 보면 예수의 죽음 이후에 휘장이 찢어지면서 성전의 시대는 끝이 났다. 한 마디로 성전은 없다.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래서 문턱을 낮추고 이웃과 함께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 한국의 모든 기업과 봉급자들은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 하지만 교회와 목사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이것은 특혜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제 교회와 목사들도 세금을 낼 때가 된 것 아닌가.

 

"캐나다와 미국의 목사들은 일반 국민들과 똑 같이 세금을 낸다.

교회도 소득이 있다면 기업처럼 세금을 내야하고 월급을 받는 목사 또한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

 

▲ 여수YMCA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오강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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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종교 전쟁에 의해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가령 종교가 없었다면 전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 역사의 상당 부분의 전쟁은 종교와 관련됐다. 종교전쟁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됐지만 종교가 없다는 것은 가상할 수 없다.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이다. 종교사와 인류사적으로 봐도 종교 없는 종족은 없었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게 종교다.

 

아이러니 하게도 종교는 평화를 가져오기 보다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종교들이 이제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데 협력해야 한다. 내 종교만이 최고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와 협력해서 생태계와 인류가 격고 있는 고통을 경감하는데 힘써야 한다."

 

- 한국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신앙의 진리보다 남편의 승진, 자식의 명문대학 합격을 위해 부적처럼 기도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인가.

 

"한국에서 '야베스(성경 등장인물)'의 기도를 확대 해석한 책이 수 십 만 권 팔렸다. 야베스는 기도하면서 땅을 넓게 해주고, 복을 주고, 건강을 달라고 한다. 기도가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는데 매우 위험해 보인다. 기도는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인데 기복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팔을 비틀어 자기 것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

 

진정한 종교라면 기도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 없어지면서 증오를 화해로 바꾼다.

자기를 드러내면 각자가 개체가 아니라 하나임을 알게 된다.

기독교의 진정한 기도는 상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자비함을 통해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불교 Buddhism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3. 13:06

틱낫한 스님 열반 향년 95세

 

의견;

틱낱한 스님이 명상을 안하고, 걸었다면 100 살은 넘어 살수가 있었을게다.

그가 2014년 87살때 뇌졸증으로 쓰러진게 명상 때문일게다.

나이 87에 건강한 사람들도 많다.

명상과 잠을 자는건 다르다. 명상을 오래하면 혈전이 생긴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명상을 오래 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명상을 줄이고 대신 자주 걸었다면 뇌졸증으로 쓰러지지는 아니했고

100 살 넘게 살수 있었을게다.

대게 몸이 작은 사람들이 장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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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불교 지도자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열반,

 

베트남전 반대하다가 추방,,,

2014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고국서 여생 보내

"고통을 이용해 행복 느낄 수 있어" 명상 수련 강조

인권 운동가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3월 22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별세했다.

 

그가 프랑스에 세운 불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 사원은 틱낫한 스님이 이날 자정에 입적했다고 고인의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시인이자 교사, 평화 운동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꼽혔다.

 

고인은 1926년에 태어나 23세의 나이에 승려가 됐다.

 

영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했던 그는 1960년대 초반 미국 프린스턴대와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불교와 관련된 강의를 했다.

 

지난 1963년 고국에 돌아온 뒤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가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불교 원리를 정치·사회 개혁에 적용하는 참여불교 운동을 전개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고인은 생전에 미국의 인권 운동가인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만나 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는 틱낫한 스님에 감명한 킹 목사가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서방 세계에 불교를 널리 알린 인물이다.

 

프랑스에 플럼빌리지 사원을 세운 뒤 줄곧 마음의 수련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늘상 "고통을 받는 법을 알게 되면 고통을 줄일 수 있으며, 고통을 이용해 행복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고인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2018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전세계에 있는 플럼빌리지 명상 산책로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틱낫한 스님은

국내에도 '화', '틱낫한 명상',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 다수의 책이 소개됐다.

 
 
 

사회 Society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11. 11:46

악성댓글 악플 퇴치법 이기는 방법 대처법

 

TV에서 이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는데 유튜버들이 올리는 협오성 악성댓글로인해

자살을 한 사람들에대한 방송을 들었다.

 

피해자의 자살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악플러들에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들만이 승리한다.

 

노무현은 자살아닌 죽임을 당했고,

전 서울시장 박원순은 자살을했고

연예인들 중에도 자살을 한 사람들이 자주 있다.

 

자살하면 해결이되는게 아니다.

