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조아진 2021. 11. 21. 13:52

오래된 시계

 

 

 

일요일 오전 10시 반... 간만에 늦잠을 잤다.

 

보통은 자정 무렵부터 졸음이 쏟아져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는데 어제는 방 안의 탁상용 시계를 바라보니 밤 1030분이 조금 넘은 시간밖에 안 된 것을 확인하고는 지금 잠들 순 없다는 필사의 노력으로 유투브를 시청했다.

 

평소에 잠드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 자면 너무 일찍 깨서 그날의 생활리듬이 흐트러져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이유도 있었고 그래도 나름 주말인데 일찍 잠들긴 뭔가 좀 억울하고 아쉽기도 해서 연신 눈을 비벼대며 억지로 자지 않기 위해 버텼다.

 

그러다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다시 시계를 보니 또 1030분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휴대폰의 시계를 보니 이럴수가... 시간은 새벽 3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내 졸음의 상태를 볼 때 내가 밤 1030분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첫 번째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긴 상태였을 것이 확실했다.

 

오늘 오전 11시 반쯤 어머니와 함께 약간 이른 점심을 먹다 내가 오랜만에 늦잠 잔 것을 보신 어머니께서 어제 늦게 잤나보네? 하고 물으셔서 방 안 시계가 건전지가 다 떨어져서 멈춘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서 위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그때 어머니께서 이 시계가 참 오래된 시계인데도 건전지만 갈아주면 여전히 잘 간다며 참 튼튼한 시계라고 말씀하셨고 나도 동의하며 그런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식사를 마친 뒤 갑자기 이 시계가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던가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저 옛날부터 쭉 함께 있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들이 없었다.

 

여하튼 시계의 건전지 교체를 위해 여분의 건전지가 있는지 책상 서랍을 뒤졌는데 달랑 하나밖에 없었다.

 

에잇, 두 개는 있어야 하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무심코 시계의 뒷면을 보았는데 3A 건전지 세 개가 필요한 구조인 것을 확인하자 갑자기 이전의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내가 예전에 첫 칸과 둘째 칸이 알람 소리용이라서 빼버리고 시계바늘만 움직이도록 마지막 셋째 칸 하나에만 건전지를 넣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 남은 건전지를 교체했고 시계는 다시 예전처럼 째깍째깍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움직이는 시계를 보며 문득 정말 넌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냐?’ 속으로 물었고 난 시계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면에 브랜드 이름으로 보이는 kappa (카파)quartz (쿼츠)가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no745 그리고 바닥면에는 p95.08과 같은 암호처럼 보이는 숫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쿼츠란 1969년 수정진동자에 전기를 흘려 작동하는 방식으로 기계식 시계의 개념을 바꾼 혁신적 제품이며 싸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모델이라고 나오고 카파는 1983년 삼성시계로부터 탄생된 우리나라의 시계 브랜드라고 한다.

 

비단 시계뿐만 아니라 모든 브랜드에 무관심한 나로서는 모두 처음 듣는 정보들이긴 한데... 뭐 아무튼 정확한 생산이나 제조일자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바닥에 보이는 p95.08을 추리해 보자면 pproduct의 약자이고 숫자들은 19958월에 생산된 제품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본다.

 

 

 

 

대충 1995년생이라고 추측한다면 한국나이로 27살인 셈이다.

 

스물일곱 먹은 시계라... 왠지 좀 애틋한 감정이 생겨 물티슈로 먼지를 좀 닦아준 뒤 다시 있던 자리에 시계를 올려뒀다.

지금 다시 보니 정면 상단에 snooze (잠깐 눈을 붙이다)란 표현도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녀석은... 새 것보다는 완전히 망가지거나 해지지 않는 이상 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내 성격상 평생 나랑 같이 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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