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쌤 컴교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몽중루의 외씨버선길 기행, 제5길 오일도시인의길

댓글 0

9 몽중루님작품과 산행기

2021. 3. 17.

몽중루의 외씨버선길 기행, 제5길 오일도시인의길

 

 

 

       산청(山靑)과 수청(水淸)의 고장으로 이름난 청송(靑松)과 영양(英陽)은 예로부터 문향(文鄕)으로 불리는 고장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문인과 학자들이 즐비하다.  청송 영양 봉화를 거쳐 영월까지 낙동강 수계를 거

       슬러가는 240여 km의 외씨버선길은 그 이름에도 문향(文香)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 외씨버선길의 소구간 이름들

       에는 청송 김주영객주길에서 보듯이 이 고장 출신 문인들의 이름들로 지어져 있다.  외씨버선 제5길, 오일도시인

       의 길을 간다.  

 

       3월 첫 주말 아침 11시,  제4길에 이어 2주 만에 다시 찾은 입암면 면사무소 앞을 출발해 남이포로 간다.  입암면

       연당리 무이산 동쪽을 흐르는 반변천(半邊川)과  그 서쪽을 흐르는 동천이 합강하는 남이포는  산과 강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으로 절경을 이룬 곳. 도회지의 삶에 익숙한 길손에겐 경외스러운 풍경이다. 거기에 더해 남이(南怡.1

       441~1468)라는 이름도 한몫한다. 27세에 병조판서를 지내고 28세에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이란 시화

       (詩禍)로 생을 마감한 그는 젊은 영웅.  그가 20대 초반에 이곳에까지 와 무공을 남겼다니 석벽 아래 그의 이름을

       딴 외딴 정자가 처연해 보인다. 석문교를 건너 남이장군 등산로를 따라 산자락 넘어 영양 산촌생활박물관으로 간

       다. 잔설이 녹은 울울한 소나무 숲들은 한결 푸르고 솔바람 또한  부드럽다.  굴피집, 너와집, 귀틀집 등을 돌아보

       며 잠시 옛 산촌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게 하는 산골 박물관에서의 여유는 노독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다. 천변 감

       천 수로(--水路)를 따라 감천교를 건너 시인 오일도(吳一島. 1901~1946) 생가가 있는 감천마을로 간다. 반변천이

       활처럼 동구 밖을 흐르는 마을은 배산 임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즈넉한 산촌. 수수 백 년 낙안(樂安) 오 씨의 집

       성촌이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자(識者)다. 서정적인 시작(詩作)과 함께 시 전문 잡

       지 시원(詩苑)을 발행하며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일제 말기 이곳으로 낙향해 통음(痛飮)으로 울분

       을 삭이다 일찍 요절하였다 전한다.  마을 한켠에 그의 이름을 딴 시공원(詩公園)이 있다.  이곳에서 다수의 그의

       시비를 살펴보며 그의 시향에 잠시 젖어본다.  

 

       감천마을을 뒤로하고 산길을 돌아 감천교를 건너고,  다시 굽돌이 강변을 거슬러 오르는데,  여울목을 돌아가는

       산비탈 깎아지른 거대한 수직 석벽들이 위엄을 더하며  눈길을 가져간다.  감입곡류(嵌入谷流)로 흐르는 반변천

       하안단구애(河岸段丘崖)다.  반변천 상류는 특히 이런 곡류 하천이 심하고  하폭이 좁은 횡곡(橫谷)이 발달해 있

       는데, 물길의 공격 사면마다 발달한 높은 수직 석벽을 보노라면 물길이 빚은 수억 년의 시간들이 켜켜이 배어있

       는 듯해 아름답고도 경이롭게 보인다. 사실 영양구간 외씨버선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볼거리고 특별한 진경

       (珍景)들이다.  

 

       영양은 동부천과 반변천이 이룬 넓은 분지에 앉은 농촌 읍이다. 읍내 어귀 논두렁에서 귀인들을 만났다. 길손에

       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이, 알고 보니 현직 영양군수였다.  그리고 그 곁에는 경상북도 도지사도 함께 있

       었다. 이철우 도지사는 지금 코로나 19로 어려움에 처한 민생과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내 민생현장 곳곳

       을 몸소 순회하는 중이란다.  금세라도 눈이 내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에 바람도 찬데,  점퍼에 목도리로 무장한

       그는 공휴일도 잊은 채 두어 명 수행원을 대동하고 영양을 찾아  논두렁 수로길을 걷고 있었다.  순수한 그 모습

       이 좋았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에게까지 두 손잡고 안부를 물으며 촬영까지 함께하는 친절한 그 모습은  공인답

       게 더욱 보기 좋았다. 오도창 영양 군수도 마찬가지.

                                                                                                                           촬영, 2021, 03, 06.

 

   ▼ 외씨버선 제5길 안내도

 

   ▼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입암교 삼거리 일원

 

   ▼ 입암 신구 2리  

 

   ▼ 영양 입암면 연당리, 남이포와 동천 어귀

   

   ▼선바위 관광지 

 

 

   ▼남이포 석문교

 

   ▼남이포와 하안단구애

 

   ▼입암교

 

  ▼남이장군 등산로 - 1

 

   ▼남이장군 등산로 - 2

 

   ▼남이장군 등산로 - 3

 

   ▼입암면 연당리, 영양 산촌생활박물관

 

   ▼ 산촌생활박물관 - 2

 

   ▼산촌생활박물관 - 3 / 연지

 

   ▼굴피집

  

   ▼너와집

 

   ▼투방집(귀틀집)

 

   ▼산수유 

 

   ▼감천 수로 길

 

    ▼영양읍 감천교와 학초정

 

   ▼ 감천 마을

 

   ▼감천 마을 삼천지

 

   ▼ 오일도 생가

 

 

   ▼오일도 생가 사랑채 / 국운헌

 

   ▼생가 안채

 

   ▼오일도 시공원

 

   ▼오일도 시비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저 황막荒漠한 벌판을 희게 덮어 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無慈悲한 바람 때 없이 지나는 잔 칼질 길에

          피투성이 낙엽落葉이 가득 쌓인

          대지大地의 젖가슴 포오트랩 빛의 상처傷處를.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자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靑春의 肉體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구리는 검은 얼굴을.

 

          눈이녀! 퍽퍽 내려 다오

          太陽이 또 그 위에 빛나리다.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淨土위에

          내 영靈을 쉬이려는 希願이오니.

 

 

         ▼감천 마을 필자 인증

 

   ▼감천 마을 뒷산 길 - 1

 

   ▼감천 마을 뒷산 길 - 2

 

   ▼ 감천 1교

 

   ▼감천 1교 상류 

 

   ▼감천 1교 주변 반변천 측방침식 석벽

 

 

   ▼진막골 입구 세일교

 

   ▼진막골 외씨버선길 이정표

 

   ▼반변천 진막골길

 

   ▼영양읍

 

     ▼영양읍 사정(思亭) 

    일제 때 영양지역에서 부를 쌓아 자선사업을 크게 펼쳤던 권영성(權永成. 1881~1959)이

    1934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5칸 누정으로 입구 담벽엔 그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영양읍 동부천과 반변천 사이 들녘

 

   ▼영양읍 시가 - 1

 

   ▼영양읍 시가 - 2

 

   ▼영양전통시장

 

   ▼영양읍 외씨버선길 '영양객주' 건물