가해자들이 반성하기보다 조금 미안하게 느꼈다가

다른 일에 또 악플을 계속한다.

 

문제의 동기는 사회적, 문화적 갈등이다.

그건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라 어느 나라에도 있으나

한국이 유별나게 ‘한’이 많다.

 

그 감정적 심리적 문화적인 한이 분출 발산 되면서

BTS 가수들이 탄생하기도했고

한국인들이 오스카 상을 받기도했다.

 

반면에 범죄도 급격히 증가했다.

 

해결은 안되더라도 악플에대해 큰 효과를 볼수있는 방법은

 

1. 괴롭고, 화나고, 괴씸하면 고난을 받고도 이긴 사람들을 생각하라.

분석심리학자 Sigmund Freud, 마르틴루터킹, 정신력이 강한 Malcom X,

예수도 정신력이 강하지만 미련해서 공자와는 달리 일찍 죽었다.

 

유대인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독일경찰이 너무나 괴롭혀서 독일을 떠났다.

경찰이 그 사람책을 불사르고 괴롭혔으나 정신력이 엄청 강한 사람이다.

투쟁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정신력이 강해진다.

 

2.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래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라.

정치인과 연예인은 남이 어떻게 평하는지에대해 예민하다.

그러나 포기하지마라. 시간이가면 해결되는것들이 얼마던지 있다.

 

3.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도중에 물건에대해서, 서비스에대해서 악플을 달고 장사를 방해하는 경우, 인터넽에서 계속 해명하여 손님들이 오해가 없도록 시간,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개인적으로 전화나 이메일로 오는 악플은 차단시켜라.

 

4. 한국, 미국처럼 정치를 잘못해서 부자들에게는 유리하고 범죄가 많은 나라에서는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선한 시민들이다.

 

2. 심리학, 정신의학에 관심을 가져라. 정신이 강해지려면 심리학 정신의학, 또는 범죄학에대해 관심을 갖고 자주 공부해라. 감옥에 있는 사람들만 범죄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범죄자들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감옥소 밖에서 살뿐, 그들과 우리는 큰 차이가 없다.

 

3. 복수는 억울한자의 권리이다. 악플러의 신상을 알아보고 약점이나 단점을 찾아보아라.

혼자서 해결하려고하기보다 주위나 전문가들의 무료 상담을 찾아보고 상담후 마지막 결정은 본인이 해야한다.

 

4. 종교를 멀리하라. 종교와 연속극은 논리적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서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보게된다.

드러머에서는 화가 난다고 던지고 부수고하는 장면은 현실과 다르다.

종교 이론도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상식에서 벗어난 논리를 교리로 만들어서 설교한다.

따라서 종교에 깊이 빠지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고 비현실적이고,, 이중인격자가 된것을 자주 보았다. 미 CA 주 라디오 전 사장 장씨가 속과 겉이 아주 다른 예이다.

 

5. 결국 자살하지 않고 굳게 버티고 살아남는자만이 승리자가 된다.

왜 나의 친구는 30년을 괴롭힘 당했는데, 아직도 몸, 정신이 건강한가?

 

인터넽에 떠도는 정보들 중에는 통계일뿐, 여러분의 경우와 맞지 않는 사례들이 많다.

잘못되 정보에 의존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살아남게된다.

 

물론 조선시대와 지금은 다르나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 조건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논개, 황진이, 이매창, 기타 선비들 중에 바른말을 하다 전라도로 유배 귀양을 간 충신들은 정신이 매우 강하다.

 

6. 자살을 하려거든 괴롭히는 넘을 죽여라.

어차피 한쪽이 죽어야한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다.

 

피해자가 자살을 하면 이익은 가해자가 보게된다.

따라서 가해자에게 불리하고 타격을 주려면

피해자는 살아 남아야한다.

 
 
 

경제 Economy

진보통일꿈 Liberals &amp; Dream of Un 2022. 4. 9. 14:50

사지 말아야할 제품 kohler, BMW, Benz, Audi,

 

kohler 1870년에 창립을 했는데

plumbing products 만드는 회사이고 [부엌, 화장실, 등등]  

제품을 보면 사고싶지가 않다.

 

이유는;;

 

1. 다른 제품보다 비싸다.

 

2. 부속이 특별해서 다른 부속으로 대치가 불가능하고

회사 비싼 부속만 사야한다.

 

3. 비싸면 고장이 없어야하는데 고장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비싸고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망허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자동차 ford 개판으로 만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