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리뷰

조아진 2021. 1. 24. 18:52

박비나 작가의 2021년 일러스트 캘린더 /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일러스트 작가인 박비나 작가가 1월 중순 쯤 인스타그램에서 선착순으로 캘린더를 보내준다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수줍게 손했다가 진짜로 보내준다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굿즈는 박비나 작가의 진정한 팬들이 받아야 하는 건데 내가 괜히 손들어서 그 분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실 우편물로 이 일러스트 캘린더를 받은 건 며칠 전인데 이거 포장을 뜯자마자 리액션 글을 바로 올려야 하는 압박감까지 들어서 개봉을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마음먹고 포장을 뜯는다.

 

굉장히 꼼꼼하게 포장된 표지부터 손글씨 엽서까지 대감동의 파도가 밀려온다. 난 원래 달력을 다이어리처럼 사용해서 지저분해 지는데 이건 그냥 소장용으로 갖고 있어야 할 듯 싶다.

 

요즘은 이런 걸 언박싱이라고 하나? 아무튼 지금부터 따듯한 시선과 감성으로 솔직한 일상을 그리는 박비나 작가의 2021년 일러스트 캘린더 작품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연등회의 시작 이야기 가난한 여인의 등불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기념 특별전 천 갈래의 빛, 연등회 (A Thousand Splendors : The Korean Lantern Lighting Festival)

 

이 캘린더의 일러스트 작품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부처가 마을에 들렀다 저녁 늦게 되어서야 떠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앞 다투어 좋은 기름과 심지를 사서 부처가 가는 길에 하나둘씩 등불을 밝혔다.

 

마을의 가난한 여인이었던 난타도 부처가 떠나는 그 길에 등불을 놓고 싶었고 하루 종일 일한 대가로 받은 동전 한 닢 전부를 바쳐 겨우겨우 기름과 심지를 구할 수 있었다.

 

마침내 밝힌 그 작은 등불은 기이하게도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이 다 꺼진 뒤에도 계속해서 불을 밝히고 있었고 이에 부처는 착한 여인의 지극한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라 칭찬하고 가난한 여인 난타가 이 등불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야기가 끝맺음 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 중에 예수의 일화 중에도 있다.

 

어느 날 예수는 연보 궤(주일이나 축일에 돈을 바치는 데에 사용하는 네모난 그릇)에 헌금을 넣는 부자와 가난한 과부를 보았는데 부자들은 헌금을 얼마를 넣어야 할까? 너무 많이 넣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고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하루 생활비 전부를 바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또한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아름다운 돌들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부처와 가난한 여인 난타 그리고 예수와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그냥 그때의 단순한 상황으로만 본다면 어떤 위대한, 숭앙받을만한 인물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난 좀 다르게 보고 싶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 예수와 구도자는 항상 자비로운 마음과 공손한 마음으로 모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 부처는 결국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지극 정성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닐까?

 

물론 목사나 신부, 스님 등 본인들 스스로가 마치 고귀한 숭앙의 대상인체 하며 교회나 절에 전 재산을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고 해석하는 부류들도 있겠지만 목사든, 신부든, 중이든 기본적으로는 그저 특정한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이라 여기는 내 입장에선 나와 생각이 같으면 함께 그 사랑을 실천하면 될 것이고 생각이 다르면 관심이나 인연을 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냥 일러스트 작품 이미지만 소개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글을 길게 쓴 이유가 있다.

 

일러스트 캘린더를 받기 위해 개인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박비나 작가가 이 이야기가 불교 콘텐츠인데 괜찮냐고 물어오며 다른 분들 중에서도 받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라서 고민 끝에 포기했다는 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비나 작가 본인은 무교라 했고 나는 원래는 기독교였지만 지금은 기독교를 기반으로한 만물사랑교 쯤 된다며 아무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언제 기회가 되면 최정민 작가까지 셋이서 종교와 관련된 작품을 함께 그려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캘린더 일러스트에는 작가의 이미지의 재해석은 있지만 이야기의 재해석은 담겨있지 않은 듯 하다. 어쩌면 무교인 박비나 작가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고 또 종교의 이야기를 감히 작가의 주관적 해석을 담아 그렸다가 변질되거나 오해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판화 혹은 실루엣 아트 형식으로 드라이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종교들이 참 욕 많이 먹고 있고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예수나 부처가 뭔 잘못이여, 잘못된 건 그 사람들이여라고.

 

살다보면 보통은 나무를 계속해서 보게 되지만 숲을 봐야 할 때가 있다.

 

사실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땅 속 뿌리는 어떤지, 속은 벌레가 파먹고 있진 않은지, 흙으로부터 영양분은 충분히 받고 있고 물이며 햇살이며 보살핌은 충분히 받고 있는지 등 신경을 쓰자면 한없이 신경 쓸 일이 많긴 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숲 전체를 보고 저 멀리서 불이 나서 이쪽으로 타들어 오고 있진 않은지, 외부로부터 벌목꾼들이 나타나 하나 둘씩 무단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있진 않은지, 수목 전염병이 돌아 말라죽고 있진 않은지 등을 살펴야 한다.

비단 종교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터이나 아무튼 내 오늘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자. 하나도 중요하고 전체도 중요하다.

 

내 믿음과 신념만, 내 종교만 중요하다고 단정 짓고 다른 나무들을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순간 숲은 어느 날 갑자기 그날이 이르러 돌 한 조각,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황량한 사막이 되어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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